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대나무숲] 엄마의 재혼

Archive/글 · 2019. 4. 20. 17:09

#2399번_제보


엄마가 재혼을 한다. 봄이 예고된 어느 날, 내 엄마의 사랑이 모란으로 피어나고 있다. 동시에 그 날은 겨울이 종료를 알리고, 아빠의 사랑이 동백으로 져버린 날이었다.


새 아빠가 될 사람을 만난 것은 봄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비의 모양새가 보슬하기보다는 추적스러워서 처연했다. 겨울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는구나 싶었다. 그런 날씨 속에서 유달리 두 가지가 빛을 발했다. 형형색색의 벚꽃과 내 엄마의 웃음이었다. 둘 다 여러 색들을 절묘하게 배색해 찬란한 봄기운을 뿜어냈다. 아니, 아니다. 벚꽃마저 엄마의 웃음에서 색들을 빌려온 듯 했다. 그 정도로 내 엄마가 눈부시게 웃고 있었다. 엄마도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늘 자식들이 최대의 기쁨이라던 엄마였다. 그렇지만 저 웃음은 내가 서울대를 합격한 날도, 누나가 공무원이 되던 날도 보지 못한 눈부신 웃음이었다. 


그 정도로, 자식이 최고라던 엄마가 자식 아닌 일에 웃을 정도로, 새 아빠가 될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 정직한 눈매, 믿음직스러운 목소리, 듬직한 어깨에, 그 역시 엄마처럼 인고의 세월을 견뎠음을 짐작하게 하는 손등까지,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진 사람이었다. 밥을 먹는 내내 엄마를 챙기던 모습은 또 어떠한가. 냅킨 위에 수저를 얹는 현대식 매너를 부릴 줄 알았고, 물부터 시작해서 샐러드, 스테이크, 밥에 후식까지 모든 것에 엄마를 먼저 배려할 줄 알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엄마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같은 남자로서 느껴졌다. 저 눈은 첫사랑을 쳐다보는 눈이고, 동시에 내 삶을 전부 걸어도 좋을 여자한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대화 끝무렵에는 나와 누나를 ‘내 자식들’이라고 먼저 표현해줌으로써, 그가 우리 가족에게 느끼는 책임감에 나부터 벌써 이 만남에 설렜을 정도이다. 화목한 ‘가정’의 대화가 오고갔고, 봄꽃은 활짝 피어있었고, 그보다 더 눈부신 내 엄마가 웃고 있었다. 그 날은 모든 요소가 완벽히 색을 발하는 한 채의 수채화였다.


아름다운 물감들을 잔뜩 풀어버린 탓이었을까. 수채화의 뒷면이 혼탁한 색으로 번졌음을 뒤늦게 알았다. 그것은 아빠의 슬픔이라는 색으로 칠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새 아빠가 될 사람이 보여준 그 모든 덕목들은 내 아빠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자식들이 아빠에게 실망했던 부분이었다. 또 그의 아내가 그로부터 고통받은 이유였고, 끝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아빠는 여러 면에서 책임감이 부족했다. 결혼 초기에는 경제적인 면에서 가정을 책임지지 못했다. 사업 실패로 본인의 야망을 이루지 못한 가장은 늘 술에 절어 살았다. 자식들이 유치원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밤새 돈을 벌어오신 엄마 덕분이었다. 또 유치원에 가기 전에 밥을 먹여준 이도 역시 밤새 돈을 벌고 돌아오신 엄마였다. 잠을 몰라가며 자식들을 길러낸 엄마의 허벅지에는 무수한 상처들이 있다. 그것은 잠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자해함으로써 잠을 이겨냈던 엄마의 노력이라는 것을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한 내 엄마, 그 피나는 세월은 기록되어질 수 없다. 그저 엄마와 나와 누나의 마음에 아픔으로 기억되어질 뿐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아빠가 일을 시작했다. 일이 잘 되면서부터 아빠는 엄마가 일을 못하게 했다. 본인도 지난 세월에 대한 책임감을 무던히 느낀 탓이었다. 그 당시 아빠에게는 주말도, 공휴일도 없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만’ 했다. 불쌍한 내 아빠, 그저 돈이 지난 세월에 대한 만회이자 가장으로서 떳떳한 유일한 방법인 줄 아셨다. 오랜 일로 지쳐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보며 힘들어한 자식들이 가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위로였다. 하루를 시작하는 엄마에게 ‘좋은 아침’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그리고 하루를 마치고 온 자식에게 ‘수고했다’ 안아줄 수 있는 그런 가장의 모습을 기대했다. 아빠는 그러지 못했다. 정신적인 면에서, 또 정서적인 면에서 책임감이 부족했다. 아빠와 엄마의 갈등은 계속됐다. 순간마다의 갈등이 쌓여 하루 끝의 다툼을 만들었고, 그 다툼들이 쌓여 불행한 가정을 낳았다. 소설 의 첫마디,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말은 틀렸다. 내가 주변에서 본 모든 불행한 가족들의 저마다의 이유들이 우리 가정에서만큼은 전부 혼재했다. 그런 가정의 말로는 뻔했다. 이혼. 그나마 내 입시가 끝날 때까지 그 결정을 미룬 것은 두 분이 자식에게만큼은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감사했다. 동시에 두 분이 안쓰러웠다. 


이혼 후에, 엄마는 다시 일을 시작해서 나와 누나를 보살폈다. 그리고 아빠는 하시던 일을 접고 외딴 곳에서 새 일을 시작하셨다. 엄마도 고생했고, 아빠도 많이 고생했다. 두세달에 한번 씩은 아빠를 봤는데, 많이 우울해보이셨다. 본인 스스로는 ‘새로 배우는 일이 편하다’, ‘새 지역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을 내뱉는 표정에는 외로움이 담겼다. 그렇게 사교적이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던 아빠가 지인 하나 없는 타지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우울하리라는 것은 막연한 내 추측이었고, 그것이 사고무친의 본인 처지에 대한 외로움인줄만 알았다. 그러다 며칠 전에서야 모든 것을 알았다. 새 아빠가 될 사람과의 완벽한 만남이 있고 바로 다음날이었다. 모처럼 아빠가 일을 쉬고 나를 보러 올라온 날이었다. 나는 밥을 먹으며 대수롭지 않게 아빠에게 엄마의 재혼 소식을 전하려 했다. 아빠에게 엄마는 결혼 생활 내내 증오의 대상이었고, 이제는 아빠와는 상관없는 타인일 뿐이니까.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 아빠가 먼저 조심스럽게,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운듯이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잘 사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일은 어떠한지, 혹시 내 안부를 묻지는 않았는지 ... 


무뚝뚝한 아빠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며,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어쨌든 두 사람의 시작은 사랑이었고, 엄마는 아빠의 첫 사랑이자 유일한 여자였다. 이혼 후에 아빠가 소주 한잔마다 내게 늘어놓았던 푸념들도 드디어 해석이 되었다. 결혼 초기에 경제적으로 부족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당신에게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다. 술에 절던 그 날들이 숙취보다 더한 쓰라림으로 당신에게 박여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일만 하던 그 모든 날들이 속죄가 되기를 당신은 바랐다. 따뜻한 위로 하나 보내지 못한 날들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아픔으로 남아있음을 알았고, 그것보다 더 많이 당신이 아팠다. 굳이 외딴 타지로 내려간 것도 엄마에게서 멀어져서 용서의 여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내려가서 쓰던 모든 사랑시들이, 내가 농담으로 “아빠, 거기서 연애하나보네~” 했던 그 서정시들이 모두 엄마와의 화해를 기대하며 쓰던 것들임을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지금까지 엄마의 아픔만 생각했었기에, 아빠의 아픔이라는 주제는 내게 사뭇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 아빠에게 차마 엄마의 재혼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그저 “응 엄마 잘 지내. 가끔씩 아빠 안부 묻고 그러더라...” 라며 말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안도하는 아빠의 표정과, 봄날을 빛나던 엄마의 웃음과, 그런 엄마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새 아빠 될 사람의 눈망울이 오버랩 되었다. 혼란스러웠다. 아빠 때문에 겪었던 엄마의 상처와, 그런 엄마의 상처를 알고 새살이 돋기만을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엄마의 웃음이 의미했던, 끝내 이루어질 새로운 사랑 앞에, 나를 낳아준 두 분이 겪는 정반대의 감정들 때문에 내 고민이 짙어져간다. 나는 아빠에게 엄마의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맞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 모란이 피어나고 있고, 동백꽃이 지고 있다. 한 사랑이 개화를 시작했고, 한 로맨티시스트의 로맨스가 낙화를 끝내려한다. 봄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