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명가

Fact/여행-음식 · 2009. 12. 1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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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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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래옥

■ 강점
우래옥家는 창업부터 최근까지 강북의 불고기 패자로 군림해왔다. 더불어 시운도 타고 났다. 60년대, 을지로에서 어깨를 겨루던 4개(우래옥, 새마을, 서래관, 황금정)의 대형음식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만 봐도 그렇다. 우래옥은 불고기의 영원한 친구인 냉면 분야에서도 고유의 ‘평양냉면’을 내세워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위기 때마다 우래옥 냉면은 불고기와 함께 3세대를 풍미했다. 앞으로도 두 메뉴간의 시너지 효과는 클 것 같다.

■ 약점
아직까지 강력한 패밀리를 구축하지 못했다. 2대 오너인 장진건(86) 씨는 주로 미국에 거주하며 미국 분점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남은 대치동 우래옥을 운영하고 있으며, 본점은 둘째딸이 맡고 있다. 이처럼 산재한 매장, 흩어진 패밀리를 하나로 묶을 확실한 보스가 없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특히 2대와 3대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보인다’는 입소문은 100년을 꿈꾸는 명가로서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한일관

■ 강점
한일관家는 40년 전에도 직원 60명의 중소기업 규모였다. 현재 90명 직원들의 친화력은 3곳 중 으뜸으로 자타가 인정한다. 2009년 청진동재개발 바람을 타고 강남에 안착했으며, 이 바람을 타고 자본력이 오히려 건실해졌다. 현 압구정 업소 건물매입 비용으로 200억, 인테리어와 설비·자재에 50억이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넉넉한 자본을 바탕으로 오직 등심만을 쓰는 전략이 계속된다면, 확실한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자매의 우애도 좋다. 언니인 김은숙 사장은 대외적인 경영에 나서고, 동생 김이숙 사장은 영업·직원 관리를 맡고 있다.

■ 약점
한일관은 지난 1월 강남으로 옮기고 난 후, 아직까지 2008년 종로 시대의 매출 규모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좌석수가 100석 정도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이라지만, 엄청난 금액의 투자비를 따진다면 불안한 형국은 아니라고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압구정 일대는 삼원가든·강서면옥·한우리 등 강력한 라이벌들이 즐비하다. 종로호랑이가 강남호랑이로 거듭날 것인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사리원

■ 강점
사리원家는 한일관·우래옥보다 불고기판에 뒤늦게 가세해 명성은 미천하지만, 현재 불고기 설비자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신포 로스터 공급권을 확보하고, 불판의 새로운 주물 등을 개발해 불고기 식문화를 주도하는 입장이다.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토목학을 전공하고, MBA까지 취득한 라성윤 사장의 경영 솜씨가 빛을 발한 듯. 여기에 시운까지 따른다. 서초동 매장 바로 앞에 유동인구 수만 명 규모의 삼성타운이 들어선 것이다.

■ 약점
국내에서도 로스터 분야의 연구가 활발하다. 값싼 국산 로스터가 등장할 경우 독점적 위치는 가변 요소다. 신세대 사장의 경영 감각이 매번 착착 맞아떨어질 지 미지수다. 게다가 다른 음식점업주와의 원활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큰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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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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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 위치:서울시 중구 신당동
- 창업년도:1953년
- 특징:현대식 떡볶이의 원조집이다. 현재는 고령(89)인 할머니 대신 며느리들이 운영한다. 즉석떡볶이만 판다. 소스 재료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고춧가루에다 물엿, 후추, 마늘, 깨, 복합조미료 등이 들어간다고 한다. 물엿과 설탕은 과거의 반정도 밖에 넣지 않는 대신 양파로 단맛을 낸다고.

- 맛:맵지않는 대신 뒷맛에 단맛이 난다.

- 떡의 종류:쌀과 밀가루의 비율이 9대1정도 된다

- 가격:2000원



도널드

- 위치:부산시 영도구 영선동
- 창업년도:1984년
- 특징:고추가룻물 소스이다. 주인 김은자씨는 매일 아침 일찍 새우 등 각종 해물을 넣은 육수를 2시간 가량 끓인다. 그리고 경북 의성산 고춧가루와 물엿, 설탕을 첨가한다. 비율은 1대1.5정도이다. 화학조미료는 넣지 않고 복합조미료만 쓴다고. (복합조미료에도 화학조미료가 10%정도 들어있다)라면 사리도 반쯤 삶아서 낸다. 즉석 떡볶이.
- 맛:살짝 단맛이 난다. 초등학교때부터 단골이었다는 고교생 최수정씨는 "맵지는 않지만 그렇게 달지도 않는 것이 이 집 맛의 특징이다"라고 밝혔다.

- 떡의 종류:쌀과 밀가루의 비율이 9대1이다.

-가격:1200원.



다리집

- 위치:부산시 해운대구 남천동
- 창업년도:1983년
- 특징:주인 정상식옹(67)이 한달에 한번씩 담그는 고추장을 사용한다. 국산 고춧가루에 메주가루와 참깨 등을 넣는다. 단맛을 내기위해서 설탕과 물엿을 넣는데 비율은 약 1 대 1.1정도이다. 2시간 가량 저어면서 끓인 후 식혀서 저장한다. 이 집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떡이 가래떡 만큼이나 굵다는 점이다. 길이는 13cm정도 된다. 그래서 주문을 하면 가위를 함께 준다. 또 이 집은 가래떡을 미리 오뎅을 삶는 물에 익혀서 나온다. 소스를 손님들에게 판다.
- 맛:처음에는 단맛이 나지만 마지막에는 메운 맛이 난다. 매운 맛은 마복림 할머니 집보다 덜하다. 대학생 김수현씨는 "달지 않고 떡이 쫄깃쫄깃해서 찍어 먹기에 딱 맞다"고 평가했다.

- 가격:2300원



윤옥연 할머니 떡볶이

- 위치:대구시 수성구 신천시장내
- 창업년도:1974년
- 특징:매운 대구 떡볶이의 원조이다. 소스는 고추장이 아니라 다데기 양념장 같다. 고춧가루에 물엿과 후추 등을 넣고 비빈다. 다른 첨가물은 영업 비밀이기에 절대로 가르쳐줄 수 없다고 한다. 윤옥연 할머니가 하루에 한번씩 새벽에 만들고 조금씩 덜어서 사용한다.
- 맛:뭐 이런 것을 다 먹냐라고 표현할 만큼 맛이 정말 이상하다. 처음엔 눈물을 쏙 빼도록 고통스러운 매운 맛이 난다. 두어번 먹으면 바로 중독이 되어서 마약 떡볶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떡의 종류:100% 쌀떡이다.

가격:1000원



상국이네집

- 위치:부산 해운대구 해운대시장입구
- 창업년도:1980년
- 특징:소스는 주인 김상국씨가 직접 2~3일마다 만든다. 재료는 비밀이라고 했지만 국산 고춧가루에 보릿가루 등 여려가지의 곡물가루를 넣어서 만든다고 한다. 설탕은 조금밖에 사용하지 않고 대신 물엿을 더 넣는다.
단 맛을 더 내기위해서 양파를 갈아 넣는 것이 이 집 소스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다고. 봄철에는 소스를 상온에서 3~4일 정도 숙성을 시킨 후 사용한다. 이집도 가래떡처럼 굵은 떡이 나온다. 벽에는 DJ DOC 등 연예인들의 사인도 많다.

- 맛:부산에서 먹어 본 떡볶이 중에 제일 달다. 양파 탓이라고 한다. 대학생 김미연씨는 "입에 착 달라붙는 단맛이 바로 이 집만의 특색이다"라고 밝혔다.

- 떡의 종류:100% 쌀로 만든다.

- 가격: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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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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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가지 채소·육회·전복이 비빔밥 고명, 함양집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빔밥집이다. 1924년 시작했으니 올해로 85년째다. 1대 사장 강분님(1998년 작고) 씨가 울산의 구 시가지인 중구 옥교동에서 비빔밥을 팔기 시작, 대를 이어오며 4대 사장 윤희(40)씨까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원래 자리에서 약 60년을 이어오다 83년 울산시청이 옮기자 지금의 자리에 새 둥지를 틀었다.

울산시 한 복판에 함양이란 이름을 걸게 된 것은 사연이 있다. 경남 함양 읍내 수동에서 여관을 하던 강분님씨가 울산으로 이주하면서 비빔밥집을 시작했다. 당시 이름은 함양관. 70년대 후반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함양집의 비빔밥은 다른 곳과 달리 납작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놋그릇에 담겨져 나온다. 고사리·콩나물·시금치·무나물·미나리·김·미역 등 17가지 채소에 계란 지단, 한우 함박살(엉덩이살) 육회, 그리고 전복 한 조각이 고명으로 오른다. 고추장과 참기름이 얹어지는 것은 기본이다.

첫 느낌은 부드럽고 촉촉하다. 진주 천황식당과 비슷하다. 천황식당의 포탕처럼 쇠고기를 곤 국물을 사용하는 까닭이다. 끝맛은 국물로 내놓는 탕이 결정한다. 쇠고기·무·홍합·조갯살·두부 등을 넣고 끓인 탕은 비빔밥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과 잘 어울린다.

함양집이 자랑하는 맛의 비결은 정성·손맛, 그리고 최고급 재료다.

3대 사장 황화선(62) 씨는 “시할머니(강분님 씨) 때부터 이어오는 전통이다. 할머니께서는 비빔밥에 잡곡이 들어가면 안된다는 지론에 따라 하얀 쌀밥을 고집했다. 한국전쟁 때에는 백미가 귀한 시절이었다. 이때에도 현미를 절구통에 찧어 백미를 만들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고명으로 올라가는 재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그 전통은 이어오고 있다. 밥맛을 결정하는 쌀은 10년째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 가져다 쓴다. 예전에는 울산 최고의 쌀집과 거래했지만 문을 닫는 바람에 거래처를 바꿨다. 고추장은 수시로 담근다. 찹쌀고추장에 된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는 점이 특징이다. 매운맛이 덜하고, 약간 구수한 맛이 여운처럼 입안을 맴돈다.
 
주인이 말하는 장수비결

특별한 비결은 없다. 굳이 꼽으라면 창업 때부터 이어오는 정직이다. 초기부터 고명으로 올리고 있는 전복이 좋은 본보기다. 단점에 불과하지만 가격을 따진다면 만만치않은 부담이다.

재료 선택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분님)할머니께서는 비빔밥을 내놓지 않을지언정 재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용납하지 않으셨다. 손님에 대한 불경이란 생각에서다. 이 또한 지금까지 이어오는 전통이다. 한 분의 손님이 찾으셔도 부담없이 드시고 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골 국물로 밥 짓는데만 3시간, 갑기회관

    
비빔밥은 라면과 더불어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메뉴다. 아니, 오히려 라면보다 대중적 음식이다. 분식집 뿐 아니라 고기를 파는 식당, 터미널이나 기차역사 안 음식코너 등 웬만한 음식점에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라 할 수 있는 명가는 많지 않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작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비빔밥은 먹기 편할지 몰라도 만드는 과정은 엄청난 정성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래도 이를 마다하지 않는 장인들이 있다. 이들은 평생 혹은 대를 이어 ‘혼을 담은 메뉴’를 내놓는다.

덕분에 비빔밥은 오늘도 진화 중이다. 전국적으로 자신있게 “이곳이 비빔밥의 명가”라 꼽으라면 번쩍 손을 치켜들 곳은 흔치 않다.

하지만 지역 특산음식으로 자리잡은 곳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전북 전주와 경남 진주다. 황해도 해주와 더불어 ‘조선 3대 비빔밥’으로 꼽히던 고장이다. 여기에 울산엔 4대를 이어 80년 동안 비빔밥을 내놓는 맛집이 있다. 직접 그곳들을 돌아봤다.

“밥맛 만큼은 전국 최고를 자부합니다.”
갑기회관(사장 김정옥·53·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의 밥맛은 특이하다. 꼬들꼬들하면서도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입안 가득 맴돈다. 이곳은 전통 가마솥을 이용해 밥을 짓는데, 물 대신 사골국물을 사용한다.

이는 전주비빔밥의 기원 가운데 하나인 궁중음식설을 뒷받침한다. 궁중음식설은 종친들이 궁에 들어갔을 때 수라 대신 비빔밥(골동반)을 먹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사골국물로 밥을 지었다는 문헌의 근거를 더했다.

사실 갑기회관은 전주 시내 6개 전주비빔밥 전문점 가운데 출발이 가장 늦다. 대부분 30년을 훌쩍 넘기는데, 이곳은 올해로 20년째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인정받는 이유는 특유의 밥맛 때문이다. 이 집의 밥물은 1990년 문을 열 때부터 사골국물이다. 김정옥 사장은 “우리집 비빔밥은 푹 우려낸 사골국물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요. 사골을 3시간 이상 고아야 하니 밥 짓는데만 다른 집보다 몇 배의 시간을 쓰는 거죠.”

김 사장은 전주비빔밥도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시에서 가격을 규제했기 때문이다. 맛과 질을 뒤로 한 채 낮은 가격에 팔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그 가격으로는 식재료 값도 맞추기 어렵다고 했죠. 그런데 당시 담당 공무원이 ‘그럼 몇 가지 재료를 빼면 되지 않느냐’고 답해 말문이 막혔어요.”

이렇게 힘든 시절을 보낸 전주비빔밥은 2002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다시 살아났다. 가격을 자율화 하는 대신 예전과 같은 맛과 질을 앞세워 전주비빔밥을 알리기로 한 덕분이다.

김 사장은 20년 동안 끊임없이 비빔밥 발전에 헌신한 요리연구가이기도 하다. 현재 이곳에서 내놓는 비빔밥도 그 노력의 산물이다. 김 사장은 비빔밥에 들어가는 27가지 재료 모두를 직접 조리한다.

“비빕밥 한 그릇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또한 전주의 문화도 녹아 있지요. 대중화보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고추장 맛이 독특하다. 달지도 맵지도 않으면서 알싸한 맛이 강하다. 매년 김 사장의 외갓집에서 담그는 고추장에 10여 가지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소스를 섞은 후 제철 과일을 갈아 넣는다는 것이 김 사장의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뒷맛이 깔끔하고 개운하다. 한 그릇에 1만원.063-212-5766.

주인이 말하는 장수 비결

비결은 밥맛이다. 엄선된 한우 뼈를 이용해 우려낸 국물로 지은 사골밥 덕분이다. 무쇠 가마솥에서 한 번에 40인분을 짓는다. 하루 다섯번 밥을 짓는데, 이틀에 소 한 마리 분량의 뼈가 들어간다. 사골밥은 밥알이 부서지지 않을 뿐 아니라 고소한 맛이 강하다. 고추장은 매년 순창 외갓집에서 직접 담가 공급한다. 여기에 10여 가지 과일을 발효시킨 소스를 섞어 비빔밥용 고추장을 만든다.



홍합·문어·쇠고기 넣는 보탕이 비결, 천황식당    


진주비빔밥은 전주의 그것과 조금 다르다. 바다가 가까워서인지 채소 위주의 전주비빔밥과 달리 해산물이 재료로 더해진다. 대표적 재료가 "보탕"과 "속데기"라고 불리는 돌김이다. 대신 채소는 7~8가지로 제한된다.

진주비빔밥은 비비고 나면 약간 촉촉한 느낌이 전해진다. 보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지방과 달리 진주에선만 쓰는 보탕은 천연 조미료 역할을 한다. 보탕은 마른 홍합과 문어, 쇠고기를 넣어 끓인 국이다. 그릇에 담긴 밥 위에 보탕 한 숫갈 붓고, 고명을 얹어 진주비빔밥을 완성한다.

이를 고스란히 전승한 곳이 천황식당(사장 김정희·55·진주시 대안동)이다. 시할머니부터 80년이나 됐다. 고명은 전주비빔밥과 달리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콩나물·숙주나물·무채·양배추·고사리·시금치·속데기·육회 등이 전부다. 여기에 철에 따라 미나리나 호박이 추가된다. 그리고 육회를 제외한 모든 고명은 데치거나 볶아서 사용한다.

이중 속데기가 눈에 띈다. 다른 지역에서는 쓰지 않는 재료다. 잘게 썬 파·깨 등과 버무려 간장으로 간을 맞춰 다른 나물과 함께 넣는데, 고소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입맛을 돋운다.

곁들여 나오는 선지국도 별미다. 맑은 콩나물국을 내놓는 전주비빔밥과 다른 점이다. 깔끔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식당 내부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건물은 한국전쟁 때 공습으로 무너진 곳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입구 문을 제외한 모든 창문과 식탁은 55년째 그 모습 그대로다. 툇마루를 통해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별채도 마찬가지다.

항아리 30여 개가 가지런히 들어선 장독대는 시할머니 때부터 이어온 보물이다. 그 안에는 매년 담그는 고추장·간장이 새록새록 숨을 쉬고 있다.

“여기의 장맛과 제 손맛이 버무려져 진주비빔밥이 만들어지고 있지요. 천연조미료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뒷맛이 개운하고, 갈증을 느끼지 않아요.” 김 사장은 20년 후면 100년을 채운다고 한다. 그 후 자신의 자식이 뒤를 이어 또다른 100년을 기약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주인이 말하는 장수비결

보탕과 선지국이다. 보탕은 우선 마른홍합·문어·쇠고기를 넣고 약 한 시간 끓인다. 이후 문어는 건져내고, 홍합과 쇠고기는 잘게 다져 다시 넣어 달이듯 자작하게 끓이면 된다. 선지국은 소의 내장을 푹 끓인 국물에 깍두기 모양으로 썬 선지와 콩나물을 넣어 다시 끓이면 완성된다. 이 국을 맛보기 위해 찾는 손님도 꽤 된다.

고추장도 빼놓을 수 없다. 밀과 콩을 삶아 2~3일 발효시킨 후 말린다. 고추장을 담글 때 이를 곱게 빻은 가루를 혼합한다. 이렇게 하면 색깔은 조금 덜하지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강해진다. 천황식당만의 고추장 담기 노하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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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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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의 대명사 ‘장충동뚱뚱이할머니집’    


‘장충동 족발’은 족발의 대명사다. 서울 중구 장충동에는 현재 9개의 족발집이 성업중이다. 이중 ‘장충동뚱뚱이할머니집’을 운영하는 전숙렬(82) 할머니가 이 골목에서 가장 먼저 족발을 내놓은 주인공이다. 1960년 장충동에 테이블 4개 규모의 작은 선술집 운영을 시작했던 전 할머니가 몇 년 후 족발을 내놓기 시작했으니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처음부터 족발이 메뉴에 오른 것은 아니다. 빈대떡과 만두가 주 메뉴였는데, 손님들이 마땅한 술안주를 요구하면서 족발이 등장했다. 평안북도 곽산 출신인 전 할머니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자주 드시던 족발을 그대로 재현해 술상에 내놨다.

족발이 장안 미식가들에게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손이 모자라 친구를 동업자로 불러들였다. 당시 듬직한 몸매를 보였던 전 할머니는 ‘뚱뚱이 아주머니’란 별명을 얻었고, 가게 이름도 그렇게 붙였다.

그러나 전 할머니는 결국 3년 만에 친구와 결별했다. 전 할머니는 ‘장충동뚱뚱이아주머니족발’, 친구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평안도족발집’이란 간판을 내걸고 새롭게 시작했다.

전 할머니는 족발을 삶을 때 사용하는 육수에 첨가물을 많이 넣지 않는다. 조선간장·양파·생강에 두 세 가지 재료가 첨가된다. 간장은 특히 직접 담근 것만 사용한다.

이를 위해 1년에 10가마의 콩을 사용한다. 돼지 다리는 앞뒤 가리지 않고 원하는 대로 내놓는다. 대·중·소 기준으로 각각 3만원, 2만 5000원, 2만원이다. 02-2273-5320.



한약재 넣은 육수가 비결 ‘영동족발’    


서울 강남(양재동)에서 가업을 일군 족발집. 1985년 30㎡(9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10개의 테이블로 시작해 현재 5호점까지 넓혔다. 그렇다고 체인점은 아니다. 모두 반경 30m 이내에 있다. 각 점포의 테이블을 모두 합치면 120여 개. 한꺼번에 50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그래도 자리가 부족해 거의 매일 대기번호를 발행한다. 창업주 김옥신(63) 사장과 함께 영동족발을 운영하는 아들 정용근(39) 씨는 “오후 7시면 좌석이 모두 찬다. 이 시간 이후에는 보통 30분에서 한 시간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루에 판매하는 족발을 수로 따지면 대략 300개. 돼지 앞발만을 사용하니 150마리 분량이다. 한 접시에 큰 것은 2만9000원, 작은 것은 2만6000원이다. 대충 짐작해도 하루 1000만원 매상이다. 정오에 문을 열어 오후 10시면 문을 닫는다.

김 사장은 “더 이상 팔 족발이 남지 않아서”라고 설명한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은 퇴근 무렵인 오후 6시부터. 운이 없으면 6시 30분에 들어가도 빈 자리를 찾기 어렵다.

영동족발의 특징은 따뜻함과 부드러움이다. 보통 족발 껍질이 쫄깃쫄깃 씹히는 맛을 내는 반면 이곳의 족발 껍질은 마치 녹아내리는 듯 쫀득하다. 돼지 특유의 잡냄새도 없다. 여기에 밑반찬으로 내놓는 무생채 무침이 별미다. 상큼하면서도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부드러운 족발과 잘 어울린다.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에 대해 김 사장은 생강·양파·마늘·파 등에 혈액순환에 좋은 한약재 등 20여 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는 설명으로 매조지했다.

족발의 비밀은 육수라며 더 이상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영동족발은 좁은 골목을 따라 점포가 있는 까닭에 주차 공간이 없다. 또한 예약을 받지 않는다. 문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위한 배려다. 02-575-0250



뜸 들이듯 삶는 것이 노하우 ‘흥부족발보쌈’    


서울 동북부 중심인 미아삼거리 인근에서 소문이 자자한 족발 전문점이다. 1981년 창업했으니 올해로 29년째다.

창업주 홍삼숙(61) 사장은 “초반 10년은 먹고 살기 위해 돼지 다리를 삶았고, 중반 10년은 이게 장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후반 10년은 정말 장사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만큼 족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사람 마음은 읽을 수 없어도 족발 마음은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할 정도다.

홍 사장이 족발과 맺은 인연은 우연이었다. 30년 전 서울 중구 중림동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던 남편 친구의 부인이 아이를 낳게 되자 몇 달 동안 가게 일을 도와준 적이 있다.

이때 어깨 너머로 돼지 다리 삶는 법을 배우면서 족발집 운영을 결심했고, 아예 주방에 들어가 한 달 동안 돼지 다리를 삶았다. 그리고 지금의 자리에 점포를 열었다.

손님이 뜸한 낮 시간대 주방에서는 육수가 끓고 있다. ‘29년 묵은’ 육수다. 맛의 비결이 여기서 나온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간장·마늘·양파·계피 등 대여섯 가지가 전부다. 양파는 넣지 않는다. 단맛을 내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족발에선 잡냄새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만의 노하우다. 홍 사장은 “무작정 삶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듯 불과 시간 조절을 통한 삶는 과정을 거쳐야 제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메뉴는 놀부족발(2만4000원), 흥부족발(2만3000원), 보쌈(2만4000원) 등으로 비교적 저렴하다. 02-981-2146.



통유리로 믿음 주는 위생 관리 ‘한양족발’    


부산 부평동족발골목에서 첫 손에 꼽힌다. 인근 업소보다 조금 늦은 1986년 문을 열었으나 맛과 양으로 승부하면서 어느덧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로 마감한 외관부터 눈길을 끈다. 안으로 들어서면 깔끔한 인테리어와 규모에 다시 한번 놀란다.

양순애(64) 사장은 “개업 당시 주변에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족발집이 몇 개 있었다. 하지만 한양족발은 시작할 때부터 큰 규모에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건물을 새로 지었지만 지금도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위생 측면에서 신뢰를 쌓다보니 손님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한양족발 덕분에 부평동 족발골목 땅값이 올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고 자랑한다.

육수에는 대파·양파·마늘·계피·감초는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여기에 대추와 된장을 첨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기가 식으면 딱딱해지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란다.

오이·해파리 등에 톡 쏘는 겨자 소스가 곁들여진 냉채족발도 별미다. 2002년 시작한 냉채족발은 특히 젊은 여성이 즐겨 찾는 메뉴다. 족발과 냉채족발의 가격은 대·중·소로 나눠 각각 3만원·2만5000원·2만원이다. 051-246-3039



장충동엔 30년 넘는 집 9군데…족발 골목    


장충동 족발골목

족발 하면 ‘장충동 족발’을 떠올릴 정도다. 현재 전숙렬 할머니가 운영하는 ‘장충동뚱뚱이할머니집’을 비롯, 9개의 전문점이 영업중이다.

이들 전문점은 최소한 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평안도족발집은 장충동뚱뚱이할머니집과 비슷한 역사를 가졌다. 원래 전 할머니가 창업 당시 동업했던 친구에게 넘겨준 가게가 이곳이다.

매년 11월에는 ‘장충동족발거리축제’를 개최한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서면 족발골목이 코앞이다.


공덕동족발골목

지하철 5호선 공덕역 5번 출구로 나와 만리동 고개 방향으로 100여m 지점 대로변에 자리한 공덕시장에 이른다. 시장 한켠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족발 냄새가 진동한다. 다른 족발골목에 비해 규모는 작다. 최근 생긴 곳까지 더해 4개의 업소가 영업중이다.

30여년 전 ‘소문난집’이 작은 좌판으로 시작, 조금씩 규모를 늘려 오늘에 이르렀다. 가격은 대·소로 나눠 각각 1만8000원, 1만5000원으로 같다. 서비스로 순대국·순대 등이 제공된다.


천호동족발골목

서울 강동구 천호사거리 현대백화점 뒤 2001아울렛 건물 바로 옆에는 작은 족발타운이 형성돼 있다. 정확히 언제 시작됐는 지는 알기 어렵다. 주인이 바뀌는 등 변화가 있었던 탓이다. 대략 40여년 전 대로변에 춘천족발이 문을 연 이후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 지금은 6곳이 골목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는 정도다.

양이 푸짐하고 맛이 좋아 찾는이들이 꾸준하다. 가격은 대·중·소로 나눠 2만9000원, 2만6000원, 2만3000원이다.


부평동족발골목

부산이 자랑하는 족발타운이다. 영화거리에서 약간 벗어나 부평시장 쪽으로 난 길을 가로지르는 일방통행로를 사이에 두고 족발거리가 형성돼 있다. 부산의 번화가인 남포동과 바로 붙어 있어 남포동족발골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30년 전부터 작은 규모로 올망졸망하게 시작해 지금은 10여 곳에 이른다. 그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알려진 부산족발, 한양족발, 한성족발 등이 유명하다. 이 골목에선 오이 등 다양한 채소에 겨자 소스 등이 얹어진 냉채족발이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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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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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

김부기(76)할머니가 40여년전에 문을 연 곳이다. 지금은 아들 박경록(40)씨가 운영한다. 10여년전 건물을 새로지었다고 한다. 메밀은 국산만을 고집한단다. 껍질을 까지 않고 갈아서 고구마 전분 20%를 혼합한다. 그래서인지 삶은 면색깔이 짙은 고동색이다.

메밀이지만 면발이 쫄깃쫄깃하다. 박 사장은 "면을 1분20초정도 삶은 후 찬물을 붓고 다시 약 2분 정도 뜸을 들이는 것이 우리 집만의 면발 유지 노하우"라고 살짝 털어놓았다.

육수는 과일이 주재료. 양파, 마늘 등 채소를 더한다. 여기에 이 집만의 비밀이라고 하는 약초 한가지와 꿀, 식초를 넣어 이틀 정도 숙성한다. 국물 맛이 전반적으로 새콤달콤하다.비빔 막국수에는 당근, 양배추, 상추 등 채를 썬 5가지 채소에 고추장으로 만든 소스가 들어간다. 비빔막국수는 매콤달콤하다.

가격=메밀 막국수, 비빔 막국수 각각 5000원.

위치=영동고속도로 장평 IC를 빠져나와 봉평면으로 10여분 가면 이효석 문학관이 나온다. 거기에 막국수촌이 있는데 첫번째 집이다.



현대 막국수

40여년전 개업한 이래 그 모습 그대로 현재까지 영업하고 있다. 손님이 늘어나면서 뒤쪽으로 공간을 계속 넓혀 왔다.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 가수 이문세, 영화배우 이영하, 복싱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김광선 등 유명인사들의 사인이 도배되어 있다.

작고한 이모의 뒤를 이어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최애숙 사장이 "이제는 제발 사인을 하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이다.

과일로 만든 육수를 5~6시간 정도만 숙성시켜서 쓴단다. 비빔 메밀국수 소스는 사과와 꿀 등에다가 탄산음료를 넣어 만든다고. 그래서 그런지 묘한 단맛이 난다. 면은 봉평산 메밀에 밀가루(20%)를 섞어 뽑는다. 냉면 면발 처럼 쫄깃하다.

가격=메밀 막국수, 비빔 막국수 각각 5000원. 100% 순메밀면은 6000원.

위치=봉평 읍내에 있는 봉평 시장 끝에 있다.



백촌막국수

옛날 막국수를 먹을 수 있는 곳. "100% 메밀면"이라고 목에 힘을 주고 주장한다. 고소한 맛은 더 하지만 씹는 맛은 떨어진다. 얼음이 동동 떠있는 동치미 국물은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해진다. 양념장을 따로 주는데 취향에 맞춰 양을 조절하면 된다. 이 집을 연 시장의 시아버지가 이북 출신인 덕에 명태 식해를 찬으로 맛볼 수 있는 게 또다른 매력이다.

가격=메밀국수 5000원.

위치=찾아 가기가 쉽지 않다. 강릉에서 7번 국도를 타고 고성으로 가다보면 아야진 해수욕장이 나온다. 여기서 1~2분 더 올라가면 토성농협 백촌지소가 나오는데 거기서 약 20m 더 들어가면 있다(백촌리 162번지).



샘밭 막국수

40년째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75살의 최명희 할머니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소뼈를 약 12시간정도 고아서 만든 육수를 동치미 국물과 섞는단다. 육수를 넣었지만 동치미 국물의 개운한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

면은 국산과 중국산이 섞인 메밀가루에 고구마 전분을 약 20% 넣어 만든다. 면은 3번째 끓어 오를 때 건지고, 찬물을 2~3번 정도 헹궈야 쫄깃한 면발이 된다는 게 최할머니의 설명이다. 양념장은 영업 비밀이기에 정확히 밝힐 순 없지만 고춧가루·간장·파·마늘 등을 버무려 1주일 가량 숙성시킨다고.

가격=막국수 5000원

위치=춘천시내에서 소양댐으로 가면 2군단 사령부가 있다. 이 곳에서 100m정도 더 가면 오른쪽에 있다. 5년전 서울 서초동에도 분점을 냈다.



유포리막국수

현재 운영 중인 춘천 막국수 집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고 알려진 곳. 시어머니가 문을 열었지만 현재는 19살때 시집온 며느리 홍순기(50)씨가 운영하고 있다. 45년전 초가집으로 시작해 지금은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했다.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지만 예약을 하지 않으면 줄 설 각오를 해야 한다. 고구마 전분 30% 쓰기 때문에 면발이 냉면과 거의 비슷한 것이 특징이다.

막국수가 나올 때 기본적으로 양념을 해 주지만 손님들 식성에 따라 더 넣어 먹도록 식탁마다 양념장이 따로 준비돼 있다. "쨍"한 동치미 국물 맛이 좋다.

가격=막국수 5000원.

위치=춘천시내에서 소양강쪽으로 가면 2군단 사령부가 나온다. 정문 길을 따라 1㎞ 정도 가면 우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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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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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래장
(서울시 마포구 마포동·55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서울 마포구 마포동의 언덕 위에서 화교에 의해 시작됐다. 주명연(54) 현 사장이 27년 전인 1982년 인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인이 한 번 바뀌었어도 역사는 55년. 주 사장은 이후 26년 동안 같은 자리를 고수했지만 재개발에 밀려 지난해 2월 불교방송이 자리한 다보빌딩 지하로 자리를 옮겼다.

예나 지금이나 현래장의 대표 메뉴는 ‘수타’ 자장면이다. 인수 후 잠시 기계면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손님들의 반응이 신통치않아 수타면으로 돌아왔다.

현래장의 자장 레시피는 조금 다르다. 큼지막하게 썬 양파와 감자는 비슷하다. 여기에 메주콩을 삶은 후 이를 볶은 것, 그리고 단호박을 사용한다는 점이 차이다. 실제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하루 평균 300그릇, 많을 때는 500그릇이 팔린다. 4500원.



신승관
(서울시 중구 북창동·45년)

1965년 화교 장학맹(2005년 작고) 씨가 현재 제일은행 본점 옆에 터를 잡았다. 처음부터 자장면과 물만두로 유명세를 탔다.

신승관은 자장을 만들 때 감자를 넣지 않는다. “전분을 사용하는데, 감자를 추가하면 (전분)함량이 너무 많아져 부담스럽다. 대신 양파·호박·배추·양배추·계절채소 등 5종 이상의 재료가 들어간다. 여기에 춘장과 자체 개발한 장을 섞어 볶은 것을 넣고 푹 끓인다. 이렇게 하면 단맛과 짠맛이 덜하다.” 3대 사장 배동혁(34) 씨의 설명이다.

면의 색깔도 독특하다. 흰색의 일반 면과 달리 연한 노랑색을 띈다. 배 사장은 반죽할 때 채소를 간 즙을 사용한다는 것 외에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기계면임에도 면발이 부드럽고, 자장에서는 깔끔한 뒷맛이 강했다. 4000원.



신신원
(서울 종로구 인사동·17년)

17년째 영업중이지만 수타 자장면을 내놓은 것은 6년에 불과하다. 기계면을 사용하다 신우일 사장이 평소 알고 지내던 최한홍 주방장을 초빙해 2003년부터 수타면을 내놓기 시작했다. 45년 경력의 최 주방장이 하루에 만들어내는 면은 약 120인분. 길 가에 투명 유리로 쇼룸을 만들어 점심이나 저녁시간 무렵 최한홍 주방장이 직접 면을 뽑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사동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좋은 볼거리와 먹을 거리를 주고 있는 셈.

자장면에 김치를 반찬으로 낸다. 포기 김치를 접시에 담고, 직접 잘라먹을 수 있도록 가위를와 함께 내놓는다. 신 사장은 “이것이 일본 관광객들을 사로잡았다. 김치가 무한 리필되는 데다 믿을 수 있어 마음놓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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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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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수산

서울에서 개성식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1981년에 문을 열었다. 최근에는 개성식에 퓨전 스타일을 가미했다. 두부요리에 ‘데리야끼 소스’를 얹거나 튀김요리에 일본식 꽃 장식을 하는 식이다. 신세대 입맛을 가미한 소스나 음식을 담아내는 방식에서 ‘글로벌’ 감각을 도입한 것이다.

코스 초반에 나오는 ‘개성나물’은 숙주·미나리를 홍시소스에 버무려 내 놓는 음식으로 개성한정식 특유의 담백한 맛을 잘 느낄 수 있다. 낙지·은행·밤·대추·배·절인 김치·무·북어포 등을 속 재료로 하고 젓갈·설탕·물엿·마늘 등으로 만든 소스에 양념해 배추 이파리에 싸서 내놓는 개성식보쌈도 있다.

보쌈김치를 절임 통에 쌓은 뒤 남은 양념과 양지육수를 섞어 만든 양념장을 절임 통의 3분의 1쯤까지 넣어 숙성시킨다. 뒷맛이 깔끔하다.

비원점 정주영(26)조리사는“고려의 도읍이었던 개성에서 먹던 음식들을 모아 놓은 한정식이다. 거기에 문헌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메뉴 개발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용수산은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음식점이다. 단조로운 정통 한정식 사이에 자체 개발소스와 이국적인 장식으로 맛과 모양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이유다.



서울 다정

궁중음식연구원 동문 모임인 지미재 회원들이 ‘서울식에 가장 가깝다’고 추천한 곳이다. 궁중음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음식과 그릇의 전체적인 색감이 화이트 톤이다. 그만큼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적다.

최기정 사장은 1994년 중반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음식을 배웠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친정어머니에게서 음식을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최 씨는 “혜화동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음식 솜씨는 물론, 잔칫날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부엌 바닥에 물 한방울 튀지 않는 완벽한 살림꾼이었다”고 회상한다.

김치·나물·젓갈·게장·깻잎 장아찌 등 9가지 기본 찬에 물김치·죽·호박샐러드가 제공되고 탕평채·모듬전·대하잣즙무침·너비아니·식사(4인 10만원 기준)가 나온다.

최 씨가 논현동에 한정식집을 열었을 때는 전라도식에 비해 “서울식은 특별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궁중음식연구원에 입문했을 때 “친정 어머니가 하던 서울 가정식이 궁중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궁중 음식이라는 것은 예쁘게 꾸며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음식이 아니라,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 자극적인 양념을 배제하는 서울의 전통 음식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전주 궁

건물 외관, 내부 분위기는 물론 음식도 전주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정식이다. 유인자 씨가 내는 음식의 내력은 시할머니 대로 올라간다. 유 씨가 김해 김 씨 집안으로 시집온 28년 전 시할머니 박금순(작고) 씨의 나이는 83세.

그러나 팔순의 고령에도 참게장·참게탕·너비아니·조기탕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건설업을 해서 집안에 항상 손님이 많았아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가 끊이지 않은 손님을 치르느라 집안이 늘 명절날 같았죠.”

9가지 기본 찬과 11가지의 한정식 메뉴가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았음은 당연하다.

“시댁에 묵은 장이 많았아요. 장독을 열어보면 오래된 된장 위로 소금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어요. 당시엔 이런 것들이 왜 필요할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정말 귀한 것들이었어요.”

음식 공부를 하고 싶어 1991년에 음식연구원 문을 두드렸을 때 비로소 할머니·어머니 손맛의 진가를 알게 됐다고 한다. “궁중요리를 배우다 보니까 ‘예전 할머니가 하시던 방법이랑 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궁"은 유 씨가 시댁 어른들에게서 배운 ‘전주 가정식’과 궁중음식을 가미했다. 두텁떡·신선로·숭채만두 등은 궁중 음식, 참게장·참게탕 등은 집에서 하는 음식을 그대로 전수한 것이다. 기본 상차림은 9첩상에 구절판·두텁떡으로 시작한다.

이후 죽·백김치·샐러드·전·광어회·중간 탕(미역국), 신선로·너비아니·우럭찜·참게장 식사(4인 16만원 기준·계절에 따라 변동) 순으로 나온다.



광주 명선헌

광주에서 첫손에 꼽히는 한정식 집이다. 김치는 자타공인 ‘남도 최고’로 인정받는다. 최인순(60) 사장은 2001년 광주김치축제에서 보김치(보쌈김치의 일종)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본래 보김치는 개성의 궁중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 씨는 “전라도에서도 보김치는 양반가를 중심으로 담가 먹었다”고 전한다. 솜씨는 친정 어머니로부터 익혔다. 푸르름이 생생한 대여섯장의 배추잎 속에 감춰진 보김치 속은 바다에서 나는 청각·전복·소라를 비롯해 땅에서 나는 사과·배·석류·마늘·생강 등 30여 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단품 한정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씨는 2007년 서울 논현동에 이어 작년에는 서초동에도 명선헌을 냈는데, “서울사람이 ‘서울에서도 보김치 구경 좀 하자’고 채근하는 통에 분점을 냈다”고 한다. 최 씨는 젊은 시절, 고모내외가 하던 광주의 유서 깊은 한정식 집 ‘송죽헌’ 에서 음식을 배웠다.



진주 아리랑

진주의 교방상을 재현했다. 교방상이란 진주관아에 속한 숙수들과 교방청 기생들에 의해 전해진 상차림이다. 평양과 함께 조선의 2대 기생으로 불렸던 진주기생의 상차림은 화려했다. 물론 이소산 사장이 내놓는 음식이 조선시대에까지 연결되지 않는다.

또한 ‘요정의 음식’ 이 아니다. 13년전 한정식 집을 내기 전에는 부산의 한 여고에서 교직생활을 했다는 이 씨는 “술 여자 음식이 어우어진 난잡한 음식 문화가 아닌 진주의 교방상을 재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신선로·구절판·탕평채 등 궁중음식을 기본으로 전복회·홍어삼합·대하찜 등 해물 코스 요리, 궁중떡(4인 20만원 기준) 등이 나온다.

진주는 대체로 음식의 간이 센 편이지만, 아리랑은 담백한 맛을 추구한다. 젓갈은 전라도처럼 여러 종류를 내지만 재료는 다르다. 전복젓·가자미젓 등은 진주·통영·남해 일원에서 많이 먹던 젓갈을 낸다. 아리랑은 진주 인근 광양제철·거제조선소 등에 업무차 방문한 외국 손님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이 씨는 “1주일에 한 테이블 이상은 꼭 외국인 손님들 차지다. 음식 색깔을 보고 깜짝 놀라고, 음식을 입에 넣고 나서는 맛에 놀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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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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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구강할매 아구찜

마산에서 유일하게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1대 구봉악 할머니(작고)에 이어 2대 김수일(70)할머니와 3대 이정민(45)씨가 대를 이어오고 있다.

1965년 시작했으니 벌써 45년째, 이사도 가지않고 그때 그자리에서 지금도 영업하고 있다. "진짜 초가집 원조 아구찜"과 함께 마산 아구찜의 원조이다.

구봉악 할머니가 만들던 방식대로 아귀찜을 내놓고 있다. 겨우내 말렸던 아귀를 물에 살짝 불려, 미나리·미더덕·콩나물·고춧가루·파·마늘 등 10여가지를 넣어 10여분간 솥에 넣어 끓인다.

여기에 된장을 넣는다. 시어머니에 이어 21년째 아귀찜을 내놓고 있는 김수일 할머니는 "아귀의 비린내를 잡기위해 된장을 넣었지. 그런데 고춧가루만 사용하는 것 보다 맛이 더 구수하고 질리지도 않아. 우리집에 단골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라고 자랑한다. 양념에 된장을 사용하는 집은 이 집과 한 곳만 더 있다고 한다.

건아귀는 생물에 비해 훨씬 더 쫄깃쫄깃하다. 맛은 황태찜과 비슷하다. 경상도 지방 음식답게 상당히 맵지만 동치미· 백김치와 함께 먹으면 매운 맛이 어느정도 가신다.



부산 물꽁식당

1960년대 중반에 시작했다고 한다. 20대에 이 식당을 개업한 홍계순(77) 할머니가 딸들을 데리고 지금도 주방을 지키고 있다. 바로 앞 자갈치 시장에서 매일 생물을 공급받아 주방에서 손질을 한다. 다시마·멸치·무·아귀뼈 등을 넣고 고은 육수에 고춧가루·마늘·참기름·찹쌀 가루·되친 아귀를 넣어 큰 솥에 끓여 낸다.

이 집은 방앗잎(배초향)을 넣어 향을 낸다. 깻잎처럼 생겼지만 향은 훨씬 진하다. 통통한 아귀살과 어우러져 색다른 맛이 난다.

어머니의 손맛을 물려받고 있는 윤근순(53) 사장은 "서울 사람들은 강한 향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부산 사람들은 방앗잎을 더 많이 넣어 달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귀 수육도 별미다. 복 수육처럼 미나리와 함께 나오는데 탱글탱글한 아귓살에 싸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 아귀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워낙 오래됐고 한자리에서 영업을 하다보니 단골이 많다. 영화배우 김지미씨나 가수 최진희, 유도 선수 출신 하형주 교수 등이 이집 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 단골이란다



인천 성진 물텀벙

올 해로 40년째. 전병찬(71)·우금련(73) 노부부가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인천 물텀벙집으로는 가장 오래됐고, 2005년 6월엔 고 노무현 대통령도 이 집 아귀찜을 맛보았다. 주인부부와 함께 촬영한 사진이 입구에 걸려 있다.

우금련 할머니는 "우리 집은 매일 연안부두에서 공급받는 싱싱한 아귀와 천연 암반수로 키운 콩나물이 맛의 비밀"이라고 설명한다. 마산이나 부산과 달리, 아귀찜에 새우가 들어가는 점이 특이하다.

서울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스타일이며 경상도 아귀찜보다는 훨씬 덜 맵다. 소스는 고춧가루와 고추장·식초·설탕 등을 넣어 매일 아침 만든다. 30년째 주방을 지키고 있는 안매자 할머니는 "휘젓는 횟수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 횟수가 우리 집 소스의 비밀이지"라고 말한다.

경상도보다 덜 맵지만 그래도 매운 맛을 중화시키기위해서 짠지를 내놓는다. 경상도에서 동치미나 물김치를 내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짠지는 매년 김장철에 1년 먹을 것을 한꺼번에 담는다고 한다. 무는 짭조름하지만 국물은 시원하다. 아귀찜이 나오는 시간 동안 출출한 배를 채우라며 젓국(두부탕이라고 한다)을 주는데 이것도 이 집만의 특징이다.

환자와 어린이들을 위해서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아귀 백숙도 있는데 맛이 담백하다. 인천 출신 개그맨들인 이혁재와 지상렬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서울 옛날집 낙원아구찜

담백하고 맵지 않은 ‘서울식 아귀찜’을 처음 내 놓은 곳이라 알려져 있다. 36년 전 윤청자(69)사장이 ‘아귀찜 한 번 만들어봐라’는 지인의 의견을 듣고 시작하게 됐단다. 당시 8평짜리로 시작한 가게가 지금은 3층 건물을 쓸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당일소비’를 원칙으로 해 아귀와 채소는 하루 소비량만 주문 해 쓴다. 아귀는 보통 4~5kg짜리. 양념은 따로 만들어 놓고 사용하지 않는다. 참기름·고추장·마늘·생강 등을 즉석에서 배합해 쓴다. 손님의 기호에 따라 맛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콩나물 삶은 물을 육수로 사용하는 게 특이하다. 콩나물을 미리 한소끔 삶은 후 콩나물은 건져 아귀찜 위에 올리고 국물을 부어 자작하게 끓인다.

이렇게 하면 맛이 개운하고 콩나물 특유의 비린내도 없다. 아귀찜의 맛을 좌우하는 고춧가루도 나름의 원칙이 있다. 유난히 붉은 빛이 도는 것, 매운 맛이 강한 것, 단맛이 있는 것 등을 1:1:1 비율로 섞어 사용한다.

동치미도 이색적이다. 고춧가루를 넣어 발효시켜 색깔이 붉다. 매운 아귀찜 한 점과 매콤 새콤한 동치미가 제법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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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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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보영식당

내용물: 김치· 소시지· 햄· 소고기완자· 파· 마늘 · 고춧가루· 야채육수(양파· 무 · 멸치· 다시마· 조미료)

특징: 1982년 시작해 현재 65세인 박평순 할머니. ‘의정부 부대찌개거리’의 번영회장답게 시원시원한 여장부 스타일이다. 원래는 지금의 가게 자리 근처에서 한복의상실을 운영했다. 한복을 맞추러 드나들던 군부대 주변 다방 마담들이 할머니가 주는 밥을 먹어보고는 “음식 솜씨가 있다. 식당을 내라”는 말을 건넨 것이 계기. 직접 담근 보리고추장을 써 맑고 깔끔한 국물 맛이 특징이다.



평택 최네집

내용물: 김치 ·양파 ·파· 다진 소고기· 햄· 소시지· 치즈 ·사골 육수 (호주산 소 잡뼈).

특징: 평택에는 유난히 ‘~네집’ 이라는 이름의 부대찌개집들이 많다. 1969년 생긴 평택 원조 ‘최네집’ 종업원들이 나가 차린 가게들이라고 주인 최정자 할머니가 말한다. 69년 당시 K55부대 정문 앞에서 시작해 199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다진 소고기를 완자로 뭉치지 않고 그대로 풀어 끓인다. 끓는 과정에서 마늘 양념과 합쳐지도록 일부러 풀어 쓴다고 한다.



파주 삼거리식당

내용물: 쑥갓· 파 ·김치 ·치즈 ·양파· 8종류의 햄과 소시지

특징: 1971년 문 열었다. 집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기에, 오가던 하우스보이들이 건네준 미제 고기를 받아 시작했다. 기본 소시지와 햄, 소고기완자는 물론, 베이컨· 볼로냐(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섞어 얇게 저민 햄) ·살라미(소고기와 돼지고기 등심살을 돼지기름, 소금, 향신료, 럼주로 간해 건조한 것), 폴리시 소시지, 칠면조고기 등 총 8가지 고기가 들어간다. 고기의 종류도 양도 많다 보니 우러나오는 국물 맛이 ‘진국’이다. 끓일수록 맛있다.



안성 모박사

내용물: 애호박· 옥수수· 콩 ·떡· 베이크드빈(통조림 콩) · 햄(고급형의 경우 5종류 햄 추가) ·소시지 ·양파· 파· 소고기완자· 치즈 한우사골육수 ·

특징: 역사는 20년으로 비교적 짧은 편. 안성 한우의 숫소 잡뼈(목· 등· 꼬리뼈)로 육수를 우린다. 김치를 넣지 않는 대신 안성 배로 맛을 낸 백김치 국물을 넣어 느끼한 맛을 잡았다. 양파와 파 등 찌개에 들어가는 채소는 햇볕에 바싹 말린 후 넣는다. 끓이는 과정에서 야채의 수분이 새어 나가면 진한 사골 국물맛이 희석되기 때문이란다. ‘김치 없는 부대찌개 제조기술’로 2006년 특허를 받았다.



이태원 바다식당

내용물: 치즈· 햄 ·소시지· 감자· 양배추· 빨간고추· 풋고추 ·양파· 양지머리· 사골육수

특징: 31년째 존슨탕을 팔고 있다. 주인은 "우리 집은 부대찌개가 아니라 존슨탕"이라고 주장한다. 부대찌개와 존슨탕의 차이는 김치여부에 달렸다는 것. 식탁의 화덕에서 직접 끓여먹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주방에서 다 끓여 내놓는다. 완성된 찌개 위에 살짝 얹힌 치즈가 고소한 맛을 낸다. 무표정한 주인이 모습에서 친절함은 기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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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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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부흥식당’ -뼈 발라낸 제주도 자리물회

1970년 부모님 따라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건너온 고명순(48)사장이 4년 전부터 가게를 도맡아 꾸리고 있다. 부흥상회의 자리물회는 두 가지. 된장으로만 간을 해 비벼 먹는 ‘비빔물회’, 된장과 특제소스를 함께 버무려 물을 부어 먹는 ‘자리물회’가 그 것.

된장을 슥슥 비벼가며 회에 골고루 비벼 한 입 떠먹으니 자리돔의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제주도 사람들은 뼈째(세꼬시) 먹지만 뭍사람들에겐 부담스러울까봐 특별히 뼈를 발라 판단다. 부산에는 제주에서 넘어 온 사람들이 많다.

물회 한 그릇 먹으러 왔다가 헤어진 사람들을 만나는 많았다고 고사장은 말한다. “여기저기서 반가운 소리가 자주 들렸죠. ‘20년 만이네’ ‘아이고 니 누구누구 아니가 하면서요. 여기가 이산가족 상봉소였어요. 바로 여기가(웃음)”

양념 레시피 : 자리물회의 맛은 된장에 따라 맛이 결정되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 된장은 직접 담가 2년을 삭힌다. 양념장은 먼저 삭힌 된장에 고춧가루를 1:9 비율로 섞어 다시 삭힌 것으로 사용한다. 한 번 만들 때 180kg에서 240kg정도를 담근다고.



경북 포항 ‘오대양물회’-비벼야 제맛인 도다리물회

박상규(62)사장은 뱃머리 위에서 ‘물회’를 자주 먹었던 전직 어부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줄곳 배를 타서 모은 돈으로 1987년 ‘오대양물회’를 열었다. 자연산 도다리로 만든 ‘도다리물회’가 맛이 좋다.

배·마늘·설탕 ·김·오이·미나리· 쪽파·도다리 회가 담긴 그릇에 고추장을 넣어 비벼먹는다. “대충 비비지 말고 회가 붉은 빛이 돌 때까지 성실히 비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물이 담긴 주전자와 얼음을 함께 준다. 쫀득쫀득한 비빔물회가 지겹다 싶으면 물을 넣어 먹으면 된다.

그는 “배 위에서 먹던 그 맛을 끝까지 이어가고 싶다.”는 고집이 있다. 자체육수를 사용하거나 소스의 변화를 추구하는 횟집도 생겼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마땅한 양념이 없어 고추장만 넣어 비벼먹던 그 시절의 ‘텁텁하고 얼큰한 맛’의 물회가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양념 레시피 : 고추장을 만들 때 ‘미소된장’을 넣는 점이 다르다. 그래야 맛이 더욱 담백하고 고소해진다고. 또 고추장 표면이 마르지 않도록 굵은 소금으로 덮어둬 부드럽고 감칠맛나게 숙성시킨단다. 엿물, 고춧가루, 미소된장의 혼합비율은 0.5:7:2.5.



강원도 주문진항 연포횟집- 새콤달콤매콤한 오징어물회

‘연포횟집’ 권준영(54) 사장은 15년간 주문진회센터에서 ‘물회’를 팔았다. 권사장은 “다른 메뉴와 함께 있어 찾는 손님이 적었지만 새콤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물회’맛에 중독돼 자주 찾는 단골들이 많다”고 말한다.

오이·양파·배·당근·실파·매운고추 위에 가늘게 채 친 오징어회가 소복하게 얹혀 나온다. 아담한 항아리에 깨소금이 동동 떠있는 ‘육수’가 따로 담겨져 있다. 육수를 넉넉히 넣어 국수와 밥을 말아 먹어도 되고, 조금 넣어 자박하게 먹어도 맛있다.

“조금 짠 듯하다”는 평에 권사장은 “육수의 농도는 얼음이 다 녹을 것을 고려 해 만든 것”이라며 “싱겁다고 소금을 넣어 먹으면 맛도 떨어지고 간이 세진다”고 일축했다. ‘회센터’라 모듬회를 주로 팔지만 여름에는 ‘물회’수요가 매출의 5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

양념 레시피 : 초장 재료로 옹가네 고추장을 쓴다. 설탕 10kg·식초 1.75L·고추장 40KG·물엿 5KG·마늘 간 것 2KG·생강 1KG을 넣고 2~3일 숙성시킨다. 초장을 숙성시키는 이유는 고추장의 떫은 맛을 없애기 위해서란다.



강원 사천항 ‘장안횟집’ -유난히 "초"붉은 오징어물회

사천항의 유명 물회집. 10년째 영업중인데 어떤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지, 무슨 재료를 쓰는지 눈꼽만큼의 공개도 거부한 집이다. "혹시 몹쓸 재료나 방법이라도…"란 의구심이 들 수준이지만 그 덕(?)에 ‘다른 집은 파리 날리고 이 집만 줄을 설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가게 앞에 설치한 간이 어장에서 오징어를 직접 건져 올려 물회를 만든다. 물회의 국물 색이 유난히 붉은 게 특징이다. 함께 나오는 미역국은 우럭을 넣고 푹 고아 국물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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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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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삼계탕 (서울 중구 서소문동)

1960년 명동 입구에서 시작해 올해로 반 백년된 삼계탕집이다. 76년 서소문 유원빌딩 자리로 이전했다가 3년 뒤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겼다. 무엇보다 "고려삼계탕"이란 상호는 이 업소만이 누리는 독점적 지위다.

지난해 인근 삼계탕 전문점과 상표권 분쟁에서 승소, 거액의 배상금을 타냈을 정도다. 웅추(수평아리)를 사용한 삼계탕은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국물맛이 다르다. 한 수저 입에 넣으면 알싸한 향이 입 안을 맴돈다. 닭고기를 삶을 때 엄나무·오가피 등 대여섯 가지의 약초를 첨가하기 때문이다.

6층 건물을 모두 사용하는데, 1~4층은 320석 규모의 홀이다. 5층은 식자재를 준비하는 메인 주방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삶는 닭은 하루 평균 750마리, 복날에는 3000마리나 된다. 1만3000원.



토속촌(서울 종로구 채부동)

전국적으로 영업이 가장 잘 되는 삼계탕 전문점이다. 점심 때도 조금만 늦으면 줄을 서야할 정도다. 특히 여름이면 하루 종일 장사진을 이룬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단골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인기도가 더 높아졌따. 맛의 비결에 대해선 "손사래+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라는 자부심인지, 아니면 "너 없이도 잘 된다"는 자만심인지 알 길이 없다.

다른 업소와 달리 들깨를 이용한듯 뽀얀 국물이 걸죽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전문가들은 "뛰어나다기 보다 흔하지 않은 맛"이라고 평한다. 닭의 크기는 지나치게 겸손(?)하다.

그런데도 가격은 1만3000원이나 된다. 워낙 손님이 몰리는 곳이다 보니 좌석 선택권도 없다. 마치 관광식당을 찾은 관광객 대접이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안쪽 빈자리부터 채워야 한다.



장안삼계탕(서울 중구 태평로 2가)

1971년 정순임(69) 사장이 현재 위치에서 조선호텔 방향으로 약 30m 떨어진 곳에서 시작했다. 30세의 젊은 여주인이 끓여내는 삼계탕은 맛이 좋아 인근 직장인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팔렸다.

70년대에는 하루에 700~800그릇을 파는 날이 적지 않을 정도였다. 80년대 말 지금의 위치로 건물을 구입해 이전했다. 닭을 삼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먼저 불린 찹쌀·대추·인삼·통마늘 등을 넣은 닭고기를 2시간 이상 푹 삶는다. 이어 고기를 건져내고, 남은 국물에 다진 마늘·불린 쌀 등을 넣고 다시 끓여 육수를 만들어낸다. 39년째 같은 방식이다.

이 업소에는 또다른 "명물"이 있다. 31년째 홀 서빙을 하고 있는 정선애(69) 씨다. 나이 지긋한 단골은 정 씨가 있는 것을 보고 예전에 찾던 집인 것을 알 정도란다. 여름엔 평균 300그릇, 복날에는 1000마리 이상이 팔린다고. 1만1000원.



풍기삼계탕(경북 영주시 하망동)

경북 영주시 풍기읍 일대는 충남 금산, 강화도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 인삼 산지다. 이 지방에 인삼을 재료로 한 삼계탕집 하나쯤 있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대구·서울의 단골까지 확보한 곳이다.

그런데 이름과 달리 풍기읍내가 아니라 영주 시내 경찰서 인근에 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함께 1980년 시작했다는 이영자(61) 사장은 "처음 찾은 손님들이 "당연히 풍기에 있겠지" 하곤 그곳으로 가신다 아닙니꺼. 그리고는 없다고 난리라예. 영주에 있으면 "영주삼계탕"이라고 해야 한다나 어쩐다나…. 그러면 서울에서 오셨으니, 서울삼계탕은 서울에만 있어야 합니꺼."

닭고기는 인근 양계장에서 5주 정도 키운 육계를 사용한다. 무게는 550~600g 정도다. 50마리씩 솥에 넣고 센 불에 약 40분, 그리고 약한 불에 15분 정도 삶으면 완성이다. 닭의 뱃속에는 4년근 풍기인삼·찹쌀·대추·밤·통마늘이 들어간다. 한약재를 넣어보기도 했지만 색깔이나 맛이 달라 곧바로 포기했다고 한다. 9000원.



금곡삼계탕(대구시 중구 공평동)

대구 시내 한복판, 대구백화점 인근의 금싸라기땅에 들어서 있다. 건물도 지은지 60년이 넘은 가정집을 개조한 것으로 건물 외벽은 온통 담쟁이덩굴로 뒤덮였다. 작지만 주차 공간이 있고, 37개의 테이블이 자리하고도 공간이 남을 만큼 건물도 큰 편이다.

"고교생부터 어르신, 외국인까지 다양한 계층의 단골이 있어요. 북적이는 식사시간을 피해 느지막히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하루종일 분주합니다. 하루에 500그릇 이상이 팔리고, 복날에는 2000그릇을 넘기기도 한다." 김미영(64)사장의 설명이다.

이 건물은 1989년 개업하기 전까지 프랑스 요리 전문 레스토랑이었다. 삼계탕 전문점으로 업종을 바꾸면서도 이 인테리어를 그대로 유지,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유럽풍 실내 분위기에 맞춰 홀 서빙을 담당하는 직원도 모두 20대 초반의 남녀들이다. 닭고기는 국내 대형 닭고기 전문업체로부터 납품받는다. 인삼은 4년근 금산 인삼이다.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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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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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장어-전북 고창

"풍천"을 지역이나 개울 이름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경북 안동시에 가면 풍천면이 있고, 충남 태안에는 풍천이란 개울이 흐른다. 하지만 풍천장어의 "풍천"은 지명이 아니다. 한자로는 바람 풍(風), 내 천(川)이다. 바닷물이 내를 따라 들어올 때 육지로 바람을 몰고 온다는 뜻이다. 따라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은 모두 풍천인 셈이다.

그런데 "풍천"이란 단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고장이 전북 고창이다. 한때 지천으로 흔했던 장어를 "풍천장어"라 불렀고, 이젠 장어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위치는 선운사 앞을 지나 바다로 흐르는 인천강이다.

밀물이 들어오면 약 4㎞ 떨어진 선운사 삼거리까지 바닷물이 밀고 들어왔다고 한다. 일대 강변은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면서 넓은 벌이 형성돼 가장 흔한 물고기가 장어였을 만큼 훌륭한 서식 환경을 제공했다.

당연히 장어를 이용한 음식점이 들어섰다. 시작은 1970년. 연기교 옆의 "연기식당", 그리고 길 건너편 "신덕식당" 등이 장어구이를 내놓기 시작했다. 물론 메인 요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장어가 스테미너 식품으로 각광받고, 선운사가 전국적인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다른 메뉴를 모두 물리쳤다. 지금은 100석 이상의 대규모 장어구이집이 무려 24곳이나 된다.

풍천장어의 기본 양념은 고추장이다. 업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비린내를 없애기 위한 생강을 비롯, 고춧가루·마늘·물엿 등 10가지 내외의 재로를 첨가한다. 주문과 함께 주방에서 완전히 구워 내놓는다. 장어는 대부분 3미(1㎏에 3마리라는 뜻)를 사용한다.

아쉬운 점은 관광지인 이유에선지 "인심"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요즘에는 좀 더 바닷가로 나간 곳에 들어선 "셀프 구이"집이 인기다. 가격도 30% 이상 싸 마니아들의 아지트가 되고 있다.

10여년 전 심원면 월산리에 들어선 "금단양만" "풍천골"이 들어선 이후 10여 곳이 주변에 흩어져 있다.



연기식당

1970년 연기교 옆에 작은 건물에서 출발했으니 올해로 40년째다. 그런데 선운사 입구인 선운사삼거리에 위치하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다.

2000년 다리 공사를 위해 250석 규모인 현재의 위치로 확장 이전했다. 그래도 단골 위주로 하루 최대 230㎏ 이상의 매출을 올릴 만큼 만만치않은 내공을 자랑한다. 시작 시기는 길 건너 신덕식당과 비슷하다.

정상규(37) 지배인은 "연기식당은 장어구이 등을 파는 식당이었고, 길 건너 신덕식당은 작은 식료품점 옆에 마련된 선술집 형태였다. 엄밀히 따지면 연기식당이 장어구이의 원조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한다.

우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이집만의 비결인 고추장 소스를 발라 세 번 굽는 것이 전부란다. 소스는 고추장에 고춧가루·물엿·소주·생강·마늘 다진 것 등 10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다. 한약재는 장어맛을 변하게 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장어는 2.5~3미로 비교적 크다. 간장 소스에 버무린 부추·양파와 곁들이면 느끼한 맛이 덜하다. 1인분 1만8000원.



구진포장어-전남 나주

영산포가 홍어를 대표한다면 구진포는 장어를 상징한다. 호남지방에서는 최고의 장어구이 타운으로 인정하는 곳이다. 구진포는 물이 깊어 1970년대까지 목포에서 영산강을 거슬러 영산포에 이르는 뱃길의 길목이었다.

1981년 영산강 하구를 가로막아 영산호를 만들기 전까지 일대는 과장된 표현으로 "어른 팔뚝만한" 장어가 가득했다고 한다. 포구엔 광주 등으로 공급하는 석유 기지가 있어 유동인구가 많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장어를 다룬 업소는 거의 없었다. 1965년 개업, 올해로 45년의 역사를 가진 "신흥장어"의 문정순(69) 사장의 회고다. "개업할 때만 해도 장어는 가장 흔한 물고기였지. 참복·웅어 등을 주문하면 서비스로 내놓던 게 장어였당게."

이유를 물으니 장어를 먹는 사람도 드물었지만 워낙 장어가 흔했기 때문이란다. 어부들이 물때에 맞춰 장어를 잡았는데, 장어집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한낮·밤중·새벽 등 때를 가리지 않고 어마어마한 장어가 들어왔다고 한다. 물론 모두 "자연산"이었다.

현재는 9개 업소가 영업중이다. 대부분 4미를 구워낸다. 6미는 잘고, 3미는 크기만 할 뿐 기름이 많기 때문이란다. 양념은 간장 소스다. 장어 뼈를 삶은 국물에 간장·생강·마늘·계피·물엿·당귀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걸죽해질 때까지 약한 불에 오랜 시간 끓여서 만든다.



신흥장어

문정순(69) 씨가 20대 중반이었던 1965년 개업했다. 당시에는 장어 외에 웅어회, 참복매운탕을 비롯해 자라·메기 등 민물고기 요리도 있었다. 그래도 메인 요리는 장어구이였다.

문 씨의 손맛과 정성은 초기부터 유명했다. 구이에는 간장소스를 사용하는데, 무려 일곱 번이나 양념을 바른다. 뼈를 삶아 진액을 만든 후 간장 외에 생강·마늘 등 20여 가지의 재료를 섞어 달이면 소스가 완성된다.

이 맛의 소문은 나주를 넘어 광주에서도 미식가들을 끌어모을 정도였다. 그 맛은 구진포 장어촌의 기준이 됐고, 아울러 이 집의 대를 잇는 전통이 됐다.

9년 전 아들 임영택(45) 씨에게 물려줬지만 구이에 사용하는 간장소스 만큼은 아직도 직접 만들고 있다. 구이에 사용되는 장어는 4미. 5미 이상은 잘아서 먹을 것이 없고, 3미 이상은 크기만 할 뿐 기름이 많아 많이 먹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1인분 1만5000원.



더리미장어-인천 강화

강화도 더리미마을은 예전엔 작은 포구였다. 오가는 사람을 대상으로 마을 한켠에는 웅어 등 흔한 물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막걸리를 팔던 선술집이 적지 않았다.

1980년 선술집 가운데 웅어무침과 더불어 장어구이를 내놓는 집이 생겼다. 해변집·더리미집·선창집 등이 비슷한 시기에 장어구이를 선보였다. 자연산 장어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잡히던 시절이라 인심도 후했단다.

구수한 장어 냄새는 바다 건너 김포도 모자라 인천·서울까지 퍼졌다. 단골의 발길이 잦아들면서 90년대 들어 주변에 하나 둘 장어구이집이 들어섰다. 지금은 모두 12개 업소가 "더리미장어마을"의 울타리 안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해변집 한순분(59) 사장은 "자연산 장어는 거의 없다. 그래도 가을이면 소량이나마 잡히고 있다. 이때에는 단골들이 먼저 알고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강화대교 인근은 한강 하류와 가까워 예로부터 장어가 많이 잡히던 지역이었다. 여름철 강화도 남쪽 동막 해안에 그물을 쳐놓으면 장어가 무더기로 잡혔다고 한다. 강화도 사람들은 이를 "여름장어"라 불렀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위해 영종도와 용유도가 개발되면서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주로 3미를 사용하는데, 통째로 구워 토막을 내는 다른 곳과 달리 더리미장어마을에서는 처음부터 토막을 내 초벌구이를 거친 장어를 테이블에서 숯불에 다시 구워먹도록 하고 있다. 고추장소스, 간장소스 등을 발라서 굽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손님 취향에 맞춰 소금구이를 내기도 한다.



해변집

주문과 동시에 장어를 잡아 굽기 시작한다. 주방에서 머리와 내장·뼈를 제거하고, 꼬리를 떼어낸 후 듬성듬성 썰어 약한 불에 노릇노릇하게 익힌다.

이어 고추장 또는 간장 등 취향에 맞게 양념을 한 후 다시 살짝 구워 내놓으면 테이블에서 마지막으로 구워 먹도록 하고 있다. 30년째 같은 방식이다. 최근에는 장어 고유의 맛을 즐기기 위해 살짝 구운 소금을 발라 굽는 소금구이를 찾는 경향이 늘고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테이블에 꼬리를 내놓는다는 점이다. 꿈틀거리는 꼬리를 직접 구워먹으라는 뜻이다. 살아있는 장어를 잡았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사용하는 장어는 3미로 약간 굵은 편이다. 숯불에 구워 기름을 쪽 뺀 상태임에도 한 입에 먹기 버거울 만큼 크다. 반쯤 잘라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

간장 소스는 뼈·머리 등을 5시간 이상 끓인 물에 간장·생강·엿·후추 등을 넣고 다시 5~6시간 끓여 완성한다. 고추장 소스는 고추장에 엿·마늘·생강 등 5~6가지 재료를 첨가한다. 1㎏ 6만원.



노지장어

노지장어를 키우는 가두리는 장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차단막을 쳤을 뿐 환경은 자연 상태와 별반 차이가 없다. 게다가 사료나 별도의 먹이도 주지 않는다. 이렇게 두 달 이상 놓아두면 불필요한 지방이 빠지면서 자연산 장어와 비슷한 몸집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 때 크기는 4미가 기본이다.

최초로 노지장어를 길러낸 주인공은 갯벌체험으로 유명한 고창 하전마을 인근에서 셀프장어구이집 "양가네"를 운영하는 양동훈(62) 대표다. 양 대표는 1980년대 중반 심원면 바닷가에 전국 최초로 가두리를 이용한 노지장어를 길러 전국 유명 장어구이집에 납품했다.

6년 전 이를 이용한 셀프장어구이집을 오픈했다. 강화에서는 이곳에서 노하우를 전수해간 일부 양식업자들이 갯벌장어라는 이름으로 양식·판매하고 있다. 1㎏에 6만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063-564-4894.



풍천골

고창에서 처음으로 셀프장어구이를 선보인 곳이다. 올해로 10년째다. 역시 하전마을 부근 바닷가에 있다. 통나무를 얽어 건물 바닥을 지상에서 약 1.5m 뜨게 지어 마치 커다란 원두막을 연상시킨다. 따로 주문이 필요없다.

자리에 앉으면 번개탄을 이용한 불이 얹어지고, 석쇠 위로 장어를 가지런히 눕힌 다음 죽염을 살살 뿌려준다.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손님이 알아서 구워 집게와 가위로 잘라 먹으면 된다. 원할 경우 고추장 또는 간장 소스를 바르기도 하는데, 대부분 소금구이를 즐긴다. 상에는 묵은지, 상추·고추 등 채소 등이 올려진다.

모두 바로 옆 텃밭에서 기른 무공해 식품이다. 풍천골처럼 셀프로 장어를 구워먹는 식당이 주변에 10여 곳 된다. 선운사 삼거리의 풍천장어마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장어는 ㎏ 단위로 판매한다. 때에 따라 3미 또는 4미를 내놓는다. 1㎏에 3만2000원. 택배나 포장은 2만8000원. 이곳에서 직접 담근 복분자주는 500㎖ 한 병에 6000원. 063-563-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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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묵밥 명가, 영주 순흥전통묵집

“메밀하면 사람들이 봉평을 떠올리는데, 왜 그런지 알아요? 못살아서 그렇다 아입니까. 그 동네가 워낙 땅이 척박한데다가 논이 별로 없으니깐 메밀밖에 안자라는기지. 여도 똑같습니다. 소백산 자락에 먹을 게 신통찮으니깐 한겨울 농한기가 되면 집에서 메밀만 주구장창 만들어 묵었다 아입니까.”

순흥전통묵집의 장남 황기준(46)씨가 시커먼 가마솥 앞에 앉아 묵을 쑤고 있다. 걸쭉하다 못해 뻑뻑해진 반죽을 긴 나무주걱으로 쉬지 않고 저어댄다.

7월 한여름 뙤약볕에 아궁이의 열기까지 더해진 부엌은 한증막을 방불케 한다. 순흥전통묵집은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묵을 만드는 몇 안 되는 묵집이다. 맷돌의 역할을 방앗간에 내 준 것 만 빼면, 묵밥 집을 시작한 40년 전과 어느 것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가마솥에 불 때서 손으로 묵 쑤는 게 신기하다고, 도시 사람들은 어린 애들 델꼬 일부러 구경도 온다 아닙니까. 근데 이게 볼라카면 좋은데 할라카면, 콧구멍은 시~꺼메지고 손은 온통 굳은살이 박혀서 요즘 사람들은 억만금을 준다케도 안 할라케요.”

메밀을 갈아 껍질을 채에 걸러낸 뽀얀 엑기스는 1시간을 쉬지 않고 저어줘야 한다. 건장한 남자들도 힘에 부쳐하는 고된 작업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든의 나이에 가까운 정옥분(79)사장이 직접 해왔던 일이다.

한사람이 젓는 동안 또 한사람은 장작과 폐지로 아궁이 불을 조절한다. 처음부터 불이 세면 묵이 되기도 전에 타버리고, 은근한 불에 오랫동안 끓여야 탄력 있고 맛있는 묵이 된다. 묵 쑤는 일은 그야말로 ‘느림의 미학’이다.

주걱의 회전속도가 눈에 띄게 둔해질 즈음, 황 씨가 솥뚜껑을 닫고 수양하듯 틀고 있던 가부좌를 털고 일어난다. 묵 만들기의 마지막 단계인 뜸들이기 과정이다. 마침내 노역에서 해방된 그가 벌겋게 익은 얼굴에 찬물 몇 바가지를 끼얹더니, 담배 한 개비를 물고 한숨을 돌린다.

“한때 이 동네가 말입니다. 비가 와도 4~5km는 비 한방울 안 맞고 걸을 수 있다고 할 만큼 기와집이 많은 동네였거든요. 뭔 말이냐면, 그만큼 흥한 동네였단 말입니다. 근데 금성대군이 영주 순흥도호부 부사랑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발각되면서 이 일대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맹글어 뿐거래요. 얼마나 사람이 많이 죽었으면 핏물이 흘러 모였다는 ‘피끝’이라 카는 동네가 다 있겠습니까.”

몰락한 산골마을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메밀이었다. 따뜻한 육수에 가늘게 썬 메밀묵과 뜨뜻한 조밥을 만 묵밥은 이때부터 가난한 농가의 소중한 겨울식량이 되었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뜸들인 묵을 커다란 양동이에 옮겨 담기 시작한다. 나무주걱으로 재차 휘저으며 ‘고운 묵 되라’ 하더니, 배탈 난 손자의 배를 어루만지듯 곱게 쓰다듬으며 표면을 매끈하게 정리한다. 가마솥 하나에서 양은그릇 4개 분량의 묵이 나왔다.

“메밀묵이 엄청 예민해서 식히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식으면서도 상해뿌니깐 여름에는 선풍기까지 쐬줘 가면서 선선하게 식카야되요. 그렇다고 채 식기도 전에 냉장고에 넣어 뿌면 쉰내가 나서 안 되고….”

오늘 만든 묵은 하루가 지나야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묵을 만들 때는 다음날 찾아올 손님수를 미리 가늠해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둔다. 많을 때는 700~800명까지 몰려오니 하루도 그냥 쉴 틈이 없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좁은 부엌에서는 사장인 정옥분 할머니가 묵을 썰고 있다. ‘맛 좀 봐도 되냐’ 물었더니 묵 한쪽 귀퉁이를 손으로 뚝 때내 건넨다. ‘간장을 좀 찍어먹어야 맛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양념을 하지 않아 메밀묵의 구수한 맛이 입안으로 그대로 전해진다.

이곳의 메뉴는 단 한가지다. 조선간장, 멸치로 맛을 낸 육수에 투박하면서도 길게 썬 메밀묵 채가 담긴 전통묵밥(5000원) 뿐이다. 숯으로 구운 김, 잘게 썬 신 김치, 무채, 들깨가루가 내용물의 전부지만 맛에 있어 모자람은 없다.

함께 나오는 찬에는 깍두기가 빠지지 않는데 이는 메밀에 있는 미량의 독소를 무가 해독시켜주기 때문이란다. 젓가락 끝에 매달려 휘청휘청 대는 묵채를 후루룩 입안으로 빨아 당긴다. 진한 조선간장 풀어헤친 육수도 입 안 가득 머금어 삼키고 나면 금방 배가 불러온다. 여름에는 차갑게, 겨울에는 따뜻한 육수로 내놓는다. 054-634-4614.



도토리묵 명가, 대전 할머니묵집

‘참나무는 들판을 보고 열매를 맺는다." 말이 있다. 들판의 곡식이 풍작이면 도토리가 적게 달리고, 흉작이면 도토리가 많이 달린다는 뜻이다. 흉년에 도토리라도 주어 끼니를 때울 수 있었으니 도토리묵은 지역을 불문한 서민들의 먹을거리였다.

‘할머니 묵집’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표 묵밥집이다. 대전의 대표 묵마을인 구즉동의 원조 묵밥집이였다가, 재개발로 마을이 사라지면서 지금의 유성 관평동으로 이전을 했다. 창업주인 강태분 할머니는 올해 1월, 83세의 일기로 작고하고 그의 아들이 1호점을, 손자며느리가 "옛정‘이라는 상호의 2호점을 오픈해 대를 이어가고 있다.

“어린 손자들 먹여 살리려고 돌아가신 할머님이 묵장사를 시작하셨대요. 처음부터 묵집이라는 간판을 걸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큰 광주리에 집에서 만든 두부와 묵을 담아 온 동네를 다니며 묵을 팔았어요. 새끼 꼬는 사람들, 구즉다리 공사 인부들이 할머니의 단골손님들이었죠.”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대전 엑스포가 열렸던 1993년. 한 일간지에 대전맛집으로 소개가 되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난 것이다.

“한 방에 9~10명이 앉아 하루 종일 도토리묵만 썰고 있었을 만큼 장사가 잘됐어요. 그래도 수요를 못 따라가 ‘묵써는 틀’까지 만들어썼다니깐요.”

손자며느리인 조미옥(37)씨의 이야기다. 이집 묵밥은 계절을 불문하고 늘 따뜻한 온반형태로 나간다. 맹물에 오직 조선간장과 고춧가루, 파만 넣어 끓여낸다는 육수지만 맛은 전혀 가볍지 않다. 이름은 묵밥(5000원)이지만, 밥은 따로 주문을 해야 한다.

대신 묵채는 양껏 리필이 가능하다. 묵은 가게에서 직접 만들지만 도토리 전분을 구입해 쓰고 있다. 042-935-5842.



청포묵밥 명가, 문경 소문난 식당

메밀묵과 도토리묵이 가난한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비상식량이었다면 청포묵은 양반들을 위한 별식이었다.

“지금이야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신혼여행을 떠나지만, 예전 경상도에서는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신랑 댁으로 가는 게 수순이란 말이지. 신랑 집 입장에선 20년간이나 귀한 딸을 키워온 사돈댁이 얼마나 귀한 손님이겠어.

귀한 손님한테는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게 당연하지. 삼시세끼만 내는 게 아니라, 밤되면 야참까지 들여보내. 그게 바로 청포묵이야. 또각또각 썬 청포 골패묵에 집에서 담근 맑은 술을 같이 대접하는 거야. 딴 지방은 어땠는가 몰라도, 경상도 이 지방에서는 그렇게 했다고.”

경북 문경 "소문난 식당"의 장창복(73)사장의 이야기다. 모시 두루마기 소맷자락만큼이나 새하얀 청포묵은 녹두 앙금으로 쑨 묵이다. 도토리묵, 메밀묵보다 더 단단하고 탄력이 있다. 손바닥으로 꾹 눌러도 으깨지거나 상처가 나기는커녕 탱글탱글하게 제 모양을 유지한다.

“참깨가 젤 비싼 줄 아는데 실은 녹두가 젤로 비싸. 다른 곡류는 기다렸다 한몫에 거두면 되지만 녹두는 익는 족족 꼬투리를 따야 되니깐 농사짓기가 힘들어. 요즘 농촌에서도 힘든 일은 안할라 그러지, 그러니깐 집에서 서나치 먹을 만큼만 짓고 대량으로 농사짓는 데가 별로 없어.”

묵 만들기만큼이나 힘든 것이 재료를 구하는 일이라며 청포묵 만들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소문난 식당의 장창복 사장과 그의 아내 박남복(72)씨는 40년이 넘게 묵밥 집을 하고 있다. 그의 세 자녀 모두 대구, 서울 등지에서 흩어져 묵장사를 하고 있다.

“먼저 녹두를 갈아야되요. 예전에는 맷돌로 했지만, 요즘에 그렇게 하면 밥 빌어먹어요. 기계로 껍질을 벗긴 녹두를 물에 담가 불린 다음 다시 한 번 더 갈고, 자루에 넣고 짜요. 처음엔 성긴 채에 거르고, 두 번째는 보드란 자루에다 걸러요. 여러 번 거를수록 좋은 묵이 되요.”

귀로 듣기에는 라면 끓이는 일 만큼이나 쉬워 보이는데, 제대로 하려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인 동시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직접 맹근 묵이 아니라 묵공장에서 사다 온 묵을 파는 식당도 널렸어요. 근데 사다온 묵이랑 맹근 묵이 절대 같을 수는 없는 법이래요. 진짜 묵은 바닥에 널짜도 깨지지도 않고 요래 탱탱하거든요.”

이곳에서는 청포묵밥과 도토리묵밥 두 종류를 모두 맛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여느 묵밥과 달리 육수 없이 양념간장에 비벼먹는 묵비빔밥이라는 것이다.

육수를 넣으면 청포묵 맛이 국물에 묻힌다는 것이 장 사장의 생각이다. 반찬도 푸짐하다 계절에 따라 종류는 다르지만 최소 12찬이 딸려 나온다. 상위에 올라온 된장이며, 간장, 고추장은 모두 박 할머니가 직접 만든 것이다. 청포묵조밥 8000원, 도토리묵조밥 6000원. 054-572-2255.



양평 도토리국수집

살얼음이 동동 띄어진 시원한 맛의 도토리 묵밥으로 유명하다. 사과·배·양파·생강·상황버섯·다시마 등 20여 가지의 재료를 4시간 이상 끓여 만든 육수가 새콤하면서 깔끔하다. 다른 묵밥 집에 비해 묵채위에 올리는 고명이 유난히 푸짐하다.

쑥갓, 미나리, 부추, 신김치, 오이채, 당근에 삶은 달걀까지 들어있다. 부모님이 하시던 묵밥 집을 아들이 이어받아 16년째 묵을 만들고 있다. 육수 없이 양념간장으로만 간을 해서 비벼먹는 묵비빔밥도 인기다. 묵탕국 6000원, 묵 비빔밥 6000원. 031-771-7562.



영월 주천묵집

30년째 3대를 이어 묵밥을 만들고 있다. 메밀묵과 도토리묵밥을 둘 다 맛 볼 수 있다. 묵이 어찌나 찰지고 탄탄한지 젓가락으로 쥐고 흔들어도 끊어지지 않고 찰랑거린다. 멸치로 맛을 낸 육수를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차게 해서 내놓는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부엌에서 매일 저녁 직접 묵을 만들고 있다. 콩자반, 다진 고추, 오이장아찌 등 10여 가지 반찬이 함께 나온다. 묵밥 5000원. 포장가능. 033-372-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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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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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동 함흥냉면

일반인들에게 '오장동 함흥냉면'하면 떠오르는 집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맛평가는 아쉽게도 '명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를 받았다. 면은 좀 질긴듯하지만 굵기는 무난하다. 조금만 두면 면이 굳어서 뭉쳐지는데 고구마 전분 이외에 다른 것을 섞지 않았다는 반증이다.그래서 되도록 빨리 비벼 먹어야 한다.

육수와 회(꾸미)에 대해서는 평가단 모두 아쉽다는 반응이다. 육수는 본연의 맛보다는 간장 냄새가 날 뿐 아니라 다양하고 깊은 맛이 없다.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회에 대해서도 구본길 교수는 "약간 퍽퍽한 느낌을 주고 양념이 속속 배이지 않아 상큼하다거나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대신 양념은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적당히 맵고 향신료의 자극이 덜해 먹기 편했다는 반응이다.



신창면옥

3곳 중 가장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가단들로부터는 가장 주목을 받았다. 으뜸 점수를 받은 부문은 회(꾸미). 육주희 편집장은 "쫄깃 쫄깃하면서도 오독오독한 식감과 적당히 간이 배어 있어 먹기에 좋았다"고 말했다. 양념도 마늘 등 향신료의 톡쏘는 맛이 강해 다소 자극적이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여성들의 기호에 맞을 듯 하다.

면은 100% 고구마 전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 이유가 오래 두어도 엉켜붙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는 전분 이외에 다른 첨가재가 들어갔다는 의미이다. 면발은 세 곳 중 가장 길기다. 육수는 가장 아쉬운 부문. 육류 특유의 냄새와 짠맛, 마늘 향이 강해 3명 모두에게 다소 거부감을 받았다.



오장동 흥남집

오장동에서 가장 오랜된 집. 1953년에 오픈햇으니 벌써 56년째다. '서울의 함흥냉면집 3대 명가' 중 한 곳으로 꼽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다. 평가단도 마찬가지였다.

면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들었는데 다른 집과는 달리 메밀도 섞었다. 면발은 소면 굵기로 먹기에 적당하다. 그러나 양은 3곳 가운데 가장 적어 여성에게는 알맞을 지 모르지만 남자들은 사리를 추가해야 할 듯하다. 육수는 고기 냄새가 거의 없는데 짠맛이 약간 강한 편이다. 깊이 있는 맛과 깔끔한 감칠 맛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는 지적이다.

회와 양념 부문에선 의견 차이가 심했다. 육주희 편집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액체와 참기름이 흥건하게 깔려 있어 보기에도 맛이 떨어진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건다운은 "거친 느낌의 양념과 잔뜩 뿌려진 참기름을 통해 정통 함흥냉면을 먹는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예지동 곰보냉면

오장동 흥남집·명동 함흥면옥과 함께 서울의 3대 함흥냉면집으로 꼽힌다. 서울 종로 4가 끝자락인 예지동, 1970년대의 시장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계 골목 안에 있다. 곰보는 말그대로 '얼굴 흉터'를 말한다. 1961년 처음 이 집을 오픈했던 함흥 출신 사장 부부의 얼굴에 흉터가 있어 붙였다고 한다.

지금은 배정지(65)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원주인 때도 장사가 잘돼 아주 유명한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영을 잘못해서 망하게 된 것을 제가 인수했죠. 그때가 1987년 10월인데 이듬해 2월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함흥냉면의 명가로 꼽히지만 배 사장은 함흥과는 상관없는 경북 안동출신이다. 장안에 소문난 맛은 30년째 배 사장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조완영(52) 주방장의 공이라는 것이 배 사장의 설명이다. 한우 사골등을 넣고 끊인 육수는 고소하다.

육수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아르헨티나산 가오리를 사용하는 회(꾸미)의 양은 보통이지만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고 달지도 않다. 48년간 시계 골목을 지키던 곰보냉면이 곧 이사를 간다. 재개발 탓에 현위치 맞은 편의 세운스퀘어 4층으로 빠르면 오는 9월 옮긴단다.



명동 함흥면옥

명동에서 45년째 영업 중이다. 원래 함흥이 고향인 실향민 사장이 처음 문을 열었다. 지금은 그의 외조카인 박영철(60)사장과 동생 박민철(50)씨가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 함흥냉면 3대 명가답게 졸낏한 면발, 짭짤한 육수, 오독오독 씹히는 꾸미 등 나무랄데 없다. 양념도 달콤해 먹기 좋다.

일본 관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다른 냉면집과 달리 젊은 손님들이 많은 게 특징.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양이 적어 남자들은 사리를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는 강북 유명 냉면집 중 으뜸이다. 육수가 비면 종업원들이 손살같이 달려와 따라준다. 너무 자주 채워져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 '손님이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분위기도 냉면집 같은 느낌이 없을 정도로 좋다. 휴지도 일회용 물수건처럼 생긴 개인용 휴지를 내놓는다. 그래도 박영철(60)사장은 "종업원들에게 그때 그때 교육을 시킨다. 손님들의 반응이 좋지만 그래도 아직은 멀었다"고 말한다. 명동 충무김밥집 골목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있다.



속초 단천식당

3대째 냉면 맛을 이어오고 있다. 단천은 식당을 처음 연 김화종(작고) 할아버지의 고향이다. 함경북도 단천군 출신인 김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후 남으로 내려와 강원도 속초 아비아미을에 정착한 후 1970년대 초 개업했다. 이후 며느리 윤복자씨에 이어 지금은 손자 김한성씨(40)가 운영하고 있다. 동해에서 잡힌 가재미(7000원)와 명태(6000원)를 꾸미로 올리는 것이 서울과 다른 점이다.



부산 내호냉면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피난촌인 부산시 남구 우암동에서 문을 연 후 57년째 한 자리에서 맛을 이어오고 있다. 함경남도 흥남시 내호동 출신인 이영순(작고)할머니에 이어 정한금(작고)-유상모(62)-유재우(30)씨까지 4대째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이 집은 육수 맛이 뛰어나다. "이틀에 한번 한우 사골에 마늘과 생강 등을 넣고 7시간 이상 고아서 만든다"는 것이 유상모 사장의 설명이다. 부산 밀면집의 원조로도 유명하다



대구 대동면옥

대구에서 '이 집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만큼 유명하다. 1951년 문을 열었지만 여러번 주인이 바꼈고 현재는 1988년 인수한 이옥자(54)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시간대를 잘못 잡으면 번호표를 받고 30분 정도는 줄을 서는 것이 기본이다. 섬유회관에서 서성네거리 방향으로 가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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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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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래옥

1946년, 평양 출신 장원일(작고)씨가 을지로 근방에 문을 연 우래옥은 애초부터 평양 출신 냉면 주방장이 있었던 곳이다. 한국전쟁 직후 이 곳에 들어가 당시 주방장이었던 주병인(작고)씨로부터 냉면을 배웠다는 김태원(76)씨는 “주방 옆에서 쪽잠을 자다가 새벽 4시에 주방장이 발로 차서 깨우면, 냉큼 일어나 장작을 떼서 고기 삶는 물을 끊였다”고 전한다.

1960년대 우래옥 냉면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는데, “일요일에 창경궁 구경나온 서민들이 외식 메뉴로 대부분 냉면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하루에 “360초롱(1초롱은 약18ℓ, 냉면 30그릇 분량의 육수) 정도를 냈다”고 하니, 손님이 하루에 1000명은 족히 넘었다는 셈이다.

1960년대 초반부터 이 곳에서 일해온 김지억 고문은 “냉면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육수 재료는 여러 번 변했다”고 한다. 가장 큰 변화는 88올림픽 전까지는 육수 재료로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 등 종류를 따지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는 쇠고기 만을 고집했다는 점이다.

“80년대 후반, 지금의 자리로 옮긴 이후에 사람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한거야. 왜 비싼 냉면에 돼지고기가 들어있냐는 거지. 그때는 꾸미에 돼지고기랑 쇠고기를 같이 올렸거든. 그래서 ‘좋다, 그러면 우리집은 돼지고기 안 쓴다’ 그러고서는 육수나 꾸미를 모두 쇠고기로만 했지.” 김 고문의 말이다.

시내 유명 냉면집 중에서 오직 쇠고기로만 육수를 내는 집은 그리 많지 않다.보통 다른 집들은 육수에서 고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양파·대파 등을 함께 넣어 끊이지만, 이 곳만은 오직 쇠고기 삶은 물에 그대로 내는 것이다.

현재 우래옥의 냉면 주방장 설동창(41) 씨는 육수를 끊일 때 “고기 삶은 물에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할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넣지 않는다”고 말한다. 쇠고기 또한 “한우만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우래옥 냉면은 구수한 맛이 진하게 배어나온다. 다른 집에 비해 "육수가 짜다” “간에 센 편이다”라는 평을 받는 것도 그런 연유다.

오직 쇠고기만으로 육수를 내는 평양냉면은 애초 ‘꿩고기 육수와 동치미’로 대변되는 본래의 평양 스타일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래옥에는 수십년 동안 이 곳만을 고집해온 단골들이 많다. 50년 단골이라는 박윤성 씨는 “20대 시절 이 곳에서 먹었던 냉면과 변함없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이집 냉면은 동치미 국물 맛이 일품”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40년 넘게 우래옥에서 일해온 김 고문은 “한번도 냉면 국물에 동치미를 섞어 판 적이 없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랜 단골들에게 우래옥 냉면은 ‘향수’ 자체인 셈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육수 레시피

재료: 물 약 100ℓ(솥의 2/3), 양지·사태 살 42kg, 소금 약 2.3kg, 간장(삼화 ‘맑은 국간장’) 약 4ℓ

* 매일 아침 180ℓ짜리 솥 2~3개에서 끓여낸다. 쇠고기 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넣지 않는 게 특징이다.

■ 국수

메밀과 전분의 비율은 겨울철에는 3:1, 여름철에는 2:1 비율로 섞는다.



봉피양

봉피양은 벽제갈비 본점(방이동)에 딸린 냉면 전문점이다. 전통의 명가는 아니지만, 평양냉면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김태원(77) 조리장이 2002년부터 이곳에서 냉면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다른 직원들은 그를 ‘냉면 어르신’으로 부른다.

그는 1950년대 초반 우래옥에서 평양냉면 조리법을 전수받은 이래, 60년 후반 이후 “서울에서 이름 있는 냉면집은 대부분 (내가) 코치했다”고 주장할 만큼 냉면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이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명 냉면집 주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평양냉면을 전파한 장본인이라는 점은 업계 종사자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냉면 전도사’라 이르고, 혹자는 서울식 평양냉면을 혼란에 빠트린 장본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평양냉면의 레시피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현재 봉피양의 평양냉면 레시피만 봐도 이런 ‘혼란’은 엿보인다. 일단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쇠고기·돼지고기 등뼈와 노계(늙은 닭)를 넣는다는 점이다. 김 조리장은 “등뼈는 진한 맛을 내기 위해, 노계는 예전에 썼던 꿩 대신에 쓰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고기를 한번 삶은 물에 파·무·마늘 생강·양파 등 많은 양념 재료를 넣고 한번 더 끊인다. 물론, 고기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우래옥의 김지억 씨는 “좋은 고기를 쓰지 않기 때문에 냄새를 빼려고 그런 쓸데 없는 것을 많이 넣은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두 사람은 한때 우래옥에서 같이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봉피양 냉면은 육수 10ℓ에 동치미 국물 1ℓ를 섞다는 것이다. 시내 유명 냉면집에서 이렇게 철저한 비율로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섞어내는 집은 드물다. 동치미는 차갑게 담궈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나는 이북식보다는 서울식에 가깝다. 배추와 무 등이 적절히 들어간 시원한 국물이다.

육수 맛을 내는 다양한 재료, 육수와 동치미의 정확한 배합 등은 50년 넘게 냉면 농사를 지어온 김태원 조리장만의 노하우임은 틀림없다. ‘김태원의 냉면’이 지금까지 여러 매스미디어를 통해 자주 ‘가장 맛있는 냉면’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육수 레시피

재료: 물 240ℓ, 쇠갈비등뼈 돼지등뼈 10kg, 사태·양지살 각각 30kg, 노계 4마리, 파 3kg, 무 2개, 마늘 2kg, 생강 300g, 양파 10개

* 매일 아침 6시 15분에 끊인다. 보통은 이틀에 한번, 여름철에는 매일 한 차례씩 끊인다. 육수 10ℓ에 동치미 1ℓ 섞는다.

■ 국수

메밀과 전분을 보통 3:1 비율로 쓴다. 장마철에는 1:1까지 섞어 쓰기도 한다. 메밀가루는 음식점에서 직접 빻아 쓴다.



평양면옥

평양면옥을 ‘평양냉면의 원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의정부 평양면옥을 포함해 을지로의 필동면옥·을지면옥, 최근 잠원동에 생긴 본가 평양면옥까지 서울의 유명 냉면집들이 모두 한 집안의 2세대들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영남(2000년 작고) 씨가 경기도 전곡에 평양냉면집을 연 시기는 1970년, 다른 냉면 명가에 비해 상당히 늦은 편이다. 홍 씨의 자녀 중 현재 의정부 평양면옥 대표로 있는 장남 홍진권(57)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군대 제대하자마자 가게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육수를 끊이시고, 어머니는 메밀가루를 빻아 국수를 내고, 저는 자전거에 배달통을 달고 냉면을 배달하러 다녔죠. 당연히 세 여동생은 국수 뽑고, 서빙하는 일을 거들었겠지요. ”

평양면옥은 전곡·의정부 버스터미널을 거쳐 1987년 지금의 자리인 지하철 1호선 회룡역 부근에 자리잡았다. 이 즈음 첫째딸 홍순자(55)씨가 현재 대표로 있는 필동면옥(1985년 개점)과 을지면옥(1985년 개점)이 을지로 부근에 자리잡으면서, 이들 남매의 ‘냉면 일가’는 서울을 대표하는 냉면집으로 이름을 알린다.

당시 서울 중심에는 우래옥·한일관·거북성 등 쟁쟁한 냉면집들이 많았지만, 후발주자였던 필동면옥·을지면옥이 서울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한 것이다.

남매의 냉면 육수 내는 법은 비슷하다. “아버지는 항상 좋은 재료를 써야 한다고 하셨어요. 의정부 포함해서 4남매가 하는 냉면집 모두, 가게 안에 방앗간이 있지요. 육수 레시피는 예전 방식 그대로구요. 그 때도 돼지고기, 쇠고기를 함께 삶았죠. 다른 데는 양지 살을 같이 쓴다고 하는데, 우리집은 사태만 써요." 필동면옥 홍순자 씨의 말이다.

메밀은 커피를 로스팅하듯 “그날 그날 쓸 양만 빻고”, 육수는 애초 기름기가 적게 빠지는 사태살만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의정부의 홍진권 씨는 “주방장을 두지 않고, 직접 육수를 끊여낸다”고 덧붙인다. 이는 “아버지가 하던 방식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한다.

평양면옥(의정부·필동·을지면옥 등)을 자주 찾는 냉면 마니아들은 “국물이 깔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간이 세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홍진권 씨와 홍순자는 “고기를 삶아 육수 원액을 만든 다음, 소금 간을 하고 물을 조금 붓는다”고 말한다. 일정 정도 물과 희석한다는 것이다.

■ 육수 레시피(정확한 레시피 공개하지 않음)

재료: 물 한 솥, 돼지고기 삼겹살, 쇠고기 사태살,양파·대파 적당량, 소금 일정량

※ 매일 아침 한 차례씩 끊인다. 육수를 만들어 식힌 후 원액에 물을 더 부어 사용한다.

■ 국수

음식점에 있는 방앗간에서 직접 빻아 쓴다. 메밀은 중국산을 쓴다. 메밀과 전분(고구마)의 비율은 보통 3:1, 여름철에는 전분 양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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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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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추탕

가게 이름이 투박하다. ‘곰보추탕’인 이유는 창업자의 별명이 곰보였기 때문이다. 1933년, 고 정부봉 씨는 당시의 신설동 전화국 앞에 추어탕 가게를 차렸다. 친구들은 “네 얼굴이 곰보니 곰보추탕이 어떠냐” 라고 농담처럼 권했고 그렇게 상호가 탄생했다. 간판 메뉴는 추어탕이었지만 설렁탕 · 냉면· 갈비탕· 생태탕· 선짓국에 소 염통구이까지 팔았다. 배고프던 시절이었기에 ‘되는대로 팔았던 것’이다.

그러다 20년 전부턴, 가장 인기였던 추어탕만 팔기 시작했다. 현재 주인인 조명숙 씨(68)는 67년 시집 온 직후부터 가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곰보 할아버지는 막내며느리인 조 씨를 “양반집 딸인데다 알뜰하기까지 하다”며 유난히 아꼈고 살림을 모두 맡겼다. 시집온 지 4년 만에 시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그 때부턴 조 씨가 가게를 도맡아왔다.

곰보추탕에서는 소 양지머리를 3시간 우려 육수를 만든다. 미꾸라지는 소금을 뿌린 채로 40분간 두었다가 깨끗이 씻어 해감을 제거한 뒤 양지머리 육수에 넣어 30분간 삶는다. 삶아낸 미꾸라지는 생강· 후추· 마늘로 양념해 하루 동안 냉장고에 넣어 둔다. 하루 뒤 냉장고에서 꺼낸 미꾸라지는 투명한 자연 젤라틴이 형성돼 마치 커다란 묵 같다.

양지머리 육수엔 늙은 호박· 두부· 유부 · 버섯· 달걀· 양파· 대파를 넣고 육수 우릴 때 썼던 양지머리 고기도 잘게 찢어 넣는다. 소량의 밀가루도 푼다. 밀가루는 구수한 맛을, 늙은 호박은 조미료 대신 단 맛을 낸다. 국물 양념은 고추장과 고춧가루, 후춧가루로만 한다.

곰보네 추탕은 가게 이름만큼이나 투박한 맛이 난다. 서울식이라고 하지만 마치 시골집 할머니가 끓여주는 듯 정겨운 맛이다. 그러나 가게의 77년 역사는 얼마 안 가 세월 속에 묻힐 전망이다. 물려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손이 많이 가는 어려운 추탕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아들에게 차마 강요할 수가 없어서란다. “어쩔 수 없다”고 담담히 말하는 할머니와 달리 안타까워하는 것은 곰보추탕의 정겨운 맛을 아끼는 단골손님들이다. 따로추탕 한 그릇에 1만원. 02-928-5435.



형제추어탕

지금은 ‘형제웰빙타운’ 이라는 이름 아래 크고 화려한 시설을 자랑하지만, 시작은 1926년 자그마한 ‘형제주점’이었다. ‘형제주점’ 이었던 이유는 창업자인 고 김기선 씨 슬하에 아들만 다섯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추어탕 가격은 15원. 주점에서 팔던 술안주 중 하나였던 추어탕은 인기를 끌었다. 김기선 씨가 작고한 1932년, 다섯 형제는 주점 간판 옆에 ‘추탕’ 간판을 나란히 내 걸게 된다.

형제추어탕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배달 자전거. 추어탕그릇을 한 손에 쌓아 든 채 달리는 자전거 배달원들은 당시 가게가 위치한 신설동 거리의 명물이었다. 32년 국내에서 일본인들이 개최한 자전거대회에선 우승을 하기도 했다.

덩달아 배달원을 자청하는 젊은이들까지 나타났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이들은 “월급은 안 받아도 좋으니 실컷 먹게만 해 달라” 고 했다고. 현재 주인인 김영식(59)씨는 김기선 씨의 막내아들인 고 김윤희 씨의 셋째 아들이다.

이 집의 특징은 한약재로 키운 미꾸라지와 10년 된 조선간장을 쓴다는 것이다. 육수는 소의 사골과 양지머리로 우린다. 숙주나물· 두부 · 유부· 버섯 · 달걀 · 양파· 대파를 넣고 끓이다 탕이 완성될 무렵, 소금을 1~2분간 뿌려뒀던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잠시 뜸을 들인다.

양념은 조선간장과 마늘· 생강· 고춧가루로 한다. 맛은 ‘해장국용으로 딱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시원하고 칼칼하다. 가격 1만원. 02-919-4455.



용금옥

원래 자리인 중구 다동에 있는 것이 ‘용금옥’인데, 종로구 통인동에 '원조'를 단 용금옥이 또 하나 있다. 다동의 용금옥은 창업자인 고 홍기녀 씨의 큰 손자며느리인 오지현(49)씨가 대를 잇고 있고, 통인동 용금옥은 셋째 며느리 한정자(67)가 따로 문을 연 곳이다. 한정자 씨는 시어머니가 작고한 1982년부터 용금옥 주방을 맡아오다가, 97년 분가해 같은 골목 끝에 ‘원조 용금옥’을 차려 운영하다 지난해 통인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용금옥은 53년 판문점 휴전회담 당시 북측 통역이 언급한 것을 계기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김일성 전 주석의 통역관은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6·25때 월북한 김동석이었다.

그는 회담 휴식시간에 서울 측 기자들에게 “지금도 용금옥 추탕 맛은 여전한가? 주인아주머니는 안녕하신가?” 라고 물었다. 기자들은 “김동석은 서울을 그리워하며 용금옥의 낭만을 떠올렸고 깊은 향수에 젖었다” 라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이후 용금옥의 인기를 하늘을 찔렀지만, 김동석은 회담 장소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창업자인 홍기녀 씨의 시집은 몰락한 양반가였다. 알뜰했던 홍 씨는 시부모 몰래 녹두빈대떡을 부쳐 막걸리와 함께 내다 팔았다. 그래서 ‘원조 용금옥’ 메뉴 중엔 막걸리와 녹두빈대떡이 있다. 막걸리 단위를 ‘주발’로 표기해 파는 것도 당시 홍기녀 할머니가 팔았던 형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홍 씨가 장사를 시작한 32년은 일제가 쌀 막걸리 금지령을 내렸던 때였다. 남성용 밥그릇을 뜻하는 ‘주발’은 당시 홍씨와 손님들 사이에 ‘막걸리 한 그릇’을 뜻하는 은어였다. ‘원조 용금옥’은 소 내장과 사골로, ‘용금옥’은 소 내장과 양지머리로 육수를 우린다. 두부· 유부· 버섯 · 달걀 · 대파· 양파· 실파 등을 넣는다. 양념은 고춧가루· 생강 · 마늘로 한다.

자극적이지 않은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다. 마늘과 향신료를 적게 넣기 때문이다. 원조용금옥(02-777-4749 )과 용금옥(02-777-1689 ) 모두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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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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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오막집

51년 전통의 부산양곱창 원조

부산 양곱창의 원조로 꼽히는 집. 원래 상호는 ‘오막집’이었으나 3년 전 ‘옛날오막집’으로 바꿨다. 1958년 문을 연 김수연(80) 할머니에 이어 15년 전부터 막내 딸 이정자(40)씨가 가게를 맡아 꾸리고 있다.

이집의 양곱창은 고춧가루와 물엿을 섞어 만든 양념장이 진하게 밴 ‘경상도’스타일이다. 이 형태가 서울로 전해져 지금 유명한 서울의 여럿 양곱창전문점에서도 이러 양념구이를 판다. 하지만 대창의 맛이 50년 명성에 못 미치는 듯 해 아쉽다. 배기 시설도 낙후됐고 대창의 기름막을 거의 제거하지 않아 구울 때 심한 연기가 나 부담스럽다. 곱창의 곱도 실하지 않아 씹히는 맛이 덜하다.



부산 백화 양곱창

50년 양대창구이 맛 일품

“이 자리에서 양이랑 곱창만 딱 50년을 팔았다아이가.”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 뒷골목에 위치한 이집은 부산 양곱창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곱창센터에는 각각 0호라는 이름을 달고 각자 양곱창을 팔고 있는데, 이우자(70) 할머니가 꾸리는 1호가 50년으로 가장 오래됐다. “어려서부터 오메(엄마)도와 팔았지. 결혼 하고도 쭉 하다 보니 50년이 됐는기라.”

백화양곱창1호에선 소금구이·양념구이 모두 맛 볼 수 있다. 양·곱창·대창이 섞인 모듬곱창이 나오는데, 소금구이는 간장·설탕을 섞은 국물에 파를 송송 썰어 넣은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거북곱창

28년 곱창맛을 자랑하는 서울 교대의 명물

“평생 곱창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 곱창집 열었어요.” 1대 사장 김완술(63)씨가 28년 전 연 가게를 지금은 딸 박정례(42)씨와 사위 여희택(45)씨가 물려 받아 꾸리고 있다.

한 때 이집은 ‘손님이 세 번 놀라는 집’으로 불렸다. 생각보다 가게가 허름해서 놀라고, 사장이 젊어서 놀라고, 마지막으로 맛이 좋아 놀랐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곱은 신선도가 중요하다"며 "신선한 곱은 아무리 물로 씻어내도 빠지질 않는다”고 강조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양을 판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곱창과 양은 매일 가락동 축협에서 갖고온다. 모듬구이에는 양·곱창과 함께 감자·양파가 섞여 나오는데, 양과 곱창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을지로 양미옥

18년 쫄깃·바삭한 양구이 명가

“음식 장사하는 사람은 재료 아끼려고 하면 안되죠.” 탁승호(59)·김영희(59)씨 부부가 18년째 변함없는 손맛을 지키고 있는 곳이다. 옛 이름인 ‘오막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기도 하다. 양과 대창은 매콤하게 양념을 입혀 굽는 부산의 원조 ‘오막집’ 스타일과 흡사하다.

진간장에 설탕·고춧가루·참기름·마늘·생강 등의 재료로 만든 소스도 맛을 산뜻하게 해준다. 초벌구이 한 양곱창에 한번 더 양념을 입혀 다시 굽는데 그래서 더욱 연하고 식감이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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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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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시의‘원조 숯불 닭 불고기’는 춘천 닭갈비의 원형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곳이다. 4개의 드럼통 탁자로 꽉 찬 좁은 공간. 들어서면 재채기부터 나온다. 매캐한 숯불 연기가 진동해서다. 여름이라면 ‘찜질방에 온 셈 치자’란 각오는 필수다.

에어컨은 있지만 ‘불이 날린다’며 켜지 않는다. 낡은 드럼통 위 숯 화로에 석쇠를 걸치고 닭갈비를 굽는다. 요즘사람들을 위해 파는 '뼈 없는 닭갈비'는 영계의 다릿살만을 발라 쓰고, 원조격인 '뼈 있는 닭갈비'는 노계를 뼈째 쓴다. 뼈 없는 닭갈비는 야들야들하고, 뼈있는 닭갈비는 씹는 맛이 있다. 둘 다 숯불 덕분에 기름기 쭉 빠진 담백한 살에 매콤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절묘한 맛이 난다.

1950년대 초 전남 담양에 한 노부부가 살았다. 여기저기 빚을 져 갚을 길 막막했던 부부는 각지를 떠돌다 춘천까지 흘러 들어왔다. 부인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요릿집을 했던 경험을 살려 식당 열 결심을 했다.

평범한 돼지갈비나 소갈비 말고 닭을 양념해 갈비처럼 팔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뼈를 그대로 붙인 채 포를 떠 고추장 발라 구운 닭갈비를 막걸리와 함께 팔기 시작했다.

가게가 있던 곳은 춘천시 삼천동의 판자촌. 그 판자촌 앞엔 택시 차고가 있었다. 택시 기사들이 하나 둘 들르기 시작했고, 어느덧 손님까지 모시고 오며 입소문이 났다. 1961년 판자촌일대가 재개발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71년, 당시 34살이었던 부산 출신의 배계선(72) 할머니는 이곳 주방에 취직했다. 일한 지 몇 달이 지나도 부부는 임금 줄 생각을 안 했다.

참다못한 배 할머니가 “그만 두겠다”고 말하자 그제야 붙잡으며 제안을 했다.“밀린 두 달 치 자릿세를 대신 내 주면 가게를 물려 주겠다”고. 장사는 잘 됐지만 주인부부의 씀씀이가 컸던 탓이었다.

결국 손님들에게서 받은 팁을 모아 뒀던 돈으로 밀린 자릿세를 내 주고 가게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배 할머니는 70년대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 우리 집에 졸병들은 출입금지였어. 장교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앉았는데 졸병이 무서워서 어디 들어올 수 있었겠나?”

가게 옆으론 춘천고 학생들도 많이 다녔다. 돈은 없지만 식욕만큼은 왕성했던 고등학생들은 닭갈비 냄새에 취해 “야, 네가 사라!”라고 장난치며 서로 가게로 밀어 넣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또 지금은 자리가 없으면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그땐 달랐다. 둘 씩 온 손님들에게“합석 좀 해도 될까요?”라고 물으면 흔쾌히“그럼요”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두 명이 네 명이 되고 네 명이 여섯 명이 돼 한 탁자에서 어울리는 광경은 예삿일이었다. 할머니는‘자기 닭갈비’를 구분하기 쉽도록 손님 앞에 갈빗대 3개를 삼각형 모양으로 놓아 주었다. 현재는 그램 수로 따져 1인분(400g)씩 내지만 당시엔 갈빗대 3개가 1인분이었다. 2007년 배 할머니는 조카인 김명자(48)씨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닭갈비 8000원. 뼈 없는 닭갈비 9000원. 강원도 춘천시 중앙로. 033-257-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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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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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칼국수
닭칼국수 명가

“예부터 어른들이 그랬지. 밀은 닭으로 다스려라. 그 말이 생각나서 닭칼국수를 만들었지.” 1대 사장 황경순(80)할머니는 1981년도부터 지금까지 27년 간 닭칼국수를 팔고 있다. 황할머니가 칼국수집을 열게 된 배경은 재미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황할머니가 농사 말고 다른 것을 해봐야겠다 생각을 하다 단골 미용실 사장을 찾았다. ‘

세련된 미용실 사장이 유행을 잘 알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단다. 그런데 미용실사장이 “서울의 ‘명동칼국수’를 가봤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더라. 아주머니 음식솜씨가 좋으니 칼국수를 팔아봐라”는 조언을 하더라는 것. 그 날로 집과 논을 팔아 100만원으로 7평짜리 전세를 얻어 가게를 열었단다.

개업 첫 손님은 면사무소 계장이었는데, 칼국수 맛을 본 계장이 다음 날 직원 3명을 데리고 오면서 입 소문이 퍼져 인기를 얻게 됐단다. 7평에서 시작한 조그마한 칼국수집은 손님을 끌며 탄탄대로를 밟아 나갔다. 문을 연 지 1년만에 1000만원 자리로 이사 했다. 그리고 다시 27년이 흐른 지금, 일산칼국수는 450평의 대규모 칼국수집이 됐다.

■ 맛의 비결
유난히 걸쭉하고 고소한 육수의 비결은 세 가지 국물을 따로 만들어 섞어 쓰는데 있다. 60일 된 닭을 통째로 삶아 국물을 뽑고, 거기에 홍합·무·멸치·양파·다시마 등을 함께 넣어 2차 국물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살코기를 발라낸 닭뼈만을 따로 삶아 육수를 낸 뒤 2차 국물과 섞는다. 닭 국물· 2차 국물· 닭뼈 국물의 비율은 1:0.5:1. 닭 한마리를 통째로 넣어 삶을 땐 비린내 제거를 위해 청주와 마늘을 넣어 2시간을 푹 고아준다.

국수 반죽은 중력·강력·전분을 섞어 쓴다. 찹쌀도 조금 넣어준다. 오래 치대 분자와 분자의 결합력 높게 해준다. 많이 눌러주고 밀어줄수록 공기입자가 많이 빠져 더 쫀득쫀득하고 맛이 좋단다.



초가집칼국수
바지락칼국수 명가

시어머니 김순덕(작고)씨의 손맛을 며느리인 신경현(77)할머니가 이어받아 40년 이상을 꾸려오고 있다. 신할머니의 남편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세상을 떴다. 시어머니 김순덕씨가 생계를 꾸리고자 시작한 칼국수집.

신할머니는 시어머니 뒤편에서 주방일을 배우고 함께 칼국수를 끓이며 시집살이를 했다. 45년 간 손수 밀어온 면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지름 150c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반죽을 손수 밀어내, 접어두었다가 손님이 주문할 때 칼로 썰어 나간다. 30년 간 신할머니와 함께 칼국수를 밀어 온 직원 김복순(52)씨는 “눈 감고도 칼국수 썰 정도”다.

김씨가 썰어 낸 면발은 굵기가 일정하고 선이 매끄러워 칼로 직접 썰었다고 말하면 믿지 않는 손님도 많다. 김씨는 “칼국수는 손수 반죽해서 칼로 썰어서 먹는 맛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 맛의 비결
초가집 칼국수의 바지락 육수는 바지락으로만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맛이 진하면서 여운이 깊다. 신할머니의 딸 박현주(42) 3대 사장은 “족발집에서 간장육수를 바꾸지 않고 계속 끓이듯, 바지락 육수도 쓰던 육수에 계속 새 바지락을 넣어 끓이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바지락을 한소끔 끓여 내는 것으론 맛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칼국수와 고추절임을 함께 내 놓는 것도 특징. 짭쪼롬하면서도 매콤 새콤한 맛이 담백하고 깊은 바지락 육수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

신할머니는 “풋고추를 갈아서 천일염에 절여둔 것으로 칼국수에 한 숟갈씩 넣어 먹으면 궁합이 잘 맞다”고 설명한다. 뻘건 다대기를 풀어먹는 일반 칼국수와 다른 점이다. 익은 김치를 내 놓는 것도 다른 칼국수집과 차별화된다. “육수가 비교적 담백하고 약해서 오히려 익은 김치가 잘 어울린다”는 것이 박사장의 설명이다.



소호정
사골칼국수 명가

“안동 양반네들이 손님을 대접할 때 내 놓던 정성스런 음식이지요. 손으로 반죽하고 밀어 국수를 썰고 양지머릿고기를 푹 고아서 뽀얀 국물을 만들어 말아 내 놓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힙니다.” 경북 안동 태생인 김남숙여사(작고)가 압구정동에서 10평 남짓의 가게로 시작한 ‘안동국시’집이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단골집으로도 유명하다. 1985년 1월 문을 열어 25년 째 영업중이다. 소호정이란 상호는 ‘호걸들의 웃음이 흐르는 집’이라는 뜻. 지금은 작고한 김여사를 대신해 아들 임동렬(60)씨가 대를 이어 가게를 꾸리고 있고, 그의 아들 임형훈(30)씨가 소호정의 맛을 지키기 위해 주방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 맛의 비결
안동지방 국수는 면에 콩가루를 섞어 반죽하는 것이 특징. 소호정의 칼국수도 처음에는 콩가루를 많이 섞었는데 서울사람 입맛에 맞추다 보니 콩가루의 양이 예전에 비해 현격히 줄었다고 한다. 밀과 물의 혼합비율은 8:2. 현미 식초와 계란 흰자를 함께 넣어 반죽한단다. 소호정 칼국수는 특이하게 칼국수를 깻잎요리에 싸서 먹는다. 그리고 그 맛에 매료된 손님들이 많다.

“조리법에 노하우가 있다. 절대 밝힐 수 없다”는 소호정의 필살기 깻잎요리.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면을 한 젓가락 들어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깻잎에 싸먹는 맛이 일품이다. 깻잎 고유의 쓴 맛이 없고 그저 은은한 풍미만 목젖을 적신다. 국시의 씹히는 맛이 깻잎의 식감과 어우러져 배가 되는 기분이다.



최월선등촌버섯매운탕칼국수
버섯칼국수 명가

버섯과 미나리를 데쳐 건져먹고, 오동통한 칼국수 면을 넣어 얼큰한 국물과 함께 맛 본 다음, 계란 노른자와 각종 채소를 넣은 볶음밥으로 마무리. 이렇게 알뜰하고 재밌는 음식이 또 있을까. 우리에게 ‘등촌칼국수’로 알려진 ‘버섯칼국수’ 이야기다. 등촌칼국수는 ‘등촌샤브샤브칼국수’라는 체인음식점 상호로 잘 알려져 있지만 처음 버섯칼국수를 선보인 사람은 1983년 당시 등촌동에서 ‘등촌칼국수’를 열었던 최월선(62)씨.

‘칼국수는 국수만 먹는다’는 생각을 뒤엎고 버섯과 채소, 밥까지 먹을 수 있는 버전으로 발전시켰다. 게다가 싼 값에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매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 맛의 비결
최씨는“레시피는 노하우다. 절대 밝힐 수 없다”면서 “하지만 맛의 비결은 한가지다. 마늘이다”고 말한다. 육수에도 다진 마늘을 많이 넣고, 김치에도 다진 마늘을 “무지막지하게” 넣는단다. 마늘을 최대한 많이 넣는 것이 김치 맛을 좌우한다는 이야기다. 육수에 대해서는 “할머니가 칼국수를 자주 해주셨는데 된장과 고추장을 섞은 양념장을 푼 얼큰한 국물에 칼국수를 끓여주던 것이 생각나서 적용해봤다”고 설명했다. 육수의 베이스는 사골 원액을 사용한단다.



할머니칼국수
멸치칼국수 명가

“어메가 집에서 만들어주던 그 맛이지? 손으로 치대고 치대서 칼로 썰어서 말이야. 힘들어도 그렇게 해야 어메가 해주던 그 맛이 나제.” 24년간 종로 3가에서 멸치칼국수를 팔아 온 강전석(80)할머니는 “집에서 뚝딱 만들어 먹던 소박한 맛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소신이 있다. 유난히 담백하면서도 깊은 멸치육수 맛이 유명하다. 점심시간이면 골목 입구부터 줄을 서야 한다. 쫄깃한 면발을 후루룩 먹은 뒤 대접을 들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해장국이 따로 없다. 조미료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자칫 ‘맛이 심심하다’ 할 수 있겠으나 끝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는 평이다.

■ 맛의 비결
밀가루 20kg ·물 5리터 ·소금 조금을 넣고 손으로 수십 번 접고 눌러 반죽을 최대한 쫄깃하게 만드는 것이 비법이다. 파뿌리 ·무·양파·표고버섯·다시마·멸치 등을 광목에 담고 3시간 정도 우려낸 국물에 칼국수를 끓여낸다. 크기가 작거나 어린 멸치로 육수를 만들면 자칫 비린내가 심하게 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큰 멸치를 사용한다. 김치는 매일 담그는데, 고춧가루 ·다진생강·젓갈·새우젓·다진마늘 등을 넣어 만든 다대기를 1시간 정도 숙성시켰다가 배추와 버무려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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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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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간장게장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식당에 들어서면 먼저 가격에 놀라게 된다. 벽에 붙은 메뉴판에 '간장게장 70,000원'이란 글씨가 큼지막하게 써 있어서다. 간장게장 한 접시에 두 마리의 꽃게가 담긴다.

이집 서백자 사장은 "기본적으로 원가가 많이 들어요. 알이 가득한 봄게(봄에 잡힌 게)만을 사용하기 때문이에요. 요즘 잡히는 가을게는 한 접시에 5만원이에요. 크기가 작아서죠. 모두 국산인데, 수입산에 비해 몇 배 비싸요"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짜다기보다 오히려 달작지근한 장맛과 입에서 녹는 듯한 살의 부드러움이 일품이다.

서 사장은 날마다 게장을 담근다. 접장에 매일 새벽 갖은 해물을 넣고 끓인 육수, 대파·마늘·양파 등 양념을 혼합해 다시 끓여 꽃게에 붓는 방식을 세 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섭씨 0~4도의 냉장고에 4~5일 숙성시킨다. 02-543-3529.

 


원앙식당
(전남 여수시 교동)

여수 시내에서 알아주는 간장게장 백반집. 1998년 문을 열었지만 깔끔한 모양과 정갈한 맛으로 적지않은 단골을 만들어냈다. 여수 여객선터미널에서 도보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도 한몫 한다. 간장게장에 들어가는 재료는 몸통이 10㎝ 내외인 돌게다. 여기에 양조간장과 함께 물·설탕·물엿·매실·감초·월계수잎·생강·양파·대파·청양고추 등 10여 가지의 양념을 섞어 3시간 정도 끓인 양념장을 붓는다.

이후 하루 걸러 간장을 따라낸 후 다시 끓이는 것을 3회 반복한다. 이렇게 해야만 게에서 나오는 비린내를 없애고, 텁텁하지 않은 맛이 난다고 한다. 원앙식당에서는 봄과 가을에 잡힌 돌게만을 사용한다. 여름에는 허물을 벗고 알을 몸밖에 저장하는데다 비브리오 패열증 위험까지 있고, 겨울에는 게들이 동면에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게장은 일주일에 두 번 담그는데, 한 번에 약 100㎏ 정도 된다. 6000원짜리 게장백반을 주문하면 남도음식답게 무려 열 여덟가지의 반찬이 식탁을 가득 메운다. 주 메뉴인 먹기 좋게 다듬어진 돌게장은 작은 대접에 담겨 나온다. 모자라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 포장판매나 택배도 가능한데 3㎏·5㎏ 단위로 ㎏당 1만2000원이다. 061-664-5567.

 


인동주마을
(전남 목포시 옥암동)

꽃게장에 대표적 남도음식인 삼합을 곁들였다. 이름하여 '게장삼합'이다. 이 집의 꽃게장에는 다른 곳과 달리 간장을 끓일 때 인동초 꽃이 들어간다. "게의 비린내를 없애 뒷맛이 개운하기 때문에 넣는다"고 우정단(58) 사장은 설명한다. 2001년 인동초꽃게장을 개발한 우 사장은 올해 전라남도 목포음식 명인 1호로 지정됐다.

간장에는 물도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양파·무·생강·물엿 등을 이용해 간장의 짠 맛을 조절한다. 노란 알이 밴 봄게만을 사용, 하루에 100㎏씩 담근다. 게장삼합은 꽃게장 외에 돼지수육·홍어 등이 포함됐으니 밥반찬이라기보다 술안주에 가깝다. '밥도둑'과 '술도둑'이 함께하는 셈이다.

이에 맞춰 우 사장은 인동초를 이용한 탁주도 개발했다. 탁주는 인동주, 맑은 약주는 평화주라 이름지었다. 보기에도 인동초꽃의 노란 빛이 먹음직스럽다. 어른 4명이 먹을 수 있는 게장삼합 한 상에 4만원이다. 꽃게장을 추가하면 2만원, 돼지수육과 홍어는 각각 1만원을 더 받는다. 061-284-4068.

 


둥지가든
(충남 청양군 장평면 지천리)

직접 양식한 참게로 게장을 담근다. 2년생으로 게딱지 길이는 10㎝ 내외다. 명노환(62) 사장이 지난 1995년 국내서 처음으로 참게 양식에 성공했다. 2000년엔 참게게장을 상품화하면서 택배와 함께 150석 규모의 식당을 개업했다.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에 납품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게장을 담그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간장에 약간의 마늘만 넣고 끓여 부어주면 된다. 대신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장을 다시 끓여 붓는 것을 6~7회 반복하면 완성이다. 명 사장은 무엇보다 숙성 과정을 강조한다. 김치도 덜 익으면 풋내가 나듯 참게장도 비린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바닷게로 게장을 담그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는 이유는 장이 게의 몸 속에 쉽게 스며들지 않아서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만큼 보름 내외의 바닷게와 달리 보존 기간이 1년 이상이나 된다. 힘들게 만들어진 만큼 몸값도 만만치않다. 게장백반 1인분에 1만5000원. 주문과 동시에 밥을 지어 전통 사기그릇에 담아 내놓는다. 여행을 겸해 현장을 찾는 것도 좋고, 택배를 통해 집에서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격은 2㎏에 14만원(택배비 포함). 041-943-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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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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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아바이순대


“아버지! 어머니!”보다 “아바이! 아마이!”라는 말이 자주 오가는 곳이 있다.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일명 ‘아바이 마을’이다. ‘아바이’는 아버지나 할아버지 등 나이든 남자, ‘아마이’는 나이든 여자를 뜻한다. 함경도 사투리다. 2006년 인구 조사에서 청호동 주민 4000명 중 함경도 실향민은 700명이었다. 과거 실향민 1세대가 대부분 생존했을 땐 70%를 육박했다.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민들은 원산에서 배를 타고 가까운 속초로 피난했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청호동에서 명태와 오징어잡이로 생계를 이었다.

순대와 함흥냉면 전문점 ‘단천식당’ 주인 윤복자(69)할머니 역시 피난 실향민이다. 당시 10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친척 틈에 섞여 왔다.

“어머니가 꼭 살아남으라며 떠밀었어. 일주일만 참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들 했는데. 18살 되던 해 청호동에서 같은 단천 출신을 만나 결혼했지.”

식당 이름이 ‘단천식당’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루는 오징어 잡으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방파제 앞에 연탄불을 피우고 감자부침개를 부쳐 팔았단다. “그 날, 먹는 장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 그릇 장사는 15년을 해도 시원찮았는데, 부침개랑 소주는 그날 하루에만도 엄청 팔렸거든. 있던 그릇을 ‘떨이’했어. 40만원이 남더라고? 순대 솥이랑 국밥 솥을 다 살 수 있었지.”


어부들은 새벽 4시에 나가 오후 4시에 들어왔다. 그러나 당시 부둣가 근처엔 어부들의 허해진 속을 달래줄 뜨끈한 해장국 파는 집 하나 없었다. 35년 전, 그릇가게 자리에서 팔기 시작한 순댓국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함경도 고향마을에선 경사 날 때 마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꼭 순대를 해 먹었어. 그 추억을 떠올리면서 만들었어.”

‘아바이 순대’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0년 전. 한류 드라마 ‘가을동화’ 무대가 청호동이었기 때문이다. 관광차 들렀다 순대 맛을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냈다.

처음과 달라진 점은 된장을 뺏고 선지도 줄였다는 것. 선지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대신 찹쌀을 많이 넣는다. 찰진 주먹밥을 먹는 느낌이 날 정도다. 선지가 거의 없는데다 새하얀 찹쌀이 가득 차, 색이 밝다.

껍질은 대창을 쓰지만 소금으로 박박 씻어 냄새는 거의 안 난다. 지름 5cm의 순대 안에 돼지머리고기, 찹쌀· 완두콩· 우거지· 선지(소량)· 생강· 마늘· 후춧가루· 소금을 넣는다. 머리고기는 살코기만 발라낸 뒤 갈아서 볶은 후 넣기 때문에 부드럽다. 찹쌀도 미리 한번 쪄서 넣는다. 후춧가루 맛과 소금 맛이 강한 편이다.

순대 한 접시에 2만원. 033-632-7828.

 


병천 순대


“순대는 우리 집 순대가 제일이유. 근디 말이유, 이 순대 장사가 참 어려운 거유.”

푸근한 인상으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이정애(77)할머니. 30년 째, 병천 순대의 원조인‘충남집’을 운영 중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집의 순대를 처음 보는 순간 ‘색이 유난히 검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지가 많이 들어 있어서다.

그러나 들깨가루, 후춧가루, 마늘 덕분에 냄새는 안 난다. 먹는 순간 입 안 가득 선지의 촉촉함이 퍼진다. 씹기 전에 녹아 버리는 느낌이다. 양배추도 많이 들어가는데 이정애 할머니는 “양배추는 단맛 뿐 아니라 선지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내 준다”고 설명한다.

함경도식 순대는 대창을 써 모양에서부터 확연히 구분되는 반면, 소창을 쓰는‘병천순대’와 ‘백암순대’는 그 차이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선지의 많고 적음’이다. 백암순대의 껍질을 벗겨 안쪽 벽면을 보면 선지가 붙어있지 않지만 병천순대엔 다닥다닥 붙어있다. 혹자는 “백암순대엔 채소가 많고 병천순대엔 채소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이 아니다. 병천순대에도 비슷한 양의 채소가 들었지만 다량의 선지 속에 버무려져 숨이 죽었기에 채소 맛을 강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선지에 채소의 색이 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당면을 넣지 않는 함경도식이나 적게 넣는 백암식과 달리 병천순대엔 당면이 많이 들어간다. 역시 부드러운 맛을 위해서다. 백암순대가 고기를 완전히 갈지 않아 ‘씹히는 맛’ 이 있다면, 병천순대는 머리고기와 비계를 곱게 갈아 ‘부드러운 맛’이 있다.

이정애 할머니는 시어머니가 1930년대부터 해 오던 가게를 30여 년 전 물려받았다. 당시엔 매달 1일과 6일에 열리는 병천장 장날에만 가게를 열었다. 입소문이 나고 인기를 끌면서 20년 전 부턴 매일 팔기 시작했다. 90년대부터 천안에 골프장이 는 것도 가게 인기에 한몫 했다.

이곳 순대엔 머리고기, 돼지비계, 당면, 선지, 찹쌀, 양배추, 양파, 파, 마늘, 후춧가루, 들깨가루가 들어간다. 지름은 약 3cm.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마다 가게 뒤편에서 기계로 순대를 만들어 25분 정도 가마솥에서 삶는다. 일하는 할머니들의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순대인심도 넉넉하다.

수북이 쌓인 순대 한 접시가 8000원. 041-564-1079.

 


백암 순대


명성을 듣고 백암면 순대마을을 찾았다가 규모를 보고 실망할 수도 있다. 병천면이나 청호동과 비교하면 순대마을이라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옹기종기 모인 유명한 순대집들의 뿌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오히려 정겹다.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백암농협 근처의 ‘제일’, ‘중앙’, ‘풍성’ 식당 주인들은 모두 친척 사이다. 현재 세 집 주인 중 가장 고령인, 박애자(70)할머니의 ‘제일식당’을 찾았다. 박애자 할머니의 시아버지 형제는 다섯이었다. 그 중 3명이 순댓집을 했다. 지금 2대는 세상을 떠나고, 3대가 영업을 하는 집도 있다.

“시집와보니 다들 순대를 만들고 있더라고. 나도 스물여섯부터 시어머니를 도왔지.”

백암장엔 우시장과 돼지 도축장이 발달했었다. 박애자 할머니는 “장날, 소 중개인들이 소 값을 흥정해 준 대가로 순대국 한 그릇에 막걸리를 얻어 마셨다”고 회상한다.

이 집 젓가락통엔 ‘순대 속에 뼈가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딱딱하게 씹히는 게 뭐냐”고 자꾸만 묻는 손님들을 위해서다. 오독오독한 씹는 맛을 위해, 머리고기를 완전히 갈지 않은 채로 순대 속에 넣는다. 그 외 호박·부추·숙주·두부·콩나물·양배추·당근·양파, 찹쌀, 당면이 들어가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생강과 마늘, 후춧가루도 넣는다. 껍질은 소창을 쓰고 지름은 2.5cm가량이다. 주방 옆 커다란 가마솥에서 약 10분간 삶는다. 부드러운 맛보다 씹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백암순대 한접시에 1만원. 전화번호 031-332-4608.

 


서울 순대 맛집


■ 오소리순대

‘오소리순대’에선 색이 다른 두 가지 순대를 맛볼 수 있다. 선지가 안 들어간 하얀 순대가 있기 때문. 주재료는 머릿고기, 내장, 당면, 찹쌀, 두부, 달걀, 양배추, 마늘이다. 이집의 또 다른 특징은 양념장이 세 종류라는 것과 상추겉절이에 싸먹는다는 것이다. 소금과 새우젓은 물론 기름장까지 나온다. 겉절이 상추는 느끼한 맛을 없애준다. 하얀 순대는 깔끔한 맛, 선지가 든 검은 순대는 구수한 맛이다. 모듬순대 한접시에 9000원.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02-918- 9797.


■ 함경도 아바이 왕순대

함경도식 순대를 파는 곳. 대창을 쓴다. 숙주와 파가 유난히 많아 아삭아삭하다. 주인부부가 함경도 실향민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특징은 돼지가 아닌 소의 선지를 쓴다는 것. 2인분 한 접시에 1만 3000원. 서울시 종로구 평동. 02- 725- 2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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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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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별궁식당


별궁식당에 들어서면 차림표부터 눈에 띈다. ‘무주구천동에서 생산한 순수한 우리 콩으로 장모님께서 직접 담근 재래된장과 장모님 손맛으로 정성스러운 식단을 준비했습니다’라고 굵게 쓴 문구 옆에 ‘장모님 인’이라는 도장까지 쾅 찍혀있다.

진성일(62) 김선옥(59) 부부가 별궁식당을 차린 것은 2001년. “1973년부터 해온 분식집 운영이 어려워져 고민하던 중 장모님이 끓여주시던 전혀 냄새가 없는 청국장이 떠올랐죠.” 냄새 없는 청국장은 대박이었다. 팔팔 끓는 청국장을 한 숟갈 떠서 바로 코앞에 갖다 대도 자극적인 냄새가 전혀 올라오지 않는다.

그 비법은 첫째, 잘 띄운 청국장에 있단다.별궁식당은 매주 식당 옆에 있는 발효실에서 직접 청국장을 띄운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로 맞춰 놓은 이곳에서 정확히 2박 3일간 발효시킨다. 진씨는 “이 시간이 지나면 맛이 내리막이 돼요. 냄새가 진해지긴 하지만 구린내가 섞일 수도 있죠. 그건 ‘별궁식당 표’ 청국장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두 번째 비법은 생 들깨국물이다. 국산 생 들깨를 곱게 빻아 베주머니에 짜서 국물만 쓴다. 그래서 이 집의 청국장 국물은 맑고 깔끔하며 순하다. 마치 고소함이 농축된 들깨 두유를 먹는 느낌이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시래기나물, 도라지 무침, 고춧잎나물, 고추마늘장아찌, 총각김치, 고등어조림이 맛깔스럽다. 청국장 7000원. 도토리묵 8000원. 파전 1만원. 보쌈 2만원. 02-736-2176.

 


충북 충주. 지영옥 청국장


‘지영옥 청국장’. 이름 석 자를 반듯하게 내건 간판에서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24년 전, 지영옥(70) 할머니는 남편을 따라 충주로 왔다. 비료공장 공원인 남편의 벌이만으로는 삼남매를 키우기 힘들어 평소 해먹던 대로 직접 띄운 청국장에 묵은지를 넣어 끓여 팔기 시작했다.

김치의 얼큰한 맛으로 청국장 특유의 냄새를 줄인 할머니의 청국장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원래 가게 이름은 ‘서울 뚝배기’였지만 충주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영옥 청국장’으로 통했다. 10년 전 딸 강계화(50)씨가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지영옥 청국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 간판을 단 분점이 현재 가평, 조치원, 아산, 포천 네 곳에 이른다. 지영옥 할머니가 땀으로 일군 작은 가게는 바로 맞은편에 확장 이전 되면서 터도 없어졌지만 청국장찌개 맛만은 그대로다. 김치의 칼칼한 맛과 청국장의 구수한 맛의 조화가 훌륭하다. 찌개 속 통통한 콩 알을 묵은지에 싸 먹어도 별미다.

아삭아삭 씹는 순간 고소함과 새콤매콤함이 동시에 입 안에 퍼지니 묵은지를 찾느라 쉴 새 없이 젓가락을 놀리게 된다. 7년 전, 강씨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청국장 해물전골’도 대표 메뉴다. 미더덕, 홍합 살, 새우, 꽃게 등을 푸짐하게 넣고 낙지 한 마리를 통으로 올린다.

여기에 해물의 시원한 맛을 죽이지 않으면서 구수함을 더할 황금 분량의 청국장을 푼다. 고추장과 된장을 넣은 해물전골보다 덜 텁텁하고 청국장 냄새도 없다. 청국장과 밥은 무한 제공된다. 청국장 6000원. 청국장 해물전골 2만 5000원. 043-847-7683

 


서울 서초. 진주청국장


조영희(72) 할머니의 청국장찌개는 1986년 경남 진주에서 탄생해 1995년 서울 여의도로 올라왔다. 금융 중심지와 청국장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뜨거웠다. 여의도 넥타이 부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은 냄새는 빼고 구수하고 순한 맛을 살린 데 있다.

이 맛을 완성한 결정적인 비법은 바로 ‘뒤포리(밴댕이과 생선)’다. 조영희 할머니는 흔히 사용하는 멸치 대신 뒤포리로 육수를 내왔다고 한다. 서울로 올라와서도 삼천포항에서 뒤포리를 공수해 왔다. 뒤포리 육수가 멸치 육수보다 진하고 청국장의 맛을 더욱 부드럽게 해준다는 것이 조영희 할머니의 설명이다.

이 집의 청국장찌개는 염도를 줄여 다소 심심한데 그 맛이 청국장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밥 없이 찌개만 떠먹어도 술술 넘어간다. 3년 전, ‘여의도 명물’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서초동으로 자리를 옮기는 모험을 했다.

그러면서 딸 박홍전(42)씨는 서리태콩 청국장을 새로운 메뉴로 추가했다. 이 역시 청국장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백태로 만든 청국장찌개보다 고소하고 단 맛이 난다. 큰 사발에 나물반찬 다섯 가지가 담겨 나와 입맛에 맞게 청국장 비빔밥을 해 먹을 수도 있다.

머위줄기 들깨가루 무침, 깻잎 멸치가루 무침 같은 시골냄새 물씬 나는 영양만점 밑반찬에 기분이 좋아진다. 청국장찌개 6000원. 서리태콩 청국장 8000원. 정찬 1만 2000원. 02-525-6919.

 


서울 종로. 사직분식


허영만의 만화 ‘식객’ 청국장 편에도 등장하는 사직분식. 22년간 한결같은 청국장 맛과 냄새로 서울의 ‘식객’들을 매료시킨곳이다. 청국장 냄새에 이끌리듯 들어선 좁고 허름한 가게에서 받는 청국장찌개 상차림은 소박하다.

청국장찌개도 우직한 뚝배기가 아닌 국그릇에 담겼다. 그런데 그 맛이 탁월하다. 주인장 김춘자(60)씨는 “특별할 것도 없다. 그냥 옛날 우리 집에서 해 먹는 것처럼 하는 것”라며 가게 건너편 자신의 아파트에 마련된 발효실을 공개했다.

발효실로 꾸민 방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에 까무러칠 지경이다. 김씨의 고향인 전남 나주에서 보내주는 국산 콩으로 이곳에서 직접 청국장을 띄운단다. 콩을 솜이불, 담요, 비닐 순서로 덮어놓고 정확히 3일간 발효시킨다. 이 청국장의 맛과 냄새를 고스란히 담기 위해 특별한 육수 없이 물에 푼 후 뭉텅뭉텅 두부 썰어 넣고 청량 고추 얹어서 끓인다.

김씨는 30년 전, 전남 목포에서 서울로 시집오면서 청국장과 인연을 맺었다. “시댁이 경동시장에서 청국장 공장을 했어. 그때 시부모님한테 배운 대로 이어가고 있는 거지. 근데 이 콩은 절대 거짓말을 안 해. 욕심 부리면 맛도 냄새도 금세 변해버려.” 김씨는 테이블 네 개 놓고 시작해 변함없는 청국장의 맛과 냄새를 위해 일해 왔다. 그 사이 김씨의 손가락은 마디가 휘었다. 지금은 딸 김기선(28)씨가 어머니를 도와 청국장을 띄우고 있다.

“시집와서 시작한 청국장으로 내 인생도 끝나겠지. 별 다른 욕심 없어요. 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다들 맛있게 먹고 가면 그게 최고인 거지.” 청국장 4500원. 두부찌개 4500원. 02-736-0598

 


경기도 안성. 성신식당


“청국장 띄우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서민음식이라고 만만하게 보면 안 돼요.” 주인장 신양순(56)씨는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청국장과 32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처음 식당을 연 건 둘째 아들을 낳고 26일 만이었다.

“다 먼저 세상 떠난 남편 때문이지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살 길이 막막해진 신씨는, 20대 시절부터 직접 청국장을 띄워 장에 내다 팔던 친정어머니 최병희(78)씨의 장맛을 잇기로 했다.

청국장은 가게 뒤편에 자리 잡은 발효실에서 어머니의 비법 그대로 띄운다. 뜨끈한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큰 바구니에 삶은 콩을 넣은 후 깨끗하게 손질한 볏짚을 군데군데 박고 그 위에 얇은 면 보자기를 덮고 마지막으로 두툼한 이불로 잘 싸 놓는 전통방식이다. 한 번 사용한 면 보자기와 이불은 바로 세탁해 사용한다. 잡균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렇게 띄운 청국장을 한 국자 듬뿍 떠 담은 뚝배기가 끓으면 가게 안은 구수한 냄새로 가득 찬다. 온 몸에 청국장 냄새가 배지는 않을까 염려할 정도다. 다시마, 양파, 무, 대파 등을 1차로 푹 우려내고 멸치를 넣어 2차로 끓인 육수에 채 썬 김치를 넣고 마지막에 청국장을 넣어 살짝 끓인다. 청국장의 효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신씨를 도와 식당을 운영 중인 아들 이창희(36)씨는 “우리 집 청국장은 첫 숟갈에 ‘맛있다’고 감탄하기보다 돌아서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맛”이라고 자평한다. 신씨는 법대를 졸업하고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큰 아들이 못내 아쉬운지 “자기 팔자지 어쩌겠냐”며 입가에 웃음을 흘린다. 청국장 5000원. 순두부 김치찌개 5000원. 031-673-3723.

 


서울 성북동. 안동할매 청국장


가게에 들어서면 “어소 오이소”라는 ‘안동할매’의 구수한 사투리가 진한 청국장 냄새와 함께 반긴다. 주인 이상주(71)할머니가 삼선교에서 성북동으로 이어지는 사거리를 청국장 냄새로 메운 지도 14년이 됐다. 점심때가 한참 지난 시간인데도 가게 안은 빈자리가 없다.

외국인도 눈에 띈다. 할머니는 서울로 올라와 처음엔 곱창 집을 했다. 그런데 손님들이 주 메뉴인 곱창보다 청국장을 더 많이 찾자 아예 청국장 전문으로 바꿨다. 고향 안동에 있는 형제들이 농사지은 콩으로 청국장을 띄워 보내준다고 한다. 두부도 안동에서 생산한 콩으로 직접 만들어 쓴다.

이 집의 청국장은 국물이 많지 않고 걸쭉하다. 숟가락으로 휘저어도 통 콩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맛을 보니 절구에 곱게 빻아 부드러운 청국장이 입 안에 착 감긴다.

“할머니 때부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방식을 따르고 있어. 지금 우리 딸이 같이 가게를 하고 있으니 4대 째여.” 다시마, 무, 대파, 마늘, 멸치를 자루에 넣고 푹 곤 육수 외에 별다른 양념은 넣지 않고 뚝배기에 끓여낸다. 두 달 전 가게를 확장해 원래 위치에서 옆 골목으로 이전했다. 밑반찬으로 나온 굴젓과 자반고등어찜이 푸짐하고 맛 난다. 계산대 옆에 청국장 냄새 제거용 볶은 쥐눈이콩을 놓아둔 센스가 돋보이는 집이다. 청국장 6000원. 순두부 5000원. 02-743-8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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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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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금정산성토산주 - 산성막걸리


박정희 대통령과 산성막걸리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박정희는 대통령이자 은인”이라는 금정산성토산주 유청길(51) 대표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술 빚기가 불법이었던 시절. 한 쪽 눈을 질끈 감고, 산성마을 주민들에게 ‘마음 놓고 술을 빚으라’ 한 것은 이들에게 ‘평생 두고 잊지 못할 일’이 됐다.

조선 초기부터 누룩을 빚어 생계를 이어나갔던 ‘누룩동네’. 해발 400m의 높은 지대, 낮과 밤의 큰 기온 차. 습도와 온도에 민감한 ‘누룩 띄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이 곳은 막걸리만큼이나 누룩 좋기로 유명했다. 유대표의 어머니인 전남선(78)할머니는 60년 간 누룩을 밟아왔다. 18살에 산성마을로 시집 온 후,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로부터 자연스레 누룩 디디기를 배웠다. “시집올 당시만 해도 금정산성 입구에서부터 누룩 냄새가 진동을 했제. 동네방네 누룩 안 하는 집이 없었그든.”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시행된 '주세법'으로, 산성마을 주민은 마음 놓고 밥벌이를 하지 못했다. 일반 가정에서 술을 빚는 것은 불법이었기에, 누룩을 만드는 것도 단속 대상이 됐다. 세무서 직원 눈을 피해 누룩과 술을 숨기려는 주민들의 ‘007작전’도 자주 벌어졌다. ‘술조사 떳다’는 소문이 돌면 술항아리를 들고 산으로 냅따 뛰었다.

만들어 놓은 막걸리를 가축에게 먹여 증거를 없애기도 했고, 아예 독을 깨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세무서 직원이 타고 온 자동차 바퀴에 몰래 구멍을 내는 이도 있었다. “가(세무소직원)들은 오자마자 누룩방(누룩을 발효시키는 공간)으로 간다. 나는 ‘니는 에미 애비도 없나’ 하고 고함을 지르다가 주저앉아 울었지. 고생고생 말도 다 못한다.” 벌금을 물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에 출두 한 적도 적지 않다. “당시에는 누룩 때문에 동네에 전과자 아닌 사람이 없었다.”고 유대표는 회상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산성막걸리를 맛 본 것은 1959년도. 부산에서 군수사령관을 맡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다 금정산성 동문에 있는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을 마셨다. "맛있다. 어디 술이냐" 물었더니, 동네 할머니가 “금정산성 누룩으로 만든 술”이라 답했다. 구수한 산성막걸리에 반한 박 사령관이 이후 산성마을을 자주 찾은 것은 물론이다. “산성 동문에 가면 탱크 위에서 막걸리 마시는 박정희 사령관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두 번 째 인연은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인 1979년 초이다. 지방순찰차 부산에 들렀다. 당시 부산시장이었던 박영우에게 "자신이 군수사령관 시절 즐겨 먹던 산성막걸리는 어찌 되었느냐"고 물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쌀의 자급자족’을 내세우며 쌀로 술 빚기를 금지했는데(양곡법),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산성막걸리마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방책을 강구하게 된다.

유대표가 “참고하시라”며 두 장의 문서를 보여줬다. ‘부산 시장의 요청으로 금정산성 부근의 양조를 허락한다’는 내용의 국세청 공문과, ‘우리나라 전통 탁주이면서 국세청장이 지정하는 지역 내에서 제조 판매하는 것은 인정한다’고 명시한 조세법 개정안이었다. “박대통령께서 산성막걸리를 워낙 좋아하셨기에, 박영우 부산시장에게 ‘이곳만은 술 만들기를 허락해주라’ 지시했던 모양입니다.(웃음)”

1979년 5월 1일. 산성막걸리는 박대통령의 뜻에 따라 최초의 민속주로 지정되었고, 그 명맥을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금정산성토산주’라는 현재의 명칭은 이듬해, 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든 양조장의 이름이다.

산성막걸리 특유의 고소하고 깊은 맛의 비결은 누룩에 있다. 굵게 간 통밀을 지하 250m에서 끌어올린 물과 섞어 반죽한다. 반드시 발로 꼭꼭 눌러주며 반죽해야 찰진 누룩이 되고 곰팡이 포자가 고루 퍼져 발효가 잘 된다. 잘 디딘 누룩은 누룩방으로 직행해 일주일간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다.

‘해장죽’이라는 대나무로 만든 발 위에 얹어 놓는데, 이 대나무 발에 곰팡이가 내려 앉아 누룩에 옮겨 붙는다. 중요한 것은 실내 온도. 38도 선에서 유지해야 한다. 누룩방에 놓여 진 두 개의 연탄불로 내부 온도를 조절한다.

누룩이 발효하면서 내뿜는 열로 실내가 지나치게 뜨거워지면, 누룩방 중간에 있는 바람막이를 열어 온도를 낮춰준다. 누룩에 꽃이 다 피고 나면(누룩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꽃이 핀다’고 한다.) 식히는 작업에 들어간다. 온도를 낮춘 뒤 저온에서 3일간 숙성시킨다. 경북칠곡의 햅쌀을 쓴다. 물 200L에 고두밥 160Kg, 누룩 50kg(40개)를 넣어 막걸리 800L를 생산한다.

산성막걸리(750ml) 1500원. 1박스 (10병) 1만9000원. (택배비 포함) 051-517-6552.

 


▶노무현 대통령
상동주조 - 상동탁주


고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주민들과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노대통령의 생가 뒷 편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었는데, 예전에는 감나무밭이었다.

마을주민이 더 이상 감나무 농사를 짓지 않자, 노대통령은 감나무밭을 정리하고 그곳에 ‘장군차’(남방계 녹차로 잎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를 직접 심었다. 차 마시기를 좋아했던 그는 녹차 등의 차밭을 일구며 주말을 보냈다고 한다. 하루는 ‘노사모’ (노무현을 사모하는 모임) 회원들이 봉하마을로 자원봉사를 왔다.

함께 농사일을 돕고 난 후, 잔디밭에 앉아 새참을 기다렸다. 그때 새참과 함께 나온 술이 바로 ‘상동탁주’였다. “평소 술을 잘 드시지 않으시지만, 농사일이 끝나면 항상 주민들이나 노사모 회원들과 함께 막걸리를 즐기셨어요. 퇴임 후 노사모 회원과 가지는 첫 새참시간이라 무엇을 준비할까 하다가 지역 주민의 추천을 받아 ‘상동탁주’를 준비했죠.”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 사무국장 김경수(43)씨의 말이다. 상동탁주를 맛본 노대통령은 “지방 막걸리도 전혀 수도권 막걸리에 뒤지지 않는다. 맛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했고, 이 날 이후로 노 대통령의 새참 전용주는 ‘상동탁주’가 됐다.

상동주조는 김해시 진영읍 상동면에 위치한 조그마한 양조장이다. 박대흠(52)사장이 술을 빚기 시작한 것은 25년 전. 술에 대한 지식도 없이 말단 직원으로 입사했다. 9년 전 전임 사장의 돌연사로 양조장을 인수하게 됐단다.

“내가 애정을 쏟는 만큼 술 맛도 따라와준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가 빚는 막걸리는 ‘밀가루 막걸리’. ‘밀가루 막걸리는 저질이다’ ‘숙취 많은 좋지 않은 술’이란 말이 듣기 싫어 발효과정에 유난히 공을 들인다. 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곰팡이균을 직접 배양해 발효시키는 입국법을 사용하는데, 온도, 시간, 습도까지 일일이 체크한다. “우선 곰팡이균인 ‘백국’을 밀가루 고두밥 위에 뿌려 24시간 발효시킵니다. 자체 발열에 의해 40도까지 올라갑니다. 이때 자주 손을 봐줘야 해요. 자주 발효실에 들어가 온도를 보고, 손으로 계속 뒤집어주고 돌봐줘야 합니다. 그 후 37 ℃에서 24시간 습도 배양을 해주죠.”

고두밥을 넣은 뒤 본격적으로 술을 만들 때는 더욱 긴장해야 한다. 자체 발열하기 때문에 가만히 놔두면 최대 50 ℃까지 오를 수 있단다. 술이 넘치거나 삭아버리는 수가 있으므로 선풍기 바람을 쐬게 하거나, 냉각기를 돌려 온도를 낮춰 줘야 한다.

상동탁주는 과실에서 느껴지는 달콤함과 청량감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는데, 이를 박사장은 ‘물’ 때문이라 말한다. 지하 200m에서 끌어오는 지하수는 물과 미네랄 등의 영양분이 많이 들어있어 효모 발효를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또한 “16℃의 차가운 지하수가 냉각관을 통과하면서 술의 온도를 낮춰줘 술 맛이 변질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귀띔했다. 상동탁주 (1.2l) 1200원. 1박스(15병) 2만원.(택배비포함)055-323-6611.

 


▶이명박 대통령의 막걸리
병영주조 - 설성동동주


2008년 12월 16일 오후 4시. 전남 강진군 병영면의 ‘병영주조’에 때 아닌 외지 손님이 찾아왔다. 40대 중반의 남자 둘은 서울말씨로 “급하게 쓸 일이 있으니 막걸리 12박스(20병,2L)만 달라.”고 했다. 당일 생산한 술을 박스에 넣고 포장하느라 바쁜 직원들이 “좀 기다려달라”고 하자 “청와대에 들어갈 술이니 빨리 줄 수 없느냐”고 했다.

발효실에서 술을 살펴보던 김견식(71)사장은 ‘설마 청와대에 들어갈 술이겠냐. 잘 봐달라고 빈소리를 하는 가보다’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이튿날 서울 마포구의 한 돼지갈비집. 이명박대통령이 중소기업중앙회 임원들과의 만남에 등장한 술은, 다름아닌 병영주조의 ‘설성동동주’ 였다.

“대통령이 드셨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제. 설마 설마 했는디… 기분이 참 이상하더구만.” 이후 병영주조의 설성동동주는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 5월엔 제1회 남도 전통명주 선발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김사장은 1957년, 19살이 되던 해 집안 형님인 김남식(작고)씨가 운영하던 양조장에 들어가 술 빚는 일을 시작했다. 86년 주조장을 인수했으니 술공장 사장이 된 지는 23년 차다. 50~60년대 호황을 구가하던 병영양조장은 70년대 후반부터 소비자 기호변화와 이농에 따른 감소로 쇠퇴기를 맞았다.

양곡령 때문에 밀가루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고, 양조장 문을 닫고 전업하는 이도 많았다. “사람들이 저수지 둑 쌓는데 일하러 많이 나갔지. 밀가루 막걸리가 쌀막걸리보단 맛은 없지만 힘든 일을 할 땐 그만한 먹거리가 없거든. 일을 마치면 ‘만보떼기’(도장을 찍은 종이)를 하나씩 줬는데, 이것이 돈과 같은 효력이라…. 사람들이 죄다 시장에 나가서 만보떼기를 주고 밀가루를 사왔지. 그러고는 주조장에 갖다 주는 거여. 막걸리 좀 만들어 달라고(웃음).”

설성동동주는 텁텁하지 않고 상큼한 맛이 강하다. 이름은 동동주이지만, 제조방식은 일반 막걸리와 똑같다. 발효된 술을 기계에 넣어 술찌게미와 술을 분리하기 전, 동동 뜨는 밥알을 조심스레 건져내 두었다 막걸리에 띄워내는 식이다. 물은 지하 200m에서 끌어 와 쓴다. 쌀은 전남 강진산 햅쌀을 사용한다.

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곰팡이를 직접 배양해 고두밥과 섞어 술을 만드는 ‘입국방식’을 사용한다. 우유빛에 가까운 색을 띄지만 마셔보면 생각보다 가볍다. 끝 맛은 오래 남기보다 톡 쏜 후 깔끔하게 사라지는 편이다. 김사장은 “쌀과 옥수수전분을 8대 2 비율로 섞어 술을 빚는 것이 설성동동주 만의 맛 비결”이라 설명한다.

‘술 빚는 것이 천직’이라는 생각으로, 50년 넘게 막걸리를 만들어왔지만, 그는 약주·증류주 등 다른 술 개발에도 관심이 많다. ‘병영주조에는 없는 술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이 그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설성동동주 이외에도 약주 청세주(18%)와 증류주 사또주(40%)를 만들어 팔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개발한 복분자 막걸리는 2008년 10월 일본으로 수출 되기도 했다.

설성동동주 1병 (1.7ℓ) 1700원. 1박스 (10병) 2만1000원. (택배비포함) 061-432-1010.



▶지평양조장


올해로 84년 생일을 맞은 지평양조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다. 양조장에 들어서면 입구에 서 있는 버드나무가 눈에 띈다. 1925년 양조장이 세워질 때 함께 심은 것이란다. 맞은편 지평고등학교는 양조장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 배고픈 시절, 양조장을 앞에 둔 학생들은 자주 담을 넘어 양조장 앞에 널어놓은 고두밥을 훔쳐 달아났다. 방사장은 “지금은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때 부조를 하지만 예전엔 막걸리 한말, 두말 보내는 것이 부조와 다름없었다. 동네 집집마다 생일과 기념일을 양조장이 꿰뚫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일제시대 때 지어진 양조건물엔 색 바랜 ‘불조심’ 포스터가 붙어있고, 그 위로 거뭇거뭇한 곰팡이가 슬어있다. 지저분하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저것이 80년 간 지평막걸리 맛을 지켜준 “고마운 녀석”이란다.

지평막걸리 맛은 백국균 배양에 달려있다. 고두밥 33kg을 찐 뒤, 충분히 수분을 머금을 수 있게 담요를 덮어 8시간 방치한다. 8시간 후 백국균 80g을 흩뿌리고, 균이 뭉치지 않게 2시간 가량 고루 섞어준다. 12~16시간 정도 따뜻한 곳에서 1차 배양을 한 뒤, 2차 배양을 위해 작은 오동나무 상자로 옮긴다. 방사장은 “요즘 대부분 양조장은 제국기(균을 배양하는 기계)를 사용하거나 스테인리스 통에 균을 배양한다.

수분을 잘 머금는 오동나무 상자를 쓰면 균 배양이 잘 되 술맛도 좋다”고 강조했다. 작은 상자에 균을 담고 손바닥으로 가루를 평평하게 펴준 뒤, 양손의 검지와 중지로 4가닥의 길을 내준다. 나무상자 안의 온도는 36도에서 42도 사이를 유지시켜주어야 한다. 하지만 균이 배양하면서 자체발열을 해 50도까지 오를 수 있다. 일정온도를 유지하는 방법은 나무상자를 켜켜이 쌓지 않고 어슷하게 쌓아 올리는 것.

아래 상자와 위 상자 간 공간이 생기면서 그 속으로 바람이 통해 자연적으로 열을 낮추는 효과다. 열이 계속 상승하면 간격을 점점 넓혀가며 어슷쌓기를 한다. 발효실 실내온도는 28도, 습도는 25%를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증식시킨 효모군 중 30%를 먼저 물에 섞어 주모(밑술)를 만들고, 3일 뒤 나머지 70%에 고두밥을 넣어 이틀을 발효시키면 술이 완성된다. 술을 담는 용기도 스테인리스가 아니다. 양조장이 생긴 후부터 지금까지 옹기만을 고집한다. 옹기를 쓰면 옹기의 공기구멍으로 산소공급이 되기 때문에 자주 저어줄 필요가 없고, 과일향이 많이 난다는 장점이 있단다.

지평양조에서는 쌀막걸리와 밀막걸리 두 종류가 나온다. 밀막걸리는 밀 100%, 쌀막걸리는 양평군에서 나는 무농약친환경 쌀인 허반메쌀 70%와 밀가루30%를 섞어 만든다. 다소 걸쭉하지만 목넘김은 부드럽다. 다른 막걸리에 비해 조금 단 편이다.

지평쌀막걸리 1병 (750㎖) 1200원. 1박스 (24병) 3만2000원. 지평밀막걸리 1병 (750㎖) 1000원. 1박스 (24병) 2만8000원. (택배비포함) 031-773-7030.

 


▶세왕주조(옛덕산양조장)


충북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양조장으로 유일하게 등록문화재(제58호)로 지정되어 있는 세왕주조가 있다. 1929년부터 술을 빚기 시작해 3대 사장 이규행(48)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 양조장은 백두산에서 전나무를 가져와 지었다. 대들보에는 1930년에 지어졌다는 상량문이 적혀져 있고, 발효실에는 ‘1935 龍夢製(용몽제)’라는 글자가 적힌 옹기가 있다. 35년에 용몽리의 가마터에서 구운 옹기라는 뜻이다. 군데군데 때가 끼고 낡았지만,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옛양조장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깔끔하면서도 묵직한 술맛 역시 양조장에서 나온다. 지붕 위에 네 군데 환기구가 있는데, 이 곳으로 바람이 들어와 자연스레 공기가 순환한다. 술이 익어 실내 온도가 상승하면 바깥에서 들어온 바람이 온도를 낮춰준다. 발효실 온도를 25도로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벽과 벽 사이에는 왕겨를 넣어뒀다. 왕겨는 양조장 온도가 외부 환경에 의해 쉽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막아준다. “술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과학적으로 설계한 것”이라고 이규행(48)대표는 설명한다.

이대표가 술맛을 말할 때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효모의 생명력”이다. 시판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도 여전히 막걸리 본래의 신선함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효모를 ‘혹독하게’ 배양시켜야 한다는 것. 배양 시 효모의 밥인 밀가루의 양을 줄인다거나, 물의 온도를 바꿔주는 등의 변화를 주는 식이다. 이대표는 “북풍 맞은 사과나무는 잔병이 없다. 효모 역시 시련을 거치면서 튼튼해진다”고 말한다.

술이 익을 때 생기는 기포 역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부분이다. 빠르게 솟아오르며 반짝거리는 기포는, 보기에는 예쁘지만 효모의 힘이 그만큼 빨리 소모된다는 증거다. 장기 숙성이 힘들다. 일주일에 거쳐 기포가 조금씩 서서히 올라오는 것이 좋고, 반짝거리기 보다는 누런빛을 띄는 것이 좋단다.

그는 매일 32가지 사항을 체크한다. 고두밥을 찌는 시간부터 익은 술을 언제 걸러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까지 빠짐없이 확인한다. 술맛이 조금 달라졌다 싶으면 32가지 항목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 원인을 분석한다.

덕산막걸리는 충북 진천군 지역의 쌀 80%와 밀가루 20%를 섞어서 만든다. 여기다 후발효에 도움을 주는 물엿을 조금 첨가한다. 막걸리뿐만 아니라 약주도 빚는다. 지난 19일에는 국가 지원을 받아 저온창고를 신축했는데, 전통주를 시음하고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잘 꾸며놓았다.

덕산막걸리 1병 (1.7ℓ) 2000원. 1박스 (12병) 2만9000원. (택배비포함) 043-536-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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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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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할머니 보쌈


돼지고기

고 김보배 할머니시절의 보쌈용 돼지고기는 전지뿐이었다. 전지는 돼지 앞다리로 수육으로 적당하지만 기름기가 적어 텁텁한 것이 단점이다. 전지 중에서도 목전지를 보태 이를 보완했다. 앞다리부터 목 부위 경계까지인 목전지는 적당한 기름기가 있으면서 목살의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장모님은 큰 솥에 전지를 바로바로 삶아 손님상에 냈다. 메뉴가 하나뿐이므로 주문도 받지 않고 손님이 앉으면 바로 삶은 고기를 상에 올렸다." 박천희 사장의 말이다.

입안에 와닿는 따끈함, 그리고 신속함이 손님들에게 큰 호감을 샀다. 사실, 전지는 돼지고기 중에서도 값이 싼 부위다. 그래도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며 찾았던 이유는 싼 가격을 내세운 푸짐한 양도 크게 작용했다. "보쌈 한 접시에 350g 정도 나갔는데 이는 돼지고기 한근(600g)을 고스란히 삶은 것"이라고 박사장이 설명했다.

1991년 가맹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지에 삼겹살 · 사태 ·등심을 더했다. 삶아서 바로바로 내는 장모님의 결정적 비법을 이어가기는 힘들어졌기 때문. 대신 품질 좋은 고기로 고급화하고, 다양화된 고객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다른 보쌈과는 다른 원할머니보쌈만의 차별화를 위해 현재는 기름기가 적어 퍽퍽한 등심과 전지는 빼고 삼겹살과 사태만 쓰고 있다.

손익을 따지기 보다는 좋은 품질의 고기로 고객의 기호에 맞고 양심에 거리낌 없는 음식을 내야 한다는 것이 박사장의 생각이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고기도 식으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 고심하던 박사장은 ‘수육온기’를 특허 내어, 방금 삶은 뜨끈뜨끈한 고기를 손님상에 올려 손님이 마지막 한 점까지도 따뜻한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원할머니 본가는 지금도 황학동에 위치하고 있다. 본가는 100% 국내산 돼지고기를 쓴다. 그러나 가맹점은 사태만 국산을 쓰고, 삼겹살은 수입산(핀란드나 스페인)을 사용한다. 가맹점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부득이 수입산을 끌어들였단다. 그래도 원산지의 현장을 찾아가 사육·도축·정육· 유통 과정의 위생 상태와 품질을 확인하고 결정했다고 한다.


보쌈김치

김 할머니는 김치를 만들 때 설탕과 화학조미료를 썼단다. 그래서 첫 맛은 맵지만 먹고 나면 입 안에 단 맛이 감돌았다. 자꾸 당기는 매운 맛이 장모님 김치의 특징이었다.

그 시절엔 그렇게 맛을 냈고 손님들은 그 맛에 익숙해졌다. 박 사장은 가맹 사업을 시작하면서 화학 조미료를 빼고 설탕을 과당으로 대체했다. 오래된 손님들 중에는 정겨운 장모님의 김치 맛 그대로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웰빙 시대에 맞춰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 개선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대신 배추에서 양념까지 전부 엄선된 국내산만을 쓰고 배추 잎에 속을 채우고 돌돌 마는 장모님만의 방법은 고수 했다. 김 할머니는 크기 별로 배추 잎을 하나 하나 따서 절였다. 그리고 가장 큰 배추 잎을 밑에 놓고 김칫소를 올린 후 중간 크기의 배추 잎을 덮는 식으로 배추 잎 사이사이에 김칫소를 채웠다.

그리고 돌돌 말아 양파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박 사장은 이를 2004년 ‘양파형 개량 보쌈 김치와 그 제조 방법’으로 특허 등록해 원할머니보쌈의 김치 노하우 중 하나로 지키고 있다.

하지만 김치는 보쌈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 할 때부터 박 사장에게 끝없는 과제를 안겼다. “장모님 시절은 겉절이도 그날 아침에 무쳐 저녁에 손님상에 냈다. 겉절이가 가장 맛있을 때 손님상에 올린 것이다, 겉절이는 이틀만 지나면 단맛만 진해지고 제 맛이 안 난다” 문제는 공장에서 만들어 길게는 5,6일 후 가맹점에 배달되는 겉절이가 장모님의 그 날 아침에 무쳐 그 날 손님상에 올리는 김치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겉절이의 숙성을 지연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키토산, 올리브고당 첨가물을 넣었는데 약간의 효과는 있지만 가격 부담이 컸다.

옹기를 사용하는 것은 효과가 미미했으며, 일본의 빙온기술(영하에서도 얼지 않고 음식을 보관하는 기술)은 엄청난 로열티를 요구했다.

이러한 수년에 걸친 고심과 연구 끝에 찾아낸 것이 항균성이 강해 김치의 발효를 지연시키는 세라믹 용기사용과 콜드체인시스템(배송차량에 자동온도조절장치를 설치, GPS를 통해 수시로 온도와 위치를 점검하는 방식)의 도입이었다. 세라믹용기에 담은 김치를 콜드체인시스템으로 배송하는 방법으로 김치의 유통기간을 하루에서 일주일로 연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26년 된 강남 전주할머니 보쌈


고기

100퍼센트 국내산 삼겹살과 사태를 쓴다. 고기는 1시간정도 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무쇠 솥에 계피, 황기, 후추, 통마늘, 통양파, 파뿌리로 육수를 낸 후 이 집만의 특제 소스와 청주를 넣고 더 끓인다. 이 특별 소스의 제조법은 비밀이란다.

육수가 팔팔 끓으면 고기를 넣는다. 그래야만 육즙이 빠지지 않고 고기의 탄력을 살릴 수 있다. 중간에 한 번 뒤집어 골고루 익히면서 40분간 삶은 후, 강불에서 약불로 줄여 10분간 더 뜸을 들인다. 건져낸 고기는 바로 스티로폼 박스 속의 쇠 냄비에 담아 보온한다. 고기는 0.5mm정도로 얇게 썰어 내는데, 그래야 고기가 퍽퍽하지 않다. 이 집은 고기를 한 번에 30근씩 하루에 3, 4번 삶는다. 양념한 새우젓을 같이 낸다.


김치

이틀에 한 번, 배추 30포기 정도를 담근다. 그 작업이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배추는 밑동을 자르고 한 잎 한 잎 떼어내어 2시간 정도 절인다. 채 썬 무 역시 2시간 절인다. 여름 무는 물기가 많기 때문에 겨울무보다 물기를 더 많이 뺀다. 알맞게 물기를 짠 무에 고춧가루 ? 멸치액젓 ? 새우젓 ? 설탕 ? 채 친 배와 생밤 등을 넣고 버무린다.

이 때 고소한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땅콩을 갈아서 넣는다. 배추는 흐르는 물에 씻은 후 세 가지 크기로 나누어 준비해 놓는다. 가장 큰 배추 겉잎을 먼저 깔고 그 위에 김치 속을 넣은 후 중간 크기의 배추 잎을 올리고 다시 김치 속을 넣는다. 배추 잎 사이에 김치 속을 켜켜이 넣고 돌돌 만다. 김치냉장고에서 하루 동안 숙성시킨 후에 손님상에 올린다.

보쌈 1만 5000원. 굴쌈 1만 6000원. 2호선 강남역 6번 출구. 02-3481-9211.

 


★35년 된 종로 삼해집


고기

국내산 목살을 돼지 뼈 사골 육수에 삶아 쓴다. 하루 종일 곤 순수한 돼지 뼈 사골 육수에 목살을 넣고 40분 동안 삶는다. 그 후 다진 마늘과 생강, 소금을 넣은 다른 사골 육수에 옮겨 넣고 20분을 더 삶는다. 고기에 은근한 간과 향이 배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곳 역시 삶아낸 고기는 식지 않게 스티로폼 박스 속 냄비에 담아 뒀다 도톰하게 썰어 낸다. 도톰해야 씹는 맛 고기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고기를 삶은 사골 육수는 기름을 거둬내고 감자탕을 끓이는 데 쓴다. 보쌈을 먹으면 감자탕이 서비스로 나온다. 고기는 하루에 20근씩 3번 삶는다. 양념하지 않은 새우젓을 낸다.


김치

김치는 매일 오후 4시에 담가 그 날 모두 사용한다. 매일 담그는 김치가 무 60~70개, 배추 30포기에 이른다. 무는 채를 썰어 저녁 6시에 절였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건져서 돌로 눌러놓는다. 이 상태로 오후 4시까지 놔둔다. 배추는 밑동을 자르지 않고 통으로 밤 12시에 절여 다음 날 낮 2,3시에 건져 씻는다.

물기가 빠지고 꼬들꼬들 해진 무에 고춧가루와 멸치 액젓 ? 다진 마늘 ? 미나리 ? 채 친 배 등을 넣고 버무린다. 이때에 작게 깍둑썰기 한 고구마를 넣어 같이 버무리는 것이 삼해집 김치의 특징이다. 양념을 버무린 후 마지막에 물엿을 넣고 한 번 더 버무리는데 단맛을 내고 반지르르한 윤기를 더하기 위해서다.

큰 잎을 중앙에 깔고 작은 배추 잎 두 개를 양 옆에 걸쳐놓는다. 세 잎이 겹치는 부분에만 김치 속을 한 움큼 넣고 양 옆의 배추 잎을 가운데로 모으고 큰 잎으로 김밥 싸듯 돌돌 만다. 김밥처럼 한 입 크기로 썰어 내놓는다.

굴보쌈 2만원(소), 2만 5000원(중), 3만원(대). 3,5호선 종로 3가역 15번 출구. 02-2273-0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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