전설로 남은 추도사

Fact/역사-고전 · 2013. 12. 26. 20:18

# 넬슨 만델라(1918~2013·전 남아공 대통령)를 위한 버락 오바마(1961~·미 대통령)의 추도사

 

만델라의 영결식에는 100명 가까운 세계 정상이 모였다. 그중에서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감회는 남달랐다. 남아공의 흑백 차별 철폐를 넘어 지구촌 화합의 상징으로 남은 만델라는 그에게 단순한 위인 이상이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대학생 시절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와 이에 맞서는 만델라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처음 알게 된 뒤 정치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는 꿈의 출발점이 됐던 만델라에게 20분 동안의 추모 연설을 통해 다시 한 번 존경을 표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그 삶의 정수를 몇 단어로 추모사에 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 추도사가 한 국가를 정의롭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수십억 인구를 움직인 역사의 거인을 위한 것이라면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제1차 세계대전 중 태어나 소를 치고, 부족 어르신들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한 소년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해방자로 떠올랐다. 그는 마하트마 간디처럼 성공할 가능성조차 희박했던 저항운동을 이끌었고, 마틴 루서 킹처럼 억압받은 이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줬으며,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분열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하나로 묶었다. 그는 생명 없는 상징으로 남기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두려움과 의심을 우리와 함께 나누며 완벽하지 않은 인간으로 남기를 선택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를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델라는 우리에게 행동의 힘을 보여줬다. 이상을 이루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동시에 그는 우리에게 끝없이 생각하고, 논쟁하라고 가르쳤다. 동의하는 일 뿐 아니라 동의할 수 없는 일조차 더 파고들어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가르쳤다. 이제 우리도 정의의 편에서 평화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그의 뜻을 기꺼이 따를 이들은 너무도 많다.

 

우리는 다시는 만델라 같은 이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는 얼마나 위대한 영혼이었던가. 우리는 그를 깊이 그리워할 것이다.” <2013년 12월 10일>

 


# 로널드 레이건(1911~2004·전 미 대통령)을 위한 마거릿 대처(1925~2013·전 영국 총리)의 추도사

 

두 사람은 ‘정치적 소울메이트(soulmate)’로 불릴 정도로 같은 이념과 사상을 공유했던 동지였다. 옛 소련 붕괴, 냉전 종식을 이끈 세기의 지도자들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레이건은 알츠하이머, 대처는 치매를 앓으며 힘든 말년을 보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레이건을 위해 대처가 남긴 추도사에도 병마에 시달리던 친구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난다. 이 추도사는 대처가 남긴 마지막 공식 연설로도 기록돼 있다.

 

“우리는 지금 로니(레이건의 애칭)가 시작한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 그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냉전에서 승리했다. 이뿐만 아니라 적들이 요새에서 나오도록 손을 내밀었고, 결국 그들을 친구로 만들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악의 제국’을 거침없이 비판했지만, 그 암울한 곳에서도 선한 의지를 가진 이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소련이 무너진 뒤 잔해 속에서 선한 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저 없이 악수를 청하고 진실된 협조를 약속했다.

 

로널드 레이건보다 더 ‘미국인’같은 사람은 없었다. 그는 미국과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 바로 자유와 모든 이가 누리는 기회를 사랑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뿐 아니라 한 시민으로서도 미국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다른 이에게도 자신 있게 조국을 위한 희생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황혼 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레이건은 가져보지 못한 신호등 불빛이 있다. 바로 레이건 자신이 남긴 업적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몇 해 동안 로니의 마음은 병으로 흐려졌다. 하지만 이 먹구름은 이제 말끔히 걷혔다. 그는 이제, 지상에서 보낸 어떤 때보다도 더 자신다운 모습을 되찾았다.” <2004년 6월 11일>

 


# 다이애나 스펜서(1961~1997·전 영국 왕세자비)를 위한 엘튼 존(1947~·영국 가수)의 추모곡

 

엘튼 존은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가수다. 두 사람은 가장 친한 친구 사이기도 했다. 1997년 9월 6일, 존은 런던 웨스트민스터대성당에서 진행된 다이애나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는 대신 추도곡 ‘바람 속의 촛불’을 불렀다. 그가 본디 메릴린 먼로에게 헌정했던 노래 ‘바람 속의 촛불’의 가사를 바꾸고 편곡한 리메이크곡이었다. 이 노래는 당시 영결식의 백미로 꼽혔다. 1997년 10월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안녕히. 영국의 장미여. 당신은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으리. 그대는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했던 고귀한 사람. 그대는 우리를 일깨워 주었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속삭였죠. 이제 그대는 천국에 있고. 별들이 하늘에 당신의 이름을 쓰네요. 내가 보기에 그대는, 바람 속에서도 타오르는 촛불처럼 살았죠. 해가 져도 사그라지지 않고, 비가 와도 꺼지지 않는, 그대의 발자취는 영원히 남으리. 여기 영국의 가장 푸르른 언덕을 따라 그대의 촛불은 오래전에 다 타고 꺼졌어도, 당신의 신화는 계속될 거예요. 사랑스러운 그대를 잃었어요. 당신의 미소 없는 이 허전한 나날들. 우리는 언제나 이 등불을 밝히고 있겠어요. 우리나라의 고귀한 아이를 위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대의 죽음 앞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네요.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어요. 지난 세월 동안 그대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기쁨을. 안녕히. 영국의 장미여. 그대의 영혼을 잃고 헤매는 이 나라에서. 그대의 사랑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1997년 9월 6일>

 


# 체 게바라(1928~1967·쿠바 혁명가)를 위한 피델 카스트로(1926~·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추도사

 

게바라와 카스트로는 1959년 쿠바 공산주의 혁명을 함께 이끌어 낸 동지다. 게바라는 혁명정부의 중앙은행 총재와 장관을 역임하며 2인자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안락한 삶에 머무는 것을 거부했다. 또 다른 혁명과 해방을 꿈꾸던 게바라는 콩고 혁명에 가담한 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다 67년 10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휘를 받는 볼리비아군에 의해 사살됐다. 카스트로는 혁명에 성공한 뒤 49년 동안 쿠바를 통치해 오다 2008년 동생 라울에게 권력을 넘겼다.

 

“체 게바라는 모두가 보는 즉시 사랑에 빠지는 그런 유의 사람이었다. 그의 명료함과 그의 본성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그의 동지애와 독창성 때문이다. 게바라는 절대 패배하지 않는 군인이자 사령관이었다. 비범하게 용감했고, 대단하게 공격적이었다.

 

그가 쓰러졌다. 적들은 그의 사고와 게릴라 정신과 혁명정신을 패퇴시켰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이 운 좋게 얻은 것은 체 게바라의 육체적 삶을 앗아갔다는 것뿐이다.

 

체 게바라의 사망은 혁명운동에서 엄청난 타격이다. 우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노련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를 잃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자축하는 이들은 오판하고 있다. 그들은 체 게바라의 사상과 전략과 전술을 패배시켰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분명한 오판이다. 체 게바라는 단 한번 운 좋게 그를 죽인 적들보다 수천 배는 뛰어난 사람이다.

 

만약에 우리 군인들이, 혁명가들이, 국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들에게 ‘체 게바라처럼 돼라’고 말해야 한다. 만약 우리 다음 세대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들에게 ‘체 게바라처럼 돼라’고 말해야 한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교육받고,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체 게바라처럼 돼라’고 말해야 한다.

 

체 게바라는 쿠바뿐 아니라 남미 전역에 걸쳐 모범이 되는 사람이었다. 편견과 맹목적 애국심과 이기주의는 그의 마음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게바라는 만인의 안위를 위해 피 흘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착취와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모든 남미인들을 위해 피를 흘렸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장밋빛 미래, 그리고 만인을 위한 최후의 승리를 우리의 영웅 체 게바라와 함께 드높일 것이다. 언제나 승리를!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1967년 10월 18일> 

 


#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인도 민족운동지도자)를 위한 자와할랄 네루(1889~1964·인도 초대 총리)의 추도사

 

간디와 네루는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끈 민족 영웅들이다. 간디는 비폭력과 불복종, 금욕 등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사티아그라하’, 즉 진실 관철 투쟁을 이끌었다. 네루는 간디의 비폭력 투쟁을 접한 뒤 이를 계기로 식민 지배 저항에 동참했다. 특히 네루는 정치 참여를 통해 고통 받는 인도 국민을 대변하려 했다. 간디와 종교·이념이나 방법론 측면에서 항상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간디는 그에게 평생의 멘토였다. 인도의 초대 총리인 네루는 비동맹 중립 노선 천명을 통해 신생국 인도가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간디는 1948년 1월 뉴델리 힌두사원에서 극우 힌두교 광신자가 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네루는 절절한 추도사를 통해 위대한 스승과 이별했다.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비추던 태양이 사라졌다. 지금 우리는 어두움과 추위 속에 떨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를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신성한 횃불을 든 그가 우리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역사는 우리의 시대를 평가할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에 아직은 때가 이르다. 어둠 속에 갇혔던 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어둡지 않다는 것만 느낄 뿐이다. 우리의 가슴에는 그가 지핀 불꽃이 타오르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살아 움직이는 그 불꽃이 존재하는 한 이 땅은 암흑으로 뒤덮일 수 없다. 우리가 노력해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는 갔고, 인도에는 허탈과 절망만 남았다. 얼마가 지나야 이런 슬픔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위대한 인물과 같은 시대를 보냈다는 자랑스러운 감사의 마음이 있다. 수백 년, 수천 년 뒤 이 땅에 살 이들은 신과 같았던 분을 생각하며 우리 세대를 떠올릴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그가 개척한 길을 뒤따라 걸은 이들로 남을 것이며, 그의 발이 닿았던 성스러운 땅을 디딘 이들로 기억될 것이다.” <1948년 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