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채가 전재산입니까…재건축, 이 원리를 알아두세요

Fact/부동산 · 2017. 2. 25. 19:45
[토요판] 커버스토리 한국 토건자본주의의 ‘리얼월드’
서울 중랑 면목3구역으로 보는 재건축·재개발 범죄의 ‘일반 원리’

사전조 투입, 빅마 선점, 수주 조직도 설계, 대의원 성향 분석표 작성, 조합원 일상 장악, 현금 지르기, 정치인·정당·유력인사 로비, 비자금으로 ‘총알’ 마련, 총회 전날 ‘빼돌리기’, 약속파기·이중발주, 꼬리 자르기…. 당신의 머리 위로 아파트를 세우는 ‘15개의 일반 원리’를 소개합니다.

‘역대 최대·최다 분양’. 지역을 가리지 않고 ‘최대·최다’ 수식을 단 뉴스들이 뜬다. ‘기록’이 경신을 되풀이할 때마다 아파트 보유자들은 투자 전략을 고민하고 아파트 없는 자들은 상실감을 게워 낸다. 사진 속 철거촌(서울 중랑구 면목3구역)에서도 올해 연말까지 현대산업개발이 1034가구(조합원 분양 제외)를 분양한다는 계획이다. <한겨레>는 이 땅에서 재건축·재개발 메커니즘의 ‘적나라’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입수했다. ‘아파트 공화국’은 찬란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시공사-조합-OS(총회 홍보·득표 요원)-철거업체-부동산업자-정치인이 물고 물리며 서민의 주거를 먹거리 삼아 이득을 취하는 벌거벗은 현장이 그 자료에서 펼쳐진다. 재건축·재개발 범죄는 뉴스가 되지 못할 만큼 흔하지만 ‘범죄의 기술’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내부 자료가 뭉텅이로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재건축사업 수주 조직도, 조합원·대의원 성향 분석표, 로비와 비자금을 기록한 수첩, 날짜별 불법 금품·향응 제공 일지 등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를 하부에서 떠받치는 토건자본주의의 실체를 본다. 이 기사는 경찰 수사 결과를 뼈대로 세우고 관련자 취재·증언·반박으로 살을 붙였다. 범죄의 책임을 두고 입장과 주장이 대립할 땐 구분해 명시했다. 누구의 책임인지도 중요하나 누구의 책임이어도 바뀌지 않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 개별 사례이지만 개별 사례가 아니다. 국내 ‘거의 모든’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일반 원리’다. 조합원이십니까. 집 한 채가 전 재산입니까. 이 원리를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A가 수첩에 썼다.

“(서울 중랑구) 묵동 ○○한정식.”

그는 하루 일을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기록은 ‘기억’이었으나 ‘증거’이기도 했다. 증거는 한정식의 뒤탈을 막을 수도 있었고 뒤탈을 부를 수도 있었다. A가 2009년 12월18일치 메모난에 이름과 숫자를 적었다.

“중랑구청 구의회 의원 I 300 별도 지급. J 시의원 400만.”

300과 400은 봉투에 담겨 I(당시 한나라당)와 J(한나라당)에게 갔다. 돈봉투는 현대산업개발(현산) 부장 C가 만들어 왔다. 건네고 받으며, 대기업과 정치인이 한배를 탔다. 둘을 부동산업자 A가 연결했다. 함께 먹은 밥은 7년 뒤 탈이 났다. 배를 갈아타며 탈난 그들의 ‘동맹’은 기억과 증거의 진위를 두고 대립했다. 자본과 권력과 욕망이 서민의 주거를 먹이로 이합하고 집산하는 땅마다 ‘그것’이 자랐다.

아파트.

“교도소에서 재건축하라”

용마터널은 아차산(경기도 구리시~서울시 광진구)을 동에서 서로 관통했다. 구리시 교문동이 중랑구 면목동과 직통했다. 터널을 나온 뒤 사가정역을 지나 600m쯤 내려가면 도로와 골목에 싸인 네모반듯한 재건축 지구(면목3구역 6만8255㎡)에 닿는다.

지난 7일 버려진 살림살이들이 무너진 집 밖으로 내장처럼 흘러나와 있었다. 길고양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헤치며 빈집을 드나들었고, 철근들이 살갗 뚫은 핏줄처럼 건물을 찢고 돌출했다. 어린이 없는 ‘구립 또또어린이집’은 전체가 ‘공가’였고,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은 철거투쟁을 하며 대책을 촉구했다. “분담금에 죽는다”는 문장과 “교도소에서 재건축하라”는 구호가 벽을 타고 덩굴장미처럼 붉게 피었다. ‘사가정 아이파크’ 모델하우스가 도로변에서 홀로 매끈했다. 현산의 올해 분양 ‘계획 물량’ 1만9570가구(일반분양 1만5108가구) 중 1034가구(조합원분양 제외)가 이 땅에서 더해졌다.

현대산업개발의 ‘면목3 단독주택재건축 수주활동 조직도’. 총괄 지휘는 현산 본사 사우가, 정치인 등 로비 담당은 현산 본사 부장이 맡았다. 현산 쪽은 “모르는 조직도”라고 주장했다. * 그래프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①사전조 투입 2008년 여름 두 여성이 단독주택 단지인 면목동 164-10 일대에 나타났다.(*이하 A의 주장) 그날 면목3구역 재건축 전쟁은 ‘비공식적으로’(공식 시공사 입찰공고는 2009년 11월11일) 시작됐다. 두 명의 여성은 현산 쪽 OS(아웃소싱·시공권 수주전 득표 요원)였다. 그들은 동네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얼굴을 텄다. 통반장 및 부녀회장과도 친해졌다. 업계에서 그들은 ‘사전조’로 불렸다. 사전조는 OS의 ‘척후’였다. OS 본진이 투입되기 전 사업구역을 훑으며 길을 닦았다. ‘시장조사’를 하고 사업성을 타진했다. 사업성이 클수록 사전 작업이 길었고 수주전도 치열했다. 사전조의 핵심 과제는 ‘아군’ 확보였다. 말발 세고 정보력 센 사람들을 붙든 시공사가 이겼다. G의 눈에 A가 포착됐다. (*C의 주장 “G 등은 우리가 보낸 사람이 아니다. 면목3구역도 입찰 1년 전부터 관심 가질 만한 지역이 아니었다.”)

②정보통 확보 A는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다. 그는 면목3구역의 사업성을 간파했다.(*이하 A의 주장) 민자사업으로 용마터널 공사가 추진(2009년 11월 착공~2014년 11월 개통)되고 있었다. 터널이 산을 뚫으면 동부간선도로·강변북로·올림픽대로와 연결됐다. A는 개발 호재를 예견했다. 당대 정권(이명박)도 적극적 인허가로 건설경기를 부양했다. A는 재건축조합 설립(2008년 9월4일 인가) 단계부터 관여하며 수십채를 선매입했다. 그는 수년간 조합원 전수의 정보를 수집해 정리했다. 주소와 연락처, 자택 평수, 이력과 특이사항, 주민간 친소관계, 조합장 지지 여부, 선호 시공사가 그의 정보로 일별됐다. 득표전에 뛰어들 시공사엔 ‘귀한 물건’이었다. G를 통해 C(2009년 6월께)와 B(9~10월께)가 차례로 A를 찾아왔다. A는 상가분양 등 이익 보장을 전제로 현산의 시공사 선정을 돕기로 했다. 수첩에 기록하는 일도 시작했다. (*C의 주장 “A의 요청으로 만났다. 그의 자료는 우리가 필요로 할 만큼 가치 있는 정보도 아니다.”)

③나눠먹거나 혈투하거나 먹이가 부족할 때 포식자는 출혈하며 싸운다. 재건축·재개발은 먹이가 고갈된 정글에서 시공사들이 사활을 거는 시장이었다. 시공사들은 ‘사전 교통정리’를 통해 충돌을 피하기도 했다. “들러리 입찰로 특정사를 몰아주며 구역별 시공권을 나눠먹었다.”(재개발업계 관계자) 전쟁은 사전작업에 돈과 공을 들인 시공사가 복수인 구역에서 벌어졌다. 투입 자원이 많을수록 발을 빼기 어려웠다. 두 회사가 면목3구역 최종 입찰(2009년 12월9일 마감)에 응했다. 현산의 상대는 삼성물산이었다. 두 시공사는 2009년에도 승패를 나눠 가졌다. 삼성은 광진구 구의1구역(6월)에서 현산을 이겼고, 현산은 성북구 장위7구역(8월)에서 삼성을 눌렀다. 면목3구역에서 다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④수주 조직도 설계 사전조 보고를 바탕으로(*A의 주장) 현산이 수주 조직을 구성했다. 총괄 책임자는 B였다. 그를 정점으로 총 308명의 이름이 박힌 ‘면목3 단독주택재건축 수주활동 조직도’가 그려졌다. 활동의 최종 목표는 ‘시공사 선정 총회 승리’였다. 수주 전략을 짜는 ‘기획’과 돈을 집행하는 ‘예산’ 파트는 본사 직원들이 맡았다. 팀은 득표 작업 대상별로 짜였다. ‘집행부’ 2개 팀(45명)은 조합 이사들과 대의원들을 담당했다. 단지 내 조합원을 맡는 ‘내부’는 5개 팀(123명)으로 꾸려졌다. ‘외부’ 3개 팀(59명)은 조합원 자격을 취득한 투자자들을 책임졌다. 홍보, 전단, 물자, 전산 업무를 하청받은 용역 직원도 더해졌다. 비상을 대비해 지원조(15명)가 대기했다. (*OS업체 대표 D의 주장 “조직도는 현산이 불법 수주전을 직접 기획·지휘했다는 증거다.”)

조직도엔 ‘자생단체’란 이름을 쓰는 팀(15명)이 있었다. 유력 인사·단체 로비를 전담했다. 영향력을 행사해줄 정치인뿐 아니라 정당 조직까지 관리 대상이었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 담당자가 명시됐다. “힘과 조직을 동원해 바람이 현산 쪽으로 불게 하는 일”(수주 조직도의 일원)이 팀의 업무였다. “비밀 업무”이므로 현산 부장이 지휘했다. C였다. 그의 이름 아래로 14명이 팀을 이뤘다. (*C의 주장 “나는 모르는 조직도다. 경찰에서 보여줘서 알았다. 조직도의 (현산) 직원들 이름은 맞다. 팀별로 역할 분담을 한 것도 맞다.”)

철거촌 된 중랑구 면목3구역 
현산 올해 분양 목표 1034가구 
용마터널 추진되며 개발 호재 
2009년 시공사들 재건축 접근
부동산업자 A 조합원 정보 축적

그해 승패 나눠 가진 현산·삼성 
면목3구역에서 재격돌 
현산의 ‘수주활동 조직도’ 작성
총괄책임은 본사 상무
정치인·정당 로비는 부장이 전담

대의원 동향이 사찰 일지처럼

⑤OS 본진 구성 “OS 구함, 면목3구역, 현산.”

2009년 가을 OS업체(현산의 위탁업체) 팀장 ㅇ이 문자를 뿌렸다. OS 명부의 연락처를 타고 문자가 전파됐다. E도 문자를 받고 왔다.

OS는 프리랜서였다. 현장이 있는 곳을 찾아 전국을 다녔다. 이 현장에서 ㄱ사를 위해 일한 OS가 저 현장에선 ㄱ사와 대결한 ㄴ사를 위해 일하기도 했다. OS는 재건축·재개발 총회 진행 등을 대행하고 홍보했다. 실제로는 그들을 고용한 건설사가 시공권을 따도록 ‘득표 작업’을 했다. 시공사가 조합원들에게 제공하는 금품·향응은 대부분 OS의 손을 통했다.

사업 현장이 많아 OS가 귀한 시절이었다. ㅇ은 18년 경력답게 이틀 만에 필요 인원을 채웠다. OS 한 명이 맡아야 할 조합원 수에 따라 팀 규모가 결정됐다. 면목3구역의 재적 조합원은 433명(시공사 선정 총회 때)이었다. 조직도 전체 구성원 308명 중 필드에서 싸우는 OS는 242명이었다. ‘필승’을 산출하기 위한 투입이었다.

전국에서 결합한 OS들이 교육을 받은 뒤 각 팀으로 배치됐다. 이날 첫 출근을 한 E는 ‘집행부 1팀’(조합·대의원 담당)에 속해 대의원들을 ‘커버’했다. 사전조 G는 ‘집행부 2팀’(임원·부동산·상가 담당)으로 뛰었다.

⑥‘대의원 성향 분석표’ 작성 현산은 A의 조합원 정보를 토대로 OS 활동 전략을 짰다.(*A의 주장) OS업체 대표 D가 A의 자료를 참고해 ‘대의원용 버전’을 만들었다.(*A와 D의 주장) D는 현산·삼성 지지 동향, 날짜별 대화, 금품 제공 내역, 담당 OS 등을 추가해 ‘성향 분석표’를 만들었다. (*C의 주장 “A가 조합원 정보를 보여준 적은 있지만 그에게 자료를 받은 적도, D에게 건넨 사실도 없다. 한패인 A와 D가 쓴 소설이다.”)

대의원 F의 인적사항은 E의 보고로 채워졌다. “이력·특징: 55세, ○○○○공사 근무,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 별로 없음. 조합장(과): 친함. 주변인물: 조합장·황○○·이○○·김○○ 부인 김○○.”

대의원들의 시기별 움직임이 2009년 11월9일부터 시공사 선정 총회 전날(12월25일)까지 꼼꼼하게 기록됐다. “11월9일~11월15일: 집행부 견제하느라 좀 나서는 편. ‘난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밥 먹어준다’고.”(F)

민감할 수 있는 사적 정보도 빠뜨리지 않았다. “시아버지 6·25 때 납북.”(분석표 3번 대의원) “무속인. 신 받은 지 16년.”(45번 대의원)

선호 음식과 취미는 향후 선물·향응 제공의 기초자료가 됐다. “아프리카·인도·중국 인형 수집.”(17번 대의원) “맥주·생선회 즐김.”(27번 대의원) “배드민턴·등산 좋아함.”(38번 대의원)

언제 누구에게 무엇을 줬는지도 빠짐없이 기입했다. 경쟁사 쪽으로 기울 것 같으면 돈이 건너갔다. “11월23일~11월29일: 부인이 삼성 홍보해주고 다님. 2차 300, 3차 300, 총 600만원. 냉장고, 김치냉장고.”(F)

시공사 지지 성향은 “강현”(현산 지지 강) “약현”(현산 지지 약) “강물”(삼성 지지 강) “약물”(삼성 지지 약)로 요약했다. 경쟁사 접촉 여부도 OS의 핵심 보고 업무였다. “조합 사무실에 데모하러 12명 동원했다.”(27번 대의원) “삼성이 밀어달라고 해서 혼내서 보냈다.”(37번 대의원) “모시는 신에게 현대 기도한다.”(45번 대의원) ‘약발’은 듣는지, ‘약’을 얼마나 더 쳐야 하는지가 그 정보로 가늠했다.

본인이나 가족·친인척 중 상대 쪽 계열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탐문했다. “아들 삼성전자 부장.”(34번 대의원)

OS들이 매일 올린 보고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표심의 흐름이 잡혔다. 특정 대의원이 총회 당일 어느 시공사를 선택할지 간파할 수 있었고, 그의 말이 어느 조합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됐다. 누구를 통하면 그의 마음을 공략할 수 있는지도 파악됐다. “○○○ 대의원과 앙숙.”(5번 대의원) “○○○ 이사와 전 직장에서 상하관계.”(36번 대의원) “○○○씨와 모든 정보 공유.”(46번 대의원) 총회 직전 ‘머릿수 싸움’이 치열할 때 과감히 베팅할 조합원을 고를 수도 있었다.

대의원과 그 가족의 정보 전반이 사찰 일지처럼 정렬했다. 대의원 47명 전원이 그렇게 현산과 OS의 시선 아래 놓였다. 그 시선이 판을 읽으며 현산의 득표전은 디자인됐다.

“누가 더 많이 지르느냐의 게임”

⑦‘빅마’ 선점 2009년 32번 대의원은 현직 공무원이었다. 분석표엔 “부인이 실권 행사”라고 쓰였다. 대의원의 날짜별 동향엔 그 자신보다 부인의 반응이 주로 기록됐다. 2009년 11월8일 부인은 “(두 시공사를) 계속 지켜보겠다”는 모호한 표현을 남겼다.

그는 면목3구역의 ‘빅마’(빅마우스)였다. 동네에서 입김 세고, 목소리 크고, 발이 넓었다.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통반장과 부녀회장, 단골 많은 미용실장, 성당 구역장, 교회 목사 중에 빅마는 있었다.

빅마 발굴은 사전조의 최우선 임무였다.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빅마는 승패에 절대적”(재건축업계 관계자)이었다. 일반 조합원들 표의 향방은 빅마의 입에 크게 좌우됐다. “집마다 대소사를 꿰고 밥그릇·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빅마”는 OS들의 나침반이었다. “오늘 저 집에 회갑잔치가 있다고 알려주면 OS들이 달려가서 경비를 계산했고, 내일 저 집이 김장을 한다고 하면 OS들이 몰려가 배추를 절였”다. 초보 OS들은 “빅마를 잡을 수 있다면 내장까지 꺼내주라”(현산 쪽 득표 활동한 OS)고 배웠다.

면목5구역엔 5명의 빅마와 1명의 ‘빅마급’이 있었다. 시공사에 빅마는 ‘돈 먹는 하마’였지만 사업권 획득으로 가는 확실한 카드였다. E는 담당 대의원 F가 친삼성 빅마와 “어울려 다닌다”고 우려 섞어 보고했다. F는 ‘양다리’였다.

⑧조합원 일상 장악 “어디야?”

팀장이 E에게 전화해 물었다. ‘비상시국’엔 조합원 집 밖에서 밤늦도록 대기했다. 불이 꺼져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집인데요.”

E가 소등 전에 퇴근한 날이 있었다. “팀장에게 엄청 깨져” 펑펑 울었다.

E는 ‘현산 과장’이었다. “싸움조”(OS 본진)는 고용 시공사의 명함을 파서 활동했다. 남성 OS는 ‘부장’ 호칭을 썼고, 여성 OS는 과장으로 소개됐다. OS가 다녀갈 때마다 조합원들 집엔 현산의 과장·부장 명함이 쌓였다.

E는 담당 조합원들을 매일 만났다. 조합원들이 고기를 좋아하면 같이 육식했고 술을 좋아하면 같이 음주했다. 마사지를 좋아하는 조합원과는 마사지숍에 동행했다. E의 일은 “악착같이 조합원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빨래를 해주거나, 시장을 봐줬다. 독거노인은 밥상도 차려줬다. 신자가 아니어도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조합원 마음을 얻기 위해선 할 것 못할 것 가리지 않고 하는 것”도 E의 업무였다.

시공사 선정 총회가 임박했을 땐 ‘24시간 마크’에 돌입했다. E는 조합원들을 집에서 데리고 나와 삼성과의 만남을 차단했다. 경쟁사 OS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합원의 시간을 최대한 빼앗았다. 박빙 승부가 점쳐질 땐 ‘별동대’가 투입됐다. 그들은 ‘오락가락하는 조합원들’을 일대일로 전담했다. 현산 쪽은 알바에게 무전기를 들려 골목마다 배치했다. 알바들은 삼성 쪽 OS가 접근할 때마다 무전을 쳤다. 팀장이 OS를 급파해 접촉을 막았다.

양사 OS들은 조합원 집 빈방을 단기 임대해 거주했다. OS들의 숙박과 분임토의 장소로 사용했다. 조합원과 쉽게 만나고 상대 시공사의 접근을 막는 구실도 됐다. 조합원 H의 자택 지하방에선 삼성 쪽 OS들이 생활했다.

OS는 돈으로 표를 사는 데 최적화된 시스템이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땐 새누리당 강동구청장 경선에 출마한 임동규 전 국회의원 쪽에서 OS를 고용해 득표활동(자격박탈)을 벌였다. 업계에선 “OS를 동원하면 남북통일도 가능하다”(OS업체 대표)는 말이 회자됐다.

⑨현금 지르기 H는 현산 쪽 OS ㅅ의 관리를 받았다. ㅅ은 방문할 때마다 과일과 화장품을 가져왔다. 그는 거의 매끼를 H와 먹었다. 갈빗집에서만 40여회 식사했고, 간장게장, 장어, 제주 갈치를 시켜줬다. 2009년 12월22일 ㅅ이 H의 집을 다녀갔다. 이불 속에 두고 간 봉투에 200만원이 있었다. 이튿날 돌려주겠다고 찾아간 H에게 ㅅ은 300만원을 얹어 줬다.(H의 ‘사실 확인서’)

“어느 시공사가 더 많이 지르느냐의 게임”(E)이었다. “밥을 먹이고, 헬스도 끊어주고, 관광도 보내주다가 ‘총알’이 만들어지면 먹고 튀지 않도록 몇 차례 나눠서” 줬다. 빅마에겐 큰돈이 들어갔다. 빅마 아내를 둔 32번 대의원은 면목3구역 대의원들 중 가장 많은 돈(5차례에 걸쳐 1600만원)을 받았다.

“밥 먹은 사람과 선물 먹은 사람과 돈 먹은 사람 사이엔 차이가 있다. 같은 값이면 선물할 금액만큼 현금으로 주는 게 낫다. 돈 먹은 사람은 확실히 찍는다. 현금 받은 사람은 죄의식이 작동한다. 대가를 돌려주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을 비집고 순차적으로 돈을 주며 코를 꿴다.”(D)

H도 현산으로 돌아섰다. 대의원들에게 뿌려진 금품만 3억400만원(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발표)이었다. “현장 사무소에서 줄을 서면 현산 직원이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가 나눠줬다고 OS들은 진술”(경찰 관계자)했다. OS업체는 금품·향응 제공 내역을 날짜별로 정리해 보관했다. 그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31명의 조합원이 사실을 인정하며 확인서를 썼다. 현산만 ‘현금 지급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C의 주장 “식사나 향응은 인정하지만 돈을 주라고 OS에 지시한 사실은 없다. OS와 조합원 사이에 돈이 오갔다는 이야기 자체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본다.”)

“우리(OS들)가 현대의 총회 승리를 위해 행한 ‘사실상 모든 활동’이 불법”(D)이었다. “법 위반 말썽이 생길 경우 시공사는 OS에 책임을 떠넘기고” 꼬리를 잘랐다. 피는 OS의 손에 묻었다.

“우리만 돈 안 주면 바보천치”

⑩정치인·정당·유력인사 로비 OS 본진 출근 첫날 C는 E가 배치된 집행부 1팀의 팀장이었다. 당일 C는 자생단체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므로 C가 직접 맡았다.

사업권 수주는 시공사한테 “선거”(C)였다. 현산은 “외부 여론을 취합·형성하는 일”(C)을 자생단체의 역할로 규정했다. 선거이되 돈 선거였다. 외부 여론은 돈봉투를 줘서라도 유리하게 이끌어야 했다.

뒤탈 난 한정식을 먹은 날은 시공사 선정 총회 8일 전이었다. 중랑구의원 I(경찰 수사에서 인정)와 서울시의원 J(경찰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A의 주선으로 C의 돈봉투를 받았다. (*C의 주장 “A에게 갈취당했다. A가 두 사람한테 줘야 한다고 해서 줬다. 돈을 주지 않으면 A가 시공사 선정을 방해하겠다고 협박했다. 내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 청탁한 것이 아니다. 시공사가 조합원을 직접 접촉해 금품을 제공하는 것은 금지되지만 그분들은 조합원도 아니다.”) 현산은 여야 정당 조직에도 돈을 건넸다. (*C의 주장 “각 정당의 동책과 통책 등을 만나 떡값 형태로 돈을 줬다. 관례였다. 다른 시공사들도 다 하는데 우리만 안 하면 바보천치 아닌가.”) 중랑구 지역언론과 건설·재개발 전문지 기자들에게도 7천여만원(현금·술값·밥값 등)을 썼다. C는 “매일 돈봉투를 들고 다녔”다. “기자들이 시답지 않은 일로 보도한다고 협박하면 ‘잘 봐달라’며 호주머니에 찔러주곤” 했다.

A는 시공사 선정 뒤에도 I와 J의 이름을 계속 수첩에 남겼다. “2010년 1월25일 I 의원 잔금. 3월5일 I 의원 집 공사 시작 예약. 3월11일 I 의원 융자신청 완료. 3월2일 J 의원님 계약 말씀드림. 3월15일 이○○, I 의원 집에 이사.” 두 의원이 면목3구역 조합원이 돼 시세차익을 얻고 나가는 전 과정을 A가 도왔다. (*A의 주장 “두 사람의 서류 작업부터 세입자 입주까지 내가 처리해줬다. 필요한 인허가를 두 사람으로부터 도움 받기를 기대했다.”) J는 시공사 선정 총회(2009년 12월26일)에 내빈으로 참석해 “심의 때 많은 도움을 드리겠다”(총회 녹취록)고 약속했다. I는 2014년 지방선거 때 책임당원투표를 앞두고 금품을 건네다 적발됐다.

⑪비자금으로 ‘총알’ 마련 “ㅇ토건 K회장 ‘수주 때 조합원에게 줄 돈(OS 비용) 현산 B상무에게 7억 빌려줬다’. 철거 주는 조건으로.”(A의 수첩)

2009년 12월 수주전이 정점으로 치달았다. 현산은 조합원에게 뿌릴 돈이 바닥났다. B가 철거업자 K에게 요구했다.

“이미 60억~70억원을 쓰다 보니까 총알이 떨어졌다. 돈 있는 대로 긁어모아 달라. 우리가 선정되면 철거공사도 주고 공사비도 올려줄 테니 같이 가자.”(경찰 발표)

K(구속)는 현산과의 철거계약을 기대하며 2014년 5월까지 현금 7억3천만원, 골프 접대와 마시지 등 2693만원의 향응을 B에게 제공했다. (*C의 주장 “정치인과 정당 등에 준 돈은 B상무에게 타서 썼다. 그 돈의 출처는 내가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된다고 배웠다.”)

시공사들은 로비자금과 조합원들에게 뿌리는 비자금을 협력업체 등을 통해 조성했다. D는 2009년 11월 OS 활동비 결제서류를 두 개 작성(*이하 D의 주장)했다. 실제보다 OS 활동 인원을 늘려 2억의 차액을 만든 뒤 비자금으로 돌려줬다. 비자금 조성에 협조하지 않으면 시공사들은 용역업무를 맡기지 않았다. (*C의 주장 “비용은 감사팀의 검증을 받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⑫총회 전날 ‘빼돌리기’ 눈앞에서 좋아하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연예인이 사회를 봤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저녁이었다. 2009년 12월25일 H는 워커힐호텔(광진구 광장동)에 있었다. 남편과 아들, 손자가 같이 공연을 보며 식사를 했다. 쇼가 끝나자 B가 마이크를 잡고 인사했다.

“내일 잘 부탁드립니다.”

현산은 총회를 하루 남겨두고 1박2일짜리 관광코스를 짰다. 기호에 따라 코스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조합원들을 면목동 밖으로 빼내기 위한 기획이었다. 목적은 상대사 접촉 차단과 표 이탈 방지였다. H도 현산이 제공한 관광버스를 타고 가, 현산이 제공한 디너쇼를 관람한 뒤, 현산이 잡아준 방에서 잤다.

‘대의원 성향분석표’ 작성해 관리
OS들 통해 조합원 현금·향응 제공 
시공사 선호도, 동향 등 전수 파악
“현장에서 빅마는 승패에 절대적”
“OS 동원하면 남북통일도 가능”

정치인·정당·전문지 기자에 현금
시공사 선정 뒤 사업비 급증 
조합원 분담금 급상승 피해
현산 상무 구속, 법인은 불기소 
모든 사업구역서 반복되는 원리

현산 쪽 OS들은 총회 보름 전부터 ‘약물’을 집중공략했다. ‘양다리’ 변수를 관리하며 ‘흔들면 흔들리는’ 조합원들에게 액수를 올려 ‘질렀다’. 표 계산은 이미 끝나 있었다. 패배를 예상한 삼성은 태릉의 갈빗집에 조합원들을 모아 갈비세트를 쥐여 보냈다. 비싼 호텔밥과 호텔잠을 즐긴 현산 지지 조합원들은 이튿날 현산의 관광버스를 타고 총회 장소(동대문구 답십리동 동대문구체육관)로 직행했다. 투표 결과가 나왔다. 재적 조합원 433명 중 현산 252표, 삼성 172표, 무효·기권 5표.

⑬약속파기·이중발주 시공사 선정 뒤부터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이 생겨났다. 수주전 때 현산은 ‘9대 혜택’ 중 하나로 ‘물가상승 등에 따른 추가부담금 없는 확정공사비’를 제시했다. 사업제안 당시 평당 공사비는 376만원(금융비 포함)이었다. 본계약 땐 421만5천원(금융비 제외)으로 뛰었다. 금융비(31만8천원)를 더하면 평당 공사비가 453만3천원이 됐다. 평당 77만원 인상액을 계획면적(6만8255.80㎡)에 물리면 수주전에 뿌린 돈(경찰 발표 60억~70억원·무상 이사비와 공짜 가전제품 등 제외)의 몇 배가 남았다. (*C의 주장 “공사기한을 넘기면 물가인상과 금융비를 반영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었다. 시공사가 폭리를 취하기 위해 조합원을 속이진 않는다.”)

현산은 조합원들의 표를 호소하며 ‘무상 이사비 2천만원’을 약속했었다. 2014년 11월 조합 총회에서 조합원들이 무상인 줄 알고 받았던 이사비는 시공사에서 빌린 돈으로 처리됐다. (*C의 주장 “세금문제 때문에 직접 주는 대신 전체 공사비를 그만큼 깎아주는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무상이 맞다.”) 공사비 원가를 제시하라는 경찰 요구에 현산은 응하지 않았다. 구립 또또어린이집 신축은 시공사와의 부대복리시설 계약(2014년 12월1일)에 이미 포함(일종의 기부채납)돼 있었다. 2015년 10월 조합은 별도의 건설사와 어린이집 공사를 14억5천만원에 이중발주(조합장 기소 의견 송치)했다.

사업이 진행될수록 사업비가 급증했다. 2008년 9월 2087억원(조합설립인가)→ 2013년 6월 3868억원(사업시행인가)→ 2015년 1월 5498억원(관리처분계획인가). 조합원 분담금도 급상승했다.

범죄가 ‘관행’ 되고 ‘원리’ 되고

⑭꼬리 자르기 현산이 A에게 했던 약속(사업 참여를 통한 이익 보장)도 지켜지지 않았다.(*A의 주장) A는 자신이 관여했던 일들을 수사기관에 제보했다. 한배를 탔던 사람들이 2016년 제보자와 수사 대상자로 대질했다. (*A의 주장 “나는 현산이 시공사에 선정되도록 철저히 앞잡이 노릇을 했다. 뇌물·금품 제공의 다리 역할을 하며 잘못한 일들이 있다. 처벌받아야 한다면 나도 처벌받겠다. 나를 통해 돈이 오간 사실을 나는 인정하는데 돈을 준 쪽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다.”)

수사를 진행한 경찰이 ‘현산 법인 기소’ 의견을 냈다. 수사를 지휘한 검찰은 수용하지 않았다. 수주전을 위해 비자금을 받은 B의 개인비리(배임수재)로 정리됐다. B의 지시를 받은 C와 그들이 시공권을 따준 현산은 불기소됐다. 현산은 B를 해고한 뒤 관계사 대표 자리를 줬다. “꼬리로 잘려도 보상이 뒤따르니까 B도 배신하지 않고 뒤집어썼”다(경찰).

⑮“돈질해서 돈 벌기” H(81)는 소송중이다.
2년 전 ‘현금 청산자’가 됐으나 집 감정가가 저평가됐다며 조합과 다투고 있다. 현재 70여명(소송 5명+세입자 등)이 ‘철거촌 면목3구역’에 남아 있다.

“돈 받고 선물 받을 땐 좋았지. 내 재산 잡아먹히는 과정이란 걸 몰랐으니까. 참말로 이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이주와 철거가 완료되지 않으면 현산의 ‘올해 분양 완료’ 목표는 불가능하다. (*C의 주장 “자기 욕심 채우려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다수 조합원과 시공사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경제지표 반등을 꾀할 때마다 정치는 부동산을 동원해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쏟아지고 있는 ‘역대 최다 분양물량’은 ‘역대 최대 가계대출’의 결과다. 돈·접대를 받으며 재개발·재건축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는 조합원들은 레드오션을 피로 물들이는 건설사들의 치밀한 관리 안에 있다. 한국에서 재건축·재개발은 “돈질해서 돈 버는 사업”(D)이다. “면목3구역에서 벌어진 일은 ‘전국 모든’ 사업 현장에서 동일하게 반복”(A)되고 있다. 집이 전 재산인 서민들이 집값의 등락에 인생을 베팅하는 사회가 한국 토건자본주의의 ‘리얼 월드’다. 그 세계에서 일반화된 범죄는 ‘관행’이 되고 ‘사업 원리’가 된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4132.html?_fr=m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