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로 살아가는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절일지도 모른다.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무한하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남자는 마지막 시간여행으로, 어린 아들과 함께 해변을 달리던 순간을 택한다. 사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그 장면이 잘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무에 달라붙은 매미처럼 부모를 사랑하는 아이가 있는 시절, 나는 삶의 모든 것을 새로이 경험한다. 한번도 의지로는 뛰어들어 본 적 없는 갯벌에 벌써 몇 번째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20년 만에 다시 축구를 하고,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숨이 차오를 때까지 아이랑 달리기 시합을 한다. 언제나 앉아서 커피 마시며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그 어떤 시절보다 활동적이다.
아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다. 그냥 누워서 떠오르는대로 상상의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는 좋아서 깔깔대며 계속 더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아이가 있어서, 아내와 나는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을 너무 쉽게 웃는다. 우리는 이 시절이 너무 짧다는 것을 매번 의식하고, 그래서 자주 슬퍼진다.
마음껏, 온 마음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다 꺼내어 사랑해도 되는 시절,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쿵쾅쿵쾅 댈 만큼 사랑해도 되는 시절, 끌어안고 부비고 뽀뽀하고 깔깔대는 시절, 아무리 사랑해도 도망갈 리 없고, 서로에게서 도망칠 수도 없는 시절, 사랑이 강요가 되고 강제가 되어 갇혀버린 무인도의 시절, 내 영혼을 털어내듯 걱정하고 보호하는 시절, 이 시절은 인생에 잠시 주어진다.
인생에 한 번 정도, 이렇게 서로에게 완전히 구속되어 꽁꽁 묶인 채로, 무한히 서로를 온 마음으로 다 사랑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시절, 이 시절이 끝나고 나면 다소 의연해지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나도 갯벌 앞의 카페에 앉아, 저 갯벌에 아이 손을 잡고 뛰어들던 시절을 무한히 그리워할 것 같다. 셋이서 온 몸에 진흙을 묻혀가며 깔깔대던 날들이 영원히 사라져서, 그저 내 안에 희미하게 머물다가 그조차도 완전히 사라질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을 듯하다.
신은 우리에게 잠시, 온 영혼을 고갈시키듯이 사랑하라고 아이가 있는 한 시절을 주는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렇게 사랑할 시절을 가지라고 말이다. 삶의 가장 깊은 정수를 한 모금 마시고 돌아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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