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배우는 직업생활 노하우 5가지

Private/자기개발 · 2019. 10. 1. 13:43

 (사진=아웃스탠딩)


1. 링에 오르는 건 쉬울지 모르나 링 위에서 버티는 건 무지하게 어렵다.


“문장을 쓸 줄 알고 볼펜과 노트가 손 맡에 있다면”


“그리고 그 나름의 작화 능력이 있다면 소설은 전문적인 훈련 따위 받지 않아도 일단 써져버립니다”


“아니, 그보다 일단 소설이라는 형태가 만들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위해) 인문계 대학에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재능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뛰어난 작품을 써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즉,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사실)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몹시 ‘둔해빠진’ 작업입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하고 오로지 문장을 주물럭거립니다”


“책상 앞에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하루 종일 단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조금 올려본들 그것에 대해 누군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혼자 납득하고, 혼자 입 꾹 다물고, 고개나 끄덕일 뿐입니다”


“책이 나왔을 때 그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에 주목해주는 사람이라고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작업입니다”


“엄청 손은 많이 가면서도 한없이 음침한 일”


“(물론) 직업적인 소설가 중에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뇌가 명석한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세간에서 말하는 두뇌의 명석함만으로 일할 수 있는 햇수는 기껏해야 10년 정도입니다”


“그 기한을 넘어서면 두뇌의 명석함을 대신할 만한 좀 더 크고  영속적인 자질이 필요합니다”


“말을 바꾸면, 어느 시점에 ‘날카로운 면도날’을 ‘잘 갈린 손도끼’로 전환하는 게 요구됩니다”


“그리고 좀 더 지나면 ‘잘 갈린 손도끼’를 ‘잘 갈린 도끼’로 전환하는 게 요구됩니다”


“그 같은 몇 가지 전환 포인트를 제대로 뛰어넘은 사람은 작가로서 한 단계 거물급이 되고”


“아마도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환의 단계를) 뛰어넘지 못한 사람은 도중에 자취를 감추거나 존재감이 희미해지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오랜 세월 지겨운 줄 모르고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내는 작가들에 대해 한결같은 경의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20년, 30년에 걸쳐 직업적인 소설가로 살아남아서”


“일정한 수의 독자를 획득한 사람에게는 소설가로서의 강한 핵(core)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내적인 충동(drive)”


“장기간에 걸친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


“이건 소설가라는 직업인의 자질이자 자격이라고 딱 잘라 말해버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소설 한 편을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내력 등) 특별한 자격 같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 그런 자격이 (본인에게) 있는지 없는지, 그걸 분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단 한 가지”


“실제로 물에 뛰어들어 (본인이) 떠오르는지 가라앉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난폭한 말이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생겨 먹은 모양입니다”


“게다가 애초에 소설 같은 건 쓰지 않아도 인생은 얼마든지 총명하게, 유효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쓰고 싶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라는 사람이 소설을 씁니다. 그리고 또한 지속적으로 소설을 씁니다”


“그런 사람을 저는 물론, 한 사람의 작가로서 당연히 마음을 활짝 열고 환영합니다”


“링에, 어서 오십시오!”



2. 처음부터 일을 잘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저도 처음에는) 대충 ‘아마 이럴 것이다’라는 어림짐작으로 소설 비슷한 것을 몇 달 동안 썼는데”


“다 쓴 것을 읽어봤더니 제가 생각하기에도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이, 이래서는 아무짝에도 못 쓰겠다’하고 실망했습니다”


“뭐랄까, 일단 소설의 형식은 갖췄는데 읽어도 재미가 없고 다 읽은 뒤에도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직접 쓴 사람이 그렇게 느낄 정도니 독자는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멋진 소설을 쓰지 못한 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을 썼는데 첫판부터 그렇게 술술 멋진 작품을 써낼 수 있을 리가 없지요”


“(그러다 저는) 능숙한 소설, 소설다운 소설을 쓰려고 했던 게 (오히려) 잘못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나는) 멋진 소설은 쓸 수 없어. 그렇다면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기성관념은 버리고”


“느낀 것,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써보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느낀 것,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쓴다’는 게 말로 하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그때까지 소설을 써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어려운 기술입니다”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저는 원고지와 만년필을 일단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붙박이장에 넣어두었던 영자 타자기를 꺼냈습니다”


“그걸로 소설의 첫 부분을 시험 삼아 영어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아무튼 뭐든 좋으니 ‘평범하지 않은 것을 해보자’하고요”


“물론 저의 영작 능력이라야 뭐 뻔하지요”


“한정된 수의 단어를 구사해 한정된 수의 구문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문장도 당연히 짧아집니다”


“머릿속에 아무리 복잡한 생각이 잔뜩 들어 있어도 그걸 그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요”


“내용을 가능한 한 심플한 단어로 바꾸고 의도를 알기 쉽게 패러프레이즈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전체를 콤팩트한 형태로 만들어 한정된 용기에 넣는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가며 문장을 써내려가는 동안에 점점 저 나름의 문장 리듬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발견한 것은 설령 언어나 표현의 수가 한정적이어도 그걸 효과적으로 조합해내면”


“(한정적이라도) 그 콤비네이션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감정 표현, 의사 표현이 제법 멋지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괜히 어려운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외국어로 글을 쓰는 효과의 재미를 ‘발견’하고 나름대로 문장의 리듬을 몸에 익히자”


“저는 타자기를 붙박이장에 넣어버리고 다시 원고지와 만년필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영어로 쓴 한 장 분량의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러자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일본어 문체가 나타났습니다”


“이건 저만의 독자적인 문체이기도 합니다. 제가 제 손으로 발견한 문체입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시야가 활짝 열렸다고 할 만한 장면입니다”


“제가 추구한 것은 ‘일본어다움을 희석시킨 일본어’ 문장 쓰기가 아니라, 이른바 ‘소설 언어’, ‘순수문학 체재’ 같은 것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진 지점에 있는 일본어를 채용해 나만의 자연스러운 음색으로 소설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그걸 ‘일본어에 대한 모독’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어란 원래 터프한 것입니다”


“기나긴 역사가 뒷받침해주는 강인한 힘을 가진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거칠게 다루든 그 자율성이 손상되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언어가 가진 가능성을 생각나는 한 모든 방법으로 시험해보는 것은”


“그 유효성의 폭을 가능한 한 넓혀가는 것은 모든 작가에게 주어진 고유의 권리입니다”


“그런 모험심 없이는 새로운 것은 탄생하지 않습니다”



3. 우리의 임무는 살아남아서 나아가는 것.

 

“인터뷰에서 문학상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떤 문학상도, 훈장도, 호의적인 서평도 제 책을 자기 돈 들여 사주는 독자에 비하면 실질적인 의미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도 지겨울 만큼 수없이 똑같은 대답을 하는데…”


“거의 아무도 그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독자가 천몇백 엔 혹은 몇천 엔의 돈을 내고 한 권의 책을 살 때”


“거기에는 평판이고, 뭐고 없습니다”


“있는 것은 ‘이 책을 읽어보자’라는 솔직한 마음 혹은 기대감뿐입니다”


“그런 독자 여러분에 대해서는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후세에 남는 것은 작품이지, 상이 아닙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노벨 문학상을 탔는지 안 탔는지 그런 것에 대체 누가 신경을 쓸까요?”


“문학상은 특정한 작품을 각광받게 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지는 못 합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눈대중에 지나지 않지만” 습관적이고 적극적으로 문예 서적을 읽는 독자층은 일본 전체 인구의 5%쯤이 아닌가 하고 추측합니다”


“‘요즘 책에 무관심하다, 활자에 무관심하다’라는 얘기가 자주 들리고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5% 전후의 사람들은 설령 ‘책을 읽지 마라’고 위에서 강제로 막는 일이 있더라도 아마 어떤 형태로든 계속 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가까이 유튜브가 있건 3D 비디오게임이 있건 틈만 나면 자진해서 책을 손에 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스무 명에 한 명이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한”


“책이나 소설의 미래에 대해 제가 심각하게 염려할 일은 없습니다”


“제가 진지하게 염려하는 것은”


“‘저 자신이 그 사람들을 향해 어떤 작품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뿐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어디까지나 주변적인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전체 인구의 5퍼센트라고 하면 600만명 정도의 규모입니다”


“그만한 시장이라면 작가로서 어떻든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로 시선을 던진다면 당연히 독자 수는 더욱더 불어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책무는 ‘조금이라도 질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일단 현역 작가고”


“말을 바꾸자면, 아직 발전 도상에 있는 작가입니다”


“지금 제가 무엇을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은지 그걸 아직 더듬더듬 찾아가는 처지입니다”


“(다시 말해) 문학이라는 이른바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맨몸으로 혈전을 펼쳐가는 상황입니다”


“거기서 살아남고 또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제게 주어진 task입니다”


 

4. 천재가 아니라면 피지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밀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한없이 개인적인 일입니다”


“혼자 서재에 틀어박혀 책상을 마주하고 아무것도 없었던 지점에서 가공의 이야기를 일궈내고 그것을 문장의 형태로 바꿔나갑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소설가는 외톨이가 됩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시작한 일은 스스로 추진해나가고 스스로 완성해내야 합니다”


“소설가의 경우, 불펜에 대기 선수 따위는 없습니다”


“그래서 연장전 15회가 됐든, 18회가 됐든, 시합이 결판날 때까지 끝끝내 혼자서 던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소설을 쓴다는 것은 실제로 상당히 고독한 작업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듭니다”


“그런 작업을 인내심을 갖고 꼬박꼬박 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입니다”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제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바로)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 편으로 만들 것”


“세간의 많은 사람들은 작가가 하는 일이 책상 앞에 앉아 글씨만 쓰면 되는 것이니까”


“체력은 관계없을 것이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릴 정도의 손가락 힘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아마 아실 텐데” 


“날마다 대여섯 시간씩 책상의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의식을 집중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면 웬만한 체력으로는 도저히 당해내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 살아간다는 것은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입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육체를 잘 유지해나가는 노력 없이”


“(단순히) 의지나 영혼만을 전향적으로 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생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때”


“가장 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이건 대단히 심플한 예이지만”


“만일 충치가 욱신욱신 아프다면 책상을 마주하고 찬찬히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구상이 머릿속에 있고, 소설을 쓰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당신에게 갖춰져 있다고 해도”


“만일 당신의 육체가 물리적인 격한 통증에 끊임없이 습격당한다면 집필에 의식을 집중하는 건 일단 불가능하겠지요”


“너무도 단순한 이론이지만 이건 제가 지금까지의 삶에서 제 몸으로 배운 것입니다”


“싸움이 장기전일수록 이 이론은 보다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물론 랭보나 반 고흐처럼 당신이 유례를 찾기 힘든 천재여서”


“단기간에 화려하게 꽃을 피워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남기고”


“그대로 타올라 버리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저의 이론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부디 깔끔하게 싹 잊어주십시오. 그러고 원하는 일을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당신이 희유의 천재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재능을 시간을 들여 조금이라도 높이고 힘찬 것으로 만들어가기를 희망한다면”


“제 이론은 나름대로 유효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뭘 하든 누군가에겐 욕먹게 되어 있다.

 

“제가 작가가 되고 정기적으로 책이 출간되는 동안에 한 가지 몸으로 배운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쓰든 결국 어디선가는 나쁜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긴 소설을 쓰면 ‘너무 길다.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반으로 줄여도 충분하다’라고 하고”


“짧은 소설을 쓰면 ‘내용이 얄팍하다. 엉성하다. 명백히 태만한 티가 난다’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미 25년 전쯤부터 저는 ‘무라카미는 시대에 뒤떨어진다. 이제 끝났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불평을 늘어놓는 쪽에서야 간단하겠지만 그런 말을 듣는 쪽에서는 일일이 진지하게 상대했다가는 몸이 당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뭐든 상관없어. 어차피 나쁜 말을 들을 거라면 아무튼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자’라고 하게 됩니다.


“모두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봐도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오히려 저 자신이 별 의미도 없이 소모될 뿐입니다”


“그러느니 모른 척하고 제가 가장 즐길 수 있는 것을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만일 평판이 좋지 않더라도, 책이 별로 팔리지 않더라도”


“‘뭐, 어때, 최소한 나 자신이라도 즐거웠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이 즐겁다고 뛰어난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말할 것도 없이 거기에는 준열한 자기상대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한) 최소한의 지지자를 획득하는 것도 프로로서 필수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만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면”


“그 다음은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다’,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출처 : https://outstanding.kr/haruki2018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