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인 듯 서점 아닌 서점 같은… '서점은 진화 중'

Private/자기개발 · 2016. 9. 24. 23:08


책 판매 넘어서 직접 만들고 토론회까지…‘고요서사’ ‘스토리지북앤필름’ 등 예술·문화 등 특정 분야 전문 표방 / 작은 서점들, 대형 서점과 차별화… 지식·문화 공유의 장으로 탈바꿈 / 안정기 도달까지 최소 5년 적응기… 일시 유행할지 롱런할지 지켜봐야

 


“눈동자가 떠올라요”, “저 멀리 떨어진 터널의 입구?”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의 예술분야 전문서점 ‘비플랫폼(B-platform)’에 모인 10여명이 점을 보고서 저마다 떠오르는 이미지를 말했다. 이날 비플랫폼에서 두 번째로 열린 ‘그림책 중독자들의 모임’에서는 그림체, 색감, 작가 등 다양한 이유로 자신이 좋아하거나 소개하고 싶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점에 대한 각자의 해설을 모아 이야기를 구성하는 ‘점 그림책’이 화제로 떠올랐다. 동화작가와 미술치료사, 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림책을 매개로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지난 6월 개업한 이 서점은 ‘책을 만드는 서점’을 표방한다.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서점 비플랫폼(B-platform)에서 열린 ‘그림책중독자’ 소모임에서 참가자들이 다양한 그림책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국내에선 구하기 힘든 해외 예술책과 독립출판물을 소개·판매할 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담론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구상해 책으로 만들어볼 수도 있다. 절단기, 고성능 프린터 등 출판에 필요한 장비 일체를 갖춘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이날 비플랫폼의 다른 방에서는 2016 월드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에서 최고영예상을 수상한 이정호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서점이지만 전시회, 워크숍, 책 제작, 카페 등 여러 역할을 감안할 때 ‘서점으로만 정의하기는 힘든 공간’임이 분명했다.

 

 
관람객이 지난 1∼2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서점 비플랫폼(B-platform)에서 열린 이정호 작가의 그림책 ‘산책’ 초대전의 작품과 작품집을 살펴보고 있다.


◆서점, 지식·문화 향유의 장으로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자리한 ‘고요서사’는 문학중심 서점이다. 차경희씨가 지난해 10월 설립해 홀로 운영하지만 직함은 대표가 아닌 ‘서점편집자’다.

 

문학중심, 편집자 등의 키워드에서 보듯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큐레이션’이다. 40㎡도 안 돼 보이는 공간이지만 에세이, 시, 수필, 소설, 인문학 등 갖출 건 다 갖췄다. 출판업계에서 편집자로 활약한 경력을 살려 자신만의 기준으로 책을 선정, 진열, 소개하는 것이다.

 

낭독회, 독서 토론회 등도 갖는다. 독자에게 맞춤형 책을 추천하다 보면 상담을 할 때도 있다. 차씨는 “항상 책이 중심이 되겠지만 책에 대한 독자의 접근성을 키우고 독서의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며 “좀 더 여유가 생긴다면 큐레이션과 다양한 독서활동을 아우를 수 있는 기획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요서사 인근의 ‘스토리지북앤필름’은 국제표준도서번호(ISBN) 없이 제작돼 소규모로 유통되는 독립출판물 전문서점이다.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자가 출판’, ‘소규모 출판’ 등이 특징인 독립출판물의 유통이나 저변 확대를 위한 활동들이 돋보인다.

 

서점과 별도로 갖춘 세미나 공간에서 잡지·사진집 제작,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주제의 강좌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위 사례처럼 최근 1∼2년 사이 전국적으로 개업 붐이 일고 있는 작은 서점은 책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곳으로 한정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하거나 지식·문화 공유의 장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서점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 집계된 적은 없다. 기존의 전통 서점들과 같은 기준으로 묶는 것도 어렵고, 1인 사업자인 경우가 많아 서로 네트워킹에 신경 쓰거나 정보를 취합할 여건이 되지 않아서다. 다만 증가세는 확연하다는 게 서점업계의 설명이다. 비플랫폼의 김명수 북큐레이터는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대형 서점과 소형 서점 간에 게임의 룰이 같아진 점이 영향이 컸다”며 “대형 서점과 차별화를 꾀하는 서점이 다수 등장하며 책과 관련한 환경·문화가 풍성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가장 큰 고민은 지속성

 

서점 창업 물결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지, 아니면 오프라인 서점업계에 연쇄적인 큰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속단하기는 쉽지 않다. 인디 가수 요조의 ‘책방 무사’가 ‘시한부 책방’을 선언하며 문을 연 것도 이러한 고민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개업 당시에 자본에 여유가 있거나 기존 인맥이나 팬의 확보에 용이한 유명인의 이점 등이 있지 않은 바에야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특히 서점업계가 맞닥뜨린 변화의 파고가 간단치 않다는 게 문제다. 급격한 디지털화로 전자책 비중이 커지고 있고, 책 외에 영화나 드라마 등 경쟁 미디어 매체의 도전도 거세기 때문이다. 과거 지하철 승객의 손에 들려있던 신문·책이 거의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듯 굳이 종이책을 읽지 않아도, 문화를 즐기거나 정보·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다. 또 인구 고령화로 손에 책을 들고 읽는 사람들도 갈수록 줄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서점 비플랫폼(B-platform)에서 한 고객이 그림책을 읽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야심차게 서점을 열었지만 안정적으로 꾸려가기에는 힘에 부치는 경우가 많다. 서점 운영자들이 “책을 판매해 생긴 수익으로는 월 임차료를 충당하는 정도이고, 워크숍이나 팬시 판매, 카페 운영 등 다른 활동을 통해 수익을 남겨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가라앉았던 서점·독서 문화에 일으키고 있는 잠잠한 파장이 상황에 따라 서점업계 차원을 넘어 출판업계, 국민 독서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서점업계 전반의 관심은 지대하다. 서울 은평구에서 20여년간 터를 지켜온 불광문고의 최낙범 대표는 “서점이 개업한 뒤 안정기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일반적으로 최소 5년”이라며 “이번 변화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 위해서는 향후 최소 3년 정도는 추세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09/23/20160923002820.html?OutUrl=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