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신경숙

Private/도서 · 2013. 6. 7. 00:39

새로 신경숙의 소설을 집어들었다..

 

지난 몇개월간 가장 힘든시간을 같이 버티게해 준 그녀의 소설에 감사한다..

 

단지 프롤로그를 읽었을뿐인데,

 

익숙한 그녀의 문체가 날 적신다..참 좋다..그녀의 글은..

 

 

 

프롤로그
내.가.그.쪽.으.로.갈.까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팔 년 만이었다.
  나는 단번에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수화기의 저편에서 여보세요? 하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어디야? 하고 물었다. 그가 침묵을 지켰다. 팔 년. 짧은 세월이 아니다. 한 시간 단위로 풀어놓으면 아마도 상상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올 것이다. 팔 년 만이라고 말했지만 팔 년 전에도 우리는 지금은 잊어버린 무슨 일인가로 사람들과 만나 서로 다른 곳을 보다가 헤어질 때에야 가만히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그게 다였다.

 

(중략)

 

  그가 그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든 내겐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진주알들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던 때였다. 잘 가, 라거나 또 만나자, 고 할 수가 없었다. 뭔가를 꿰어놓은 줄이 끊어지면 그 줄에 달려 있던 것들이 한순간 후드득 바닥에 쏟아져버리듯 입을 열어 한마디라도 하게 되면 그뒤로 시효가 지난 말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질 것 같았다. 우리가 서로를 확장시키며 깊어졌던 시간들을 붙잡고 있던 때라 툭 터지면 제어할 길이 없을 거란 생각에 내면은 복잡했지만 얼굴엔 담담한 표정을 가장하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찾으며 의지했던 날들을 그런 식으로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팔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그냥 흘러가는 법 또한 없다. 팔 년 만에 전화를 걸어온 그에게 어디야? 하고 담담하게 묻는 순간, 이제 내 마음속엔 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쌓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아 있는 격렬한 감정을 숨기느라 잘 지내고 있는 시늉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정말 담담하게 그에게 어디야? 하고 묻고 있었으니까. 의문과 슬픔을 품은 채 나를 무작정 걷게 하던 그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쓰라린 마음들은. 혼자 있을 때면 창을 든 사냥꾼처럼 내 마음을 들쑤셔대던 아픔들은 어디로 스며들고 버려졌기에 나는 이렇게 견딜 만해졌을까? 이것이 인생인가.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른다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 때문인가. 소용돌이치는 물살에 휘말려 헤어나올 길 없는 것 같았을 때 지금은 잊은 그 누군가가 해줬던 말. 지금이 지나면 또다른 시간이 온다고 했던 그 말은 이렇게 증명되기도 하나보다. 이 순간이 지나간다는 것은 가장 큰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지금은 충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모두 적절한 말이다. 어떤 이에게는 견딜 힘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겸손할 힘을 줄 테니까.

 

(중략)

 

시간은 언제나 밀려오지만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젊은 날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누군가는 작별하지 않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또다른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중략)


너.에.게.는.내.가,.알.려.야.할.것.같.았.어.
그의 말이 눈송이처럼 눈앞에서 흩날리는 듯했다.


(중략)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깃들여 있는 것으로, 그렇게 불완전한 게 기억이라 할지라도 어떤 기억 앞에서는 가만히 얼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의식들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기억일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는 일이 왜 그렇게 힘겨웠는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왜 그리 또 두려웠던지, 그런데도 어떻게 그 벽들을 뚫고 우리가 만날 수 있었는지.


(중략)


  침묵을 깬 건 그였다. 윤교수의 소식을 전하던 그의 목소리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수화기를 들고 있는 내게 그는 내.가.그.쪽.으.로.갈.까? 라고 물었다.
  이 시간에?
  그와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가.그.쪽.으.로.갈.까? 라고 묻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말인가. 우리가 함께 있었을 때 그는 수화기 저편에서 늘 이 말을 하고 있었지. 내.가.그.쪽.으.로.갈.까? 그때의 그는 공중전화 부스안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 또 이런 말도 했었다. 그.쪽.으.로.가.고.있.다. 고.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흐린 날도 맑은 날도 그 말 속에 섞여 흘러갔다. 그때의 우리는 어느 시간이든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보다 더 이른 시간이어도 그가 내게 오지 못하는 시간은 없었고 내가 그에게 갈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의 우리는 언제든 서로를 향해 어서 와, 라고 말했다. 인생은 각기 독자적이고 한 번뿐이다. 모두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고, 사랑하고, 슬픔에 빠지고, 죽음 앞에 가까운 사람을 잃기도 한다. 지금 병원에 누워 있다는 윤교수도, 팔 년 만에 전화를 걸어온 그도, 나도,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단 한 번. 그럴 것이다. 우리에게 청춘이 단 한 번만이 아니였다면 오늘 이렇게 내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려 팔 년 만에 그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없을 것이다.


(중략)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나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되는 일이 나이먹는 일과 비례하는 건 아니다. 세월이 쌓인다고 알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내게는 오히려 청춘 시절보다 지금이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에 더 서툴고, 느닷없이 찾아드는 죽음의 소식에 매번 당황하며 휘둘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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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은 똑같이 네모난 크기로 잘린 채 가슴속에 무수히 박혀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내게 늘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곤한다.
지.금.뭘.하.고.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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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면
창을 든 사냥꾼처럼
내 마음을 쑤셔대던 아픔들은
어디로 스며들고 버려졌기에
나는 이렇게 견딜만 해졌을까
이것이 인생인가...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른다는게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때문인가...
소용돌이치는 물살에 휘말려
헤어나올 길 없는 것 같았을때
지금은 잊은
그 누군가 해줬던 말..
지금이 지나면
또 다른 시간이 온다고 했던
그 말은 이렇게
증명되기도 하나보다.

이 순간 지나간다는 것은
가장 큰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지금 충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모두 적절한 말이다
어떤 이에게는 견딜 힘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겸손할
힘을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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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과 슬픔을 품은 채
나를 무작정 걷게 하던 그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쓰라린 마음들은..
혼자 있을때면 창을 든 사냥꾼처럼 내 마음을 들쑤셔대던 아픔들은 어디로 스며들고 버려졌기에 나는 이렇게 견딜만 해졌을까.
이것이 인생인가.
시간이 쉬지않고 흐른다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때문인가.

소용돌이치는 물살에 휘말려 헤어나올 길 없는 것 같았을 때, 지금은 잊은 누군가가 해줬던 말.
지금이 지나면 또다른 시간이 온다고 했던 그 말은 이렇게 증명되기도 하나보다.

그것은 가장 큰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지금 충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모두 적절한 말이다.
어떤 이에게는 견딜 힘을주고,
어떤 이에게는 겸손 할 힘을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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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다른 모양으로 변화할 것을 예고하는 일이고,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희망이라고 했던 윤교수. 태어나서 살고 죽는 사이에 가장 찬란한 순간, 인간이거나 미미한 사물이거나 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겐 그런 순간이 있다. 우리가 청춘이라고 부르는 그런 순간이. 그가 팔 년 만에 두번째로 전화를 걸어와 오늘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아, 라고 말했을 때,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윤아, 하고 불렀을 때, 까마득히 잊고 있던 우.리.오.늘.을.잊.지.말.자, 고 하던 그의 목소리가 폭포를 거슬러오르는 연어때처럼 현재의 내 시간을 일깨웠다.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있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