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 노자와 21세기 21강 ~ 30강
제21강 東學과 谷神
지금까지 노자의 사상으로
● 인간의 언어에 대한 부정, 거부
● 우주의 궁극적 실재는 변한다
● anti-intellectualism 등을 언급했다. 그런데 노자의 중요한 철학중의 하나가 바로 Feminism이다. 20c 가장 큰 계층적 변화는 여자와 어린이였다. 물론 노동자 계층의 권익도 매우 신장되긴 했지만. 예를 들어 옛날에는 아이들을 蒙昧하다에나 나올법한 蒙으로 표현했다. 蒙은 무지몽매, '어리석은'의 뜻을 지닌다. 그리하여 어떻게 開明으로 가는가? 그리하여 동몽선습이니, 격몽요결등을 썼다.
20c 길목에서 우리민족을 일깨우고 개화시킨 가장 큰 사상은 東學이다. 우리의 근대는 절대 외국에서 온 게 아니다. 동학은 최 수운(1824-1864)선생이 쓴 東經大全이 바로 그 경전이다. 그의 사상은 人乃天사상으로 이는 西學이 天主를 받드는데 비해,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으로 '뭇 생명의 보편주의'를 엿볼 수 있다. 기도의 방법을 보면 '청수'한 그릇 떠놓고 비는 것이다. 이 얼마나 소박한 종교인가?
동학은 흔히 전라도에서 생긴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경주 구미산 용담정에서 최 수운 선생이 득도한 곳이다. 당시의 신도는 약 3000명 정도로 추정될 뿐이며, 그는 1864년 3월 10일 처형된다. 그러자 해월 최 시형(1827-1898)이 무려 30년간을 숨어서 민중조직을 굳혀갔다. 그런데 그와같은 조직을 하기위해선 『사상』이 있어야 했다. 그 사상중 하나가 勿打兒설법이다. 이것은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최 수운 선생은 남원 구룡산성의 은적암에서 보내기도 했는데, 최 시형이 도를 구하기 위해 석달정도를 기도를 하다가 도를 구하지 못해 추운 겨울 얼음을 깨고 강물속에 뛰어들었더니, 『강물에 들어가면 해롭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중에 이를 최 수운 선생에게 이야기하자, 내가 도를 닦으면서 생각한 것이 너에게 전달되었구나. 얼마나 생각이 간절했으면 그러했을까? 라고 말했다한다.
이때 바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 하늘의 소리가 사람의 소리다
● 천지가 하나의 생명이다. 천지생명은 하나다. 는 가르침이었다. 어린이, 여자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로 여기었다는 것이다. 동학란이 일어난 뒤 해월이 강원도에 도피하다가 마을의 어린애들이 「병정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오늘은 내가 잡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한다. 이때 그의 도피를 도운 사람이 바로 손 병희 선생님이다.
● 아이와 여자의 소리가 하늘의 소리다.
stupid란 의미가 아니라, 어른에 상대한, child에 해당하는 어린이란 말과 사상을 짜낸 분이 소파 방 정환 선생인데 이 분은 바로 해월의 사위가 된다. 즉 동학이 우리의 개화를 꽃피운 것이다.
요즘 어린이들 교육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 어릴 때 묶어서 성장의 씨앗을 만들어야 한다. 어른이 되면 못묶는다.
요즘 와서 우리 민족의 죄악을 다 우리가 당한다.
곡신불사 峰 , 谷 이 때의 谷은 존재의 근원으로 감추어져 있으나 모든 것이 모여있고, 생성되는 곳은 바로 이 溪谷인 것이다.谷神不死
서양의 God → (요즈음) 명사 ― : 초월적인 신
동양의 신 → (옛날) 형용사 ―: 내재적인 신으로『신령스럽게 보인다』정도의 뜻이다.
산신령은 대개 호랑이를 타고 있다.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산에만 있다.
Young-oak 젊은 도토리 나무
우리 나라는 Oak Tree Belt.
도토리 ― 다람쥐 ―멧돼지 ― 호랑이
虎患: 호랑이에게 잡혀먹는 것
호랑이 벨트와 샤머니즘 벨트는 일치한다.
제23강 :갑골문의 세계
● 현실적 조건에서의 여성의 문제
● 도가 철학이 없었더라면 여성의 위치는 더욱 형편없었을 것이다.
是謂玄牝(시위현빈) 牝: 암소 빈 cf) 牡: 숫소 모
최초의 고대 한자 → 갑골문
山 → 상형문자. 그러나 상형문자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한자학 강의」 최 영애 1955
甲骨文 거북이 龜 우골 牛
卜은 거북이의 등껍질이 벌어진 모양을 나타냄
象形: 형체를 그대로 본뜬 것 예) 山
指事: 추상적인 뜻을 나타낸 것 예) 一 二 三
會意: 뜻과 뜻을 모아쓰는 것 예) 人木 → 休(휴)
形聲: 소리를 따라 쓰는 것 예) 工→ 江 功 攻 貢
假借: 형상과 관계없이 소리만 빌려쓰는 것 其(기)가 원래는 시골에서 쓰는 '키'를 뜻하는 말로 쓰였으나, 그 말이 '그것'의 의미로 쓰이자 '키'의 의미로는 竹을 추가하여 箕(기)로 씀.
선비 士의 선은 남근의 '섰다'의 의미를 지님. ∴ 선배는 선 무리들의 뜻임
제24강
이소라의 프로포즈
젊다는 것은 끊임없이 절망을 겪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절망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젊음은 희망이 있는 것이다.
乾坤一劇場 人生一悲劇
하늘과 땅에 인생이란 그 연극속에서 연출된 비극이다.
젊음이란 인간의 희로애락에 즉각적인 반응을 함.
젊음이란 기본적으로 근시안적이다. 그러기 때문에 실수가 많고, 위대하다. 절망이 없으면 젊다고 할 수 없다.
젊음이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지향한다.
Beauty ―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인생에서 찾아야 한다. 젊음은 아름답다는 것에 가차없는 헌신(devotion)하는 것으로 이 때 peace가 찾아온다.
청춘의 가장 위대한 속성은 사랑이다. 그러나 최초의 사랑은 '이기적'인데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이기심을 극복하면서 서서히 보편적으로 나아가고, 그것이 살아있을 때, 사회가 건강하다.
연애와 사랑의 차이점은?
연애란 이성간의 사랑을 말한다면, 사랑은 우주 보편적이다. 한 송이 국화를 피우는 것은 땅의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가운데서도 가장 깊은 사랑은 연애일 것이다. 사랑이란 좋은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삶의 기쁨을 얻고자 하면, 더 큰 vision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삶에 있어 음악이란?
禮記의 「악기」부분에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음.
「禮」는 구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구별만 있으면 너무 硬直된다. 따라서 그런 구별을 해소시키기 위해 음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위지동이전」위는 조조가 살았던 나라이었다. 여기에 보면 우리 나라는 가무를 즐겼다고 적혀있다.
My way라는 노래는 프랑크 스나트라가 불렀으나, 사실은 그 사람은 부를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innovative한 사람이었다. 차라리 엘비스 프레슬리나 내가 불렀어야 할 노래이다. 그중 감명깊은 내용으로는 I did it in my way(내 식으로 살았다)가 그렇다. 거기에 final curtain이 나오는데 이는 나로서는 살아있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 따라서 나는 I'll do my way로 가사를 고치는 게 좋겠다. When there's doubt, I spit it. I stood tall.이란 가사는 얼마나 위대한가! 의심이 갈 때도 내뱄었고, 정정당당히 섰다는 말이다.
자에 보면 대장부는 氣가 딱 차있어야 한다고 적혀있다. 이 무대에 내가서면, 나의 氣가 이 무대를 가득채워야 한다. 「小體」를 버리고 「큰 몸」을 가져라.
I took the blow.(때로는 두들겨 맞기도 했고)
I had my fill(?) (때로는 손해도 봤다)
그러나 당당히 섰다는 말이다. 대가 큰 처신을 한 인생을 살았다는 말이다.
(조 영남) 無爲가 어떤 노력을 게을리 하라는 말로 들리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無爲는 원래 「함이 없음」인데, 항상 앞에 爲가 와서 爲無爲와 같이 쓴다. 즉 「함이 없음을 하다」이어서, 이것은 어떤 노력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위를 하라는 말이다. 이는 거짓행위를 하지 말라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有爲的인 문명건설에만 몰두해온 우리 인간들이 이제는 뭔가를 비워두고, 거꾸로 가려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한시 ― 이 태백의 장진주사
돈키호테 ― 이 태백과 유사하다. 발랄하고, 과장되고
햄릿 ― 두보와 유사하다.
Let it be를 부르며.
스스로 그렇게 사는 지혜를 잃음.
When we parted, we'll meet again.
제27강 : 선비정신과 노자
法身: 그가 전달한 진리의 체계
色身:역사적 실존인물로서의 부다(Buddha) ― 물질적 근거를 가졌다는 의미
石身, 化身, 報身
싯다르타는 원래이름이고 붓다는 깨달은 자란(the Enlightened) 보통명사
TV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은 나의 色身은 보지 못하고, 영상을 보고 있다. 그러니 내가 전하는 진리의 체계만 남는다. 이번 연휴(신정)에 한 음식점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그런데 그 여자는 TV에서 나를 보았다고 수다를 떨며, 나에게 맥을 짚어달라는 둥, 악수를 신청하는 법석을 떨고 있다. 그러나 또한 여인은 길을 가다 가볍게 목례를 하면서 '스스로 그러하다고 한 가르침 감사했습니다'라고 했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나는 인기인이 아니다. 나의 얘기는 한마디 한마디가 30년 이상 숨어서 공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이며, 나는 밀집된 정보를 젊은이들이 이어받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소리 없는 선비들의 숨결이 이 나라를 지켜온 것이다. 인기인들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은 강의를 하려면, 짱아치가 되어야 한다. 고전이란 항아리에 푹 담겨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가 朝鮮이란 칭호를 쓴 것은 明나라 왕 朱 元璋(1328-1398)으로부터이다. 그로부터 元이 明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원나라 말기는 극도로 혼란했다. 몽고인들이 들어와 漢族을 9번째 등급으로 격하시켜 노비취급을 했다. 과거제도는 전폐되고, 선비들은 시골로 도망을 갔다. 그러다 보니 원나라 때 학문이 보편화되고, 元曲이란 경극이 생기고, 文言一體(즉 言文一體)가 일어나서 白話운동이 일어난다.
明의 주 원장은 그의 출처가 애매해서, 함경북도에 가면 그가 한국사람일지도 모르는 설화도 있다. 그는 거지출신이었다. 당시에 백령교란 종교가 있었다. 그것은 조로아스터교, 불교, 마니교 등이 혼합된 종교로 明敎라고 불렸다. 그런데 주 원장의 초상화는 엇갈리는 두 개의 형태가 있다. 하나는 매우 인자한 모습의 얼굴을 가졌고 다른 하나는 흉악무도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재상제도를 폐지하고 과도한 중앙집권통치를 했다. 그가 죽을 때 왕위를 손자인 建 文帝에게 물려주었는데, 그의 삼촌 중에서 북경지방을 통치하던 燕왕이 있었다.
명의 수도(건문제)는 남경지방이었다. 연나라 왕이 건 문제를 쳤을 때, 그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그것이 建文帝遜(?)國傳說로 남아있다. 연왕(성조, 영락대제)이 남경을 칠 때, 方 孝孺(1357-1402)라는 金華학파의 학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하 도연이 방 효유를 죽이면 천하의 학문의 씨가 마를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다 죽여도 방 효유를 죽이지 말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연왕이 남경을 치고, 격문을 써야했는데 방 효유가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격문을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자, 그는 燕賊簒位(연적찬위)라고 휘갈겼다.
연나라 도적이 왕위를 찬탈했다라고. 이러자 그의 목을 치고 10족을 멸하여 총 873명의 목을 쳤다. 이러한 일로 명은 망한다. 鄭和는 明나라 초기의 대 항해자 이었다. 정화의 함대는 62척으로 이루어진 함대로서 1척당 448명이 탔고, 1405년 건 문제를 찾으러 아프리카까지 7차례나 출범하였다. 에디오피아도 갔다. 건 문제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영락대제가 보낸 것이다. 어떻게 그 당시에 그렇게 엄청난 함대를 보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컬럼버스가 미국에 갈 때도 그렇게 엄청난 함대는 아니었다. 어쨌든 명나라는 이 사건으로 인해 지식인들이 협조를 안했고, 반 지식인적인 왕조가 되어 다시 청나라에게 망하고 만다.
周遊列國이란 말이 있다. 선비들이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자기 뜻을 펼치려 한 것이다. 맹자가 하루는 그가 거느리는 20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양혜왕을 찾아간다. 그러자 왕혜왕이 묻기를 그대를 받아들였을 때 우리에게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라고 말하자 맹자는 何必曰利(왜 利를 말하는가?)라고 말하며 仁義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이것이 선비의 배포요 이것이 선비정신이다.
利를 말하는게 아니라, 도덕성의 구현, 仁義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존재이유요 이것이 유교문화의 선비정신이다.
정도전이 이방원을 도와 조선의 기틀을 다지자, 결국 이방원은 정도전을 죽인다. 그러나 정도전은 어서 죽여라, 그러나 내가 만든 틀 속에서 살 것이라고 했다 한다. 정도전이란 色身은 사라졌으나, 그의 法身은 살아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법신의 문제다. 그러니 나의 色身을 괴롭히지 말라. 오로지 法身의 문제다.
제28강 :청춘과 깨달음
덕담을 해야될 것 같다.
젊음이란? (방청석의 한 학생) 살아있는 것을 깊이 느끼는 것
The deepest definition of Youth is Life as yet untouched by tragedy. 젊음이란 비극에 물들지 않은 생명 ― White Head. 72세 때 「The Adventure of Idea」관념의 모험이란 책에서 갈파함.
方 東美 ― 남경 중앙대 교수. 1937년 일제의 총성 속에서도 The Chinese View of Life를 라디오를 통해 강의. 거기에서 그는 乾坤一戱場 人生一悲劇이라 설파했다. 천지는 dramatic하나 인생은 비극투성이라 했다. In youth, despair is overwhelming. 절망이 넘치는 것이 젊음이다. 젊었을 때는 모든 게 답답하고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러면 왜 젊음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가? 그것은 The memories of youth are better to live through than is youth itself.하기 때문이다.
청춘은 희노애락에 대한 반응이 전폭적이어서 절망이 닥쳐도 그것을 절망으로 느끼지 않는다. Youth is distinguished for its whole-hearted absorption … .
청춘은 또한 아름다운 것에 민감하다.
Youth is peculiarly susceptible to appeals for beauty of conduct.
행동의 미에 대해 감수성이 강하다.
아름다움의 발견이 바로 해탈이다. 젊음은 문학작품이나 다른 무엇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발견해내고 그것에 무조건 헌신하는 순간 거기에 평화가 깃든다. 젊음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거기에 몰두한다.
우리의 역사는 다시 젊어져야 한다. 나는 色身은 늙어져도 法身은 영원히 청춘으로 살고 싶다.
깨달음.
禪宗은 당나라 때 생긴 것으로, 그 이전에는 교학 불교가 성행했다. 이 교학 불교는 인도에서 나온 것이다. 인도인들은 말을 어렵게 한다. 말이 많다. 간단한 것도 복잡하게 말한다. 독일의 관념철학도 마찬가지다. 쉬운 것도 어렵게 말하는 것이 그들의 특성이다. 프랑스나 영미는 조금 나은 편이어서 가볍게 touch할 줄을 안다. 그러나 독일의 관념철학가들, 예를 들어 칸트의 경우 그렇게 쉬운 것을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존경스럽게 할 정도다.
그런데 唐나라 禪師들은 교학의 대가들이다. 그러니까 불립문자를 말할 때 위대해 보이지,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
禪은 깨달으면 그만 아니냐, 경전은 무슨 경전이냐는 태도이다. 그러니 극단적으로 말하면 反佛敎다. 不立文字(학문으로 불교를 말하지 말자)의 세계를 추구한다.
혜능 ― 광동구 남쪽 조계산에서 선을 시작했으며, 두 제자가 있었는데 하나는 청원행사요 다른 하나는 남악회악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각각 德山방과 臨濟할의 제자의 제자들을 둔다
선종 ― 고려말부터 들어옴
우리나라는 태고보우(1301-1382)가 원나라에 유학가서 임재선사의 계보가 들어왔다.
북방쪽 사람 덕산 ― 사천성 사람 ― 매운 걸 잘 먹는다.
― 戒律에 능함.
― 금강경의 대가 ― 별명 주금강
청룡소초는 금강경의 해설책
南方마子
敢言直指人心 見性佛性 감히 하루아침에 사람의 마음을 알고, 곧바로 견성하면 성불한다고 하니 滅其種類 이들의 씨를 말리겠다고 호언하며 용담스님이 있는 용담사에 간다.
빈대떡
점심 ― 중국말 點心 ― 마음의 불을 일으킨다
간식의 의미. refreshments.
촛불킬 때 點火 ― 불을 일으킨다.
施與點心 도올의 금강경 319쪽에 나타나 있음.
一體洞觀分: 갠지스강의 모래 숫자만큼 갠지스강이 있고, 그 강의 모래들만큼 사람의 마음이 각각 다르다.
過去心 不可得 과거의 마음은 얻을 수 없고
現在心 不可得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未來心 不可得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네
하면서 빈대떡을 부치는 할머니가 묻는다.
未心上座點那個心? 위와 같은데 너(덕산)는 지금 무슨 마음을 전하려 하는가?고 할머니가 묻는다.
pun: 같은 발음에 두 개의 다른 의미가 겹쳐있다. 點心은 빈대떡과 마음의 의미로 쓰임.
깨달음을 주십시오, 내 마음의 불을 주십시오 하고 덕산이 매달리는 순간 깨달음(촛불)을 준다. 그런데 용담은 그 촛불을 꺼버린다. 그 의미는 깨달음이 있다는 네 마음의 생각 그 자체를 없애는 순간이 득도에 이르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29강 :해석학적 3대 기원설 (상)
동, 서양의 구분은 매우 협소한 개념이다. 21세기에는 동, 서양이란 말을 없애야 한다.
서양 ― Latin West ―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고
동양 ― 한자 문화권: 중원중심의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월남(오월동주하는 월의 남쪽이란 뜻) ― 일본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그러나 한자 문화권처럼 지속적인 문명이 없었다. 마야, 잉카문명을 보아도 그렇다.
그래서 살펴볼 가치가 있으며 역사이해의 중요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노자」 ― 재미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의 체험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해석(interpretation)이다. 고전의 역사는 해석의 역사이다. 고전은 반드시 해석되어져야하기 때문이다.
법도 마찬가지로 판사마다 해석이 다르다. 따라서 그것을 판례로 남기며, 이것이 성문의 법보다 더 중시되고 있다. 이것에 의해서 법질서가 유지된다.
공자의 시대엔 고전이 없었을까? 있었다. 그것이 바로 詩, 書, 易經이다. 그런데 공자는 述而不作(I am a transmitter, not a creator)라고 하면서, 나는 과거의 경전들을 해석했을 뿐, 창조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위대성은 바로 述을 통해 作을 한 것에 있다. 남들이 돌보지 않던 경전들(사, 서, 예, 약, 역, 춘, 추)을 정리 해석했다.
나에게는 과거란 없다. 나에게 있어서 과거는 모두 현재일 뿐이다.
우리 나라의 사서삼경은 조선조 유생들의 과거시험 과목이었고, 주희(주자)(1130 - 1200)가 주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서의 논어, 맹자는 독립된 경전이나, 대학, 중용은 예기의 끝 부분 두 chapter에 불과하다.
중국인들은 十三經이라 한다. 시, 서, 예기, 역, 춘추경, 효경, 이아 등.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는 그 중 6경의 기초를 닦았다.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서 공부하던 공자는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6경이 기초가 되어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한다. 진시황은 정이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呂不韋란 자가 자기의 애첩에게 애를 배게 한 뒤 귀향 나온 왕족에게 시집을 보내어 난 아이가 다시 왕실에 들어가 왕이 된 사람이다. 그렇게 출생한 진시황은 공자의 仁義를 가지고는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韓非子(그의 이름은 非요 한나라 때의 사람이란 뜻)를 통해서 법중심의 사회질서를 바로잡으려 한다. 法家의 한비자는 法 중심의 사회질서를, 공자는 禮 중심의 사회질서를 꿈꾸었다. 그러나 진시황은 국가 질서를 잡고나자, 다시 공자의 유가가 법가보다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공자는 다시 높아진다. 즉 罷黜百家 獨尊儒述(?)하게 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유교만 존경하게 된다.
조선조 이 방원이도 조선의 체계를 세운 정 몽주를 죽이지만, 나중에는 그 반역신을 백성들로 하여금 높이 숭상하게 한다. 정 몽주처럼 우리 왕조에 충성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선비는 죽어도 영원히 사는 게 선비이다.
그러나 진나라는 焚書坑儒(진시황 34년, 213 B.C.)를 단행한다. 이유는 온갖 이론들이 자신의 통치를 괴롭힌다고 판단해서이다. 後漢의 鄭玄(127-200)과 같은 대표적인 경학자들이 이때부터 쏟아져 나온다. 왜냐하면, 분서갱유후 13경을 가지고 올 때, 두가지 형태로 가져왔다. 첫째는 죽간 ― 古文 ― 벽장 등에 보관했던 책, 다음으로 머리속에 암송했던 경우 ― 今文 ― 그당시 문장으로 재구성된 경전.
그리하여 삼, 사 백년동안 금고문 논쟁이란 싸움이 벌어지면서, 학문의 발달을 가져온다. 한 대(항우와 유방의 사면초가도 이 때 나온 말로, 항우가 사면초가로 죽고 유방이 한고조가 된다)에 경학이 발전한 이유도 거기 있다. 합치면 제국이 되고, 깨지면 틈새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 때 불교가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게 된다. 한나라 이후 삼국시대가 되고, 다시 위진 남북조의 시대가 되면서 불교가 대거 유입된다.
황하문명과 인도문명이 파미르고원을 가로질러 교류가 일어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의 석굴암은 알렉산더대왕 ― 간다라 미술 ― 돈황(중국) ― 고구려 ― 신라를 통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이다. 당시엔 바위에 새긴 불상만 있었으나, 석굴암과 같은 상은 희랍조각에서 온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불교 ― evangelism(복음주의)
염주의 알은 그렇게 오래 가지고 다녀도 뿌리면 싹이 돋는다. 따라서 전도를 가던 불자가 보리수나무를 보면 묵념을 했다고 한다.
중국은 노장철학을 통해 불교를 이해함 ― 당나라의 통일제국이 신라문화에 영향을 끼침. 우리 나라의 해당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유교와 불교가 이렇게 깊게 결합된 적이 없다. 중국의 천재들이 불교에 심취하게 됨. 이는 유례가 없는 문명의 대 교류이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은 인도문명을 창조적으로 왜곡하게 된다.
the art of deliberate misunderstanding.
화엄종 ― 북방불교 ― 한국에서 성행
천태종 ― 남방불교 ― 일본에서 성행
중국 ― 뜻글자 ― 운문 ― 상형문자
인도 ― 소리글 ― 산문 ― 알파벳 언어
우리 나라는 신학이 없다. 독재 정권 하에서 민중신학이 나타나다 사라짐.
禪은 중국인의 시적 영감(poetic inspiration)으로 되돌아 감.
제30강 : 해석학적 3대 기원설 (하)
老莊사상이 없었더라면, 불교는 중국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涅槃 nirvana: 끄다, 억제하다, 그치게 하다의 의미. 그런데 이것은 滅(멸)의 의미. 열반은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와같은 음역이 채택된 것은 이런 의미를 전달하는 번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無爲였다. 즉 열반을 처음에는 무위로 해석했다. 열반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노장철학의 언어적 틀을 빌어 해석했다. 이것을 格義라 한다.
불교가 서서히 중국인들의 poetic inspiration으로 들어감. 이와같은 불교가 唐나라 때 지나치게 융성하여 불교를 지겹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宋에 오면서 排佛思想이 나타난다. 조선왕조의 排佛思想도 마찬가지다. 고려말 정도전도 排佛論을 편다.
주렴계
소강절
정령도 정이천 ― 주자: 불교에 찌든 중국인들의 문명의 틀을 바꾼 사람
장횡거 ― 王夫之 ― 도올
불교는 초윤리적(trans-ethical)이다.
유교는 세속적 윤리(secular ethic)
합리적 종교(rational religion) ← 세계의 고등종교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맥아리가 없다 ― 아침, 저녁으로 인사 잘하라든지
공자: 務民之義 敬鬼神而猿之
(하느님의 세계는 공경하되 멀리하라. 그것이 백성의 바른 길이니라)
불교: 一切皆唯心造 (일체는 모두 오로지 마음이 지은 것이다)
공자: 未知生, 焉知死?(사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논어「선진」편)
위와 같이 불교는 초월적인 인식론, 형이상학이 있었던데 비해, 유교는 그런 인식론이 없었다. 그에 상응하는 형이상학적 인식론이 바로 理氣論이다. 이것은 이전의 유교에는 없었으나 주자가 만들었다. 즉 송 대에 들어 유교경전을 다시 해석해가면서 유교철학을 만들었으니 理氣論이 바로 그것으로 이것이 송 대의 패러다임이 된다.
서구문명에 찌든 세상을 김용옥이 노자를 가지고 바꿀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선 노자의 말을 설득력 있게 해석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주자는 유교의 13경전 중에서 대중적이고, 이론적 깊이가 있는 것으로
論語(제자들과의 상황상황에서의 얘기),
孟子(논재의 도사, argument 즉 쌈꾼으로 비유도 싹 쳐가면서. 오십보 백보니 성선설 성악설이 모두 여기서 나옴)
大學, 中庸은 모두 예기의 한 chapter들이다. 여기서 주자는 대학을 최고로 침. 도올은 주역을 도올의 처는 시경을 전공. 하지만 도올은 중용이 더 맘에 든다.
위의 네 가지를 四書라 함. 따라서 고려시대 또는 신라시대에 사서를 했다고 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이다. 그 때는 사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용: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그것이 발해서 들어맞을 때,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중용:
天命之謂性 하늘이 명령한 것이 본성이오
率性之謂道 나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 나의 길이요
修道之謂敎 나의 길을 닦는 것이 나의 배움이다.
주자의 사서운동은 신유학(Neo-confucianism)이라 불림. 우리 나라는 고려의 안향이 들여옴. 정도전이 이조의 국가 틀을 잡을 때 사용함.
한편 주자는 유학자이나, 불교를 잘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주자학도 불교사의 맥락 속에서 분석되어야 함.
당 문명
周公 → 공자의 述而不作 → 불교가 들어오면서 깨짐
The first Hermentical Epoch 불교가 유교를 대신하면서 금고문 논쟁후
(해석학적 제 1 기원) 불교의 대장경이 만들어짐
Han Civilization 그러나 불교는 외래문화(exogenous)
● 완전은 불완전보다 하위개념이다.
→ 宋(주자학이 지배) → 明 →
주자의 四書集注 주자학에 대한 반동
주자학 양명학(왕 양명: 유교의 윤리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제 2 해석학적 기원(혁명)
주자학 → 格物致知(사물의 이치는 경험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양명학 → 良知良能(사물의 이치는 인간 본래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주장)
● 주자학은 士大夫(선비)철학이요, 요즘으로 말하면 공무원 교육철학이다. 왜냐하면 선비는 문명을 다스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 주자학의 패러다임 속에서 조선문명이 성립됨
● 양명학은 유교의 禪이다.
● 조선은 왕명학과 노장사상을 탄압한다. 이는 주자학 일변도로 나가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 사상이 無爲나 엄격한 유교적 윤리에서 해방을 의미하다보니 주자철학을 바탕으로 통치하고자 하는 이념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 淸(1616 - 1911) 자금성 개축
건륭황제 (오랑케- 만주족)
외부왕조는 초기엔 건실했다
고증학: 實事求是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함
그러나 청 말기까지 주자학적 패러다임으로 간다
서양문물에 의해 700년의 신유학 패러다임이 깨진다.
● 서양은 동양역사 전체의 해석학적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제 제 3 해석학적 기원은 오고 있는가? 20 세기의 혼란이 사라지고 제 3의 해석학적 기원이 오고자 하면, 서양을 알아야하고 동양문명을 다 먹어서 이거다 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제 31 강
아인쉬타인(1879-1955)과 나의 박사학위
아인쉬타인이 Time지 세기의 인물에 왜 올라갔겠는가? 정당한 이유가 있다.
동양인들이 발견한 측우기, 활자, 화약, 도자기는 모두 삶의 기술(Art of Living)이었다. 화약은 폭죽으로 노는데 밖에 안 썼다. 그러나 서양은 그것으로 대포를 만들어 동양을 지배하는데 사용했다. 여기서 대포를 만들고자 하면 포물선 공식이라는 원리가 들어가야 한다. 만유인력의 법칙, 상대성 이론, 불확정성의 원리(하이젠베르그)와 같이 법칙, 이론, 원리를 발견했다.
이와같은 원리적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인류를 지배한다.
컴퓨터가 별 볼일 없는 것은 원리, 이론, 법칙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1564-1642)는 천동설(heliocentric theory)를 지동설(geocentric theory)로 바꾸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천동설 감각 속에서 산다. 한편 지동설도 맞지만, 천동설도 맞다. 이 세상에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동설은 간단히 천체를 설명하는데 맞아떨어지나, 천동설로 설명하고자 하면 너무 복잡해진다. 지동설이나 천동설이나 결국은 같을 수 있다. 다만 천동설은 이태리 교황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받쳐주기 때문에 교황청의 권위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철학자 부르노는 지동설로 처형되었고, 과학자인 갈릴레오는 석방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다.
교회의 권위가 결정타를 준 것은 다름 아닌 과학자들이다. 이 세계를 변혁하는 것은 국부적인(local)한 것으로는 안된다.
대학에 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있는데, 修身, 齊家, 治國까지는 보통사람들이 할 수 있으나, 평천하는 오로지 선비만이 가능하다. 즉 학자를 키워야 한다. 세계를 뒤바꿀 수 있는 법칙, 이론, 원리는 오로지 학자들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명의 모든 방향이 날로 날로 얄팍해져만 가고 있다.
해돋이 행사에 나와달라는 둥….
서구는 고전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자유로운 교육 curriculum에도 불구하고).
나 도올은 지난 세기 마지막 품격을 갖춘 교육을 받았다. 일본에서, 중국에서 그리고 하버드에서. 품도 있는 대가들의 교육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Benjamin Sohwalz (슈왈츠) 교수. 유태인으로서 아인시타인과 외모가 같았다.
하버드대 傲氣로 갔다. 그런데 슈왈츠 교수가 朱子語類를 강의하더라 우리시대의 감각을 가지고. 그런데 슈왈츠의 강의는 객관화하니까 더욱 재미가 났다. 한문문화권은 우리가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을 깨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사람이 희랍어를 완벽하게 한다면 이상하지 않다(?)
36세까지 사회에 나타난 적이 없다. 그 때까지 공부만 하다보니까 공부가 싫은 게 아니라, 내가 뭘 하는지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했다. 미국에서는 급성간염에 걸려 열이 40도까지 올랐으나, 보리차만 마시면서 1982년 2월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20일 동안에 하버드의 논문을 씀.
제자들을 씨가 보이면 키워야하며, 못살게 구는 게 할 일이 아니다.
대가들의 이런 모습(괴롭혔던 스왈츠 교수가 자신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온 것)을 생각할 때 위대한 스승의 모습이 뭔가를 보여준다.
한문의 세계도 뭔가 보편적인 틀 속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인물을 키우고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
제 32 강
天長地久와 제비
동양인의 천지관(cosmology): 天과 地를 고유명사로 파악하는 중국인의 독특한 우주론. 天圓地方說. 天覆과 地載 그리고 그 사이에 만물이 있으며 인간은 그 중에 가장 영물이다. 그래서 天地人의 3才가 존재한다.
人間은 사람이란 뜻으로 일본인들이 만든 말이다. 왜 사람 人만을 쓰지 않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사이 間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人)은 사이 (間)의 복합체다. 고립된 개체란 있을 수 없다.
동양인들에게 있어서
하늘 ― 움직인다 ― 動 ― 시간의 변화 ― 시간을 전제로 한 것이다.
땅 ― 공간 ― 靜
인간, 시간, 공간이 3 間이 존재한다.
즉 나 인간 속에는 항상 시간과 공간이 있는 것이다.
시간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변화를 인식하는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인식의 틀이다. 변화와 변화사이를 설명하는 게 시간이다. 즉 시간은 없다.
시간, 공간 인간은 서로 관계돼있는 term이다.
시간적 세계 ― 하늘 ― 보편적(locality를 초월하는 세계)
공간적 세계 ― 땅 ― locality 국부적 세계
天(시간) 長(너르다― 공간개념) 地(공간) 久(지속 ― 시간개념)
여기서 시간과 공간을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소박한 형태로 아인쉬타인의 이론을 보여주고 있다.
천지가 장구해야 하고 장구하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가치를 가지고 산다.
동양에는 불변사상은 없다. 지속되고 있을 따름이다.
휴거는 오는가? 온다. 그것은 50억 만년 뒤다.
믿어야 할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天地이다.
동양인들에 있어서 天은 대기권으로 지구 생명 공동체 권을 말한다.
天은 氣요 따라서 天氣는 biosphere인 것이다. 또한 地는 血이다. 여기서 생명이 탄생하고 죽는다. 오직 하나뿐인 지구(Only One Earth)를 살려야 한다.
global consciousness를 가지고 있다.
지동설의 폐해가 크다. 지구를 다 이용하고 다른 행성으로 가겠다는 식이다. 그래서 천동설이 다시 부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가 중심이 되어야 하니까.
요즘 청소년들의 가상세계는 사실 보잘 것이 없다. 희랍인들만큼 풍부한 가상세계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신화를 생각해 보라.
하늘이여 땅이여 영원하여라. 시간이여 공간이여 영원하여라.
所以: 까닭, because 能: can, 且: 또는, 久者: 오래갈 수 있는 것
천지: 하나님
以(because)其不自生 자기고집에 따라 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지는 자기고집에 따라 生하면 안 된다. 희로애락의 대상이 아니며, 천지는 不仁하다.
故能長生 고로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시간 ― 영원한 지속, 변화의 상태가 지속된다(permanent)는 의미다. eternity를 쓰면 적절치 않음.
새로운 각성 a new awareness가 필요하다.
제 33 강
大鵬과 王弼注譯
장자의 첫 부분에 보면 逍遙遊(loitering, wandering)가 있다.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은유적으로, 설화적으로 풀어놓았다. 北溟有魚其名爲鯤이라 적혀있다. 鯤이란 명태 알보다 작은 알이 커서 대붕이 된다. 그 대붕은 水擊三千里, 博扶搖而上者九萬里라 적고 있다. 한번 물을 치면 삼천리, 그리고 넓은 바다를 한번 날면 구만리를 간다고 했다. 그런데 참새는 날아가는 대붕을 보고, 뭣 때문에 저렇게 멀리 나는가 고 비웃었다 한다. 위진남북조 시대 이걸 가지고 상대성 비슷한 논쟁이 나온다.
참새의 말도 정당하다. 그러나 역시 인간의 정신의 소요는 엄청난 거리를 날 수 있는게 역시 인간이다. 젊음의 특징은 무한한 야망을 갖는 것이요, 무한히 멀리 나는데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 조식(1501-1572)은 호를 南溟이라 했는데 이것은 남쪽 바다란 뜻으로 그 학식의 됨됨이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천지는 不自生 즉 not arbitrary하다. 자기고집대로 몰아가지 않기 때문에 長久하다. 천장지구 즉 천지는 우리의 영원한 근원이요 장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佛家(대승불교)에서는 不自性이 되었다. 不自性은 바로 空이다. 空은 빈 것이 아니요, 모든 존재하는 물체는 자기로서의 self-identity가 없다. 즉 空하다. 순간순간 변한다. 자기 동일성을 영원히 지킬 순 없다. 물론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 때문에 그 동안만 사용을 하기는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변한다. '나'라는 존재는 自性的(arbitrary)인 存在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五蘊(색, 성, 향, 위, 촉)의 假合이다.
노자는 Sein(존재:사실)과 Solle(당위:가치)가 이원화되지 않는다.
이것을 서양에서는 비난한 바 있으나 요즈음 사실이 곧 가치가 되어가고 있음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그러므로 성인은 그 몸을 뒤로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몸이 앞서고
是以 聖人 後 其身 而 身 先
therefore 주어 타동사 목적어 오히려 주어 자동사
外其身而身存
그 몸을 밖으로 하기(희생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몸이 보존된다.
外 其身 而 身 存
타동사 목 오히려 주 자동사
위는 後其身하기에 오히려 저절로 그 몸이 앞서지, 그 몸이 앞서기 위해 後其身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兵家術數에 해당한다. 또한 外其身하기에 그 몸이 보존되지, 그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아니다.
병가란 무엇인가? 그 몸이 앞서기 위해 (後其身)그 몸을 뒤로하고, 그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 그 몸을 밖으로 하는 것이다. 서시봉심은 傾國之色의 일화를 말하고 있다. 몸을 앞세우기 위해서 후기신하는 예이다. 또한 모택동 전법이 되었다. 모택동은 노자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後其身이나 外其身은 절대명제인 것이다.
장자에
得魚而忘筌也(고기를 잡으려면 그 고기를 잡은 그물을 버려야하고)
得免而忘蹄(토끼를 잡으면 그 올가미를 버려야 토끼를 잡는다)
得意而忘象(그 뜻을 얻으면 그 symbol(괘상)을 버려라) 이것이 인간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만 알면 된다. 한 대의 경학들을 통렬히 비판하는 것이 된다.
功不可取, 美不可用 공이라 하는 것은 취할 수 없는 것이요, 아름다움이라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쓸 수 없다.
周易: 陰爻와 陽爻가 있다. 음효 - V -는 여성의 성기를 양효 ―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효마다 짧은 경구가 있고, 총 2 X 2 X 2 X 2 X 2 X 2 = 64개의 卦가 있으며, 각 괘는 6개의 효 가 있으니까 총 384개의 효가 있다. 이걸 가지고 우주 전체의 모습을 설명하려 했음.
주역은 필연적인 요소 하나도 없다. 오로지 우연적인 요소만 있음.
조조시대의 사람인 왕필은, 주역의 상수학을 거부하고, 한 대의 경학을 사그리 비판하고 있다.
노자사상은 중국역사에 있어서 정면(진리)와 배면(전술)이 된다. 모택동은 탁월한 전술전략가였다.
제21강 東學과 谷神
지금까지 노자의 사상으로
● 인간의 언어에 대한 부정, 거부
● 우주의 궁극적 실재는 변한다
● anti-intellectualism 등을 언급했다. 그런데 노자의 중요한 철학중의 하나가 바로 Feminism이다. 20c 가장 큰 계층적 변화는 여자와 어린이였다. 물론 노동자 계층의 권익도 매우 신장되긴 했지만. 예를 들어 옛날에는 아이들을 蒙昧하다에나 나올법한 蒙으로 표현했다. 蒙은 무지몽매, '어리석은'의 뜻을 지닌다. 그리하여 어떻게 開明으로 가는가? 그리하여 동몽선습이니, 격몽요결등을 썼다.
20c 길목에서 우리민족을 일깨우고 개화시킨 가장 큰 사상은 東學이다. 우리의 근대는 절대 외국에서 온 게 아니다. 동학은 최 수운(1824-1864)선생이 쓴 東經大全이 바로 그 경전이다. 그의 사상은 人乃天사상으로 이는 西學이 天主를 받드는데 비해,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으로 '뭇 생명의 보편주의'를 엿볼 수 있다. 기도의 방법을 보면 '청수'한 그릇 떠놓고 비는 것이다. 이 얼마나 소박한 종교인가?
동학은 흔히 전라도에서 생긴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경주 구미산 용담정에서 최 수운 선생이 득도한 곳이다. 당시의 신도는 약 3000명 정도로 추정될 뿐이며, 그는 1864년 3월 10일 처형된다. 그러자 해월 최 시형(1827-1898)이 무려 30년간을 숨어서 민중조직을 굳혀갔다. 그런데 그와같은 조직을 하기위해선 『사상』이 있어야 했다. 그 사상중 하나가 勿打兒설법이다. 이것은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최 수운 선생은 남원 구룡산성의 은적암에서 보내기도 했는데, 최 시형이 도를 구하기 위해 석달정도를 기도를 하다가 도를 구하지 못해 추운 겨울 얼음을 깨고 강물속에 뛰어들었더니, 『강물에 들어가면 해롭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중에 이를 최 수운 선생에게 이야기하자, 내가 도를 닦으면서 생각한 것이 너에게 전달되었구나. 얼마나 생각이 간절했으면 그러했을까? 라고 말했다한다.
이때 바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 하늘의 소리가 사람의 소리다
● 천지가 하나의 생명이다. 천지생명은 하나다. 는 가르침이었다. 어린이, 여자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로 여기었다는 것이다. 동학란이 일어난 뒤 해월이 강원도에 도피하다가 마을의 어린애들이 「병정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오늘은 내가 잡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한다. 이때 그의 도피를 도운 사람이 바로 손 병희 선생님이다.
● 아이와 여자의 소리가 하늘의 소리다.
stupid란 의미가 아니라, 어른에 상대한, child에 해당하는 어린이란 말과 사상을 짜낸 분이 소파 방 정환 선생인데 이 분은 바로 해월의 사위가 된다. 즉 동학이 우리의 개화를 꽃피운 것이다.
요즘 어린이들 교육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 어릴 때 묶어서 성장의 씨앗을 만들어야 한다. 어른이 되면 못묶는다.
요즘 와서 우리 민족의 죄악을 다 우리가 당한다.
곡신불사 峰 , 谷 이 때의 谷은 존재의 근원으로 감추어져 있으나 모든 것이 모여있고, 생성되는 곳은 바로 이 溪谷인 것이다.谷神不死
서양의 God → (요즈음) 명사 ― : 초월적인 신
동양의 신 → (옛날) 형용사 ―: 내재적인 신으로『신령스럽게 보인다』정도의 뜻이다.
산신령은 대개 호랑이를 타고 있다.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산에만 있다.
Young-oak 젊은 도토리 나무
우리 나라는 Oak Tree Belt.
도토리 ― 다람쥐 ―멧돼지 ― 호랑이
虎患: 호랑이에게 잡혀먹는 것
호랑이 벨트와 샤머니즘 벨트는 일치한다.
제23강 :갑골문의 세계
● 현실적 조건에서의 여성의 문제
● 도가 철학이 없었더라면 여성의 위치는 더욱 형편없었을 것이다.
是謂玄牝(시위현빈) 牝: 암소 빈 cf) 牡: 숫소 모
최초의 고대 한자 → 갑골문
山 → 상형문자. 그러나 상형문자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한자학 강의」 최 영애 1955
甲骨文 거북이 龜 우골 牛
卜은 거북이의 등껍질이 벌어진 모양을 나타냄
象形: 형체를 그대로 본뜬 것 예) 山
指事: 추상적인 뜻을 나타낸 것 예) 一 二 三
會意: 뜻과 뜻을 모아쓰는 것 예) 人木 → 休(휴)
形聲: 소리를 따라 쓰는 것 예) 工→ 江 功 攻 貢
假借: 형상과 관계없이 소리만 빌려쓰는 것 其(기)가 원래는 시골에서 쓰는 '키'를 뜻하는 말로 쓰였으나, 그 말이 '그것'의 의미로 쓰이자 '키'의 의미로는 竹을 추가하여 箕(기)로 씀.
선비 士의 선은 남근의 '섰다'의 의미를 지님. ∴ 선배는 선 무리들의 뜻임
제24강
이소라의 프로포즈
젊다는 것은 끊임없이 절망을 겪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절망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젊음은 희망이 있는 것이다.
乾坤一劇場 人生一悲劇
하늘과 땅에 인생이란 그 연극속에서 연출된 비극이다.
젊음이란 인간의 희로애락에 즉각적인 반응을 함.
젊음이란 기본적으로 근시안적이다. 그러기 때문에 실수가 많고, 위대하다. 절망이 없으면 젊다고 할 수 없다.
젊음이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지향한다.
Beauty ―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인생에서 찾아야 한다. 젊음은 아름답다는 것에 가차없는 헌신(devotion)하는 것으로 이 때 peace가 찾아온다.
청춘의 가장 위대한 속성은 사랑이다. 그러나 최초의 사랑은 '이기적'인데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이기심을 극복하면서 서서히 보편적으로 나아가고, 그것이 살아있을 때, 사회가 건강하다.
연애와 사랑의 차이점은?
연애란 이성간의 사랑을 말한다면, 사랑은 우주 보편적이다. 한 송이 국화를 피우는 것은 땅의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가운데서도 가장 깊은 사랑은 연애일 것이다. 사랑이란 좋은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삶의 기쁨을 얻고자 하면, 더 큰 vision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삶에 있어 음악이란?
禮記의 「악기」부분에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음.
「禮」는 구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구별만 있으면 너무 硬直된다. 따라서 그런 구별을 해소시키기 위해 음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위지동이전」위는 조조가 살았던 나라이었다. 여기에 보면 우리 나라는 가무를 즐겼다고 적혀있다.
My way라는 노래는 프랑크 스나트라가 불렀으나, 사실은 그 사람은 부를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innovative한 사람이었다. 차라리 엘비스 프레슬리나 내가 불렀어야 할 노래이다. 그중 감명깊은 내용으로는 I did it in my way(내 식으로 살았다)가 그렇다. 거기에 final curtain이 나오는데 이는 나로서는 살아있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 따라서 나는 I'll do my way로 가사를 고치는 게 좋겠다. When there's doubt, I spit it. I stood tall.이란 가사는 얼마나 위대한가! 의심이 갈 때도 내뱄었고, 정정당당히 섰다는 말이다.
자에 보면 대장부는 氣가 딱 차있어야 한다고 적혀있다. 이 무대에 내가서면, 나의 氣가 이 무대를 가득채워야 한다. 「小體」를 버리고 「큰 몸」을 가져라.
I took the blow.(때로는 두들겨 맞기도 했고)
I had my fill(?) (때로는 손해도 봤다)
그러나 당당히 섰다는 말이다. 대가 큰 처신을 한 인생을 살았다는 말이다.
(조 영남) 無爲가 어떤 노력을 게을리 하라는 말로 들리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無爲는 원래 「함이 없음」인데, 항상 앞에 爲가 와서 爲無爲와 같이 쓴다. 즉 「함이 없음을 하다」이어서, 이것은 어떤 노력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위를 하라는 말이다. 이는 거짓행위를 하지 말라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有爲的인 문명건설에만 몰두해온 우리 인간들이 이제는 뭔가를 비워두고, 거꾸로 가려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한시 ― 이 태백의 장진주사
돈키호테 ― 이 태백과 유사하다. 발랄하고, 과장되고
햄릿 ― 두보와 유사하다.
Let it be를 부르며.
스스로 그렇게 사는 지혜를 잃음.
When we parted, we'll meet again.
제27강 : 선비정신과 노자
法身: 그가 전달한 진리의 체계
色身:역사적 실존인물로서의 부다(Buddha) ― 물질적 근거를 가졌다는 의미
石身, 化身, 報身
싯다르타는 원래이름이고 붓다는 깨달은 자란(the Enlightened) 보통명사
TV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은 나의 色身은 보지 못하고, 영상을 보고 있다. 그러니 내가 전하는 진리의 체계만 남는다. 이번 연휴(신정)에 한 음식점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그런데 그 여자는 TV에서 나를 보았다고 수다를 떨며, 나에게 맥을 짚어달라는 둥, 악수를 신청하는 법석을 떨고 있다. 그러나 또한 여인은 길을 가다 가볍게 목례를 하면서 '스스로 그러하다고 한 가르침 감사했습니다'라고 했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나는 인기인이 아니다. 나의 얘기는 한마디 한마디가 30년 이상 숨어서 공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이며, 나는 밀집된 정보를 젊은이들이 이어받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소리 없는 선비들의 숨결이 이 나라를 지켜온 것이다. 인기인들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은 강의를 하려면, 짱아치가 되어야 한다. 고전이란 항아리에 푹 담겨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가 朝鮮이란 칭호를 쓴 것은 明나라 왕 朱 元璋(1328-1398)으로부터이다. 그로부터 元이 明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원나라 말기는 극도로 혼란했다. 몽고인들이 들어와 漢族을 9번째 등급으로 격하시켜 노비취급을 했다. 과거제도는 전폐되고, 선비들은 시골로 도망을 갔다. 그러다 보니 원나라 때 학문이 보편화되고, 元曲이란 경극이 생기고, 文言一體(즉 言文一體)가 일어나서 白話운동이 일어난다.
明의 주 원장은 그의 출처가 애매해서, 함경북도에 가면 그가 한국사람일지도 모르는 설화도 있다. 그는 거지출신이었다. 당시에 백령교란 종교가 있었다. 그것은 조로아스터교, 불교, 마니교 등이 혼합된 종교로 明敎라고 불렸다. 그런데 주 원장의 초상화는 엇갈리는 두 개의 형태가 있다. 하나는 매우 인자한 모습의 얼굴을 가졌고 다른 하나는 흉악무도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재상제도를 폐지하고 과도한 중앙집권통치를 했다. 그가 죽을 때 왕위를 손자인 建 文帝에게 물려주었는데, 그의 삼촌 중에서 북경지방을 통치하던 燕왕이 있었다.
명의 수도(건문제)는 남경지방이었다. 연나라 왕이 건 문제를 쳤을 때, 그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그것이 建文帝遜(?)國傳說로 남아있다. 연왕(성조, 영락대제)이 남경을 칠 때, 方 孝孺(1357-1402)라는 金華학파의 학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하 도연이 방 효유를 죽이면 천하의 학문의 씨가 마를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다 죽여도 방 효유를 죽이지 말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연왕이 남경을 치고, 격문을 써야했는데 방 효유가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격문을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자, 그는 燕賊簒位(연적찬위)라고 휘갈겼다.
연나라 도적이 왕위를 찬탈했다라고. 이러자 그의 목을 치고 10족을 멸하여 총 873명의 목을 쳤다. 이러한 일로 명은 망한다. 鄭和는 明나라 초기의 대 항해자 이었다. 정화의 함대는 62척으로 이루어진 함대로서 1척당 448명이 탔고, 1405년 건 문제를 찾으러 아프리카까지 7차례나 출범하였다. 에디오피아도 갔다. 건 문제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영락대제가 보낸 것이다. 어떻게 그 당시에 그렇게 엄청난 함대를 보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컬럼버스가 미국에 갈 때도 그렇게 엄청난 함대는 아니었다. 어쨌든 명나라는 이 사건으로 인해 지식인들이 협조를 안했고, 반 지식인적인 왕조가 되어 다시 청나라에게 망하고 만다.
周遊列國이란 말이 있다. 선비들이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자기 뜻을 펼치려 한 것이다. 맹자가 하루는 그가 거느리는 20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양혜왕을 찾아간다. 그러자 왕혜왕이 묻기를 그대를 받아들였을 때 우리에게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라고 말하자 맹자는 何必曰利(왜 利를 말하는가?)라고 말하며 仁義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이것이 선비의 배포요 이것이 선비정신이다.
利를 말하는게 아니라, 도덕성의 구현, 仁義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존재이유요 이것이 유교문화의 선비정신이다.
정도전이 이방원을 도와 조선의 기틀을 다지자, 결국 이방원은 정도전을 죽인다. 그러나 정도전은 어서 죽여라, 그러나 내가 만든 틀 속에서 살 것이라고 했다 한다. 정도전이란 色身은 사라졌으나, 그의 法身은 살아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법신의 문제다. 그러니 나의 色身을 괴롭히지 말라. 오로지 法身의 문제다.
제28강 :청춘과 깨달음
덕담을 해야될 것 같다.
젊음이란? (방청석의 한 학생) 살아있는 것을 깊이 느끼는 것
The deepest definition of Youth is Life as yet untouched by tragedy. 젊음이란 비극에 물들지 않은 생명 ― White Head. 72세 때 「The Adventure of Idea」관념의 모험이란 책에서 갈파함.
方 東美 ― 남경 중앙대 교수. 1937년 일제의 총성 속에서도 The Chinese View of Life를 라디오를 통해 강의. 거기에서 그는 乾坤一戱場 人生一悲劇이라 설파했다. 천지는 dramatic하나 인생은 비극투성이라 했다. In youth, despair is overwhelming. 절망이 넘치는 것이 젊음이다. 젊었을 때는 모든 게 답답하고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러면 왜 젊음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가? 그것은 The memories of youth are better to live through than is youth itself.하기 때문이다.
청춘은 희노애락에 대한 반응이 전폭적이어서 절망이 닥쳐도 그것을 절망으로 느끼지 않는다. Youth is distinguished for its whole-hearted absorption … .
청춘은 또한 아름다운 것에 민감하다.
Youth is peculiarly susceptible to appeals for beauty of conduct.
행동의 미에 대해 감수성이 강하다.
아름다움의 발견이 바로 해탈이다. 젊음은 문학작품이나 다른 무엇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발견해내고 그것에 무조건 헌신하는 순간 거기에 평화가 깃든다. 젊음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거기에 몰두한다.
우리의 역사는 다시 젊어져야 한다. 나는 色身은 늙어져도 法身은 영원히 청춘으로 살고 싶다.
깨달음.
禪宗은 당나라 때 생긴 것으로, 그 이전에는 교학 불교가 성행했다. 이 교학 불교는 인도에서 나온 것이다. 인도인들은 말을 어렵게 한다. 말이 많다. 간단한 것도 복잡하게 말한다. 독일의 관념철학도 마찬가지다. 쉬운 것도 어렵게 말하는 것이 그들의 특성이다. 프랑스나 영미는 조금 나은 편이어서 가볍게 touch할 줄을 안다. 그러나 독일의 관념철학가들, 예를 들어 칸트의 경우 그렇게 쉬운 것을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존경스럽게 할 정도다.
그런데 唐나라 禪師들은 교학의 대가들이다. 그러니까 불립문자를 말할 때 위대해 보이지,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
禪은 깨달으면 그만 아니냐, 경전은 무슨 경전이냐는 태도이다. 그러니 극단적으로 말하면 反佛敎다. 不立文字(학문으로 불교를 말하지 말자)의 세계를 추구한다.
혜능 ― 광동구 남쪽 조계산에서 선을 시작했으며, 두 제자가 있었는데 하나는 청원행사요 다른 하나는 남악회악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각각 德山방과 臨濟할의 제자의 제자들을 둔다
선종 ― 고려말부터 들어옴
우리나라는 태고보우(1301-1382)가 원나라에 유학가서 임재선사의 계보가 들어왔다.
북방쪽 사람 덕산 ― 사천성 사람 ― 매운 걸 잘 먹는다.
― 戒律에 능함.
― 금강경의 대가 ― 별명 주금강
청룡소초는 금강경의 해설책
南方마子
敢言直指人心 見性佛性 감히 하루아침에 사람의 마음을 알고, 곧바로 견성하면 성불한다고 하니 滅其種類 이들의 씨를 말리겠다고 호언하며 용담스님이 있는 용담사에 간다.
빈대떡
점심 ― 중국말 點心 ― 마음의 불을 일으킨다
간식의 의미. refreshments.
촛불킬 때 點火 ― 불을 일으킨다.
施與點心 도올의 금강경 319쪽에 나타나 있음.
一體洞觀分: 갠지스강의 모래 숫자만큼 갠지스강이 있고, 그 강의 모래들만큼 사람의 마음이 각각 다르다.
過去心 不可得 과거의 마음은 얻을 수 없고
現在心 不可得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未來心 不可得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네
하면서 빈대떡을 부치는 할머니가 묻는다.
未心上座點那個心? 위와 같은데 너(덕산)는 지금 무슨 마음을 전하려 하는가?고 할머니가 묻는다.
pun: 같은 발음에 두 개의 다른 의미가 겹쳐있다. 點心은 빈대떡과 마음의 의미로 쓰임.
깨달음을 주십시오, 내 마음의 불을 주십시오 하고 덕산이 매달리는 순간 깨달음(촛불)을 준다. 그런데 용담은 그 촛불을 꺼버린다. 그 의미는 깨달음이 있다는 네 마음의 생각 그 자체를 없애는 순간이 득도에 이르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29강 :해석학적 3대 기원설 (상)
동, 서양의 구분은 매우 협소한 개념이다. 21세기에는 동, 서양이란 말을 없애야 한다.
서양 ― Latin West ―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고
동양 ― 한자 문화권: 중원중심의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월남(오월동주하는 월의 남쪽이란 뜻) ― 일본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그러나 한자 문화권처럼 지속적인 문명이 없었다. 마야, 잉카문명을 보아도 그렇다.
그래서 살펴볼 가치가 있으며 역사이해의 중요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노자」 ― 재미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의 체험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해석(interpretation)이다. 고전의 역사는 해석의 역사이다. 고전은 반드시 해석되어져야하기 때문이다.
법도 마찬가지로 판사마다 해석이 다르다. 따라서 그것을 판례로 남기며, 이것이 성문의 법보다 더 중시되고 있다. 이것에 의해서 법질서가 유지된다.
공자의 시대엔 고전이 없었을까? 있었다. 그것이 바로 詩, 書, 易經이다. 그런데 공자는 述而不作(I am a transmitter, not a creator)라고 하면서, 나는 과거의 경전들을 해석했을 뿐, 창조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위대성은 바로 述을 통해 作을 한 것에 있다. 남들이 돌보지 않던 경전들(사, 서, 예, 약, 역, 춘, 추)을 정리 해석했다.
나에게는 과거란 없다. 나에게 있어서 과거는 모두 현재일 뿐이다.
우리 나라의 사서삼경은 조선조 유생들의 과거시험 과목이었고, 주희(주자)(1130 - 1200)가 주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서의 논어, 맹자는 독립된 경전이나, 대학, 중용은 예기의 끝 부분 두 chapter에 불과하다.
중국인들은 十三經이라 한다. 시, 서, 예기, 역, 춘추경, 효경, 이아 등.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는 그 중 6경의 기초를 닦았다.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서 공부하던 공자는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6경이 기초가 되어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한다. 진시황은 정이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呂不韋란 자가 자기의 애첩에게 애를 배게 한 뒤 귀향 나온 왕족에게 시집을 보내어 난 아이가 다시 왕실에 들어가 왕이 된 사람이다. 그렇게 출생한 진시황은 공자의 仁義를 가지고는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韓非子(그의 이름은 非요 한나라 때의 사람이란 뜻)를 통해서 법중심의 사회질서를 바로잡으려 한다. 法家의 한비자는 法 중심의 사회질서를, 공자는 禮 중심의 사회질서를 꿈꾸었다. 그러나 진시황은 국가 질서를 잡고나자, 다시 공자의 유가가 법가보다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공자는 다시 높아진다. 즉 罷黜百家 獨尊儒述(?)하게 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유교만 존경하게 된다.
조선조 이 방원이도 조선의 체계를 세운 정 몽주를 죽이지만, 나중에는 그 반역신을 백성들로 하여금 높이 숭상하게 한다. 정 몽주처럼 우리 왕조에 충성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선비는 죽어도 영원히 사는 게 선비이다.
그러나 진나라는 焚書坑儒(진시황 34년, 213 B.C.)를 단행한다. 이유는 온갖 이론들이 자신의 통치를 괴롭힌다고 판단해서이다. 後漢의 鄭玄(127-200)과 같은 대표적인 경학자들이 이때부터 쏟아져 나온다. 왜냐하면, 분서갱유후 13경을 가지고 올 때, 두가지 형태로 가져왔다. 첫째는 죽간 ― 古文 ― 벽장 등에 보관했던 책, 다음으로 머리속에 암송했던 경우 ― 今文 ― 그당시 문장으로 재구성된 경전.
그리하여 삼, 사 백년동안 금고문 논쟁이란 싸움이 벌어지면서, 학문의 발달을 가져온다. 한 대(항우와 유방의 사면초가도 이 때 나온 말로, 항우가 사면초가로 죽고 유방이 한고조가 된다)에 경학이 발전한 이유도 거기 있다. 합치면 제국이 되고, 깨지면 틈새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 때 불교가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게 된다. 한나라 이후 삼국시대가 되고, 다시 위진 남북조의 시대가 되면서 불교가 대거 유입된다.
황하문명과 인도문명이 파미르고원을 가로질러 교류가 일어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의 석굴암은 알렉산더대왕 ― 간다라 미술 ― 돈황(중국) ― 고구려 ― 신라를 통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이다. 당시엔 바위에 새긴 불상만 있었으나, 석굴암과 같은 상은 희랍조각에서 온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불교 ― evangelism(복음주의)
염주의 알은 그렇게 오래 가지고 다녀도 뿌리면 싹이 돋는다. 따라서 전도를 가던 불자가 보리수나무를 보면 묵념을 했다고 한다.
중국은 노장철학을 통해 불교를 이해함 ― 당나라의 통일제국이 신라문화에 영향을 끼침. 우리 나라의 해당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유교와 불교가 이렇게 깊게 결합된 적이 없다. 중국의 천재들이 불교에 심취하게 됨. 이는 유례가 없는 문명의 대 교류이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은 인도문명을 창조적으로 왜곡하게 된다.
the art of deliberate misunderstanding.
화엄종 ― 북방불교 ― 한국에서 성행
천태종 ― 남방불교 ― 일본에서 성행
중국 ― 뜻글자 ― 운문 ― 상형문자
인도 ― 소리글 ― 산문 ― 알파벳 언어
우리 나라는 신학이 없다. 독재 정권 하에서 민중신학이 나타나다 사라짐.
禪은 중국인의 시적 영감(poetic inspiration)으로 되돌아 감.
제30강 : 해석학적 3대 기원설 (하)
老莊사상이 없었더라면, 불교는 중국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涅槃 nirvana: 끄다, 억제하다, 그치게 하다의 의미. 그런데 이것은 滅(멸)의 의미. 열반은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와같은 음역이 채택된 것은 이런 의미를 전달하는 번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無爲였다. 즉 열반을 처음에는 무위로 해석했다. 열반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노장철학의 언어적 틀을 빌어 해석했다. 이것을 格義라 한다.
불교가 서서히 중국인들의 poetic inspiration으로 들어감. 이와같은 불교가 唐나라 때 지나치게 융성하여 불교를 지겹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宋에 오면서 排佛思想이 나타난다. 조선왕조의 排佛思想도 마찬가지다. 고려말 정도전도 排佛論을 편다.
주렴계
소강절
정령도 정이천 ― 주자: 불교에 찌든 중국인들의 문명의 틀을 바꾼 사람
장횡거 ― 王夫之 ― 도올
불교는 초윤리적(trans-ethical)이다.
유교는 세속적 윤리(secular ethic)
합리적 종교(rational religion) ← 세계의 고등종교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맥아리가 없다 ― 아침, 저녁으로 인사 잘하라든지
공자: 務民之義 敬鬼神而猿之
(하느님의 세계는 공경하되 멀리하라. 그것이 백성의 바른 길이니라)
불교: 一切皆唯心造 (일체는 모두 오로지 마음이 지은 것이다)
공자: 未知生, 焉知死?(사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논어「선진」편)
위와 같이 불교는 초월적인 인식론, 형이상학이 있었던데 비해, 유교는 그런 인식론이 없었다. 그에 상응하는 형이상학적 인식론이 바로 理氣論이다. 이것은 이전의 유교에는 없었으나 주자가 만들었다. 즉 송 대에 들어 유교경전을 다시 해석해가면서 유교철학을 만들었으니 理氣論이 바로 그것으로 이것이 송 대의 패러다임이 된다.
서구문명에 찌든 세상을 김용옥이 노자를 가지고 바꿀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선 노자의 말을 설득력 있게 해석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주자는 유교의 13경전 중에서 대중적이고, 이론적 깊이가 있는 것으로
論語(제자들과의 상황상황에서의 얘기),
孟子(논재의 도사, argument 즉 쌈꾼으로 비유도 싹 쳐가면서. 오십보 백보니 성선설 성악설이 모두 여기서 나옴)
大學, 中庸은 모두 예기의 한 chapter들이다. 여기서 주자는 대학을 최고로 침. 도올은 주역을 도올의 처는 시경을 전공. 하지만 도올은 중용이 더 맘에 든다.
위의 네 가지를 四書라 함. 따라서 고려시대 또는 신라시대에 사서를 했다고 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이다. 그 때는 사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용: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그것이 발해서 들어맞을 때,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중용:
天命之謂性 하늘이 명령한 것이 본성이오
率性之謂道 나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 나의 길이요
修道之謂敎 나의 길을 닦는 것이 나의 배움이다.
주자의 사서운동은 신유학(Neo-confucianism)이라 불림. 우리 나라는 고려의 안향이 들여옴. 정도전이 이조의 국가 틀을 잡을 때 사용함.
한편 주자는 유학자이나, 불교를 잘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주자학도 불교사의 맥락 속에서 분석되어야 함.
당 문명
周公 → 공자의 述而不作 → 불교가 들어오면서 깨짐
The first Hermentical Epoch 불교가 유교를 대신하면서 금고문 논쟁후
(해석학적 제 1 기원) 불교의 대장경이 만들어짐
Han Civilization 그러나 불교는 외래문화(exogenous)
● 완전은 불완전보다 하위개념이다.
→ 宋(주자학이 지배) → 明 →
주자의 四書集注 주자학에 대한 반동
주자학 양명학(왕 양명: 유교의 윤리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제 2 해석학적 기원(혁명)
주자학 → 格物致知(사물의 이치는 경험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양명학 → 良知良能(사물의 이치는 인간 본래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주장)
● 주자학은 士大夫(선비)철학이요, 요즘으로 말하면 공무원 교육철학이다. 왜냐하면 선비는 문명을 다스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 주자학의 패러다임 속에서 조선문명이 성립됨
● 양명학은 유교의 禪이다.
● 조선은 왕명학과 노장사상을 탄압한다. 이는 주자학 일변도로 나가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 사상이 無爲나 엄격한 유교적 윤리에서 해방을 의미하다보니 주자철학을 바탕으로 통치하고자 하는 이념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 淸(1616 - 1911) 자금성 개축
건륭황제 (오랑케- 만주족)
외부왕조는 초기엔 건실했다
고증학: 實事求是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함
그러나 청 말기까지 주자학적 패러다임으로 간다
서양문물에 의해 700년의 신유학 패러다임이 깨진다.
● 서양은 동양역사 전체의 해석학적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제 제 3 해석학적 기원은 오고 있는가? 20 세기의 혼란이 사라지고 제 3의 해석학적 기원이 오고자 하면, 서양을 알아야하고 동양문명을 다 먹어서 이거다 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제 31 강
아인쉬타인(1879-1955)과 나의 박사학위
아인쉬타인이 Time지 세기의 인물에 왜 올라갔겠는가? 정당한 이유가 있다.
동양인들이 발견한 측우기, 활자, 화약, 도자기는 모두 삶의 기술(Art of Living)이었다. 화약은 폭죽으로 노는데 밖에 안 썼다. 그러나 서양은 그것으로 대포를 만들어 동양을 지배하는데 사용했다. 여기서 대포를 만들고자 하면 포물선 공식이라는 원리가 들어가야 한다. 만유인력의 법칙, 상대성 이론, 불확정성의 원리(하이젠베르그)와 같이 법칙, 이론, 원리를 발견했다.
이와같은 원리적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인류를 지배한다.
컴퓨터가 별 볼일 없는 것은 원리, 이론, 법칙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1564-1642)는 천동설(heliocentric theory)를 지동설(geocentric theory)로 바꾸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천동설 감각 속에서 산다. 한편 지동설도 맞지만, 천동설도 맞다. 이 세상에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동설은 간단히 천체를 설명하는데 맞아떨어지나, 천동설로 설명하고자 하면 너무 복잡해진다. 지동설이나 천동설이나 결국은 같을 수 있다. 다만 천동설은 이태리 교황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받쳐주기 때문에 교황청의 권위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철학자 부르노는 지동설로 처형되었고, 과학자인 갈릴레오는 석방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다.
교회의 권위가 결정타를 준 것은 다름 아닌 과학자들이다. 이 세계를 변혁하는 것은 국부적인(local)한 것으로는 안된다.
대학에 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있는데, 修身, 齊家, 治國까지는 보통사람들이 할 수 있으나, 평천하는 오로지 선비만이 가능하다. 즉 학자를 키워야 한다. 세계를 뒤바꿀 수 있는 법칙, 이론, 원리는 오로지 학자들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명의 모든 방향이 날로 날로 얄팍해져만 가고 있다.
해돋이 행사에 나와달라는 둥….
서구는 고전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자유로운 교육 curriculum에도 불구하고).
나 도올은 지난 세기 마지막 품격을 갖춘 교육을 받았다. 일본에서, 중국에서 그리고 하버드에서. 품도 있는 대가들의 교육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Benjamin Sohwalz (슈왈츠) 교수. 유태인으로서 아인시타인과 외모가 같았다.
하버드대 傲氣로 갔다. 그런데 슈왈츠 교수가 朱子語類를 강의하더라 우리시대의 감각을 가지고. 그런데 슈왈츠의 강의는 객관화하니까 더욱 재미가 났다. 한문문화권은 우리가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을 깨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사람이 희랍어를 완벽하게 한다면 이상하지 않다(?)
36세까지 사회에 나타난 적이 없다. 그 때까지 공부만 하다보니까 공부가 싫은 게 아니라, 내가 뭘 하는지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했다. 미국에서는 급성간염에 걸려 열이 40도까지 올랐으나, 보리차만 마시면서 1982년 2월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20일 동안에 하버드의 논문을 씀.
제자들을 씨가 보이면 키워야하며, 못살게 구는 게 할 일이 아니다.
대가들의 이런 모습(괴롭혔던 스왈츠 교수가 자신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온 것)을 생각할 때 위대한 스승의 모습이 뭔가를 보여준다.
한문의 세계도 뭔가 보편적인 틀 속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인물을 키우고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
제 32 강
天長地久와 제비
동양인의 천지관(cosmology): 天과 地를 고유명사로 파악하는 중국인의 독특한 우주론. 天圓地方說. 天覆과 地載 그리고 그 사이에 만물이 있으며 인간은 그 중에 가장 영물이다. 그래서 天地人의 3才가 존재한다.
人間은 사람이란 뜻으로 일본인들이 만든 말이다. 왜 사람 人만을 쓰지 않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사이 間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人)은 사이 (間)의 복합체다. 고립된 개체란 있을 수 없다.
동양인들에게 있어서
하늘 ― 움직인다 ― 動 ― 시간의 변화 ― 시간을 전제로 한 것이다.
땅 ― 공간 ― 靜
인간, 시간, 공간이 3 間이 존재한다.
즉 나 인간 속에는 항상 시간과 공간이 있는 것이다.
시간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변화를 인식하는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인식의 틀이다. 변화와 변화사이를 설명하는 게 시간이다. 즉 시간은 없다.
시간, 공간 인간은 서로 관계돼있는 term이다.
시간적 세계 ― 하늘 ― 보편적(locality를 초월하는 세계)
공간적 세계 ― 땅 ― locality 국부적 세계
天(시간) 長(너르다― 공간개념) 地(공간) 久(지속 ― 시간개념)
여기서 시간과 공간을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소박한 형태로 아인쉬타인의 이론을 보여주고 있다.
천지가 장구해야 하고 장구하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가치를 가지고 산다.
동양에는 불변사상은 없다. 지속되고 있을 따름이다.
휴거는 오는가? 온다. 그것은 50억 만년 뒤다.
믿어야 할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天地이다.
동양인들에 있어서 天은 대기권으로 지구 생명 공동체 권을 말한다.
天은 氣요 따라서 天氣는 biosphere인 것이다. 또한 地는 血이다. 여기서 생명이 탄생하고 죽는다. 오직 하나뿐인 지구(Only One Earth)를 살려야 한다.
global consciousness를 가지고 있다.
지동설의 폐해가 크다. 지구를 다 이용하고 다른 행성으로 가겠다는 식이다. 그래서 천동설이 다시 부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가 중심이 되어야 하니까.
요즘 청소년들의 가상세계는 사실 보잘 것이 없다. 희랍인들만큼 풍부한 가상세계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신화를 생각해 보라.
하늘이여 땅이여 영원하여라. 시간이여 공간이여 영원하여라.
所以: 까닭, because 能: can, 且: 또는, 久者: 오래갈 수 있는 것
천지: 하나님
以(because)其不自生 자기고집에 따라 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지는 자기고집에 따라 生하면 안 된다. 희로애락의 대상이 아니며, 천지는 不仁하다.
故能長生 고로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시간 ― 영원한 지속, 변화의 상태가 지속된다(permanent)는 의미다. eternity를 쓰면 적절치 않음.
새로운 각성 a new awareness가 필요하다.
제 33 강
大鵬과 王弼注譯
장자의 첫 부분에 보면 逍遙遊(loitering, wandering)가 있다.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은유적으로, 설화적으로 풀어놓았다. 北溟有魚其名爲鯤이라 적혀있다. 鯤이란 명태 알보다 작은 알이 커서 대붕이 된다. 그 대붕은 水擊三千里, 博扶搖而上者九萬里라 적고 있다. 한번 물을 치면 삼천리, 그리고 넓은 바다를 한번 날면 구만리를 간다고 했다. 그런데 참새는 날아가는 대붕을 보고, 뭣 때문에 저렇게 멀리 나는가 고 비웃었다 한다. 위진남북조 시대 이걸 가지고 상대성 비슷한 논쟁이 나온다.
참새의 말도 정당하다. 그러나 역시 인간의 정신의 소요는 엄청난 거리를 날 수 있는게 역시 인간이다. 젊음의 특징은 무한한 야망을 갖는 것이요, 무한히 멀리 나는데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 조식(1501-1572)은 호를 南溟이라 했는데 이것은 남쪽 바다란 뜻으로 그 학식의 됨됨이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천지는 不自生 즉 not arbitrary하다. 자기고집대로 몰아가지 않기 때문에 長久하다. 천장지구 즉 천지는 우리의 영원한 근원이요 장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佛家(대승불교)에서는 不自性이 되었다. 不自性은 바로 空이다. 空은 빈 것이 아니요, 모든 존재하는 물체는 자기로서의 self-identity가 없다. 즉 空하다. 순간순간 변한다. 자기 동일성을 영원히 지킬 순 없다. 물론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 때문에 그 동안만 사용을 하기는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변한다. '나'라는 존재는 自性的(arbitrary)인 存在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五蘊(색, 성, 향, 위, 촉)의 假合이다.
노자는 Sein(존재:사실)과 Solle(당위:가치)가 이원화되지 않는다.
이것을 서양에서는 비난한 바 있으나 요즈음 사실이 곧 가치가 되어가고 있음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그러므로 성인은 그 몸을 뒤로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몸이 앞서고
是以 聖人 後 其身 而 身 先
therefore 주어 타동사 목적어 오히려 주어 자동사
外其身而身存
그 몸을 밖으로 하기(희생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몸이 보존된다.
外 其身 而 身 存
타동사 목 오히려 주 자동사
위는 後其身하기에 오히려 저절로 그 몸이 앞서지, 그 몸이 앞서기 위해 後其身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兵家術數에 해당한다. 또한 外其身하기에 그 몸이 보존되지, 그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아니다.
병가란 무엇인가? 그 몸이 앞서기 위해 (後其身)그 몸을 뒤로하고, 그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 그 몸을 밖으로 하는 것이다. 서시봉심은 傾國之色의 일화를 말하고 있다. 몸을 앞세우기 위해서 후기신하는 예이다. 또한 모택동 전법이 되었다. 모택동은 노자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後其身이나 外其身은 절대명제인 것이다.
장자에
得魚而忘筌也(고기를 잡으려면 그 고기를 잡은 그물을 버려야하고)
得免而忘蹄(토끼를 잡으면 그 올가미를 버려야 토끼를 잡는다)
得意而忘象(그 뜻을 얻으면 그 symbol(괘상)을 버려라) 이것이 인간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만 알면 된다. 한 대의 경학들을 통렬히 비판하는 것이 된다.
功不可取, 美不可用 공이라 하는 것은 취할 수 없는 것이요, 아름다움이라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쓸 수 없다.
周易: 陰爻와 陽爻가 있다. 음효 - V -는 여성의 성기를 양효 ―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효마다 짧은 경구가 있고, 총 2 X 2 X 2 X 2 X 2 X 2 = 64개의 卦가 있으며, 각 괘는 6개의 효 가 있으니까 총 384개의 효가 있다. 이걸 가지고 우주 전체의 모습을 설명하려 했음.
주역은 필연적인 요소 하나도 없다. 오로지 우연적인 요소만 있음.
조조시대의 사람인 왕필은, 주역의 상수학을 거부하고, 한 대의 경학을 사그리 비판하고 있다.
노자사상은 중국역사에 있어서 정면(진리)와 배면(전술)이 된다. 모택동은 탁월한 전술전략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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