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상의 전개
1. 근본불교
근본불교는 부처님의 생존시로부터 입멸 후 100년 내지 200년까지의 기간이 여기에 해당된다. 부처님이 교화활동에 전념한 약 50년을 포함하면 150년 내지 250년 동안 지속되었던 불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근본불교는 현실을 직시하고 실천함으로써 현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해결주의를 기본입장으로 하고 있다.
1) 불타당시의 사상계
불교의 개조인 샤카무니 붓다(Sakyamuni Buddha)가 출현하였던 기원전 6세기 무렵의 갠지스 강 중류지방은 사회적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당시 인도는 강대한 신흥왕국의 출현과 도시의 형성 등으로 급격한 정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고 이에 따라 종교 사상계 또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인도의 고대문명은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시작하여 대략 1000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인더스 문명으로 불리는데 오늘날 인더스강 유역의 하라빠와 모헨조다로 등 도시 유적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고대문명은 문다족, 드라비다족 등을 비롯하여 일찍부터 인도대륙에 살아온 여러 종족들에 의해 이룩되어 왔다. 그러나 이후 인도의 문명은 코카서스 지방으로부터 인더스강 상류의 펀잡지방에 침입해 온 아리야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아리야인들은 기원전 16에서 13세기 무렵 인더스 강 상류의 펀잡지방에 침입하여 기원전 11에서 9세기 무렵에는 이미 갠지즈강 상류지방으로 이주하였는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계속 동방으로 진출하여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갠지스강 중류지방에 정착하였다. 이와 함께 이 지방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현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먼저 당시 존재하고 있던 군소부족이 점차 통합되어 강대한 국가체계가 형성되었다. 초기불교 경전에 의하면 16대국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강성했던 나라는 마가다, 코살라, 밤사, 아완띠 등이었으며 전제적인 국왕이 통치하는 군주정체의 이들 4대국에 의해 군소 국가들은 점차 합병되어 갔다. 그리하여 붓다시대에 이들 나라는 이미 갠지스강 중류지방에 각각 강대한 신흥왕국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신흥 왕국의 중심지는 도시였는데 특히 갠지스강 중류 지방의 여러 도시가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처음 이 지방으로 이주해온 아리야인 사회는 변함없이 종전과 같은 씨족제 농촌사회의 촌락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였지만 농업생산의 증대, 상공업의 발달, 화폐 경제의 촉진, 인구의 집중화 등에 따라 곳곳에 도시를 형성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 갔다.
이같은 국가적 정세에 부응하여 사회의 구성도 점차 변모하기에 이르렀다. 인도 사회구성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계급제도는 아리야인들이 갠지스강 상류지방에 이주하였던 시대에 확립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성(四姓) 계급제도라고 한다. 사성이란 바라문(Brahmana), 왕족들(ksatriya), 서민(vaisya), 노예(sudra) 등의 네 가지 계급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바라문은 제사와 종교의 권리를 독점하는 최상위의 계급이었으며, 정치력과 군사력을 장악하는 왕족이 그 다음에, 농업 목축업 상공업에 종사하는 서민이 그 뒤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비천한 노역에 종사는 노예가 최하위 계급에 속하였다. 이것을 근대에 와서 카스트라고 하였는데 원래 카스트란 개개의 계급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쨌든 이 사성계급은 인도 아리야인의 사회구성을 특징짓는 계급제도로서 이를 기반으로 하여 바라문교가 성립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계급제도가 점차 변모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변모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적 패자(覇者)로서의 국왕과 경제적 실력자로서 새롭게 등장한 자산가(資産家)이다. 국왕은 종전의 농촌사회에 있어서는 단순히 부족의 수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동방의 신흥 왕국에서는 이들이 지방적 분권이기는 하지만 이미 국가의 지배자로서 그 지위를 갖기에 이르렀다. 또 자산가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상업 자본가나 지방의 거대한 토지의 소유자를 가리킨다. 이 시대에 이르러 이들은 서민 계급과는 구별되는 토지의 소유자를 하나의 사회적 신분으로 간주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장자로 불리는 직업조합의 장들은 상업 자본가들의 대표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
이처럼 국왕이나 자산가가 사회에 커다란 세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예로부터 내려오던 계급제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인종적으로도 아리야인이 동방으로 진출하게 됨에 따라 시작한 원주민과의 혼혈은 계급 붕괴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하여 브라흐마나 문헌에서 사성(四姓)을 열거할 경우에 반드시 바라문, 왕족, 서민, 노예의 순서로 하여 바라문을 최상위에 두고 있지만 초기불교의 성전에는 거의 대부분이 왕족, 바라문, 서민, 노예의 순서로 나타난다. 즉 바라문과 왕족의 위치가 바뀌어져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 바라문의 세력은 농촌사회를 중심으로 뿌리깊게 잔존해 있었지만 도시를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옛날의 권위는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다.
정통 바라문의 사상
사회 변동에 따라 사상계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당시 철학이나 종교에 관한 사상가는 크게 바라문과 이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사문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바라문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베다 성전을 신봉하는 사제자로서 농촌 사회를 중심으로 하여 전고 다름없이 사상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술적 마술적인 제사를 주관하고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바라문의 사상은 베다(Veda), 브라흐마나(Brahmana), 아란야까(Aranyaka), 우빠니샤드(Upanisad)라는 일련의 문헌들을 통해 전개된 종교사상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의 전개과정은 보통 3기로 구분되기도 한다.
베다는 인도에 이주해 온 아리야인들의 우주와 인간에 대한 사유방법과 종교적 지식을 모아 편찬한 성전의 명칭으로 리그베다(Rg-veda), 사마베다(Sama-veda), 아주르베다(Yajur-veda),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의 네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그 성립이 오래된 것은 리그베다로서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 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를 베다 시대라고 하며 바라문 문화의 제1기에 해당한다.
신들을 찬미하는 시가모음집인 리그베다에는 무수한 자연신들이 등장한다. 대개 태양이나 불, 바람, 강과 같은 자연 현상의 다양한 힘들, 또는 추상적인 관념들이 신격화되어 천신으로서 숭배되고 찬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들 가운데 인드라는 신체적 특징과 큰 위력을 갖춘 최고의 천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들의 거룩한 행위에 대한 찬미 외에도 리그베다는 부(富), 다산(多産), 장수(長壽), 승전(勝戰) 등과 같이 인간에게 유익한 것들을 간구하는 기원을 함께 담고 있다.
그러나 자연신교적이며 다신교적인 경향을 반영하는 이 시기에도 근원적인 세계의 원리를 탐구하는 사유가 싹트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주창조에 관한 찬가들이다. 즉 우주와 모든 존재는 전능의 힘을 지닌 비슈와까르만(Visvakarman)이 집을 짓듯이 만들었다고 하거나, 또는 모든 피조물들이 주(主)라고 불리는 아버지 신인 쁘라자빠띠(Prajapati)가 우주를 출생시켰다고 한다. 우주의 근원에 관한 이런 사유들이 리그베다의 노래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들에 대한 찬미, 기원과 관련하여 베다 시대 인도인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의례와 제사였다. 기원전1000에서 800년 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브라흐마나는 이러한 의례와 제사에 관한 규정을 자세하게 밝힌 문헌들이다. 따라서 제사가 중심이 되었던 이 시대를 브라흐마나, 즉 범서(梵書) 시대라고 부르며, 바라문 문화의 제2기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인간의 문제를 신에게 고하거나 빌기 위해 의례를 행하고 제사를 드렸다. 이러한 의례 또는 제사의 형식이 처음에는 간단하였고 그 목적도 단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것은 점점 복잡하고 정교하게 되어 많은 제단과 제사를 관장하는 여러 사제자들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의례와 제사는 이제 우주와 신들을 움직일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지는 일종의 성스러운 기술로 간주되었다. 리그베다 외에 사마베다, 야주르베다, 아타르바베다는 신에 대한 권청 또는 제사의식의 축문 및 주문집으로서 브라흐마나 시대에 성립된 것들이다. 신을 움직이게 하는 제사의 전담자는 큰 권능을 갖게 되었으며 이들은 제사에 관한 권능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 또한 향상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사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사제 지상주의사회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브라흐마나 시대에서는 베다 시대의 자연신교적 종교사상이 더욱 발전되어 범신론적(汎神論的) 우주론이 나타나고 있다. 즉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으로서 브라흐만이 상정되어 그가 우주 자연 등 일체를 성립시킨 다음 스스로 그 일체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뜻에서 브라흐만은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인 동시에 우주의 본질이기도 한 셈이다. 이같은 일원론적 범신론의 견지에서 사제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브라흐만과 직결된 종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제자들이 브라흐만과 직결된 종성임을 주장하며 바라문 중심주의, 제사 지상주의에 빠져 있을 때 이런 현실에 회의를 느껴 새로운 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우빠니샤드 시대의 사상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의례와 제사를 만능으로 삼는 지나친 종교적 색채가 반성이 되고 철학적 사색이 심화된 이 시기는 기원전 800년에서 600년 경으로 바라문 문화의 제3기이다.
이 시대의 문헌은 새로운 의식을 지닌 사상가들이 숲 속에서 비밀스러운 뜻을 노래한 내용의 아란야까와 그 중에서도 특히 철학적 사색이 더욱 체계화된 우빠니샤드가 있다. 우빠니샤드는 ‘가까이 앉는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스승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 서로 은밀하게 주고받은 가르침을 모아 이룩한 성전이라는 뜻이다.
이 우빠니샤드 시대에서는 제사보다 지식을 더욱 고차원적인 해탈의 열쇠로 간주하였다. 의례와 제사 대신에 사색을 통한 지적 추구가 더욱 중시된 것이다. 따라서 우빠니샤드 시대의 사상가들은 우주의 질서와 그 이면의 통일성에 관해서 사색하였고 절대적 존재와 개체적 자아의 한계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그리하여 브라흐마나시대의 일원론적인 범신론은 이 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빠니샤드는 세계의 다양성의 배후, 즉 모든 신들과 피조물들, 인간과 자연의 이면에 하나의 절대적 동일성인 최고의 브라흐만이 존재한다는 사상을 펼치고 있다. 브라흐만은 전우주이며,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주안에 있는 모든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렇게 브라흐만을 우주와 동일시함으로써 우빠니샤드는 모든 것 안에서 브라흐만을 보고 브라흐만 안에서 모든 것을 본다. 인도인들은 모든 자연의 사물들 안에 브라흐만의 내재성을 인정하는 한편 동시에 창조된 세계를 뛰어넘는 브라흐만의 초월성에 대해서도 성찰했다. 브라흐만은 세계 전체를 포괄하되 세계를 휠씬 초월하며, 또 그 자신의 일부분으로서 온 우주에 편재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우주에 있어서 절대적 통일성의 원리가 통찰되는 가운데 그것은 인간 존재의 동일성으로 파악되기도 하였다. 즉 우주의 근원인 동시에 보편적 원리로서의 ‘브라흐만(梵)’과 인간 내면의 핵심인 ‘아뜨만(Atman, 我)’은 동일한 존재라는 우빠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이 곧 그것이다. 아뜨만은 ‘호흡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것이 점차 생기(生氣), 신체를 의미하게 되고 나아가 자아, 영혼을 의미하는 말로 발전하였다.
우빠니샤드에 있어서 자기 본질인 아뜨만은 동시에 우주 그 자체의 본질이다. 아뜨만은 만물에 내재하여 우주의 모든 존재를 지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주의 근본이며 보편적 원리인 브라흐만과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이 범아일여의 기본적 의미이다. 우빠니샤드 사상가들은 이같은 보편적 자아와 개체적 자아가 동일하다는 존재의 통일성을 체득하기 위해 스승의 지도 아래 학습하거나 성찰하고 명상, 요가 등의 수련을 병행하기도 하였다.
혁신적인 사문들의 사상
바라문에 대하여 새로운 정신적 지도자로서 등장한 것이 사문이다. 사문(samana, 沙門)이란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정도의 뜻으로 초기 우파니샤드에서는 단 한번 사용된 말이지만 이 시대 이후의 여러 문천에서는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며 일반적인 자유사상가의 총칭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들은 바라문과는 달리 예로부터 내려오던 계급제도를 무시하여 어떠한 계급도 사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모든 베다 성전의 권위를 부정하는 등 바라문교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언어적으로도 바라문의 용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민중의 말에 근거한 프라크리트어(俗語)를 사용하였다. 그들은 바라문교에서 규정한 네 가지 생활단계에 따르지 않았다. 네 가지 생활단계란 스승 밑에서 학습하는 청년 시절의 범행기(梵行期), 가정에서 생활하며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가주기(家住期), 가정과 재산을 아들에서 물려주고 숲 속에 들어가 은거하는 임서기(林捿期), 숲 속의 거처까지 버리고 완전히 무소유로 걸식하고 편력하는 생활에 들어가는 유행기(遊行期)를 말한다. 사문들은 이런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시기에 출가하여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유행생활에 들어가 여러 가지 수행을 하면서 사람들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설하였다. 바라문을 정통 사상가라고 한다면 사문은 이단적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문의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것은 주로 신흥도시의 사람들이었다. 도시의 새로운 분위기에 젖은 사람들은 바라문에 대해서 종전처럼 반드시 추종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문이 설하는 바에 공감하였다. 특히 국왕이나 자산가오 같은 새로운 실력자들은 모드 사문들을 존경하고 지지하였다. 이렇게 갠지스강 중류지방에는 각각 자유로이 출가유행하고 자유로운 사상활동을 실행하는 사문들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당시 바라문이나 사문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은 매우 다양하였는데 그들의 견해를 분류하여 불교에서는 62견(見)으로 자이나교에서는 363견(見)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나 자이나교의 입장에서 각각 이단적 견해라고 생각되는 것을 열거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분류방법은 기계적으로 조합된 것도 포함하고 있어 이것을 바로 당시 사상계의 실태라고는 볼 수 없다. 이것을 통해 당시 사상계에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불교의 62견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이것들은 크게 과거에 관한 견해(18가지)와 미래에 관한 견해(44가지)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과거라고 하는 것은 전세(前世)의 생존을 가리키고 미래라고 하는 것은 사후의 생존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62견은 모두 윤회전생의 사상을 배경으로 한 교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그 행위에 의해 윤회의 생존을 되풀이한다는 사상은 이미 초기 우파니샤드 시대에서부터 점차 성숙되어 온 관념인데, 이 시대에 이르러 바라문과 사문을 포함한 모든 사상계 일반에 널리 유포되어 정착하게 되었다. 윤회의 생존을 인정한다면 윤회하는 중심적 존재가 문제되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로서 아트만과 그 생존의 장소로서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견해가 모색되었다. 또한 윤회의 생존으로부터 벗어난 해탈, 열반의 경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윤회나 해탈의 사상을 완전히 부정하는 학설도 나타났으며 모든 사물에 대해 회의적 궤변을 늘어놓는 학설도 출현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를 분류한 것이 62견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사상의 내용이나 그 주장자에 관해서는 거의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사문들 가운데 몇 사람의 이름과 그들의 사상이 불교의 초기 경전에 속하는 사문과경(沙門果經) 등에 나타나 있다. 이른바 육사외도설(六師外道說)이 그것이다. 여기서 외도설이란 불교와는 다른 길의 사상이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육사(六師)의 견해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육사외도 가운데 제일 먼저 언급되고 있는 푸라나 캇사파는 도덕 부정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살생, 도둑질, 간음, 거짓말 등을 해도 악을 행한다고 할 수 없으며 악의 과보도 생기지 않는다. 또 제사, 보시, 극기, 진실한 말 등을 행하여도 선을 행한다고 할 수 없으며 선의 과보도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당시 일반 세간에서 인정되고 있던 선악의 행위와 그 행위가 미래에 초래하는 과보를 모두 부정하였다.
두번째 막칼리 고살라는 숙명론자였다. 그에 따르면 윤회의 생존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혹은 청정하게 되고 해탈하는 것, 그 모두는 원인이 없다. 살아가는데는 지배력도 의지력도 없으며 다만 자연의 정해진 상황과본성에 의해 결정될 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의 의지에 근거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업에 의한 윤회전생을 부정하는 등 일종의 결정론적인 숙명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윤회의 주체로서 영혼(jiva, 命我)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이것을 상주하는 물질적 존재라고 생각하여 지(地), 수(水), 화(火), 풍(風), 허공(虛空) 등의 원소와 같은 원리로서 파악하였다. 또 득(得), 실(失), 고(苦), 락(樂), 생(生), 사(死), 영혼(靈魂)의 추상관념을 하나의 원리로서 상정하고 이것들을 실체로 보려고 하였다.
세번째 아지타 케사캄바린은 인도에서 가장 알려진 가장 오래된 유몰론자이다. 그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가지 물질적 원소만이 참된 실재라 하여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인간은 죽음으로써 단멸하고 신체는 모두 네 가지 원소로 환원된다. 내세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고 현세가 인생의 전부이며, 선악의 행위를 짓더라고 죽은 후 그 과보를 받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는 감각적 유물론 내지는 쾌락주의의 입장에 섰던 것으로 보여진다.
네번째 파쿠다 캇차야나는 유물론적인 경향을 가진 사상가이다. 그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네 가지 원소 이외에 고(苦), 락(樂), 영혼(命我) 등 세 가지 원소를 더하여 일곱 가지 요소의 실재를 주장하였다. 영혼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의 사상은 아지타와는 다른 이원론의 입장처럼 보이지만 파쿠다가 인정하는 영혼은 물질적인 것으로 지극히 유물론적이다. 7요소는 독립적인 것으로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테면 사람을 죽여도 다만 날카로운 칼날이 7요소 사이를 관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파쿠다 역시 실천적으로 도덕을 부정하는 입장에 섰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다섯번째 산자야 벨라티풋타는 대표적인 회의론자이다. 그는 이를 테면 내세는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그렇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고도, 그것과 다르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하여 애매한 대답을 하여 판단을 중지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뱀장어처럼 미끈미끈하여 좀처럼 붙잡을 수 없는 교설로 일컬어진다.
여섯번째 니간타 나타풋타는 자이나교의 개조 마하비라를 불교도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니간타(Nigantha)라고 하는 것은 그 이전에 존재하였던 종교적 단체의 명칭이며 나타풋타는 나타족 출신의 사람이란 뜻이다. 본명은 밧다마나(Vaddhamana)인데 크게 깨쳤으므로 마하비라(Mahavira, 위대한 영웅) 혹은 지나(jina, 수행을 완성한 자)로 존칭되고 있다. 그의 가르침과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자이나라고 부른다. 자이나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교와 유사하고 가깝지만 사상적으로는 매우 다르다. 마하비라는 석존과는 달리 자연세계나 물질에 대한 관찰에 관심을 나타내 매우 색다른 형이상학적 고찰을 모색하였다. 우주는 많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들을 크게 영혼(jiva, 命我)과 비영혼(ajiva, 非命我)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영혼은 우파니샤드의 아트만처럼 상주편재(常住遍在)하는 자아가 아니라 다수의 실체적 개아(個我)로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네 가지 원소나 동물 식물에도 내재되어 있다. 비영혼은 담마(dhamma, 法/운동의 조건), 아담마(adhamma, 非法/정지의 조건), 허공, 물질 등 네 가지고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과 영혼을 합해 다섯 가지 실재체(實在體)라고 한다. 이 다섯 가지 실재체는 모두 점(點, 공간)이 집합하여 이루어진 실체이며, 세계의 구성은 이것에 의해 통일적으로 설명된다.
마하비라는 윤회와 해탈의 문제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교설을 세우고 있다. 그는 업을 미세한 물질로 보고 이 업이 외부로부터 신체 내부의 영혼에 유입되고 부착하여 영혼을 속박하기 때문에 윤회의 생존이 되풀이된다고 생각하였다. 마하비라가 업을 물질로 간주한 것은 석존의 교설과 크게 다른 점이다. 이러한 업에 의해 속박된 윤회에서 벗어나 영혼이 그 본성을 발현하여 해탈하기 위해서는 미세한 업물질이 영혼에 유입하는 것을 제어하고 이미 영혼에 부착된 업물질을 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율을 지키고 고행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출가수행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2) 근본교설
근본교설은 붓다가 직접 가르친 것으로, 또한 붓다의 제자들이 그들의 스승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자신들의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한 것이다. 아직 교단이 분열되기 전이었으므로 붓다의 가르침은 다른 주장없이 그대로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근본교설에서는 형이상학설을 배제하고 세계와 인생의 현상적 존재에 대해서만 매우 합리적인 고찰을 하였다.
초기경전에 나오는 여러 교리 가운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연기설(緣起說)이며, 연기설의 응용 내지 실천 이론들인 12연기, 사성제(四聖諦), 삼법인(三法印), 윤회와 업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설(緣起說)
석존의 깨달음을 설한 경전의 기술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내용적으로 보면 결국 연기(緣起)의 자각이 그 중심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석존은 보리수 아래에서 연기를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어 불타(佛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근본 교설들은 모두 연기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며 연기의 의미를 아는 것이 근본불교의 사상 그 자체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연기사상은 근본불교에서 뿐만 아니라 초기대승, 중기대승에 있어서도 항상 불교의 중심문제가 되었으며 나아가 후기대승은 물론 중국, 한국, 일본에서 발전한 불교에서도 각각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고찰되고 있다.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을 緣하여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는 의미로 일체의 사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으로 인해 성립한다고 하는 말이다. 인간 존재나 그것을 둘러싼 세계는 모두 어떤 원인과 조건에 근거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근본불교에 있어서 연기의 일반적인 정의로서는 보통 다음과 같은 하나의 글귀를 들 수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어떤 것을 緣하여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과 서로 관계하여 존재한다는 것으로 그 자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상주불변(常住不變)것은 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만 그리고 상호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연기설이란 존재의 관계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것이 다른 것의 원인이 되고 다른 것이 어떤 것의 결과가 된다고 하는 관계는 일반적으로 넓은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연기의 정의를 나타낸 귀절 중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원만은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고도 번역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연기의 관계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얼어난다’고 하는 무시간적, 논리적 관계와 함께 시간적, 생기적(生起的) 관계가 고려되는 것이다.
연기설은 세계 인생의 일반적인 생멸 변화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기가 말하여진 본래의 목적은 단순한 일반적 현상보다도 오히려 인간의 고뇌가 어떠한 조건과 원인에 의해 생겨나고 어떠한 인연 조건에 의해 사라지는가 하는 인생의 고락운명에 관한 것을 밝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연기설이 문제되는 현상은 단순한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선악업과 그 과보로서의 고락과 같은 윤리 종교적인 가치관계의 현상이다. 연기의 인과관계에는 과거세로부터 현재, 미래세에 이르는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인과업보의 사상도 포함되어 있다. 근본불교에서는 연기에 의한 현상간의 관계방식에 대해 상세한 고찰은 하지 않았으나 후세의 불교에서는 그에 대한 여러 각도에서의 고찰이 행해져 왔다. 불교의 근본주장은 크게 연기설로 일관된 것으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고찰의 각도가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세의 불교에서는 연기설을 협의로만 이해하여 연기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 선후가 있는 인과 관계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에 관계없는 논리적인 연기관계에 대해서는 그것을 연기라고 부르지 않고 실상(實相)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렀다. 따라서 후세의 불교에서는 연기론과 실상론이 대립하여 양자는 별개의 교학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되어졌다.
십이연기(十二緣起)
연기란 일체 존재의 근원에 대한 보편적인 법칙이지만, 석존에 의해 자각된 이러한 연기설이 당시 인도 사상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불전(佛傳)에 의하면 석존은 출가한 후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 근교에 있던 알라라 카라마(Alara Kalama)와 웃다카 라마풋타(Uddaka Ramaputta) 밑에서 선정을 하였지만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석존은 다시 우루벨라의 세나 마을의 고행림(苦行林)에 들어가 모든 고행을 다하였지만 이것에 의해서도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네란자가 강물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마을 처녀 수자타가 바친 우유죽을 먹고 몸과 마음을 회복한 후, 이윽고 보리수 밑에서 스스로 선정에 들어 정각을 얻어 불타가 되었던 것이다. 그때 석존이 정각을 얻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버렸던 당시 철학이나 종교는 크게 바라문계와 육사외도 등으로 대표되는 사문계의 사상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근거한 인도 정통파의 입장에 속하는 것으로 유일의 원리인 브라흐만으로부터 전 세계가 생겨났다고 하는 점이 사상적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보통 전변설(轉變說)이라고 한다. 바라문계 사상에서 있어서는 전 세계가 어떻게 성립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고찰할 때 먼저 브라흐만이라고 하는 근본원리를 세우고 이러한 근본원리인 브라흐만이 자기자신을 전개시켜 전 세계를 성립시킨다고 주장한다. ‘일체는 브라흐만이다’라는 주장은 우파니샤드에서 자주 설해지는데 이러한 근본원리로서의 브라흐만은 개인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아트만과 동일시되고 점차 정신적 원리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다. 그러므로 전변설은 절대 유일의 정신적 원리가 전개하여 인간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가 성립된다고 설하는 주장이다.
이 시대에는 종래의 바라문계 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자유사상사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육사외도라고 불리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자유사상가들이 주장한 사상의 특징은 유일의 원리로부터 복잡한 현상세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독립된 원리와 요소가 어떠한 형태로서 결합하여 이 세계가 구성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육사외도라 불려지는 사문들 가운데 아지타 케사캄바린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가지 원소를 주장한다. 즉 인간은 이들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체가 소멸함과 동시에 모든 원소도 각각 분해한다고 설하였다. 파쿠다 캇차야나느 7요설을 인정하였고, 막칼리 고살라는 살아있는 것을 구성하는 요소로 12가지 원리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구성요소가 결합하여 인간 및 세계가 성립한다고 하는 주장을 초기경전에서는 적집설(積集說) 또는 적취설(積聚說)이라고 한다. 이 적취설은 바라문계의 전변설에 비해 유물론적 색채가 강하며, 업이나 인과응보의 이치를 부정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런데 불교에 있어서의 연기는 보편적인 법칙성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철학설로서 논의되기 의한 것은 아니며 지금 여기서 인생의 괴로움에 번민하고 있는 인간의 문제로 설해진 것이다. 연기는 ‘무엇을 緣하여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 뜻이지만 무엇인가를 연하여 일어났다고 하는 존재의 성립을 설할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연하여 일어나고 있는 현실적 괴로움에 얽매인 인간 존재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며 현실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연하여 일어났다. 다시 말해 연기된 것이라고 함으로써 그것을 바로 무상(無常)이고 고(苦)이며 무아(無我)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라문계의 전변설이나 사문들의 적취설에 비해 연기의 입장은 세계관적인 면에서 양자를 초월한 보다 높은 입장, 종교적 면에서 볼 때 깊은 실천적인 입장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초기경전에 있어서 연기는 항상 인간의 미혹과 깨달음을 문제로 설해지는데 보통 십이연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십이연기는 12가지 지분(支分)을 갖춘 형태로서 십이인연(十二因緣),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라고도 한다.
십이연기란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이다. 12연기로써 때로는 생멸 변화하는 세계와 인생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 교리의 근본 목적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인 고(苦)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또 어떻게 해서 사라지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12연기를 관찰하는 방법에는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있다. 순관이란 무명을 조건으로 해서 행이 있고,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고, 식을 조건으로 해서 명색이 있다. 계속해서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가 있다라고 관찰하는 것이다. 즉 순관은 고(苦)의 발생과정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보는 연기를 역시 유전(流轉) 연기라고도 부른다. 그것은 존재가 무명과 욕망 등으로 말미암아 윤회의 세계에서 생사를 되풀이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연기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역관이란 고(苦)가 소멸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식이 소멸하고, 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명색이 소멸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노사의 소멸까지를 설명한다. 이렇게 보는 연기를 역시 환멸(還滅) 연기라고도 한다. 그것은 존재가 무명과 욕망을 없앰으로써 생사유전(生死流轉)의 세계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연기이기 때문이다.
십이연기는 훗날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여기서는 十二支 각각의 의미를 주로 경전 자체의 설명에 근거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무명(無明, avida)이란 글자 그대로 명(明, 지혜)이 없다는 말이다. 올바른 법, 즉 진리에 대한 무지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연기의 이치에 대한 무지이고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무지이다. 고(苦)는 진리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기므로 무명은 모든 고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다. 무명을 조건으로 해서 행(行, samskara)이 있다.
행이란 행위, 즉 업(業, karman)을 가리킨다. 행에는 몸으로 짓는 신행(身行)과 언어로 짓는 구행(口行)과 마음으로 짓는 의행(意行)이 있다. 행은 진리에 대한 무지, 즉 무명 때문에 짓게 되고 그것을 지운 존재의 내부에 반드시 잠재적인 힘의 형태로 남게 된다.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識, vijnana)이 있다.
식은 인식작용으로서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등 6식이다. 식이란 표면적인 의식뿐 아니라 잠재의식도 포함한다. 꽃을 볼 경우 꽃이라는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전에 꽃을 본 경험이 잠재의식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꽃을 보았다는 과거의 경험은 과거의 행위이다. 따라서 과거의 행이 없다면 현재의 인식작용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식을 조건으로 해서 명색(名色,namarupa)이 있다.
명(名, nama)이란 정신적인 것을 그리고 색(色, rupa)이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식이 주관적인 면을 나타내고 있는 데 반해 명색은그 대상인 객관적인 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육입(六入 또는 六處, sadayatana)이 있다.
육입이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음[心]의 6가지 감각기관, 즉 육근(六根)이다. 이는 대상과 감각기관과의 대응작용이 이루어지는 영역을 말한다. 육입을 조건으로 해서 촉(觸, sparsa)이 있다.
촉이란 지각을 일으키는 일종의 심적인 힘이다. 촉(觸)에도 눈, 귀, 코, 혀, 몸, 마음 등 6가지의 감각기관에 의한 육촉(六觸)이 있다. 촉은 육입에 의해서 생긴다고 되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한다면 육입만에 의해서가 아니고 식(識), 명색(境), 육입(根) 등 3요소가 함께 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촉을 조건으로 해서 수(受, vedana)가 있다.
수란 즐거운 감정, 괴로운 감정,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감정과 그 감수(感受)작용을 말한다. 감각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인식작용 등의 3요소가 만날 때 거기에서 지각을 일으키는 심적인 힘이 생기게 되고 그 다음 수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는 촉을 조건으로 해서 있다고 하는 것이다. 수를 조건으로 해서 애(愛, trsna)가 있다.
애란 갈애(渴愛)라고 하는데 보통 목이 타서 갈증이 나면 오로지 물을 구하기에 그치지 않는 것처럼 항상 능동적으로 만족을 구하는 인간의 본능적, 맹목적, 충동적 욕망을 말한다.
애를 조건으로 해서 취(取, upadana)가 있다. 취는 집착의 의미로서 인간의 미혹한 생존은 집착에 근거한 것이다. 맹목적인 애증에서 발생하는 강렬한 애착을 가리킨다. 어떤 대상에 대해 욕망이 생기면 뒤따라 그것에 집착심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애를 조건으로 해서 취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취를 조건으로 해서 유(有, bhava)가 있다.
유(有)란 존재를 말한다. 초기경전에서는 취를 조건으로 해서 어떻게 존재가 있게 되는가를 설명해 놓은 곳을 찾기 어렵다. 업설에 의하면 집착 때문에 업이 만들어지고 업은 생(生)을 있게 하는 조건이 된다. 따라서 유(有)를 업이라고 본다면 취(取)를 조건으로 해서 유가 있다라는 말은 집착을 조건으로 해서 업이 있다라는 것이 된다. 두번째 항목인 행을 무명으로 인해 생기는 소극적인 업이라고 한다면 유는 애와 취를 조건으로 해서 생기는 적극적인 업이라고 할 수 있다. 유를 조건으로 해서 생(生, jati)이 있다. 업은 생을 있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에 유에 의해서 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생을 조건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老死, jara-marana) 등 여러 가지 고가 있다. 생이 있게 되면 필연적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고(苦) 즉 근심, 비애, 고통, 번뇌, 번민이 발생하는 것이다.
삼법인(三法印)
법인(法印)이란 법의 표식(標識)이라는 말이다. 삼법인은 불교의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깃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불교를 다른 종교나 사상과 구별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 된다. 삼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의 형식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무상과 무아의 개념 속에 고(苦)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체개고 대신에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어서 제행무상, 제법무상, 열반적정의 형식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행(諸行)이란 일체의 만들어진 것 다시 말하면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무상(無常)은 anita 를 번역한 말로써 항상함이 없다. 변화하고 변천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제행무상이란 모든 존재는 항상함이 없이 변화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바뀌고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이나 바위 같은 것은 외견상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것일 뿐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존재란 여러 요소들이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모여있는 집합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와 조건들이 변하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고정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존재도 무상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제법(諸法)은 모든 존재를 의미하고, 무아(無我)라는 말은 아(我)가 없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란 생멸변화를 벗어난 영원하고 불변적인 존재인 실체 또는 본체를 말한다. 따라서 제법무아는 모든 존재에는 고정불변하는 실체적인 아가 없다라는 의미이다. 모든 존재는 비실체적인 여러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고정불변한 실체적인 아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제법무아라고 해서 현상적인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정하고 있는 것은 단지 고정 불변하는 실체적인 아(我)뿐이다.
무아(無我)이론의 특징은 모든 것에는 고정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고정성이 없는 것을 무자성(無自性)이라고도 한다. 자성(自性)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형이상적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고정불변한 형이상학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근본불교의 기본적 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무아임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근본불교에서는 고정불변적인 존재로서의 아(我) 대신에 존재라는 것의 전체로서 오온(五蘊)을 들고 있다.
온(蘊, khandha)이라고 하는 것은 ‘모임’을 의미하므로 ‘오온’이라고 하는 것은 다섯 개의 요소가 모인 것이라는 뜻이다. 색(色, rupa)은 물질로서의 육체를 가리킨다. 육체는 4가지 기본요소인 사대(四大)와 사대에서 파생된 물질인 사대소조색(四大所造色)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대란 지, 수, 화, 풍으로 지(地)는 뼈, 손톱, 머리카락 등 육체의 딱딱한 부분이고, 수(水)는 침, 혈액, 오줌 등 액체부분이다. 화(火)는 체온이고, 풍(風)은 몸속의 기체 즉 위장 속의 가스같은 것을 가리킨다. 사대소조색이란 사대로 이루어진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인 눈, 코, 귀, 혀, 몸 등이다. 수(受, vedana)는 괴로움과 슬픔 등의 감수작용이다. 수는 내적인 감각기관과 그것에 상응하는 외적인 대상들과의 만남에서 생긴다. 수에는 성질상 세 가지가 있다. 즉 고수(苦受), 낙수(樂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고수란 즐거운 감정이고, 낙수란 괴로운 감정이고, 불고불락수란 사수(捨受)라고도 하는 것으로서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감정을 가리킨다. 상(想, sanna)은 개념표상의 취상작용(取象作用) 또는 심상(心象)이다. 상 역시 감각기관들과 그것에 해당되는 대상들과의 만남에서 생긴다. 상은 대상들을 식별하고 그 대상들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행(行, sankhara)은 의지작용 및 그 밖의 정신작용이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윤리생활을 할 수 있고 업을 짓게 되는 것은 이 행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로서의 행은 수, 상, 식을 제외한 모든 정신작용과 현상이다. 식(識, vinnana)이라는 것은 인식 판단의 의식작용을 의미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식의 영역은 대상을 인식하는 데까지 가지 않는다. 그 전 단계인 주의 작용일 뿐이다.
오온의 이론은 인간 존재란 색, 수, 상, 행, 식 등 다섯 가지 요소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잡아함경에서는 이것을 “마치 여러 가지 재목을 한 데 모아 세상에서 수레라 일컫는 것처럼 모든 온이 모인 것을 거짓으로 존재라고 부른다”라고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수레는 바퀴, 차체, 축 등 여러 요서가 모였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일 뿐 이 요소들과 관계없이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인간 존재도 마찬가지로 색 수 상 행 식 등 다섯 가지 요소가 모일 대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도 성립할 수 있게 된다. 오온 이론에 의하면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제외한 영혼과같은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수, 상, 행, 식과 같은 정신현상은 영혼과 같은 존재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기관과 그 기관에 관계되는 대상과의 만남에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즉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과 그것에 관계하는 여섯 가지 대상[六境]이 합칠 때 여섯 가지 식[六識]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오온 이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존재란 5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이 각 요소들은 모두 비실체적인 것이므로 이와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인간 존재 역시 비실체적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정불변적이거나 초월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열반(nirvana)이라고 하는 것은 ‘불어서 끄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 번뇌의 불을 끈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초기경전에서는 열반을 “탐욕의 사라짐, 분노의 사라짐, 어리석음의 사라짐,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초기경전에 의하면 당시의 열반설에서는 색계정(色界定)이나 무색계정(無色界定) 등의 여러 가지 선정의 상태를 이상적인 열반이라고 간주하거나 또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욕락에 빠지는 세속적인 쾌락이 열반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었던 듯하다. 석존이 수행시절에 가르침을 받은 두 선인(仙人)은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定)이라고 하는 뛰어난 무색계정이 열반의 이상이라고 하였는데 석존은 곧바로 그들과 동일한 선정에 들어갈 수 있었어도 여전히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뛰어난 무색계정도실제로는 이상적인 열반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여기고 이 두 스승으로부터 떠났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6년간의 고행후에 열반은 신체를 혹사하여 고통스럽게 하는 고행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체험하였기 대문에 이 고행도 포기하였다. 그리고 고행이나 욕락과 같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 중용적인 생활과 심신상태 아래에서 세계 인생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여 불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열반은 단순한 고행이나 선정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와 인생의 진리에 관한 올바른 지혜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열반의 상태는 고요하고 괴로움이 없이 편안한 것으로, 이를 적정(寂靜)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경전에서 열반이란 말을 멸(滅), 적(寂), 불사(不死), 최상의 안락 등 여러 가지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최상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열반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이자 최고의 이상이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결국 이 열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열반적정인은 불교의 이상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성제(四聖諦)
사성제에서 제(諦, satya)란 진리 또는 진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성제란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말이다. 이것은 고(苦)성제, 집(集)성제, 멸(滅)성제, 도(道)성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단하게 고집멸도라고도 한다. 사성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고와 고의 원인 그리고 고의 소멸과 고의 소멸에 이르는 것이다.
사성제는 불교의 모든 교리 가운데서 가장 처음으로 설한 것이다. 붓다가 녹야원에서 다섯 명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벌을 설했을 때로부터 시작해서 쿠쉬나가라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들 때까지 45년 동안 가장 많이 설한 가르침이 바로 사성제이다.
사성제의 가르침은 불교의 궁극목표인 고(苦)에서의 해탈을 위해 만들어진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간단한 교리이다. 붓다는 인생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의사가 병을 치료할 때와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고성제(苦聖諦)
불교에서 말하는 고(苦)란 무엇인가. 고라는 말인 duhkha를 일반적으로 괴로움, 고통, 슬픔 등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실은 이것보다 휠씬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신체적, 생리적인 고통 또는 일상적인 불안이나 고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현대적인 말로 표현하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우리의 생존에 따르는 모든 괴로움을 망라한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모든 곳은 고(苦)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는 사고(四苦) 또는 팔고(八苦)를 말한다.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등의 네 가지 고(苦)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怨憎會苦],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求不得苦], 오온의 집착에서 생기는 고[五取蘊苦] 등의 네 가지를 합쳐서 여덟 가지 고(苦)이다.
또한 고를 성질에 따라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 등 3종으로 나누기도한다. 고고(苦苦)란 주로 육체적인 고통을 말한다. 보통 고통이라고 하는 것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괴고(壞苦)란 파괴나 멸망 등에서 느끼는 정신적 고뇌를 말한다. 행고(行苦)란 현상세계가 무상하다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느끼는 고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 앞에서 느끼게 되는 괴로움이다.
집성제(集聖諦)
집(集)이란 samudaya라는 말을 번역한 것으로 불러모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집성제에서는 고를 일으키는 원인을 밝힌다. 고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욕망이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욕망은 물론이고 재산과 권력에 대한 애착이나 사상, 신앙에 대한 집착 등도 욕망이다. 인생의 모든 불행, 싸움, 괴로움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욕망의 괴로움의 뿌리인 것이다. 또한 욕망은 인생을 이끌어가는 동력일뿐만 아니라 인생을 지배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러한 욕망은 구체적으로 욕애(欲愛), 유애(有愛), 무유애(無有愛) 등 세 가지로 나눈다. 욕애란 오욕(五欲) 즉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가리킨다. 유애란 존재에 대한 욕망이다. 오래도록 살고 싶다든지 죽은 후에 천상에 태어나서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등의 욕망이다. 무유애는 무존재(無存在)로 되고자 하는 욕망 즉 사후에 허무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리킨다.
멸성제(滅聖諦)
멸(滅)이란 열반을 번역한 말이다 열반은 소멸의 의미를 가진 말로서 고(苦)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 고가 완전히 없어진 상태,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고에서의 완전한 해방이다. 열반은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고 이상이다. 열반은 현재의 생에서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열반이 아니다. 열반에 도달한 사람은 괴로움의 원인인 욕망을 다스릴 수 있으므로 욕망 때문에 발생되는 괴로움, 즉 정신적인 괴로움에서는 벗어나지만 아직 육체가 남아있기 때문에 육체적인 괴로움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 성취하는 열반을 생존의 근원이 남아있는 열반 즉 유여의(有餘依) 열반이라 한다. 여기에서 생존의 근원이란 육체를 말하는 것이다. 유여의 열반을 이룬 사람이 죽으면 다시 육체를 받아 태어나지 않게 된다. 이것을 생존의 근원이 남아있지 않는 열반 즉 무여의(無餘依) 열반이라고 한다. 이 무여의 열반은 완전한 열반으로서 정신적, 육체적인 고가 모두 소멸된 열반이다.
도성제(道聖諦)
도(道)란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이것은 중도(中道)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양극단을 떠난 길이다. 즉 지나치게 쾌락적인 생활도 극단적인 고행생활도 아닌 몸과 마음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상태의 길을 말한다. 열반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도 극단적인 고행이나 지나친 쾌락을 피하고 중도를 실천해야 한다. 이 중도를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팔정도(八正道)이다. 팔정도(八正道)는 여덟 가지 바른 길로서, 여기에는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있다. 정견은 바른 견해로서 사성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정사는 바른 생각, 즉 바른 마음가짐이다. 즉 탐욕스러운 생각, 성내는 생각, 해치려는 생각을 가지고 않고 온화한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정어는 바른 말이다. 거짓말[妄語], 이간시키는 말[兩說], 욕하는 말[惡口], 꾸며대는 말[綺語]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말, 성실한 말,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다. 정업은 바른 행위이다. 살생, 도둑질, 음란한 짓을 하지 않고 다른 존재들의 목숨을 구해주고 보시하고 청정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정명은 바른 생활이다.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를 구하는 것이다. 특히 출가 수행자의 경우에는 재가신도의 바른 신앙에서 우러나는 보시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다. 정정진은 바른 노력이다.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자라도록 노력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하고 이미 생긴 악은 끊도록 노력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정념은 바른 기억이다. 자기 자신이나 그 주변의 것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기억해서 반성하고 바른 의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정정은 바른 정신집중 또는 정신통일이다. 마음을 한 점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정(定)을 닦는 구체적인 방법이 선이기 때문에 때로는 이를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업보윤회(業報輪廻)의 사상
근본 불교사상은 당시 인도사상과 비교할 때 거기에는 불교사상이 인도 일반의 사상과 공통되는 점도 있고, 인도의 다른 사상에서 보이지 않는 불교 특유의 사상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직접적으로 시대 환경이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고, 후자는 시대 환경을 초월하여 불교라고 하는 새롭고 독자적인 사상을 성립시킨 것이다. 그 가운데 인도 일반사상과 공통된 것으로는 업보윤회(業報輪廻)의 사상과, 수행해탈(修行解脫)의 사상이 있다.
선을 행하면 행복한 결과가 오고 악을 행하면 불행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하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업보사상이 인도에서는 불교 이전에 이미 초기 우파니샤드 시대에서부터 확립되어 있었다. 이러한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인과설은 인도뿐 아니라 동서고금에 있는 관념이다. 그러나 선이나 악의 행위가 그 결과를 이끌기까지의 사이에 그것은 어떠한 상태로 존속하는 것인가, 또 원인과 결과와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하는 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업보사상에서는 원인과 결과와의 연쇄가 반드시 동일 인격내에 즉 자신에거 한정되는 것으로 스스로 행하여 스스로 그 결과를 부른다고 하는 자업자득의 원칙이 있다. 이 경우 원인으로서의 선악의 행위가 그 결과를 이끄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과의 연쇄는 전세(前世), 금세(今世), 내세(來世)라고 하는 삼세(三世)에 걸쳐서 행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선인은 사후에 천국락토(天國樂土)에 태어나고, 악인은 악계지옥(惡界地獄)에 떨어진다는 사고는 인도에서는 이미 불교 발생 수백년 전 아타르바베다 시대부터 브라흐마나 시대에 걸쳐서 존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윤회설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었다. 윤회설은 삼세에 걸쳐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음으로 해서 여러 세계를 거쳐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등 삼계(三界)와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 등 육도(六道)에 걸쳐 윤회한다고 한다. 이 윤회설이 성립한 것은 불교 발생 2, 3백년 전인 우파니샤드 시대라고 여겨진다.
석존은 당시의 사문고 바라문들이 인간의 길흉화복의 원인을 설명함에 있어 올바른 업보설을 채용하지 않고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보고, 그 주장을 다음의 다섯 종류로 분류하였다.
첫번째 자재화작인설(自在化作因說)은 신의설(神意說)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정통 바라문의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그것은 이 세계도 인간의 운명도 모두 범천(梵天)이나 자재천(自在天) 등의 최고신이 화작창조(化作創造)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은 신의 의지에 좌우된다고 하는 주장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인정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된다. 세상의 일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숙작인설(宿作因說)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행복과 불행의 운명은 모두 우리가 과거세에서 행한 선악업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며,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 운명은 전세의 업의 결과로서 우리가 태어난 때에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선악의 행위를 하고 노력을 기율여도 그것은 내세의 운명을 규정하는 원인을 될 수 있을지언정 현세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하는 것으로 일종의 숙명론이다.
세번째 결합인설(結合因說)은 이 세계 인생의 모든 것은 지수화풍 등의 몇 가지 요소의 결합에 의해 발생하고 그 결합 상태의 좋고 나쁨에 의해 인간의 길흉화복이 정해진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결합상태는 우리가 태어난 때에 이미 확정되어 그것이 한평생 일정불변하게 존속하기 때문에 금세의 우리의 노력에 의해 운명을 변화시킬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결합인설도 일종의 숙명론이라고 할 수 있다.
네번째 계급인설(階級因說)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흑(黑), 청(靑), 적(赤), 황(黃), 백(白), 순백(純白)의 여섯 가지 계급으로 구별되어 있어, 그 계급에 따라 인간의 성격, 지혜, 환경, 가계 등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숙명론으로 후천적인 인간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번째 우연인설(偶然因說)은 무인무연(無因無緣)설이라고도 하는데, 이 설에 의하면 사회, 인생의 운명은 인과업보의 법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며 또 신의 은총이나 징벌에 의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길흉화복은 일정한 원인이나 이유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우연한 기회에 의해 일어나는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사상계가 혼란한 당시의 인도에서는 위와 같은 여러 학설이 횡행하였기 때문에 인과업보의 설도 일반적으로 유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같은 업보윤회설에는 많은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숙명론적으로 이해하고 체념할 수 있는 소지도 많다. 현재의 상황은 과거의 행위로 설명될 수 있지만 그러나 현재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유의지와 노력에 따라 운명도 조금씩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업보윤회설에 있어 불교의 특징은 윤회의 주체로서 영혼을 인정하지 않고, 업 자체가 윤회한다고 하는 것이다.
2. 부파불교
부파불교란 초기교단이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한 이후의 전통적인 교단의 불교를 말한다. 불멸 100년 경에 초기교단에 십사(十事)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 이로부터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나뉘었는데 이를 근본분열이라고 한다. 이어서 상좌부와 대중부 각각에서 다시 분열을 되풀이한 것을 지말분열이라고 한다. 상좌부는 7회의 분열에 의해 11부로 나뉘었고, 대중부는 본말을 합해 9부이기 때문에 상좌부와 합해서 20부가 된다. 그래서 근본의 2부를 제외하고 18부의 분열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가장 발달한 것이 설일체유부로서 부파불교의 교리는 대개 이 부파의 교리를 말한다.
당시에 재가신자는 교단 밖에 있었지만 그들이 어떠한 종교활동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불타가 탄생한 곳, 성도한 곳, 초전법륜한 곳, 반열반한 곳 등이 일찍부터 영장(靈場)으로써 존숭되고 불타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순례하는 성지로서 각광을 받았다. 초기불교시대부터 신자들의 종교활동은 활발했던 것이다. 또한 불멸 직후 팔왕분골(八王分骨)에 의해서 중인도의 각지에 불탑이 세워졌는데 그 때 불교의 유해를 화장하고 사리를 분배하여 탑을 세운 것은 모두 재가신자였다. 그 불탑들은 비구들이 거주하는 정사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사대로(四大路)에 여래의 탑을 건립하라’고 설해짐으로써 탑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에 건립되었다. 이 탑들은 신자들이 자주적으로 관리하고 신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육왕경> 등에 의하면 아쇼카왕은 팔왕분골의 탑을 개방하여 불타의 사리를 인도전역으로 분산시켜 많은 탑을 세웠다고 한다. 왕이 많은 불탑을 세운 것은 당시 불교도들 사이에 불탑신앙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 요구에 부응하여 왕은 불탑을 건립했을 것이다.
후세의 대승불교의 발전의 원류를 생각하는 경우에는 근본불교시대부터 불탑교단에서 배양되고 있던 불타신앙과 불덕찬양운동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자들의 신앙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불교교단의 정계(正系)는 초기교단을 계승하는 부파교단이었다. 즉 불타의 직제자인 대가섭이나 아난 등에 의해 수지된 불교는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계승되어 부파교단으로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부파교단의 불교는 ‘제자의 불교, 배우는 불교’이며 남에게 가르치는 입장의 불교는 아니다. 이러한 수동적인 불교였기 때문에 대승교도들로부터 성문승(聲聞乘)이라고 불렸다. 성문이란 불타의 말씀을 들은 사람, 즉 제자라는 뜻이다.
부파불교 교리의 특징은 출가주의라는 점이다. 출가하여 비구가 되고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수행한다. 재가와 출가의 구별을 엄격히 하고, 출가를 전제로 하여 교리나 수행형태를 조직하고 있다. 다음으로 부파불교는 은둔적인 승원불교이다. 그들은 승원에서 금욕생활을 하고 학문과 수행에 전념하다 따라서 거리의 불교는 아니었다. 타인의 구제보다는 먼지 자기의 수행의 완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 때문에 대승교도로부터 소승(小乘)이라고 불리고 천시되었다. 이처럼 그들이 생활대책 때문에 걱정하는 일이 없이 오로지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승원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의 출가교단을 국왕이나 왕비 혹은 대상인 등의 귀의와 경제적 지위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상인계급도 불교승단을 지원하였다. 상인은 커다란 밀림을 지나고 사막을 가로질러 먼 곳에 있는 도시와 교역을 하거나 혹은 배를 타고 큰 바다로 나가 다른 나라와 통상을 했다. 이러한 통로에는 수많은 곤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판단력과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였다. 이성적인 종교인 불교가 그들의 취향과 합치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타국으로 가서 이민족이나 다른 계급과 자유로이 교제해야만 했기 때문에 카스트제도를 엄격히 지키는 바라문의 종교는 적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농민은 바라문교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상인계급 중에는 부파교단 뿐만 아니라 대승교단에 귀의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 중 부상(富商)이나 지도자를 장자(長者)라고 한다. 장자로서는 불타에게 귀의한 급고독(給孤獨)장자나 우그라장자 등이 유명한데 초기불교시대부터 불교신자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장자는 많다. 대승경전에서도 장가가 불타의 설법의 대상으로 종종 등장한다. 그들은 부파교단도 지원했을 것이다. 이처럼 국왕이나 장자들의 원조에 의해 승단은 생활 걱정없이 출세간주의를 관철하여 연구와 수행에 주력했으며, 이로써 분석적이고 치밀한 불교교리를 완성시켰다. 이것이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법에 대한 연구) 불교이다.
아비달마(阿毘達磨) 불교의 발달
일반적으로 아비달마 논서에는 세 가지 발달 단계가 있다. 그 첫째 단계에서는 경장(經藏) 가운데서 이미 교법을 정리, 조직하기도 하고 해설이나 주석을 하기도 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비달마는 아니며 경장 가운데 아비달마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할 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발달하여 두 번째 단계에 이르면 아비달마(藏) 즉 논장(論藏)으로서 경장에서 독립하는데, 거기에서는 교법의 조직이나 해석이 더욱 더 촉진되었다. 다음 세 번째 단계에서는 그것이 촉진된 결과 아비달마는 단순히 아함경(阿含經)을 해석하거나 조직하는데 머물지 않고 나아가 그러한 기초 위에서 장대한 교의체계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아함경전의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즉흥적, 우연적 요소가 많았던 석존의 교설을 그가 입멸한 후 정리하여 전승한 것이기 때문에 본래 짧고도 단편적인 경의 집성이다. 그러한 비체계적인 아함의 경설이 점차 정리되고 조직화되어 하나의 교의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함 가운데 나타나는 아비달마적 요소로서는 대개 두 가지 종류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교설 속의 어구에 대해 주석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갖가지 교설을 정리하고 배열, 조직하는 것이다. 석존의 교법은 일반적으로 쉬운 말로 이야기되며 특이한 용어나 난해한 어구가 사용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석존 자신이 청중을 위하여 그가 사용한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며 또 어떤 때에는 석존이 설법을 마친 후 청중 가운데 선배가 후배에게 스승의 말씀에 대하여 해설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석존이 입멸한 후 시대가 지남에 따라 또 불교가 전파된 지역이 확대됨에 따라 교설 속의 어떤 어구에 대해 주석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더욱 더 많아지게 되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아함경전에서는 석존 자신이 그러한 주석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설법을 마친 후 제자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그것을 해설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두 사람의 유력한 제자가 서로 대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 어느 것이든 그렇게 이루어진 설명과 해석을 옆에서 듣고 있는 자가 훗날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 형식을 기술하는 것이 아함경전의 원칙이다. 그러나 형식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설명과 해석 모두가 석존 재세시대에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그 중 상당부분은 석존이 입멸한 후 승단 내부에서 점차로 발전한 아비달마적 연구에 의해 부가되어진 해석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부가된 부분이 점점 더 증대하여 마침내 아함경전 속에 도저히 포함시킬 수 없을 만큼 되었을 때 아함으로부터 분리 독립되었으며, 여기서 아비달마라고 하는 불교성전의 새로운 장르가 성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교설이 정리, 조직되었다고 하는 측면에서 볼 때 그러한 방식으로서 두드러진 것은 숫자와 관계있는 교설을 그 숫자대로 정리하여 일법(一法), 이법(二法), 삼법(三法)과 같은 순서로 배열하는 방법과 교설을 내용에 따라 분류, 구별하여 동일한 주제를 가진 것들을 모아 한 곳에 정리, 배열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를 ‘법수(法數)’에 의한 정리라 하고, 후자를 ‘상응(相應)’에 의한 정리라고 한다. 각각의 짧은 경 가운데에는 법수에 의해 정리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몇 개의 짧은 경을 모은 경전군에다가 그러한 방법을 적용시킨 것도 있다. 또 다수의 경전군을 모아 동일한 방법으로 전체를 정리한 것이 증지부(增支部), 증일아함(增一阿含)이다. 상응에 의해 정리하는 방법은 짧은 경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경전군상에는 그것을 적용시킨 예는 많은데 다수의 경전군을 그 같은 방법으로 정리한 것이 상응부(相應部), 잡아함(雜阿含)이다.
경장(經藏)은 그것이 승단 안에서 전승되는 동안 거기서 아비달마적 연구가 고조됨에 따라 점차 이같은 부가, 증가, 정리, 안배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경장을 보면 그 중에는 원초적이고도 간결한 교설을 그대로 전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비달마적 경향이 진전되어 이제 거의 하나의 아비달마 논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내용이나 형식을 갖추고 있는 부분도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경장 안에서 점차 아비달마적 경향이 발달하여 마침내 독립된 아비달마 논서가 형성되었다. 즉 아비달마발전의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성립한 최초기의 아비달마는 아함 속의 아비달마적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과 비교할 때 질적으로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주로 아함에 나타난 그러한 경향을 각 부파에서 그대로 연장, 발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내용에 있어서도 각 파 사이에 공통된 점이 많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이미 각 부파의 독특한 교의학설을 반영한 특수한 용어나 특수한 해석이 적지 않게 드러나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독립한 아비달마 경장은 순조롭게 발달하여 마침내 아함 경전의 연장적인 입장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 서서히 새로운 형태의 논서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부파적 색채는 점차 농후해지고 술어를 독특하게 해석, 정의하였으며 여러 가지 개념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극단적일 정도의 자세한 분석적 고찰이나 개개의 문제에 대한 전문적 연구 등이 두드러지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아비달마 발전의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 그러한 교설을 조직적으로 논술하는 웅장한 구성을 지닌 논서가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논서의 발달
설일체유부의 논서는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즉 초기의 논서는 경장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있던 아비달마적 경향의 직접적인 연장으로 보아야 할 것, 중기의 논서는 그 뒤를 이어 부파의 독특한 교설을 점차 발전시킨 것, 후기의 논서는 그렇게 발전된 교설을 조직적이고도 일관된 체계로 논술한 것이다.
초기의 논서로서는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과 <법온족론(法蘊足論)>이 있다. <집이문족론>은 장아함에 속하는 경전의 하나인 <싱기티숫탄타>의 내용을 부연, 해석한 것이다. <싱기티숫탄타>는 여러 가지 불교술어를 1에서부터 10까지의 숫자에 따라 열거한 경전으로 상당히 아비달마적인 색채가 농후한 경인데 론에서는 그 경전에 열거되고 있는 술어 하나하나에 주석적인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이것은 아함 가운데 특정한 술어 하나하나에 주석적인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이것은 아함 가운데 특정한 하나의 경전을 채택하여 그것에 해석한 뜻을 부가한 것이기 때문에 아함의 직접적인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며 논장이 경장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하나의 원초적인 형태를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법온족론>은 <집이문족론>처럼 특정한 한 경전에 대해 주석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함에서 21가지 주요한 교설을 선정하여 교설 하나마다 하나의 장을 할애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그 교설을 담은 경문을 첫머리에 게재하고 난 다음 이에 대해 자세히 해석하는 방법은 요컨대 최초기 아비달마 논서의 특징적인 것이다.
이 두 론은 아비달마 논서로서 성립하였지만 아직 경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경전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논’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는 이미 설일체유부 특유의 용어나 사상도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여러 부파와 공통되는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 다음에 성립한 것으로 생각되는 <시설족론(施說足論)>에서부터 아함 경전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스타일에 있어 아비달마 논서 특유의 색채가 짙게 나타난다. <식신족론(識身足論)>이나 <계신족론(界身足論)>에 이르면 법수에 의해 종합, 정리된 술어는 매우 복잡하게 해석되고 각 술어간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극단적일 정도로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져 아비달마적 논의는 현저하게 정치해지고 번쇄해졌다. <시설족론>은 아비달마적인 우주론과 세계론을, <식신족론>은 마음의 작용에 대한 분석을, <계신족론>은 마음과마음의 작용에 대한 해석을 각각 크게 발전시켜 설일체유부 교학의 기초를 확고히 하였다.
바수미트라가 지었다는 <품류족론(品類足論)>은 원래 몇 개의 작품을 한데 모아 하나로 만든 것일지도 모르며, 혹은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술어에 대한 분석적 고찰이 더욱 더 발전되어 있으며 동시에 ‘오위(五位)’설이나 ‘구십팔수면(九十八隨眠)’설 등 설일체유부의 독특한 이론이 확실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논서이다.
카트야야니푸트라가 저술한 <발지론(發智論)>의 출현은 설일체유부 아비달마 역사상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시설족론>에서부터 <품류족론>에 이르는 동안 여러 논들이 주로 각기 특정한 문제를 분담하여 고찰하고 있는데 반해 이 론에 이르면 비로소 설일체유부의 학설 전반에 걸쳐 조직적인 논술이해도 8장으로 이루어진 이 론의 구성이 반드시 완전하고도 정연한 순서로 작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고작해야 관련이 있는 문제를 가능한 한 곳에 모아 논술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발지론>에 대한 매우 방대한 주석서가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이다. 이 논서가 나타남으로써 문제의 세분화는 한층 더 촉진되었고 고찰 역시 더욱 더 정밀해졌다. 실제로 이것은 단순히 발지론의 주석일 뿐만 아니라, 만약 어떤 연관되는 부분이 있다면 발지론에서언급되지 않는 문제까지도 새롭게 채택하여 논의하고있다. 또한 자신의 부파내의 여러 가지 이론(異論)이나 다른 학파의 학설을 수없이 인용하고 있어서 실로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가능한 한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주석방법에 있어서도 반드시 발지론의 문구 하나하나에 대해 충실하게 해설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문제라고 인정되는 부분에서는 특별히 충분한 분량을 할애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극히 간략하게 취급하는 것이 상례였다. 따라서 이 론은 실질적으로 발리본론의 한계를 뛰어 넘어 분명히 독자적인 커다란 발전을 보이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모두 발지론의 조직에 따라 그 문의에 근거하여 주석하는 태도를 지키고 있다.
<아비담심론> 역시 작은 론이지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조직화하는 데 특기할 만한 공헌을 하였다. 이 론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7장에서는 복잡하게 발달한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정연하게 조직하고 있다. 그것은 <발지론>에서 이루어진 8장의 조직에 비해 훨씬 진보한 것이다. 제1, 2장에서는 이 학파의 근본입장으로서 法의 이론을 설하고 제3, 4장에서는 미혹한 세계의 실상을 밝혔으며 제5, 6, 7장에서는 깨달음의 경지와 그것에 도달하는 길을 논하였다. 이 같은 론의 구성방법은 이후 거의 모든 설일체유부 논서가 답습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 논서 이후를 ‘후기의 논서’라고 한다.
<구사론> 역시 그것의 연장, 발전이지만 <아비담심론> 등에서 맨 마지막 3장에 포함된 보유나 부록을 정리하여 앞의 7장 가운데 적당한 곳에 수록하고 다른 새로운 1장을 더하여 미록한 세계의 현실을 밝히는 부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모두 8장으로 이루어진 한층 더 정연한 조직이 되었다. 거기다 다시 론의 말미에 특별히 독립된 1장을 부가하여 무아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집이문족론> <법온족론>에서 시작하여 <발지론>에서 학설의 대강의 전모를 드러내고 <아비담심론>에서 그 조직적 논술의 정형을 갖춘 설일체유부 논서는 이 <구사론>에서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체계적 논서의 완성태라고 할 수 있는데 분량에 있어서도 <발지론>의 한 배반, <아비담심론>의 두 배나 되는 대작이다.
<구사론>의 저자는 바수반두(Vasubandhu)이다. <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 사상을 상세히 설명하여 밝히고 있으며 특히 많은 불교술어에 대하여 명쾌한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후에 불교교리의 기초가 되는 교과서로서 활발한 학습과 연구가 이루어져 수많은 주석서, 연구서, 해설서가 작성되었다. 그러나 <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학설만을 충실히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때때로 저자 자신의 견해에 따라 전통 학설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다른 주장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럴 경우 설일체유부의 정통설을 비판하는 저자의 입장이 경량부(經量部)의 그것과 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설일체유부의 논서라고 단정짓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구사론>을 계승한 것으로 상가바드라(Samghabhadra, 衆賢이라고 한역)의 <아비달마순정리론>과 <아비달마장현종론>이 있다. 이 두 가지 논서는 운문의 부분에서는 구사론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지만 산문으로 된 해설부분에서는 바수반두의 학설을 엄격히 비판하여 정통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선양하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즉 기본골격은 구사론을 따르되 그 학설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반박하는 것이다. <순정리론>은 그 분량에 있어 구사론의 두 배 이상이 되며, <현종론>도 구사론보다 많은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전자에서는 특히 그 예리한 비판과 상세한 반론이 두드러지며 후자에서는 비판보다 오히려 정통설의 천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비달마의 법체계]
다르마의 이론
다르마라는 말은 불교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었지만 아비달마(abhidharma)라는 말은 불교의 독자적인 용어로서 이미 아함경에 나타나고 있다. 아함에서는 아비달마는 ‘법에 대하여’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법에 대하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비(abhi)에는 ‘향하여, 대하여’라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나게, 매우’라는 의미도 있으며 이로부터 아비달마는 ‘훌륭한 법’으로 해석하는 설도 대두되었다. 설일체유부에는 아비달마를 ‘대법(對法)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팔리 상좌부에서는 아비달마를 오로지 ‘훌륭한 법’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르마란 불타가 설한 교법을 말하지만 불타의 교법은 현실의 인간존재를 문제삼고 있다. 그 때문에 다르마는 그대로 현실의 인간존재를 가리키는 셈이다. 그리고 현실의 인간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해 사는 현상으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현상을 성립시키고 있는 ‘요소적 실재’이기도 하다. 현상으로서의 현실은 육체와 정신, 외계 등으로서 나타나고 있지만 다시 그것을 세세한 요소로 분석할 수가 있다.
다르마의 실재성에 대하여 <구사론>에서는 존재를 승의(勝義)의 존재와 세속(世俗)의 존재로 나누고 승의의 존재를 다르마라 하고 있다. 예컨대 병은 깨어지면 없어지고 만다. 이러한 존재를 세속적 존재자라고 한다. 인간존재도 육체적, 정신적인 갖가지 요소의 복합체이기 때문에 세속적 존재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병의 색이 청색이었을 경우 그 청색은 병이 깨지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병을 무한히 부수면 최후에는 극미(極微)로 되지만 청색은 그 경우에 존재성을 상실하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svabhava, 自性)을 승의의 존재라고 하고 이것을 다르마로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다르마는 요소로서의 실재이다. 그러나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무상하다. 따라서 법은 실재이긴 하지만 영원한 실재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법이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으로 나뉜다. 상주하는 법은 무위법이며, 무상한 법은 유위법이다. 유위법과 무위법의 구별은 이미 아함경에 보이지만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부파불교의 시대이다. 무위법의 대표는 열반이다. 열반은 시간을 초월한 실재이며 불타는 깨달음을 통해 이 열반과 합일한 것이다. <구사론>에서는 승의의 법은 열반뿐이지만 법상법(法相法)도 법에 포함된다고 말하고 있다. 자상을 갖는 것이 법이며 열반도 이 중에 들어가지만 유위법도 자성을 갖는 법이다. 그러나 유위법은 무상하다. 이 무상이라는 것에 관해 상좌부나 설일체유부는 유위법은 자상을 갖지만 찰나(刹那)만 현재에 존재하고 해석했다. <구사론>에서는 ‘유위법은 찰나멸하기 때문에’라고 서술하고 있다. 유위법은 실재이지만 찰나멸한다는 점에서 법은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을 추구하면 ‘법의 공(空)’이라는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그러나 부파불교에서는 ‘법의 유(有)’의 문제를 강조함에 그쳤을 뿐, 법공사상에는 이루지 못했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과제가 된다.
또 법에 대한 분류로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이 있다. 유루법이란 루(漏) 즉 번뇌에 더럽혀져 있는 법을 말한다. 무루법이란 번뇌에 더럽혀져 있지 않은 법을 말한다. 불타나 아라한의 깨달음의 지혜는 번뇌를 모두 끊고 있기 때문에 무루이다. 무위법도 번뇌와 결합하지 않기 때문에 무루이다. <구사론>에서는 ‘도제(道諦)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유위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미혹의 세계의 원인과 결과는 유루인 것이다.
완성된 설일체유부의 이론에 의하면 존재의 요소로서 법을 75가지로 분류하고 그것을 다시 다섯 가지 그룹으로 나누는데 이것을 이른바 오위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이라고 한다. 오위(五位)라는 것은 색법(色法), 심법(心法), 심소법(心所法),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法), 무위법(無爲法)을 말한다. 존재의 제1법으로 물질(色)을 들고, 제2로 그것에 대립하는 마음을, 제3으로 마음과 상응하는 심소법을, 그리고 제4로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심불상응을 제시한다. 이들 사종은 유위법이다. 이들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제5의 무위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색에 11법, 심에 1법, 심소에 46법, 심불상응행에 14법 및 무위법에 3법을 상정하여 모두 75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75가지의 법은 상호 다양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같은 인과 관계 위에서 유동적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세계이다. 그렇다고 할 때 그러한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다.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설일체유부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존재의 기본적인 요소인 법에 관한 것이다.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데, 이 모든 것이 있다, 즉 존재한다는 주장은 모든 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통하여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렇다면 일체의 사물은 무상하다고 하는 불교의 기본적 입장과 모순되지 않는가라는 것이 바로 이 부파가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게 하였던 문제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든이라는 것은 소박하게 사물, 존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존재의 기본적 요소인 법의 모든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러한 논란이 반드시 적용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법도, 현재의 법도, 미래의 법도 모두 있다고 하는 것이 일체유의 의미이며, 그러한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서도 존재하는 법의 고찰을 통해 비로소 일체의 사물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분명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미혹한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
불교의 세계론은 수미산설로, 이는 중앙에 수미산이 있으며 그 사방에 4개국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남섬부주(南贍部州), 동승신주(東勝身州), 서우화주(西牛貨州), 북구노주(北俱盧州)의 4주이다. 이 중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은 남섬부주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이 4주의 밖은 바다인데, 그 바닷물이 새지 않도록 외측은 소철위산(小鐵圍山)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그 바깥에는 또 바닷물이 있고 산맥이 있어 도합 구산팔해(九山八海)가 있다고 했다. 가장 외측에는 대철위산이 있으며 이것이 대지의 외측이다. 이 지리적인 세계를 기세간(器世間)이라고 한다.
인도인은 이 지상 윗쪽에는 천계가 있고 천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욕계의 천계와 색계의 천계가 있다. 욕계의 천은 6종이며, 수미산의 정산은 대지로서 그 사방에 사천왕중천(四天王衆天)이 있고 수미산의 한가운데에 33천이 있다. 그 위에 밑에서부터 차례로 야마천, 도사리천, 악변화천, 타화자재천이 있다. 이상을 육욕천(六欲天)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도인의 세계관을 불교에서 수용하여 이것을 교리와 결합시킨 것이다.
미혹한 세계의 인과(因果)는 한마디로 말해 번뇌에 의해 업을 일으키고 그로 말미암아 윤회의 괴로움에 빠지는 세계이다. 이 우주 안에서는 무수한 생명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생명있는 것을 불교에서는 중생(衆生) 혹은 유정(有情)이라고 하는데, 설일체유부에서는 이러한 중생들이 겪는 여러 가지 생존방법을 삼계(三界)와 오취(五趣)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삼계라고 하는 것은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이다. 욕계와 색계는 물질적인 세계이고, 무색계는 물질이 아닌 세계 즉 순수한 생존의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질적 세계 가운데 특히 욕망, 다시 말해 생물의 본능적 욕망이 강하게 일어나는 영역을 욕계라 하고, 욕망이 그다지 왕성하지 않은 영역을 단순히 색계라고 한다. 욕계보다는 색계가, 색계보다는 무색계가 한층 더 수승한 생존방법이며, 그 장소에 있어서도 욕계보다 색계가, 색계보다는 무색계가 위쪽에 위치한다. 즉 지하의 세계와 지표의 세계 그리고 공중의 세계 중 하층이 욕계에 속하고, 천계의 상층이 색계에, 나아가 천계의 최상층이 무색계에 속한다.
지하의 세계에는 지옥의 생활이 있고, 지표의 세계에는 아귀, 축생, 인간의 생활이 있고, 천계에는 천(天, 하늘의 신들)의 생활이 있다. 이것이 오취이다. 그리고 지옥, 아귀, 축생은 인간에 비해 열등하고 고뇌가 많으며, 좋지 않은 경계이기 때문에 삼악취(三惡趣)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 하늘은 인간세계에 비하면 휠씬 낫고 행복하며 좋은 경계이다. 그러나 천계도 결코 영원한 지복(至福)의 세계는 아니며 유한한 세계이고 전변이나 쇠망을 면할 수 없는 세계이다. 이것 역시 윤회하는 경계인 것이다. 천계에 살았던 자라고 할지라도 다음 생에는 아귀나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중생은 오취 중 어딘가로부터 어딘가로의 끝없는 생사의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다.
이같은 삼계와 오취로 설명되는 윤회적 생존의 다양한 모습은 중생이 행한 선악업의 결과이다. 과거의 선한 행위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좋고도 즐거운 결과로 되고, 과거의 악한 행위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좋지 않고도 괴로운 결과로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업보는 엄격히 개별적인 것이다. 타인이 행한 선행의 좋은 결과를 자신이 받을 수 없으며, 자신이 행한 악행의 좋지 않은 결과를 타인에게 억지로 떠맡길 수 없다. 업의 문제는 나 한 사람의 문제이며, 하나의 행위적 주체의 문제이다.
업보의 필연과 자업자득, 이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중생의 생활 속에 선악의 근거가 성립하며 도덕의 근거가 성립한다. 업과 윤회의 세계라는 것은 다시 말해 선악의 세계, 세간적 도덕의 세계이다. 이 세계 안에서 인간은 악을 피하고 선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악취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선업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업에 의해 선취(善趣 즉 천계)에 태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불교가 목표로 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윤회의 세계를 초월하는 것으로, 그것은 업보의 속박에서 벗어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선취에 태어나게 하는 선업은 여전히 세간적 도덕에서 선 곧 유루의 선이다. 따라서 번뇌를 떠나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루의 지혜에 의한 무루의 선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세간적 도덕을 초월한 출세간의 도이다.
무루의 지혜에 의해 번뇌를 하나하나 끊고,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성도는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에서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의 세 가지로 설명된다. 맨 마지막의 무학도는 도라고 하지만 앞의 견도, 수도의 과정을 통해 모든 번뇌를 끊은 결과로써 얻어지기 때문에 과정이 아니라 목적이다. 무학이라는 것은 더 이상 배워야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의미이다.
따라서 삼도(三道)라고 해도 사실상 번뇌를 끊는 수행의 도는 견도, 수도뿐이다. 그러나 보통 그에 앞서 오랜 예비적 수행의 단계가 있어야 한다. 즉 계율을 지켜 그 생활을 올바르고 청정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삼매를 닦아 산란한 마음을 점차 아주 맑은 안온의 상태로 이끄는 도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심신의 수련에 의해 수행자가 마침내 무루의 지혜를 일으켜 번뇌를 끊게 될 때 그는 성도(聖道)에 들어간 것이며, 이제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아닌 성자인 것이다.
성도(聖道)의 첫 번째는 견도(見道)이다. ‘견(見)’이라는 것은 사성제를 관한다는 의미이다. 견도는 고집멸도인 사성제의 도리를 관하고 알아서 무루의 도를 일으켜 바로 88가지 번뇌를 단절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번뇌는 수행자가 무지하고 도리에 어둡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그가 일단 사성제의 진리성을 인식한다면 단번에 단절된다. 여기서 아는 것은 바로 끊는 것이다.
계속해서 수행자는 수도의 과정으로 행한다. 수도에 있어서 단절해야 할 번뇌는 10가지인데 모두 정의(情意)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견도에서 끊어진 이지적 번뇌와는 달리 단순히 이성상의 이해만으로는 끊을 수 없다. 즉 여기서는 아는 것이 바로 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알아도 여전히 끊어지지 않는 것이 애욕이라든지 증오와 같은 정의적인 번뇌의 공통된 성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의 과정에서는 삼매의 수련을 거듭하고 사성제의 관찰을 반복함으로써 또한 싫증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마음을 고양함으로써 끊기 어려운 번뇌가 점차 단절되는 것이다.
성자가 견도와 수도의 과정을 거쳐 모든 번뇌를 다 끊어버렸을 때의 그를 아라한(阿羅漢, arahan)이라고 한다. 아라한은 원래 ‘공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말로써 깨달음에 이른 불타를 그렇게 부르며 또한 불타의 제자로서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비달마에서 설해진 성자의 단계 중 가장 높은 계위를 가리킨다. 곧 아비달마에서는 아라한과 다시 말해 아라한의 계위를 얻는 것이 모든 출가 수행자가 목표로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수행자가 수행도의 예비적 단계를 마치고 난 후 비로소 견도에 들어와 88가지 번뇌를 단절하여 수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예류향(預流向)이라 하고, 바야흐로 이 수도에 들어간 단계를 예류과(預流果)라고 한다. 예류과로부터 아라한과 사이에 일래과(一來果), 불환과(不還果)의 두 단계를 두며 예류과에서 일래과에 이르는 과정을 일래향, 일래과에서 불환과에 이르는 과정을 불환향, 불환과에서 아라한과에 이르는 과정을 아라한향이라고 한다. 이러한 모든 계위를 합해 사향사과(四向四果)라고 하는데, 성도(聖道)에 있어서 번뇌를 단멸하는 정도에 따라 그 단계를 설정하였다. 예류(預流)라는 것은 ‘불법(佛法)의 흐름에 들어간 자’의 뜻이고 일래(一來)는 ‘이제 인간과 하늘 사이를 오직 한 번만 왕래하는 자’의 뜻이며, 불환(不還)은 ‘이제 더 이상 욕계에 돌아옴이 없는 자’의 뜻이다.
아라한은 원래 불타를 의미하였다. 이 말은 경전에서 불타의 다른 이름의 하나로서 잘 쓰이고 있어서 실제로 여래라든가 세존이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러나 아비달마 논서에 있어서 수행자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로서의 아라한과 불타의 경지는 분명히 구별되고 있다. 무루의 지혜에 의해 모든 번뇌를 끊고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모두 불타일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범부로터 성자로, 그리고 아라한으로의 도는 보살로부터 불타로의 도와 동일하지 않다. 대개 범부로부터 아라한으로의 도는 오로지 번뇌의 단절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자의 도이지만 보살로부터 불타로의 도는 그 밖에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다. 즉 자비로써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는 이타행(利他行)이 바로 그것이다. 범부로부터 아라한으로의 도는 사람들에게 널리 개방되어 있지만 보살로부터 불타로의 도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보살로서 불타로의 도에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은 과거의 무수한 생애에서 햔량없는 덕을 쌓고, 사람들을 위하여 자비를 베푸는데 소홀함이 없는 무한한 이타성과 자기를 연마한 존재뿐이다. 이렇게 선택된 희유한 인간이 그 도를 성취하여 불타로서 출현하는 것은 실로 십억의 세계를 그 속에 포함한다는 전 우주를 통해 보더라도 동시에 두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석존을 숭앙하는 깊은 마음에서 불타의 위대함을 극구 찬탄하면서 스스로 목적하는 바를 아라한과에 두어 아라한과 불타의 거리를 엄격히 유지하였다.
3. 대승불교
대승(大乘)은 소승(小乘)에 맞서는 말로, 커다란 승물(乘物, 탈 것) Maha-yana를 의미한다. 소승 즉 작은 hina 승물(乘物)이란 열등한 승물이라는 뜻이며 대승불교가 처음 일어났을 때 그 이전의 모든 불교를 일괄하여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것이다. 따라서 소승교도 자신은 이 명칭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불교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진실한 깨달음에로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승불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에서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대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보살(菩薩)이라 하고, 소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성문(聲聞) 및 연각(緣覺)이라 한다. 소승에는 이들 두 길이 있으므로 소승을 이승(二乘)이라고 한다. 대승에서 보면 이들 성문, 연각이라는 구별은 이승이 궁극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그들도 참으로 궁극적인 것을 구한다면 모두 대승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전 불교는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길이며, 그런 의미에서 일승(一乘)이라고 한다.
1) [대승불교의 성립]
불탑신앙과 불전문학
불교교단은 석존이 입멸 후 약100년간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러나 100년쯤(기원전 4세기) 되어서는 계율과 교리에 대한 엇갈린 견해가 발생하여 마침내 교단은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불교의 전파범위가 넒어짐에 따라 각 지방으로 퍼진 불교는 그곳의 기후, 풍토, 습관 내지 문화적 제반 사정에 영향을 받음으로써 비구들의 생활양식이 변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법과 율에 대한 다른 견해가 생겨나 교단은 통일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예컨대 붓다는 비구는 신자로부터 금이나 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한편에서는 시대적 상황변화에 따라 그것의 완화를 요구하였다. 이로부터 불교교단은 전통적인 계율을 고수하려는 보수적 경향의 상좌부(上座部)와 계율을 자유로이 해석하려는 진보적 경향의 대중부(大衆部)로 근본 분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 분열한 불교교단은 그 후 교리상의 해석을 둘러싸고 분열의 분열을 한 후 불멸 400년이 지날 무렵에는 근본 2부를 포함하여 20여 부파로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 시기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하며 분열이전의 불교의 초기불교, 원시불교, 근본불교라고 한다.
나아가 이 시기의 출가자들은 수행의 최고단계인 아라한(阿羅漢)에 관한 문제를 비롯하여 불교의 일체 교법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논의하여 방대한 논서를 작성하였는데 이러한 논서를 아비달마(阿毘達磨)라고 하며 그로 인해 이 시기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 하기도 한다. 아비달마란 붓다 교법에 대한 연구, 해석이라는 의미로 부파불교란 말이 분열된 교단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아비달마불교라는 말은 그들의 사상적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불교는 지나치게 번쇄하고 난해하여 점차 본래의 의도를 상실하게 되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현실의 괴로움에 대해 연기설에 입각하여 고찰하고 바른 지혜와 수행으로 해탈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 원칙 위에 교리를 세운 것이기는 하지만 점차로 실제의 수행보다는 번쇄한 교리해석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였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 반발하고 비판하는 집단에 의해 대승불교가 싹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불교가 흥기할 무렵 정통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였던 바라문교는 기원전 2세기경 사성(四姓) 즉 브라흐마나, 크샤뜨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 계급에 대한 종교적 의무와 생활규범 등을 규정한 <마누법전>을 비롯한 각종 제사경전과 서사시가 작성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종래 베다성전이 바라문의 전유물이었다면 새로이 편찬된 <마하비라타>와 <라마야나> 등의 서사시는 일반 대중이 애호하였던 종교문헌으로 이 두 서사시를 기점으로 그 이전을 바라문교의 시대, 그 이후를 힌두교의 시대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베다>에는 보이지 않던 시바와 비슈누가 최고신으로 등장하는데, 다른 수많은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개성이 강한 신격(神格)이 되면서 다양한 신자층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마하비라타>의 일편을 알려지는 <바가바드 기타>는 오늘날까지도 힌두교의 최고성전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바라문교의 형식적인 제사주의를 배격하고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인 신애(信愛, bhakti)를 강조하고 있다.
불탑신앙과 불전문학
아쇼카왕 이래 부파불교의 출가자들은 국왕이나 장자들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원조에 힘입어 광대한 장원을 소유하게 되었고 안정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선정과 교법에 대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단이 분열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붓다의 교법에 대한 부파간의 쟁론을 초래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학문적, 철학적으로 발전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의 대중들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부파불교의 아비달마 교학은 초기불교의 교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지만 너무나도 번쇄한 이론체계를 전개시켜 전문적으로 교학을 연구하는 출가 수행자가 아니고는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난해한 교리나 엄격한 계율이 아니라 불타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었다.
이에 따라 법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와 논의를 위주로 하는 기존의 승원불교에 만족하지 못한 재가자와 이에 동조하는 출가자들은 점차 불탑(佛塔)에 모여들게 되었다. 불탑은 부처님의 유골 즉 사리(舍利, sarira)를 봉안한 무덤으로 ‘포개어 쌓는다’는 뜻의 스투파(stupa)에서 비롯된 말이다. 부파불교에 있어 붓다는 중생을 구제하는 이가 아니라 법으로 인도하는 스승, 즉 도사일 뿐이었기 때문에 법을 떠난 불신(佛身)의 숭배는 무의미한 것이었으며 불상이나 불탑의 숭배 역시 그러하였다. 또한 붓다는 쿠시나가라에서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들었기 때문에 진리 자체로서는 실재할 지라도 인격으로서는 실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붓다의 사리에 대한 공양과 예배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으로 불탑의 조성은 생천(生天)을 보장하였고, 따라서 불탑의 조성과 경영은 재가신자들의 몫이었다. 나아가 그들은 불타의 탄생지인 룸비니와 성도지인 붓다가야,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의 녹야원, 입멸지인 쿠시나가라 등을 성지로서 숭배하였으며 그곳에 사당을 세워 순례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후의 시기가 되면 불탑의 건립이 매우 활발해지는데 여기에는 꽃이나 향 등이 바쳐지고 보물과 귀금속 등이 봉헌되었으며 춤과 노래가 베풀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은 기존의 부파 교단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비구들은 보통 승원이나 정사(精舍)에 머물렀으며 그곳은 불탑과는 전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다. 그들에게는 금이나 은을 받는 일, 춤추고 노래하는 것 등이 금지되었다. 부파불교는 법 중심의 불교, 계율을 중시하는 출가자 중심의 불교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세속의 직업에 종사하는 재가자로서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킬 수가 없고, 선정(禪定)도 충분히 실천할 수 없으며 그것을 통해 증득되는 교법의 참다운 이해는 더욱 더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은 붓다에 대한 소박한 믿음으로 예배하고 공양함으로써 구원을 바라게 되었고, 그것이 행해진 대상은 불탑이었다. 만약 법 중심의 출가교단에 반하여 붓다 중심의 교법을 발전시킨 어떤 그룹이 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출가교단에서 독립하여 자신들의 교법을 발전시키고 관불(觀佛)이라는 종교행위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서 불탑을 선택하였을 것인데 바로 이같은 불탑교단의 재가성과 신앙적 성격이 대승불교 성립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대승불교 성립의 또 하나의 주요한 원인이면서 불탑 신앙과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불전(佛傳)문학이다. 불탑신앙자들이 생각한 붓다는 이제 더 이상 법의 도사나 아라한이 아니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애를 거쳐 오면서 초인적 이력을 쌓을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사모와 찬탄은 종래 법 중심의 이론적 교설과는 다른 형태의 문헌을 낳게 되었으며, 그것에는 논리적 설명을 초월한 비유와 은유, 혹은 우화의 성격을 띤 문학적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불전문학으로 이같은 불전문학을 주도한 그룹을 찬불승(讚佛乘)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자타카>는 붓다의 전생을 설한 불전의 한 장르로서, 붓다의 성불을 가능하게 한 전생과 현생의 수행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현존하는 불전은 대개 부파교단의 문헌이지만, 그것들은 부파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상의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대승경전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2)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
보살의 수행
소승불교가 아라한의 불교라면, 대승불교는 보살의 불교이다. 대승경전은 오로지 보살의 이념과 실천에 대해 설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보살이란 상세하게는 ‘보디삿트바, 마하삿트바(Bodhisattva, Mahasattva)’라고 한다. 보디삿트바란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 그리고 마하삿트바란 위대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불타가 되겠다는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고된 수행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보살에게는 자기가 불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갖추고 있다는 신념이 없으면 안 된다. 이 점이 찬불승이나 소승과 다른 대승의 독자적인 입장이다.
우선 소승과 다른 점은 소승 즉 부파불교는 아라한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교리를 조직하고 있다. 제자가 불타와 똑같은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소승불교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거기에는 당연히 자기에게 불타가 될 수 있는 소질 즉 불성(佛性)이 갖추어져 있다는 인식도 없다. 성불할 수 있는 것은 불타와 같이 위대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자기인식의 차이가 바로 대승불교와 부파불교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다음으로 찬불승(讚佛僧)의 경우는 불전문학을 통해 성불의 원인을 탐구하고 보살의 위대한 수행을 찬양하고 있다. 따라서 찬불승도 보살의 가르침을 설한다는 점에서는 대승불교와 가깝다. 그러나 찬불승에서 설하고 있는 보살은 이미 성불이 결정된 보살이다. 성불의 수기(授記)를 받은 보살이다. 이에 비해 대승에서 말하는 보살을 자기자신이다. 성불의 수기 등과는 관계없는 범부로서의 보살이다. 찬불승에서 설하는 보살은 오로지 석가보살이지만 그는 연등불로부터 당래작불(當來作佛)의 수기를 받았다. 이 수기에 의해 그에게 보살로서의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일반범부인 대승의 수행자에게는 이러한 수기가 없기 때문에 보살로서의 자각은 다른 방편에서 얻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자기에게 불성이 있다는 신념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이 점이 똑같이 보살을 설하면서도 찬불승과 대승불교가 갖는 본질적인 차이이다. 찬불승의 보살은 선택된 사람이지만 대승의 보살은 일반인이다.
보살의 수행
보살의 자각으로부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수행이 시작된다. 아라한은 오로지 자기의 완성을 위해 수행한다. 그러나 불타는 중생을 구제하는 사람으로 대자대비의 소유자이다. 그 불타가 되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은 필연적으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수행이다. 즉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자기 수행을 완성하는 길이다. 이것이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수행이다.
여기서 바라밀이란 빠라미따(paramita)의 음사로서 ‘피안(彼岸)에 이른 상태’ 혹은 ‘최상의 상태’ 즉 완성을 의미하는데 한역에서는 보통 도피안(到彼岸)으로 번역되고 있다. 그러나 이 때 도달이나 완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도달이고 완성할 수 없는 완성이다. 즉 바라밀은 무차별, 공에 입각한 실천이기 때문에 특정한 도달이나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닦아가야 하는 것이 바라밀의 참뜻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보시 등의 세속의 윤리가 종교적 덕목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바라밀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보시(布施)바라밀, 지계(持戒)바라밀, 인욕(忍辱)바라밀, 정진(精進)바라밀, 선정(禪定)바라밀, 반야(般若)바라밀이다.
보시(布施, dana)란 베푸는 것이다. 베푸는 것에는 물질적인 베품인 재시(財施)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법시(法施), 두려움과 근심을 함께 하고 도와주는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다. 보시할 때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와 주는 물건에 어떠한 차별도 없는 것이 진정한 보시이다. 즉 보시를 행하면서도 보시라는 선행에 집착하지 않고 공덕의 대가도 바라지 않는 무주상(無住相)의 보시가 보시바라밀이다. 보시바라밀은 요컨대 공한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계(持戒, sila)란 말 그대로 ‘계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전통적으로 계에는 재가신자들이 지켜야할 오계와 출가비구와 비구니가 갖추어야 할 250계와 350계가 있지만 대승의 보살계는 10가지이다. 그런데 대승의 지계는 소승과 같은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계율지상주의가 아니라 이타를 위한 능동적이고 자율적 정신을 강조한다. 즉 계 역시 공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지키며, 아울러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본질이다.
인욕(忍辱, ksanti)이란 참고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고통이며 그러한 세계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화내지 않고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미움은 미움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미움을 부르기 때문에 참음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virya)이란 나약함이 없는 부동심의 실천이며 불퇴전(不退轉)의 노력이다. 대승의 공관은 결코 허무에 의한 나태가 아니다. 중생의 정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보살의 정진은 집착함이 없는 이타의 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선정(禪定, dhyana)의 정(定)은 삼매(三昧)란 뜻으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이라고 풀이되며 세계 실상이 무자성(無自性), 공(空)임을 삼매로서 직관하여 그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반야(般若, prajna)란 ‘수승한 지혜’라는 뜻으로 이 때 지혜는 사유분별의 망상을 떠난 지혜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득(不可得)이며 무소득(無所得)이다.
이처럼 바라밀의 수행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이타에 전력하는 입장이며 성불도 도모하지 않는 끊임없는 수행이기 대문에 이 수행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대단한 결의가 필요하다. 보살의 이 결의를 갑옷을 입고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에 비유하여 ‘큰 서원(弘誓)의 갑옷(大鎧)을 입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살은 무량무수의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면서도 인도된 사람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도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3) 대승경전의 성립
교단사적으로 보면 대승불교는 현재까지도 그 실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대승경전들로 보아 대승불교가 역사상 실재하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승불교의 성립에 대해 말할 때도 그 대부분의 자료를 대승 경전 자체로부터 얻고 있으므로 단적으로 말하면 대승 경전이 바로 대승불교인 것이다. 따라서 대승경전의 발달사는 대승불교의 형성사와 중복되는 점이 많다.
현재 많이 보고 있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은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여 불전을 집대성한 것이다. 총 100권 가운데 앞의 32권이 인도찬술부이며 이것이 본래의 대장경이다. 그것은 아함, 본연, 반야, 법화, 화엄, 보적, 열반, 대집, 경장, 밀교, 율, 석경론, 비담, 중관, 유가, 논집의 1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밀교부까지가 경이며, 율과 석교론 이하의 논을 합하여 삼장(三藏)을 형성한다. 경장부분도 원래 소승경과 대승경만으로 되어 있었는데 대정신수대장경에서 이와 같이 구분한 것이다. 그 중 반야부 이하가 대승경에 해당한다.
대승경전 성립의 배경
당시에는 불타가 직접 설하신 경전인 <아함경>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와 달리 불타의 참뜻을 나타낼 새로운 표현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대승불교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설하려 했던 것인가하는 문제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는 어떻게 흥기하였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대승불교 성립배경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언급하기로 한다.
대승불교는 원래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서 불탑 공양을 통해 불타를 찬미하고 숭배한 재가 신자들을 주로 하는 집단에 의해 일어난 신운동이다. 이 운동은 재래의 여러 부파들이 승원 중심의 불교로서 아비달마 교학의 확립을 지향하여 너무 전문적인 법 중심의 불교를 발달시키고 있었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불타의 절대성과 자비성이 무한하다는 것으로서 이는 불멸 후 나타난 석존 신격화의 결과이다. 즉 불전과 본생담 등을 통해 점차로 발달하였던 불타에 대한 고찰의 결과, 불타는 과거에 무한의 수행을 한 과보로서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하며, 인행(因行)으로서 이타행을 주로 하는 육바라밀의 행을 설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불타의 체험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결심하였던 곳에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이 있었다. 출가수행자들은 불타와 자신들과의 거리감 때문에 스스로가 아라한임에 머무르고자 했음에 대해, 중생의 성불이야말로 불타의 본원(本願)이라고 주장하여 불타와 똑같은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석존의 전신(前身)과 마찬가지인 보살이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중생이 성불하는 길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 새로운 운동은 대승이라는 이름을 불리기에 이르렀다.
이 운동의 지도자는 법사(法師)라고 불린다. 법사의 기원은 어쩌면 출가 수행자 중에서 재가 신자를 위해 불타의 전기나 비유를 설하는 전문가였는지도 모르지만, 부파의 기록을 통해서는 그 기원을 알 수 없다. 대승측에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재가 신자에서의 지도자이든가 혹은 출가자이더라도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대승 경전이 성립되기 시작하면서 대승불교 자체에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대승 경전에 대해 공양하고 숭배하고자 하는 요구와 법사를 존중하고자 하는 요망이다. 결국 경전이 불탑을 대신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되었다는 것이며 대승경전이라고 하는 법의 절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두번째 현상은 성불도(成佛道)로서의 보살도가 정비되고 체계화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처음에 비판하였던 부파의 아비달마 교학을 다시 도입하게 된다. 이것은 재가보살 대신 출가의 보살이 이상상으로 등장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대승불교의 이론화와 체계화는 결국 출가주의화와 아비달마화를 초래하여 이전의 불교가 걸었던 길을 답습하게 된다. 이로써 제3의 신운동으로 밀교가 일어나고, 이윽고 그 주장을 담은 그릇으로서 밀교 경전이 제작된다. 밀교 경전도 역시 불설임을 표방하지만 그것을 설하는 이가 대승 경전의 경우처럼 불타가 아니라 절대적 존재로서의 법신(法身)이라고 했다. 밀교도 대승불교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승을 초월하여 출현한 것이라는 점은 대승이 불교이면서도 이전의 불교를 초월하여 출현하였던 것과 대비된다. 그리하여 인도불교의 최후까지 소승과 대승과 밀교가 병존하고 있었다.
대승경전의 발달구분
대승경전의 역사는 보통 3기로 나누어 논하게 된다. 제1기인 초기에는 대승의 형성에서부터 용수(龍樹)의 시대까지이고, 제2기인 중기에는 용수 이후에서 무착(無着)과 세친(世親)의 시대까지이고, 제3기인 후기는 세친 이후의 후대이다. 제1기에는 경전 제작이 극대로 성행하였으며, 제2기에서는 조금 덜하였고, 제3기에서는 밀교를 제외하고 극히 드물었다. 제1기는 대체로 기원 전후로부터 3세기 전반까지로서, 북인도에서 쿠샤나 왕조가 번창하던 시대이고 남인도에서는 인드라 왕조가 지배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제2기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굽타 왕조가 흥성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7세기 후반 이전에는 순수한 밀교 경전이 형성되지 않았다.
초기의 경전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최초로 저술한 인물로 지목되는 용수의 학설에 영향을 주거나 또는 인용되고 있는 경전류이다. 물론 용수가 모든 대승 경전을 열거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용수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지라도 용수와 유사한 교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초기의 경전에 포함되는 것이다. 초기 대승경전 발전 이전에 <반야경>이 성립되었고, 이로 인해 교리적 영향은 매우 커서 모든 대승 경전이 공(空)사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동시에 여러 부처를 인정하는 신앙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그 중에서 아미타불의 신앙이 보편화되어 정토교(淨土敎)를 대표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화엄경>의 그룹이 발전하고 또한 <법화경>을 신앙하는 운동이 급속하게 퍼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교리의 조직 및 체계화에 동반하여 다시 부파불교와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나게 된다. 즉 부파불교의 교리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워진 것이다.
중기 이후의 대승경전은 대체로 여래장 사상과 유식 사상에 관련된 것이다. 여래장계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중생에게 여래장(如來藏) 즉 불성(佛性)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인데,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대방등여래장경>을 선두로 하여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대운경>, <금광명경>, 구나발타라가 번역한 <승만경>, <앙굴마라경>, <대법고경>, <보살행방편경계신통변화경>, 보리유지가 번역한 <부증불감경>, 진제가 번역한 <무상의경> 등이다.
유식계의 근본성전은 <해심밀경>인데 이의 전모는 보리유지에 의해 처음으로 전해졌으나, 부분적으로는 구나발타라에 의해 번역되어 있으므로 4세기 말까지는 성립되었을 것이다. 이외에 <유가사지론>, <대승장엄경론>, <섭대승론> 등이 있다. 이 시기에는 경전과 논전과의 구별이 어렵다. 더욱이 이 시기의 경전에는 논전을 기초로 하여 개작된 것도 있다.
대승 경전의 제작은 후대에까지 계속되었지만 그 수는 갑자기 줄어들게 된다. 대신 밀교 경전이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그것은 650년을 전후로 <대일경>의 성립을 통해 현교(顯敎)인 대승으로부터 독립을 달성하고, 또한 <금강정경>에 의해 그 교리가 확립되었던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4. 대승사상의 전개
반야바라밀의 이념 아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도를 지향하는 대승불교의 이론은 서력 기원후 2에서 3세기 무렵에 출현한 용수(Nagarjuna, 龍樹)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그는 불교 최고의 논사로 제2의 붓다로 칭송되고 있는데,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수많은 논서를 저술하였다. 특히 그의 주저인 <중론(中論)>에서 불교의 근본진리인 연기를 생멸(生滅), 거래(去來), 일이(一異), 단상(斷常)의 차별적인 대립을 넘어선 것[八不中道]으로 해석하여 어떠한 견해에 대한 집착도 부정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되는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할 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따라서 일체는 공하다고 풀이하고 있다. 연기(緣起), 무자성(無自性), 공(空)의 이론을 확립하여 대승불교의 기반을 다졌다.
용수에 의해 일단 종합 정리된 대승불교는 교리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경전의 제작이 요구되었다. 이들 새로운 경전에서는 앞 시대에 수립된 공사상에 입각하면서, 미혹과 깨달음의 주체문제로서 마음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즉 마음은 한편으로는 깨달음의 세계를 낳는 원천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혹의 세계를 낳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마음은 보리(菩提)의 바탕인 동시에 윤회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전자는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이상적 측면에서 고찰한 여래장설이고, 후자는 마음의 현실적 기능의 분석에서 출발하는 유식설이다.
유식사상은 일체의 분별망상이 비롯되는 장(場)으로서 인간의 의식자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전환을 통해 진여(眞如)와 열반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이론으로 3, 4세기 무렵 출현한 무착(無着, 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dhu)에 의해 완성되었다. 나아가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을 동일시하여 양자간의 융합을 모색하려는 경전과 논서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같은 새로운 경전이 제작되고 연구되는 시기를 중기 대승불교라고 한다.
그러나 중기 대승불교의 이론은 아비달마불교처럼 대단히 번쇄하고 어려워 불교학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 되어 자연히 초기 대승불교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같은 사정에 따라 후기 대승불교라 할 수 있는 밀교가 출현하게 된다. 밀교에서는 불타의 깨달음을 다라니(陀羅尼)나 진언(眞言), 만다라(曼多羅) 등의 상징으로 나타내며, 의례를 중심으로 한 신앙실천의 중심의 불교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점차 힌두교의 의례와 유사하게 되어 그것에 동화되기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교도들이 인도에 침입하여 불교사원을 파괴함으로써 불교는 13세기 무렵 마침내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편 불교는 서력 기원전 후 동쪽으로 진출해서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수(隨) 당(唐)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론들이 번역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즉 인도의 불교는 오랜 시간동안 넓은 지역에 체계적으로 전파된 것이었으므로 중국의 불교인들은 번역된 온갖 경론들에 대해 체계성을 부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 불교의 일체 경론을 분류하고 해석하였는데, 이를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한다. 이같은 교상판석에 따라 마지막으로 설해진 또는 가장 뜻이 깊은 것으로 간주된 경론들을 중심으로 하여 마침내 종파들이 성립하게 되었다. 불교의 종파는 이미 동진시대나 남북조시대에 여러 경론이 번역되고 그것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수많은 종파가 성립하게 된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13종파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중국 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법화경>의 일승(一乘)을 대승불교의 근본으로 간주하는 천태종(天台宗), <화엄경>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法界)를 깨달음의 본질이라고 하는 화엄종(華嚴宗), 정토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정토의 실현을 추구하는 정토종(淨土宗), 그리고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앞의 여러 종파와는 달리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표방하는 선종(禪宗) 등이 있다.
이제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인 공사상과 유식사상을 살펴보고 이어서 중국불교의 대표적인 종파인 천태, 화엄, 정토, 선종 등의 사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공사상(空思想)
공사상의 전개
공(空)이란 용어는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 특히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 강조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 이 말은 자성(自性, svabhava), 실체(實體, dravya), 본성(本性, prakti), 자아(自我, atman) 등과 같이 인간이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본질적인 것들이 실제로는 없다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오직 우리의 인식 안에 있는 것으로 실제로 이러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空)이란 용어의 원어는 sunya로서 본래 ‘부풀어 오른’, ‘속이 텅 빈’, ‘공허한’ 등을 의미하여 ‘부풀어 오른 모양으로 속이 비어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sunya라는 말이 불교에 도입되어 공(空)으로 한역되고, 특히 <반야경>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 이르러서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이 공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취급하여 사상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것을 공사상이라 하며 특히 대승불교에서 이러한 공사상을 강조한 사람들을 공론자(空論者)라 부르고, 그들의 주장을 공론(空論)이라 한다. 이러한 공론자는 용수 이후 중관파(中觀派)를 형성하여 공사상을 전개해 가며 그들은 스스로를 공성론자(空性論者)라 불렀다.
<반야경>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 공사상은 후에 용수에 이르러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대승불교 철학을 발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용수는 공의 개념이 불타가 깨달은 연기법의 이치와 일치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또한 부파불교 중의 하나인 설일체유부에서 주장한 법의 견해를 비판하여 공은 곧 무자성(無自性)인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처럼 용수에 의해 명확하게 체계화되는 공사상에 대한 논리는 이미 불타의 근본교설을 전하는 초기불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왜냐하면 불타의 근본사상을 나타내는 것이 다름아닌 연기설이며, 이 연기설을 바탕으로 공을 이론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의 이론적 전개와 관련하여 불타는 당시 중요한 논쟁의 주제였던 아트만(atman, 自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불타는 세간이 공한 것은 아트만이 없는 까닭이며, 그 아트만은 안, 이, 비, 설, 신, 의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 어디에도 없음을 설하고 있다. 이처럼 초기불전에서는 공의 의미가 무아(無我)설과 밀접히 관련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 가장 먼저 성립된 것이 <반야경>.으로 이 <반야경>은 후에 <대반야바라밀다경> 600권으로 집대성된다. 이러한 <반야경>에 공통되는 중심사상이 공관(空觀)으로 공관이란 일체 존재하는 사물들은 그 본성이 공하며, 또한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반야경>의 공관은 대승불교 자체의 기본적인 교설이 되고 아울러 대승불교도의 실천적 기반을 이루게 된다.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면 대승불교 이전의 부파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부파불교 가운데 설일체유부의 교리는 <반야경>의 공사상이 출현하는 사상적 배경이 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설일체유부에서 일체법이 존재한다는 실유(實有)의 주장은 <반야경>의 공사상과 대승불교의 중관철학이 발생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대표적인 부파인 설일체유부는 모든 요소를 법(法)이라 부르고 그 법을 5위75법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일체 존재를 다양한 법의 이름을 분류하고 그리고 그 각각의 법에는 파괴되지 않는 법의 고유한 자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색법, 심법, 심소법, 심불상응법, 무위법의 5위로 구분되는 일체 존재와 그 각각에 속하는 75개의 법은 과거, 현재, 미래를 걸쳐 항상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설일체유부의 법체항유설(法體恒有說)로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야경>은 각각의 법에는 그와 같은 실체, 자성이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공이라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즉 모든 법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고정적인 법의 관념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체법은 다른 법과 조건지워져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정적, 실체적 본성을 갖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무자성인 것으로, 이 무자성인 것은 곧 공인 것이다.
그러나 일체가 공하다는 관찰은 반야바라밀을 실천하여 얻어지는 것으로 이것은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단계가 아니라 지혜의 완성에 도달한 경지에서 얻어진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반야지혜로서 공관은 용수와 그 이후의 사상가들에게 있어 이제설(二諦說)의 입장에서 명확히 그 구분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반야경>은 법의 공을 주장하고 있으며, 공관은 반야바라밀의 경지에서 얻어지는 지혜인 것이다.
공사상의 전개
<반야경>의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이 용수이며, 이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론>을 중심으로 한 사상을 일반적으로 중관사상이라 말하며, 또 그 중관사상의 흐름을 이어받는 불교 논사들을 중관파라 부른다. 용수는 <중론> 외에도 다수의 저작을 남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론>으로 이후 많은 주석서가 씌어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용수는 <중론>을 저술하여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 <중론> 속에서 용수는 공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중론> 제24장 18게에서 ‘무릇 연기하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들은 공성(空性)이라 설한다. 그것은 임의로 시설되어진 것이며, 그것은 중도(中道)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게송에서 볼 수 있듯이 용수는 <반야경>에서 공이라고 설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곧 우리가 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실제는 모든 사물이 각기 독자적인 존재의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진 까닭에 연기의 관계를 떠나있는 독자적인 성질로서 자성이나 실체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용수는 이러한 연기의 인연관계를 떠나 있는 것을 자성(自性)이라고 부르고 따라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무자성(無自性)이며 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사물이 연기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실체인 자성에 의해 생긴다고 한다면 그 때는 자성이 서로 연기한다는 모순이 될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곧 자성이란 인(因)과 연(緣)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립적인 것이며, 또한 다른 것에 의존하는 일 없는 항상 고정불변한 존재이지만 실제로 그와 같은 것은 생겨날 수도 있을 수도 없음을 용수는 지적하고 있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과 연의 상호관계로 생겨나는 것이고 따라서 그와 같은 것은 곧 자성이 없는 까닭에 공인 것이다.
이처럼 용수가 고정불변한 자성의 개념을 부정한 것은 그 자성의 관념이 우리 인간들의 망상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즉 이 자성의 개념은 다양한 인연의 관계를 초월해 영원한 동일성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 내재한 본질적 속성을 가리키고 있다. 즉 우리의 삶의 세계는 수많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약속에 의거한 언어적 세계로서 영원히 변치않는 절대불변의 세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어를 불변적인 것으로 잘못 생각해 그로 인해 번뇌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론>은 그와 같은 불변적인 성질로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 자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우리 삶의 세계가 연기의 이치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중론>이 이처럼 연기법을 바탕으로 무자성, 공에 대한 논리를 수립하여 <반야경>의 공관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이론적 체계에 무엇보다 중요한 관점을 용수는 이제설(二諦說)의 정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2제에 대한 교설은 공에 대한 이해와 직접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은 물론, 동시에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 사이에서 그 견해 차이로 인해 중관파가 둘로 나뉠 정도로 중요한 쟁점이 되었던 교설이기도 하다. <중론> 제24장에서 용수의 반대자는 만약 일체가 공이라면 사성제, 사향사과(四向四果), 삼보(三寶) 등의 일체도 공하여 모두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용수는 그 반대자가 공용(空用), 공성(空性), 공의(空意)에 대해 무지한 까닭에 그와 같이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한 뒤 이제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세속제(世俗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의 2제는 불타가 의거해 설하는 것으로 이 2제에 대한 바른 이해는 진실한 뜻을 아는 관건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2제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나아가 용수는 ‘연기와 공성을 파괴한다면 세간의 일체 언어습관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라고 하여 연기와 공의 이치야말로 세간을 성립시키는 근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세간의 언어 습관인 세속제가 다름아닌 연기와 공을 바탕으로 성립하므로 만약 연기와 공을 부정한다면 세간의 삶을 부정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삶의 세계가 언어의 세계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변의 자성세계가 아니라 약속과 습관에 의거한 연기의 세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와 같이 세속제를 성립시키는 바탕으로서 연기와 공의 이치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제일의제를 알 수도 없고 또한 열반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기와 공의 이치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경지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반야바라밀의 세계는 곧 제일의제의 진리세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다시 말해 세간의 언어 습관인 세속제가 성립하는 근저로서 연기와 공에 대한 이해야말로 승의의 진리를 알고 열반을 얻게 하는 구체적인 지혜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용수는 2제설을 통해 연기와 공의 이치가 세간을 세간답게 하고 제일의제와 열반을 얻게 하는 구체적인 지혜임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였다.
용수는 <중론>에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을 연기설과 같은 위치에 놓음으로 공관을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대승불교의 역사적 위상을 확립시켰다. 이로 인해 <반야경>으로 대표되는 대승불교는 역사적으로 그 연원이 불타에게 유래되었음이 분명해지고 아울러 대승불교의 역사적 의미는 더욱 공고히 되었다.
2) 유식사상(唯識思想)
유식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 원리를 관찰해 보면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에 가치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이 세상의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 마음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유심론(唯心論)적 성격은 근본불교에서부터 있었다. 초기에 육처(六處)와 십이처(十二處)설이 있었는데, 이것은 인식에 의거하여 존재를 고찰하는 설이다. 12처란 인식하는 것과 인식되는 것을 인식기관에 의거하여 여섯 개의 영역으로 구분한 설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외계의 대상이 실재한다고 보았지만 유식설에서는 외계의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외계의 대상은 인식되는 대상으로써 인식되지 않았다면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식설에서의 대상은 인식되어진 대상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설하고 제법의 무아(無我)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아설에 의해서 불교에서 ‘인격의 주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주체가 없으면 기억의 지속이나 업의 과보, 책임의 소재 등의 문제가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자업자득의 원칙을 강조하게 되면 자아의 자기 동일성이나 인격의 지속성이 요청된다. 그 때문에 제행무상과 무아의 교리를 인정하면서도 인격의 지속이나 업의 과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부파불교의 커다란 과제였고 그리하여 이에 대해서 갖가지 새로운 이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설일체유부는 제법의 찰나멸을 주장하면서도 다시 제법의 상사상속(相似相續)을 인정하고 의식의 흐름을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유부는 생리적으로는 명근(命根)의 존재를 설하고 이로써 생명이 지속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직 인격이나 주체의 관념은 나타나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독자부나 정량부가 비즉비리온(非卽非離蘊)의 아(我)를 설한 것은 유명하다. 독자부는 이것을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 불렀는데 이 보특가라는 오온(五蘊)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온을 떠나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동시에 그것은 인식될 수도 없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될 수도 없지만 이러한 인격적 주체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화지부에서는 궁생사온(窮生死蘊)을 설하였고, 이 주체들은 개체의 죽음과 함께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초월하여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것, 즉 윤회의 주체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또 부파불교시대에는 잠자고 있을 때에도 미세한 마음의 작용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것으로서 대중부나 분별론자 등은 세심(細心)을 설하고 미세한 마음의 지속을 주장했다. 대중부가 설한 근본식(根本識)도 이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부터 표면심에 대한 잠재심의 관념이 생겨났을 것이다.
또한 업에 관해서는 선악의 행위가 있고 나서 그 과보를 받을 때까지 업력은 어떻게 보존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즉 업과 그 과보를 연관시키는 매개자의 문제이다. 이것을 대중부는 증장(增長)이라고 불렀고 유부의 무표업(無表業)도 본래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경량부는 이 업력을 종자(種子)라고 불렀다. 즉 업력을 식물의 종자가 가진 잠재적인 힘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단지 선악의 업에만 종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위가 종자의 형태로 바뀌어 존속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경량부에서는 이 종자가 어디에 보존되는가를 생각한 끝에 그 장소로서 잠재심을 상정하지 않고 색심호훈(色心互熏)을 설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부파불교에서 생겨난 갖가지 사상이 대승불교로 계승되어 인격의 주체 속에 잠재심, 무의식의 영역이 상정되게 되고 거기에 종자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상이 확립되어간 것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아뢰야란 ‘간직한다’는 뜻이다. 종자를 소장하고 있는 식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종자의 집합체 이외에 그 용기로서의 다른 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뢰야식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 한다. 이 아뢰야식이라는 개념은 이미 <해심밀경>에 나타난다. 이 아뢰야식은 인간 존재의 근저에 항상 상존해 있으면서도 변함이 없으며 그 흐름은 일생동안 끊어지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의 생존에까지 계속 영향을 미쳐서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중생이 어떠한 행위나 행동을 하는 한 그것은 대개 선업이나 악업을 지어서 그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 때에 아뢰야식이 업력의 소의처가 되어 그 속에 종자가 잠재하고 있다가 그에 알맞은 환경이나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모든 세계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서 현상계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팔식(八識)의 구조
마음을 심(心), 의(意), 식(識)으로 부르는 예는 이미 초기불교에서도 발견된다. <아함경>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심, 의,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 의, 식의 체성은 염오성(染汚性)이라고 보았으며, 심의식은 무상한 것이라고 여겼다. 초기경전에서는 각각의 개별적인 심리작용은 없었으며, 생각하고 사랑하고 요별하는 심리작용을 총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파불교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심왕(心王)과 심소(心所)로 분류하였는데 심왕은 심의 주체로서 인식주관이며, 심소는 개별적인 심리작용이다. 심왕이 바로 심의식이며 이는 육식(六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심, 의, 식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대비바사론> 제72권에서는 심의식의 무차별설과 차별설을 같이 설하고 있다. 무차별설은 심의식은 명칭의 차이만 있을 뿐 다같이 정신의 주체를 가리키며 체(體)가 동일하다는 것으로 이는 설일체유부의 견해이다. 차별설은 심의식은 명칭과 교설의 시설, 의미, 업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체(體)는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세친은 <구사론>에서 심은 집기(集起)의 의미가 있으며, 의는 사량(思量)의 의미가 있으며, 식은 요별(了別)의 의미가 있다고 설했으며 이는 정신의 주체이며 작용만 다를 뿐 체는 하나라고 하였다.
유가행파의 유가사들은 선정 관행 중 심층적인 식의 흐름과 기능에 주목하여 종래 부파불교시대부터 탐구되던 두 가지 문제인 윤회의 주체와 번뇌와 아집의 주체 및 의근(意根)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윤회의 주체는 아뢰야식, 번뇌와 아집의 주체는 말나식의 식체(識體)를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종래의 육식설(六識說)에다 아뢰야식(阿賴耶識)과 말나식(末那識)을 결합하여 팔식(八識)을 구성하였다. 팔식 가운데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은 묶어서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하는데 이 식들은 각각 대상을 요별하고 분별한다. 의식(意識)은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킨다. 이 의식은 전오식으로는 볼 수 없고 만져볼 수 없지만 없는 것이 아니고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거나 아니면 홀로 활동한다. 의식이 일어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번째는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서 같은 대상을 인식하거나 아니면 전오식과 함께 일어났지만 의식이 한눈을 팔아서 올바르게 인식되지 않은 경우이고, 두번째는 꿈을 꾸거나 망상, 공상 및 선정에 들 때와 같이 의식이 독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제8 아뢰야식을 일으킨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을 일부러 우리가 어떤 의도적인 행위를 하고나 아니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의 4종번뇌와 항상 같이하면서 업을 일으킬 때 이들에 의한 인상이나 여운등을 그대로 흡수하여 저장하는 장소로서 아뢰야식이 활용되는데 이렇게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식은 제6식보다는 깊고 제8식보다는 얕은 제7말나식이라는 의식이 상정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7말나식을 일컬어 자아의식이라고도 하며, 이 식에 의하여 업을 지어서 중생들이 결과적으로 세세생생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제8아뢰야식은 이렇게 모든 업의 산물들을 스스로 저장하는 능장(能藏)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세력들을 소장(所藏)할 장소로서의 처소로도 제공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아뢰야식은 앞에서와같이 항상 제7말나식의 집착력과 아집 등에 의하여 유린당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이럴 경우 제8아뢰야식은 집장(執藏)의 뜻이 강하다. 왜냐하면 아뢰야식의 본래 의미는 유루법이 현행하는 사이, 곧 아집 등이 활동하는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지 아집 등이 없는 성인위에 오르면 이 식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유식의 수행
유가행의 수습단계가 발전하여 유식사상에서는 오위설(五位說)로 정착되었다. 오위는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및 구경위(究竟位)에 각각 해당된다. 첫째 자량위는 복덕과 지혜의 2자량을 축적하는 수행의 준비단계라는 의미이다. 즉 친구의 권유나 자기의 의지로써 유식의 교리를 배우고 그것이 진리임을 믿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유식이 자기 것으로 체험되지 않은 단계이다. 따라서 아집, 법집의 번뇌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단계라 하겠다. 둘째 가행위는 이미 직접적으로 유식의 수행으로 나아간 단계이다. 그러나 눈 앞에 어떤 대상을 설정하고 이것이 유식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단계이므로 아직 참된 유식에 들어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즉 유식이라는 것을 인식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러나 가행위에서 사심사관(四尋四觀) 사여실지관(四如實智觀) 등의 관법을 닦아 유식의 수행이 진전함으로써 유식에 통달한다. 이것이 세번째 통달위이다. 즉 인식의 대상을 나로 집착하거나 법으로 집착하는 일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혜가 소연(所緣)에서 생기지 않을 때 유식성에 머문다’라고 한다. 소연에서 앎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집착이 없어졌음을 뜻한다. 거기에는 당연히 집착하는 주체도 없다. 그것은 주객의 분열이 없어진 지혜이기 때문에 무분별지라고 한다. 이것은 상대를 떠난 지혜, 즉 공의 지혜이다. 공(空)은 형태나 크기가 없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공을 안다는 것은 스스로 공을 완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분별지이다.
이 유식에 안주한 지혜를 견도(見道)라고 한다. 견도에는 진(眞)견도와 상(相)견도가 있다. 진견도는 근본 무분별지에 의해 생기며 유식의 성(性)을 깨닫는 것이고, 상견도는 후득지에 의해 생기며 유식의 상(相)을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진견도는 이공소현(二空所顯)의 진여를 깨닫는 것이다. 이 통달위는 성자의 부류에 속하게 되는 것이며, 십지(十地) 중 최초의 환희지에 든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수행을 계속하여 제10지의 위에 이르기까지가 네번째 수습위이다. 즉 이 단계에서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무분별지를 수습하고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끊어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전의(轉依)를 실현하는 것이다. 앞의 통달위 단계에서도 무분별지가 나타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며 다시 번뇌가 생긴다. 그러한 상태에서 무분별지를 자주 수습하여 그 수습이 완성될 때 전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번뇌장을 떨쳐버림으로써 대열반을 얻고 소지장을 떨쳐버림으로서 대보리를 얻는 것이다. 수습위의 다음인 다섯번째 구경위는 불과(佛果)이다. 이것은 앞의 전의에 의해 얻어진 경지이다.
3) 천태사상(天台思想)
태의 교리적 핵심은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제법이란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말이고, 실상은 참된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법실상이란 현실의 온갖 사물이 참된 존재라는 말로써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제2품 방편설에 나오는 말이다.
천태학의 소의경전은 <법화경>이며, 이 경을 중심으로 교학을 발전시켜 나간다. 천태에서는 <법화경> 28품을 앞뒤 14품씩으로 나누어 본다. 앞은 적문(迹門)이라 하는데, 현실적으로 제법실상을 중심으로 불타의 금생교설을 총괄하였고, 뒤의 본문(本門)은 시간적으로 제법의 영원성을 지시하고 불타의 과거세의 온갖 행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천태학의 주요전적이라 할 때 <법화경>보다는 삼대부로 불리는 법화경의 세 가지 주석서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삼대부는 천태의 강의내용을 장안 관정(灌頂)이 필수 정리한 것이다. 천태종의 개종자인 지의는 많은 저서를 남겼지만 그 가운데서도 만년에 학문과 수행이 원숙한 경지에서 독창적인 불교학의 체계를 세워 강설한 주석서인 <법화문구(法華文句)>와 법화철학의 정수요 원론서인 <법화현의(法華玄義)>와 수행과 실천의 대도를 밝힌 <마하지관>을 삼대부로 불러왔다.
먼저 <법화현의>는 <법화경>과 천태학의 총론적 연구서이다. 교상문(敎相門, 교학)의 대표 저서로서 <묘법연화경>이라는 경의 제목을 중심으로 하여 경전의 요지를 해석하고 붓다 일생의 교법을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 이른바 오중현의(五重玄義)로서 법화사상을 강론한 것이다. 곧 경의 제목, 주체, 근본, 작용, 교판의 다섯 기준에서 <법화경>을 중심으로 모든 경전을 분석 판별하여 법화우위를 주장한 것이다.
<법화문구>는 <법화경> 28품의 모든 문장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여기에서도 네 가지 기준을 설정하여 전형적인 경전 해석학의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설법의 인연에 따른 해석이며, 그 둘은 듣는 이의 근기와 기호에 따른 해석이고, 다음은 불타의 입지가 법신(法身)의 본래불인가 아니면 화신불(化身佛)인가 등에 따른 차별적 해석이며, 마지막은 관심법 등 신행방법의 차이에 따른 해석이다.
삼대부의 마지막인 <마하지관>은 천태종의 실천적 관심법을 체계화한 저서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선정법은 천태 이전부터 전해온 여러 경전들의 내용을 모으고 정리한 것이어서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지의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천태의 교상판석
중국에서의 교판사상의 기원을 찾아본다면 동진시대의 라집(羅什)과 보리유지(菩提流支)의 일음교설(一音敎說)이 있었고 라집의 수많은 문하 중에서도 특히 도생(道生)의 사종법륜설(四宗法輪說)과 승예(僧叡)의 사교설(四敎說) 등이 있었다. 육조시대에 들어오면서 동진시대에 행해지던 교판사상이 점차 발달하여 ‘남삼북칠(南三北七)’의 교판이 형성되었다. 먼저 남방 삼가(三家)의 교판설을 살펴보면 이들은 불교를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로 나누었다. 돈교에 <화엄경>을 배대시켰으며 점교는 유상교(有相敎; 아함), 무상교(無相敎; 반야), 억양교(抑揚敎; 유마), 동귀교(同歸敎; 법화), 상주교(常住敎; 열반)로 나누었다. 북방 칠가(七家)의 교판설 가운데 광통(光統)과 혜광(慧光)의 사종판(四宗判)에서는 불교를 인연종(因緣宗; 비담), 가명종(假名宗; 戒論), 광상종(대품삼론), 상종(常宗; 열반, 화엄)으로 나누었다. 이 사종판은 후에 오시팔교(五時八敎)설 가운데 화의사교(化儀四敎)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천태대사 지의는 <법화현의>에서 ‘남삼북칠’이라 하여 이전에 정한 대표적인 교판 10 가지를 열거하여 전부 비판하고 자신의 교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천태의 교판은 ‘남삼북칠’의 교판의 영향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며 종래의 교판을 종합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시(五時)와 화의사교는 비밀교를 제외하고 대부분 명칭이 이전의 교판 가운데 있고 지의는 그것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의는 불교의 모든 경교(經敎)를 불타가 설법한 차례와 순서에 따라 다섯 단계 즉 오시(五時)로 배열하였다. 여기에 설법의 방법과 형식에 따라 분류한 화의사교(化儀四敎)와 불타의 법의 내용을 일체교리를 분류한 화법사교(化法四敎)의 팔교(八敎)를 결부시켜 ‘오시팔교(五時八敎)’로 지칭되는 교상판석을 완성시켰다.
오시란 화엄시(華嚴時), 아함시(阿含時), 방등시(方等部), 반야시(般若時),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로 일체의 경전을 설한 시기에 따라 분류하고 통일한 것이다. 화엄시는 불타가 <화엄경>을 설한 것을 말하고 그 시기는 성도 후 21일간이다. <화엄경>은 불타가 직접 깨달은 법을 조금도 수식을 가하지 않고 순수한 형태로 직접 설한 것이다. 아함시는 불타가 장아함, 중아함, 증일아함, 잡아함 등의 <아함경>을 <화엄경>을 설한 직후 12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한다. 최초의 설법장소가 녹야원이었으므로 녹야시라고도 한다.
<아함경>은 이해력이 가장 낮은 사람을 위한 경전으로 간주되며 불타 최초의 설법에 해당한다. 방등시는 불타가 <유마경> <능가경> 등의 여러 방등(方等)경전을 아함 이후 8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한다. 방등경은 소승의 사고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엄하게 나무라면서 대승으로 이끌어간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소승불교를 배척하고 대승불교를 찬탄했으며 소승을 부끄럽게 여기고 대승을 흠모한 것이다. 반야시는 불타가 각종의 <반야경>을 방등 후 22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空)의 근본진리를 해명함으로써 소승을 대승으로 길들인 것이 된다. 법화열반시는 불타가 <법화경>과 <열반경>을 반야 후 8년 동안 설하는 것을 말한다. <법화경>은 통일적인 진리 내지는 세계를 설명하고 있으며, <열반경>은 불타가 입멸할 즈음에 하루 밤낮을 설했던 것으로 내용적으로 <법화경>과 동등한 위치를 갖는다.
오시를 통(通)과 별(別)로 구분해서 보았는데, 통오시란 오시는 시간상 구별이 아니라 설명내용의 분류이며 오시 상호간에 오시의 설법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별오시란 시간상의 차제를 분류한 것이다. 팔교는 화의사교와 화법사교이다. 화의사교는 설법의 방법과 형식에 따라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로 분류한 것이고 화법사교는 불타의 법의 내용으로 일체 교리를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로 분류한 것이다.
화의사교를 살펴보면 돈교는 직돈(直頓)의 의미로 점진, 유인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단번에 대승의 심오한 법을 설하는 것을 말하며 화엄시에 해당한다. 점교는 점차의 의미로서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점진, 유인하는 것을 말한다. 소승으로부터 대승에 걸친 설법이 포함되며 아함, 방등, 반야시에 해당한다. 비밀교는 비밀부정교의 약칭이며 듣는 사람이 서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한 채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으로 모든 경전에 지칭된다. 부정교는 현로부정교(顯露不定敎)의 약칭이며 듣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의미가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소승과 대승의 모든 경전에 대하여 지칭할 수 있다.
화법사교는 지의의 독창적인 인식으로 지의의 불교관과 사상적 입장이 표출되어 있다. 장교는 경, 율, 론 삼장교(三藏敎)의 의미로서 소승불교를 가리킨다. 불교교리의 초보적인 단계로 특히 공(空)을 파악하는 방법에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상으로는 자기 및 세계를 요소로 분석하여 진정한 존재물은 이 요소뿐이며 이것을 법체(法體)라 하고 삼세(三世)에 항존하기 때문에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를 주장했다. 바로 사물을 요소적으로 분석해감으로써 결과적으로 공무(空無)를 주장하였으므로 절공관(折空觀)이라고 평하게 되었다. 또 공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정체했다고 하여 편공(偏空), 단공(但空), 단공(單空)이라든가 허무공견(虛無空見)이라고 비판받았으며 장교의 공관이나 입장은 진리로 인도하는 방법이 졸렬하다고 하여 졸도관(拙度觀)이라고도 지칭된다.
통교는 공통의 교법이라는 뜻으로, 앞의 장교에도 통하고 뒤의 별교, 원교에도 통하며 또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에 공통되는 교리이다. 즉 대승과 소승에 공통되는 교리이다. 장교가 사물의 생멸을 분석적으로 관찰하는데 비해 통교는 사물 그대로에 합치하여 전체적으로 공이라고 본다. 바꿔 말하면 사물의 당체(當體) 그대로 공이라고 하여 당체즉공(當體卽空)의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체공관(體空觀) 또는 즉공관(卽空觀)이라고 불린다. 생멸에 관해서는 생(生)을 고집하지도 멸(滅)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생과 멸을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무생무멸(無生無滅)이며 간략하게 무생관(無生觀)이라 지칭된다. 장교의 졸도관에 대하여 이것은 교도관(巧度觀)이라고 지칭된다. 대승의 경전 가운데 특히 <반야경>이 통교를 대표한다.
별교는 앞의 장교와 통교, 뒤의 원교와도 구별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다. 오로지 보살만을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서 이 점이 이승(二乘)과 같지 않으며 대승에서 설한 특별한 가르침이다. 교리로서는 공(空)으로부터 가(假)로 나아가며 현실의 한량없는 모습에 대한 자유자재의 대응을 설한다. 그리하여 다시 중(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별교에 있어서 공(空), 가(假), 중(中)은 점차적이고 단계를 낮춘 것으로서 원융상즉에까지 이루지 못한다. 중(中)은 공(空), 가(假)에 대해 특별한 것이고 목적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중(但中)이라고 평해진다. 이러한 점에서도 별교라고 지칭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전으로 <화엄경>을 들 수 있다.
원교는 원유, 원만한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진리 내지 세계를 총합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공가중(空假中)에 대하여 말하면 별교처럼 차제의 삼관(三觀)이 아니고 원융상즉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이다. 공가중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참으로 적당함을 얻어서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진(眞)이 되는 등, 여러 가지 사물이 본래 지녀야할 바를 얻어서 무작(無作),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원교에 가장 적합한 경전으로 <법화경>이 거론된다.
이상에서 천태의 교판론인 오시팔교(五時八敎)설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대의 문헌고증에 의할 때 천태의 오시의 배열은 사실과 다르며, 오시팔교에 대한 역사성도 의문시된다. 그러나 오시팔교설은 천태대사의 불교관을 표명한 것으로 천태교학을 체계화하고 그것을 불타의 설법(說法)과 설시(說時)에 의거한 것으로 보면 그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
천태의 지관법문
천태사상은 크게 교상문(敎相門)과 관심문(觀心門)으로 나누어진다. 교상문은 이론적인 측면으로써 교학적으로 사상을 체계화한 것으로 ‘오시팔교(五時八敎)’가 대표적인 예이다. 관심문은 수행적인 측면으로 실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천태지의의 실천론은 지관(止觀)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지관은 지의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말로써 지(止)는 범어 samatha로 바깥 경계를 쫓아 일어나는 모든 잡념과 망상을 그치고 마음을 고요히 지니는 방법으로 곧 적정(寂靜)을 뜻한다. 관(觀)은 범어 vipasyana로 어떤 대상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지관이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 가운데 정(定)에 속하는 정도이지만 지의에게 있어서 지관은 인도에서 의미하던 것을 넘어서 보다 넓고 깊은 차원을 나타낸다. 그에게 지관은 보다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선정(禪定)적인 면과 선혜(禪慧)적인 면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지관은 크게 나눠서 점차(漸次)지관, 부정(不定)지관, 원돈(圓頓)지관의 세 가지가 있다. <마하지관(摩訶止觀)>에 의하면 이 세 가지 지관은 천태지의가 남악 혜사(慧思)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라고 한다. 점차지관은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점차적으로 지관을 실수(實修)하는 것을 말하고, 부정지관은 때와 경우에 따라 심천(深淺), 전후(前後)가 서로 호응되는 것을 말하고, 원돈지관은 전체적, 종합적으로 곧바로 실상의 구극을 체득하고 체현하는 것을 말한다. 천태지의의 저서 가운데 점차지관이 중심인 것은 <차제법문(次第法門)>이며, 부정지관이 중심인 것은 <육묘법문(六妙法門)>이며, 원돈지관이 중심인 것은 <마하지관>이다.
오시팔교의 화법사교에 의하면 장교에서는 석공관(析空觀)을, 통교에서는 체공관(體空觀)을, 별교에서는 공가중(空假中)에 대한 차제삼관(次第三觀)을, 원교에서는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을 닦는다. <마하지관>에서 말하는 원돈지관은 이 원교의 지관법으로 천태실천론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마하지관>은 천태실천론의 궁극적인 이상인 원돈지관을 오략십광(五略十廣)의 조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략(五略)은 발대심(發大心), 수대행(修大行), 감대과(感大果), 렬대망(裂大網), 귀대처(歸大處)로 구성되어 있다. 발대심(發大心)에서는 열 가지의 틀린 생각을 제시하면서 사성제나 사홍서원 혹은 육즉(六卽) 등의 교설을 매개로 삼아 생각을 바르게 하며,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의 지관의 구극을 향하여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수대행(修大行)에서는 신구의(身口意) 세 가지에 관하여 사종삼매(四種三昧)의 지관 실천법을 설명한다. 감대과(感大果)에서는 지관의 성과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 렬대망(裂大網)에서는 지관의 달성에 의해 세간의 미혹이라는 그물이 파열되는 것을 말하고, 귀대처(歸大處)에서는 지관이 귀착해야 할 곳을 밝힌다. 오략(五略)을 확대해서 설명한 것이 십광(十廣)으로 대의(大義), 석명(釋名), 체상(體相), 섭법(攝法), 편원(偏圓), 방편(方便), 정수(正修), 과보(果報), 기교(起敎), 지귀(旨歸)로 구성된다. 대의(大義)에서는 오략(五略)의 대의를 기술하고, 석명(釋名)에서는 상대지관관, 절대지관, 천태가 의미하는 지(止)의 세 가지 뜻과 관(觀)의 세 가지 뜻을 밝힌다. 체상(體相)에서는 지관의 체와 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섭법(攝法)에서는 리혹지행위교(理惑智幸位敎)의 여섯 가지 법에 의해서 일체법을 포섭하고 다시 그 여섯 가지 법이 상호포섭되는 것을 나타낸다. 편원(偏圓)에서는 대소(大小), 반만(半滿), 편원(偏圓), 점돈(漸頓), 권실(權實)에 대해서 상술한다. 방편(方便)에서는 25방편을 설하고, 정수(正修)에서는 지관의 대상인 십경(十境)과 지관의 방법인 십승관법(十乘觀法)에 대해서 기술한다. 과보(果報)에서는 관법을 성취해서 얻는 불과(佛果)에 대해서, 기교(起敎)에서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에 대해, 지귀(旨歸)에서는 불과(佛果)를 성취해서 모두가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 화엄사상(華嚴思想)
<화엄경>은 화엄부의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준말이며, 범어로는 Mahavaiplya-buddha-ganda-vyuha-sutra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大)는 소(小)에 대한 상대적인 입장이 아니라 절대적인 대(大), 상대가 끊어진 극대를 말한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절대의 대(大)라고 할 수 있다. 방광(方廣)이란 넓다는 뜻인데 특히 공간적으로 넓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방광(大方廣)’이란 크고 넓다는 뜻으로 붓다를 수식하는 형용사이다. 그러므로 대방광불이란 한량없이 크고 넓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붓다를 말한다. 그 붓다를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화엄(華嚴)이란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이다. 화엄을 범어로는 Ganda-vyuha라고 하는데 Ganda란 잡화(雜華)라는 뜻이고, vyuha란 엄식(嚴飾)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화엄이란 잡화엄식이라는 말 그대로 갖가지의 꽃을 가지고 장엄한다는 뜻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대방광불화엄경>은 광대무변하게 우주에 편만해 계시는 붓다의 만덕(萬德)과 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진리의 세계를 설하고 있는 경이라고 할 수 있다.
화엄부 경전 자체 내에서도 설처(說處)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리도량이며, 설한 시기도 성도 직후로 되어 있다. <팔십화엄>에는 시성정걱(始成正覺)이라 하고, <육십화엄>에도 시성정각이며 세친이 지은 <십지경론>의 저본이 된 <십지경>에는 제이칠일(第二七日)이라고 하였다. 또 천태교판에서도 <화엄경>을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최초 삼칠일 즉 21일 동안 말씀하신 경이라고 하고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경전의 한역본으로는 60권, 80권, 40권으로 된 <육십화엄>, <팔십화엄>, <사십화엄> 등 3부 <화엄경>이 있다. <육십화엄>은 동진시대에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에 의해 418에서 420년에 번역되었고 교정을 거쳐 421년에 역출되었다. 이를 진본(晋本)이라 하고 또는 화엄대경 중 먼저 번역되었다고 하여 구경(舊經)이라고도 부른다. <팔십화엄>은 대주(大周)시대 실차난타(實叉難陀)에 의해 역출되었으며 이를 주본(周本) 또는 신경(新經)이라 한다. <사십화엄>은 당의 반야(般若)가 798년에 역출하였으며 입법계품의 별역으로 <입불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入不可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 본래의 이름이다.
그러나 <육십화엄>이나 <팔십화엄>은 처음부터 대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화엄경>을 구성하고 있는 각 품이 별행경으로 먼저 성립되어 있었으며 그 지분경을 모아 어떤 의도하에 조직적으로 구성한 것이 웅대한 화엄대경인 것이다.
법계연기(法界緣起)
중국 화엄종에서는 화엄을 별교일승원교(別敎一乘圓敎)이며 원명구덕종(圓明具德宗)으로 보고 있으며, 그 화엄세계는 법계연기의 세계라고 보고 있다. <화엄경>의 불보살세계를 ‘인과연기 이실법계(因果緣起 理實法界)’의 법계연기로 나타낸 것이 화엄종의 종취라고 화엄종의 대성자인 법장은 밝히고 있다. 이러한 법계연기설은 청량을 거쳐 규봉종밀대에 와서 사종법계설로 확정된다.
종밀은 <주법계관문>에서 청량징관의 <화엄경소>를 인용하면서 사종법계의 의의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주법계관문>은 두순이 지었다고 하는 <법계관문>을 종밀이 주석한 것이다. <법계관문>에서는 진공관, 이사무애관, 주변함용관의 법계삼관을 설하고 있다. 먼저 진공관(眞空觀)은 모든 법은 실성이 없어 유(有)와 공(空)의 두 가지 집착을 떠난 진공인 줄을 관함이다. 다음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은 차별있는 사법(事法)과 평등한 이법(理法)은 분명하게 존재하면서도 서로 융합하는 것임을 관함이다. 끝으로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은 우주간의 온갖 사물이 서로서로 일체를 함용하는 것으로 관함이다.
지엄은 법계연기를 보리정분의 정문(淨門)연기와 범부염법의 염문(染門)연기로 나누고 있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법계연기를 과분불가설(果分不可說)과 인불가설(因分不可說)로 나누고 그것이 십불자경계(十佛自境界)와 보현경계(普賢境界)라고 하고 있다. 종밀에 이르러서는 사종법계설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법계란 Dharma-dhatu의 번역어로 연기현전하는 우주만유이다. 이 법계의 체는 일심(一心)인데 원명구덕의 일심이며, 총해만유(總該萬有)의 일심이다. 따라서 법계란 일심체상에 연기하는 만유이다. 그래서 우주만유의 낱낱 법이 자성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을 지켜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을 법계라 한다. 이 법계를 설명하는데 사(事)와 이(理)의 구별을 세워 논한 것이 사종법계설인 것이다.
사종법계는 사(事)법계, 이(理)법계,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이다. 이 네 가지 법계설은 모든 우주는 일심에 통괄되고 있으며, 이 통괄되는 것을 현상과 본체의 양면으로 관찰하면 네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화엄의 무진법계는 사사무애법계를 말한다. 사(事)법계는 모든 차별있는 세계를 가리킨다. 사(事)란 현상, 사물, 사건 등을 계(界)란 분(分)을 뜻한다. 낱낱 사물은 인연에 의해 화합된 것이므로 제각기의 한계를 가지고 구별되는 것이다. 개체와 개체는 공통성이 없이 차별적인 면만을 본 것이다. 이(理)법계는 우주의 본체로서 평등한 세계르 말한다. 이(理)는 원리, 본체, 법칙, 보편적 진리 등을, 계(界)란 성(性)을 가리킨다. 궁극적 이(理)는 총체적 일심진여이며, 공(空)이며 여여(如如)이다. 우주의 사물은 그 본체가 모두 진여라는 것으로 개체와 개체의 동일성, 공통성을 본 것이다.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는 이와 사, 즉 본체계와 현상계가 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걸림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법장은 <금사자장>에서 금사자의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금이라는 금속은 이(理)의 미분화된 본체를 상징하며, 사자라는 가공품은 분화된 사(事) 혹은 현상인데 사자가 금에 의존하여 표상되고 있음이 바로 이사무애의 경계라는 것이다.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는 개체와 개체가 자재융섭하여 현상계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제법은 서로서로 용납하여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어 원융무애한 무진연기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화엄의 법계연기이다. 이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는 이사무애(理事無碍)를 바탕으로 하여 의지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한 직접적인 깨달음의 세계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과 실천행을 통해 현현하는 세계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 늘 그렇게 있는 세계이나 이해나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현실화해야 하는 세계이다.
십현연기(十玄緣起)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법계연기를 체계적으로 관찰한 구체적 설명이 십현연기와 육상원융(六相圓融)이다. 십현연기는 십현문(十玄門)이라고도 한다. 십(十)은 원만구족의 만수(滿數)이고, 현(玄)은 현묘, 문은 사사무애법문이다. 10가지 심오한 신비의 무애세계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십현문이 설해지고 있는 중국 화엄전적으로는 지엄의 <화엄일승십현문>, <수현기>와 법장의 <화엄오교장>, <화엄경문의강목>, <금사자장>, <탐현기>와 징관의 <화엄경소>, <현담>, <화엄약책> 그리고 종밀의 <원각경대소> 등이 대표적이다.
법장은 <화엄오교장>에서는 스승인 지엄의 십현문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나 <탐현기>에서는 그것을 약간 수정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탐현기> 이후에 보이는 십현설을 신십현(新十玄)이라 하고 그 이전의 십현설을 고십현(古十玄)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신십현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신십현은 동시구족상응문, 광협자재무애문, 일다상용부동문, 제법상즉자재문, 은밀현료구성문, 미세상용안립문, 인다라망경계문, 탁사현법상해문, 십세격법이성문, 주반원명구덕문이다. 이 가운데 광협자재무애문과 주반원명구덕문은 고십현에서의 제장순잡구덕문과 유심회전선성문을 고친 것이며, 은밀현료구성문은 고십현의 비밀은현구성문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은 십현연기의 총설이다. 동시는 선후가 없음을 밝히는 것이고, 구족은 모두 섭수하여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일체 제법이 열 가지 뜻을 동시에 구족해서 상응하여 원만히 조화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열 가지 뜻이란 교의(敎義), 이사(理事), 경지(境地), 행위(行爲), 인과(因果), 의정(依正), 체용(體用), 인법(人法), 역순(逆順), 감응(感應)이다.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은 연기 제법에 각각 광협이 있으면서도 무애하다는 것이다. 이는 간격이 멀든 가깝든 간에 모든 존재들이 아무런 장애없다는 뜻이다. 광(廣)은 밖이 없다는 무외(無外)의 뜻으로 넓음이란 한계를 갖고 있지 않아 밖이 없는 것이다. 협(狹)은 안이 없다는 무내(無內)의 뜻으로 가장 좁음이란 그 자체 안에 공간을 갖고 있지 않아 안이 없다는 것이다. 큰 것과 작은 것에 자성이 없기 때문에 큰 것과 좁은 것이 서로가 서로를 포섭하는 것이다. 좁은 것과 넓은 것은 하나와 전체로 말할 수 있으므로 서로 자유롭게 구애됨이 없이 서로 교환될 수 있다. 이는 고십현에서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이다. 순수한 것과 잡된 것이 본분위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일념에 구족하여 원융무애하다는 의미이다. 순수한 것과 잡된 것이 섞여 있으니 순수한 것은 순수한 대로 잡된 것은 잡된 대로 제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은 하나와 전체가 서로 용납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는 전체에 들고 전체는 하나에 녹아 있어 무애자재하다. 그래서 하나 가운데 전체이고 전체 속의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각기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본래의 면목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와 전체가 혼란되지 않는 상입(相入)을 말한다. 상입이란 이것과 저것이 서로 용납하고 받아들여 걸림없이 융합하는 것이다. 하나란 하나라는 자성을 가진 확정적인 하나가 아니라 연기한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 가운데 전체이고 전체 속의 하나이지만, 하나는 하나로서 전체가 아니고 전체는 전체로서 하나가 아니다. 하나는 전체가 아니고 전체도 하나가 아니다. 각각 제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본래의 면목을 보유하고 있다.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은 모든 요소들이 서로 동일시되는 것을 말한다. 궁극적인 차별로부터의 자유이며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타자와 동일시함으로써 종합적인 동일화가 이루어진다. 서로 비춰보고 서로 동일시한 결과 함께 조화하여 움직인다. 상입(相入)이 이것과 저것이 서로 걸림없이 융합하는 묘용(妙用)의 측면이라면, 상즉(相卽)은 서로 자기를 폐(廢)하여 다른 것과 같아지는 체(體)의 측면이다. 두 가지가 하나로 융합하는 즉(卽)은 물과 물결처럼 한 물건의 체 그대로가 다른 물건인 뜻으로 말하는 ‘즉’이다.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은 고십현에서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이다. ‘비밀은’과 ‘현’으로 된 것을 ‘은밀’과 ‘현료’로 정리한 것이다. 비밀 즉 숨은 것과 현료 즉 드러난 것이 함께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금사자장>에서는 우리가 금사자를 접할 때 사자로서 사자를 볼 때는 사자뿐이고 금은 없으며, 금을 볼 때는 단지 금뿐이고 사자는 없으나 금사자는 금과 사자를 합하여 성립된 것이라고 한다. <화엄현담>에서는 반달의 예를 들고 있다. 반달은 반은 빛나고 반은 어둡다. 그러나 감춰진 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을 지구에서 보면 큰 공만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 자체가 늘어났다 줄어들지 않는다. 그 반달은 밝음과 어둠이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밞음 아래에 어둠이 있고 어둠 아래에 밝음이 있다. 하나로 많은 것을 섭수하면 하나는 드러나고 많은 것은 가리워진다. 많은 것이 하나를 거두어들이면 많은 것은 드러나나 하나는 가리워진다. 한 터럭이 법계를 섭수하면 곧 나머지 터럭의 법계는 모두 가리워지고 나머지 낱낱 터럭의 가리워지고 드러남도 또한 그러하다. 한 편은 보이고 한 편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둘다 갖추어져 있어서 하나가 성립되면 다른 쪽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은 미세한 것의 신비를 말하는 것이다. 미세란 인간의 이해가 닿는 곳을 넘어서 고도로 작고 정밀하다는 의미이다. 하나가 능히 많은 것을 함용하므로 상용(相容)이라고 하고, 하나와 많은 것이 섞이지 않으므로 안립(安立)이라고 한다. 무한세계가 작은 먼지나 티끌 속에 존재하며, 이들 세계의 일체 먼지 속에 또다시 무한세계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일념 중에 모든 것을 구족하여 가지런히 나타나 명료하지 않음이 없음을 겨자씨를 담은 병에 비유하기도 하고 화살이 빽빽히 꽂친 화살통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은 인다라망의 비유에 의해 상호 반영의 이론을 말하는 것이다. 제석천 궁전에 걸린 보배망의 각 보배구슬마다 서로 다른 일체 구슬이 비쳐 무진한 것처럼 법계의 일체도 중중무진(重重無盡)하게 연기상유(緣起相由)하여 무애자재하다.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은 모든 연기된 존재가 그대로 법계법문임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당체가 그대로 연기 현전한 것이므로 두두물물이 다 비로자나 진법신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비유는 곧바로 법의 상징이고, 법이 비유이고 비유가 곧 법이다.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은 십세가 시간에 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상즉, 상입하여 하나의 총합을 이루지만 그러나 전후 장단의 구별이 뚜렷하여 질서가 정연한 것을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각각 삼세가 있어 구세(九世)가 되고 그 구세는 한생각 일념에 포섭되므로 십세(十世)이다. 또 일념을 열면 구세가 되므로 합하여 십세가 된다. 그래서 일념이 십세무량겁이고 무량겁이 일념이지만 십세는 낱낱이 서로 혼잡함이 없이 완연히 구별되어 있는 것이다.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은 주체와 객체가 조화롭게 함께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 어떤 존재도 홀로 생겨나는 것은 없다. 우주법계에는 어느 한 사물도 홀로 생겨나 존재하는 것이 없으며 서로 주인이 되고 객이 되어 모든 덕을 원만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십현의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을 바꾼 것이다.
육상원융(六相圓融)
십현연기와 더불어 육상원융 또한 화엄무진연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또다른 측면으로 중시되고 있다. 육상이란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을 말한다. 이는 총별, 동이, 성괴라는 세 쌍의 대립되는 개념이나 모습이 서로 원융무애한 관계에 놓여 있어 하나가 다른 다섯을 포함하면서도 또한 여섯이 그 나름의 모습을 잃지 않음으로써 법계연기가 성립한다는 설이다.
모든 존재는 다 총상, 별상, 동상, 이상, 괴상, 성상의 육상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이 육상은 서로 다른 상을 방해하지 않고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이 일체가 되어 원만하게 융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기로써 이루어진 모든 존재는 반드시 여러 가지 연(緣)이 모여 성립된다. 그러므로 거기에 성립된 총상(總相)은 부분을 총괄하여 전체를 만들고 있다. 또 별상(別相)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과 부분을 말하는데 이것이 총상에 의지하여 원만하고 완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총상이 없으면 별상이 없고 따라서 총상 밖에 별상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 동상(同相)이란 별상의 하나하나가 서로 조화되어 모순되지 않고 성립되는 힘을 균등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상(異相)이란 별상이 서로 혼동되지 않고 있으면서 제각기 상을 잃지 않고 조화되어 있는 모양이다. 성상(成相)이란 별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총상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을 부분이 다만 집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유기적인 관계성을 가지고 모여서 하나의 전체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괴상(壞相)은 별상이 총상을 성립시키면서도 별상 제각기의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서 총상의 모양으로 혼융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육상을 집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가령 총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을 총괄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별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그 자체를 이른다. 동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서로 힘을 합쳐 집을 조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이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은 각각 가로와 세로로 되어 있어 다른 유형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또 성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각각 인연이 되어 집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괴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집을 조립하여 성립시키고 있으면서도 각각 자기의 본 모양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육상의 관계를 체상용(體相用)의 관계로 나누어 보면 총상과 별상은 연기의 체(體)라고 보고, 동상과 이상은 연기의 상(相)이라고 하고, 성상과 괴상은 연기의 용(用)이라고 할 수 있다.
5) 정토사상(淨土思想)
인도에서 비롯된 대승불교는 그대로 중앙 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착하였으며, 그 가운데서 널리 신앙되어진 사상 조류의 하나가 바로 정토사상이다. 한국불교에서도 원효 이래로 신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신앙적으로나 교학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밀교와 선종이 급진적인 발전을 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정토사상은 후퇴하게 되었고 점차 주술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토사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대체로 정토사상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 드러난 것은 대승불교가 흥기한 시대라고 보고 있다. 이는 정토계 경전군이 편찬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토사상, 정토계 경전군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관한 사상이나 경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정토(淨土)라고 하는 용어는 대승불교 일반에서 쓰이는 술어이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한정해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정토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불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어느 새 아미타불의 극락국토만을 정토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대승경전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왕생극락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는 곳도 있다.
정토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극락’과 ‘아미타불’ ‘본원(本願)’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정토신앙의 요체이다. 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바로 부처의 본질인 중생을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지혜와 자비가 아미타불의 본원을 통해서 중생에게 회향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말이다. 범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된다. 즉 Namo-Amitabha은 Namas + a + mita + abha과 Namas + a + mita + ayus의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Namas는 귀의한다는 말이며, a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이다. mita는 헤아린다는 말이다. abha는 광명이며 ayus는 생명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 내지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에 귀의합니다’라는 말이다. 무한 광명(無限光明)에 귀의하고 무한 생명(無限生命)에 귀의한다고 하는 말은 법에 귀의하는 것이며,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총동원하여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것을 염불(念佛)이라고 한다. <무량수경>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불상념(佛佛相念)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불(佛)과 불(佛)이 서로 염한다’는 것은 부처가 염불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타삼매에 들어 <무량수경>을 설하셨으며 무한 광명과 하나가 되고 무한 생명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진리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왕생극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욕망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으며, 순수 가치만이 존재하며 순수 신앙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토사상으로 불교를 볼 때에 불교는 염불이며, 나무아미타불만이 불교인 것이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서 가장 많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경전은 ‘정토삼부경’이다. 정토삼부경이란 정토 경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경전을 통틀어 말한 것으로 강승개(康僧鎧)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 강량야사(畺良耶舍)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1권, 구마라집 역으로 전해지는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1권을 말한다.
<무량수경>에는 옛날부터 오존칠결(五存七缺)이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모두 열 두 가지의 번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로 열두 가지로 번역되었는지 의심스럽다. 현재 남아있는 다섯 가지의 번역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경(佛說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2권은 일반적으로 <대아미타경>이라고 불려진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했다고 한다.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4권은 <평등각경>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하였다고 하며 위나라의 백연이 번역했다는 설도 있으며 서진의 축법호가 번역했다는 설도 있다. <불설무량수경> 2권은 <대경(大經)> 혹은 <위역(魏譯)>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중국, 한국, 일본에 가장 많이 유포된 경전이며 일반적으로 무량수경이라고 할 때에는 이 경전을 가리킨다. 위나라의 강승개가 252년에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 2권은 당나라의 보리유지가 706년에서 713년에 걸쳐 번역하였다. <대무량수장엄경(大無量壽莊嚴經)> 3권은 송나라의 법현이 991년에 번역하였다.
<무량수경>은 정토사상의 모든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유포된 위나라의 강승개가 번역한 <무량수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량수경>은 상하의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상권은 여래정토(如來淨土)의 인과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중생왕생(衆生往生) 즉 중생들이 극락에 왕생하는 인과를 설하고 있다. 여래정토의 원인은 48원(願)이며, 그 결과는 극락정토이다. 중생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원인은 염불이며 염불의 결과는 왕생극락이다.
<관무량수경>은 흔히 ‘왕사성의 비극’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인도에서 전래된 경전들은 거의 두 가지 이상의 다른 번역이 있지만 이 <관무량수경>은 한 가지 번역밖에 없다. 물론 범어로 된 원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관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은 본래의 이름은 관극락국토무량수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觀極樂國土無量壽佛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인데 이것을 줄여서 <관무량수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경의 이름의 내용은 극락국토의 장엄과 그 나라에 계시는 무량수불과 좌우에서 부처님을 보좌하고 계시는 관음, 세지의 양대 보살을 관하는 경이라는 것이다.
관(觀)한다는 말에는 관견(觀見)과 관지(觀知)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관견이란 극락정토의 아름답고도 불가사의한 장엄을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을 말하며, 관지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는 절대 신심을 말한다. 이 경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악인을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란 진실을 구하면서도 진실과 거리가 멀고 선을 가까이하려 하지만 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과 공간에서 죄업이 막중한 범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특징은 여인성불(女人成佛)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불설아미타경>은 5세기 초에 구마라집이 번역하였으며, 그 밖에도 현장이 650년에 번역한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攝受經)> 1권이 있다. <아미타경>은 극락정토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공덕장엄(功德莊嚴)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공덕장엄은 국토, 의복, 음식 그리고 육체나 정신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덕장엄을 널리 설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중생의 업인 작은 선근으로도 왕생할 수 없다고 구정하고 있다.
다만 하루 내지 이레동안 염불한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생이 이것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동서남북과 상하의 육방(六方)의 항하사제불(恒河沙諸佛)이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면서 증명하고 있으며 경계하고 있다. 왕생극락을 의심하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되며, 왕생극락을 믿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은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미타경>은 구회일처(俱會一處)의 사상을 가지고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마침내는 극락정토에서 모두 함께 만남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6) 선사상(禪思想)
일반적으로 알려진 선(禪)이란 말은 고대 인도의 사유 명상법인 요가에서 비롯된 것인데, 붓다의 깊은 사유와 정각을 통해 불교의 실천 수행인 선정(禪定)으로 체계화된 말이다. 요가의 기원은 기원전 3000년 경 인더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된 고대 인더스 문명의 유적에서 발견된 요가 수행자의 모습이 새겨진 인장(印章)이나 성자의 흉상 등의 발굴로 입증된 것처럼 기원전 1500년 경 아리아인들이 인도를 침입하기 이전에 이미 고대 인도의 원주민들에 의해 실행된 요가 명상의 사유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요가는 약 5000년 내지 그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가란 각자의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통일시키는 수행방법을 말한다. 요가(yoga)란 말은 ‘연결시키다’라는 의미로서 yji(연결하다)라는 어근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가라는 말이 사유하다,명상하다라는 의미로 문헌상에 최초로 기록되고 있는 곳은 기원전 6세기경에 성립된 <카타우파니샤드>이다. 여기서는 ‘명상사유를 통하여 다섯 가지 감각을 제어하고, 산란된 마음을 정지시키는 것이며, 이와 같이 모든 감각기관이 정지되어 움직이지 않고 잘 유지해 가는 것을 요가라고 한다’고 요가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禪)이라는 말은 인도 원어를 한어로 음사한 것이므로 한자 자체에는 본래의 의미가 없다. 한자의 선에는 ㄱ)땅을 깨끗하게 하여 천지의 신을 제지낸다, 하늘을 제지낸다, 산천을 제지낸다, ㄴ)토지를 개척한다, ㄷ)천위(天位)를 양도해 준다, ㄹ)조용함 등의 의미가 있다. 이 의미들 가운데 인도 원어에 해당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조용함 뿐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의 형태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중국선에는 한 스승에서 한 제자에게로 직접 불법(佛法)을 전수하는 ‘사자상전(師資相傳)’의 수수(授受) 형태가 보여지는데 이것은 인도불교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다.
선이란 원래 범어의 dhyana, 팔리어의 jhana의 음사이다. 원어는 마음을 통일하는 것, 마음을 특정한 것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역해서 정려(靜慮), 의미를 첨가해서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유가(瑜伽; 요가), 삼매(三昧) 등과 함께 고래로 인도에서 중시된 명상의 실천을 나타내는 말의 하나이다.
중국선의 전개
중국에서의 선의 역사도 이와 같은 선의 본질적 성격을 고려하면 불교가 처음 전래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후한대의 안세고나 지루가참이 번역한 초기의 소승, 대승의 여러 경전 가운데는 직접 선 내지는 삼매의 실천을 선양한 곳이 몇 군데 보인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볼 때, 선은 불교가 처음 전래된 이후에 곧 중국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특히 선의 실천에 열심인 불교인 즉 선자(禪者)가 점차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불교가 전래하기 이전부터 선과 유사한 종교적 실천방법이 있었다. 예를 들면 <장자>에서 설한 진인(眞人)의 호흡법이나 이것에 영향을 받아 후에 태식법(胎息法)으로서 완성된 신선방술의 호흡법이 그것인데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얻어진 경지의 표현도 불교의 선의 경지의 그것과 대응하는 면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중국선이 노장사상이나 신선도와 종종 교섭하면서 전개되어가는 것은 오히려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양상을 가진 선의 실천은 선자들을 배출하면서 각지로 전해져 갔다. 그러나 북위시대가 되면 다시금 새로운 선이 중국에 전해지게 된다. 이것이 이후 중국선의 개창자가 되는 보리달마(菩提達摩)의 선이다. <낙양가람기>에 의하면 보리달마는 페르시아 출신이다. 중국으로 건너와 양녕사 구층탑의 금반(金盤)이 태양빛을 받아 빛나고 종소리가 바람을 머금고 울려퍼지는 것을 듣고 “나는 150살이 되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사원은 보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입으로 나무(南無)를 외우고 매일매일 합장했다고 한다. 또한 담림의 기록에 의하면 보리달마는 인도 국왕의 셋째 아들로서 대승의 도에 마음이 끌려서 출가하여 세상에서 뛰어난 덕을 갖추었으나 멀리 산과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건너 왔다고 한다. 보리달마의 출신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으며 건너온 경로에 대해서도 분명하지는 않지만 서역을 경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달마의 가르침은 이입사행(二入四行)으로 총괄되는 것으로 즉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으로 구별되는 행입(行入)이다.
먼저 이(理)에 들어가는 이입(理入)이란 마음을 편안히 하는 실천으로서 그것은 경전의 취지를 깨달아서 중생의 동일한 진성(眞性)을 깊이 믿고 벽관(壁觀)에 확고히 머물러서 차별, 상대의 입장을 떠나 진리와 일체가 되는 것이다. 다음에 행에 들어가는 행입(行入)에는 보원행, 수연행, 무소구행, 칭법행의 네 가지가 있다. 보원행(報寃行)이란 어떠한 괴로움이 닥쳐도 그것을 자기의 악업의 결과라고 생각하여 달게 받아 들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아무 소득도 없는 죄라고 호소하지 않는 것이다. 수연행(隨緣行)이란 고락, 득실은 모두 연에 의한 것이라고 관하여 마음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스스로 도에 따르는 실천이다.
무소구행(無所求行)이란 만유는 공이며, 현실의 세계는 편안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아무 것도 구하거나 원하지 않는 실천이다. 칭법행(稱法行)이란 본래 청정한 진리에 들어맞는 실천을 말하며, 직접적으로는 더러움이나 망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공관(空觀)에 입각해서 행해지는 육바라밀을 말한다. 이상에서 보리달마의 선은 명확히 공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또한 구체적, 현실적이라는 것, 그리고 벽관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보리달마의 선은 혜가(慧可)에게로 전승되었다. 혜가는 6년간 달마에게 배우고 일승을 깊이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선사상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확실한 것은 그에게서부터 능가종(楞伽宗)이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능가종은 <능가경>을 소의로 연구하며 그 정신을 추구하였는데 <속고승전>에는 달마가 이것을 혜가에게 전하고, 혜가가 처음으로 그 요지를 체득한 것으로 이후의 계보에 기재되어 있다.
후세의 전등설에 따르면 선종의 제3조는 승찬(僧璨)이다. 승찬의 사적은 현재 거의 알 수 없으며 <속고승전>에 혜가문하의 한 사람으로 ‘찬선사’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이 바로 그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설에는 사공산에 숨어서 좌선에 전념하고 12년간 그를 섬긴 도신에게 법을 전했다고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제4조 도신(道信)의 사적에 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12살이 지나자 서주 완공산에 들어가 두 스님에게서 10여년간 선을 배웠으며 601년 경에 출가하여 길주사에 머물렀다. 그 후 형산으로 향하는 도중 주위의 만류로 노산의 대림사에 10년간 머물렀으며 초대를 받아 쌍봉산에 들어가 문도 500명 이상의 대교단을 형성하였다. 저서에 <보살계본>, <입도안심요방편법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존하지 않는다. 도신의 사상적 입장은 명백하지 않다. 그러나 <능가사자기> 등에 의하면 그가 천태 지의와 마찬가지로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중시하고 그것을 통해서 불성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신의 선은 문하의 홍인(弘忍)에게 계승된다. 그는 황매현 출신으로 7세 때 도신에게 사사하고 마침내 그 법을 이었다. 수행시 낮에는 노역에 종사하고 밤에는 열심히 좌선했다고 한다. 황매현의 동쪽에 거주하면서 열심히 선을 알렸으므로 그의 선법을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동산법문의 사상적 내용을 분명히 알기는 어렵다.
홍인 이후 선종은 크게 북종(北宗)과 남종(南宗)의 두 파로 나뉜다. 이 가운데 처음에 우세했던 것은 북종선으로 숭산, 장안을 중심으로 북지(北地)에 널리 전해진 선계통이며 그 대표적 인물은 신수(神秀)이다.
신수는 젊어서 노장, 유학에 정통하고 652년 낙양의 천궁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50세 가까이 되어 홍인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6년간 사사했다. 홍인의 법을 이은 후 의봉(儀鳳)년간에 형주 옥천사의 승적에 속하여 그 근처에서 도문사를 열었으며 그의 주변에는 많은 수행자가 모였다고 한다. 701년에 측천무후의 부름을 받아 가마를 타고 어전에 들어갔으며 그 때 그는 가신(家臣)의 예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양경(兩京)의 주주(注主), 삼제(三帝)의 국사라고 불리운다. 저서에 <관심론> 1권, <화엄경소> 30권, <묘리원성관> 등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는 후대의 서적 인용 가운데서 그 일부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신수 다음 대까지는 보적(普寂)이나 의복(義福) 등의 활약으로 북종선이 융성했지만 그 후로는 점차로 쇠약해져서 주류의 자리를 완전히 남종선에게 양보하게 된다.
남종선의 시조는 혜능(慧能)이다. 혜능의 선조는 대대로 범양에 살았지만 아버지의 좌천으로 인하여 신주(新州)민이 되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남해로 이주했으며 집이 가난하여 땔나무를 팔아서 어머니와의 생활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이윽고 어느 날 마을의 손님 한 사람이 숙사로 돌아가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홍인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8개월간 방아지기로 생활하면서 법을 이었다. 이 때 혜능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라고 전한다. 그 후 676년에 <열반경>의 학자로서 이름난 인종(印宗)에게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이후 소주의 조계 보림사에 거주하면서 많은 선자를 키우고 선풍을 날렸다. 남종선은 도생(道生)에 의해서 시작되는 돈오(頓悟)사상의 전통 위에 서서 본래 자기의 청정성, 완전성의 철저한 자각을 지향하고 있다.
혜능의 문하 가운데서 남종선의 정통성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또한 그 입장을 분명히 한 이가 신회(神會)이다. 신회는 양양 출신으로 오경, 노장을 배운 후 출가하여 혜능의 만년에 그 평판을 듣고 문하가 되어 수년간 배웠다. 720년 칙명에 의해서 남양의 용흥사에 머물고 732년에는 융성을 자랑하는 북종에 대해서 종론(宗論)에 도전했다. 745년 경에는 낙양의 하택사에 들어가 크게 남종선을 선양했으나 753년 북종의 입장에 선 관리에 의해서 유배되어 불우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2년 후 안록산의 반란을 계기로 다시 낙양에 초대되어 국가정책의 협력을 통해서 양경(兩京)의 부흥에 공헌하고 숙종으로부터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신회의 만년은 그 자체가 북종의 몰락과 남종의 흥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혜능의 선을 계승한 것 가운데서 점차로 발전해간 것은 홍주종(洪州宗) 즉 남악 회양(懷讓), 마조 도일(道一)의 계통이다. 그 주된 이유의 하나는 마조 도일이 선사상의 혁신을 이룩하고 선을 중국에 토착화시켰기 때문이다. 도일은 한주 출신으로 속성은 마씨이다. 어려서 홍인의 법을 이운 지선의 제자인 처적(處寂)에게 배우고 구족계를 받았다. 이윽고 회양의 문하에 들어가 심인(心印)을 전해 받은 후 강서의 임천, 홍주 등에서 크게 선을 알렸다. 본격적인 선의 융성은 강서(江西)의 마조와 혜능의 문하의 청원 행사(行思)의 법을 호남(湖南)의 석두(石頭)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마조의 선은 80여 명의 제자들에 의해서 장안을 위시하여 각지로 전파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특히 백장 회해(懷海)가 유명하다.
회해는 선종 사상사에서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크게 공헌하였다. 첫째는 당시까지 대부분 율사에 속해 있던 선원을 독립시키고 대소승의 계율을 집약, 절충해서 교단의 규칙을 정한 것이다. 이것은 선종의 사회적 독립의 기초가 확고해진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마조의 선이 자유로운 생활의 절대긍정에 빠질 위험에서 구제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는 마조의 정신을 토대로 당시 이미 어느 정도 일상화되어 있던 승려의 노동을 명확히 긍정하여 ‘하루 노동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라는 사상을 확립한 것이다. 이것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선종사원의 경제적 자립을 지지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지만 동시에 출가자의 생산노동, 경제행위를 엄격히 부정하는 불교의 전통적인 노동관을 뒤엎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중국불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당말의 회창의 폐불사건은 이미 쇠퇴하고 있던 불교계를 사정없이 습격하였다. 그 때 파괴된 사원이 약 4만5천이며 환속된 승려는 26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사원을 의지처로 했던 불교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거의 멸망의 위기에 빠져들었지만 오직 선종만은 그렇지 않았다. 선종은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단숨에 상승기류를 타고 당말에서 오대에 걸쳐 눈부신 오가(五家)의 선시대를 출현시킨다.
오가(五家)란 선풍의 상위함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서 위앙종, 임제종(臨齊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을 말한다. 여기서 다시금 송대에 임제종에서 분리된 황룡(黃龍), 양기(楊崎)의 2종을 합쳐서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고 한다. 이 오가칠종은 어느 것이다. 혜능의 남종선에 근거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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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파 불 교
1. 불멸 이후 불교 교단의 발전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직후의 불교교단은 중인도에 퍼져 있던 지방교단에 불과했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와 입멸지인 구시나가라는 중인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야는 중인도와 남부에 있으며, 처음으로 법을 설한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는 중인도의 서부에 있다. 이 네 곳은 '사대영장(四大靈場)'으로서, 불멸 후에는 부처님을 사모하는 신자들의 순례참배지로서 성황을 이루었다. 초기의 불교도들이 생각한 중국(中國)도 중인도를 중심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불멸 후에는 서방 및 서남방으로 전도가 진행되고 불교교단은 서서히 이 두 방면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중인도의 남방은 빈댜 산맥의 고원에 의해 가로막혀 있고 동방은 고열미개의 땅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먼저 서남쪽으로 전도가 진행되었다. 서방에 불교가 발전한 것은 그보다 조금 늦었다. 그것은 서방은 바라문교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쇼카왕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교단은 인도 각지에 진출, 정착해 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웃자인을 중심으로 하는 서인도의 불교교단은 튼튼한 지반을 구축하고 있었다. 부파분열이 일어난 후에도 상좌부계의 분별부가 강력하여 이 계통의 불교가 이 시대를 전후하여 멀리 세일론까지 교세를 확장하였다. 이것이 남방상좌부라는 부파로 정착하여 현재의 남방불교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들이 서인도의 방언을 기초로 하여 만든 성전어가 팔리어로서, 남방상좌부의 문헌은 팔리어로 전승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쇼카왕의 전후에 마투라에서 서북인도의 간다라, 카슈미르에 걸쳐서도 불교의 교세가 확장되었다. 이곳의 중심이 되었던 교단은 같은 상좌부 계통의 다른 부파인 설일체유부였으며, 그들은 후에 산스크리트어로 경전을 편찬하였다. 대승불교가 중앙아시아,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그들의 문헌은 주로 중국에 소개되었는데 이것을 통칭 '북전(北傳)'이라고 하며, 반대로 남방상좌부의 전승을 '남전(南傳)'이라고 한다.
2. 불교교단의 분열
부처님은 자신의 입멸 이후 교단이 의지해야 할 것으로 법을 내세웠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法)이라는 것은 45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서 행해졌고, 또 그 내용도 논리적으로 정리된 것이 아니라 그 상대에 따라 달라져 복잡미묘한 것이었다. 나아가 당시의 가르침은 문자에 의한 체계적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의 구전(口傳)에 의한 암송으로서 전달되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불멸이후 불교 교단은 곧 부처님의 교설을 일정한 형태로 보존하고자 공식적인 합의를 거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제 1 결집이 이루어졌다.
(1) 제 1 결집
제 1 결집은 왕사성결집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께서 입멸한 해에 왕사성에서 500명의 비구들이 모여서 행한 것이다. 결집이란 교법의 합송(合誦)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비구들이 집회에서 편집된 성전을 함께 외움으로써 그것을 불설로 승인하는 것이었다. 1차 결집에서는 마하가섭이 회의를 소집하고 사회를 보았으며, 우팔리가 율(律)을, 아난다가 경(經)을 암송하였다. 당시 우팔리는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율에, 그리고 아난다는 경에 가장 뛰어났었다고 한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모든 비구들은 전원일치로 우팔리와 아난다의 암송 내용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었다고 승인하였다. 이렇게 하여 율과 경의 내용이 확정되어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제 1 결집에 대해서는 주의해야 할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사실이 있다.
첫째, 이 결집은 출가승단의 사람들, 특히 그 대표라 할 만한 상좌비구들이 개최한 것으로 재가신도들은 여기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결집된 법과 율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훗날의 대승경전 출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 이 결집은 500명의 아라한들이 모인 집회에서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부처님은 생전에 교단을 통제할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았으며, 승가의 조직도 서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멸이후 교단이 혼란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기신 가르침의 수집 확인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승가에 이러한 합의의 관습이 성립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째, 법과 율은 이때 합송(合誦)된 것이며 그후에도 오랫동안 입에 의해 전승되었다. 이것이 문자로 씌어지게 된것은 적어도 200년 뒤의 일이다.
네째, 이러한 결집의 시도는 당시 불교승가 전체의 의향이 반영된 것은 아니며 단순히 마하가섭을 중심으로 한 일파, 혹은 마가다 일대에 한정된 지방적인 회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2) 근본분열(根本分裂)
불멸 후 100년 경, 제 2 결집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불교교단은 중인도의 테두리를 넘어 서방으로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바이샬리의 비구들이 정법(淨法, 계율에 어긋나지 않음. 합법적인 일)이라 하여 시행하고 있는 10가지 문제에 대해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서인도 출신의 야샤스라는 비구가 마가다지방의 바이샬리로 갔을 때 그는 비구들이 쇠로 만든 발우에 물을 채우고 상가를 위한다고 하면서 금전, 은전을 집어넣는 것을 보고 경악하였다. 본래 무일물(無一物)을 표방하는 비구는 금전을 받는 것은 물론, 손을 대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유행편력의 생활에서 승원생활로 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서인도의 비구들에게 금전을 받는 것은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관행이었다. 야샤스는 그것이 비법(非法)임을 지적하였으나 바이샬리의 비구들로부터 빈축을 사게되어, 서방의 비구들에게 응원을 청하였다.
야샤스는 이 비구들의 도움을 받아 금전을 받는 행위 등을 포함한 여러가지 일에 대해 동, 서의 불교교단이 대화할 기회를 마련하였다. 양쪽에서 각각 4명씩 판정인을 내세워 심의를 하였는데, 결국 이 자리에 모인 700명의 장로들은 이 문제를 포함한 십사(十事)를 비법으로 단정하였다.여기에서 문제가 되었던 10사는 각 율전에 따라 다른 점이 있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뿔로 만든 그릇에 소금(을 축적하는) 관행(角鹽淨)
2. (수행자는 정오가 지나면 식사해서는 안되는데, 정오를 지나 해 그림자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를 지난 시간까지 식사시간을 연장하는) 관행(二指淨)
3. 다른 부락(에 가서 음식을 취하는) 관행(他聚落淨)
4. (동일한 교구 안의 다른) 주처(에서 포살을 따로이 행하는) 관행(住處淨)
5. (일을 결정함에 우연히 비구가 전원 모이지 않아, 먼저 참석한 사람들로 결정을 하고 뒤에 늦게 온 사람들의) 동의(를 예상하여 정족수가 부족하여도 의결을 행하는) 관행(隨意行)
6. (석존과 아사리의 )습관(에 따르는) 관행(久住淨)
7. (식사 후에도) 응고하지 않은 우유(를 마시는) 관행 (生和合淨)
8. (나무나 그 열매의 즙을 발효시켜 아직 알콜이 되지 않은) 음료를 마시는 관행 (飮門樓伽酒淨)
9. 테두리에 장식이 없는 방석(의 크기에 관한) 관행 (無緣坐具淨)
10. 금,은(을 받는) 관행(金銀淨)
이상의 십사는 그 일이 크건 작건 실제적 필요성이 대두되어 당시의 교단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열번째의 금전을 받을 것인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테마였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바이샬리의 논쟁을 기록한 여러 율을 검토하여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불교교단의 발전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10사의 논쟁은 야사가 서방의 비구들에게 응원을 요청했기 때문에 동서비구의 싸움이 되었던 것 같지만, 동쪽의 비구들 중에도 10사에 반대한 비구가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계율을 융통성있게 지키고 예외를 인정하려고 하는 관용파(지법자,持法者)의 비구와 끝까지 계율을 엄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엄격파(지율자,持律者) 비구들간의 대립이었다고 볼수 있다. 불타가 입멸한 지 100년 쯤 되면 상가의 확대와 함께 비구의 수도 늘어나고 사고방식의 차이도 생기기 때문에, 교단에 이러한 대립이 일어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회의에서는 엄격파의 주장이 전면적으로 통과된 듯 한데, 이것은 장로비구들 중에서 엄격파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장로비구가 대표로 선발되었기 때문에 10사는 모두 '비사(非事)'로 판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비구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이것이 교단분열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즉, 이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비구들이 모여 대중부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로써 교단은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했다고 한다. 이것을 '근본분열(根本分裂)'이라고 한다. 대중부에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명칭에 관용파 비구들의 수가 많았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북방불교에 전해진 자료(이부종륜론)에 따르면 근본분열의 원인은 대천이라는 비구가 아라한의 경지에 관하여 밝힌 다섯 가지 견해에 대한 대립(大天의 五事)에 의한 것이라 한다. 다섯 가지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여소유(余所有) ; 천마에게 유혹당할 때는 아라한일지라도 더러움이 새어나갈 때가 있다.
2. 무지(無知) ; 아라한에게도 무지는 있다.
3. 유예(猶豫) ; 아라한에게도 의문이나 의혹은 남아있다
4. 타령입(他令入) ; 자신이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을 타인이 알려줌으로써 아는 경우가 있다.
5. 도인성고기(道因聲故起) ; 도는 소리에 의해 일어난다.
이 五事는 상좌부 교단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성자인 아라한을 비방한 것이다. 이 주장에 의해 교단의 화합이 위협받자 당시의 왕이 중재를 위해 집회를 열어주었다. 이때 표결에 의해 다수를 차지한 대천의 무리는 스스로 큰 집단임을 의미하는 대중부라고 자파를 명명하였고, 반면 소수파인 보수적 장로들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기로 공포하고 스스로를 상좌부라 칭하였다고 한다.아무튼 근본분열에 의해 한번 갈라진 교단은 다시 그 내부에서 분열을 계속하여 20개의 부파로 분립하게 된다. 이를 지말분열(枝末分裂)이라 하는데 당시의 분파를 남, 북 양전이 전하는 내용에 따라 도식화해보면 다음과 같다.
** 남전 도사 **
** 북전 이부종륜론 **
이렇게 원시교단이 상좌, 대중의 두 부파로 분열한 이후의 전통적인 교단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한다.
3. 부파불교의 성격
불교교단의 정계(正系)는 원시교단을 계승하는 부파교단이었다. 즉 부처님의 직제자인 대가섭이나 아난 등에 의해 수지된 불교는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계승되어 부파교단으로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부파교단의 불교는 제자의 불교, 배우는 입장의 불교이며 남에게 가르치는 입장의 불교는 아니다. 이러한 수동적인 불교였기 때문에 대승교도로부터 성문승(聲聞乘)이라 불렸다. 성문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 즉, 제자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부파불교 교리의 특징은 출가주의라는 점이다. 출가하여 비구가 되고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수행한다. 재가와 출가의 구별을 엄격히 하고, 출가를 전제로 하여 교리나 수행형태를 조직하고 있다.그리고 부파불교는 은둔적인 승원불교이다. 그들은 승원 깊숙이 숨어서 금욕생활을 하고 학문과 수행에 전념한다. 따라서 가두의 불교는 아니다. 타인의 구제보다는 먼저 자기의 수행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불교이다. 그 때문에 대승교도로부터 소승(小乘)이라고 불리고 천시되었다. 부파의 출가교단은 국왕이나 왕비 또는 대상인 등의 귀의와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카스트제도를 엄격히 지키는 바라문교는 타국의 이민족이나 다른 계급과 자유로이 교제해야만 했던 상인들과 맞지 않았다. 이처럼 국왕이나 장자들의 원조에 의해 승단은 생활걱정없이 출세간주의를 관철하여 연구와 수행에 주력할수 있었으며, 이로써 분석적이고 치밀한 불교교리 즉, 아비달마 불교가 성립할수 있게된 것이다.
이상에서 본 부파불교의 특성은 그 단점과 한계로만 보여지기 십상이다. 사실상 아비달마불교는 종종 불교의 번쇄철학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구사론을 비롯한 아비달마논서를 읽을 때 우리는 지나치게 형식적이며 지나치게 사소한 문제에 관한 논의를 접하게 된다. 그 무수한 술어의 나열을 접하게 되면, 그들의 사상적 노작은 우리들에게는 전혀 무의미하고 비현실적이며 한가한 갈등으로 생각될 것이다. 번뇌를 끊고 행복을 추구한다는 부처님의 본지와는 한참 떨어진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사실상 아비달마는 아가마 경전의 어구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으며, 전통적,보수적이거나 분석적, 형식적인 해석에 치우쳐 사상의 청신함과 발랄함을 잃어버린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설법(對機說法, 방편설법)에 의해 단편적, 비체계적으로 설해진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불교의 기초적인 관념을 추출하고 이를 조직하여 장대한 사상적 건축물을 세운 것은 확실히 아비달마 논사의 공적이었다. 그들의 이러한 업적이 없었다면 후의 중관학설, 유가유식설 등의 대승불교철학의 출현은 불가능하였거나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4. 삼장의 성립
불교성전은 율과 경, 그리고 논(論)이라는 삼장(三藏)으로 구분된다. 삼장 중에서
경과 율은 이미 오래 전에 성립하였고 논은 비교적 후세에 성립한 것이다.
부파불교시대의 각 부파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법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에 착수하였는데, 이것을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 교학이라 한다. 그것은 '법(dharma)에 대한(abhi) 연구'라는 뜻이다. 이러한 연구는 물론 초기불교 당시에도 부분적으로 행해지고 있었지만, 부파의 성립으로 더욱 특색있게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각 부파는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결집하여 간직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문헌을 아비달마 문헌, 또는 논(論)이라고 부른다.모든 (유력한) 부파는 독자적인 아비달마를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종래의 경과 율에 논을 하나 더하여 삼장의 문헌을 갖추기에 이른다. 이런 삼장의 완성은 부파불교시대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오늘날 부파불교시대의 부파의 삼장은 거의 산일되어버리고 현재 그 삼장이 비교적 완벽하게 남아있는 것은 팔리어로 된 실론 상좌부 계통의 삼장과, 범어에서부터 한역되어 보존되고 있는 설일체유부 계통의 삼장이다. 그러므로 아비달마교학의 내용을 아는 데는 이 팔리삼장과 한역삼장이 주요 자료가 된다.아비달마는 부파 중에서 가장 강대하였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현저하게 발달하였다. 유부에는 7론이 전해진다. 즉,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 20권, 법온족론(法蘊足論) 12권, 시설론(施設論) 7권, 식신족론(識身足論) 16권, 계신족론(界身足論) 3권, 품류족론(品類足論) 18권,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 20권, 그 이역(異譯)인 아비담팔건도론 30권이 있다. 앞의 여섯을 육족론(六足論), 뒤의 발지론을 신론(身論)이라고도 한다. 스리랑카에 대한 불교전도는 아쇼카왕 치세시에 마힌다에 의해 행해졌다고 한다. 스리랑카의 왕 데바남피야 팃사는 마힌다에 귀의하여 수도 아누라다푸라에 대사(大寺)를 세웠다. 이것이 스리랑카 상좌부의 기원이다. 그후 2백여년이 지난 후 대승의 교학까지도 겸하여 배우는 무외산사(無畏山寺)가 건립되어 양파가 서로 논쟁을 했으나, 결국은 대사파의 전등(傳燈)이 유지되었다. 오늘날 버마,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 전하고 있는 남방불교는 대사부 계통에 속한다.스리랑카의 상좌부에서도 7론이 작성되었는데 그 내용은 법집론(法集論), 분별론(分別論), 논사(論事), 인시설론(人施設論), 계론(界論), 쌍론(雙論), 발취론(發趣論)이다. 위의 두 부파 이외의 논장으로서는 사리불아비담론(舍利弗阿毘曇論, 법장부) 30권, 삼미저부론(三彌底部論, 정량부) 3권, 성실론(成實論, 경량부) 16권이 있다. 유부에 있어서는 육족론이나 발지론 이후 이들 논서에 대한 주석적 연구가 성행하였다. 이들 200년에 걸친 주석가(毘婆沙師)의 아비달마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200권이다. 이 논서의 성립으로 유부의 교학은 거의 확정되었지만 본론이 너무 방대하기에 그 교의를 적요한 강요서가 저술되었고, 이들 논서를 기초로 하여 유명한 세친(世親)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이 성립되었다. 스리랑카에서도 1-2세기 경 많은 논사가 배출되어 주석서를 지었는 바, 붓다고사(佛音)의 청정도론(淸淨道論)이 가장 유명하다.
5. 부파불교의 교학체계
아비달마의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3단계가 상정되고 있다. 그 첫 단계는 아가마 경전 자체 안에 이미 교설을 정리, 조직하거나 해설, 주석하는 소위 '아비달마적 경향'이 나타나 있는 단계이다. 둘째는 이 경향이 발전하여 경전 외에 아비달마로 불리는 별개의 문헌이 독립, 발전되어 갔던 시기이다. 그리고 셋째는 그 결과 아비달마는 단순히 아가마의 내용을 해석,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초로 하여 장대한 교의체계를 수립했던 시기이다. 아비달마 교학은 아가마 교학을 분석하고, 종합함으로써 그 체계를 이루어 갔다. 분석적 방법이란 아가마의 가르침 중 중요한 것을 선택하여 하나 하나 그 의미를 상세히 주석하고 해설하는 것이다. 종합적 방법이란 아가마에 수록되어 있는 갖가지 교설을 정리, 안배하는 것을 말한다. 아가마를 종합하는 수속으로는 수와 관계된 교설을 그 수에 따라 一法, 二法, 三法과 같은 순서로 병렬시키는 방법(소위 '法數'에 의한 정리)이며, 또 하나는 가르침의 내용의 주제에 따라 유별하여 배열하는 방법(소위 '相應'에 의한 정리)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독립한 아비달마는 강력하게 발전하여 새로운 문헌들을 성립시켰다. 부파불교에 있어서의 논장의 체계가 공고히 된 것은 4세기경이 되어서이다. 이들 부파불교들은 대승불교가 출현하여 그 세력을 확산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당당하게 존재하면서 자신의 교학체계들을 발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4세기를 지나면서 부파불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완성에 도달하여 그 이후에도 인도에서 무려 800여년은 더 존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큰 진전은 없었다.실론에서 상좌부가 충실히 불교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던 방면, 인도본토에서는 상좌부의 맥이 끊어지고 상좌부의 일분파로서 서북부의 간다라와 카쉬미르지방에서 성행하던 설일체유부가 사상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4세기 경 바수반두는 설일체유부의 교의체계를 간결하게 요약한 논서인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명실상부 부파불교의 교학을 대표하는 명저로서 인도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에서도 부파교학의 입문서로 연구되었다. 그 내용은 계(界), 근(根), 세간(世間), 업(業), 수면(睡眠), 현성(賢聖), 지(智), 정(定), 파아(破我)의 9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발지론의 입장을 답습하면서 아비담심론에 따라 수정을 가했다. 또 유부 교의를 체계화함에 있어서 비바사사(주석가)의 설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부파 특히 경량부설까지도 참조하여 비판적 태도로 저술한 점에 특색이 있다. '구사론'이 불교학의 기초이론으로써 오랫동안 평가되어온 것은 그 교의가 정연한 체계로 논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학설은 제법(諸法) 즉, 모든 존재를 5위(位) 75법(法)으로 포괄하려는 논리이다. 75법이란 존재를 분석하여 얻은 요소들의 전체를 가리키며, 이 존재는 색(色), 심(心), 심소(心所),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 무위(無爲)의 다섯 가지 범주에 포괄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구사론은 전 존재를 법에 의해서 분류하였는데 그 법을 존재요소로서 실체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푸른 병은 깨어지면 없어진다. 그러나 그 청색이라고 하는 것은 병이 깨어져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을 자성(自性)을 갖는 것이라고 하며 법(法)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유부교학에서는 실재론적 경향을 중시하게 되어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 ; 법의 실체는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항상 실재한다)를 주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법의 실체화는 후에 대승불교의 용수에 와서 크게 비판받게 되었다. 부파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강력했고, 또한 대승불교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유부의 교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유부의 유(有)의 철학의 이해 없이는 그 안티테제로서의 반야(般若)의 공(空)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6. 설일체유부의 교학
부파의 여러 학파 가운데 아마 가장 많은 아비다르마 논서를 낳고 그리고 학문적으로 가장 강력한 부파로 성장한 것이 서북인도에 세력을 뻗치고 있던 사르바아스티바아디인 파이다. 이 학파의 이름은 '모든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를 의미하고 보통 한역명으로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혹은 줄여서 유부라고 알려지고 있다. 설일체유부는 상좌부의 계통에 속한다. 비교적 일찍 상좌부에서 지말분열해서 독립했다.
이 학파의 철학체계는 장기간에 걸쳐 여러가지 발전을 거쳐서 완성된 것이지마는 '모든 것이 있다'라고 하는 이 학파의 독특한 기본적 입장은 학파 분립의 당초부터 이미 구축되어 있었다.
(1)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는 무상(無常)의 가르침은 부처님의 가장 기본적인 교설이다. 일체의 존재는 모두 시간과 함께 변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무상한 것을 있는 그대로 무상하다고 보려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에 대해 당치않은 욕망을 품고 집착하며 괴로워한다. 무상한 것을 무상하다고 알고, 그리고 거기에 대해 집착을 떠나라고 하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 교의이며 올바른 지혜이다. 그런데 평상적인 인간은 무지로 말미암아 무상한 것에 상주성을 기대한다. 이 기대가 어긋날 때, 실망과 노여움을 느낀다. 무아인 것에 대해 '나'를 의식하고 '나의 것'을 의식한다. 이 의식으로 말미암아 요구, 갈망이 생기고 고뇌한다. 기대해서는 안될 것을 기대하고 의식해서는 안될 것을 의식하는 곳에 번뇌에 의한 업이 있다. 그 결과는 고이다. 무지를 떠나 무상을 무상으로 알고, 무아를 무아로 아는 올바른 지혜를 얻음으로써 인간은 번뇌의 구속에서 해방된다.
이렇게 보면 현실에서부터 시작하여 무루(無漏)의 깨달음의 영역으로 진행하는 불교의 실천체계는 이 간명한 무상, 고, 무아의 가르침에 남김없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수 있다. 이를 엄밀히 설명하는 것이 아비달마의 임무라고 아비달마논사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설일체유부의 경우에는 '일체가 존재한다'라는 주장을 하나의 이론에 의해 정밀한 학설로 전개하고 이를 가지고 무상과 무아를 논증하려한 것이다.
무엇때문에 모든 것은 무상한가. '연기(緣起)'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을 연하여 결과로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독자적으로, 자주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그것을 나타나게 하는 원인 여하에 따라 존재한다는 점에서 상주불변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것은 인과의 관계 위에서 생겨난다'는 견해는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원인, 혹은 원인없이 우연히 생겨난다는 견해에 대한 불교의 입장이다.
이처럼 무릇 현실에 있어서 인간 생존에 관계하는 일체의 사실은 연기한 것이지만 그것을 또한 유위(有爲)라고도 한다. 유위라는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정도의 의미이다. 연기하고 있으며, 유위이며, 무상인 이세상의 모든 것을 무상하다고 확실히 앎으로써 그것들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소멸할 때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 깨달음의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이제 더 이상 인과에 속박되지 않는다. 그러한 구속을 받지 않기 때문에 바로 무위(無爲)이다.
(2)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무상한 것을 무상이라고 보지 않고 그것에 대해 욕망을 일으키고 거기에 집착함으로써 번뇌하는 현실의 세계를 유루(有漏)라고 한다. 그리고 무상을 무상으로 알아 욕망과 집착을 끊음으로써 전개되는 고요하고 편안한 깨달음의 세계를 무루(無漏)라고 한다. 여기서 유루라는 것은 '번뇌를 가진', '번뇌에 더럽혀진'이라고 하는 의미이며 무루는 그 반대의 의미이다.
불교의 목적은 고뇌하는 현실세계, 미혹한 세계를 떠나 열반, 깨달음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즉 유위 유루의 세계로 부터 무위 무루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유위 유루의 세계는 사제에서 볼때 고제와 집제이며 무위 무루의 열반은 즉 멸제이다. 그리고 괴로움으로부터 그 소멸로 나아가는 방법 즉 도제는 아직 열반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유위이지만 이미 번뇌를 떠나있는 도정에 있기 때문에 무루이다.
(3) 다르마(dharma, 法)의 이론
설일체유부라는 명칭은 '모든 것은 존재한다고 설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이 부파는 독특한 다르마의 이론에 따라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자세히 논증하여 연기 - 유위 - 무상의 이치를 분명히 밝히고자 하였다.
다르마라는 말은 극히 여러 의미를 지닌 말이어서 해석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내외의 많은 학자들이 의논을 거듭해 왔으나 그것을 종합하면 (1) 법칙, 법, 기준 (2) 도덕, 종교 (3) 속성, 성격 (4) 가르침 (5) 진리, 최고의 실재, (6) 경험적 사물 (7)존재의 형태 (8) 존재의 요소 등의 의미로 다르마라는 말이 쓰여지고 있다. 한역 불전에서는 이 모든 의미가 법이라는 하나의 역어 속에 포함되어 있다. 아비달마 논서에는 다르마라는 어휘를 위의 (6),(7),(8) 중의 어느 하나로 사용하고 있다. 경험적 세계의 모든 것, 존재, 현상은 복잡한 인과관계로 서로 얽힌 무수한 법(法)의 이합집산에 따라 유동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이같은 법의 이론의 기본적 입장이다.
완성된 설일체유부의 이론에 의하면 존재의 요소로서 법을 75가지로 분류하고 이것을 다시 다섯 가지 그룹으로 나누는데, 이것을 이른바 오위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이라고 한다. 오위라는 것은 색법(물질의 요소, 11), 심법(마음, 1), 심소법(마음의 작용, 46), 심불상응행법(물질도 마음도 아닌 관계, 능력, 상태 등을 나타내는 요소, 14) 및 무위법(3)을 말한다. 이러한 75가지의 법은 상호 다양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같은 인과관계 위에서 유동적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세계이다. 그렇다고 할때 그러한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다.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설일체유부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존재의 기본요소인 법(法, dharma)에 관한 것이다.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데, 이 모든 것이 있다. 즉 존재한다는 주장은 모든 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통하여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렇다면 일체의 사물은 무상하다는 불교의 기본적 입장과 모순되지 않는가.
설일체유부에 의하면 유위의 다르마 전체에 공통된 성질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순간성(刹那滅)이며, 다른 하나는 삼세실유성(三世實有性)이다. 이 두 성질은 모순된 것으로 보이며, 사실 다른 학파로부터 격렬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나 실은 설일체유부의 입장에서는 이 둘에 의해 제행무상을 변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책상 위에 있는 컵은 한 시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컵으로서 지속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것을 '법의 이론'에서 본다면 실은 순간에 생겨나 소멸해 버리는 유위제'법'(有爲諸法)의 끊임없는 연속에 불과하다. 제'법'의 하나하나는 시간적 지속성을 전혀 갖지 않으며 다음 순간에 모두 소멸해버리는 찰나멸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번째 순간에도 그대로 컵이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선행한 제법을 상속하여 그것과 동류의 법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관계를 가지고 계속 생기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번째 순간 이후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비지속적, 순간생멸적인 제법의 연속적, 비단절적인 생기 위에서 컵의 존재라고 하는 시간적 지속 현상이 우리의 경험적 세계의 사실로서 있을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법이 생기한다고 해도 무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소멸한다고 해도 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생기라는 것은 '법'이 미래로부터 현재로 현현하는 것이며, 소멸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현재로부터 과거로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에 나타난 이전의 법은 미래의 영역에 존재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사라진 이후의 법은 과거의 영역에 존재한다. 미래의 영역으로부터 나타나 과거의 영역으로 사라지는 동안의 한 순간의 법은 현재에 존재한다. 미래에도 존재하며 현재에도 존재하고 과거에도 존재한다. 법은 삼세 어디에서나 그 자체로서 변함없는 특성(自性)을 갖고 존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삼세에 실유한다.
이와 같은 유부의 순간적 존재론에 대한 멋진 비유가 있다.
필림의 흐름은 리일에서 리일로 움직여 그침이 없으나 필림에 현상된 한 토막의 화면 그 자체는 처음의 리일 속에 있을 때도 램프에 조명될 때도 다음 리일에 감겨진 뒤에도 움직이거나 병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스크린에 차례차례로 투사된 영상은 하나하나로서는 순간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면서, 그것이 무수하게 부단히 연속함으로써 변화하며 활동하고 시간적 경과를 가진 한편의 줄거리를 엮어간다. 첫 리일은 다르마의 경과라는 삼세 중의 미래의 영역에 해당하고, 램프에 의하여 조명되는 순간은 현재에 해당하고, 나중의 리일은 과거의 영역에 해당한다. 필림의 한 토막 한 토막이 곧 다르마, 엄밀히 말하면 같이 생하는 무수한 다르마의 집합이다. 그리고 스크린에 영사된 영상의 활동변화에 의하여 엮어지는 이야기는 정녕 현실의 경험적 세계 즉 제행무상의 세계에 해당한다. 리일에서 리일로 필림이 흐르듯이 다르마의 시간은 횡으로 공간적으로 확대되어 있다. 스크린에 영사되는 이야기의 경과와 같이 경험적 시간은 그것을 종으로 관철한다. 그 두가지 시간의 교차점을 절대의 현재라고 할 수 있듯이 우리들 경험적 세계에 사는 자는 언제나 거기에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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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론의 법체게
俱舍論의 法體系(김 태 완, 부산대)
차 례
1. 俱舍論 槪觀
2. 諸法의 分類
3. 色法
4. 心法
5. 心所有法
6. 不相應法
7. 無爲法
8. 諸法의 三性
#. 참고문헌
1. 俱舍論 槪觀
{俱舍論}은 산스크리트어로 {Abhidharmakosabhasya} 인데, {아비다르마藏疏}의 뜻이며, {對法藏論}이라고 번역한다. 산스크리트本과 漢譯本, 티벹譯本이 있다. 世親 또는 天親이라고 漢譯되는 바수반두(Vasubandhu)의 저작이다. 바수반두는 5세기경 서북인도에서 활약한 아비다르마論師로서 無著의 동생이기도하며, 소승불교의 학승일 뿐만아니라 대승불교의 학승으로서 瑜伽唯識學의 창도자의 한사람으로서도 이름이 높다. 한역은 玄裝이 651년에 번역한 {阿毘達磨俱舍論} 30권이 있고, 偈頌만을 모은 {阿毘達磨俱舍論本頌} 1권(玄裝 번역)이 있으며, 또 眞諦가 564년에 번역한 {阿毘達磨俱舍釋論} 22권이 있다. {俱舍論}은 인도,중국,티벹,한국,일본에서 널리 연구되어 훌륭한 註釋들이 남아있다. {구사론}에서 세친은 說一切有部의 교학을 표준으로 삼아, 이것을 체계화하면서도 비판적으로 취급하여 經量部나 大衆部 등의 교설을 소개하고, 理에 뛰어남을 宗으로 삼는 입장(理長爲宗)에서 교리해석을 전개하고 있다. 大乘 經典이나 대승의 論書는 有部의 교학을 기초로 하고 혹은 그것을 破斥하기 위하여 작성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번잡한 유부의 교학을 비판적으로 종합한 {구사론}은 널리 대,소승의 학도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구사론}은 교리의 대부분을 {大毘婆沙論}에서 채택하고 있는데, 그것을 다시 정리 하였고, 論의 체계나 교리를 정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法救의 {雜阿毘曇心論}을 따른 점도 많다. {구사론}의 구성은 九品 三十卷 六百頌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界品(二卷 四十四頌), 根品(五卷 七十四頌), 世間品(五卷 九十九頌), 業品(六卷 百二十一頌), 隨眠品(三卷 六十九頌), 賢聖品(四卷 八十三頌), 智品(二卷 六十一頌), 定品(二卷 三十九頌), 破我品(一卷)으로 되어있다. 論의 서두에서는 먼저 題號를 해석하고, 이어서 界品과 根品으로 현실세계(물질과 정신계)를 성립시키는 요소적인 法을 설명한다. 예부터 잘 알려져 있는 5位 75法의 체계도 여기에서 제시된다. 다음 世間品에서는 地獄으로부터 天界의 생물세계(有情世界)와 물리적 세계(器世間)를 설명하는데, 여기엔 인도의 宇宙觀이나 地理說이 소개되어 있다. 나아가 12연기를 설하여 윤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業感緣起論이다. 다음 業品에서는 윤회의 원인이 되는 業을 여러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는데, 表業, 無表業, 善業, 惡業, 身口意의 3業 등을 제시하고 善의 행위로서의 계율을 설명한다. 다음 隨眠品에서는 業이 작용하는 機緣이 되는 번뇌를 밝히는데, 이것을 6大煩惱, 10隨眠, 88使, 108번뇌 등으로 분류하여 서술하며, 아울러 과거, 미래, 현재의 三世實有論을 소개하고 이것을 破斥한다. 이상에서의 3品은 미혹의 세계(有漏)를 나타낸다. 다음 賢聖品에서는 깨달음에 진입하는 단계적 과정을 凡夫位로서는 3賢과 4善根으로, 聖者位로서는 4雙8輩로 제시하고 깨달음을 얻는 觀으로서 4諦 16現觀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 智品에서는 깨달음을 획득하기 위한 지혜를 世俗智, 法智, 類智 등의 10智로서 설명하고, 18不共法 등을 설명한다. 定品은 聖智를 낳는 기초가 되는 禪定을 설명하는데, 4禪, 4無色定, 3解脫門, 4無量心, 그밖의 禪定을 제시한다. 부록인 마지막의 破我品은 이상에서 밝혀진 無我의 입장에 서서 犢子部의 非卽非離蘊我나 勝論 의 我 등을 논파하고 無我의 도리를 밝힌 것이다. 九品三十卷中에서 처음 界根二品은 모두 有漏 無漏 迷悟兩界의 體用을 밝히고, 다음 世間, 業, 隨眠三品은 따로 迷界의 果因緣을 설하고, 뒤의 賢聖, 智, 定三品은 悟界의 果因緣을 밝히고, 마지막 破我一品에서는 諸法無我의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 이것을 四諦說의 입장에서 보면 世間品이 苦諦가 되고, 業品과 隨眠品이 集諦가되고,賢聖品이 滅諦가 되고, 智品과 定品이 道諦가 된다.
이 글에서는 界,根 兩品의 法體系 즉 五位七十五法을 정리하였다.
2. 諸法의 分類
경전에서는 諸法을 5蘊, 12處, 18界 등 3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俱舍論}에서는 여기에 더하여 5位75法으로 분류정리하고 있다. 諸法은 크게 나누면 有爲와 無爲의 2종으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법을 나누는 것은 無常, 苦, 無我라는 불타의 가르침을 체계적 분석적으로 설하기 위한 것이다. 본래 法(Dharma)은 존재, 진리, 교설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설일체유부에서 법을 이와같은 75종으로 분류할 때에 법은 특히 존재를 구성하는 존재의 요소라는 의미를 지닌다. 경험의 세계 속에 있는 일체의 것, 존재, 사물, 현상 등은 복잡한 인과관계에 의한 무수한 법의 이합집산에 의해 유동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有部의 법사상의 기본적 사고이다. 이러한 유부의 법사상에서 보면 실재하는 것은 75종의 법뿐이고, 그 이외의 모든 현상적 존재에는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의 본질인 일체의 무상, 고, 무아는 경전에서는 5온, 12처, 18계에 의해 설해지고, 유부에서는 75법에 의해 설해지는데, 이러한 일체는 다양한 인과관계를 기초로 하여 성립되어 있는 有爲의 존재이다. 동시에 이는 범부에 의해 욕망되고 집착되는 有漏의 존재이다. 無常이며 有爲이고 또한 有漏이며 苦인 현실의 삶의 일체는 그 無常을 無常으로 알고 有爲를 有爲로 알 때, 이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소멸되어 그대로 寂靜하고 안락한 경지인 열반으로 전환된다. 현실의 삶이 有爲이고 有漏임에 대하여, 열반의 경지는 無爲이며 無漏이다. 이들 有爲, 無爲를 합쳐서 일체의 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유루의 법과는 별도로 무루의 법이 있으며, 이들 유루, 무루의 諸法을 합쳐 일체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有爲란 造作이라는 뜻으로 인연따라 생기한다는 의미이다. 무위란 인연따라 생기하지 않고 自體恒存해서 생멸이 없는 상주불변의 진리를 뜻한다. 유루란 六根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의미로 번뇌를 가리킨다. 무루는 번뇌를 벗어난 상태이다. 세속적 인간의 세계, 업과 번뇌의 세계는 유위이며 유루이다. 깨달음의 영역에 속하는 열반은 무위이며 무루이다. 세속적 삶으로부터 깨달음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길(道)은 유위이면서도 번뇌를 떠나기 때문에 무루이다. 다시말하여 道는 아직 깨달음에는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유위이며, 동시에 번뇌를 떠나는 길이므로 무루인 것이다. 5蘊에는 어느 것에도 무위인 것이 없으나, 12處와 18界 중의 법에는 무위인 것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동일하게 일체라고 하여도 5온에 의한 경우는 무위를 제외한 일체의 유위를 위미하지만, 12처와 18계에 의한 경우는 무위 유위를 합친 일체의 법을 의미한다. 5蘊은 色蘊, 受蘊, 想蘊, 行蘊, 識蘊의 다섯이다. 處는 산스크리트어 Ayatana 의 번역어로서 길러 生長시킨다는 뜻이다. 따라서 處는 心과 心所가 일으날 때 그 의지할 곳이 되며 心, 心所는 12처에 의지해서 발생하고 생장하는 것이다. 12처는 眼,耳,鼻,舌,身,意의 六根과, 色,聲,香,味,觸,法의 六境을 가리킨다. 18界는 六根과 六境에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등의 六識을 더한 것이다. 5위 75법은 色法(11), 心法(1), 心所有法(46), 不相應法(14), 無爲法(3) 등이다. 5위 75법, 5온, 12처, 18계의 상호관계는 별표 1과 같다. 5위 75법을 모두 분류하면 별표2와 같다.
3. 色法
넓은 의미의 色 즉 물질적 존재에 대해 {구사론}이 부여하고 있는 설명 중 중요한 것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파괴되므로 色이라 한다.
(2) 色은 四大와 四大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3) 色은 五根과 五境과 無表色의 11종의 法이다.
(4) 色은 法處,法界에 포함되어 있는 無表色을 제외하고는 極微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공간을 점유하며, 다른 色이 동일한 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방해한다.
(5) 色이 生起할 때에는 반드시 8종류가 俱生한다.
色의 산스크리트어는 Rupa이다. Rupa는 變壞 또는 質碍(걸림)의 의미이다. 일체는 無常하기 때문에 당연히 色도 無常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존재이다. 파괴되는 것이 오직 물질적 존재뿐만은 아니다. 마음도 마음의 작용도 그리고 그 이외의 것, 즉 인과관계를 가지며 존재하는 有爲의 것 중에 파괴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파괴되므로 색이다'라는 정의는 물질적 존재가 갖는 무상성, 유위성을 잘 표현하면서도, 이 정의는 물질적 존재도 포함된 유위의 달마 일반에 공통된 성질을 말하는 것이다.
四大는 地, 水, 火, 風이다. 四大는 자연계의 大地, 흘러가는 물, 타는 불, 부는 바람을 이루는 소재가 아니라, 이들이 대표하는 바의 물질의 물리적 성질 즉 암석에 보이는 것과 같은 견고함, 물에 보이는 것과 같은 濕潤性, 불에 보이는 것과 같은 熱性, 바람에 보이는 것과 같은 유동성이 四大의 본체로 생각되었다. 四大의 본체가 견고함, 습윤성, 열성, 유동성이 되면, 四大가 재료 즉 질료인이 되어 이로부터 물질이 합성된다고는 할 수 없다. 四大는 이제 물질의 근본적 성질인 것이다. 견고함, 습윤성, 열성, 유동성이라는 근본적 성질을 떠나서는 물질적 존재는 파악되지 않는다. 일반의 물질이 '四大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정의도 이러한 의미에서 이야기되는 것이다.
五根은 眼,耳,鼻,舌,身의 다섯가지 감각기관이며, 五境은 그것들의 대상인 色,聲,香,味,觸이다. 色境을 색깔과 모양으로 나누고, 색깔을 靑,黃,赤,白의 4색으로, 모양을 長,短,方,圓,高,下,正,不正의 여덟으로 나눈다. 색깔 중에는 특수한 것을 8종 또는 9종으로 헤아리는 경우도 있다. 聲境 즉 소리는 생물이 발하는 소리와 무생물이 발하는 소리, 의미를 전하는 소리(언어를 이루는 소리)와 그렇지 않은 소리, 즐거운 소리와 즐겁지 않은 소리의 차별에 따라 8종으로 구분한다. 香境은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 적당한 냄새와 지나친 냄새의 차이에 따라 4종으로 나눈다(3종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다). 味境에는 달고 시고 짜고 맵고 쓰고 떫은 여섯 가지의 맛이 있다. 觸境 즉 감촉에는 매끄러움, 거침, 무거움, 가벼움, 차거움, 배고픔, 목마름의 7종 외에, 땅,물,불,바람의 四大 즉 견고함, 습윤성, 열성, 유동성이 포함된다. 四大가 觸境에 포함되는 점은 四大가 물질을 구성하는 소재가 아니라 물질의 근본적 성질로 생각되고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無表色이란 表色에 대응한 명칭이다. 表色이란 우리들의 身語二業을 말하는데, 身語二業은 밖으로 '이것은 선이다' '이것은 악이다' 하고 나타내는 것이므로 이것을 表色 혹은 表業이라 한다. 이 身語二業의 表色이 그 힘이 강한 것은 身語二業과 동시에 그 결과가 특별한 善惡의 功能을 몸에 나타낸다. 이 功能은 無形象해서 밖으로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無表色 또는 無表業이라 한다. 이 無表色은 極微의 집합체가 아니므로 變壞가 없고 質碍도 없다. 그러므로 色法이라하기 어려우나 본래 身語二業의 色法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無表지만 色에 귀속시킨 것이다.
無表色을 제외한 色은 極微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極微란 어떠한 방법으로써도 분할할 수 없는 최소입자를 말한다. 極微는 微粒子이지만 입체적으로 이를 둘러싼 면 즉 표면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표면을 갖는다면 이를 더욱 분할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이는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極微 한 개를 중심으로 그 전,후,좌,우,상,하에 각각 하나의 極微가 결합되어 합계 7개의 極微가 집합한 것이 두 번째 단위인 微聚가 된다. 微聚가 같은 방법으로 7개 결합하면 세 번째 단위인 하나의 金塵이 된다. 이런 식으로 極微가 모여서 無表色을 제외한 色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극미가 이처럼 집합하여 공간을 차지하는 색법이 되지만, 극미 하나하나는 표면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극미끼리 접촉하여 결합을 이룰 수는 없어서, 극미들은 접촉이 없이 집합하여 경험 가능한 사물로 되는 것이다. 이 극미도 有爲의 法으로서 전혀 시간적 지속성을 갖지 못하며 刹那滅한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물은 순간적으로 생멸하는 무수한 극미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色法이 생기할 때에는 동시에 色境,香境,味境,觸境과 四大 등의 8종류가 반드시 함께 생기한다. 이는 외계의 현상이 물질적 존재로 파악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나타내는 것이다.
4. 心法
心法의 주체를 心王이라고 한다. 心王은 心, 意, 識의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心은 산스크리트어로 Citta인데 集起란 뜻이며, 心王의 힘에 의하여 心所 및 일과 행동을 일으킨다는 의미이다. 意는 산스크리트어로 Manas인데 思量혹은 依止란 뜻이며, 깊이 思惟考察하고 능히 다른 心心所를 발생하는 所依止라는 의미이다. 識은 산스크리트어로 Vijnana인데 了別이란 뜻이며, 所緣을 식별하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六識은 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이다. 여기서 第六識 즉 意識은 廣緣의 心王이므로 때로는 色, 聲, 香, 味, 觸까지도 식별하는 수가 있다.
心王의 了別作用에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自性分別로서 현재 直覺하는 작용이며, 둘째는 隨念分別로서 과거를 追想하는 작용이며, 세째는 計度分別로서 과거 현재 미래 三世에 걸쳐 널리 境의 表面을 直覺할 뿐만 아니라 또한 裏面에까지 推及하는 분별작용이다. 六識 중에서 前五識은 自性分別 뿐이므로 無分別이라 하고, 第六識은 세 가지의 분별을 구비해서 넓고 깊이 考察思惟하므로 有分別이라 한다. 六識을 발생하는 緣에 空, 明, 根, 境, 作意등 五種이 있다. 心이 生起할 때는 반드시 作意의 先導를 기다려 根에 의지하며 境에 의탁한다. 그러나 前五識에서는 그 생기하는 緣이 같지 않다. 眼識은 眼根과 色境과의 사이에 空隙과 光線의 緣을 얻어 생기하며, 耳識은 耳根과 聲境과의 사이에 空隙의 緣을 얻어 생기한다. 즉 眼識의 생기는 五緣(空, 明, 根, 境, 作意)에 말미암고, 耳識의 생기는 四緣(空, 根, 境, 作意)에 말미암으며, 鼻舌身三識 및 意識은 三緣(根, 境, 作意)을 갖추어야 생기할 수 있다.
5. 心所有法
心所란 心王에 종속해서 움직이는 心作用이므로 心王의 소유라는 뜻에서 心所라고 한다. 이에 46種이 있는데 크게 나누면 6종이 있다. 大地法(10), 大善地法(10), 大煩惱地法(6), 大不善地法(2), 小煩惱地法(10), 不定地法(8)이다. 心이 생기할 때에는 반드시 心所가 동반한다. 그러므로 마음의 작용을 心相應法이라고도 한다. 마음과 동반하는 법이라는 의미이다.
1). 大地法
大地法이란 생기하는 범위가 큰 法이라는 의미로서, 이 10종의 마음작용은 어떠한 마음과도-선한 마음과도, 악한 마음과도, 선도 악도 아닌 중성의 마음과도-상호 동반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이 10가지는 受, 想, 思, 觸, 作意, 欲, 勝解, 念, 定, 慧이다. 受, 想, 思는 각각 五蘊의 하나에 상당한다(思가 行蘊임). 受는 苦, 樂, 不苦不樂의 感受, 想은 대상의 모양을 마음으로 파악하는 표상작용, 思는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 지향, 의지의 발동을 의미한다. 觸은 根, 境, 識의 접촉 즉 마음이라는 내계가 외계와 접촉하는 것을 말한다. 作意는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欲은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욕구, 勝解는 대상이 어떠한 것인가를 확인하고 아는 것, 念은 기억작용, 定은 마음을 유동케 하지 않고 어느 한 점에 집중하는 것, 慧는 분별하고 판단하는 작용이다.
2). 大善地法
이 法은 信, 勤, 捨, 慙, 愧, 無貪, 無瞋, 不害, 輕安, 不放逸의 10종이다. 信은 마음의 청정함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불교에서 말하는 四諦, 三寶, 그리고 業과 그 果報 사이의 因果性의 셋에 대한 확신으로도 해석된다. 勤은 마음의 힘씀으로서 선행을 하고자 힘씀을 말한다. 捨는 마음의 평정으로서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 慙과 愧는 각각 두 가지로 이해된다. 첫번째의 이해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덕에 대한 공경이 慙이며, 자신의 죄에 대한 두려움이 愧이다. 두 번째의 이해에 의하면, 스스로를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과실을 부끄러워함이 慙이며, 다른 사람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과실을 부끄러워함이 愧이다. 無貪은 탐욕이 없는 것, 無瞋은 미움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만, 단순히 탐욕과 미움의 비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욕망의 대상을 厭捨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不害는 비폭력으로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輕安은 적응성으로서 어떠한 일을 행함에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다. 不放逸은 靜慮로서 전념하여 禪을 행하는 것이다.
3). 大不善地法
大不善地法에는 無慙과 無愧의 2종이 있다. 慙과 愧의 반대의 마음작용이다.
4). 大煩惱地法
大煩惱地法은 6종으로서 痴, 放逸, 懈怠, 不信, 昏沈, 掉擧이다. 痴는 無明과도 같은 것으로 어리석음, 무지이다. 放逸은 不放逸의 반대로 마음이 과감하지 않은 것, 태만함을 말한다. 不信은 信의 반대로 마음이 청정하지 않음으로 해석된다. 昏沈은 마음이 침울함이며, 어떠한 일을 행함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것, 즉 輕安의 반대이다. 掉擧는 마음의 경박하고 초조함, 유동하여 평정함이 없는 것이다.
5). 小煩惱地法
小煩惱地法으로는 10종이 열거된다. 忿, 恨, 稻, 嫉, 惱, 覆, 堅, 狂, 僑, 害가 그것이다. 忿은 성냄, 恨은 원한, 稻는 마음이 비뚤어짐, 嫉은 질투, 惱는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 완고하고 우매함, 覆은 자기의 허물을 은폐함, 堅은 인색함, 狂은 기만, 僑는 자기만족이며, 害는 해를 끼치고자 하는 마음 즉 不害의 반대이다. 이들 여섯 가지의 小煩惱地法은 마음이 제6의 意識으로 작용하는 경우에만 이것과 동반한다. 前五識과는 동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개별적으로 생기한다.
6). 不定地法
不定地法은 8종으로서 이는 尋, 伺, 睡眠, 惡作, 貪, 瞋, 慢, 疑이다. 尋은 추론을 통하여 규명하고자 하는 거친 마음의 활동이며, 伺는 관찰적인 미세한 마음의 활동이다. 睡眠은 마음의 무딤, 惡作은 본래는 악한 행위를 의미하지만, 여기에서는 과거의 악행에 대하여 그 과오를 뉘우치는 마음작용을 뜻한다. 貪은 탐욕 즉 마음에 드는 대상의 대한 욕구, 瞋은 미움 즉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 대한 증오, 慢은 자만심이다. 僑와 여기의 만의 차이는 전자가 자신의 성질(미모와 젊음과 혈통과 학식 등)을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에 집착하는 마음의 교만함임에 대하여, 후자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고 망상하여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는 마음의 교만함을 말한다. 疑는 四諦의 진리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생각하는 迷惑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煩惱는 모두 마음의 작용이다. 業도 그 중심이 되는 것은 마음의 業으로서, 결국 마음작용의 일종인 思이다. 煩惱를 끊는 올바른 지혜도 마음작용의 일종인 無漏의 慧이다. 業, 煩惱의 迷惑의 세계도, 이를 초월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道도 모두 이 마음과 마음작용의 俱生의 관계 중의 어떠한 것에 의해 성립된다. 즉 넓은 의미의 마음의 세계 안의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6. 不相應法
不相應法은 갖추어 말하면 不相應行法이다. 色法과心法이 있으면 그 法 위에 특별한 세력이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세력은 心法이 아니므로 心에 相應하지도 않고 色法이 아니므로 色에 相應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不相應이라고 한다. 또 不生不滅의 法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行을 붙여 生滅變遷함을 표시한다. 이에는 得, 非得, 命根, 同分, 無想果, 無想定, 滅盡定, 生, 住, 異, 滅, 名, 句, 文 등 14종이 있다.
1). 得
得은 成就라는 뜻으로 有情法에 속하는 諸法이 서로 혼합되지 않고 성립하는 까닭은 오직 이 得이란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凡과 聖, 漏와 無漏의 구별과 五趣四生이 같지않음이 모두 得의 세력 때문이다. 得에는 法前得, 法後得, 法俱得, 非前後俱得의 4종이 있다.
2). 非得
非得은 不成就라는 뜻으로서 得의 반대이다. 非得도 또한 有情法에 한하되 得이 있을때는 반드시 그 法의 非得이 없고 非得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그 法의 得이 없게된다. 非得에는 法前非得, 法後非得, 非前後非得의 3종만이 있고, 法俱非得은 없다.
3). 命根
命根은 壽라는 뜻이다. 우리들의 身心은 원래 刹那生滅하는 것이나 同類相續해서 수십년 살아가는 까닭은 命根이란 세력이 존재해서 어느 기간동안 이 身心을 계속 보호 유지해서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4). 衆同分
衆同分이란 同類가 되게 하는 원인을 말한다. 개개의 五趣四生들의 果報와 種類가 각각 다르나 서로를 一種一類 가운데 攝入할 수 있는 것은 이 衆同分이 있기 때문이다. 衆同分에는 有情同分과 法同分이 있다. 有情同分이란 有情으로 하여금 同種同類로 되게 하는 원인세력이며, 法同分이란 有情의 신체에서 眼耳鼻舌身의 諸根이 서로 같고, 色聲香味觸의 諸境이 서로 같으며, 法法이 서로 비슷한 것은 모두 이 法同分의 힘이다.
5). 無想定
갖가지 心心所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번뇌를 생기하므로, 번뇌의 근원인 心을 滅却하기 위하여, 想을 떠나서 無心定에 들어갈 때, 이 無心定의 기간동안 心作用의 生起를 저지하는 것이 있어서 心心所로 하여금 生起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을 無想定이라 한다. 이 無心位를 定이라 하는 까닭은 禪定에서 비롯되기 때문인데, 無心에 들어가기 전의 有心定을 따라서 定이라고 한다.그 定의 體는 善性 뿐이다.
6). 無想果
無想果는 無想定을 닦은 因에 말미암는 果로서 無想天에 태어나고, 無想天에 태어난 후에는 앞서 無想定을 닦은 因의 힘으로 미래의 心心所가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 體는 無記로서 五百大劫 동안 無心에 머문다고 한다.
7). 滅盡定
滅盡定은 心心所를 모두 단절한 定으로서 無想定과 더불어 二無心定의 하나이다. 無所有處의 번뇌를 떠난 성자가 그 定의 경지를 無餘涅槃의 고요함에 견주어 無心의 寂靜境을 즐기기 위해 들어가는 定이니, 이 定을 닦음으로써 無色界의 第四天인 有頂天에 태어난다.
8). 四相
生住異滅의 四勢力을 四相이라 한다. 生은 有爲의 諸法이 미래에서 현재로 옮기는 것이다. 住는 有爲의 諸法이 한찰라 현재에 安住하는 것이다. 異는 有爲의 諸法이 衰損하는 것이다. 滅은 有爲의 諸法이 현재에서 과거에로 壞滅하는 것이다. 生住異滅의 四相 자체도 또한 生住異滅이라는 四相의 세력에 지배된다. 그래서 四相도 生住異滅한다. 무릇 有爲의 色心諸法이 생멸변천해서 무상한 까닭은 오로지 色心上에 존재하는 四相의 작용에 인한 것이다. 法의 生滅에는 一期生滅과 刹那生滅 두 가지가 있다. 일기생멸이란 보통으로 인식하는 현재의 생활기간을 生이라 하고 죽을 때를 滅이라 한다. 다시 상식으로 알 수 없는 시시각각으로 미세히 생멸변천하는 것을 찰라생멸이라 한다. 찰라란 시간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서 미세하게 시간을 분석해서 극단에 이르러 다시 분석할 수 없는 단위를 말한다. 법이 생할 때는 반드시 인연을 의지하고 멸할 때는 인연을 의지하지 않으므로 法體는 본래부터 壞滅하는 性이므로 자연히 멸하는 것이다. 유위의 제법은 本體와 作用이 있다. 본체는 恒存하지만 작용에는 생멸이 있으므로 三世를 구분한다. 작용이 아직 일어나지 않고 다만 본체만이 있는 位(未作用位)를 미래라 하며, 인연이 무르익어 바야흐로 작용을 일으키는 位(正作用位)를 현재라 하며, 인연이 이미 흩어져 작용이 멸한 位(已作用位)를 과거라 한다. 미래에서 현재에 이르고 현재에서 과거로 들어가는 순서에 따라 찰라생멸의 뜻을 중심으로 해서 四相을 설명한다. 善惡業感의 순서는 과거의 번뇌와 업으로 인해서 현재 五蘊의 身心을 感得하고 현재의 번뇌와 업으로 인해서 미래 五蘊의 身心을 感得한다.
9). 名句文
文이란 音韻屈曲해서 언어를 조직하는 단위로서 가나다라 등과 같은 單音이다. 2文을 文身이라 하고 3文 이상을 多文身이라 한다. 名은 文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간단한 名詞, 動詞혹은 形容詞등을 말함이니 소나무, 대나무, 하늘, 구름등의 낱말이다. 2名을 名身이라 하고 3名 이상을 多名身이라 한다. 句는 두 개 이상의 名을 연결되어서 일종의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를 말한 것이니 즉 '산에 오른다' '냇물을 건넌다' '꽃을 본다'는 등과 같은 것이다. 2句를 句身이라 하고 3구 이상을 多句身이라 한다. 이 名句文은 모두 소리 위에 존재해서 이 힘으로 언어를 조직하며 思想을 표시하며 事理를 나타내고 설명한다.
7. 無爲法
無爲法이란 생멸변천함이 없는 常住한 실체를 말한다. 이에 三種이 있으니 虛空無爲, 擇滅無爲, 非擇滅無爲이다.
1). 虛空無爲
虛空無爲란 장애됨이 없음이 本義이어서, 有爲法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를 막론하고 一切處에 遍滿하며 十方世界에 가득차서, 개개의 법이 서로서로 장애를 받지 않도록하는 常住不動의 體이다. 그러므로 수없는 세계가 동시에 일어나고 혹은 멸하나 虛空無爲는 增減消長하는 일이 없고 그 체는 오직 하나뿐이다.
2). 擇滅無爲
擇滅無爲란 有漏의 諸法에 존재하는 壞滅의 原理이다. 이 原理는 낱낱의 有漏法이 번뇌의 繫縛을 여의었을 때에 나타나는 唯善無漏의 常住法으로서, 오직 有漏와 無漏의 2智로써 證得하는 뛰어난 解脫法이다. 擇이란 簡擇의 뜻으로서 지혜의 작용이다. 이 지혜의 힘으로 인해 번뇌의 繫縛을 벗어났을 때에 나타나는 壞滅의 原理가 擇滅無爲이며 離繫라고도 한다.
3). 非擇滅無爲
이 無爲는 畢竟不生法에서 얻는 불생불멸의 法體이다. 一切法은 본래 미래에 잡다하고 혼란스럽게 있다가 여러가지 인연을 만나면 현재에 나타나고 작용을 마치면 곧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만약 인연이 없을 때는 그 法이 영원히 미래에 住해서 현재에 생기하지 못하는 것을 畢竟不生法이라 한다. 이 無爲는 지혜에 의해 얻어지는 無爲가 아니라 다만 인연이 없기 때문에 이루어지므로 非擇滅無爲라고 한다.
8. 諸法의 三性
75法의 性에 善, 惡, 無記의 구별이 있다. 인간과 天이라는 즐거운 果를 가져오는 法을 善이라 하고, 三惡趣의 괴로운 果를 초래하는 法을 不善이라고 하며, 果를 가져올 힘이 없는 것을 無記라고 한다. 이 삼성에 따라 諸法을 분류하면 별표3과 같다.
#. 참고문헌
1. 世親 {阿毘達磨俱舍論} 30권, 현장 역, 신수대장경 29.
2. 世親 {俱舍論} 한글대장경 121,122. 동국역경원
3. 梶川乾堂 {俱舍論大綱} 全明星 역, 불광출판부
4. 上山春平,櫻部建 {아비달마의 哲學} 정호영 역, 민족사
5. 테오도르 체르바츠키 {小乘佛敎槪論} 권오민 역, 경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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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학파에 대하여
1. 중관학파의 의미
2. 중관학파의 사상적 특징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등의 비판
반야공관에 입각한 부정논리
중도실상 연기 무아 무자성 공 등의 사상
3. 중관학파의 분류
4. 중관학파(中觀學派)의 형성과 역사
5. 중관학파의 학자들
초기 중관학자들
중기 중관학자들
후기 중관학자들
< 중관학파 Madhyamika 에 대하여 >
1. 중관학파의 의미
이른바 중관학파[中觀學派 M dhyamika, ∼v dinah]는 중파(中派), 중도파(中道派), 중사(中師), 중도사(中道師)라고도 한다. 龍樹(梵 N g rjuna)의 중론(中論)을 기초로 하여 공관(空觀)을 선양(宣揚)한 학파를 일컫는 말이다.
A. 중관학파를 나타내는 범어 - M dhyamaka, M dhyamika의 뜻
중관학파는 산스크리트어(梵名)으로는 M dhyamaka, 또는 M dhyamika 라고도 한다.
이 말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들이 있다. .
㉠ Edgerton설(說)에 의하면 , 'Madhyamaka'라는 말은 madhya[중(中)의]라는 형용사의 최상급인 Madhyama[가장 중앙(中央), 가장 가운데(中)의]에 접미사(接尾辭)(또는 조사) -ka 가 붙여진 것이다. 때로는 -ika가 붙여져 'M dhyamika' 라고도 쓰인며, 다같이 "중(中)에 기초하는, 중(中)에 관한, 중(中)을 말하는" 등을 뜻하는 동의어(同義語)로서, 이들이 명사화되어 '중(中), 중도(中道)의 사상(思想)내지 사상가(思想家)'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관(觀)'자(字)가 없지만 홋날에는 '중관파'라 불리게 된 것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 Murti 설에 의하면 이 양자를 구분하여 'Madhyamaka'라는 말은 '중도(中道)내지 중도설(中道說)'를, M dhyamika 는 광의(廣義)로 그것을 포함하는 '학파(學派)'를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 또는 Madhyamika의 의미를 단순히 '중도를 걷는 자'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B. 중관학파를 나타내는 다른 말
중관학파는 그외로 Madhyamkak citta [중(中), 중도(中道)를 마음에 지닌다]
또는 Madhyamak v din [중·중도(中道)의 논자(論者)] 라고도 불리웠다.
또는 스스로를 'S nyatav din [공성론자(空性論者] 라고도 이름했다.
C. 중송을 나타내는 말 - 'Madhyamaka karika' 또는 'M dhyamika karika'
'Madhyamaka 나 'M dhyamika '라는 말 뒤에 'karika' 라는 말이 'Madhyamaka karika'라거나 'M dhyamika karika'라는 말이 이루어졌다.
'karika'라는 말은 종교나 철학 문법서 등의 강요를 기억하기 쉽게 요약한 시구(詩句) 나 시송(詩頌)으로서 게(偈)·송(頌)·게송의 뜻을 갖는다. 이런 용어가 prasannapad 의 서명(書名)에 보였고, 티베트에서도 이 범어 서명(書名) 그대로 사용된다.
때로는 그 앞에 'Mula'(근본, 기저)가 추가되기도 한다
D. 중론 - Madhyamaka - stra
stra는 논이라는 뜻이다. 본래는 sastra[논(論)]가 붙어 있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경(經)·율(律)·논(論)으로 분류하는 방식에 따라 나집(羅汁)삼장이 '중론(中論)'이라고 이름하였다. 오늘날은 범어로도 'Madhyamaka - stra' 즉 중론(中論)이라고 일반적으로 표기되고 있다.
2 중관학파의 사상적 특징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등의 비판
불멸후(佛滅後) 6·7백 년이 지난 용수 당시의 인도불교는 붓다의 근본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당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sarvastiv da)는 세상 모든 것들을 오위(五位)75법(法)으로 나누어 이들 각각을 영원불변의 실체성(實體) 내지는 실재성(實在性)을 지닌 것들로서 파악한 다음, 이들이 여러 형태로 상응(相應) 상반(相反)하는 관계에 의해 모든 형상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일면 붓다의 교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가운데 붓다의 교설 내용을 절대시 하는 가운데 형성된 관념체계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그 어떤 사유 판단에 영원불변의 실체적(實體的) 내지 외부에 실재하는 존재가 전제되고 있다면, 이는 벌써 근본불교의 본질에 어긋나고 마는 것이다. 이는 '무상(無常)·무아(無我)·연기(緣起) 중도(中道)'라는 석존교설(釋尊敎說)의 근본 정신에 위배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석존의 근본 뜻은 석존 자신과 설법내용을 포함한 일체가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인 것들이며 연기(緣起)하는 것들임을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봄이 옳다. 그리고 석존은 이런 연기법등을 통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비고비락(非苦非樂)의 중도(中道)(madhyama pratipada)에 의해서 정각(正覺) 열반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만일 설일체유부와 같이 다원론적 존재가 삼세에 실재한다는 전제하에서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이는 근본 불교와 어긋나는 잘못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용수는 이를 비판하고 시정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대승경전인 반야경의 '공관'을 다시 심화시켜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용수의 중론은 상주(eterbakusm)와 단멸(annihilationism), 아(我)와 비아(非我),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혼, 실체와 과정, 단일과 다수, 긍정과 부정, 동일과 차별 등 모든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이원론을 피하고, 불타의 가르침의 참된 정신인 중도를 밟고자 한 것이었다.
이런 용수의 입장을 계승한 중관학파는 용수의 견해에 의거해 일체의 모든 존재는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것에 의존하는 복합적인 존재이고 무상(無常)한 것으로서 여기에 영원불변한 실체는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으며 공(空)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영원불변하며 단일한 실체는 개념이나 말을 실체화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허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용수의 입장을 계승한 학자들에 의해 중관학파가 형성되어지는 것이지만 이를 계승한 학자마다 주장하는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용수는 많은 저술을 남긴 것으로 되어 있지만 오늘날 그 각각의 진위를 판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중관학파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은 결국 <중론>이 되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그 사상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중론송의 반야공관에 입각한 부정논리
중론송은 대승반야공관(大乘반若空觀)이야 말로 근본불교정신인 '연기(緣起)·무아(無我)·중도(中道)'를 가장 옳게 실현하는 것으로 보고, 이 공관에 입각한 특수 부정논리 즉 양도론법(兩刀論法)이나 오구문파(五求門破)와 같은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 논리 이론으로, 불타(佛陀)의 진의를 알지 못한채 교리 개념만을 집착·분별·회론하는 일부 아비달마 논사들의 잘못들을 냉엄 철저히 파척(破斥) 불식하였다.
즉 중론(中論) 27품(品) 450 여게는, 반야경들이 역설하는 일체개공관(一切皆空觀)을 바탕으로 당시 불교계에 정형화된 중요한 교리개념 대부분을 27 품목으로 거론하여, 이들을 실체 실유시(實有視)하여 분별(分別) 희론하는 사견(邪見) 오류(誤謬)를 없애버리기 위해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 특수형식의 논리를 구사하며 동시에 중도실상(中도實相)의 정법(正法)세계를 경쾌히 밝혀낸 것이다.
중론송에 일관되는 부정논리는 반야(般若) 공관(空觀)에 입각하고 있다.
본래 반야경전들에는 일체 유위법은 몽환포영(夢幻泡影)과 같고 일체법은 불가득(不可得), 무소유(無所有)이며, 제법(諸法)은 공(空)·무자성(無自性)이고 불생불멸(不生不滅)하다는 내용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제법(諸法)의 공함을 관행(觀行)하는 '반야바라밀(Praj aparamit )'은 보살행의 기초요 목표로 될 뿐만 아니라 불(佛)·세존(世尊)의 일체지(一切智)(sarv j a , 살파야(薩婆若)와 직결함을 지적하였다.
한편 방대한 반야경전의 내용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낸 반야심경에서는 오온 ,육근(六根), 육경(六境)등과 십이연기의 요소 내지 사성제(四聖諦)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지는 '지(智)' 내지 열반(涅槃)을 '얻음'등이 모두 '공(空)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반야심경에서 나열되고 있는 바는 바로 석존(釋尊)에 의해 모든 현상의 구성요소나 변화과정의 요소로서 제시되어진 것들로서 바로 석존의 설법내용의 중심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다. 결국 이는 석존의 설법 내용을 포함한 일체제법(一切諸法)이 모두 무자성이요 공함을 여실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일면 설일체유부등이 외도의 주장은 부정하지만 석존의 설법 내용은 실유하는 요소로서 절대시하는 경향을 불식시키는 측면도 갖는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중론송(中論頌)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불생불멸(不生不멸), 불래불거(不來不去)'인 까닭 이유를 매우 깊이 논증해 나간다.
중론송은 이런 부정논리를 통해 어떤 개체적 존재나 그 구성요소들(인(因)·연(緣), 온(蘊) 처(處) 계(界)·육계(六界)등) 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 개체나 구성요소들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 가령 생(生), 멸(滅), 거(去), 래(來), 작(作), 견(見), 염(染), 수(受), 취(取), 전도(顚倒) 고(苦)·낙(樂) 등에 대해서도 실체적(實體的)으로 항유(恒有)한다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을 밝혀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용수가 사용하는 부정논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a
그 현상들은 사종불생(四種不生)이다.
즉 자생(自生)·타생(他生)·공생(共生)·무인생(無因生)아니다. (관인연품(觀因緣品)
또한 과거(過)·현재(現)·미래(未) 삼세(三世)가운데 불생(不生)이며, 무시(無始)·무종(無終)이다.
또한 그 현상들을 일으키는 주체(主體)나 현상 자체는 유(有) 무(無) 역유역무(亦有亦無) 비유비무(非有非無)와 같은 방식의 사구사유(四句思惟)로도 파악될 수 없는 것들이므로 불생(不生)·불래(不來)이다.
나아가 그 반대현상들도 부정되어 불멸(不滅)·불거(不去) 비무(非無)가 아닐 수 없다고 논증한다.
b
또한 그 현상이 일어나는 주체(主體)와 관련해 인과(因果)관계나 능소(能所)관계로 그 현상들을 분석 검토해 봐도, 서로가 동일(同一)하지도 합일(合一)되거나, .공존(共存)하지도 않으므로 불일(不一). 불상(不常), 불공(不共), 불합(不合)이고,
또 반대편으로 서로는 전혀 관련성 없는 별개적 이체(異體)인 것들이라고도 할 수 없으므로, 불이(不異)·부단(不斷)·비무(非無)가 아닐 수 없다고 논증해낸다.
(양도론법(兩刀論法),
c
또 이 논증을 확대 심화한 오구문파(五求門破)의 논리를 구사하기도 한다. 오구문파는 일체의 모든 것들에 대해 (1) 상호간 서로 같은 것인가. (2) 서로 다른 것인가. (3) 어느 하나는 다른 하나를 갖고 있는 것인가. (4) 어느 하나 안에 다른 하나가 있는 것인가. (5) 반대로 다른 하나에 그것이 있는 것인가를 관찰해 -오종추구(五種推求)
동일(同一) . 별이(別異) , 소유(所有), 상호(相互)간 서로에게 내재(內在)함을 모두 부정함으로서 그 실체적 존재성을 부정한다.
d
한편 서로를 동일(同一, 合一)하다고 하면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다른 것들(別異,不合)이라 보면 단견(斷見)이 생기는 모순·오류·불합리(不合理)에 빠지고 만다는 등의 귀류논증법(歸謬論證法)을 종횡 구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중론(中論)은 대승반야공관에 입각하여, 온갖 회론을 없애기 위해, 불생(不生)이나 불거(不去)인 까닭을 밝혀내는 그 특수 논중논리로써 , 생(生),멸, 상(常),단(斷), 일(一), 이(異), 래(來), 거(去), 유(有), 무(無) 등의 양극단을 초월한 불생불멸(不生不滅) 내지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중도(中道) 실상(實相) 세계에 참다운 진리성이 있음을 밝혀내었던 것이다.
중도실상 - 연기 무아 무자성 공 등의 사상
이렇게 용수가 부정논리를 통해 밝혀낸 연기 중도 무아 무자성 공의 사상을 대략적으로 요약해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A 연기
용수는 <중론>의 처음에서 '길상('吉祥한 연기'를 설하신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즉 <중론>의 귀경게에서 "不生不滅 不斷不常 不一不異 不來不去"로써 능히 모든 희론을 적멸시키는 길상한 연기를 설하셨고, 모든 설법자 중 가장 훌릉한 정각자에게 경배드린다"고 하면서 석존의 근본사상을 연기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명하는 것을 <중론>의 주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용수가 원시불교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B 연기와 팔부중도
그러나 그 연기를 불생불멸 등의 '팔부중도(八不中道)'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십이연기께 입각한 원시불교보다 그의 입장이 진일보했음을 알 수 있다. 원시불교에서도 중도는 설해지고 있다. 예컨대 <초전법륜경>에는 '고락(苦樂)중도'가 설해지며, <상응부>에는 자아의 연속, 비연속과 관련하여 '不常不斷의 중도, ·비유비무의 중도가 설해지고 있다. 따라서 <중론>의 '팔부중도'는 이 전통을 잇는 것이지만, 그 밑바탕에 '공'사상이 있다는 점에서 <반야경>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다.
C 이제(二諦)
<중론>은 이제(二諦)의 입장에 서 있다. 이것은 <대품반야경> 권25에 "보살은 2제에 주(住)하여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한다.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가 바로 그것이다" 라는 가르침을 계승하는 것이다. <대품반야경> 권22에는 세제의 '여(如)'와 제일의제의 '여(如)'는 같다고 되어 있다. 즉 세제와 제일의제로 나타나는 진리는 동일하지만, 방법이 다른 것이다. 본래 중생이라는 실체는 없다. "2제 중에서는 중생은 불가득이지만,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방편력을 갖는 고로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한다"고 말해지는 것처럼, 2제에는 방편 up yakau aly(선교방편善巧方便)의 지혜가 있으며, 이 방편에 입각하여 중생(세속제)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편은 반야바라밀의 실천에서 생긴다. 이것이 제일의제이다. <중론> 에서는 제24품에서 "제불은 2제에 의거하여 법을 설하신다. 세속제와 제일의제가 바로 그것이다"라고 설하는 등이 <반야경>의 설을 계승하고 있다.
세간의 존재는 모두 무상하며 변화해간다. 따라서 어떠한 것도 '이것'으로 파악할 수 없다. 파악하는 순간 상태가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존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다른 말로 일체개공(皆空)이라고 한다. 이 공 nya 의 입장에서 '존재' 즉 법 dharma을 이해하는 것이 제일의제 param rtha -satya의 입장이다. 따라서 존재는 그 본성에 있어서는 유라든가 무라든가 하는 형태로 파악되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시간적 존재자의 진실된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제법은 공이지만, 현상은 천차만별로 현현하고 있으며, 이로써 시간적 세계가 형성되어간다. 공이라는 것도 진실이지만, 동시에 나와 너의 상대적 세계가 성립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연기의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하는 '법이 본래 모습이다. 이러한 상대적으로 성립하고 있는 개체를 인정하는 입장이 세속제 lokasanlvrt satya이다. 이것은 개개의 존재를 상대성에 입각해 바르게 이해하는 입장이다. 그것은 연기 pratityasamutp da를 바르게 앎으로써 '연기에 의해 성립하는 법 pratityasamutpann dharma(연이생법(緣已生法)을 바르게 아는 입장이다. 여기서 나와 너, 선과 악, 고와 락 등에 의거한 세속의 세계가 바르게 알려진다.
이른바 세속의 명언(名言) 개념을 통하여 힉득한바 인식내용들은 모두 희론의 범위에 속하여 이른바 속제라 칭한다. 오직 불법의 이치에 의하여 바로 직관하고 증득한 제법실상을 진제라 한다. 속제(俗諦)에 따라 말하여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이 되고 일체는 모두 있다고 한다. 진제에 의해 말하되 일체는 모두 그 실체의 자성이 없으며(一切皆無自性) 모두 마침내 공하다(畢竟空)고 한다. 그리하여 世俗의 있음은 필경 공하다. 필경공한 즉 세속에 존재할 수 있다. 만일 속제에 의하지 않는다면 제일의를 얻지 못하고 열반을 얻지 못한다.
이론상으로는 품성에 있어 공함과 방편을 통일한다.
인식상으로는 명언(名言)과 실상(實相)을 통일하고 속제(俗諦)와 진제(眞諦)를 통일한다.
종교실천(宗敎實踐)으로는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번뇌(煩惱)와 열반(涅槃)을 통일한다. 이른바 假有 性空,有無 二邊에 치우친 관점이 없음을 중관이라 이름한다.
D. 八不中道와 이제법
이 2제의 배경을 이루는 것이 '팔부"의 연기이다. 즉 제일의제에서 말하면, 일체는 '무아'이지만, 연기의 상관관계(상호관대(相互觀待) parasparapek a)에서 상대적으로 개체(제법)가 생기한다. 연기를 괄불의 비유비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제일의제가 되며, 유와 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세속제의 세계가 된다. 이처럼 용수는 연기를 2제와 팔부(八不)로 해석했다. 이것은 연기를 '상호의존(상호관대)의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E. 상호관대의 관계
상호관대가 개체가 성립하는 조건이지만, 상호관대하는 개체가 없으면 관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대하는 개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면, 상호관대가 개체가 성립하는 조건이라고는 말할수 없다. 즉 관대하는 개체가 없으면 관대는 성립하지 않지만, 개체가 이미 존재하면 관대는 필요치 않게 된다. 이처럼 '상호관대'라는 것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상호관대의 연기는 논리를 초월해 있다.
이처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진실상이 존재의 실상, 즉 '제법의 실상 F. 희론적멸 파사현정
제법실상(존재의 진실한 모습)은 사유를 초월해 있으며 언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것을 희론적멸 prapa c upa ama이라 한다. 회론은 분별 vikalpa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불완전한 판단을 말한다. 존재는 일반적으로 시간적이고 유동적이지만, 우리의 인식(식(識) vij na)은 그것을 유동적인 모습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유동적인 존재를 정지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한다. 다시 말해서 '개념화'한다. 그리하여 판단이나 인식과 현실의 진실상 사이에 필연적으로 괴리가 생긴다. 더구나 이러한 인식의 배후에는 욕망이나 분노, 집착 등의 번뇌가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집착에 근거하는 유한한 인식을 '분별"이라고 한다. 분별은 현상의 진실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인식이나 판단에는 항상 논리적인 모순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자기동일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변하고 있다고 본다. 인식에 이러한 모순이 생기는 것은, 유동적인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반야의 이해와, 똑같은 유동적인 존재를 개념화하여 이해하는 식(識)의 인식이라는 두 가지 앎이 있기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식의 근저에는 '무명지라는 것이 있다.
중관파는 인식이 안고 있는 모순을 철저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분별을 물리친다. 이것을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고 한다. 이것은 파사가 그대로 현정이다. 파사 후에 현정을 설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설하면 거기에도 모순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관파에 의하면 시간적 존재자·연기에 의해 성립하는 존재자는 한편으로는 유한한 면을 갖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영원한 성격, 전체적 성격을 갖는다. 이 양면성을 갖는 현상을 유한이라는 쪽에서 이해하면 세속제의 입장이 되고, 무한 ·전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면 제일의제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G. 중도
세속제와 제일의제의 조화가 중도 madhyama pratipad이다. 그러나 중도는 세속제와 제일의제 속에 해소되어 있는 것이며, 제3의 제(諦)(진리)로서 중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세속제에 있어서 현상(제법)을 인식하는 것은 '지(智) j na'이지만, 이것이 제(諦)이기 위해서는 식이 집착이나 무명을 버리고 '반야'에 동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에 제일의제에 있어서 제법을 인식하는 것은 반야(praj 혜(慧))이다. 반야란 영원이나 전체를 아는 전체적 직관, 혹은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는 유한자를 아는 인식주체이며, 반야는 무한자를 아는 지혜이다. 반야로써 알려지는 법의 본성은 공이다. 여기서는 법의 개별적 ·차별적인 면은 사라진다. 지가 유한자를 인식하면서 동시에 그 대상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야의 인식, 공의 통찰이 그 이면에 있으면서 식의 인식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공의 인식이란 '무집착 ·무분별'을 말한다. 식이 반야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그 인식은 집착적이게 되며, 자아에 대한 집착(아집), 외계에 대한 집착(아소집)이 생기고, 거기서 인식되는 것은 개체이지 법은 아닌 것이다. 연기의 도리에서 성립하는 개체를 보는 곳에서 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법이란 영원의 상(相)에서 보이는 유한자이다.
H. 공
'공'은 허무라는 의미는 아니다. 공이란 현상이 변화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무상이라는 말과 같다. 다만 무상이 현상을 직접 인식하는 면에서의 파악이라면 공이라는 것은 그 현상의 이면에 대한 파악을 시도할 때 그 안에 어떤 실체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서 그 어떤 현상적인 개념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기 위해 공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리고 현상 일체의 이면은 공이라는 것은 어떤 공이라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空空)
그러나 이 공의 파악을 잘못하여 일체가 공하기 때문에 인과가 없으며 선악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존재의 본성이 공이기 때문에 연기의 도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대로 공하지 않고 어떤 실체가 있고 또는 어떤 모습으로 실재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것으로 고정되어 있어야 하므로 변화하여 나타난다는 현상이 있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공하다는 면은 반대로 현상법에서 연기의 도리가 나타나게 하는 전제적 기반이 되어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의 활동에는 법칙성이 있다. 공은 연기라는 것과 같다. 이 점을 <중론>(제24품 제 7게)에서는 공성 nyat 과 공의 의의 nyat rtha, 공의 활동 nyat -pra yo-jana 등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용수는 또한 공에 있어서 성립하는 개체를 '가(假)(praij apti, 상대적으로 성립한 것 up daya praij apti 인시설(因施設)라고도 부르고 있다. 법(존재)은 무상전변(無常轉變)의 공에 있어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컨대 특정한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그 이름은 '가명' 이다.
I. 지의의 3 제설과의 관계
이 연기 ·공 ·가 등의 관계를 <중론> (제24품 제18게)에서는 "연기로 성립하고 있는 것(중인연생법(衆因緣生法))을 우리는 공성이라고 설한다. 그 공성이 그대로 상대적인 가(假) 이다. 또한 그것이 중도이다"라고 하면서 공(空) ·가(假) ·중(中)의 3제를 설하고 있다. (단 <중론>에는 3제라는 용어는 없다. 이것을 3제라고 보는 것은 천태대사 지의의 입장이다). 앞의 2제에 적용시켜 말한다면, 공성은 제일의제이며 가명은 세속제이다.
세속제란 언어로써 표현되는 진리라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중도는 이 공성과 가명의 별명이다. 공성이 주체적으로는 그대로 중도이다. 그래서 길장은 제일의제 속에 중도가 있고 또한 세속제 속에도 중도가 있으며, 제일의제와 세속제 속에도 중도가 있다고 하면서 진제중도 ·세제중도 · 2제합명중도를 설한다. 즉 연기를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도이다. 동시에 그것은 무집착의 실천이다. 연기의 도리를 모르면 공이 허무로 잘못 이해되어 제일의제가 제(諦)(satya, 진리)라는 의미를 잃게 된다.
<대승이십송론>에는 '삼계유심'의 사상이 있는데, <중론>에는 유심론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론>의 게문에는 '분별 vikalpa'이라는 용어가 보인다. 이것은 유식설에서 인식의 미망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이 된다.
중론에 있어서 연기는 불생불멸 등의 '팔불', 공 ·가 ·중의 3제, 그리고 제일의제와 세속제로써 설명되고 있다. 이 용수의 2제설을 계승하여 중도를 해명한 것이 길장(549-623)의 <중론소(中論疏)이다. 이에 대해 월칭 Candrakirti (600-650년경)의 <중론주(註) 프라산나파다 prassnnapada > 에서는, 연기에 포함되는 '상호의존(paraspar pek 관대(觀待), 인대(因待)라고도 함)'이 자세히 설해지고 있으며, 상호인대로부터 공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의(538-597)는, 불성사상을 도입하여 중도를 제3제라 보고 공가중(공가중(空假中))의 3제를 설하는 점에서, 앞의 두 사람과는 다른 새로운 입장에 서 있다고 하겠다. 이것을 '원융
3제'라 하여 '원융'이라는 말로 연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3제를 설정하는 점에서 길장과는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중론>의 해석으로서는 길장의 것이 용수에 가깝다.
J. 불타관
용수시대에는 <법화경>이나 <화엄경> · <아미타경> 등, 웅대한 불타를 설하는 대승경전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불타관에는 그러한 불타가 반영되어 있었다고 보아도 좋다.
용수의 불타관은 대승경전에 나타난 불타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단 <중론>은 공을 설하기 때문에, <관여래품>에서는 "여래는 유무를 초월해 있으며 적멸상이다"라고 할 뿐, 적극적인 불신론은 설하고 있지않다.
이것이 설해지는 것은 주로 <대지도론>이다. <대지도론> 권9에는 법성신(法性身)과 부모생신(父母生身)이라는 2종의 불신이 설해져 있다.
또한 <대지도론> 권10에서는 불신을 신통변화신과 부모생신으로 나누고 있기 때문에 법성신은 신통변화신으로도 불리는 것이다. <대지도론> 권39에서는 보살에는 2종이 있다고 하면서, 업에 따라 태어나는 보살과 법성신을 얻은 보살을 언급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대지도론>에 의하면, 불타나 대보살의 본질은 법성신이지만, <중론>의 (관여래품)에 있어서는 여래는 적멸상이며, 그 몸은 유라고 할 수도, 무라고 할 수도 없다고 설하고 있다. 제법실상은 미묘적멸하며, 필경청정한 제법실상이 여래라고 한다. 그러나 이 여래는 분별이나 희론을 떠난 지혜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을 살펴본다면 용수의 불타관은 이신(二身)설(說)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3 중관학파의 분류
티베트의 종의서(宗義書)인 '학설보환(學說寶環)'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인도에서 중관학파는 다음과 같이 그 흐름이 나뉜 것으로 보인다.
즉, 중관학파는 먼저 귀류론증파(歸謬論證派 pr san,gika)와 자립논증파(Sv tanrika)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그중 자립론증파(自立論證派)는 다시 유가행(瑜伽行)중관파(Yog c ra M dhyamika)와 경량행(經量行)중관파(Sautrantika M dhyamika?)로 양분되었다.
그리고 그 중 유가행중관파는 형상진실파(形象眞實派)와 형상허위파(形象虛僞派)로 다시 나누어졌다.
그리고 그 중 형상 허위파는 유구론파(有垢論派)와 무구론파(無垢論派)로 양분되었다.
오늘날 티베트의 종의서(宗義書)인 '학설보환(學說寶環)'의 내용에 따라, 중관학파의 학승들은 그 형성시기의 초기(初期), 그리고 불호(佛護)와 청변(淸辨)에 의해 양분되는 중기(中期), 그리고 적호(寂護)와 연화계(蓮華戒) 등이 활동하던 시기의 후기(後期)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위 학파별로 정리된다.
< 중관학파의 계도 >
4 중관학파(中觀學派)의 형성과 역사
중관학파의 형성
용수에 의해 중론송(中論頌)이 쓰여졌던 시기를 중관학파의 형성의 원시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다른 불교내 흐름과 뚜렷이 구별되어지는 독립된 학파로의 형성은 그 보다는 늦게 형성되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는 중관학파(中觀學派)라는 이름을 갖는 학파가 형성되었던 것은 유가행파가 나타난 이후 유가행파와 중관학파가 그 경향이 구별되어짐으로서 비로소 형성되어진 것으로 보게 된다.
가령 용수의 제자인 제자(提姿)나 나후라발타라(羅喉羅跋陀羅)가 활약하고 청목(靑目)이 중론송을 주석했던.때까지도, 무착(無着)(A a ga, 310∼390 년경 / 또는 395-470 )이나 세친(世親)(Vasubandu, 330∼390 년경/ 또는 400-480 년)이 중론송을 해석하거나 이것에 의해 타학설(他學說)을 비판했던 점 등으로 보아, 용수의 중론송은 대승불교 전체의 공유 성전(聖典)으로 연구 해석되고 의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론송을 기초하면서도 인식론적(認識論的) 색채를 띈 유식학설(唯識學說)의 체계가 확립되어 감에 따라, 중론송에서 밝혀진 공성(空性)(s nyat )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로 달라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중론송(中論頌) 그것에 돌아가고자 하거나 유식학설에 대항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이 운동을 중심하여 마침내 중관학파가 형성되었던 것으로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서는 중관학파가 형성되어지는 시기는 유식설(唯識說)을 주장하는 유가학파(瑜伽學派 Yog c ra)와 관련해서 대략 4세기 경에 형성되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중론송이 지어진 이래, 이것을 기본성전의 하나로 의식하게 되는 시기, 그리하여 학파로서 기반을 갖추게 되는 시기를 중관학파의 초기로 보면 용수(龍樹) 제바(提婆) 라후라발타라(羅喉羅跋陀羅) 청목(靑目) 바수(婆藪) 등이 이에 해당되게 될 것이다.
중기(中期) 중관학파 - 귀류논증파와 자립논증파
A. 불호 귀류논증방법
용수나 제바 이후 200여 년이 지난 때에, 중론송의 사상을 계승 부흥한 논사는 불호(佛護)이다. 그는 용수보살이 자주 구사했던 논증형식인 귀류법을 사용하여, 즉 대론자의 주장이나 학설이 모순을 내포하고 불합리에 빠지게 됨을 지적하는 논증방법으로, 중론송의 본질을 간접적으로 밝혀내고자 했다. 궈류법(歸謬法)은 배리법(背理法), Prasa ga 또는 Prasa g anum na 라고 한다.
그는 중론송 주장의 공성(空性)은 '적극 표출되지 않고, 상대의 주장이나 견해를 파척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B. 청변의 자립논증
중관학파(中觀學派)에서는 그 중기에 바바비베카Bhavaviveka(청변(淸辯),500-570무렵)가 디그나가의 논리학을 채용하여 공의 사상을 추론식에 의해 논증하고자 하였다.
즉 "공을 적절한 논리로 적극적으로 밝혀 낼 수 있다"는 입장에서, 당시 진나(陳那 Dign ga)가 정립했던 신인명론(新因明論)에 의한 정언적(定言的) 추리(推理)형식의 논증법을 구사한 청변(淸辨)은 위의 불호(佛護)를 비판했다.
즉 붓다팔리타 Buddhap lita(불호佛頀,470-540 무렵)가 나가르주나의 (중론(中論))을 주석하면서 귀류(prasa ga, reductio ad absurdum)만으로 논의하는 것을 비난하고 자신은 이른바 정언적(定言的) 추론식(推論式)에 의해 공의 진리를 증명하려 하였다. 이 추론식은 후대자립논증이라고 불려졌기 때문에 바바비베카의 계통을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Sv tantrika)라고 하게 되었다.
C. 스바탄트리카파(派)
이 파는 공사상을 나타내는 데 스바탄트라 아누마나 'svatantr num na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스바탄트라'란 다른 힘을 빌리지 않고 자력으로 활동한다는 의미이며, '자립(自立) · 자기(自起) ' 등으로 번역된다. 아누마나는 추론(비량) '논증이란 의미이다. 즉 불호는 프라상가의 논법을 써서 상대방의 입론을 파척했지만, 그것은 파척에 머물러 있으며, 적극적으로 공사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청변은 공의 입장을 논리에 의해 적극적으로 나타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용의주도한 논증식을 사용하면, 프라상가(과오(過誤)의 부수(附隨))에 빠지지 않고 공사상을 논증식으로써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러한 논리를 스바탄트라 아누마나(자립적 논증 ·독립의 추론)라고 불렀다. 그리고 불호의 프라상가 논법을 평하여, "인(因)과 유(喩)를 설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논증식으로 되어 있지 않다. 타인들의 논란에 회답을 하고 있지 않다. 상대방의 과실을 지적할 따름이므로, 불호의 논법을 사용하여 그 주장과 전혀 반대되는 주장이 그대로 성립하는 모순을 낳는다"고 하면서 역(逆)의 논증식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청변은 공을 나타내는데는 프라상가 논법으로는 불충분하며, '독립된 추론'으로 공을 논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입장에서 청변은 용수의 <근본중송>을 주석하여 <반야등론석>을 짓고 불호의 설을 비판하여 스바탄트라 아누마나를 구사하여 중관파의 입장을 천명했던 것이다. 이처럼 청변은 논리를 중시했지만, 공성 자체는 논리를 초월해 있으며, 공성은 논리적 사고가 미치지 못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승의의 입장에서는 논리학을 부정하면서 도 세속(언설(言說), vyavah ra)의 범위내에서는 공성을 논리에 의해 증명하려고 했다는 점에 청변의 독자성이 있다. 이 청변의 사상적 입장이 스바탄트리카 Svatantrika라고 불린 것이다. 이것은 '자재론증파(?在論證派)'혹은 '자립파(自立派)'등으로 번역된다.
이 청변의 입장은 동시대의 진나에 의해 불교의 논리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그것에 영향을 받아 중관사상에 논리학을 도입하여 성립한것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당시는 일반적으로 논증식에 의해 철학설을 표현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청변의 입장은 월칭의 입장보다도 유가행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나는 480-540년경에 생존했으며, 청변은 490-570년경에 생존했다. 따라서 동시대인이면서도 청변쪽이 약간 후배였다 단, 청변은 '일체는 유식이다'라고 하는 유가행파의 입장을 취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세속으로서는 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를 경량부중관파(Sautr ntik Madhyamika, Madhyamik Sautr ntika)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월칭도 세속으로서는 외계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러나 청변과 월칭은 세속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여하튼 그들은 승의제를 '언망려절(言亡慮絶)의 세계로 보기 때문에, 그것을 유(有)라고 할 수도 없고 무(無)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 점에서는 청변과 월칭모두 유가행파와는 다르다. 그러나 그후에 나타난 적호(寂護) ntiraksita(725-790년경)는 유가행파의 설에 영향을 받아, 세속으로서는 외계가 무(無)라고 설하지만, 승의로서는 마음도 자성무(自性無)라고 설했다. 유식설은 심(心)(식(識))의 유(有)를 설하기 때문에, 적호의 설은 이 점에서 유가행파와 다르다. 그 때문에 그는 유가행중관파 Yogacar Madhyamika라고 불렸다. 즉 청변은 스바탄트리카파였지만, 적호를 비롯한 유가행중관파에서 보면, 그의 입장은 경량부중관파로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프라상기카파, 스바탄트리카파라는 명칭은 인도불교에서는 없고, 티베트불교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즉 종카파의 <보리도차제론(Lam-rim)에 "설산취(雪山聚)(즉 티베트)에서 불교학자가 중관사(中觀師)를 프라상기카파와 스바탄트리카파로 나누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부톤은 즈냐나가르바(700-760년경) ·슈리굽타 ·샨티라크시타(적호(寂護)) ·카말라실라(연화계(蓮華戒), 740-795년경) ·하리바드라 등을 유가행중관파에 속한다고 하고 있다. 후기불교의 중요한 학자들은 대부분 이중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후기에는 불교가 점차 중관 ·유가의 융합시대로 접어 들었다고 보아도 좋다.
D. 월칭의 청변에 대한 비판
그 뒤 월칭(月稱)은 이 청변(淸辨)을 비판하면서 스승 불호(佛護)를 옹호했다. 그는 귀류논증법의 교묘한 부정 논리를 종횡으로 구사하여 모든 사견(邪見)을 없애고자 했고, 특히 청변계(淸辨系)를 통렬히 공박했던 것이다.
- 자립논증파와 귀류논증파의 분열
이리하여 중관학파는 불호(佛護)·월칭(月稱) 계통의 귀류론증파(歸謬論證派)(Pr sangika,) 와 청변(淸辨) 계통의 자립론증파(自立論證派 Svatantrika,) 로 갈라졌다고 보아진다.
귀류논증파는 달리 필과공성파(必過空性派)라고도 하며 자립논증파는 자의입종파(自意立宗派)라고도 한다.
그 후에는 적천(寂天) 등이 귀류논증파의 계통을 이었고, 관서(觀誓)등은 자립논증파 계통에 속했었다.
E. 귀류논증파의 귀류논증
찬드라키르티 Candrak rti(月稱, 600∼650 무렵)는 모든 것이 공하다고 하는 중관(中觀)의 진리는 논리를 초월한 것이며, 따라서 오직 반론자의 주장을 모순으로 유도하는 귀류만이 중관자에게 있어 유효한 논증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논리학의 중관철학에의 적용을 반대하여 붓다팔리타를 변호하고 바바비베카를 비판하였는데, 이러한 학문적 계통을 귀류론증파(歸謬論證派) Prasa gika 라고 한다. 중관학파 역시 이렇게 자립논중파와 귀류논증파로 분열하기에 이른 것이다.
귀류는 가언적인 간접논증이지만 인도에서는 느야야학파에서나 불교논리학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확실한 추리로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도논리학이 정언적(定言的) 추리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체의 모든 존재는 공이라고 주장하는 중관학파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명사(名辭)는 실재성을 갖지 않기때문에 그 논증은 반드시 가언적(假言的)이어야 하지 정언적(定言的) 추론식을 구성할 수는 없다. 바바비베카는 특수한 한정을 가한 후 형식적으로는 다수의 정언적 추론식을 구성하였지만 그것들은 실제적으로 귀류와 같은 가언적인 것이었다.
다르마키르티는 그가 만년에 지은 (바다 느야야V dany ya(논쟁의 논리))에서 순간적 존재를 논증(-찰나멸론(刹那滅論)하면서 가언적 추리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싼타라크시타의 제자 카말라씨라Kama1a i1a도 프라상가 아누마나Prasa gaanum na라고 하는 명칭 하에 귀류추리를 인정하였다. 11세기가 되면 즈냐나쓰리미트라, 라트나키르티, 그리고 특히 라트나카라산티에 의해 가언적추리의 이론이 완성되어 귀류도 빛을 보게 되었다. 이 단계에서는 중관의 두 파의 분열도 자연스럽게 해소되어 버린 것이다.
F. 경량부중관파 와 유가행 중관파
그리고 한편 자립논증파 계통도, 청변(淸辨)은 유식설(唯識說)에 반대하여 외계의 실재(實在)를 인정하므로 경량부중관파(經量部中觀派)라 불려지게 된다.
반면, 적호(寂護)나 그의 제자 연화계(蓮華戒)는 유식사상을 도입했으므로 유가행중관파(瑜伽行中觀派)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분열의 시기를 '중기 중관학파'라고 보면, 이 시기의 대표적 학자는 불호(佛護) 청변(淸辯) 월칭(月稱) 관서(觀誓) 적천(寂天),등을 들 수 있다.
이외에 Praj karamati(950∼1030년 경)도 중기에 넣기도 한다.
후기(後期) 중관학자(中觀學者)
위와 같은 중기 중관학파에게서는,
중론(中論) 주석을 기본하고 있는 점과, 논증방법의 상위에 따라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와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로 나누어진 점, 그리고 유가유식학파에 대한 강한 대항의식을 가졌던 점 등의 특징이 보인다.
그러나 그 후의 중관학자들에게서는, (1)용수를 기준함에 적지 않게 법칭(法稱)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점, (2) 대부분 자립논증파에 속하는 점, 그리고 (3) 적호(寂護)나 연화계(蓮華戒)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경량부(經量部) 및 유식파(唯識派) 등을 중관파의 입장에서 종합했듯이 유가행파(瑜伽行派)의 학설을 흡수했던 특징이 보인다.
이 후기에 속하는 학자들은 J nagarbha(8c.), 적호(寂護), 연화계(蓮華戒)(Kamalasita, 745∼795년경) , Vimuktisena(8c.), Haribhadra(800년 경) 등을 들 수 있다.
중관학파의 영향
이들은, 대승불교 초기부터 인도불교의 최후(13C경)까지 존속하여, 인도불교의 여러 학파 중 가장 오랜 역사와 가장 많은 문헌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sarv stiv da)나 경량부(經量部)(Sautr ntika) 그리고 유가행파(伽行派)(Yog c ra) 등의 불교학파를 종합흡수하는 사상과 철학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이들의 학설(Madhyamak dar ana)은 중원대륙(中原大陸)으로 전파되어, 한자(漢字)문화권(文化圈)에서 찬란히 꽃피을 대승 원융무애(大乘 圓融無碍)사상의 원천으로서 삼론(三論)교학을 형성시키거나, 천태(天台)· 화엄(華嚴)·선(禪)·정토(淨土)·밀교(密敎) 등의 현란한 교학 수립 전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티베트불교 확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또 이들을 바탕한 삼론사상(三論思想)은 일본에 처음 불교를 보급하고 남도불교(南都佛敎)의 첫 종파를 형성시켰다.
5 중관학파의 학자들
이하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중관학파를 구성하는 학자들에 대해 다시 한번 그 저서등을 중심으로 대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초기(初期) 중관학자(中觀學者)
㉠ 용수(龍樹) : 대승불교의 기반을 확립 심화했다. 저서(著書)(한역장경에는 20부 154권, Tibet장경에는 95부) 중에는, 『중론송(中論頌)』이나 『십이문론(十二門論) , 『육십송여리론 『회쟁론(廻諍論)』, 등과 같은 대승공사상에 관한 철학서가 있다.
대승보살의 실천수행법을 설명하는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 『보리자량론 (菩堤資糧論)』, 그리고 올바른 정치와 왕도 및 그 덕목(德目)을 밝히는 『 보행왕정론(寶行王政論) , 권계왕송』 등이 있다. 그의 많은 저서 중 주저(主著)는 중론송이다. 다른 저서에 이것의 내용이 번번이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 용수가 후세에 끼친 영향
용수는 팔종(八宗)의 개조라고 말해지며, 후세의 불교에서 용수를 종조(宗祖)에 포함시키는 종파가 많다. 이것은 그만큼 용수의 학문의 폭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수는 중관파 Madhyamika의 개조라고 하는데, 이것은 <근본중송>에 기초한 학파이다. 동시에 이것은 <반야경>의 공사상을 조술한 학파이다. 이것은 중국에서는 제바의 <백론>을 추가한 <중론> · <백론>· <십이문론>을 소의로 하는 '삼론종'이 되거나, 여기에 다시 <대지도론>을 추가하여 '사론종'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천태종의 사상으로도 발전해간다. 인도에서도 중관파는 유가행파와 더불어 후세까지 오래도록 번영했다. 그러나 중관파에는 화엄 계통의 사상은 계승되지 않았다. <십주비바사론>이나 <대승이십송론> · <보리자량론> 등에는 화엄사상이 설해져 있다. 이들은 공사상과 아울러 무착이나 세친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밀교와도 사상적으로 관계를 맺어간다. <십주비바사론>에 (이행품)이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인데, 여기에는 아미타불의 신앙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정토교의 원류가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용수의 사상은 다방면으로 발전해가지만, 직접적으로는 중관파로 발전하는 것이다.
㉡ 제바 ( rya -deva, 성천(聖天), 170∼270년 경)
백론 (S.atasastra, 2권 20품 50게)과 『사백론』(Catuh astra, 16품 400게), 『백자론() 및 그 주(註)등을 지었다. 중론송에 가르쳐진 파사적(破邪的) 활동에 힘썼다.
<제바보살전>에 의하면, 제파(提婆) ryadeva는 남인도의 바라문 출신이라고 하는데, <사백론(四百論)>에 대한 월칭의 주(註)에 의하면, 제바는 세일론 출신으로서 왕자였는데, 왕위를 포기하고 출가하여 남인도로 와서 용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대당서역기> 권10에는 제바가 주리야국(珠利耶國)(다냐카타카와 칸치푸라 사이에 있는 나라)의 성 서쪽에 있는 가람에 머물면서 아라한과 논의했다고 한다.
㉢ 라후라발타라(羅喉羅跋陀羅)(R hulabhadra, 200∼300년 경 )
: Ppraj paramlt stotra (찬반야바라밀게, Saddharmapun,dar kastava (묘법연화찬(妙法蓮華讚)) 등지음.
티베트의 전승에는 라훌라바드라가 용수의 스승이었다는 설이 있다.
㉣ 청목(Pin.gala, 4c. 초) 중론송을 주석(註釋)하였다. 나집(羅什)삼장에 의해 그 게송과 해석문(장행석(長行釋)이 함께 '중론(中論)'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되어, 중론송의 주석서로는 가장 오랜 것으로 제일 많이 읽혀지고 있다.
㉤ 바수(婆藪)(Vasu) : 제바의 백론(百論)을 해석찬 백론소(百論疏) 9권을 지었다.
중기 중관학자들
㉠ 불호(佛護 Buddhap litaa, 470∼540년 경) :
귀류논증 형식으로 중론송 일부를 해석하여 (티벳역으로만 현존) 중관사상을 부흥시켰다.
㉡ 청변(Bhavaviveka, Bhavya, 490∼570년 경)
중론송에 대해 주석했다. 이것은 한(漢)·장(藏) 양역(兩譯)되어 현존하는데 그 한역본이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이다. 이 밖에 독자적인 저서로 『중관심론송(中觀心論頌)』(범어 티벳어 모두 존재한다.) 『사택염(思擇炎)』 (중관심론주(中觀心論註), 장역(藏譯), 『대승장진론(大乘掌珍論)』 등을 찬술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는 자립적인 정언적 논증형식(Svatantr anum na)을 구사하여 불호를 비판했다.
㉢ 월칭(月稱)(Candrakirti, 600∼650년경 ) :
Prasannapad 라는 유일한 중론송 범어 주석서를 남겼다. (티베트역으로도 되어 있음). 그가 청변(淸辨)을 공박하고 스승 불호(佛護)를 옹호함으로써 중관학파의 분열이 뚜렷해졌다.
『십지경(地經)』의 십 바라밀(波羅蜜)에 따라 중관사상을 밝혔고, 중관불교입문서인 『입중론 즉 『Madhyamak vat ra(장역(藏譯)뿐)을 짓거나, 오온론(五蘊論) (Pa caskandaprakaran,a), 사백론(四百論), 공칠십론(), 육십송여리론(六十頌如理論) 등에 주
석했다.
㉣ 관서(觀誓 Avalokitavrata, 7c) : 불호(佛護)의 중론석 비판, 청변의 반야등론(般若燈論)을 주석하는 반야등론광석(般若燈論廣釋)』(Praj pradipat ka, 장역(藏譯)뿐)을 지어 인도철학이나 불교 각 학파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 적천(寂天)( antideva, 650∼750년 경) : 육바라밀(六波羅蜜)을 기준으로 보살의 학행(學行))에 관한 교훈을 모은 『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 (S'iks samuccaya,학처요집(學處要集), 27 게와 그 주석 및 경증(經證), 범장본(梵藏本) 현존)과 초심자에게 보살행을 밝혀 주는 『보리비결(菩提翡潔)(Bodhicary vat ra, 입보리행론, 10품(品) 900여게, (범어본 티벳본 현존), 그리고 『경집(經集)』(S trasamuccaya) 등 지었다.
㉥ Praj karamati(950∼1030년 경) : 위의 『입보리행론 』을 주석한 『입보리행론 세소(細疏)』(Bodhicaryavatrapanjika, 범본 현존)를 지어 경량부나 유식파 비판하였다.
후기 중관학자
㉠ J nagarbha(8c.) :
적호(寂護)의 스승으로 『이체분별론(二諦分別論)』(Satyadvayavibha ga, 46게, 티벳역뿐임 )이나 『이제분별주(諦分別註)』(satyadvayavibha g v t 티벳역뿐임) 및 『유가수습도(瑜伽修習道)』(Yogabhavanamarga, 티벳역 뿐임.) 등을 지었다..
㉡ 적호(寂護) ' ( antaraksi 728∼788년 경) :
외교제파(外敎諸派)와 유부 및 경량부 등의 이론을 소개 비판하는 『진실요의(眞實要義)』(Tattvasa graha, 3645게, 범장본 현존)와 『중관장엄론(中觀莊嚴論)(Madhyamak la k ra) 및 이에 대한 자주(自註)(∼vrti)를 지었고, 스승의 『 이제분별론』을 주석하였다.
싼타라크시타(725-784무렵)는 인도불교사에 있어서 가장 해박한 지식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바바비베카 학통(學統)에 속해 있었지만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과 논리학에 정통하였으며 유식학파의 장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유식의 이론을 중관교학의 일부로서 수용하였기 때문에 유가행(瑜伽行) 중관학파(中觀學派)라 불려지기도 하였다. 싼타라크시타는 자신의 철학체계를 유부(有部) ·경량부(經量部) ·유식학파(唯識學派)의 이론에서 최고의 진리인 중관(中觀)으로 향해 을라가는 단계로서 설정하였는데, 말하자면 그는 불교의 4대 학파와 지식론학파의 이론을 종합하였던 것이다. 那爛陀寺(梵 Nalanda)의 학자로 靜命大師라고도 칭한다..
㉢ 연화계(蓮華戒)(Kamalasita, 745∼795년경) :
스승 적호의 『진실요의(眞實要義)』와 『중관(中觀) 장엄론 』에 대한 주석서인 『진실요의세소(眞實?義細疎)』(범어본 티벳본 현존)와 『중관장엄론세소 (中觀莊엄론 세소) 』(티벳역뿐)를 저작했고, 『중관명(中觀明)』(Madhyamak loka)와 『진실명』(Tattv loka) 그리고 『 일체법무자성논증』 등 독자적 저서 남겼다.
㉣ Vimuktisena(8c.) :
Haribhadra의 스승으로서 , 이만오천송 반야경(般若經)을 해설한 『현관장엄론(現觀莊嚴론)을 주석하는 『현관장엄론주(現觀莊嚴論註)』(Abhisamay -la k ra -vrti) 지었다.
㉤ Haribhadra(800년 경) · 『팔천송반야해설(八千頌般若解說) 현관장엄(現觀莊嚴)의 광명(光明)』이라는 대작(大作) (범장본 현존)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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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식 사 상
唯識思想이란?불교에 있어서 주요한 사상은 어디까지나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서는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하거나 "발원(發願)하는 종교", "수행의 종교" 혹은 "지혜의 종교" 등으로 나눌 때도 있다.
그리하여 이를 마음의 종교라고 정의할 때면, 거기에는 일반적으로 인식론적인 접근이나 관념론적인 설명이 대두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이론적인 고찰을 불교에서는 특히 유식사상이라고 하여 대승불교 교학의 한 분야로서 일찍부터 다루어져 왔다.
다시 말하면 이 유식사상은 불교사상 중에서도 우리들이 각자 소유하고 있는 마음을 종교학적인 측면에서 자세하게 취급하고 있는 분야로서 일종의 불교 심리학과도 같은 것인데, 이는 마음의 구조와 그 심리작용 등을 잘 인식하고서 활동하면 궁극적인 목적인 성불(成佛)의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원리와 그 수행성을 강조한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설된 이론적인 면과 실천수행적인 면을 간추려 보면,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계는 세 가지의 성질[三種自性]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를 결과적으로 생성케 한 우리의 마음에 관한 자세한 정의(定義) 등이 그 주요한 사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이론적인 면이 강한 유식사상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불교라는 한 종교를 표방한 사상이기 때문에 종교로서의 실천덕목인 유가행(瑜伽行)을 중점적으로 가미하여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가르침으로 그 자리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식사상이 불교 교학적인 면에서 검토, 연구될 때에는 자연 소승불교에서 주장하는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 등의 미비점을 알 수 있게 하며, 이보다 앞서 유행했던「반야경」계통의 공(空)사상이 그 진의를 상실하고서 지나치게 공허한 사상으로 일반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대승불교의 교의를 바로 알기 위해서도 유식사상이 흥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사상은 미륵(彌勒, Maitreya, 270∼350)과 무착(無着, Asa ga, 310∼390) 그리고 세친(世親, Vasubandhu, 320∼420) 등에 의하여 성립되었으며, 중요한 경론(經論)으로는「해심밀경(解深密經)」과「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섭대승론(攝大乘論)」,「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및「성유식론(成唯識論)」등을 들 수가 있다.
유식학개론 요약집(李萬 ,東國大學 佛敎學科 교수)-목 차-
1. 유 식 설
1) 유식설
2) 8식의 구조
3) 심성설
2. 유식의 수행
1) 유식의 수행
2) 오위
1. 유 식 설
불교에 있어서 주요한 사상은 어디까지나 샤캬무니 붓다가 깨달으신 진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서는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하거나 '발원(發願)하는 종교', 혹은 '수행의 종교' 등으로 나눌 때도 있다.
그리하여 이를 마음의 종교라고 정의할 때면, 거기에는 일반적으로 인식론적인 접근이나 관념론적인 설명이 대두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이론적인 고찰을 불교에서는 특히 유식사상이라고 하여 대승불교 교학의 한 분야로서 일찍부터 다루어져 왔다.
다시 말하면 이 유식사상은 불교사상 중에서도 우리들이 각자 소유하고 있는 마음을 종교학적인 측면에서 자세하게 취급하고 있는 분야로서 일종의 불교 심리학과도 같은 것인데, 이는 마음의 구조와 그 심리작용 등을 잘 인식하고서 활동하면 궁극적인 목적인 성불(成佛)의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원리와 그 수행성을 강조한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설된, 이론적인 면과 실천수행적인 면을 간추려 보면,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계는 세 가지의 성질〔三種自性〕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를 결과적으로 생성케 한 우리의 마음에 관한 자세한 정의(定義) 등이 그 주요한 사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이론적인 면이 강한 유식사상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불교하는 한 종교를 표방한 사상이기 때문에 종교로서의 실천덕목인 유가생(瑜伽行)을 중점적으로 가미하여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가르침으로 그 자리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식사상이 불교 교학적인 면에서 검토, 연구될 때에는 자연 소승불교에서 주장하는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 등의 미비점을 알 수 있게 하며, 이보다 앞서 유행했던「반야경」계통의 공(空)사상 등이 그 진의를 상실하고서 지나치게 공허한 사상으로 일반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대승불교의 교의를 바로 알기 위해서도 유식사상이 흥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사상은 미륵(彌勒, Maitreya, 270∼350)과 무착(無着, Asa ga, 310∼390) 그리고 세친(世親, Vasubandhu, 320∼420) 등에 의하여 성립되었으며, 중요한 경론(經論)으로는「해심밀경(解深密經)」과「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섭대승론(攝大乘論)」,「유식삼십송(唯識삼십송)」 및「성유식론(成唯識論)」등을 들 수가 있다.
1) 유식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 원리를 관찰하여 보면,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에 가치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이 세상의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 마음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다는 이 유심설(唯心說)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내용이다.
따라서 이러한 마음은 이 세계에 관한 개념은 물론이고 사상이나 감정 등을 모두 받아들인 결과라고 볼 수가 있는데, 정작 마음은 그 성질이 상주하여 불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단 일어난 순간에 없어져서 다시 다음 순간의 그것과 교차되는 것으로서 마치 폭포수에서 물이 계속하여 흐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의 생각이나 복합적인 사고가 형성되면, 그것을 유지해 줄 수 있는 힘이 존재하는 상태에서는 계속해서 한 흐름으로 유지해 줄 수 있는 힘이 존재하는 상태에서는 계속해서 한 흐름으로 유지되는데, 이러한 경우를 일컬어서 '마음의 흐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떠나서 모든 것이 그대로 의연하게 존재한다는 실재론(實在論)에 관한 인식 그 자체도 사실은 마음이 만들어낸 표상(表象)에 불과하며, 외계의 실재가 마음에 영사(映寫)되어 표상이 형성된 것이 아니고, 마음 스스로가 표상을 만들어낸 결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이 현상계를 성립시키고 있는 세 가지의 성질에 관하여 논할 때에도 이를 다분히 인식론적인 입장에서 정의하고 있다. 즉 그 가운데의 첫째는 우리들의 평소 밝지 못한 견해 등으로 말미암아 실체가 없는 것을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잘못 착각하여 아는 '가립적(假立的)인 존재형태의 것〔遍計所執性〕'을 인정하는데, 이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우리가 무엇을 인식할 때에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편견과 선입견 등의 감정을 가지고 편벽되게 처리하여 결과적으로 괴로움을 유발하는 착각이나 환상과 같은 존재를 말하며, 두 번째는 이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독립적으로 항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 등이 인연이 되어서 생성된다는 이른바 '서로 다른 것에 의존하는 존재형태의 것〔의타기성(依他起性)〕'을 인정하며, 세 번째는 위와 같은 두 가지의 성질들을 모두 떠나서 진실한 것 그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를 '원만한 존재형태의 것〔원성실성(圓成實性)〕' 등으로 그 성질을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성질의 관계를 예를 들어서 말하면, 투명한 수정(水晶)을 황색이나 녹색의 바탕 위에 올려 놓으면 이 색깔이 수정에 비쳐서 호박(琥珀)이나 벽옥(碧玉)으로 보이지만, 실제 거기에 있다고 생각되는 호박이나 벽옥은 사실 '가립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수정 그 자체도 또한 본래부터 있었던 불변의 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 의존하는 존재형태의 것'이며, 수정에서 호박이나 벽옥을 상상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를 '원만한 존재'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비유는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이 이 현상계를 관찰할 때에 이러한 세 가지의 성립조건이 항상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여 올바른 인생관을 확립할 때에 필연적으로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반면에, 그것을 바로 우리 마음의 올바른 인식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들 존재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마음의 주체(主體) 문제가 대두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아뢰야식(alaya-vijn na)에 관한 내용이다. 이 아뢰야식은 인간 존재의 근저에 항상 상존해 있으면서도 변함이 없으며, 그 흐름은 일생 동안 끊어지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의 생존에까지 계속 영향을 미쳐서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중생이 어떤 행위나 행동을 하는 한 그것은 대개 선업이거나 악업을 지어서 그 결고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때에 아뢰야식이 업력의 귀의처에 사용되어 그 속에 심종자(心種子)가 잠재하고 있다가 그에 알맞는 환경이나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모든 세계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서 현상계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어떤 창조주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며, 그것은 각 개인이 평소에 지은 선악업의 결과에 따라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람들이 본래부터 업을 짓지 않아서 마음속에 선악업의 종자를 함유하고 있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강조되지만, 중생들은 우선 집착과 무지 등으로 그 마음이 선점(先占)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업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 ― 업에 의하여 오염된 마음 ―을 정화시켜 주는 종교적인 실천덕목인 수행이 필요한데 그것이 다름 아닌 유가(瑜伽, Yoga) 행인 것이며, 이는 완전한 인격자로 나아가는 먼 길이자 바로 가까운 수행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2) 8식(識)의 구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인간 인식의 궁극적인 실체인 아뢰야식의 오염 정도의 여부가 중생과 성인(聖人)으로 구별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아뢰야식은 그 성질과 구조에 있어서 어떠한 양상을 띠고 있는가. 이를 설명할 때에는 대개 다른 인식 주체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즉 우리 인간은 그 마음의 주체가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심층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과의 상호관계를 아울러서 설명해야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8식설(八識說)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몸은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과 정신 등의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에 해당되는 것을 불교에서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이라고 하며, 이들이 중심이 되어 인식활동을 할 때에는 특별히 이를 안근(眼根), 이근(耳根) 내지는 신근(身根) 등으로 명칭한다. 더 나아가서 이들 인식기관들의 대상〔境界〕은 각각 물질[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등으로서 오직 이것들만을 상대하여 인식활동을 하는데, 만약에 눈을 통하여 물질을 분별했을 때에는 이를 눈으로 인식했다고 하여 안식(眼識)이라고 하며, 내지는 몸의 감촉을 통하여 알았을 때는 이를 신식(身識)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몸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 즉 5근(五根)과 이들 인식기관이 분별하여 아는 5식(五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 정신 부분에 해당되는 분야가 바로 의식(意識)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키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이 의식은 우리의 신체 외에 존재하는 정신적인 분야로서, 눈 등의 감각기관으로는 볼 수도 없고 만져 볼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것이 아니고, 앞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저 깊은 곳에서 항상 동반하여 일어나거나 아니면 독단적으로 활동하는 정신적인 소산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식의 대상을 불교에서는 특별히 '법경(法境)'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법이란 일체제법(一切諸法)과 같은 존재로서 유형적인 모든 사물은 물론이고, 무형적인 관념까지도 포함해서 말하는 그런 존재를 말한다.
따라서 우리의 몸은 다섯 가지의 근과 이들의 저류에 항상 흐르고 있는 의근 등 여섯 가지의 경계〔六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그 대상들인 여섯 가지의 경계〔六境〕를 합치면 십이처(十二處)가 되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일체(一切)'라는 술어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12처설'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른 사람 아닌 자기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귀로 들어서 분별할 수 있어야 하며, 내지는 몸의 촉감들을 통하여 감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외에 어떠한 기억력이나 상상력을 통해서라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지, 이들 모두를 통해서 도저히 감득할 수 없다면 설령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존재한다고 해도 인식 주체인 자기 자신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인식론적인 해석에서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식이 일어나는 데는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먼저 한 가지는 전오식(前五識)과 함께 일어나서 같은 대상을 인식하거나 아니면 5식과 함께 일어났지만 의식이 한눈을 팔아서 올바른 인식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 등 아무튼 전오식과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가 그것이고, 또 한 가지는 꿈을 꾸거나 망상, 공상 및 선정(禪定)에 들 때와 같이 의식이 독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 등을 말한다.
그러므로 소승불교시대에서는 이와 같은 다방면에 걸쳐서 그 인식활동의 범위가 넓은 6식설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우리들의 인식활동의 원리를 대변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본존성(保存性)과 때에 따른 단속(斷續)의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대승불교시대에 들어서서는 인간의 궁극적인 실체로서 어느 때, 어느 곳을 막론하고 항상 변화하지 않고 상존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상정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다름 아닌 제8 아뢰야식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은 우리들이 잠을 잘 때나 심지어 죽어서 혼백(魂魄)이 떠돌아 다닐 적에도, 내지는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 있을 때에도 그 활동을 계속한다는 것으로서 6도(六途) 윤회의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제8 아뢰야식을 일으킨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부러 우리가 어떤 의도적인 행위,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전인수 격으로 끊임없이 아치(我癡), 아견(我見), 아만(我慢) 및 아애(我愛) 등 4종의 근본 번뇌와 항상 같이하면서 업(業)을 일으킬 때에, 이들에 의한 인상(印象)이나 여운(餘韻) 등을 그대로 흡수하여 저장하는 장소로서 아뢰야식이 활용되는데, 이렇게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정신은 제6 의식(意識)보다는 깊고 제8 아뢰야식보다는 얕은 제7 말나식(末那識, manas-vijn na)이라는 의식이 상정됨으로 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7 말나식을 일컬어서 자아의식이라고도 하며, 이 식(識)에 의하여 업(業)을 지어서 우리 중생들이 결과적으로 세세생생 윤회케 되는 것이다.
한편 제8 아뢰야식은 이렇게 모든 업의 산물들을 스스로 저장하는 능장(能藏)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세력들을 소장(所藏)할 장소로서의 처소로도 제공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아뢰야식은 앞에서와 같이 항상 제7 말나식의 집착력과 아집 등에 의하여 유린 당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이럴 경우 제8 아뢰야식은 집장(執藏)의 뜻이 강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뢰야식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유루법(有漏法)이 현행하는 사이, 곧 아집(我執) 등이 활동하는 위치까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아집 등이 없는 성인위(聖人位)에 오르면 이 식(識)의 이름은 자연히 없어지기 때문이다.
3) 심성설(心性說)
그러면 이와 같은 심층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마음은 그 성품에 있어서 어떠한 경향을 지니고 있는가. 이에 관해서는 일찍부터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활발한 연구와 관찰들이 있어서 합당한 이론과 일부 수긍이 가는 해석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이견(異見)들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는 흔히 외부와의 접촉에 의하여 감정을 느낄 적에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前五根〕에 의한 것은 몸으로 직접 느끼고, 제6 의식의 분별에 의한 것은 마음으로 느끼지만, 제7 말니식이나 제8 아뢰야식 등에 의하여 얻어지는 감정은 사수(捨受)라고 하여 쾌감이나 불쾌감과는 상관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 밑바닥에 있는 마음은 궁극적으로 어떤 감정을 산출해 내는 발생지가 아니고, 항상 중립과 냉정을 잃지 않는 존재로서 고요한 바다〔靜海〕와 같은데, 이는 특히 제8 아뢰야식의 특성〔無覆無記性〕을 나타낸 것으로서 이 중에서 제7 말나식은 항상성(恒常性)은 있지만 그 번뇌적인 성질 때문〔有覆無記性〕에 고요하지 못하고 번잡스럽다는 것이다.
또한 마음은 본래 그 자체에 생각이나 사고 등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변화도 있을 수 없지만, 그러나 무엇을 잘못 인식하여 자연히 심리적인 갈등이나 번민 등이 초래되었을 경우에 홀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선천적인 특성〔本有種子說〕도 일부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일부는 후천적으로 전혀 새롭게 자기 자신의 업에 의하여 살아가면서 형성되어 간다〔新熏種子說〕는 이른바 복합적인 성격〔本新合生說〕이 강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와 같이 하여 형성된 우리들의 마음은 전철식(前七識)이 선악업을 지어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항상 이를 모두 수용하여 보존하는 것을 그 특질로 삼고 있는데, 아뢰야식의 이러한 성질을 무기성(無記性)이라고 한다. 좀더 자세하게 말하면 업을 일으키는 원인은 선성(善性)이나 악성(惡性)의 분별력에 의하여 시작되지만, 그 결과가 아뢰야식 내에 수용될 때에는 중성(中性)의 상태, 곧 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도 아닌 무기성〔非善非惡〕의 것으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특별하게 이 제8 아뢰야식을 또한 이숙무기성(異熟無記性)의 것이라고 일컫는다.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현명한 부모는 그 자식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입장과 같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 식 가운데에는 모든 업의 세력들이 풍부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면 이것은 진여(眞如)나 법성(法性)과 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입장이다. 다시 말하면 이 아뢰야식이 만일에 진여와 같이 변치 않아서 무위법(無爲法)이 된다면, 이에는 본래 작용이 없고, 또한 오고감이 없으며, 변치 않는 진리와 같기 때문에 여기서는 현상계의 제법이 생성될 수가 없다〔無爲無作用說 : 眞如凝然說〕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성의 것은 반드시 현상계를 낳을 수 있는 유위법(有爲法)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대승불교 전반에서는 이러한 제8 아뢰야식에 진여성(眞如性)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하나의 잡념법(雜念法)으로 취급하고 이보다 더 깊은 불멸의 어떤 것을 상정하여 제9 아마라식(阿滅識, amala-vijn na)을 세우는데, 이는 오염되지 않아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무구식(無垢識)이라고 하거나 혹은 백정식(白淨識)이라고 한 데서 그 진의를 찾을 수 있다.
한편으로 중국의 법상종(法相宗)에서는 유식학의 교의를 설정하면서 모든 대승불교의 사상을 포섭하고 천착했지만, 또 한 가지의 면에서는 대승불교의 이념과 개념을 달리하고 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유의종자차별설(有爲種子差別說)에 입각한 오성각별설(五姓各別說)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세계를 자세하게 관찰하여 보면 일체 유정(有情)들은 모두가 다 평등치 않다는 견해로서, 삼승(三乘)이 진실이고 일승(一乘)은 방편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선천적으로 5가지의 부류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각자의 아뢰야식 중에 간직되어 있는 지혜종자의 차이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보살종성(菩薩種姓)으로 태어난 사람은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으며, 독각(獨覺)이나 성문종성(聲聞種姓)의 이승(二乘)으로 태어난 사람은 각각 벽지불( 支佛)과 아라한(阿羅漢)이 될 수 있고, 이상 3가지 경우의 어느 쪽도 아닌 불확실한 종성〔不定種姓〕의 사람도 노력의 여하에 따라서는 2승을 거쳐서 마침내 성불할 수 있지만, 문제는 처음부터 전혀 붓다가 될 성품이 없다는 무불성종성(無佛性種姓)인 것이다. 말 그대로 불성이 없기 때문에 도저히 성불할 수가 없다는 것은, 대승불교의 알반적인 교의〔一切衆生 悉有佛性〕와도 어긋나는 독특한 사상인데, 이와 같은 무불성론자를 또한 일천제(一闡提, icch ntika)라고도 하여 (일)천제 무불성설을 주장하는 것은 오직 이 종파만의 교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방편으로서 현실의 세계를 직시하면 이와 같이 여러 부류의 중생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하나의 교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유식의 수행(修行)
이 세계는 오직 한 마음의 조작에 불과하다고 많은 경전에서 설파하고 있는데, 이 마음을 마치 허공과 같이 두루하고 모든 중생들에게 내재하고 있는 밝게 빛나는 것으로 간주하면 여래장(如來藏)사상이 되지만, 이를 윤회의 기로인 아뢰야식으로 해석하면 유식(唯識)사상이 된다. 이와 같은 윤회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는 마음이 번뇌의 세계를 그려내는 한편으로 이의 전환에 의해서 최고 실재인 지혜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이름하여 전식득지(轉識得智)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번뇌로 말미암아 오염되니 허망한 인식들을 수행의 힘으로 정화하고 전환하여 지혜를 증득하는 과정이 유식사상도 종교의 한 덕목인 이상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1) 유식의 수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계의 사물들을 눈여겨 관찰하여 보면, 거기에는 다 그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어서 서로 조화롭게 잘 정리되어 있으며, 초저녁이면 뒷동산에서 울어대는 소쩍새의 소리가 하도 서글퍼서 우리의 심금(心琴)을 애잔하게 울려 주는데, 이러한 자연적인 원리와 이치 및 우리들의 감정 등에 관하여 이를 지극한 마음으로 주의 깊게 성찰하는 것을 삼마타(三摩)와 비발사나(毘鉢舍那, vipas-yana), 즉 지심(地心)과 관찰(觀察)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개념은 여러 유가(瑜伽,Yoga)수행 중의 한 방법으로서 유가실천의 체험을 묘사하는 가운데 유식(唯識, Vijinapti-matra)이라는 이론적인 술어가 처음으로 나 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말하자면 유가를 닦는 마음속에 나타나는 갖가지의 영상은 다만 우리의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범한 자각적인 체념이 유식설을 성립시킨 내면적인 동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유식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유가를 실천하는 사람', 즉 유가사(瑜伽師,Yogacara)라고 불렀으며, 이들 또한 유가행파(瑜伽行派)라고 이름했다.
이 유가사들은 일찍이 초기 유부계통(有部系統)뿐만이 아니고 부파불교의 내부에서도 여러 논사들과 함께 교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지만, 뒤에 유가행파를 형성한 사람들의 선조는 학설의 경향으로 미루어 볼 때 광의의 유부적인 토양 가운데서 출현되었다고 단정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전적으로 의지한 바는 유부의 교학보다는 자기들의 체험이었으며, 그 체험을 뒷받침한 것은 당시에 이미 확립되어 가고 있던 대승불교의 선관(仙官) 즉 공관(公館)을 받아들인 것이 주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비로소 대승의 유가사가 탄생된 것이며 이 유가사들의 독특한 관법이 바로 유식관으로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유식관에 관한 것을 알아보면 먼저 '지념(止念)'과 '관찰'에 관한 내용은 불교의 어는 유파에서나 흔히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수행 방법이므로 유가행파의 특색을 지관법에서 찾는 것은 불합리하지만 이를 골격으로 하여 대승보살도의 체계를 세워서 그것을 유가수행의 단계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오직 이 학파만의 창안이다.
즉「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에 설해진 내용을 보면,
① 진리의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가르침을 듣는다.
② 들은 가르침에 대하여 근원적으로 사유한다.
③ 마음이 대상이나 자기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그 본래의 상태로 된다.
④ 있는 것은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은 없는 것으로 확실하게 관찰 한다.
⑤ 자기 존재의 근거를 완전히 없애고, 진리의 세계에 융화해서 일체의 중생과 평등한 입장에 서서 오염을 벗어난다.
라는 것이 유가수행의 단계인데, 첫 번째의 진리의 세계에서 흘러나온 가르침이란 곧 붓다의 교설인 성전 등을 스승에게서 잘 듣고 이를 스스로 독송하거나 이해하는 최초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의 근원적인 사유란 진리의 세계로부터 유포된 가르침을 듣고서 그 내용을 지식수단에 의해 잘 검토하여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진리를 보다 철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체험을 다시 체험하는 추가적인 체험이 필요한데 바로 이런한 추가체험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이 2단계를 거치면 마음은 오염되지 않는 투명한 상태로 된다. 그러므로 번뇌의 근원은 여기에서 끊어지고 번뇌가 없는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보살은 그 마음에 실재를 있는 그대로 비추며, 주관에 의하여 가립(假立)되어진 대상이나 영상은 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이렇게 근거의 전환에 의한 체험을 얻어서 자기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중생과 평등한 입장에 서서 오염된 번뇌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 보살이다.
이러한 경지에 오른 보살은 번뇌로부터의 해탈이라는 접에서는 성문(聲聞)이나 독각(獨覺)과도 같지만, 자기 한 몸의 해탈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중생구제에 종사하여 세계를 정화하는 활동에 직접 뛰어든 점에서는 성문이나 독가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느 진리 그 자체이며, 오염을 제거하고 공덕을 쌓는 것이 그 자신에게는 어떠한 감소나 증대도 가져오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5가지의 단계를「장엄경론」에서는 차례로 용기(容器), 안치(安置), 경(鏡), 광(光) 및 근거(根據) 등의 개념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여기에서 용기란 여러 가르침을 배워서 이를 마음 가운데에 축적해 나가는 과정을 마치 물을 그릇에 채우는 것에 비유한 것이며, 근원적인 사유란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이 이러한 가르침을 바르게 깨달을 가능성을 마음 가운데에 안치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다음으로 어떤 대상이나 자기로부터 집착을 여읜 마음은 암울하지 않아서 마치 거울과 같다는 것이며,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 주는 마음은 밝은 빛과 같아서 마침내 번뇌를 가졌던 자기 존재가 없어지고, 진리 그 자체가 자기의 근거로 자작되는 최종적인 근거의 대전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심(止心)과 관찰을 골격으로 한 유가에 관한 수행법이 일찍부터 유가행파에 의하여 유행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러한 것을 유식관이라고 한다.
2) 오위(五位)
이러한 유가행(瑜伽行) 수습의 단계들이 발전하여 유식사상에서 소위 오위설(五位說)로 정착되었지만, 부파불교 시대부터 이미 이와 유사한 내용들이 설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구사론(俱舍論)」의 현성품(賢聖品)에 의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청문(聽聞)과 사유(思惟)로 말미암아 마음이 해탈의 방향으로 굳어지는 단계인 순해탈분(順解脫分 : 3賢位)과 번뇌가 없어진 세계로 방향이 정해지는 단계인 순결택분(順決擇分 ; 4善根位)의 경지에 도달하고, 거기에서 다시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의 단계를 거친 다음에 마지막으로 아라한(阿羅漢, Arhan)이 되는 것이 소승의 성현들이 거치는 수습단계(修習段階)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보면 유가에서 지향하는 목표와 소승에서 바라는 이상이 비록 다를지라도 그 수습과정 자체는 완전히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이 유가의 5단계는 후에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에서 말하는 5위, 즉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및 구경위(究竟位)에 각각 해당되는데, 지심과 관찰은 가행위에서 근원적인 사유의 단계로 실수(實修)되고, 다시 견도위에서는 지심이, 수습위에서는 관찰이 진리의 체현이라는 궁극적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유식사상에서 말하는 수행이란 모든 인식활동으로 얻어진 번뇌를 정화하고, 이의 본성인 진여성을 깨달아 열반과 해탈을 증득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좀더 자세하게 알아보면, 첫째, 자량위는 수행의 첫걸음으로서 옛날에 먼 길을 가려면 노자(路資)와 식량(食糧)을 준비해 가듯이 진리인 붓다의 말씀을 깊이 신해(信解)하고서 대승의 순해탈분, 즉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 등 삼십심(三十心)을 닦는 단계를 말한다. 이 위치에서 중요한 것은, ㉠ 좋은 벗〔善友〕을 만나는 것이고, ㉡ 지혜를 얻고자 하는 자신의 굳은 의지〔作意〕가 필요하며, ㉢ 이러한 여건들을 충분히 갖추고〔資糧〕출발하여, ㉣ 신해(信解)로서 부처님께서 보여 주신 가르침을 강한 정신으로 믿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단계에서는 지말적인 번뇌는 정화할 수 있어도 근본 되는 번뇌는 아직도 정화되지 않아서 허망한 마음과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 번뇌의 뿌리인 능취(能取)와 소취(所取)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별도의 지혜행(智慧行)과 복덕행(福德行)이 요구되는데, 지혜를 얻으려는 수행이란 말할 것도 없이 불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실천덕목인 것이며, 남을 위하는 복덕행도 이와 함께 닦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가행위(加行位)에서는 먼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어서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심식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능취와 소취라는 상대적인 개념을 없애고 진실한 견해를 일으켜서 번뇌가 없는 세계로 나아가는 데 진력하는 대승불교에 있어서 순결택분을 닦는 단계를 말한다. 또한 이 단계에서부터는 근원적인 사유가 시작되는데, 진리의 세계로부터 유포된 가르침을 듣고 그 내용을 지식수단에 의해서 잘 검토하여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은 본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체험을 다시 체험을 다시 체험하는 일이 필요한데, 근원적인 사유란 이 추가체험에 이르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추가적인 체험을 수행해 나가는 가운데서 자연히 신심(身心)은 경쾌해지고 여러 가지의 신통력도 일어나며, 난(煖), 정(頂), 인(忍),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는 4종의 선근(善根)도 차례로 생겨나는 것이다. ㉠ 난위에서는 대상에게 부여된 명칭은 단지 가립적인 것으로서 진실한 실체는 없다는 것을 알며, ㉡ 정위에서는 대상은 환영(幻影)과 같이 주관에 의하여 역시 가립되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는 단계를 말한다. 이어 ㉢ 인위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외계 대상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여의어서, 그 결과로 ㉣ 대상을 받아들이는 심식도 또한 없다고 깨닫는 것이 마지막 세제일법의 단계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예를 들어 말하면, 불을 일으키기 위하여 나무와 나무를 서로 문지르면 불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그 마찰열에 의하여 주변이 따뜻해지는 것과 같이, 번뇌를 없애는 불이 생기기 전에 접촉된 선근을 이에 비유하여 난(煖)이라고 하며, 정(頂)이란 산꼭대기를 의미하는데, 이 선근은 그래도 불확실한 선근 가운데서는 최고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며, 인위에서는 선근이 확정되어서 가르침인 진리를 수용하는 위치를 말하며, 세제일법위에서는 아직도 번뇌의 세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 세계 가운데서는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부르는데, 이 다음의 단계는 성자(聖者)의 경지인 초지(初地)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셋째, 통달위(通達位)는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보살들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존재의 성품과 형상을 통달하여 체득한 경지를 말한다. 이를테 'c0 위치에 이르기 위하여 꾸준히 자량과 가행의 단계를 거치면서 수행한 결과 진리에 계합되는 안목 등이 생겨서 진여를 체달하고 달관하게 된 것을 일컫는 것이다. 이렇게 진리를 체달한 경지이기 때문에 이를 또한 환희지(歡喜地)라고도 하며, 이는 보살의 초지(初地)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경지에서도 아직까지 인간이라는 궁극적인 존재는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기 깨문에 이와 함께 하는 번뇌는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몸에 침투된 번뇌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으며, 각종의 종자(種子)를 함장(含藏)하고 있는 아뢰야식은 변화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와 같은 번뇌들이 이 단계에서는 '혹 항복되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는 경우〔或伏或起〕'도 있기 때문에 근본되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얻기 위해서는 수행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넷째, 수습위(修習位)에서는 통달위에서 아직도 정화하지 못한 부분을 더욱 정화하기 위하여 수행하는 단계로서 긴 기간에 걸쳐서 끊임없는 수도와 그로 인하여 체득되는 무분별지의 발현에 의하여 아뢰야식중에 있는 번뇌와 주객체의 잠재력을 함께 단절하고, 의지할 바를 대전환하여 부처님의 경지를 직증(直證)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십지(十地)의 단계라고 하여 보살들이 오랜 기간〔二大阿僧祗劫〕에 걸쳐서 나머지 번뇌의 소멸을 위하여 전식득지(轉識得智)아른 수행을 계속하는 단계를 말한다.
다섯째, 구경위(究竟位)란 이렇게 보살들이 수많은 기간에 걸쳐서 수행을 한 결과 마침내 마음이 최고의 이상적인 경지에 머무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중생들이 일상생활에서 신체적인 감각이나 의식 등의 주관적인 인식활동을 통하여 얻는 모든 알음알이들이 완전히 제거되어 다시는 번뇌나 망상과 같은 삿된 생각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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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사상(淨土思想)
인도에서 비롯된 대승불교는 그대로 중앙 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착하였으며, 그 가운데서 널리 신앙되어진 사상 조류의 하나가 바로 정토사상이다. 한국불교에서도 원효 이래로 신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신앙적으로나 교학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밀교와 선종이 급진적인 발전을 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정토사상은 후퇴하게 되었고 점차 주술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토사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대체로 정토사상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 드러난 것은 대승불교가 흥기한 시대라고 보고 있다. 이는 정토계 경전군이 편찬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토사상, 정토계 경전군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관한 사상이나 경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정토(淨土)라고 하는 용어는 대승불교 일반에서 쓰이는 술어이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한정해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정토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불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어느 새 아미타불의 극락국토만을 정토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대승경전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왕생극락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는 곳도 있다.
정토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극락’과 ‘아미타불’ ‘본원(本願)’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정토신앙의 요체이다. 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바로 부처의 본질인 중생을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지혜와 자비가 아미타불의 본원을 통해서 중생에게 회향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말이다. 범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된다. 즉 Namo-Amitabha은 Namas + a + mita + abha과 Namas + a + mita + ayus의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Namas는 귀의한다는 말이며, a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이다. mita는 헤아린다는 말이다. abha는 광명이며 ayus는 생명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 내지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에 귀의합니다’라는 말이다. 무한 광명(無限光明)에 귀의하고 무한 생명(無限生命)에 귀의한다고 하는 말은 법에 귀의하는 것이며,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총동원하여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것을 염불(念佛)이라고 한다. <무량수경>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불상념(佛佛相念)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불(佛)과 불(佛)이 서로 염한다’는 것은 부처가 염불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타삼매에 들어 <무량수경>을 설하셨으며 무한 광명과 하나가 되고 무한 생명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진리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왕생극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욕망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으며, 순수 가치만이 존재하며 순수 신앙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토사상으로 불교를 볼 때에 불교는 염불이며, 나무아미타불만이 불교인 것이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서 가장 많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경전은 ‘정토삼부경’이다. 정토삼부경이란 정토 경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경전을 통틀어 말한 것으로 강승개(康僧鎧)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 강량야사(畺良耶舍)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1권, 구마라집 역으로 전해지는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1권을 말한다.
<무량수경>에는 옛날부터 오존칠결(五存七缺)이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모두 열 두 가지의 번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로 열두 가지로 번역되었는지 의심스럽다. 현재 남아있는 다섯 가지의 번역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경(佛說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2권은 일반적으로 <대아미타경>이라고 불려진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했다고 한다.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4권은 <평등각경>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하였다고 하며 위나라의 백연이 번역했다는 설도 있으며 서진의 축법호가 번역했다는 설도 있다. <불설무량수경> 2권은 <대경(大經)> 혹은 <위역(魏譯)>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중국, 한국, 일본에 가장 많이 유포된 경전이며 일반적으로 무량수경이라고 할 때에는 이 경전을 가리킨다. 위나라의 강승개가 252년에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 2권은 당나라의 보리유지가 706년에서 713년에 걸쳐 번역하였다. <대무량수장엄경(大無量壽莊嚴經)> 3권은 송나라의 법현이 991년에 번역하였다.
<무량수경>은 정토사상의 모든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유포된 위나라의 강승개가 번역한 <무량수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량수경>은 상하의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상권은 여래정토(如來淨土)의 인과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중생왕생(衆生往生) 즉 중생들이 극락에 왕생하는 인과를 설하고 있다. 여래정토의 원인은 48원(願)이며, 그 결과는 극락정토이다. 중생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원인은 염불이며 염불의 결과는 왕생극락이다.
<관무량수경>은 흔히 ‘왕사성의 비극’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인도에서 전래된 경전들은 거의 두 가지 이상의 다른 번역이 있지만 이 <관무량수경>은 한 가지 번역밖에 없다. 물론 범어로 된 원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관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은 본래의 이름은 관극락국토무량수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觀極樂國土無量壽佛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인데 이것을 줄여서 <관무량수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경의 이름의 내용은 극락국토의 장엄과 그 나라에 계시는 무량수불과 좌우에서 부처님을 보좌하고 계시는 관음, 세지의 양대 보살을 관하는 경이라는 것이다.
관(觀)한다는 말에는 관견(觀見)과 관지(觀知)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관견이란 극락정토의 아름답고도 불가사의한 장엄을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을 말하며, 관지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는 절대 신심을 말한다. 이 경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악인을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란 진실을 구하면서도 진실과 거리가 멀고 선을 가까이하려 하지만 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과 공간에서 죄업이 막중한 범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특징은 여인성불(女人成佛)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불설아미타경>은 5세기 초에 구마라집이 번역하였으며, 그 밖에도 현장이 650년에 번역한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攝受經)> 1권이 있다. <아미타경>은 극락정토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공덕장엄(功德莊嚴)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공덕장엄은 국토, 의복, 음식 그리고 육체나 정신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덕장엄을 널리 설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중생의 업인 작은 선근으로도 왕생할 수 없다고 구정하고 있다.
다만 하루 내지 이레동안 염불한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생이 이것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동서남북과 상하의 육방(六方)의 항하사제불(恒河沙諸佛)이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면서 증명하고 있으며 경계하고 있다. 왕생극락을 의심하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되며, 왕생극락을 믿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은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미타경>은 구회일처(俱會一處)의 사상을 가지고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마침내는 극락정토에서 모두 함께 만남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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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장사상의 성립과 사상적 의의
[ 목 차 ]
< 서 론 >
< 본 론 >
I 여래장 사상의 역사
II 여래장 사상의 교리
III 승만경에 나타난 여래장 사상
IV 여래장과 他사상과의 관련성
< 결 론 >
- 참 고 문 헌 -
< 서 론 >
대승불교의 사상은 중관사상과 유식학으로 대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불교계에서 유력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불교 철학에서도 이 두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두 사상의 영향력을 가장 잘 담은 사상으로 여래장 사상을 들 수가 있는데, 극단적으로는 여래장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장이라는 것은 반야의 깨달음(空)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며 알라야식 사상의 발전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소위 '비판불교'는 여래장의 이러한 전통적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아트만론과 유사하다는 측면만 부각하여 '여래장은 불교가 아니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단정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신의 한계만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라는 것은 고정된 이론이 아니고,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서 방편적으로 설해지는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설 방법이 바로 석존 당시부터 행해졌던 대기설법(對機說法)의 방편인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본문에서는 여래장 사상의 내용과 의의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 본 론 >
I. 여래장 사상의 역사
1. 중기 대승경전
용수 이후에 연이어 많은 대승경전들이 작성되었다. 그 이후부터 밀교가 훙륭하는 6, 7세기 무렵까지 성립된 경전을 임시로 '중기 대승 경전'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 내용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면 초기 경전이 종교문학적인 것에 비해 중기 경전은 교의적 요소가 많다는 점이 특색이다. 소승불교에서 그 교의는 아비달마(Abhidharma, 論)라 불리는 문헌으로 발표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아비달마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것에 상당하는 '論( stra)이 4∼5세기 무렵부터 작성되었다. 대표적인 중기 경전은 논의 선구적 역할을 다해 논에 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의 이론의 발전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시대의 사상적 특징은 주체 문제가 중심이 되고 있다. 불교는 무아를 설해 주체를 부정하는 듯한 교의적 표현을 지녔지만 그것은 주체 문제를 소외시킨 것이 아니라, 도리어 깊은 성찰을 거듭한 결과였다. 대승불교운동의 전개는 인도 종교사에 있어서 힌두교 운동과 서로 통하는 관계에 있으며, 넓은 의미에서는 힌두교 운동의 일환이라고도 평가되고 있다. 두 종교는 세계관의 명확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교 현상에 있어서 평행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이 시대에 대승불교도가 그 사상을 교의화하려고 할 때 많든 적든 바라문교(Brahmanism)의 자아 철학( tman-vidy )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불교는 자아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주체는 마음(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경우 주체 문제의 추구에 있어서 부처님의 구제를 중심으로 하는 입장과 보살의 주체적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입장이 각각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고 이론화되었다. 전자에 있어서는 중생의 마음(衆生心)이 부처님의 구제에 대응하는 원리로 생각되어 여래장(如來藏, tath gata-garbha), 불성(佛性, buddha-dh tu) 등의 교의가 구성되고, 후자에 있어서는 알라야식( laya-vij na)·유식(vij apti-m tra) 등의 교의가 성립하였다. 그리고 각각에 있어서 관련 경전이 작성되고 있다. 여래장과 불성은 실질적으로 거의 같은 개념이지만 후자의 불성은 주로《涅槃經》에 설해지며, 이 경은 여래장 사상만이 아니라 여러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또한 여래장과 유식의 양 계통의 사상에 대한 전망을 가진《능가경(楞伽經)》도 작성되었다.
2. 여래장계 경전
여래장은 특징적인 사상임에도 그 사상의 성격상 전반적으로 그다지 조직된 교의를 형성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제 경전은 꽤 자유로운 형식으로 여래장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여래장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경우,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경우라도 그 기조가 여래장사상과 서로 통한다고 인정되는 경전도 있다. 여래장을 언급하고 있는 경전과 논을 들면 다음과 같다.
A. 여래장을 언급하는 경전
①《如來藏經》, 불타발타라역 1권, 불공역 1권, 티베트역
②《不增不減經》, 보리유지역 1권
③《앙굴마라경》, 구나발타라역 4권
④《大法鼓經》, 구나발타라역역 2권, 티베트역
⑤《승만경(勝 經)》
⑥《열반경(涅槃經)》
⑦《능가경(楞伽經)》
⑧《무상의경(無上依經)》, 진제역 2권
⑨《대승밀엄경(大乘密嚴經)》, 地波詞羅역 3권, 불공역 3권, 티베트역
B. 여래장을 논하는 논서
①《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
②《대승법계무차별론(大乘法界無差別論)》, 견해저, 제운반야역 1권
③《입대승론(入大乘論》, 견의저, 도태 등 번역
④《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미륵의 논서
⑤《불성론(佛性論)》, 세친저, 진제역 4권
⑥《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저. 진제역 1권, 실차난타역 1권
여래장을 기술하고 있는 경전 중에서《열반경》·《능가경》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본래 조그마한 경전이 많다. 문학적으로 이들 경은 주제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서로 독립된 것으로서 교의상 분명하게 관련이 있다고 인정되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성립의 순서도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공통된 문제의식은 인정되므로 논리적 연관을 더듬는 일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여래장경》·《여래장엄지혜광명입일체불경계경(如來莊嚴智慧光明入一切佛境界經)》·《부증불감경》·《승만경》등이 중요하다. 또한《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은 이의 대표적인 논서이다.
II 여래장 사상의 교리
1. 여래장의 의미
여래장의 원어는 Tath gata-garbha인데, tath gata는 여래, garbha는 태아·모태의 의미이다. 이 언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경은 가장 일찍 성립한 것으로 추정되는《여래장경》이다. 여기서는 여래장이 중생에 대한 설명어로서 사용되는데, 즉 '중생은 여래의 태아이다'라는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그것이 추상화되어 교의적 개념이 되었지만 중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즉 중생이 그 안에 여래가 될 태아를 품어 여래의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후자처럼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여래장은 중생과 붓다의 동일성 사상 위에서 발달한 것이기 때문에 대승의 일원적 사상, 또는 성불 문제를 둘러싼 교의사상은 모두 이것에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깨닫지 못하고 미망과 깨달음이 둘이 아닌 것(迷悟不二)·보리(菩提, bodhi)·보리심(bodhi-citta)·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prak ti-pari uddhi-citta) 등은 중생 마음의 본래 성품이 청정한 것이며 번뇌는 우발적인 것으로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는 것에 지나징 않는다(客塵煩惱)는 사상으로서, 원시경전 이래로 설해져 여래장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처럼 여래장 사상의 성립요소가 되었던 사상은 꽤 다채롭지만, 가장 기초적인 사고방식을 제공한 것은 중생에 있어서 붓다의 변재성(遍在性)을 설한《화엄경》<여래출현품>의 사상이었을 것이다. 중생에 있어서 성불 가능성을 확인하고 구제의 보편성을 수립한 것이 이 사상의 목적이었으므로 그것은 당연히 고려될 수 있는 사실이다. 여래장을 논급한 논서나 경전이 일반적으로 아미타불 신앙과 관계가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성청정심·객진번뇌의 교리는 이미《아함경》에 나타나며, 부파불교의 논서를 매개로 하여 대승경전에서도《반야경》을 비롯하여 널리 설해지고 있다. 또한 여래장과 같은 계통의 '如來性(tath gata-dh tu, 如來界)' 사상은 이미《유마경》에도 나타나며, 지겸譯(222∼253년경)의《유마힐경》을 비롯하여 나집역·현장역에도 보이는데, 거기서 여래성은 지저분한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에 비유되어 "여래성은 바로 번뇌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설해지고 있다. 이 비유는 지참역(146-189)의《유일마니보경》에도 보이며, 거기서는 이 여래성이 번뇌 속에 있으되 더럽혀지지 않는 '보살법에 비유되어 있다. 이 보살법은 보살의 본성이란 뜻으로 불성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법화경》의 보살법 등과 같은 계통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여래장 게통에서는 '일승(一乘, eka-y na)' 사상이 설해지는데, 이것은 '삼승(三乘)'의 중생에게도 성불의 性이 있음을 설한 사상이다. 이 일승사상은 여래장사상으로 귀착한다. 삼승의 사람이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실유불성론(實有佛性論)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실유불성설은 여래장 사상과 다른 것이 아니다.《법화경》이나《화엄경》의 일승사상도 이와 같은 사상의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일승·보살법·여래성·자성청정심 등의 사상의 흐름을 생각할 때, 여래장사상은 유구하고도 풍부한 전사(前史)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보성론》이 自說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하는 경전이 대단히 많다는 점도 알 수 있다.
2. 여래장 연기
여래장 사상은《보성론》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좋겠지만, '여래장연기'의 사상은《대승기신론》에 이르러 성립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여래장과 無明이 일체화한 '아라야식'을 토대로 미혹의 인식계의 전개와 번뇌의 斷盡을 연기의 이론을 적용하여 開示한 것은《기신론》에 이르러서라고 볼 수 있다. '여래장연기'라는 말은 법장의《대승기신론의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기신론》은 <인연분>·<입의분>·<해석분>·<수행신심분>·<권수이익분>의 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심을 이루는 것은 <입의분>과 <해석분>이다. <입의분>에서는 대승을 '法과 義'로 나누어 설명한다. 법은 곧 '중생심'이다. 법이란 '眞의 존재'라는 의미인데, 대승이라는 법은 바로 중생의 마음이며, 우리 범부의 마음에 '大'와 '乘'의 힘이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대승은 대승의 가르침으로 생각되지만, 대승경전에서 설한 대승이나 일승의 의미는《기신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범부의 마음에 갖춰진 자성청정심, 여래장을 말하는 것이다. <해석분>에서는 <입의분>에서 설하는 一心·二門·三大를 해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전체의 7할을 차지한다. 즉《기신론》의 본문이다.《기신론》에서는 그 후에 '四信'과 '五行'을 설하는데, 이것은 <수행신심분>에서 설해진다.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의 二門 중에 심생멸문에서 대승 즉 중생심을 밝힌다. 여래장연기는 여기서 설해지는 것이다. 심생멸문에서는 마음의 본성이 '여래장'으로 설해진다. 이것은 인간의 성불할 수 있는 본성을 말하는데, 특히 번뇌로 덮여 있을 때 여래장이라고 한다. 번뇌를 떠났을 때는 '법신'이라고 한다. 在纏位의 법신이 여래장이다. 범부에게 있어서는 여래장은 非顯在的이지만, 그래도 역시 실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처럼 여래장의 先在性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의 마음이 미혹에 빠져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래장연기가 설해진다. 미혹으로부터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마음의 연속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연속만으로는 미혹은 미혹 그대로이다. 하지만 미혹에는 미혹 자체를 부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기부정의 힘이 갖춰져 있다. 미혹에 빠져있는 범부가 미혹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 미혹과 깨달음의 관계를 연속과 단절이 뒤얽힌 것이라고는 설하지 않으며, 不常(연속의 부정)·不斷(단절의 부정)의 공의 입장에서 이해한다. 즉 현실을 '불상·부단'이라는 하나의 것으로 보며, 연속과 단절의 二元의 종합으로 보지 않는다. 이 불생불멸의 진여와 번뇌의 근원인 무명이 不一不로 화합해 있는 것을 아라야식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진망의 화합식이다.
《기신론》의 아리야식은 유식의 알라야식처럼 잠재심은 아니다.《기신론》에는 잠재심과 표면심이라는 대응관계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종자와 현행의 관계는 설해지지 않는다. 이 아리야식에는 무명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리야식에 필연적으로 인식계가 전개된다. 이 아리야식으로부터 인식계의 전과정을 '3세 6추(三細 六序)'로 나타낸다. '3세란' 미세한 인식계로서, 이 마음의 활동은 의식으로써는 인식되지 않는 것으로 無明業相·能見相·境界相가 있으며, '6추'란 거친 마음의 활동으로서, 의식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자각적 활동으로 智相·相續相·執取相·計名字相·起業相·業繫苦相이다. '3세 6추'의 전개를 識의 관점에서 業識·轉識·現識·智識·相續識의 5식으로 나타내며, 마지막의 상속식을 意識이라고도 한다. 이상의 3세 6추·5의와 의식은 불각의 전개이기 때문에, 망념 세계의 문제이다. 이렇게 망념 세계의 전개를 밝힌 뒤에, 심성·자성청정심과 망념·무명의 상호관계를 밝힌 점이 유식과는 다른 여래장설의 특색이다. 이것이 '眞妄交徹'을 설하는《기신론》의 훈습론이다. 유식설의 훈습론은 표면심의 작용이 아뢰야식에 훈습하는 것을 설하지만, 진여가 아뢰야식과 서로 훈습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여래장설에서는 진여가 심성·자성청정심·무념 등으로 불리며, 현상심과 같은 장면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 때문에 불가분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바로《기신론》의 독특한 설인 진여와 무명의 상호영향, 즉 훈습이 설해지게 된다. 이것을 '染淨相資'라고 한다.
III 승만경의 여래장 사상
1. 승만경에 나타난 여래장 사상
《승만경》에서는 <如來眞實義功德章>·<十大受章>·<三大願章>·<攝受正法章>·<一乘章> 등에 보살의 수행이 설해져 있으며, 그 수행을 통하여 여래장·법신의 開顯을 밝히려 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의 <無邊聖諦章> 제6에서 <自性淸淨章> 제13까지는 여래장 자체에 대해 설해져 있다. 다음의 <眞子章> 제14에는 "여래장이 범부에게 갖춰지는 것은 알기도 어렵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단지 붓다의 말씀을 믿을 수 밖에 없으며, 붓다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큰 이익이 있다."고 설해져 있다. 여기에 여래장이 '信의 종교'임이 드러나 있다. 그 뒤에 유통설로서의 <승만장>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일체 중생에게는 여래장이 있으며, 중생이 아무리 윤회를 되풀이하고 번뇌에 오염되더라도 여래장은 오염되지 않고 소실되지는 않는다."는 것은《여래장경》의 설이다.《여래장경》은 "일체 중생의 탐·진·치 등 갖가지 번뇌 중에는 여래의 지혜·여래의 눈·여래의 몸이 있어서, 결가부좌하여 엄연부동하다"고 설하고, 이 여래장을 아홉 가지 비유로 밝히고 있다. 이 아홉 가지 비유는《불성론》이나《보성론》등으로 계승되었다. 또한《승만경》에 이르면, "여래장은 자성청정이면서도 번뇌에 오염되는데, 이 관계를 범부가 알기 어렵다"는 것이 강조된다. 여기서 여래장이 불타의 근거일 뿐만 아니라, 미혹·범부의 근거이기도 하다는 것이 설해지게 된다. 즉 "세존께서는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생사가 있다고 설하신다. … [하지만] 여래장에는 생사가 없다. 여래장은 유위의 상을 떠나 있으며, 상주불변하다. 따라서 여래장은 依·持·建立이다."라고 설해진다. 즉 여래장이 染과 淨의 근거(依持)라고 설해지고 있다. 유식불교의 생사의 근거라는 것(즉 알라야식은 깨달음의 근거는 아니다.)은 이해하기 쉬우나, 염과 정, 무상과 상주라는 쌍방의 근거인 여래장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이 여래장이 염정의 근거라는 것이 여래장연기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승만경》은 여래장의 자성청정·객진번뇌염의 사상과 더불어 여래장의 본성을 5臟으로 밝히고 있다. 5장이란 여래장·법계장·법신장·출세간상상장·자성청정장이다. 이 설은《불성론》이나《보성론》, 진제역《섭대승론석》등에 인용, 해설되어 있으며, 순차적으로 여래장의 自性·因·至得·眞實·秘密의 의미라고 풀이되어 있다. 또한《승만경》에 의하면, 여래장에는 공·불공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여래장은 迷悟의 근거라는 점에서, 染에 사로잡히지 않는 '공'의 성질이 없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와 동일한 무량무변의 공덕과 [그 본성이 변치 않는] '불공'의 성질이 없으면 안된다. 이것이 공여래장과 불공여래장의 의미이다. 공여래장은 번뇌가 궁극적으로는 허망임을 간파하는 '공의 지혜'에 기초하고 있다. 불공여래장이란 범부에게 있어서도 眞實佛法이 불공임을 말한다. 그러나 이 '불공'도 공의 지혜에 의거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 이러한 상태에 있어서 여래장은 상주불변하는 不思議한 佛法이지만, 그것은 6식 및 心法智를 초월한 것이며, 6식으로써 여래장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범부에게도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苦를 싫어하고 열반을 희구할 수가 있다. 이처럼 여래장은 6식을 초월하고 상주불변하며, 常樂我淨의 성질을 갖지만, '我'로 잘못 생각해서는 안된다. "여래장은 我가 아니고, 衆生이 아니며, 命이 아니고, 人이 아니다"고 설하고 있다. 하지만 我와 여래장의 차이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대승의《열반경》에서는 "여래장이 곧 '我'이다."라고 설하고 있다. 여래장은 존재론적으로는 아트만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인식론적·실천적으로는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불교의 공의 입장이다. 안이하게 여래장을 '有'로 상정한다면, 그것은 여래장을 잘못 주장하는 셈이 될 것이다. 여래장은 6식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6식 중에서 그 존재성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승만경》에서는 空에 住하여 붓다의 말씀을 신봉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트만과 여래장의 차이는 아트만이 존재론적으로 설해지고 있는데 비해, 여래장은 실천적인 입장에서 주장되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그라나 다음 시대에는 여래장과 我의 관계로부터 윤회의 주체로서의 알라야식과 여래장의 관계가 새로운 문제거리로 대두되게 되었다. 위의《여래장경》이나,《승만경》에서는 여래장과 알라야식의 결합은 생각되고 있지 않다. 또한 대승의《열반경》·《대법고경》·《앙굴라마경》·《부증불감경》등에도 여래장은 설해지고 있지만, 체계적이지 않으며, 여래장경전으로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알라야식과 여래장의 융합을 설하고, 여래장 즉 알라야식의 사상을 전개한 것은《능가경》이며, 뒤에 나온《밀엄경》이 있다.
2. 승만경에 나타난 여래장 사상의 의의
《승만경》은 상주불변의 법신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존재는 시간의 규정 아래 있는 유위법과 시간을 초월한 무위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진리는 무위법에서 나타나게 된다. 苦·集·滅〕의 사성제 중에서 고·집·도의 셋은 유위법이기 때문에 진실한 의미에서의 진리는 유위법을 떠난 상주의 멸제 뿐이다. 그것도 번뇌를 소멸한 것이 멸제는 아니다. 현상적인 소멸을 초월한 상주불멸의 법신이 멸제인 것이다. 생기와 상대되는 현상세계를 표현한 멸(滅, niroddha)의 의미가 부정을 매개로 그것과 차원을 달리하는 실재계(實在界)의 '소멸되지 않는 것(不滅=常住)'의 의미로 발전한다고 하는 사고법은 변증법적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또한 종전의 불교에서는 현실세계를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부정(不淨)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진리였고, 반대로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보는 것은 미망으로 가르쳐 왔다.《승만경》은 이같은 진리의 부정적 견해를 근거로 한 다음, 법신은 상·락·아·정의 4바라밀의 성질을 가진 것이라 한다. 이런 사고법도 변증법적인 것으로서 무아를 설한 불교가 '아(我)'를 인정하기에 이른 것은 그 의미 내용이 인도 정통철학의 자아(自我, tman)와 전혀 다른 것이라 말할 수 있으므로 불교사상에 있어서 특기해야 할 사항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법신이 번뇌에 싸여 있을 때 여래장이라 불리지만 여래장 자체는 본래적으로 깨끗한 마음인 자성청정심이고 다만 밖으로부터 번뇌로 더럽혀져 있는데 지나지 않은 것이다. 여래장은 일체법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므로 유위의 제법도 무위의 제법도, 혹은 미혹해 있는 윤회도 깨달음인 해탈도 모두 여래장에 기반을 두고 성립한다. 그러므로 여래장의 기초적인 사상은《승만경》에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IV 여래장과 他사상과의 관련성
1. 여래장 사상과 불성론과의 관계
불성의 원어는 Buddha-dhatu로 추정되고 있다. 성(性)에 해당하는 dh tu는 보통 계(界)로 번역되어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여기서는 근거·원리와 같은 의미이다. 결국 부처임의 근거가 불성인데, 이런 측면에서보면 여래장은 불성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만 유위의 제법을 끊어 얻어진 해탈을 불성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무아(無我)는 아집을 끊은 것이지만 '아(我)'의 관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아(我)'를 불성이라 이름붙인다. 또 부처님은 중도에 의해 '我가 있는 것(有我)'과 '我가 없는 것(無我)'을 설하는데, 我란 여래장의 의미로서 이것을 가리켜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불성의 존재는 범부·성문·연각의 사려가 미치는 바가 아니고, 다만 부처님만이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 정통철학이나 세간 사람들이 '我는 엄지 손가락 만한 크기'라든지, '我는 겨자씨 만한 크기'라고 하고 논의하고 있는 것과는 전연 의의를 달리한다. 그렇다면 왜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설하는가. 그것은 이같은 외도 범부의 망상을 부정하기 위해 무아라하는 것이지 그것은 아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상주불변하고 진실한 것이 我이므로 여래도 역시 我라고 부르는 것이다. 불성과 여래장은 동의어이지만, 하나의 경전에서 동시에 쓰이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여래장과 유식론과의 관계
여래장은 실천적 입장에서 이해해야 하지만, 이것을 존재론적 입장에서 취급하게 되면, 여래장과 알라야식의 결합이 문제시된다. 유식설에 있어서는 알라야식은 '망식(妄識)'이다. 이에 비해 여래장의 입장에 설 경우에는 알라야식은 진여와 무명이 결합한 것으로서 '眞忘和合識'이 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진망화합식으로서의 알라야식은 진제의 역어로 '아리야식(아려야식)'이라고 하며, 망식의 알라야식은 '아뢰야식(현장의 번역어)'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단순히 번역상의 차이로 원어는 laya-vij na이다. 유식설에서는 아뢰야식을 이숙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생의 업의 과보로서의 식이기 때문이다. 이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이다. 윤회의 주체인 아뢰야식으로는 깨달음의 淨法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이에 비해 여래장의 사상은 번뇌로 오염된 마음의 밑바탕에 오염되지 않은 자성청정심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 청정한 것까지도 포함시켜 아리야식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것이 화합식이 되는 것이다. 이 妄과 眞, 染과 淨이라는, 본래 합일불가능한 것을 합일시키고, 아리야식의 전개를 설하는 것은《대승기신론》이다. 따라서 여래장연기설은《대승기신론》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3. 여래장과 중관론과의 관계
여래장 사상은 유식설 속에서 그 체계가 조직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공사상(空思想)의 방편설이라 간주되기도 한다. 그래서 여래장사상인 독립된 학파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중관(中觀)을 잇는 하나의 독립된 제3의 학파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어래장사상은 대승의 궁극적인 진리인 空의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공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사상체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중관에 있어서도 공사상은 긍정과 부정의 두 측면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측면에서 이해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대해 여래장사상은 공사상이 지닌 無의 측면보다는 有의 측면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근본적인 개혁이었다고 이해된다.
< 결 론 >
여래장은 현실적으로 번뇌에 쌓여 있는 중생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부처와 동질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교설이다. 이러한 점에서 여래장사상이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자비의 측면을 계승하는 사상체계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여래장사상은 불교의 전통 가운데 보편적인 저류(低流)를 이루는 것으로서, 따라서 '여래장이 불교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대기설법(對機說法)의 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주장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래장 사상은 여래장이 중생심과 불성이 양립하고 있는 것이라서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래장 교설의 본래 의도는 이러한 난해성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을 설정해 놓고 그 신(信)의 측면을 강조한 불교의 종교적 부흥 운동이라는데 더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 참 고 문 헌 -
1. 대승불교, 시즈타니 마사오, 스그루 신죠, 문을식譯, 도서출판 여래, 서울: 1995
2. 인도불교의 역사(下), 히라카와 아키라, 이호근譯, 민족사, 서울: 1994
3. 불교강좌편, 정승석, 대원정사, 서울: 1994
4. 初期 如來藏思想의 三寶觀 硏究, 朱敏晃, 東國大學校 大學院, 1986年度 碩士 學位 論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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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사상의 역사와 전통
-- 목 차 --
< 서 론 >
< 본 론 >
Ⅰ 지관 수행의 전통
Ⅱ 중국 천태종
Ⅲ 한국의 천태 사상
Ⅳ 일본에서의 천태교
- 참고문헌 -
< 결 론 >
< 서 론 >
천태의 사상은 중국 불교 교학에 있어서 화엄 사상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천태의 사상은 훌륭한 교학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지·관 수행론을 통하여 선수행이론도 완성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본 논문은 천태의 지·관 수행론을 중심으로 그 역사적 전통과 이론적 발전에 대해서 중심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다. 또한 중국의 천태 사상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 전파된 천태 이론에 대해서도 살펴 보도록 하겠다. 이러한 천태에 관한 연구는 인도의 불교가 어떻게 중국을 거쳐서 한국 불교를 형성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론 >
Ⅰ 지관 수행의 전통
1. 지관의 의미
불교에서는 선정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분명히 부처의 깨달음, 즉 지혜를 얻는데 빠뜨려서는 안 될 수행덕목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는 불교의 선정은 우파니샤드의 요가와 일맥상통하는 곳이 있는 것 같이도 생각된다. 우파니샤드의 요가는 범아(梵我)의 절대계를, 혹은 자기 본래의 자기가 절대가 되는 브라흐만과의 일체임을 관찰한다. 또는 그긋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실수되었던 점, 다시 말해 요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수단으로서 실수되었던 점, 다시 말해 요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수단으로서 생각한 점에서는 공통된다고 보여진다. 다만 불교는 선정으로써 절대자를 직시하고 그것과의 합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그러면 석존이 버렸다고 하는 선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스승이었던 두 선인의 선정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선정은 그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석존의 선정은 지(止)와 관(觀)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지는 단순히 마음을 통일하는 것, 즉 적정의 경지에 돌하는 것을 말하고, 이에 반해 관은 지에 의거하여 연기의 법을 관조하고 일체중생의 구제엥 마음을 쓰는 마음가짐이다. 두 선인의 선정은 지의 선정에 지나지 않았다. 석존은 지의 상태에서 관에 나아가 그 상태가 항상 유지되지 않으면 참 선정이 아니고 참된 달인, 참된 해탈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려고 했다는 점이 석존의 선정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지관(止觀)이라는 한역의 원어를 보면, 반드시 지와 관을 구별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팔리어의 사마타(samatha)만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지는 사마타(samatha)이고, 관은 비파싸나(vipassan )인데, 모두 불교의 독자적인 낱말로서 인도 일반의 문헌에서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이 지관이라는 말이 술어로서 애용되기 시작한 것은 부파불교에 이르러서부터이다. 사마타는 가장 오래된 불전 부분에서는 '평정'을 의미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처럼 '가라앉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였고, 비파싸나와는 관계없이 독립해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병행하여 설하여진 용례도 이었지만 숙어화되었던 것은 아니다. 비파싸나는 '세간의 진실된 모습을 본다'라는 동사형 비파싸티(vipassati)로 쓰여졌고, 관법(觀法)으로 번역되었다. 비파싸나는 사마티와 함께 설해지는 경우가 많다. 관이라고 한역했다고 해서 원어를 비파싸나라고 한정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는 요가가 그 원어인 경우조차 보이고 따라서 하나의 원어로 이 한역어를 나타내기는 곤란하다. 지와 관은 후세에 이르면 함께 설해지게 된다. 지와 관중에서 관은 오히려 지혜를 본질로 하는 것이고, 지 쪽이 선에서는 본질적인 것이다.
2. 대승불교의 선불교적 전통
대승은 불교 禪사상의 전통을 단절하고 시작된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대승운동은 초기 불교의 선수행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의 선구자들도 오랫동안 엄격한 전통적 수행을 행하는 승가에서 생활을 하면서, 대승 경전에 근거한 자신들만의 다양한 수행 체계를 세웠다. 선수행에 관한 많은 대승 문헌들이 있다. 이러한 경전들은 한문으로 번역되어서 중국 불교의 많은 종파의 독특한 선수행의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중국 불교의 초기 시대의 유식학파의 경전인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Yogacarabhumi- sutra)은 3승(乘)중 성문승(聲聞乘)에서 대승으로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방대한 경전들은 축법호(竺法護, Dharmaka a, 233-310)가 한문으로 번역하였고, 산스크리트 원본은 현존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선수행법과 선수행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선불교의 전통, 그 중에서도 지관 수행법으로 한 교학체계를 형성한 종파가 바로 천태종이다. 이제 천태종의 교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중국 천태종
1. 천태종의 성립 - 천태지의대사
초기 선사상은 천태종으로 중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제 3대 조사 지의(智 , 538-597)의 저술은 가장 정통한 것이다. 지의 스님을 그 업적을 높이 사서 지의대사(智者大師), 혹은 천태대사라고도 한다. 그는 천태산에 들어가 수선사(修禪寺)라는 절을 세워 교의를 크게 정립하고 종지를 선양했기 때문에 천태대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따라서 그는 천태종의 실질적인 창시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계보상 천태종의 개조는 혜문이고 지의는 제3조라 한다. 이 혜문은 용수의 종론과 대지도론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바 있어, 이때 깨우친 바를 제자들에게 설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태종의 제1조는 바로 용수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천태종의 실질적인 교의의 완성은 법화경을 주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천태대사 지의는 법화경의 연구를 통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 모든 불고가 나름의 존재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이해했다. 천태종의 교학은 소위 교관이문(敎觀二門)이라고 하여 이론과 실천으로 조직되어 있다. 교는 교판과 교리를 포함하며 관은 소위 지관(止觀)이라고 하는 실천 방법이다. 교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오시팔교(五時八敎)라는 교판, 즉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는 진리관, 그리고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는 세계관을 들 수 있다.
천태종의 제 2대 조사인 혜문(慧文)은 특히 법화경을 선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수행을 통하여 확신하게 되었다. 천태 사상은 지의의 주요한 세 가지 저술, 즉 법화문구(法華文句), 법화현의(法華玄義), 그리고 마하지관(摩詞止觀)에 잘 나타나 있다. 법화현의와 법화문구의 2부는 모두 천태의 교상(敎相)을 밝힌 것이나, 마하지관은 실천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서문은 그의 제자인 관정(灌頂)이 썼으며, 본론에 들어가서 소위 '五略十廣(각 장이 5부분의 대략적인 개요와 그 5부분에 대해서 다시 10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것을 말함)'의 논리 정연한 조직 아래서 論이 전개되어 간다. 제1장부터 제5장까지는 지관의 개념에 대해서, 제6장은 지관의 준비에 대해서, 제7장은 지관의 실수에 대해서, 제8장은 지관의 성과에 대해서, 제9장은 지관의 응용에 대해서, 제10장은 지관의 귀결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2. 천태종의 敎學
(1) 3종지관과 일념삼천 : 지의의 제자인 관정(灌頂, 561-6239)에 의해 편집된 마하지관은 삼종의 지관, 즉 원돈(圓頓, 완전한 것), 부정(不定, 불완전한 것), 점차(漸次, 점차적인 것)를 열거하고 있다. 점차지관이란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으로 점차적으로 지관을 실수하는 것을 말하며, 부정지관이란 때와 경우에 따라 깊고 얖음과, 전후가 서로 호응하는 것을 말하고, 원돈지관이란 전체적 총합적으로 곧바로 실상의 구극을 체득하고 체현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원돈지관은 대승의 궁극적 통찰인 열반과 윤회, 법신과 현상계의 합일을 깨닫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일념삼천(一念三千, 한 번에 삼천세계를 다 생각한다 - 천태종의 우주관)'의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언어나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적인 종교적 체험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일념삼천이란 한 순간 혹은 한 찰나의 한 마음 가운데 삼천의 세계가 갖춰진다는 세계관이다. 우선 불교에서는 윤회의 세계로 육도(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를 들고 있다. 이 육도를 떠난 곳에 깨달음의 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여기에 성문승, 독각승, 보살승이라는 삼승을 인정하고, 천태종에서는 여기에 불승(佛乘)이라는 부처의 세계를 인정하는데, 이로써 10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 10계는 완전히 별개가 아니라 서로 내포하므로 하나의 세계는 나머지 아홉 개도 갖춰져 있다. 이렇게 보면 100계가 된다. 그런데 천태종은 이론적 배경이 되는 법화경에서 십여시(十如是)라는 범주를 찾아내어 이 100계에 적용하므로 다시 총 1000계가 된다. 이 1000계는 각기 세계를 기본적으로 구성하는 3종의 세간, 즉 오음세간(五音世間), 중생세간, 국토세간을 적용하여 이 우주는 총 삼천세계가 된다. 결국 삼천세계란 일체의 생명체와 사물이 존재하는 우주이며, 역동적인 생성이 이루어지는 세계 전체를 가리킨다. 이 모든 세계가 한 순간의 우리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 일념삼천이다. 이는 천태종의 독특한 견해로서, 이에 의하면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이다. 이 가능성은 즉 우리의 삶 속에서 부처의 세계가 실현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2) 空(공)·假(가)·中(중) 삼관(三觀) : 용수는 2제설에 따라서 개념적인 세계와 참된 진리의 세계, 즉 공의 두 가지로 나누었으나, 지의는 이 둘에 중(中)의 개념을 추가하여 공, 가, 중의 세가지 범주를 완성시켰다. 이는 천태종의 특징적인 교의로서 일심삼관(一心三觀)이란 삼제원융(三諦圓融)이라고도 한다. 즉, 세가지의 진리가 서로 통하여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 셋이란 중론에서 말하는 공과 가설과 중도이다. 천태종에서는 이를 空·假·中이라고 표현한다. 이 셋을 공관에 의해 자각한다는 것이 삼제원융의 입장이다.
천태는 공사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기 위하여 공·가·중 3가지 카테고리를 수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3가지 카테고리의 수립에는 중론의 <관사제품> 제24 송에 있는 "연기라는 것, 우리들은 그것을 공성(空性)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가명(假名)이며 바로 중도이다."와 서기 5세기경 중국의 위작(僞作)이라고 생각되는 <보살영락본업경>에서 말하는 "從假入空·從空入假·中道第一義"의 3관을 응용했다. 종가입공이란 분별에 따라 분리된 대상들이 서로 가상의 연기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파악함으로써 공의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가(假)에서 공(空)에 들어가도 공이라는 것이 있어 그것에 맞부딪친다고 하는 식으로는 생각해서는 안된다. 무릇 공이란 실제적인 사고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공에 들어가도 공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결국 공도 역시 공공(空空)이다. 이것이 바로 종공입공의 입장으로 종가입공은 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공도 역시 공이라고 관찰하고, 공의 진실도 역시 진실이 아니라고 하여 진비진(眞非眞), 공으로부터 가(家)로 역입(逆入)하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더욱이 종공입가는 가를 공으로 관(觀)하고, 공도 공으로 관하며, 또한 가를 깨뜨려 공을 사용하고, 공을 깨뜨려 가를 사용하기 때문에 '평등관(平等觀)'이라고도 불린다. 다시 말하면 종가입공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또한 종공입가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두 관법이 함께 존재하고 작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중도제일의'라고 한다. 이는 공과 가의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항상언 공가상즉(空假相卽)의 중(中)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됨을 말하는 것이다.
(3) 6가지의 일체 - 6즉(卽) : 지의는 6가지 일체(六卽)를 말하였는데, 이것은 교리와 실제를 동일시하고, 만유의 불성의 내재를 선의 시작이고 끝으로 본 것이다. 결국 제 6단계에 이르면 불성과 불성의 궁극적 실재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일체는 6단계를 걸쳐서 자기 폄하와 의심을 제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천태종에서 원교(圓敎)의 수도상 계위를 6단으로 나눈 것으로, 이 6단은 사람의 수행상에서 미오(迷悟)의 차별이 있음을 표시한 것 뿐, 수행의 대상인 실상(實相)의 이치에는 미·오가 둘이 아닌 것이므로 6즉(理卽, 名字卽, 觀行卽, 相似卽, 分眞卽, 究竟卽)이라 한다.
(4) 천태종의 교상판석(敎相判釋, 敎判) : 교상판석이란 일반적으로 석존이 일생에 설한 교설, 즉 수많은 경전들을 그 말한 시기에 따라 분류 판별하는 것을 말하는데, 주로 경전의 종파의 위치를 정하는 것이 보통인다. 흔히 자파의 입장의 우월함을 입증하려는 의도가 담김으로써 다른 교설들이 상대적으로 열등시 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교설을 다른 모든 교리들을 아우르는 '원교(圓敎)'라고 한 것이다. 특히 천태종의 원교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중도를 가르치는 교를 말한다. 그러므로 원은 하나의 요소가 모든 요소를 내포함을 의미하고, 결국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一卽多 多卽一)라는 원리를 뜻한다. 이 원교는 법화의 교상판석(敎相判釋)인 8교중 화법사교(化法四敎)의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중의 최상의 교, 즉 자신의 천태교를 말하고 있다.
< 표 - 천태종의 교상 : 5시8교(五時八敎) >
3. 천태종의 수행론
(1) 지관(止觀) : 지의는 禪(dhy na)을 마하지관에서 지관이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산스크리트어로 지는 amatha(pal. samatha), 관은 vipa yan (pal. vipassn )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는 평온함, 조용함, 감정의 제어라는 뜻이고, 관은 명료한 인식, 통찰, 내적 통찰이라는 뜻을 가진다. 선정의 불완전한 단계에서도 지관이라는 말을 쓸 수가 있으며, 깨달음을 성취한 단계에서는 궁극적으로 불성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사종삼매(四種三昧) : 마하지관에서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행의 방법을 4가지로 압축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을 사종삼매(四種三昧)라고 한다. 4종의 삼매는 상좌(常坐, 항상 앉아서), 상행(常行, 항상 걸어다니면서), 반행반좌(半行半坐, 걷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면서), 비행비좌(非行非坐, 걷지도 않고 앉지도 않으면서)의 4가지로 이루어 진다. 삼매(三昧, sam dhi)라는 말은 전통적으로 수행의 완성을 말하나, 지의는 수행의 방법이라는 보다 확대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앞의 세 수행법은 자세와 정신의 집중을 요하고 특히 상좌삼매는 고전적인 연화좌(蓮華坐, padm sana, 결가부좌)에 해당하는 것이다. 상행삼매란 것은 불립삼매(不立三昧)라고도 하며, 선정 가운데서 시방에 계신 부처님이 수행자 앞에 나타나 섰음을 보는 수행방법으로, 90일 동안 오로지 돌기만 하면서 쉬지 않고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면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생각하는 수행법을 말한다. 반행반좌삼매라는 것은 걸어다니면서 경문을 외우거나, 편안히 않아 조용히 생각하여 망념을 없애는 방법으로, 진언이나 다라니 등을 외면서 행하는 밀교적 방법이 있고, 법화경을 염송하거나 보현보살을 염상하는 방법을 통한 법화경에 근거한 방법의 두 가지가 있다. 비행비좌삼매는 수자의삼매(隨自意三昧)라고도 하며, 어떠한 정해진 수행 기간도 없이,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가릴 것 없이, 생각나는 대로 항상 온갖 일을 통하여, 즉 일상을 통하여 닦는 수행법을 말한다. 이 중에서 상좌삼매와 상행삼매는 천태의 전통에서 널리 행해졌다.
(3) 십경(十境)과 십승관법(十乘觀法) : 마하지관에서는 또한 '지관의 대상'으로서의 '십경'과 '지관의 방법'으로서의 '십승관법'을 설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적 상황과 그에 대한 해결 방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십경이란 대경(對境)으로, 음계입으로 음입계경, 음망경이라고도 지칭된다. 상세하게는 5음, 12처(입), 18계로 분류된다. 요컨대 현실적인 일상심 내지 일상세계의 일이다. 첫 단계로서 눈 앞의 모든 모습을 관법의 대상으로 선택하고, 그것에서 차례대로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이다. 십승관법은 십경에 대한 능관의 측면, 즉 지관을 실수하는 주체측에 대하여 열 가지 관찰방식을 말한다. 십승이라 명명된 것은 그것이 깨달음으로 끌어주는 마차이기 때문이다. 십경의 각각에 대해 십승관법이 형성된다. 모두 해서 백법성승(白法成乘)이라 한다.
4. 천태 사상의 특징
(1) 법화경의 사상 : 법화경의 원형은 AD. 50 년경에 성립하여, 서기 150년 무렵까지의 사이에 증보·첨가되어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 원형에서 강조하는 것이, 우주의 통일적인 진리로서의 '一乘妙法'이다. 이것이 법화경에 있어서 空인 진리의 적극적인 표현이다. 모든 존재는 독립·고정적인 실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서로 관계하면서 생기하고 있다. 정신과 육체는 서로 작용하며 영향을 미치고 존재한다. 여자가 있기 때문에 남자를 알 수 있고, 남자가 있기 때문에 여자를 알 수 있다. 각자 혹은 어느 한 쪽이 독립·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를 공이라고 했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모든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空인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空이라는 진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무한한 절대적인 진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 육체는 정신적인 것, 또는 육체적인 것이라고 하는 한정적·대립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고, 그러한 한정·대립을 초월한 것(空)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한정·대립을 초월한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무한 절대이다. 불교에서는 허공( ka a)이라는 말을 흔히 공과 함께 사용하고 있지만 이 허공은 무한·절대를 표현하는 말이다. 법화경은 이것을 다시 적극적으로 표현해서 일승의 묘법(saddharma)이라고 했다. 이것은 우주의 통일적인 진리이다. 모든 존재는 개별적이 아니며, 서로 관계하면서 존재한다. 즉 둘이 아닌 일체가 존재의 참다운 모습이다. 바꿔 말하면 둘이 아닌 일체인 진리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이 둘이 아니고 일체인 진리를 법화경은 일승의 묘법, 즉 우주의 통일적인 진리로 표시한 것이다. 모든 존재는 일승의 묘법에 의해서 유지되공 포함되며, 전체가 하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2) 법화와 화엄의 차이 : 그런데 법화경에 이어 나타난 화엄경은 空·不二一體의 진리를 純一이라는 형태로 표현했다. 일승은 법화경에서는 총합·통일성을 의미한 데 대하여, 화엄경에서는 순일무잡성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이 중국에 있어서 화엄철학이 법화경을 東敎一乘으로, 화엄경을 別敎一乘으로 삼게 된 까닭이다. 동교란 전체를 합하여 같은 것이 된다는 의미이고, 별교란 특별히 뛰어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와 관련하여 천태지의도 화엄경을 별교로 간주했지만 이 경우의 別이란 격별(隔別)의 의미로서 비판적으로 사용된 말이다. 즉 천태지의는 진리의 총합·원만성에 중점을 두고 거기서 총합·통일의 원리를 설하는 법화경을 원교(圓敎)라고 하여 최고의 위치에 놓았다.
그렇다면 법화경에 근거한 천태의 사상과 화엄의 사상간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절대관에 있어서는 화엄과 천태가 '不正卽肯定(부정즉긍정)'의 제3절대에 입각하지만, 그 위에서 화엄은 제1의 부정적, 대립적 절대로 기울고, 법화와 천태는 제2의 긍정적·상즉적 절대로 기우는 경향을 나타냈다. 즉 화엄적 입장에서 볼 때, 절대진리는 순일(純一)·순선(純善)한 것으로서 현실상에서 찬란히 빛나는 이상의 빛이었다. 그것에 비하면 법화나 천태의 입장에서 볼 때 절대진리는 多엥 즉하고, 惡에 즉하며, 현실에 즉하여 세워진 것이다. 화엄과 천태 모두가 '一卽多·多卽一'을 말했으나, 화엄은 '一卽多'에 역점을 두었고, 천태는 '多卽一'에 역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화엄은 '一'에 중점을 두며 一로부터 多를 보려고 했고, 천태는 多에 중점을 두고 多로부터 一을 보려고 했다. 화엄은 "一로부터 多"이고, 천태는 "多로부터 一로"이다. 이 미묘한 차이가 천태와 화엄을 논쟁으로 몰고간 도화선 혹은 시발점이 되었다.
(3) 천태종의 원교적 특성 : 이처럼 지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천태교의 사상이 교상판석에서 원교라고 파악하였던 것처럼 밀교, 선불교, 율, 정토교 등의 모든 대승불교의 교리들을 포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특히 교리 뿐만 아니라 선수행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어서 이론과 실천(敎·觀)을 모두 중요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천태의 교리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불교의 풍부한 교리적 토대를 이루었다.
Ⅲ 한국의 천태사상
1. 고려불교의 양상
고려 태조 왕건은 건국 당시부터 불교로써 시작하여 중엽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구가 성행하였고 이어서 말기에는 국민 전체가 독신적(篤信的) 태도를 시종일관하여 견지하였다. 신라말 도선국사(道詵國師)는 고려의 건국과 국민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고 특히 왕실과는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되어 신국가의 인심을 수습하고 국조(國祚)의 기반에 공헌한 바가 있었다. 태조왕건은 먼지 10개의 사원을 개경에 건립하고 신라황룡사의 9층탑을 모방하여 평양에 구층탑을 재건함으로써 佛法에 의하여 국가의 발전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後王들을 위하여 십훈요(十訓要)를 제정하여 국가 治世의 기본정신을 명시하고 그 제 1 조에는 국가의 대업을 반드시 諸佛의 加護에 의하여 되는 것이니 불교를 근본정신으로 삼으라고 하였고 그리고 또 그의 제6조에는 팔관회와 연등회를 불사로서 하여 영구히 매년 봉행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2. 大覺國師 義天
고려 중기의 인물로 고려의 천태종을 개창했다. 속성은 왕씨고, 이름은 후(煦), 호는 우세(祐世)이다. 고려 제 11대 왕인 문종의 넷째 아들로, 어머니는 인주이씨(仁州李氏) 가문 출신의 인예태후(仁睿太后)이다. 1065년(문종 19) 난원(爛圓)에게 출가했으며, 그해에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오관산(五冠山) 영통사(靈通寺)에 들어가 화엄학을 중심으로 불교경전을 공부했다. 1067년에 최고 승직인 승통(僧統)에 올랐으며, 불경에 대한 승려 및 학자들의 저술을 집대성할 것을 맹세했다. 1077년에 처음으로 화엄경과 그에 대한 연구서를 강의했다. 의천은 불교전적을 수집하고 화엄학과 천태학의 교리상의 차이점을 알아보고자 중국 송나라에 유학할 것을 결심하였다. 1084년(선종 1년) 5월에 중국으로 들어가 7월에 송나라 서울 변경( 京)에 들어가 철종(哲宗)을 만나고 계성사(啓聖寺)에 머물렀다. 철종의 추천으로 화엄종 승려 유성(有誠)을 만나 법장(法藏)의 5교판과 지자(智者)의 4교판의 차이점에 대해 문답을 나누었다. 그 후 항저우(杭州) 대중상부사(對中祥符寺) 정원(淨源)에게 능엄, 원각, 기신(起信)과 법장, 지자의 불교에 대해 토론하고, 다시 혜인원(慧因院)에 가서 정원을 만났다. 해인원에 머물 때 불교전적 7,500여 권을 기증하고 많은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원래 선종에 속했던 혜인원이 화엄종으로 바뀌었으며, 이름도 고려사(高麗寺)라 하게 되었다. 곧 이어 천태산 지의(智 )의 탑을 참배하고 본국에 돌아가 천태교학을 선양할 것을 맹세했다. 이와 같이 의천은 송에 머물면서 당시 활동하고 있던 거의 모든 종파의 고승들을 만나 불교에 대하여 토론했다. 의천의 불교사상은 화엄학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잘 짜여진 하나의 틀을 이루고 있다. 우선 교학면을 보면, 그는 중국 징관(澄觀) 단계의 화엄학을 토대로 하여 법상종의 유식학을 견제하려는 성상겸학(性相兼學)을 주장했다. 또 같은 화엄학 내에서도 고려초 균여(均如)의 주술성을 배격하며 불교적 합리주의를 강조했다. 실천면에서는 선(禪)의 수행을 중시했다. 의천은 선을 습선(習禪)과 설선(說禪)으로 나눈다음, 조계혜능(曹溪慧能) 이래의 선종을 말로만 하는 선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는 대신, 습선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고 그 대상을 천태선에서 찾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화엄학과 천태학의 일치를 증명했는데, 그것이 화엄종 승려이면서 별도로 천태종을 개창하게 된 사상적 이유였다. 천태종 개창은 현실적으로 법상종을 견제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3. 고려불교에 있어서의 천태종
고려 초기에 出世한 諦觀法師(제관법사)는 삼국통일의 이념과 會三歸一의 원리가 합치된다고 하는 천태종을 위하여 국내, 국외를 통하여 활약하였다. 그리고 均如大師(균여대사)는 분파에 허덕이던 華嚴敎學을 통합하기에 진력하였고, 특히 화엄에 관한 많은 주석서를 저작하여 재래의 형식을 버리고 方言으로서 서술을 하여 난해의 교리를 평범하게 주석함으로써 불교의 보편화 대중화에 노력하였다. 이와 같이 신라불교를 계승한 고려의 불교는 대각국사(大覺國師)의 출세에 의하여 비로소 획기적 新佛敎를 창설하게 되고 그의 면목을 一新하게 되었다. 즉 5敎9山 전부가 신라의 법계를 계승한 것이나 드디어 敎派와 禪派와는 노력을 角逐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언 대각국사가 통일이념의 견지에서 천태종을 새롭게 열게됨으로써 禪敎合一의 사상이 전불교계를 風靡하여 禪宗도 그의 교리적으로는 천태의 관법(觀法)에 攝收되어 종래의 대립적 항쟁은 해소되고 화합의 이념과 그의 실천이 나타나게 되었다. 천태의 교학은 신라시대에서도 낭지(朗智), 원효(元曉)등에 의하여 연구되어 있었었고 고려초에서도 천태교법이 전래되었으나, 항상 화엄종과 선종등에 壓迫되어 고려초 까지는 완전한 일종으로서의 국가의 공인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태조가 개국할 때에 행군복전사대법사 능긍(行軍福田四大法師 能兢)등이 上疏하여 '會三歸一 一心三觀으로서 교의로 하는 천태종을 이 땅에 開倉하면 그의 공덕에 의하여 신라, 후백제, 고려의 三韓을 회합하여 삼국통일을 성취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의 사상계와 왕도 이것을 믿고 일반에도 보급되어 후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광(玄光), 의통(義通), 지종(智宗) 등도 천태교학을 연구한 종장(宗匠)이었으나, 결국은 대각국사가 그의 국가적 요청에 응하여 개종의 결실을 보게되었다. 그 뿐아니라 대각국사의 일대사업은 불교문화의 특이성을 가진 속장(續藏) 간행의 사실이니, 이것은 고려문화의 정화(精華)인 동시에 세계에도 예가 없는 매우 가치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고려 천태종은 고려초에 법안종(法眼宗) 계통의 승려가 대거 합류함으로써, 중국과는 달리 선종에 속하게 되었다. 당시 천태종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계혜능 이래의 전통적 선종을 고수한 승려들이 자신들을 조계종(曹溪宗)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12세기에 들어가면서 불교계는 교종의 화엄종과 법상종, 선종의 천태종과 조계종으로 재편되었다. 의천의 천태종은 귀족적이어서 지방민과 일반인에 대한 종교적 관심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한 특색이다. 또한 5교판에서 제일 하위인 인승(人乘)에 유교를, 그 위의 천승(天乘)에 도교를, 그리고 그 위의 나머지 성문성(聲聞乘)·연각승(緣覺乘)·보살승(菩薩乘)에 불교를 각각 둠으로써, 불교의 우위하에 유교와 도교를 포섭하려는 의식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Ⅳ 일본에서의 천태교
일본의 천태종은 처음부터 이미 화엄이나 <대승기신론>의 사상을 수용하고 있었다. 最澄(766∼822)은 천태법화교학을 연구하기에 앞서, 화엄의 논서나 <대승기신론>을 연구하였다. 이미 이렇게 중국적으로 연구된 일본의 천태교학은 화엄종과 교섭하기에 이르렀다. 최징은 대표적인 불교사상을 법화 일승 아래 결집, 동원하여 불교의 총합적인 체계의 확립을 도모했다. 그것은 직접적으로는 나라(奈良) 불교계의 어수선했던 가정집회에 대한, 하나의 신념의 줄기를 세워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우연히 같은 시대에 출현했던 空海(774∼835)도 불교의 총합체계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최징과 공해에게 있어서 최고 진리의 탐구방향은 대조적으로 최징은 우주를 구극적인 방향에서 원심적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있었고, 공해는 우주를 정신의 내면적인 방향에서 구심적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최징은 구극의 진리에 해당하는 법화경의 일승묘법을 근간으로 삼았고, 공해는 정신의 내면의 신비에 해당하는 진언밀교의 비법을 핵심으로 삼아, 각각 사상·철학의 총합체계화를 꾀했던 것이다. 공해의 사상체계는 훌륭하게 완결된 것으로서 교리적으로는 덧붙일 여지가 없다. 그 때문에 공해 이후의 진언종은 오로지 신비한 체험의 기술을 연마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른바 敎相에 대한 事相의 중시이다. 히에이산은 인격완성의 도량, 진리탐구의 배움터가 되었던 반면, 高野山은 비법전수의 신령한 도량, 신비한 체험의 영산이 되었다.
일본천태에서는 밀교를 수용하여 事相의 방면에서 발달했지만, 교리의 연구에 중요한 노력을 기울여 히에이산은 진리의 전당으로서의 위용을 갖추기에 이른다. 또한 철학적으로는 사고의 한계를 뛰어 넘어 진리의 절정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절대적인 일원론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것을 일본에서는 '천태본각사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본각이란 <대승기신론>에 설해진 말로서 覺·不覺의 둘을 초월한 不二·空에 진실한 절대적인 깨달음이 있고, 그것이 생멸의 현상계(생멸론)에서 본연으로서 갖춰져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천태본각사상은 <대승기신론>의 본각의 의미를 확대해석하여, "생멸·변화하는 현상계야말로 본래 진실한 깨달음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다종다양한 事相이 생기·변화하는 현실의 모습이야말로 영원·보편적인 진리의 생성·약동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생동하는 진리였다. 그와는 반대로 현실상을 버리고 세워진 진리는 진실치 못한 진리이며, 동시에 죽은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본각사상은 일본 불교의 여러 종파뿐만 아니라, 일반사상이나 神道의 이론, 또는 문학·예술의 방면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 일원론은 본래 이원·상대적인 현실상을 무시하고 수립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본각사상을 추진하고 있던 천태의 학승들은 절대적 일원의 경지에 도취한 나머지, 현실의 이원·상대적인 현실상을 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천태본각사상은 가마쿠라(鎌倉) 말기에서 南北·室略 시대까지는 융성했지만 끝내는 종교실천적으로 타락의 길을 걷고 애욕과 재물욕의 성취를 기원하는 경향까지 이르게 되었다. 결국 에도(江戶) 중기에 慈山妙入(1637∼1690)·靈空光謙(1652∼1739)이 나와 철저하게 비판을 가한다. 그 결과 천태본각 사상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리하여 일본에서 천태본각사상의 철저한 절대적 일원론과 법연이 주장한 정토염불의 철저한 상대적 이원론이 나란히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 결 론 >
천태의 사상은 천태대사 지의를 중심으로 펼쳐졌고, 인도불교의 전통을 중국의 전통에 따라서 새롭게 형성시켰다. 천태의 사상은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을 수용하고 있으나, 화엄이 '일즉다'를 강조하는데 반해서 '다즉일'을 강조하므로써 많은 교법들을 하나로 귀일시키는 일원론적 성향을 보였다.
이처럼 지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천태교의 사상은 자신들의 교상판석에서 원교라고 하였던 것처럼 밀교, 선불교, 율, 정토교 등의 모든 대승불교의 교리들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리 뿐만 아니라 선수행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어서 이론과 실천(敎·觀)을 모두 중요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천태의 교리는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서 한국의 천태종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한국의 천태종은 조계종과 함께 선종을 형성하는 특색을 보인다. 천태종의 사상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천태본각사상을 형성하는등 일본 불교의 교학 형성에 큰 바탕을 이룬 것이다. 이처럼 천태의 사상은 화엄 사상과 더불어 대승불교 교학 형성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많은 기여를 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참고문헌 -
1. 인도의 선, 중국의 선, 아베 쵸이치 외, 최현각 옮김, 민족사
2. 천태법화의 사상, 타무라 시로우-우메하라 타케시, 이영자 옮김,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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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불교사전, 운허용하, 불서보급사
5. 100문 100답 불교강좌편
6. 高麗大覺國師와 天台思想, 조명기, 경서원
7. 브리태니커 대백과 사전, 동아일보-브리태니커 공동출판
8. 일본의 불교, 渡 照宏, 이영자 옮김, 경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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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상(華嚴思想)
<화엄경>은 화엄부의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준말이며, 범어로는 Mahavaiplya-buddha-ganda-vyuha-sutra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大)는 소(小)에 대한 상대적인 입장이 아니라 절대적인 대(大), 상대가 끊어진 극대를 말한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절대의 대(大)라고 할 수 있다. 방광(方廣)이란 넓다는 뜻인데 특히 공간적으로 넓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방광(大方廣)’이란 크고 넓다는 뜻으로 붓다를 수식하는 형용사이다. 그러므로 대방광불이란 한량없이 크고 넓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붓다를 말한다. 그 붓다를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화엄(華嚴)이란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이다. 화엄을 범어로는 Ganda-vyuha라고 하는데 Ganda란 잡화(雜華)라는 뜻이고, vyuha란 엄식(嚴飾)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화엄이란 잡화엄식이라는 말 그대로 갖가지의 꽃을 가지고 장엄한다는 뜻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대방광불화엄경>은 광대무변하게 우주에 편만해 계시는 붓다의 만덕(萬德)과 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진리의 세계를 설하고 있는 경이라고 할 수 있다.
화엄부 경전 자체 내에서도 설처(說處)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리도량이며, 설한 시기도 성도 직후로 되어 있다. <팔십화엄>에는 시성정걱(始成正覺)이라 하고, <육십화엄>에도 시성정각이며 세친이 지은 <십지경론>의 저본이 된 <십지경>에는 제이칠일(第二七日)이라고 하였다. 또 천태교판에서도 <화엄경>을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최초 삼칠일 즉 21일 동안 말씀하신 경이라고 하고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경전의 한역본으로는 60권, 80권, 40권으로 된 <육십화엄>, <팔십화엄>, <사십화엄> 등 3부 <화엄경>이 있다. <육십화엄>은 동진시대에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에 의해 418에서 420년에 번역되었고 교정을 거쳐 421년에 역출되었다. 이를 진본(晋本)이라 하고 또는 화엄대경 중 먼저 번역되었다고 하여 구경(舊經)이라고도 부른다. <팔십화엄>은 대주(大周)시대 실차난타(實叉難陀)에 의해 역출되었으며 이를 주본(周本) 또는 신경(新經)이라 한다. <사십화엄>은 당의 반야(般若)가 798년에 역출하였으며 입법계품의 별역으로 <입불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入不可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 본래의 이름이다.
그러나 <육십화엄>이나 <팔십화엄>은 처음부터 대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화엄경>을 구성하고 있는 각 품이 별행경으로 먼저 성립되어 있었으며 그 지분경을 모아 어떤 의도하에 조직적으로 구성한 것이 웅대한 화엄대경인 것이다.
법계연기(法界緣起)
중국 화엄종에서는 화엄을 별교일승원교(別敎一乘圓敎)이며 원명구덕종(圓明具德宗)으로 보고 있으며, 그 화엄세계는 법계연기의 세계라고 보고 있다. <화엄경>의 불보살세계를 ‘인과연기 이실법계(因果緣起 理實法界)’의 법계연기로 나타낸 것이 화엄종의 종취라고 화엄종의 대성자인 법장은 밝히고 있다. 이러한 법계연기설은 청량을 거쳐 규봉종밀대에 와서 사종법계설로 확정된다.
종밀은 <주법계관문>에서 청량징관의 <화엄경소>를 인용하면서 사종법계의 의의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주법계관문>은 두순이 지었다고 하는 <법계관문>을 종밀이 주석한 것이다. <법계관문>에서는 진공관, 이사무애관, 주변함용관의 법계삼관을 설하고 있다. 먼저 진공관(眞空觀)은 모든 법은 실성이 없어 유(有)와 공(空)의 두 가지 집착을 떠난 진공인 줄을 관함이다. 다음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은 차별있는 사법(事法)과 평등한 이법(理法)은 분명하게 존재하면서도 서로 융합하는 것임을 관함이다. 끝으로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은 우주간의 온갖 사물이 서로서로 일체를 함용하는 것으로 관함이다.
지엄은 법계연기를 보리정분의 정문(淨門)연기와 범부염법의 염문(染門)연기로 나누고 있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법계연기를 과분불가설(果分不可說)과 인불가설(因分不可說)로 나누고 그것이 십불자경계(十佛自境界)와 보현경계(普賢境界)라고 하고 있다. 종밀에 이르러서는 사종법계설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법계란 Dharma-dhatu의 번역어로 연기현전하는 우주만유이다. 이 법계의 체는 일심(一心)인데 원명구덕의 일심이며, 총해만유(總該萬有)의 일심이다. 따라서 법계란 일심체상에 연기하는 만유이다. 그래서 우주만유의 낱낱 법이 자성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을 지켜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을 법계라 한다. 이 법계를 설명하는데 사(事)와 이(理)의 구별을 세워 논한 것이 사종법계설인 것이다.
사종법계는 사(事)법계, 이(理)법계,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이다. 이 네 가지 법계설은 모든 우주는 일심에 통괄되고 있으며, 이 통괄되는 것을 현상과 본체의 양면으로 관찰하면 네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화엄의 무진법계는 사사무애법계를 말한다. 사(事)법계는 모든 차별있는 세계를 가리킨다. 사(事)란 현상, 사물, 사건 등을 계(界)란 분(分)을 뜻한다. 낱낱 사물은 인연에 의해 화합된 것이므로 제각기의 한계를 가지고 구별되는 것이다. 개체와 개체는 공통성이 없이 차별적인 면만을 본 것이다. 이(理)법계는 우주의 본체로서 평등한 세계르 말한다. 이(理)는 원리, 본체, 법칙, 보편적 진리 등을, 계(界)란 성(性)을 가리킨다. 궁극적 이(理)는 총체적 일심진여이며, 공(空)이며 여여(如如)이다. 우주의 사물은 그 본체가 모두 진여라는 것으로 개체와 개체의 동일성, 공통성을 본 것이다.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는 이와 사, 즉 본체계와 현상계가 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걸림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법장은 <금사자장>에서 금사자의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금이라는 금속은 이(理)의 미분화된 본체를 상징하며, 사자라는 가공품은 분화된 사(事) 혹은 현상인데 사자가 금에 의존하여 표상되고 있음이 바로 이사무애의 경계라는 것이다.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는 개체와 개체가 자재융섭하여 현상계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제법은 서로서로 용납하여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어 원융무애한 무진연기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화엄의 법계연기이다. 이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는 이사무애(理事無碍)를 바탕으로 하여 의지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한 직접적인 깨달음의 세계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과 실천행을 통해 현현하는 세계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 늘 그렇게 있는 세계이나 이해나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현실화해야 하는 세계이다.
십현연기(十玄緣起)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법계연기를 체계적으로 관찰한 구체적 설명이 십현연기와 육상원융(六相圓融)이다. 십현연기는 십현문(十玄門)이라고도 한다. 십(十)은 원만구족의 만수(滿數)이고, 현(玄)은 현묘, 문은 사사무애법문이다. 10가지 심오한 신비의 무애세계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십현문이 설해지고 있는 중국 화엄전적으로는 지엄의 <화엄일승십현문>, <수현기>와 법장의 <화엄오교장>, <화엄경문의강목>, <금사자장>, <탐현기>와 징관의 <화엄경소>, <현담>, <화엄약책> 그리고 종밀의 <원각경대소> 등이 대표적이다.
법장은 <화엄오교장>에서는 스승인 지엄의 십현문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나 <탐현기>에서는 그것을 약간 수정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탐현기> 이후에 보이는 십현설을 신십현(新十玄)이라 하고 그 이전의 십현설을 고십현(古十玄)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신십현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신십현은 동시구족상응문, 광협자재무애문, 일다상용부동문, 제법상즉자재문, 은밀현료구성문, 미세상용안립문, 인다라망경계문, 탁사현법상해문, 십세격법이성문, 주반원명구덕문이다. 이 가운데 광협자재무애문과 주반원명구덕문은 고십현에서의 제장순잡구덕문과 유심회전선성문을 고친 것이며, 은밀현료구성문은 고십현의 비밀은현구성문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은 십현연기의 총설이다. 동시는 선후가 없음을 밝히는 것이고, 구족은 모두 섭수하여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일체 제법이 열 가지 뜻을 동시에 구족해서 상응하여 원만히 조화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열 가지 뜻이란 교의(敎義), 이사(理事), 경지(境地), 행위(行爲), 인과(因果), 의정(依正), 체용(體用), 인법(人法), 역순(逆順), 감응(感應)이다.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은 연기 제법에 각각 광협이 있으면서도 무애하다는 것이다. 이는 간격이 멀든 가깝든 간에 모든 존재들이 아무런 장애없다는 뜻이다. 광(廣)은 밖이 없다는 무외(無外)의 뜻으로 넓음이란 한계를 갖고 있지 않아 밖이 없는 것이다. 협(狹)은 안이 없다는 무내(無內)의 뜻으로 가장 좁음이란 그 자체 안에 공간을 갖고 있지 않아 안이 없다는 것이다. 큰 것과 작은 것에 자성이 없기 때문에 큰 것과 좁은 것이 서로가 서로를 포섭하는 것이다. 좁은 것과 넓은 것은 하나와 전체로 말할 수 있으므로 서로 자유롭게 구애됨이 없이 서로 교환될 수 있다. 이는 고십현에서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이다. 순수한 것과 잡된 것이 본분위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일념에 구족하여 원융무애하다는 의미이다. 순수한 것과 잡된 것이 섞여 있으니 순수한 것은 순수한 대로 잡된 것은 잡된 대로 제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은 하나와 전체가 서로 용납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는 전체에 들고 전체는 하나에 녹아 있어 무애자재하다. 그래서 하나 가운데 전체이고 전체 속의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각기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본래의 면목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와 전체가 혼란되지 않는 상입(相入)을 말한다. 상입이란 이것과 저것이 서로 용납하고 받아들여 걸림없이 융합하는 것이다. 하나란 하나라는 자성을 가진 확정적인 하나가 아니라 연기한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 가운데 전체이고 전체 속의 하나이지만, 하나는 하나로서 전체가 아니고 전체는 전체로서 하나가 아니다. 하나는 전체가 아니고 전체도 하나가 아니다. 각각 제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본래의 면목을 보유하고 있다.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은 모든 요소들이 서로 동일시되는 것을 말한다. 궁극적인 차별로부터의 자유이며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타자와 동일시함으로써 종합적인 동일화가 이루어진다. 서로 비춰보고 서로 동일시한 결과 함께 조화하여 움직인다. 상입(相入)이 이것과 저것이 서로 걸림없이 융합하는 묘용(妙用)의 측면이라면, 상즉(相卽)은 서로 자기를 폐(廢)하여 다른 것과 같아지는 체(體)의 측면이다. 두 가지가 하나로 융합하는 즉(卽)은 물과 물결처럼 한 물건의 체 그대로가 다른 물건인 뜻으로 말하는 ‘즉’이다.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은 고십현에서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이다. ‘비밀은’과 ‘현’으로 된 것을 ‘은밀’과 ‘현료’로 정리한 것이다. 비밀 즉 숨은 것과 현료 즉 드러난 것이 함께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금사자장>에서는 우리가 금사자를 접할 때 사자로서 사자를 볼 때는 사자뿐이고 금은 없으며, 금을 볼 때는 단지 금뿐이고 사자는 없으나 금사자는 금과 사자를 합하여 성립된 것이라고 한다. <화엄현담>에서는 반달의 예를 들고 있다. 반달은 반은 빛나고 반은 어둡다. 그러나 감춰진 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을 지구에서 보면 큰 공만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 자체가 늘어났다 줄어들지 않는다. 그 반달은 밝음과 어둠이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밞음 아래에 어둠이 있고 어둠 아래에 밝음이 있다. 하나로 많은 것을 섭수하면 하나는 드러나고 많은 것은 가리워진다. 많은 것이 하나를 거두어들이면 많은 것은 드러나나 하나는 가리워진다. 한 터럭이 법계를 섭수하면 곧 나머지 터럭의 법계는 모두 가리워지고 나머지 낱낱 터럭의 가리워지고 드러남도 또한 그러하다. 한 편은 보이고 한 편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둘다 갖추어져 있어서 하나가 성립되면 다른 쪽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은 미세한 것의 신비를 말하는 것이다. 미세란 인간의 이해가 닿는 곳을 넘어서 고도로 작고 정밀하다는 의미이다. 하나가 능히 많은 것을 함용하므로 상용(相容)이라고 하고, 하나와 많은 것이 섞이지 않으므로 안립(安立)이라고 한다. 무한세계가 작은 먼지나 티끌 속에 존재하며, 이들 세계의 일체 먼지 속에 또다시 무한세계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일념 중에 모든 것을 구족하여 가지런히 나타나 명료하지 않음이 없음을 겨자씨를 담은 병에 비유하기도 하고 화살이 빽빽히 꽂친 화살통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은 인다라망의 비유에 의해 상호 반영의 이론을 말하는 것이다. 제석천 궁전에 걸린 보배망의 각 보배구슬마다 서로 다른 일체 구슬이 비쳐 무진한 것처럼 법계의 일체도 중중무진(重重無盡)하게 연기상유(緣起相由)하여 무애자재하다.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은 모든 연기된 존재가 그대로 법계법문임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당체가 그대로 연기 현전한 것이므로 두두물물이 다 비로자나 진법신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비유는 곧바로 법의 상징이고, 법이 비유이고 비유가 곧 법이다.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은 십세가 시간에 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상즉, 상입하여 하나의 총합을 이루지만 그러나 전후 장단의 구별이 뚜렷하여 질서가 정연한 것을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각각 삼세가 있어 구세(九世)가 되고 그 구세는 한생각 일념에 포섭되므로 십세(十世)이다. 또 일념을 열면 구세가 되므로 합하여 십세가 된다. 그래서 일념이 십세무량겁이고 무량겁이 일념이지만 십세는 낱낱이 서로 혼잡함이 없이 완연히 구별되어 있는 것이다.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은 주체와 객체가 조화롭게 함께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 어떤 존재도 홀로 생겨나는 것은 없다. 우주법계에는 어느 한 사물도 홀로 생겨나 존재하는 것이 없으며 서로 주인이 되고 객이 되어 모든 덕을 원만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십현의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을 바꾼 것이다.
육상원융(六相圓融)
십현연기와 더불어 육상원융 또한 화엄무진연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또다른 측면으로 중시되고 있다. 육상이란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을 말한다. 이는 총별, 동이, 성괴라는 세 쌍의 대립되는 개념이나 모습이 서로 원융무애한 관계에 놓여 있어 하나가 다른 다섯을 포함하면서도 또한 여섯이 그 나름의 모습을 잃지 않음으로써 법계연기가 성립한다는 설이다.
모든 존재는 다 총상, 별상, 동상, 이상, 괴상, 성상의 육상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이 육상은 서로 다른 상을 방해하지 않고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이 일체가 되어 원만하게 융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기로써 이루어진 모든 존재는 반드시 여러 가지 연(緣)이 모여 성립된다. 그러므로 거기에 성립된 총상(總相)은 부분을 총괄하여 전체를 만들고 있다. 또 별상(別相)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과 부분을 말하는데 이것이 총상에 의지하여 원만하고 완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총상이 없으면 별상이 없고 따라서 총상 밖에 별상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 동상(同相)이란 별상의 하나하나가 서로 조화되어 모순되지 않고 성립되는 힘을 균등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상(異相)이란 별상이 서로 혼동되지 않고 있으면서 제각기 상을 잃지 않고 조화되어 있는 모양이다. 성상(成相)이란 별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총상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을 부분이 다만 집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유기적인 관계성을 가지고 모여서 하나의 전체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괴상(壞相)은 별상이 총상을 성립시키면서도 별상 제각기의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서 총상의 모양으로 혼융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육상을 집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가령 총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을 총괄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별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그 자체를 이른다. 동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서로 힘을 합쳐 집을 조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이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은 각각 가로와 세로로 되어 있어 다른 유형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또 성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각각 인연이 되어 집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괴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집을 조립하여 성립시키고 있으면서도 각각 자기의 본 모양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육상의 관계를 체상용(體相用)의 관계로 나누어 보면 총상과 별상은 연기의 체(體)라고 보고, 동상과 이상은 연기의 상(相)이라고 하고, 성상과 괴상은 연기의 용(用)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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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화 사 상
<사상적 배경>
법화경은 대승불교의 경전이다. 잘 알려진대로 부파불교가 난해하고 번쇄한 교리를 수립하고 어려운 실천에 전념하던때 민중들과 그 지도자들사이에 하나의 새로운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대승불교이다.이 대승불교는 한때 한곳에서 급속히 흥기한 것이 아니고 오랜동안 여기 저기에서 운동이 일어나면서 여러가지가 한데 어울려 대승불교를 형성해갔다.
이들의 주장은 부파불교에서 잊고 있었던 석가모니.붓다의 기본입장으로 복귀하려는 면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부파불교의 일부 엘리트 중심의 불교나 전문가 중심의 불교가 아닌 모든 인간, 생명있는 모든 존재에게 널리 개방할 것을 주장했다.
스스로의 실천에 의해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은 자기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자기만의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곳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란 어려운 일이다.일반 민중이 구하는 일은, 어려운 교리나 엄격한 실천이 아니다. 여기에 국한하다 보면 일상생활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운동은 이렇게 하여 자기만을 위한 독선에서 벗어나 민중에게 불교를 개방하고, 보다 자유롭게 사상을 해석하면서, 서서히 일반 민중의 구제,즉 이타행을 강조하게 된다.대승불교의 개방성은 불교의 궁극목적인 해탈.열반.붓다관에 극명하게 표출된다.
초기불교시대에 있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열반의 개현은, 대승불교로 계승되어 모든 중생의 성불을 주장하게 된다. 이런 주장의 주체는 출가.재가를 가리지않는 佛敎를숭배하는 그룹과 보살단들이었다.법화경 결집을 한 것은 주로 보살단 즉 보디삿드바.가아나(Bo-dhigattva-ga-na)였다.
이들은 붓다란 현재 석가모니불만이 아니라 과거 미래에도 부처님이 계시고 공간적으로도 사방.팔방.시방에도 계시다고 보았다.이제 부처님은 시간공간을 초월하게 되고, 그리고 성불은 특정계층 인종이 아닌 모든 성별을 초월한 중생에게 개방되었다. 법화경은 이런 경향의 대표적인 경전이라 할수 있다.
<번역과 구성>
법화경의 번역은 한문으로 3세기 중엽이후 6회 하였는데 현재 세본만이 남아 전한다. 竺法護가 太康7년(286)에 長安에서 번역한 것이 正法華經 10권이고, 羅什이 弘始 8년 (406)에 長安에서 한것이 유명한 妙法蓮華經이다. 그후 隨나라 仁壽元年(601)에 闡那 館多. 灸多가 공역한 것이 添品妙法蓮華經이다.
이중에서 羅什역이 가장 널리 읽혀졌는데 이 세 본은 모두 原典이 다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그리고 티벱역,위글어역,西夏어역,몽고어역,만주어역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한글역(간경도감)이 있다. 이 번역이 다수있다는 것은 이 경이 많은 지역에서 여러 민족이 애호하였음을 입증한다. 19세기 이후 산스크릿 원전의 사본이 네팔과 카슈갈에서 발견되면서 로마자화하여 출판되었는데 그후 불란서의 뷰르누후(1852)가 불어로 번역 하고, 케른이(1884) 영어로 번역하면서 日本어역도 20세기에 번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元曉의 <法華宗要> 이후 이에 대한 연구와 신앙이 고려 天杻宗 개종이후,상당히 유포되었다. 이에 선행하여 중국에서는 라집이후 연구가 상당히 활발하였는데 天杻智凱(538-597)의 三大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三大部란 [法華玄義] [法華文句] [摩可言止觀]을 말하는데 天杻사상을 응축시킨 저술들이다. 특히 이 경은 日本에 준 영향이 세계 어느나라보다 커서 그 연구만이 아니라 신앙공동체도 日本佛敎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경의 제목인 妙法蓮華經(나집역)은 [白蓮華에 비유되는 훌륭한敎法]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인도의 世親은 이 경은 小乘을 떠나 여래의 깊고 깊은 비밀을 갈무린 법을 증험한다고 말했다. 즉 연화가 오탁한 물속에 피면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꽃을 피우는 것은, 바로 모든 법이 그대로 실상이라는 대승의 법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다.
天杻대사는 이 경의 분류를 전 28품중에 앞에 14품은 迹門이라하고 뒤에 14품은 本門이라하여 두 문으로 나누어 해석하였다. 앞의 迹門에서는 佛法에 대하여 말해주고 本門에서는 佛身즉 부처님의 영원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현대 법화경연구학자들에 의하면,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법화경의 구성을 제1류, 제2류, 제3류로 나누고 있다. 현대학자의 연구와 天杻해석을 대응시켜 본다면, 현대적 분류인 제1류에 해당하는 부분을 소위 원시8품(2品-9品)이라 하는데 이는 천태해석의 述門의 正宗分에 해당된다.
이 정종분은 方便品이 중심이 되는것으로 천태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품이다. 이 방편품은 諸法이 곧 實相이라고 하는 법화경의 사상적 요제가 되는 품이고 8품중에서 방편품 그다음품은 이 法說을 되풀이하여 낮은 근기를 위해 설한것으로 본다.
현대학자의 연구에 의한 제1류의 청중(對傑衆)은 대개 聲聞과 緣覺들이고, 제2류와 제3류는 보살중이다.이 청중들의 근기에 따라 이 내용을 분류한 것은 상당이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켜준다.
그리고 현대불교학의 분류인 제2류에 해당하는 부분(10品-21品)이 天杻해석의 本門의 正宗分이 된다. 여기에 如來壽量品이 핵심을 이루는데 천태해석에 의하면 <가까움을 열어 먼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가까움은 석가모니부처님,먼것은 영원한 근원의 부처님이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대승불교의 佛陀觀을 읽을수 있다.
<개략적 내용>
一乘과 三乘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흥기한 초기에는, 대승과 소승이 대립하는 뜻에서 대승이었다. 초기의 대승이란 말은 가치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가 강했다. 그러므로 초기대승불교는 대.소승 대립의 대승이다.그런데 법화경의 근본정신은, 대승에서 다시 一乘을 주장한다. 一乘이란 一佛乘을 뜻하는데 이 一乘이 진실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초기 반야경에는 小乘대신에 아라한법, 벽지불법이라 쓰고 보살법도 병용하고 있다. 따라서 小乘이란 말은 후대에 쓰여진것을 알수 있다. 법화경에서 一乘을 진실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당시의 불교교단내에는 잘못된 사고때문에 一乘을 알지 못하고 三乘 즉 성문.연각.보살승이 진실이라고 믿는 부류가 상당이 결정적 세력을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편품에서는 [여러 부처님이 중득하신바 법에는 무량한 방편력으로 중생을 위해 설한다]라고하고, [시방불국토 가운데,오직 一乘法만이 있을뿐 三乘도 三來도 없다. 있다면 方便說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一佛乘이란 법화경의 가르침이 二乘이나 三乘이 아닌 오직 成佛의 한가지 길만을 가르친다는 의미이다. 天杻불교에서는 이것을 敎一乘이라한다.
이 가르침은 여러부처님(諸佛),과거불, 미래불, 현재불, 석가불 등 五佛 모두가 一乘인 成佛의 같은 도를 가르친다고 天杻불교에서는 말한다. 따라서 혹 다른 성문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이라 이해해야 한다는뜻이다.이 三乘이란 방편이기 때문에 三乘을 열어 진실의 一乘을 나타낸다는 것은 법화경의 일관된 사상이다.
경에는 [모든 부처님이 방편력으로 一佛乘에서 三乘을 分別하신다]라고 되어있다. 이 三乘觀은 有部派교설의 三乘觀을 법화경에서 비판한 것이 된다.
三乘의 뜻을 설명해 보기로 한다. 성문승, 연각승(혹은 벽지불승),보살승을 三乘이라하는데, 우선 성문이란 부처님(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듣고 스스로 깨달음을구하며 수행하는 사람으로,구체적으로는 불제자들을 일컫는다. 성문이 이상으로 하는 것은, 四聖諦의 교설을 듣고 자기의 번뇌를 모두 단제해 버리고 아라한(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신만을 위하는 수행이 중요하지 타인을 구제한다는 조건은 없는 것이다.
연각.벽지불은 다른 사람의 가르침은 받지 않고서 홀로 진리인 법을 체득한사람을 말한다.역사적 석가모니를 이에 해당시키고있다.구체적으로 인도사상계에서는 홀로 가며, 홀로 머무르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었다.이들은 자기의 깨달음에 안주한 사람들이었다. 보살이란 원래는 서원에 의해 성불한 석가모니의 전세의 명칭이다. 그 석가모니의 길을 본받아 자신의 성불을 자각하는 대승수행자들이다. 이 가르침을 보살승이라고 한다. 이들은 석가모니의 전세와 같은 보살행을 닦아서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성불할 것을 이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성문.연각 등은 부처님의 본의에 어긋난다고 하고, 성문.연각승은 열등한 가르침이라고 小乘이라고 폄하하고 비판한 것이다. 즉 [성문의 성불 못한다는 사상]을 小乘이라하여 大乘과 준별한 보살들이다. 유마경에서 보여주는 대.소승의 가치적 구별을 말한다.
<二乘의 구제>
상술한대로 성문.연각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적은 전통적으로 아라한 이라고 한다. 흔히 四向四果에서 예류.일래.불환.아라한을 말하는데, 네번째 단계인 아라한과란 더이상 배울것이 없고, 영원히 열반에 머물러 생.사유전의 삶이 없는 자리를 이른다.
그러므로 이 二乘은 보살행을 실천하여 부처님의 과를 증득하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성불이 不可能하다고 주장하는 부류이므로 소승인 것이다. 그러나 보살은 佛果를 얻어 成佛하려고 노력함으로 大乘이다.
법화경에서는 불교사에서 보는 이 두체계 小乘.大乘 모두를 긍정하고 있다.
다른 대승불교 특히 유마경 같은 경에서는 보살승.불승만을 강조하고 성문.연각을 폄하하는것이 특색인데 비해 법화경은 성문.연각의 二乘들이 모두 구제의 대상이 된다. 二乘을 구제하는 일 즉 授記作佛이라고 하는데 성불의 기별을 주어 궁극에는 二乘이 모두 성불하도록 하는 것을 과제로 하는 것이 이 경이다.
다른 경전과는 달리 부파(소승)불교를 捨棄하는 것이 아니라 부파의 교리도 포용하고 있는 것이 二乘의 수기작불사상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佛法의 普遍性과 平等性을 一佛乘, 一乘妙法이라고 하였다. 一乘이란 超大乘이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方便과 眞實>
불교에서 方便이란 사상은 아주 중요하다. 방편의 의미는, 중생이 부처 즉 깨달음을 향해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처님이 중생으로 하여금 깨달음의 경지로 끌어들이는 길도 방편이다. 후자는 대승불교의 입장이고 전자는 초기불교의 의미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않았을때 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가르침도 방편이다. 가르침은 그대로 깨달음은 아니지만 깨달음에도 인도해 준다. 깨달음은 궁극적으로 하나 즉 一乘이지만, 배워야 할 사람의 능력, 소질, 성격은 허다하다.그 많은 근기에 상응하여 가르치는 방법도 하나일 수 없다.
그래서 경에서 "내가 성불한 이래 가지가지 인연.가지가지 비유로 널리 가르치니 방편이 수없이 많다"고 하였다. 그 목적은 "중생을 인도하여 여러곳의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함이다"고 한다.그러므로 방편이란 수단으로서 진실인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것임을 알수 있다.따라서 불교는 모두 방편이 된다. 따라서 三乘의 불교는 모두 부처님의 방편력에 의해 설해진 법이다.그런데 이세가지 다른 果에서 각각 안주한다면 부처님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그 궁극목적을 밝히고 三乘의 과득은 궁극적인목적이 아님을 천명한 것이다. 三乘의 과득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 이상 아라한 벽지불도 모두 佛道를 구하려고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불도를 구하는 이는 누구나 보살임을 자각하여 전진해 가야 한다. 혹시 불제자 성문의 입장에서 그것이 궁극목적이라 생각하였더라도 부처님의 마음에서 보면,그 아라한이란 성불로 가는 과도단계이므로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진실인 佛乘를 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때문인가. 그 이유는 중생의 근기가, 이를 받아들일수 있는 정도로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비심에서 부처님이 수단으로 이끈다는것이 方便사상 이다. 이 方便은 법사품에서는 [방편문을 여는것이 진실상을 시현한다]고 하였다.
방편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것이 방편임을 알지못하는 동안에는 아직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본다. 따라서 방편이 방편임을 알았을때 비로소 진실이 나타나 밝혀진다. 이 방편과 진실의 양자사이에는 앞뒤가 있지 않다. 三乘이 方便이라고 감득했을때 一乘이 진실임을 터득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영원한 생명>
전술한대로 법화경의 후반 14품을 본문이라하고 그 본론에 해당하는 품이 여래수량품이라고 하였다. 여래수량품은 久遠의 석가모니부처님을 명확히 밝히는 경전으로 유명하다. 석가모니불은 영원한 과거에 성불하고 몇번이나 이세상에 출현하여 이 법화경을 말씀한다는것이 이품의 주제다. 그 성불의 시간은 5백천만억 나유타아승지겁에 비유되는 무한한 과거에 성불하였는데, 시간적으로 무량함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것이다.
여래가 성불한 수명은 숫자로 비유할때 무한, 즉 久遠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법화경을 설하시는 지금의 석가모니는 80년의 생애를 우리에게 보였지만 그것은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낸것이며 실제로는 영원한 本佛 즉 근원불이라는 것이다.
이세상에 육신을 보인것은 모든 중생에게 佛知見을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어가도록하기 위함이라고 경에서 말한다. 결국 이 세상에 육신을 나타 내신것이 방편이라면 적멸을 보인 것도 방편이라고 하겠다. 부처님이 영원이 이세상에 머무르실때 그 모습을 보고서 집착심 많은 범부중생들은 박덕한 생각으로 五欲에 탐착하고 정진할 뜻을 내지 않게 됨을 우려하여 스스로 부처님은 입멸을 선택하였다고 해석되는 것이다.
이 품에서 의사 父子의 비유는 이를 설명해 준다. 부처님 自我게라고 하는 게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방편으로 열반을 보일지 언정 실제로는 멸도한것이 아니며, 항상 머물러 이 법을 설하노라" 그런데 중생이 전도된 생각때문에 가까이 있는데도 나를 보지 못한다고 계속하고 있다.
법화경의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던, 8相 성도의 모습의 그 석가모니불을 통하여, 생멸을 넘어선 영원한 부처님, 다시말하면 모든 부처님을 통합하는 원리로서의 근원불을 현출시킨 것이다.
<종교적 신행>
법화경의 영원한 부처님은, 사리를 봉안한 불탑인 스투파신앙과 법신사리로 법화경을 봉안하는 차이티아 칠보탑신앙의 일상적 신행으로 구체화된다. 부처님 탑에서 경전을 지니는 신앙으로 변천된 것이다.
그래서 법화경을 받아지니고 환희하며 다른이에게 가르쳐주고,육바라밀을 실천하며 믿음을 심화시키는것이 법화경의 신행생활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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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상(彌勒思想)이란?1) 미륵사상의 종류
2) 오시는 시기와 장소
3) 미륵부처님이란?
4) 주요 경전
5) 미륵사상의 발전
1) 미륵사상의 종류
① 도솔천 왕생사상.
미륵보살(부처)님께서 현재 사바세계에 강림하시기 전 천상의 70여 하늘 중, 욕계의 천상 6천중 4천 도솔천에 계시는 바, 지상에 내려오는 부처님들은 모두 이 곳에 계시면서 미리 지상에서 인연맺을 제자등의 인연자를 살피고 근기를 높인 후 내려오기 위해 설법제도중생하고 계시는 곳이다.
항상 미륵부처님을 끊임없이 염불공양하며, 자리이타 육바라밀 수행을
하면 미륵보살(부처)님의 인도로 도솔천에 왕생하여 무상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신행관이다. 학계에서는 300~500년 경에 발생하여, 기원 후 2~3세기 경에 유행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② 당래불(當來佛) 지상정토 용화세계를 개창하시기 위해 하생하신다는 사상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으로 오시는 부처님으로 신앙된다. 오시는 곳은 미륵하생경에 계두성(鷄頭城)으로 밝혀져 있으며, 미륵부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용화 3회 설법시 참여하여 수기를 받게 된다는 신앙관이다.
③ 자비제일(慈悲第一) 공덕제일(功德第一)의 부처님이라는 신앙관이다. 미륵부처님은 수행시절 무상의 공덕을 쌓음과 수행정진을 성취하신 분으로 수많은 보살님 중 석가모니 부처님의 다음 처님으로 수기된 만큼, 미륵부처님의 명호를 정근하거나 신행하면 서원하는 바가 영험하게 속히 성취된다는 신앙이다.
④ 대승신앙관이다.
미륵신앙은 대승불교를 실천한다.
⑤ 자비제일의 미륵부처님의 화신이 된다는 수행관이다.
일체 부처님 가운데 자비제일 공덕제일의 부처님인 미륵보살(부처)님을 닮아 현현키 위한 수행·정진 사상이다.
⑥ 10선을 수행과제로 하는 실천적인 신행관이다.
어려운 수행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행하여야 할 윤리요 덕목인 10선 운동을 통하여 이상향 미륵정토를 추구하는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수행을 추구하는 신앙관이다.
10선은 곧 십선계(十善戒)로 다음의 열 가지다.
- 첫째 생명을 존귀히 하라(不殺生).
- 둘째 훔치지 말라(不偸盜).
- 셋째 사음하지 말라(不邪淫)
- 넷째 허망한 말을 하지 라(不妄語).
- 다섯째 이간질 하지 라(不兩舌).
- 여섯째 악한말 하지 말라(不惡口)
- 일곱째 꾸밈말 하지 말라(不綺語).
- 열덟째 탐하는 말 하지 말라(不口貪)
- 아홉째 만사에 감사하라(不嗔恨)
- 열째 사견을 일으키지 말라(不邪見).
⑦ 부처님 다음의 중생은 미륵부처님을 의지하여야 구제될 수 있다는 신앙관이다. 불멸이후로 오탁악세(五濁惡世)이기에 말법 중생들이 미륵부처님을 의지처로 삼아 수행해야 수기를 받는 등의 구제를 입을 수 있다는 신앙관이다.
※ 오탁악세란 오탁의 악한 일이 많이 야기되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이는 인간의 수명이 최고 팔만 사천 세인데 여기서 점점 감하여 이만 세가 되면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겁탁(劫濁), 견탁(見濁), 번뇌탁(煩惱濁), 중생탁(衆生濁), 명탁(命濁)이다.
겁탁 : 세월이 흘러갈수록 사람의 수명이 점차로 감해지는 시대를 말한다.
견탁 : 중생의 근기가 낮아져서 지혜가 흐려지고 편견과 사견이 난무하는 세상을 말한다.
번뇌탁 : 혹탁(惑濁)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증장되는 탐,진,치(貪嗔痴) 등으로 인하여 일체 번뇌들이 중생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중생탁 : 중생이 끊임없는 견탁과 번뇌탁의 결과로 인해 마음과 지혜가 흐려지고, 신체도 쇠약해지며, 복은 적어지고 고통이 많아지는 세상을 말한다.
명탁 : 중생탁과 번뇌탁의 결과로 사람의 수명이 점차 감소되고 결국 인간의 수명이 10세까지 내려가는 것을 말한다.
2) 미륵부처님께서 오시는 시기
(1) 오시는 시기
① 경전상의 기록
미륵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다는 시기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에서 제일 빠른 순으로 찾아보면,
첫째, 증일아함경과 화엄경에 설해져 있는 3000년설을 들 수 있다. 서기 2000년은 우리 나라가 1961년까지 사용하였던 북방불기에 따르면 3026년이다. 하나 현재는 남방불기를 따르고 있는데 이는, 1956년 네팔의 수도 카트만드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 대회에서 불교각국의 통일적 불기사용을 위하여 남방불기를 근거로 하여 사용키로 의결한 것에 기인한다. 남방불기에 따르면 서기 2000년은 불기 2544년이고 단기로는 4333년이다.
둘째, 보살처태경과 현우경에 설해져 있는 5억76만년설을 들 수 있다.
셋째, 미륵하생경이나 일체지광명선인경에 설해져 있는 5십6억만년설을 들 수 있다.
넷째, 잡심론에 설해져 있는 5십6억7천만년설을 들 수 있다.
다섯째, 정의경에 설해져 있는 5십7억6백만년설을 들 수 있다.
여섯째, 증일아함경과 현겁경, 현우경에 설해져 있는 인간수명 8만세설을 들 수 있다.
일곱째, 장아함경, 전륜성왕수행경, 증아함전륜경, 구사론에 설해져 있는 인간수명 8만4천세설을 들 수 있다.
② 학계의 견해
미륵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시기에 대한 7곱 가지의 설 중 학계에서는 여타의 정황을 살펴 5십6억7천만년설이 주된 설이라하여 취용하고 있다.
③ 어느 설이 진실한 견해인가?
어느 설이건 구전으로 내려온 바를 모아 확인하는 결집의 과정이 있었으나, 문자로 정립된 것은 불멸 후 200년 후의 일이다. 각 유파의 스승으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는 과정상의 이유와 계산하는 방식의 차이로 인하여 각 경전마다 표현의 차이점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 경전의 표기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제불보살님의 위신력에 의해 각 설의 해당시기마다 미륵불이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할 것이며, 해당시기가 아닌 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화신으로 오시어 무상대도를 나투어 중생을 구제하실 것이라 본다. 모두 부처님의 한 마음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방불기에 의한 계산에 의하면 불멸로부터 3,000년이 넘었다고 하니 어디엔가 미륵부처님이 강림하여 계시는지도 모를 일이다.
④ 미륵부처님을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는가?
미륵부처님을 마음 밖에서 어떤 대상으로 찾으면 영겁을 두고도 찾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아야 홀리지 않고 자신이 곧 그 미륵임을 깨닫게 된다.
3) 미륵(보살)부처님은 어떤 분인가?
① 미륵부처님의 존명인 미륵(彌勒)은 잘 알려져 있듯이 인도 범어 마이트레야(Maitreya)의 한자 음역이다. 마이트레야(Maitreya)의 어원은 미트라(Mitr)이다. 미트라(Mitr)는 고대 인도나 이란, 페르시아 로마 등지에서 고대에 절대적인 신으로 섬긴 광명신, 태양신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교(西敎)에서 구세주의 뜻으로 쓰이는 메시아(Messiah)의 어원에 있어서 서양학자들사이에서는 헤브라이어 마샤(mashiah)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미륵과 동일한 어원인 미트라(Mitr)로 보기도 한다. 구세주에 대한 어원이 같음은 각기 기다리는 구세주가 하나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미륵이라는 이름은 후기에 정립된 경전인 대승경전에도 등장하지만 최초의 초기경전인 증일아함경에 걸쳐 공히 등장되고 있어 초기부터 발전된 신앙임이 문헌적으로도 분명하다 하겠다. 종교의 근원이 어떠하건 모든 종교의 바램은 하나이다. 그것은 이상적인 온전한 삶에 대한 희구이다.
그것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달아 설하시었던 우주제법의 실상을 밝힌, 진리를 직통한 일아철학에 의해서 가능하다.
②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6억 7천년 후에 세상에 출현하여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하는 분이시다. 초기 경전인 증일아함경에 미륵부처님에 대한 기록이 시작되어 이후의 경에도 공히 기록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초기불교 때부터 신앙되었음은 분명하다.
③ 미륵상생경과 하생경에 따르면 이름은 아일다(Ajita) 이셨고, 보
살과를 증득하여 12년후에 입멸하여 도솔천에 올라 도솔천의 천인들을 교화하다, 56억만년 후에 부처로 하생하게 되는 데 그때 "미륵"불의 이름으로 하생하게 된다고 수기 받으셨던 분이시고, 또 하생하여서는 용화삼회 설법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지상낙원 용화세계(龍華世界)를 건설한다고 설해지신 분이다.
④ 불교에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등 무수한 보살님이 많은데 그 중 가장 먼저 신앙되었던 분이시다. 미륵보살(부처)님에 대한 신앙은 다른 보살님들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에 가장 먼저 신앙되었음을 경전상 살펴볼 수 있다.
보살(菩薩)이란 이미 부처를 이루기직전의 지위에 이르렀으나 일체중생을 모두 성불시킨 후에 혹 성불을 하지 못한 중생이 있는지 살펴서 하나도 빠짐없이 일체가 성불한 것을 확인하고 난 후, 마지막으로 자신이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불법을 펴기 위해 보살도 행을 나투는 분들이시다.
⑤ 자비제일 공덕제일의 부처님이시다.
⑥ 보살도를 나투시는 보살님은 수 없이 많다. 부처님께서는 그 많은 보살님 중 하필이면 미륵보살을 칭하여 당신 다음의 부처, 미륵부처님으로 오시어 말법중생을 구제한다고 하신데는 이유가 있다.
말법중생들은 복력을 나누어 주면서 진리를 전해야 따르게 될 정도로 근기가 얕고 지혜가 흐려져 있어, 이러한 말법시대엔 원력이 장엄하고 수복무량의 원력을 다 닦아 이룬 자비제일 공덕제일의 미륵보살님 즉, 미륵부처님이 중생을 인도해야 일체중생이 구제될 수 있음을 내다보시고 수기를 내신 것이다.
⑦ 미륵보살(부처)님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보처보살(補處菩薩)이라 하여왔는데, 보처보살이란, 무량겁 전에 대발심을 일으켜 온전한 수행을 쌓아, 일체공덕을 원만히 성취하고 곧바로 부처를 이루는 최후의 지위에 다다른 보살을 말한다.
4) 주요 경전
(1)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과 미륵육부경(彌勒六部經)
미륵부처님에 대해 전적으로 논한 경으로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과 미륵육부경(彌勒六部經)이 있다.
미륵삼부경은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佛說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불설미륵하생경(佛說彌勒下生經), 불설미륵대성불경(佛說彌勒大成佛經)의 셋이요 미륵육부경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미륵래시경(彌勒來時經), 미륵하생성불경(彌勒下生成佛經)과 의정의 번역인 미륵대성불경(彌勒大成佛經),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미륵하생성불경(彌勒下生成佛經)의 여섯이다.
미륵삼부경이 번역됨에 있어 같은 경을 번역자가 달라 경명(經名)이 다르게 각각 번역되었는 바 이들 여섯을 미륵육부경이라 한다.
(2) 미륵부처님에 대한 주요경전의 내용
①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佛說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 이 경명을 줄여서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이라고 하기도 한다.
내용에 당시의 미륵보살님의 이름은 아일다로 수기받는 것과 12년후에 도솔천에 상생할 것이라는 것과 미륵보살이 주석하는 도솔천의 장엄이 수승한 모양을 묘사하고, 이러한 것을 관하는 이는 도솔천에 왕생하게 된다는 것과, 미륵보살님 도솔천에 나게 되는 인연이 설해져 있고, 또 미륵보살님이 구족하신 공덕이 설해져 있다.
② 불설미륵하생경(佛說彌勒下生經) :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내용은 미륵보살이 당래에 도솔천에서 하생하여 간밤에 집을 나서 용화수 아래서 성도(成道)한 뒤, 3회설법으로 부처님의 교화에서 구제받지 못한 중생을 모두 제도하는데, 첫 법째 법회에서 96억 인을, 두 번째 법회에서 94억 인을, 세 번째 법회에서 92억 인을 제도하게 된다는 내용이 설해져 있다.
③ 미륵하생성불경(彌勒下生成佛經) : 미륵하생경이라고도 하며 내용엔 미륵보살의 국토, 출가, 성도, 전법륜(轉法輪), 도인, 견가섭 등에 대해 자세히 설해져 있다.
5) 미륵사상의 발전
① 미륵 사상은 최초 석가부처님께서 당시 제자들 중 자비제일, 공덕제일의 제자였던 아일다에게 미래세 미륵불 출현에 대한 예시에서 당래불(當來佛)로 수기한 것이 그 출발 기점이다.
② 미륵신행은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 약 20년간 유행되다 300∼500년 정도에 인도 전역에 발생하기 시작했고 기원 후 2∼3세기경에 유식법상학을 근간으로 대승수행자들에 의하여 크게 성행하였다.
③ 인도에서 유식학과 미륵신행을 근간으로 하는 인도의 법상종이 대체로 4세기경에 중국에 전해져 유행하기 시작했다.
④ 한국에 미륵신행이 전해진 것은 법상종이 신라에 전해진 것과 같이 하고 있다.
⑤ 신라의 진표율사에 의해 미륵신행이 부흥하다가 고려조에 넘어오면서 선종(禪宗)이 유행하자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⑥ 고려조이후 선종이 도입되면서 승려사이에선 미륵신행을 비롯한 유식학보다 선(禪)이 유행하였고, 기존에 유행하던 미륵신행은 민간으로 유입되어 유행하게 되었다.
⑦ 미륵신행이 민간으로 유입되어 명맥을 유지하던 조선말 증산대성에 의해 발전된 미륵사상에 의한 신행이 크게 부흥하였다.
⑧ 발전된 미륵사상을 일으켰던 증산대성이 입멸하자 이후 그 제자들에 의한 대소 미륵신행단체의 활동으로 이어져갔다. 그 단체로는 "보천교", 수제자 김형렬의 "미륵불교", 김종용의 "용화사", 정수산의 "미륵불교", "태극도", "증산교", "증산법종교", "대순진리회", "증산진법회", "증산도" 등 외 많은 군소 단체의 미륵신행이 있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들 단체 중에는 혹세무민적인 신행으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⑨ 현재 미륵신행과 사상은 역사상의 풍상을 겪는 동안 환경상 일체의 사상이 포용되는 여정을 겪게 되어 종교 중 가장 광범위한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 하나 아직 완전히 그 골격이 잡혀진 상태는 아닌 가운데 미륵사상이 흘러가고 있다.
한국의 미륵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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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佛敎 思想
< 韓國佛敎의 通佛敎 思想에 대하여>
Ⅰ. 序 言.
Ⅱ. 通佛敎思想 形成의 背景.
Ⅲ. 通佛敎思想의 形成.
Ⅳ. 通佛敎思想의 展開.
Ⅴ. 結 論.
Ⅰ. 序 言
韓國의 불교는 일찌기 민족 문화의 형성기라고 할 수 있는 삼국 시대에 전래되어 오랜 기간 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 문화의 발전에 깊이 관련되어 왔다. 특히 불교 전래기에서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는 동안에 전통적인 사상과 불교가 보다 능숙하게 회통되었고, 또한 이웃한 중국.일본의 宗派를 배경으로 한 불교와는 달리 한국 불교 특유의 一宗一派, 一經一論에 구애되지 않는 圓融會通의 독자적인 通佛敎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通佛敎의 형성은 불교 자체가 갖는 교리적인 특성과 그러한 특성을 發現한 先人들의 노력과 한민족의 민족적인 우수성이 어울려 이루어진 결과 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통불교적 특성은 한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며 한국의 불교 사상을 주도해 왔다. 그러므로, 통불교적 사상의 흐름을 살피는 것은 한국적인 사상의 원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이러한 통불교사상의 형성과 그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通佛敎 思想의 形成의 背景
한국 불교의 전래는 삼국인 고구려.백제.신라에 각각 다른 루트에 의해 다른 성격을 가지고 전래되었다. 이러한 불교의 전래는 단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사상의 전래와 더불어 한국 불교의 통불교적인 사상이 점차적으로 형성되어졌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한국 불교의 전래 과정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통불교사상의 형성과 관련하여서는 대체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은 삼국 시대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되는 과정과 이후에 불교의 각 종파 교학의 전래 과정, 그리고 초기禪門의 전래 과정이다.
그것은 첫째, 삼국 시대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되는 과정이다. 372년 소수림왕 2년에 前秦王 符堅이 佛僧 順道를 보내며 불상과 경전을 처음 전수했고, 또 2년 후에는 아도가 와서 肖門寺와 伊弗蘭寺를 창건한 것이 고구려 불교의 初傳이라 한다. 또한 백제는 384년 枕流王 元年에 인도승 滅難陀가 東晋으로부터 들어와 한산에 절을 짓고 沙門 열 사람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고구려.백제의 불교 初傳이 하나는 육로로 다른 하나는 수로로, 또 하나는 전진에서 다른 하나는 동진에서 각각 서로 다른 길을 통해서 들어왔으나 외교적 경로를 통해 국왕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온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신라불교의 초전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토착 사상과 대립하며 민중 속에서 신앙되다가 527년 법흥왕 14년에 이차돈의 순교로 인해 公認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공식 통로를 통해 전래된 고구려.백제의 불교와는 달리 신라의 불교는 토착 신앙과의 줄기찬 대립 속에서 이의 극복하고 토착 신앙과의 융화를 통한 公認이었기 때문에 국민 단합적인 호국적인 불교가 발전했다.
그리고 이것은 즉, 한국 불교의 초전은 삼국에서 각기 이루어졌지만 신라가 국민 단합의 호국 불교를 중심으로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이후의 한국 불교는 신라 불교적인 신앙이 중심적 토대를 이루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통일 이전의 신라불교의 특징이라 할 토착 신앙과의 대립을 극복한 것에서 한국 불교적인 토대가 형성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불교의 각 종파 교학의 전래 과정이다. 初傳은 他國에 의한 것이었지만 약 1세기가 지난 때부터 한국의 승려들이 他國인 중국이나 인도에 직접 유학하여 많은 불교 사상을 배워 왔다. 이것이 대승 불교의 여러 宗學의 전래이다. 중국에서는 종파, 혹은 학파의 형태로 교학이 전수되었으나 한국 승려들은 특수한 종학이나 교학에 국한되지 않고 불교 전반에 걸친 사상을 배우려고 했던 점이 특이하다. 고구려 승랑은 三論의 大家였지만 經律과 華嚴에 까지도 통한 大家였고, 보덕화상은 열반경의 대가였으나 방등에도 능했다고 한다. 겸익이 인도에 유학하며 오부율을 갖고 왔지만 그 후에는 열반경을 연구했다. 또한 신라의 律師인 慈藏도 華嚴에 능통했다. 의상도 보덕화상에게 열반경을 배우고 중국에서는 화엄을 修學했다.
따라서 삼국이 정립한 시기인 한국 불교의 초창기에도 어느 한 종파에 구애되지 않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난다. 이것은 한국의 승려들이 일개 종파의 교학에서 벗어나 불교의 전체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며 종파적인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셋째, 초기 禪門의 전래 과정이다. 통일 신라 후기 대승불교의 이론에만 치우쳤던 것을 비판하고 7세기 무렵부터 실천 중심의 선종 사상이 전래된 것이다. 한기두 선생은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1)
이 禪思想은 善德王 당시 法朗이 四祖道信의 法脈을 이어 新羅에 가지고 들어 왔다.그러나 이 禪系는 北宗禪으로 연결되어 敎宗과 별스런 마찰이 생기지는 아니했다. 그러나 道義가 入唐求法하여 西堂의 禪法을 宣揚하려 했으나 習觀尊神에 사로잡혀 있던 新羅人들에게는 그 禪法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했다. 따라서 설악산 陣田寺에 隱遁하면서 傳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中國禪을 그대로 傳法하지는 아니했다. 똑같이 西堂에서 배운 洪陟은 道義가 隱遁하는 방식과 달리 興德王과 宣康太子를 禪門弟子로 삼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는가 하면 諸山의 禪門들이 南岳과 北山(雪岳山)중심으로 나뉘어서 韓國특유의 禪法을 展開했는데, 經典에 의거하려는 融禪系와 經典에 의거치 않고 오직 禪만을 강조하려는 純禪系로 나뉘어졌던 것으로 짐작이 간다. 融禪系인 禪門이 주로 華嚴을 기초로 한 禪修行思想이었다면 純禪系는 이 華嚴禪을 버리고 入唐傳心해서 禪을 찾았던 韓國的 禪方法論으로 심어졌다고 『傳燈錄』,『祖堂集』,『禪門寶藏錄』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韓國禪系가 그 어느 곳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禪修行으로 大覺을 얻기 위한 執念을 성취하는 하나의 목적 아래 華嚴思想을 통한 大覺의 基礎暗示를 받으려는 방법과 暗示없이 大覺을 성취하려는 방법의 두 가지를 썼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하여 新羅因 중심의 禪系門을 형성하고 禪으로 佛祖의 心印을 徹悟하려는 大覺의 方法論이 羅末에 성취되었던 것이다.
위의 기술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한국 불교에서 선의 전래가 깨달음을 구하는 구체적인 실천의 방법으로써 수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국 불교에 있어서의 중심적인 사상의 흐름인 통불교사상이 이러한 깨달음이라는 전제를 가장 최고의 위치에 두고서 종파적인 관점을 지양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전체적인 불교를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고찰한 한국 불교의 통불교사상 형성의 배경은 먼저 한국 불교는 그 시작이 토착 신앙과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점과, 종파적인 경향에 머물지 않고 전체적인 불교의 이해를 지향했다는 점, 그리고 이론의 현란함보다 실천적인 방법을 중요시하여 불교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Ⅲ. 通佛敎思想의 形成
한국 불교의 특징적인 사상으로 통불교 사상을 주장한 것은 육당 최남선의 『조선불교통사』에서이다. 그는 여기에서 인도의 불교를 서론적인 불교, 중국의 불교를 각론적인 불교라고 한다면 한국의 불교는 결론적인 불교라고 하며, 원효의 화쟁회통의 사상을 지목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지적은 한국 불교의 특징으로 통불교를 지목하고 원효의 회통사상이 그 사상적 밑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국 불교를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통불교사상의 원류로써 원효의 화쟁회통의 사상을 제외하고는 통불교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원효의 사상에서 그러한 통불교적인 사상의 가장 완성된 형태를 실현하고자 했고, 전체 불교를 관통하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佛意에 契合한 불교 사상의 精髓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통불교사상의 선구자로써 이 후 한국 불교의 흐름을 주도한 원효의 사상이야말로 한국 불교의 통불교사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통불교 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원효의 통불교 사상을 살펴 보기로 한다.
원효는 대승적 견지에서 만법이 귀일하는 불교의 근본 정신을 파악하여, 착잡한 사상을 화회하고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려는 대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저술은 경율론 대소승의 전반에 걸쳐 있지만 그 내용은 강연한 主旨가 모두 불교의 본정신으로 귀납되어 있다.
원효의 경론에 대한 疏釋이 많지만 그의 이념을 단적으로 표현하여 통불교 사상을 고조한 것은 십문화쟁론이다. 이 론은 본래 2권이었으나, 불행하게도 대개가 산실되어 4장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아 전체 사상을 알기에는 부족하나 원효의 전체적인 사상이 화쟁회통의 통불교 사상인 것은 분명하다. 십문이란 제종을 통합하여 십문이라 한 것으로 10종의 門路를 뜻한다.
45년간 설한 불타의 금구 설법을 보면 한 가지 여래의 진리이지만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차별된다. 이에 백가들이 이를 의지하여 본의에 어긋난 쟁론을 일으키게 된다. 이와 같은 수많은 쟁론의 한 단면이 10문인바 이러한 10문 사이에서 쟁론을 제거하고 화하도록 하는 원리가 바로 화쟁의 사상이다. 번다 하고 산만한 이론을 정리하고 트이지 못했던 생각들을 상통하게 하는 것은 원효에게 중대한 과제요 사명으로 느껴졌던 듯하다. 그래서 동문선에 원효의 사상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矛盾相爭者有年 爰乃曉公 挺生羅代 和百家之異諍 合二門之 同歸2)
이 화쟁을 하기 위해서는 인정해야 할 면과 부정해야 할 점의 두가지 논리를 원융하게 활용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의 종파가 성립이 되는 것은 불교의 진리와 동일하나 한 가지 동일하지 않은 어느 부정적인 면을 보고 종파가 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을 때 그 사상을 外道라고 몰아치고 파사현정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용수이후 삼론의 사상은 되지만 원효의 화쟁사상은 아니다. 부정하고 나선 그 어느 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제종개현의 원리이다.
또한 독특성을 인정하는 반면 공통점을 찾아 점점 독특성을 파하게 되면 이것은 획일만을 꾀하는 독재주의 전체주의와는 달리 귀합의 사상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개합의 숨은 의미이다. 원효의 이론은 단순히 종의 개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立破.與奪.同異.有無.離邊非中등이 모두 평등하여 중도적인 원리 안에서 회통하도록 하는 성숙한 이론인 것이다.
이와 같은 원효의 화쟁회통의 사상은 후대로 면면히 계승되어 한국 불교만의 독자적인 통불교 사상을 발전시켰다.
Ⅳ. 通佛敎思想의 展開
원효에게서 사상적인 원리로써 구현되어 화쟁사상으로 자리잡은 원융회통의 통불교사상은 통일 신라와 조선을 거치는 동안 한국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그 사상적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통불교 사상은 먼저 고려 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과 보조국사 지눌에게서 크게 발현되었다.
의천은 고려 문종의 4자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정신적인 통일 과업을 맡고 사상적 융화를 시도했다. 의천은 삼국 통일의 정신적 통일 과업을 회삼귀일의 원융사상으로 보고 화엄 및 천태의 사상을 찾았다. 특히 의천은 화엄의 오교융통의 도리를 찾기 위해 송대의 화엄승 淨源법사와 善聰.淨因.元炤등의 사상과 상통하였다.
의천의 사상은 화엄으로 다듬어졌으나 후일에 천태의 본찰인 국청사에 입참하여 해동불법에 관한 문제를 露呈하면서 천태사상을 강조하게 된다. 이것은 국가적으로 보나 불교종단의 문제로 보나 일승의 천태사상만이 서로를 화하고 통할 수 있다고 보고 천태종을 개창하였던 것이다. 또한 천태의 교관겸수의 사상이 선교 양종을 한층 깊이 상근시켜 준 점이다. 이러한 선교의 접근을 바탕으로 보조 국사 지눌은 선의 입장에서 교를 아우르는 더욱 발전된 사상을 추구 할 수 있었다
보조국사 지눌이 조계종을 개창했는가 하는 것은 오늘 날은 논란이 많은 문제이지만 지눌은 정혜결사를 통하여 실천적인 활동을 해서 고려 사회의 사상적 흐름을 선의 입장에서 선과 교를 통합하는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지눌은 혜능의 습정균혜하는 방법으로 선교융화의 원리를 삼고 나아가 선교융화의 구체적 방안을 원돈성불론과 화엄론절요에서 제시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심각한 배불의 상황에서 불교 사상만이 아닌 유교와 불교의 일치를 주장하는 함허당 기화의 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또한 청허 휴정의 유 불 도 삼교의 일치를 주장하는 것에서도 한국 불교의 원융회통적인 통불교의 사상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조선조 후기의 三門修業을 이루게 한 『三門直指』의 사상적 내용에서도 한국 불교의 통불교 사상은 면면히 이어져 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Ⅴ. 結 論
이상에서 살펴 본 바 같이 원융회통의 통불교 사상은 한국 불교의 가장 독자적인 특징으로 신라 원효의 화쟁 회통의 사상을 시작으로 고려 조선을 거치며 수많은 고승들에 의해 한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불교 사상은 무조건적인 통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대에 맞는 사상적 기반을 찾아내고 연구하는 노력을 통하여 불교의 참된 의미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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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있어서의 계율
최초로 부처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신 후, 모든 인류에게 그 깨달음을 전하시고자 결심하시고 녹야원[鹿野苑, M gad ya]에서 5명의 귀의자를 얻고서야 비로소 부처님을 위로하여 교단 즉 승가[僧伽, Sa gha]가 성립되었다. 그 후 여러 곳으로 유행설법(遊行說法)하여 제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늘어나 샤리푸트라[ riputra, 舍利弗]·마우드갈랴야나[Maudgaly yana, 目 蓮] 등이 출가할 즈음에는 1,250명 이상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45년여 동안 설법하는 동안 더 많은 제자들의 귀의가 있었고, 지역적으로도 넓은 범위를 차지하였으며, 부처님의 입멸(入滅) 후에도 불교교단은 날로 증대하여 갔다. 원래 불교가 부처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자등명(自燈明)·법등명(法燈明)] 스스로에 귀의하여[자귀의(自歸依)·법귀의(法歸依)]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 하더라도, 수행이란 애욕이나 물욕(物慾)을 기초로 하는 가정생활을 영위하면서 병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불제자가 되어 참답게 수행하려고 한다면 번뇌를 피하여 자유로운 몸이 되어 서로 함께 부처를 중심으로 모이고 또한 수도에 책려(策勵)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 단체를 승가라고 부르며, 거기에서 각자는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면서 또한 선정에 의하여 지혜를 닦고 번뇌를 단멸하면서 성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승가의 구성원들은 당연히 재가자들과는 판이한 생활양식과 생활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생활규정을 정하였고 그에 반대되는 것을 금지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계율인 것이다. 계율을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ratimok a]]라고도 하는데, [계[戒, ila]]는 [방비지악(防非止惡)]의 의미가 있으며 [율[律, Vinaya]]에는 [법률(法律)]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계율이란 본래의 의미로서 본다면 번뇌의 발동을 방비하여 그 단멸을 얻으려는 바의 생활규정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승가는 특히 부처의 입멸 후에는 부처님의 교법을 호지(護持)하고 이것을 후대에까지 전승하려는 사명감 때문에 세인의 신망과 존경을 얻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또한 승가의 구성원들은 세인의 비난을 초래하는 듯한 행위를 하여서는 안되었다. 나아가 교단의 신용보지(信用保持)의 입장에서도 많은 규정이 나왔던 것이고, 교단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서도 과감한 많은 규정이 시설(施設)되어야만 하였던 것인데, 이렇게 하여 이룩된 것이 250 내지 348개의 조항이며 오늘날의 계율인 것이다.
한편, 수계 할 때에는 첫째, 청정한 장소에서 둘째, 삼사칠증(三師七證)을 모시고 셋째, 때를 정하여 대중이 모여[시회대중(詩會大衆)] 지켜보는 가운데 설계(說戒)·수계(受戒) 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삼사(三師)'란
계(戒)를 주는 계화상(戒和尙)[계사(戒師): 수계사(授戒師)]
표백문(表白文)을 읽어 주는 갈마사(?磨師)[갈마아사리(?摩阿 梨)]
계 받는 이를 인도하여 수계하는 계단(戒壇)에 대한 여러 가지 작법(作法)과 규 모 등을 가르쳐 주는 교수사(敎授師)[敎授阿 梨(교수아사리)]
등의 세 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칠증[七證, 칠증사(七證師)]'이란 구족계(具足戒)를 받을 때 그것을 증명하는 일곱 분의 증명법사(證明法師)를 말하는데, 만약 법사(法師)가 부족하여 다 모실 수 없는 경우에는 두 분만 모셔도 된다고 한다.
⑴ 계율의 의미
스님이 지켜야 할 행동규범·율법으로 곧, 몸[身: 행위]과 입[口: 말]과 뜻[意: 마음]에 의한 일체의 악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을 의미한다.
⑵ 계율의 정의
계율이란 계와 율의 복합어로서, 원래 산스크리트어에서는 계[ ila]와 율[Vinaya]을 별개의 뜻으로 사용하여 붙여서는 쓰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중국·일본 등에서만 합성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계와 율이 동일한 뜻으로 표현되었고, 일상어로 사용할 때에도 완전히 구별지을 수 없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격히 살펴보면 계와 율은 다음과 같이 현격한 차이가 있다.
① 계 … 습관·습성·관행 등의 의미가 있으며, '좋은 습관'·'도덕적 행위'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이는 곧 인간의 몸과 마음을 조정하는 종교적·도덕적인 규범을 뜻한다. 따라서 윤리도덕이나 법률·의례 등도 여기에 포함되며, 규정된 조문뿐만 아니라 일체의 수양덕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불교도이면 남녀나 출가·재가의 구별 없이 모두가 지켜야 할 행위규범인 것이다.
② 율 … 조복(調伏)의 의미로, 즉 훈련을 뜻하며, 모든 그릇됨을 여의고 이상적인 세 계로 선도해야 할 출가교단을 통제하는 규범을 말한다. 따라서 단체생활을 영위하는 출가자를 통어(通御)하는 규범으로서, 재가자들이나 일반사람들에게는 크게 관계되지 않는 것이다. 인도에서 불교교단이 형성되었을 때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교단이 독립된 생활을 영위하였으므로 국왕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교단은 자치적 통제가 강화되어야 하였으므로 불교규범으로서의 율이 제정된 것이다.
결국, '계'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불교도덕이요, '율'은 출가자만을 위한 통제규칙으로 정의된다고 하겠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계를 설정하고 있으나 율을 내세우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대부분의 종교가 전문적인 출가교단을 위한 조직보다는 신앙만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불교는 그 출발부터 출가자들의 신앙은 물론 철학자들을 학습시켜 전문지도자로서 그 인격을 고매하게 하여야 할 의무를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계는 선정(禪定)·지혜와 함께 삼학(三學)의 하나로서, 번뇌의 원인이 되는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을 제거하는 방법으로도 설명되고 있다.
⑶ 계율의 성립
율장(律藏)이 언제부터 성립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불교경전의 성립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연대를 유추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율장의 성립연대는 부파분열 이후 즉, 불멸후 300년 이후(서기 150년경)로 보인다. 물론 율장의 내용은 다소 변형되고 증보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일찍 성립된 것은 B.C. 100년∼1년(불멸후 300∼400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사분율(四分律)}·{오분율(五分律)}이며, 다음으로 서기 1년∼100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십송율(十誦律)}이고, 그 후 다시 서기 100년∼200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승기율(僧祇律)}이고, 최후에 성립된 것이 서기 300∼400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유부율(有部律)}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리고 {파리율(巴利律)}은 {십송율(十誦律)}에 가까운 것으로 서기 100년 전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한역(漢譯) 율장의 번역연대를 살펴보면 {십송율}은 서기 404년, {사분율}은 412년, {승기율}은 416년, {오분율}은 524년 그리고 {유부율}은 703년경이다.
⑷ 계율의 분류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 )}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① 계법(戒法) … 부처님께서 정한 법
② 계체(戒體) … 법을 짓는 주체가 있기 때문에 항상 비행을 막고 악을 그치는 것
③ 계행(戒行) … 계체를 낱낱이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
④ 계상(戒相) … 계행에 따른 여러 가지 차별상
가. 소승에 있어서의 계의 분류
㈎ 오계(五戒) … ㉮ 살생을 하지 말라. ㉯ 훔치지 말라. ㉰ 음행하지 말라. ㉱ 거짓말 하지 말라. ㉲ 술 마시지 말라.
㈏ 팔계(八戒 … ㉮ ∼ ㉲
㉳ 꽃다발 쓰거나 향 바르지 말라.
㉴ 노래하고 풍류에 휩싸이지 말며 일부러 가서 구경하지도 말라.
㉵ 높고 잘 꾸민 평상에 앉지 말라.
㈐ 십계(十戒) … ㉮ ∼ ㉵
㉶ 때 아닌 적에 먹지 말라.
㉷ 제 빛인 금이나 물들인 은이나 다른 보물을 갖지 말라.
㈑ 삼귀의계(三歸依戒) … 불교에 처음 귀의할 때 하는 의식으로, 곧 불(佛)·법(法)·승(僧)에 귀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 비구의 250계
㈓ 비구니의 348계
나. 대승에 있어서의 계의 분류
보살이 수행하는 육바라밀(六波羅密)의 하나가 되어 보다 적극적인 수행덕목으로 발전되었으며, 일체의 계를 삼취정계(三聚淨戒)로 구분하였다.
삼취정계(三聚淨戒)
㈎ 섭율의계(攝律義戒) … 계율을 지킴으로써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곧, 5계·10계·250계 등 일정하게 제정된 여러 규율위의(規律威義) 등을 통한 윤리기준이다.
㈏ 섭선법계(攝善法戒) … 금계(禁戒)로써 만족하지 않고 봉사정신으로 이타(利他)적인 선행을 닦아 가는 것이다. 곧, 선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총섭(總攝)하는 선량한 마음을 기준으로 하는 윤리원칙이다.
㈐ 섭중생계(攝衆生戒) … 궁극적으로 중생을 보살로, 그리고 부처로 성취시켜 불국토를 실현하는 것이다. 곧, 일체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대원칙에 따르는 윤리기준이다.
※ 이것에 대하여 원효대사는,
섭율의계와 섭선법계만 있고 섭중생계가 없다면 오로지 自利行만 있는 것이 되어二乘에 머물 뿐이며, 섭중생계만 있다면 利他行만 있고 자리행이 없게 되는 까닭에 범부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 보리(菩提)의 싹을 돋아나게 할 수 없다. 삼취정계를 다 갖추면 무상보리(無上菩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어서, 이 삼취정계야말로 불사약인 감로(甘露)이다. 따라서 섭율의계는 단(斷)의 덕목이고, 섭선법계는 지(智)의 덕목이며, 섭중생계는 은(恩)의 덕목이기 때문에, 이 삼덕(三德)의 과(果)를 얻으면 그것이 바로 정각(正覺)을 이루는 길이다.
라고 하였다.
보살사섭법(菩薩四攝法)
'보리살타'라는 용어를 각유정(覺有情)·개사(開士)·대사(大士)·고사(高士)·대심중생(大心衆生)·시사(始士) 등으로 번역하는데 일반적으로 줄여서 '보살'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보리[菩提: Bodhi]'는 깨달음을 뜻하고 '살타[薩陀: Sattva]'는 중생[有情]을 뜻하므로, 곧 보살은 깨달음을 구하는 또는 깨달음 속에 있는 중생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보살이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아라한이 열반을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세간[有爲法]과 열반[無爲法]을 분별하여 이 중에서 열반을 구하는 것이 아라한의 수행이므로 그것은 자연히 출세간적인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살은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 나[我]와 남[他] 등의 모든 분별을 떠나 평등한 수행을 할 뿐 아니라 궁극적인 경계를 얻는 일도 없다. 따라서 보살의 수행은 아라한과는 달리 중생계에 회향(廻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보살이 국토를 정화하고 중생을 제도하고자 커다란 서원을 세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아함경에서,
마음이 더러운 까닭에 중생이 더럽고 마음이 깨끗한 까닭에 중생이 깨끗하다. 마치 화가가 하얀 바탕 위에 여러 가지 채색으로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마음도 오온(五蘊)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생사에 묶이고 오온에 대한 여실지(如實知)로 해탈을 얻는다.
라고 설하셨듯이, 분별망집(分別妄執)을 못 버려 소승을 행하는가 하면 분별망집을 떠나 대승을 행하고, 깨달음을 못 열어 어두운 중생인가 하면 깨달음을 열어 위대한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화엄경』에서는 "중생과 마음과 부처의 셋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설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성불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어서 이것을 불성(佛性)이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불성은 지옥에서 천상에 이르는 중생에게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는 말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불성이 있다고 해서 깨달음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생의 죄장(罪障)도 또한 무한히 두터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중생은 중생으로서 남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심한 경우에는 불성을 갖고 있다는 말조차 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므로 부처께서 먼저 중생의 마음을 정화하는 삼승(三乘)을 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물론이고 성문도 연각도 모두 보살의 길 속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즉, 누구라도 삼보에 귀의하고 염불이라도 한 번 하는 순간 모두 이미 보살의 길 속에 들어서 있는 것이어서, 심지어는 『법화경(妙法蓮華經)』에서는 "장난으로 불탑이나 불화를 그리거나, 산란한 마음으로 '나무불(南無佛)'을 한 번 하고서도 모두가 이미 불도를 이루었다"고 설하고 있다.
사섭법(四攝法)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고 섭수(攝受)하기 위하여 행하는 네 가지 기본행위를 말하며, 이것을 '사섭사(四攝事)'·'사섭(四攝)'이라고도 한다.
㈎ 보시섭(布施攝) … 중생이 재물을 구하거나 진리를 구할 때 힘 닿는대로 베풀어주어서 중생으로 하여금 친애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말한다.
㈏ 애어섭(愛語攝) … 중생을 불교의 진리 속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여 친애하는 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보살은 언제나 온화한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중생을 대한다.
㈐ 이행섭(利行攝) … 몸과 말과 생각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 되고 보람된 선행을 베풀어서 그들로 하여금 道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 동사섭(同事攝) … 보살이 중생과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을 함께 하고 화복(禍福)을 같이 하면서 그들을 깨우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적극적인 실천행(實踐行)을 말한다. 이 '동사섭'은 보살의 동체배비심(同體大悲心)에 근거를 둔 것으로,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그들을 자연스럽게 교화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섭법 가운데 가장 지고(至高)한 행(行)이다. 왜냐하면 보시·애어·이행 등은 처해진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만 '동사섭'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⑸ 여러 가지 계명(戒名)
비구·비구니가 지켜야 하는 구족계(具足戒)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바라이[波羅夷: P r jik ] … 계율 가운데 가장 엄하게 제지한 것을 말하는데, 이는 刑法에서의 死刑과 같은 것으로 이 계를 범하면[波羅夷罪] 비구·비구니의 자격을 상실하고 교단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比丘에는 다음 항에서 나오는 네 가지가 있어서 '4바라이'라고 하고, 비구니에게는 여기에 '마촉(摩觸)'·'팔사성중(八事成重)'·'복장타중죄(覆障他重罪)'·'수순피거비구(隨順被擧比丘)' 등의 네 가지를 더하여 '8바라이'가 된다.
② 승잔[僧殘: Sa gh va e a / 僧伽婆尸沙] … 바라이 다음가는 중죄로, 승려로서의 자 격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어서 여러 스님들에게 참회하여 허락을 받으면 구함을 받을 수 있다. 비구에게는 13승잔이 비구니에게는 17승잔이 있다.
③ 부정[不定: Aniyata] … 이것은 비구에게만 있는 항목으로, 참으로 죄를 범하였는지 범하지 않았는지 또 설사 범하였다고 하더라도 무슨 계를 범하였는지 확실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
병처부정계(屛處不定戒) ― 어두운 곳이나, 으슥한 곳이나, 다른 이가 보고 들을 수 없는 곳에서 계를 범하지 않는 것.
노처부정계(露處不定戒) ― 어두운 곳이나 으슥한 곳이 아니면서도 남이 보고 듣지 못하는 곳에서 계를 범하지 않는 것.
④ 사타[捨墮: Nai sargikap yattika / 尼薩耆波逸提] … 여기에 포함되는 30가지는 비구·비구니가 모두 같으며, 이는 모두 옷이나 발우(鉢盂) 등의 재물로 말미암아 범계(犯戒)의 동기가 된다. 승단(僧團)의 대중 앞에 나가 참회하여야 되며 만일 진심으로 참회하지 않으면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삼악취, 三惡趣]에 떨어진다고 한다.
⑤ 단타[單墮: P yattika / 波逸提] … 물질과는 관계가 없는 언어·행동·마음가짐 등의 생활규범을 토대로 한 것으로 곧, 집착심 및 번뇌에 대한 죄이다. 이 죄를 범한 자는 즉시 세 명의 스님께 참회하여야 하는데, 비구에게는 90(또는 92) 가지가 있고 비구니에게는 178가지가 있다.
⑥ 회과[悔過: Pratidesaniya] … 이는 '타인에게 고백해야 할'이라는 의미로, 이 죄를 범하였을 때는 한 스님에게만 참회하면 그 죄가 소멸된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걸식에 관련된 것으로, 비구에게는 4가지가 있고 비구니에게는 8가지가 있다.
⑦ 중학[衆學: Sik a-kara ] … 비구나 비구니에게 모두 75가지가 있는데, 이는 罪名 이라기 보다 식사의 방법, 설법의 방식, 在家와 가까이 할 때의 주의 등 허다하게 배워야 할 위의작법(威儀作法)을 설명한 것이다. 이것에 게합(契合)되지않는 행위를 하면 돌길라[突吉羅, Du k ta]죄가 되며, 이것을 고의로 범한 때에는 상좌(上座) 스님께 참회하여야 하지만 고의가 아닌 경우에는 자신의 마음에 참회하면 된다.
⑧ 멸쟁[滅諍: Apt dhikara-Samath ] … 이는 죄명이라기 보다는 승단중에 일어나려고 하거나 이미 일어난 분쟁(紛諍)을 없애는 일곱 가지의 방법을 말한다.
⑹ 사바라이와 그 작지계적(作持戒的) 해석
'바라이[波羅夷, P r jik ]'란 계율 가운데 가장 엄하게 제지한 것을 말하는데, '사바라이(四波羅夷)'란 승려로서 지켜야 하는 계율 가운데 가장 중요한 네 가지를 말한다. 이는 형법에서의 사형(死刑)과 같은 것으로 이 계를 범하면 승려의 자격을 상실하고 교단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계율이란 불교도들의 그릇된 생활을 예방하고 악한 마음을 방지하려는 뜻으로 원래 금지적인 '지지계(止持戒)[止諸惡門]'이지만, 율서(律書)의 후반에 오면 권장하는 의미의 '작지계(作持戒)[作諸善門]'로 바뀌고 있다. 이것은 계율의 목적이 악의 생활에서 벗어난 수도의 목적이 되는 해탈에 향한 것이기 때문이며, 표면적으로는 금지적 조항을 주로 하여 소극적 입장을 보이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수도의 착한 일을 권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계율에는 〈작지계〉·〈지지계〉의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이제 '사바라이'를 작지계적으로 해석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대음계(大淫戒)[불사음(不邪淫)] … 【 범행(梵行) 】 성욕(性慾)은 인간의 자연적 본능이며 만물생성의 근원으로서 참기도 개방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근기(根機)를 살피고 분수를 잃지 않도록 하며, '梵行'의 생활을 영위하여 불법(佛法)의 고귀함이 더욱 고귀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② 대도계(大盜戒)[불투도(不偸盜)] … 【 보시(布施) 】 수행자들로 하여금 '지족심(知足心)'을 심어 주는데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구구한 형색으로 코밑에 숨 떨어지면 한 줌의 재가 될 이 몸을 위하여 남의 가슴을 조이고 애타게 하는 일없이, 남을 위해 베풀어 줄 수 있는 '보시'의 생활로서 안온한 사회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③ 대살계(大殺戒)[불살생(不殺生)] … 【 방생(放生) 】 '억지제계(抑止制戒)'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탐자생(不貪慈生)'에 그 본원(本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은 죽어도 마음은 죽는 것이 아니며 생(生)은 업(業)에 의해 받는 것이므로,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 라도 그 생명의 존귀함을 잘 알고 '죽이지 않는 것'에 앞서 '죽는 것을 살려주는' 마음인 '방생(放生)'의 생활로서 자비심(慈悲心)이 충만한 사회를 이루자는 것이다.
④ 대망어계(大妄語戒)[불망어(不妄語)] … 【 성실어(誠實語) 】 알지도 보지도 못한 것을 알고 보았다며 무지(無知)의 중생들을 현혹하고 공포케 하지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성실어(誠實語)'로써 상대방을 대함으로서 밝고 명랑한 사회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⑺ 계율과 관계된 여러 가지 의식
① 포살[布薩: Uposatha] … [정주(淨住)]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매달 1일과 15일의 이틀동안 일정한 지역 내에 있는 불교도들이 한 곳에 모여 계율의 조목들을 함께 외우면서 그 하나 하나에 대해 범한 일이 없는가를 각자 반성하는 모임을 말한다. 만약 그동안 한 가지라도 계율을 어긴 사실이 있다면 대중 앞에서 고백하고 참회해야 하였다.
② 안거[安居, Var a] … 출가한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제도. 남방불교에서는 여름 한차례만 안거를 행하는데, 북방불교에서는 여름 3개월동안 행하는 하안거[夏安居, 음력 4월16일∼7월15일]와 겨울 3개월 동안 행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16일∼1월15일]가 있다. 'Var a'란 말은 원래 '우(雨)·우기(雨期)'라는 뜻으로, 옛 인도의 바라문교에서 안거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불교에서는 육군비구(六群比丘)들이 여름에 행각하다가 폭풍우를 만나고 초목과 벌레들을 살상하여 비난을 받았으므로 여름에 비가 올 때에는 외출을 금지하고 수행을 하게 한 것이 불교에 있어서 안거(安居)의 기원이다. 안거기간 동안은 한 곳에서만 수행하도록 되어 있으며, 몇 안거를 지냈느냐에 따라 스님의 수행력이 되기도 한다. 안거는 각 본산(本山)의 사찰별 행하며, 안거를 실시하는 사찰은 안거자 명단을 작성하고 안거중의 각 소임을 정한다. 안거 중에는 좌선(坐禪)·간경(看經) 등에 의하여 수행을 행하는 것이 관례이 지만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좌선 위주로 수행을 한다.
③ 자자[自恣] … 안거가 끝나는 맨 마지막 날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 동안의 생활을 서로 지적하고 질의·반성하는 의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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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교 입 문
제 1 밀교란
1. 밀교.진언종의 의미
흔히 [밀교 密敎]란 어떤 특수한 종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 속의 한 흐름으로서, 즉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오히려 대승불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밀교입니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밀교가 힌두교 등 인도의 제종교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불교의 흐름 속에서 특수한 발전을 보아온 하나의 [비밀불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밀 密]이란 비밀을 의미합니다. [비밀]이라는 말의 산스크리트어(梵語)는 구햐 guhya라는 말이 흔히 쓰이는데 그것을 번역하여 비밀, 또는 밀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밀교] 또는 [비밀불교]는 그 의미하는 바가 종교적 체험의 깊이를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밀교라든가 비밀불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깊고 오묘한 가르침]이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밀교라고 할 때는 곧 현교(顯敎)라고 하는 말이 대조적으로 말해집니다. 사실, 홍법대사(弘法大師) 쿠카이(空海) 이후의 일본의 진언밀교에서는 상대적인 의미로 현교와 밀교라고 하는 말이 쓰여지고, 현교에 대하여 밀교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강조하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 관계된 것으로 쿠카이가 저술한 것, 또는 그 이후의 천태종의 학자들이 쓴 것, 그리고 헤이안(平安) 말기에 가꾸반(覺종;興敎大師)이 현밀차별을 논한 것 등 대단히 많이 있는데 그러한 것을 통하여, 현교에 대한 밀교의 특색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상당히 폭넓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점은 밀교사상편에 들어가서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인도에 있어서의 유파의 명칭
밀교는 인도에서 발달하여 중국과 한국, 일본에 전해지고, 또한 티벳(西藏)에도 전해져서 각자 독자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칭은 [바즈라.야나 vajrayana]라고 하고 금강승(金剛乘)으로 번역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대승의 발전 속에 더욱 깊고 크게 발전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바즈라.마하야나 vajra-mahayana], 즉 금강대승(金剛大乘)이라고 과칭하기도 합니다. 밀교의 근본경전인 {대일경}에도 대승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대승은 {대일경}이전의 대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발전한 형태로서의 [우리 대승]이라는 의미의 대승입니다. 또한 진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여 [만트라야나 mantrayana], 진언승(眞言乘)이라는 호칭도 있습니다.
그리고 밀교를 서양에서는 [탄트릭 부디즘Tantric Buddhism], [에소테릭 부디즘 Esoteric Buddhism]이라고 하는데, 7세기 이후부터 밀교 최후의 무렵(12세기경)까지의 밀교문헌을 탄트라Tantra라고 하는 것에 근거하여 밀교를 탄트라의 불교, 탄트릭 부디즘이라고 한 것 입니다.
인도에서 성전을 나타내는 언어 수트라 sutra(팔리어;sutta)를 불교에서는 경(經) 또는 계경(契經)이라고 번역합니다. 본래 그것은 [날실(縱絲)]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탄트라도 본래는 [씨실(橫絲)]이라는 의미입니다. 탄트라란 <넓게 한다>는 의미의 탄tan으로 부터 나온 말이라 하여 [그것에 의하여 지혜가 넓혀지는 것] 또는 [모든 것을 한데 모은 것], [한 번 만들어진 것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 이것이 탄트라]라고 확대 해석하기도 합니다.
불교성전에서 수트라라고 하면 불설(佛說)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논사(論師)가 설한 것은 논서(論書)라고 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탄트라는 역시 수트라와 같이 경전이지만 [불설]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르침에는 다름이 없지만 수트라는 사상적(思想的)인 내용이 풍부한 데 비하여 탄트라는 실천적인 면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으로 특징 짓기도 합니다. 아무튼 수트라든 탄트라든 진리를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는 것을 기계로 옷감을 짜는 것에 비유하여, 씨실과 날실의 교차에 의하여 우주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발상이 깔려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더 부연한다면 밀교는 독특하고 복잡한 수법(修法)과 관법(觀法)을 하고 있는 것이 현교(顯敎)의 수트라와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그에 관한 의례(儀禮;修法의 規則과 方法)을 설한 문헌을 [의궤(儀軌)]라고 하는데, 그러한 여러 가지 종교적인 실천을 내용으로 하는 불교문헌이라는 의미로 탄트라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게 된 것 입니다. 이와 같이 탄트라는 본래 사상이나 철학을 설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대우주 즉 절대 세계와 소우주 즉 인간 세계가 본래 일체 (一體)라는 생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지향하는 실천의 도(道), 즉 수도의 방법(修法)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읽거나 듣거나 하더라도 혹은 내용을 안다든가 이해한다고 해도 전혀 의미를 지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탄트라는 오로지 그것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본래의 의의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같은 불설(佛說), 즉 경전이면서도 수트라라고 하지 않고 탄트라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쿠카이(空海)의 용어
홍법대사 쿠카이는 밀교의 대성자(大成者)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밀교에 대한 용어의 사용방법이 대단히 풍부합니다. 홍법대사의 저작을 통하여 어떠한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진언종]이라고 하는 말은 쿠카이가 일본에 개창한 종파의 종명(宗名)입니다. 그런데 쿠카이의 저술 속에는 이밖에도 진언밀교(眞言密敎), 진언비교(眞言秘敎), 진언승교(眞言乘敎), 진언비밀장(眞言秘密藏), 진언법교(眞言法敎) 등의 말이 자유자재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또한 쿠카이는 [밀교]라고 하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 밀교라고 하는 계열의 말로는 비밀승(秘密乘), 비밀불승(秘密佛乘), 비밀일승(秘密一乘), 비밀금강승(秘密金剛乘), 비밀진언장(秘密眞言藏), 비밀만다라교(秘密曼茶羅敎) 등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강일승 金剛一乘]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일승불교라고 할 때는 법화일승, 화엄일승이라고 하듯이 여러 종파에서 제각기 자신의 종파의 우위를 내세우기 위해 강조했던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쿠카이는 금강일승, 그것이 우리 진언밀교이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쿠카이는 그야말로 밀교의 대성자로써 밀교를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한 실천가였던 것인만큼 밀교를 나타내는 데에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사용하는 단어에 대해서도 제각기 밀교의 특성을 나타내는 깊은 의미를 간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진언종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밀교가 특히 일본에서 하나의 종파로 정착하고 있는 명칭은 진언종입니다. 그렇게 진언종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불공삼장 (不空三藏)이 번역한 {분별성위경(分別聖位經)}이라고 하는 작은 경 속에 [진언다라니종(眞言多羅尼宗)]이란 어떤 의미인가 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 [진언다라니종]이라는 말에 주목하여 쿠카이는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다라니]를 빼고 [진언종]이라는 말을 할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쿠카이는 종명을 [진언종]이라 한 것인데, 다시말하면 헤아안 초기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밀교를 일본불교의 여러 종파 속에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명칭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천태종이라 한 것에 대하여 자기 쪽은 밀교라 하지 않고 진언종이라 한 것입니다.
산스크리트어 [만트라mantra]를 [진언(眞言)]이라고 번역합니다. 만트라는 오래된 의미로는 신들에게 바치는 찬가, 신을 찬미하는 짧은 말입니다. 그것은 베다veda 등의 종교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들에게 바치는 찬가라는 의미를 가진 말을 쿠카이는 [진실어 眞實語;진실한 말]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의어 如義語]라고도 하는데 [뜻과 같다(如義)]고 하는 것은 진리의 말, 진실의 말을 뜻합니다. 법신 대일여래(法身大日如來)의 자내증(自內證;스스로 깨달은 내용) 그 자체를 설명한 진실의 가르침, 진실의 말씀, 그것을 [진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쿠카이는 누구나 믿어서 의심이 없는 우주의 진리 그 자체,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 그 자체를 가르침 속에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법신설법(法身說法)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종파를 [진언종]이라고 한 것입니다.
2. 밀교의 분류
지역별로 본 밀교의 분류
밀교를 지역적으로 볼 때, 인도에서 중국 한국 일본 또는 티벳 몽고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고, 시간적으로도 긴 역사적 발전과 변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단히 밀교의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밀교라고 할 경우는 어디의 밀교인가를 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흔히 말합니다. 우선 지역적으로 분류하여 인도에서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도의 밀교는 1,300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밀교는 근본불교시대부터 13세기의 초기까지, 처음에는 미미한 정도였지만 7세기 이후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도의 밀교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뒤에 중국에 전해진 밀교는 한역경전에 의한 밀교입니다. 처음은 3세기 무렵이고 역경에 의해서 그 밀교의 사상이 겨우 보급되는 정도였는데, 8세기 중당(中唐)무렵이 되면 밀교 경전의 전역도 왕성하게 되고 밀교라는 한 종파가 여러 종파 사이에 독립하여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계열의 밀교가 그대로 일본의 밀교로 된 것입니다.
일본의 밀교는 중국밀교의 전래에 의한 것이지만, 나라(奈良)시대에는 아직 하나의 종파로 독립을 보지 못하고, 헤이안 시대의 초기에 홍법대사 쿠카이에 의해서 비로소 한 종파로 독립한 진언종이 성립한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전교대사 사이쵸(傳敎大師最澄)가 전한 일본의 천태종에는 천태밀교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의 천태종은 {법화경} 뿐만 아니라 밀교를 겸해서 배우고 있는데, {법화경}과 밀교는 똑같이 높은 사상적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원밀일치(圓密一致)]라고 합니다.천태밀교는 [태밀(台密)]이라 하고 진언밀교는 [동밀(東密)]이라고 합니다.이 경우 동은 교또(京都)의 동사(東寺)를 가리킵니다. 고야산의 밀교라고 해도 좋지만 어느 시대에 동사가 진언종의 가장 중심으로 되고 동사의 쵸쟈(長者)가 진언종의 대표이고 다른 큰 본산(本山)을 통제한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동사가 진언종을 대표하는 의미에서 동밀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의 밀교는 동밀과 태밀의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티벳에 전해진 밀교의 흐름도 있고 많은 경전의 티벳역과 밀교의 홍통, 그리고 티벳밀교의 발달 변천이 있습니다.
인도밀교의 분류
인도에서의 밀교의 발생.발달.변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인도의 문헌에 의해 밝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인도불교에 대해서도 사정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문헌으로서의 불교문헌이든 밀교문헌이든 어느것도 거의 현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충분하긴 하지만 중국에 전역된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인도불교 또는그 일부문으로서의 밀교경전의 성립사를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도밀교경전의 성립사에 대해서는 뒤에 중국밀교의 성립사를 개관하면서 함께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인도밀교에 대해서 내용적으로 구분하여 중국.일본과 티벳이라고 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중국.일본에서의 분류방법
먼저 중국.일본의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약속한 것으로는 밀교를 [잡부밀교(雜部密敎)]와 [순수밀교(純粹密敎)]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 경우 인도밀교의 흐름 속에 초기밀교에서부터 650년 경까지의 사이에 성립된 것을 경전의 내용으로 보아 이들을 일괄하여 잡부밀교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장삼장 현장삼장이 인도에 갔다 돌아올 무렵, 또는 그 직후, 650-700년경에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성립하는데, 그들 경전은 그 내용으로 보아 순수밀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우선 ① 성불(成佛), 즉 부모에 의하여 생긴 이몸 그대로 부처님의 경지를 체현한다고 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강조하고, ② 마하비로자나불(摩訶毘盧遮那佛;大日如來)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등장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되며, ③ 석가모니불이 설하신 것이 아니고 법신 대일여래가 설하신 경전이라고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경전입니다.
여기서 순수(純粹)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 순수하다는 것인가. 밀교라고 하면 자칫하면 정통의 불교에서 벗어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러나 밀교는 석존 이래의 불교의 흐름, 즉 대승불교의 역사적인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오히려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가장 훌륭하고 우수한 것이 밀교의 정통적인 흐름이라고 평가하여 순수밀교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잡부(雜部)라고 하는 것은, 좀 순수하지 않다든가 여러 가지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든가 하여, 언어적으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그쪽에도 밀교의 한 특징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국이나 일본의 학자들이 인도밀교를 [잡부밀교]와 [순수밀교]로 구분한 방식은 그다지 엄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전혀 구별하지 않고는 웬지 모르게 좀 이상하게 보일 경우에는 요즈음도 이러한 구별 방법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2) 티벳불교에서의 분류방법
그러나 티벳에서의 인도밀교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진보된 방법을 보이고 있습니다. 티벳의 전승으로는 1,300년 정도의 인도밀교의 역사를 구분하여 제1기에서 제4기까지 네 가지의 시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 제1기는 작(作)탄트라(kriya-tantra)라고 합니다. 크리야(作)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종교적인 행위, 다시 말하면 수법(修法)에 대한 작법(作法)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그러한 것을 쓴 탄트라가 성립한 시대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내용적으로 말하면 이 속에는 밀교의 중요한 것이 거의 들어 있습니다. 주법(呪法), 다라니, 인계(印契;mudra) 등 여러 가지 수법의 작법, 만다라 등도 이미 자세히 설해져 있습니다. 다만, 즉신성불 또는 속질성불(速迭成佛)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 그다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수법(修作)한다는 것은 현세이익적인 내용, 즉 사람들의 바램은 어느 것이라도 이루어 준다는 기원적인 수법을 말합니다. 주문이나 다라니를 외우면 모두 구해진다든가 재난으로부터 구원된다고 하는 밀교입니다. 그것이 제1기의 밀교라고 합니다.
제2기가 행(行)탄트라(CAriya-tantra)입니다. 챠리야는 [행 (行)]으로 번역합니다. 대승불교의 여러 가지 수행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수법만이 아니고 넓은 의미의 수행도 하고 이론화(理論化)도 합니다. 이론화란 대승불교를 근거로 하여 거기에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간다는 것입니다. 경전의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과 이론의 양방면을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일경}등을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인데,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대일경} 등을 가리킵니다. 밀교의 티벳 전승이라고 하면 이것이 제2기 입니다.
제3기가 유가(瑜伽)탄트라(Yoga-tantra)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요가를 중심으로 하는 밀교입니다. 요가 또는 삼마디 (samadhi)라고 하는데, 이른바 선정(禪定)을 닦아 정신통일을 하고 그 속에서 부처님과 내가 합일한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그것을 [요가밀교]라고 합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금강정경}입니다. 그러므로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성립은 연대적으로도 조금 다릅니다. {금강정경} 쪽이 조금 후대에 성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대일여래가 설법하고 즉신성불을 설하는 등의 의미로는 순수밀교(純密)에 속하지만 순밀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금강정경}은 그 후반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큰 문제로 되는 것은, 중국.일본의 불교에서는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양부(兩部)의 대경] 또는 [양부불이(兩部不二)]라 하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진언종의 전승인데, 티벳 불교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 전과 후, 이를테면 챠리야 탄트라와 요가 탄트라에 차이가 있다를 것을 티벳의 학자는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밀교연구자는 이러한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고, 일본의 밀교 쿠카이의 밀교도 다시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일본불교에서는 순수밀교라고 하는 하나의 틀 속에 넣어져 있는 것입니다.
제4기가 무상유가(無上瑜伽)탄트라(Anuttarayoga-tantra)입니다. 이것은 후기밀교(後期密敎)라고도 하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변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후기밀교의 분야는 중국이나 한국, 일본밀교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소위 탄트리즘(tantrism) 이라는 것인데, 인도와 구미의 학자가 연구하는 영역은 거의가 이쪽입니다. 750년부터 1,000년 정도까지의 경향을 모아서 무상유가 탄트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쾌락사상이라든가 좌도밀교(左道密敎)라고 하는 여러 가지 발달.변천도 그 최후의 후기밀교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국, 한국, 일본의 밀교에서는 전혀 수용한 흔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상유가탄트라가 인도에서 융성하였던 것은 9세기 이후의 일로 홍법대사 쿠카이 및 그 제자가 유학했던 시대에는 그것이 아직 중국 불교계에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인도밀교의 긴 역사를 보면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잡부밀교와 순수밀교라는 비교적 단순한 구분만이 있으나, 티벳의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쪽이 인도밀교를 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연유에서 저는 밀교를 분류할 때에는 어디의 밀교를 가리키는가 라고 하는 것을 반드시 전제로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제2 밀교경전의 성립과 특색
밀교의 경전은 어느 정도 있으며, 어느 시대에 성립한 문헌이 가장 많은가 하는 문제는 전문적으로 연구하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여기서는 그 대강의 줄거리만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1. 밀교의 원류 ---- 인도 고대의 베다종교
밀교경전의 성립을 고찰할 경우, 맨 먼저 밀교의 기원이라고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밀교는 석존이 설한 것이 아니다 라든가 석존시대에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논의가 최초에 대두되게 되는데, 이 단원에서 말하고자 하는 밀교의 원류라는 것은 실은 인도의 고대 베다(Veda) 종교 속에 나타나고 있는 밀교의 한 요소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하나의 특징은 만트라(mantra;呪文)를 외우고, 신들에게 양재초복(攘災招福), 즉 재앙을 없애고 행복을 가져올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다가 후에 네 가지 베다로 발전한 것 가운데 특히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에 식재(息災).주저(呪詛) 등의 주법(呪法)으로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설해져 있습니다. 더우기 바라문교의 성립시대가 되면 그런 신들에 대한 기원이 한층더 왕성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다신교(多神敎)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들에게 기원할 때에 만트라를 외우는 것은 나중에 불교 속의 밀교에서도 형식상으로는 그와 같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다종교나 바라문교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되는 신과, 불교의 흐름 가운데 있는 밀교에서 신앙되고 있는 제존(諸尊)과는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서 원망(願望)을 이루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정은 시간을 초월하여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인도인들은, 불교 이외의 사람들도 당연히 현세이익적인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있었던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공통적인 원류를 갖습니다.
다른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화천공양(火天供養)의 호마법(護摩法)도 그 기원은 바라문교에 있습니다. 그것이 밀교 속에 받아들여져서 마침내 진언종에서도 호마법이 성하게 수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2. 불교 속에서의 밀교의 발전과정
원시불교
다음에 밀교가 발전하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밀교는 석존시대부터 손제자의 시대(근본불교시대)에 그 싹이 있었다고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근본불교경전 속에 이미 석존은 세속적인 주술이나 주법. 주문을 외우거나 해서는 안된다고 금지한 부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 속에서는 재난을 없애고 행복을 구하는 현세이익적인 마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을 없애거나 아픔을 치료하는 것, 예를 들면 이빨이 아플 때 치통을 낫게하는 주문을 외운다든지 또는 독사나 독충을 쫓기 위해서 방호주(防護呪;parita)라고 하는 주문을 외워서 재해를 면하는 것은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어느 시대이든 무언가에 의존해서 몸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정도를 넘지 않도록 한다든가 또는 그러한 형태를 견지하면서 정신적으로 안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원시불교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밀교의 기원을 원시불교에서의 주법이라든가 방호주(파리타)의 존재 등 다만 이와같은 주술의 개재(介在)에서만 찾고 후에 발달된 고도로 정신적인 밀교를 다만 [순화]의 한마디로서만 설명한다면 그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학계에서 지적하고 있으며, 따라서 밀교의 기원을 주술적인 요소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밀교가(密敎家) 자신이 대승불교도로서 자인하고 있듯이, 역사적으로든 교리사상적으로든 철저하게 대승불교를 후계하고 발전시킨 것이 곧 밀교이다고 하는 것이 최근의 학계에 정설로 되어 있음을 아울러 밝혀 둡니다.------ 譯者>
부파불교에서 대승불교.밀교에로
부파불교에서 대승불교의 중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지만 그 시대에 밀교경전은 점점 많이 성립되었습니다. 경전이 성립했다는 것은 그것이 널리 보급되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들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고 만들고 보급되어 밀교를 믿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후기가 되면 더욱더 급속히 밀교경전이 많이 성립되어 인도불교사에 있어서 이른바 밀교시대에 돌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밀교경전의 성립과정
밀교경전의 성립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경전의 수, 번역연대를 기준으로 하여 도표를 만들어 보는 것이 이해하기 쉬우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인도의 밀교이지만 인도의 자료든지 인도의 문헌에서는 대단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득이 중국에서 번역된 한역불전(漢譯佛典) 속에 있는 밀교경전을 분류하여 역으로 인도밀교의 성립과정을 추측하는 방법입니다.
재 {대정신수대장경}(100권)이라고 하는 방대한 대장경에서는 4권(제18,19,20,21권) 속에 밀교부로 수록되어 있고, 그밖에 반야부 보적부 대집부 등에도 밀교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경전들이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는 아주 많은 부수를 밀교경전이라 하고 그 경전과 번역자, 년대를 분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경전의 번역년대와 경전의 수를 기준으로 하여 인도불교사를 추정해 보면 위와 같은 표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삼국시대의 오吳 시대에 네 가지 정도의 밀교경전이 역출되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에 소개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밀교경전이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로부터 서진 시대에 두 가지, 동진 시대에 18, 남북조 시대에 27, 수 시대에 10, 당의 초기부터 중기 무렵이 되면 밀교경전의 수는 급격히 많아지게 됩니다. 현장(玄 ?)도 의정(義淨)도 밀교경전을 역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초당 시대에 많은 번역자에 의해서 역출된 밀교경전의 수를 세어보면 63종류 정도 됩니다.
당의 중기 무렵(中唐時代), 700년대가 되면 선무외(善無畏)삼장에 의해서 {대일경}이 번역되고, 금강지(金剛智)삼장에 의해서 {금강정경}이 번역됩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불공(不空)삼장이 거듭 금강정계의 밀교경전을 많이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들에 의해서 비로소 중국밀교가 중국불교의 한 종파로써 성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시대의 역경은 거의 200가지에 달합니다. 더군다나 당의 말기(後唐) 무렵에도 아직 밀교경전의 역경이 계속되어 37종류 정도의 경전이 더 역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대시대(五代時代)라고 하는 혼란의 시대가 있고 뒤이어 송나라가 됩니다. 그 송대의 초기에 밀교경전이 120종류나 번역되고 있습니다.
한역(漢譯)은 1030년 쯤에 끝나버리지만 인도밀교는 그 후에도 계속됩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인도밀교는 이슬람교도에 의해서 무참하게 전부 파괴됩니다. 비크라마시라사(Vikramasira寺)라고 하는 밀교의 가장 큰 사원이 그때 철저히 파괴되어, 밀교가 완전히 인도에서 소멸되어 버리는 때가 1203년쯤이고, 이것을 인도밀교의 종말이라고 합니다.
한역경전을 통해서 본 인도밀교라는 것은 대략 이런 과정으로 발달.변천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물의 흐름에 비유하면 좁은 개울이 흘러흘러서 점점 크고 넓은 강물이 되듯이 인도불교의 최후는 밀교시대로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점점 쇠퇴해져서 마침내 밀교 속에 흡수되어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밀교는 대승불교의 철저한 후계자로서 불교의 오랜 흐름과 함께 하는 이러한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들 많은 밀교문헌을 총칭하여 특히 [밀교경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 밀교경전의 분류
밀교경전의 분류는, 한 가지 시안(試案)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구분하면 좀더 이해하기 쉬우리라 봅니다.
⑴ 태장법부(胎藏法部)
태장법부는 엄밀히 말하면 금강계.태장법이라고 할 때의 태장법의 부문이고, 그 대표적인 것은 {대일경}입니다. 그리고 그밖에 {광대의궤(廣大儀軌)} 등이 있는데 역시 {대일경} 계통의 경전을 의미합니다.
⑵ 금강정부(金剛頂部)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입니다. 여기에는 {금강정대교왕경(金剛頂大敎王經)}, {약출염송경(略出念誦經)}, {반야이취경(般若理趣經)}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전을 금강정부라고 하는데,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으로는 작은 경전까지 포함하면 숫자가 매우 많습니다.
⑶ 제경부(諸經部)
세번째는 제경부 입니다. 하나하나 따로 부를 정하면 매우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한데 묶어서 제경부라고 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경전은 {소실지경(蘇悉地經)}, {소바호동자경(蘇婆呼童子經)}, {공작명왕경(孔雀明王經)}, {대운청우경 (大雲請雨經)},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 {수호국계주다라니경 (守護國界主陀羅尼經)}, {대승이취육바라밀경(大乘理趣六波羅蜜經)}, {대승밀엄경(大乘密嚴經)} 등이 있습니다. 제경부에는 이런 종류의 경전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이상 세 가지가 전체적인 커다란 구분인데 다음은 밀교의 부처님 속에는 보살이나 명왕(明王), 천(天) 등의 신앙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나누어 보면 보살부, 명왕부, 천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⑷ 보살부(菩薩部)
보살부 가운데 먼저 관세음보살은 종류가 다양하여 성관음(聖觀音=正觀音),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천수천안관음(千手千眼觀音), 불공견삭관음(不空 ? 索觀音),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 등이 있습니다. 이른바 변화관음이라고도 부르고 관음계통의 부처님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관음부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일여래의 다음 자리에 있다고 하는 금강살타 (金剛薩 ?)를 중심으로 한 것, 또는 대승불교에서 이미 설해져 있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륵보살, 허공장보살, 지장보살, 8대보살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보살을 중심으로 각각의 보살에게 기원하는 데에 필요한 경전류가 있습니다.
⑸ 명왕부(明王部)
명왕은 산스크리트어 비드야 라쟈(vidya-raja)의 번역인데, 명(明)은 우암(愚暗)을 깨뜨리는 지혜의 광명을 의미하고 진언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명왕은 명을 지닌 명의 주(主)로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분노(忿怒)의 상을 나타낸 존(尊)이므로 지명왕(持明王), 분노존(忿怒尊). 위노왕(威怒王)이라고 하고 삼종륜신(三種輪身) 가운데 대일여래의 대지(大智)로부터 현신(顯身)한 교령륜신(敎令輪身)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명왕부에는 부동명왕(不動明王), 항삼세명왕(降三世明王),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 등 오대명왕이 대표적이고, 그밖에 명왕부의 제존을 공양하는 방법이 쓰여져 있는 경전들이 여기 명왕부에 해당됩니다.
⑹ 천부(天部)
천부에는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 비사문천(毘沙門天), 대길상천(大吉祥天), 환희천(歡喜天), 마리지천(摩利支天), 기타 많은 천(天)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밀교는 다채로운 제불 제보살 제명왕 제천에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밀교에서는 단지 신앙하는 것만이 아니고 각각의 신앙의 대상과 일체화(合一)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그 신앙의 대상에 어떻게 예배하고 신앙하고 기원하여 성불에 이를 것인가를 밝혀 놓은 경전이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 밀교경전의 특색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4. 밀교경전의 특색
여러 가지 경전이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외면상으로 본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경전과 의궤
다채로운 밀교문헌의 특색이라고 하면 우선 [경전(經典)]과 [의궤(儀軌)]의 두 가지 구분이 있습니다. 밀교경전에는 보통 {대일경}이라든가 {금강정경} 등이 있으나, 경전의 이름 끝 부분에 [의궤]라고 되어 있는 것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의궤란 범어 깔빠(kalpa)의 번역으로 밀교의 경전에서 설한 불.보살.명왕.천.신 등을 염송.공양하는 의식이나 궤범을 말합니다. 즉 교리 사상을 가르치는 경전으로서만이 아니고, 그 경전을 수행과 실천적인 행법으로서의 [의궤]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600종류 이상의 밀교문헌 가운데 제목에 [의궤]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 106종류 정도 있습니다. 또한 [공양법供養法]이라든가 [염송법 念誦法]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도 20종류 이상이나 됩니다. 이와 같이 밀교의 경전에는 다른 종파의 경전과 크게 다른 것이, 신앙의 대상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어떤 방법을 행하여 갈 것인가 하는 수법의 방법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경전을 의궤화하거나 의궤로 된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이 특징 입니다.
밀교경전은 다라니장(陀羅尼藏)
밀교경전을 [다라니장]이라고도 합니다. [다라니장]이란 다라니(dharani)의 곳집(藏)이라는 것입니다. 장(藏)은 산스크리트 피타카(pitaka)의 번역으로, 용기(容器), 곡창(穀倉), 암기된 것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삼장(三藏)이란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셋을 말하는데, 불교성전을 이 세 가지로 나누어 모았다는 뜻으로 불교성전을 총칭하여 [삼장]이라합니다. 그런데 그 뒤 밀교가 발전하여 밀교경전이 늘어나게 되자 그것을 하나의 장으로 모아서 [다라니장]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밀교경전에는, 여러 가지 좋은 법을 가져 잃지 않고, 온갖 무거운 죄장을 소멸하여 열반을 속히 깨닫게 하는 미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다라니]에 관한 것이 아주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12卷 唐 阿地瞿多 譯), {다라니잡집(陀羅尼雜集)}(10卷 失譯)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그밖에 [0 0 0 다라니] 라든가 [다라니 0 0 0]라는 식으로 제목 속에 다라니라는 말이 반드시 나오는 것이 200종 이상이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밀교경전 속에는 [다라니장]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다라니가 많다는 것이 두번째의 특징입니다.
밀교경전에 설해진 밀교적인 것
밀교경전에 설해져 있는 내용의 특징으로는 우선 [진언(眞言)] 또는 [다라니]가 많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진언은 산스크리트어 [만트라 mantra]의 번역으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말이란 뜻입니다. 어원적으로는 <사념한다>는 뜻의 [만man]과 <그릇(器)>의 뜻을 지닌 [트라tra]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에 의해 신神의 덕을 사념할 수 있다든가 사념을 표현하기 위한 그릇, 즉 신성한 문자 또는 언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라니는 산스크리트어 [다라니dharani]의 음역으로 총지總持, 또는 능지能持라고 번역합니다. 정신을 통일하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지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언과 다라니는 엄밀히 말하면 서로 구별이 되는 것이지만 흔히 [0 0 의 진언], [0 0 의 다라니]라고 하고, 명(明;vidya 學問.知識의 뜻)이라든가 명주(明呪)라고 하기도 합니다.
다음은 [인계(印契)]를 들 수 있습니다. 인(印)은 산스크리트어 [무드라 mudra]의 번역인데, 표시.증거.상징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보살 등 제존의 깨달은 내용을 손이나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것을 수인(手印)이라 하고, 칼.지팡이 연꽃 등 제존이 지물(持物)로 나타내는 것을 계인(契印) 또는 상인(相印)이라 합니다. 그리고 불.보살이 깨달은 내용을 나타내기 위하여 인을 맺는 것이지만, 밀교의 수행자가 수법과 수행을 행할 때에도 반드시 인을 맺게됩니다. 수행자가 인을 맺는 것은, 사실 부처님에 대한 단순한 외형적인 모방이나 흉내의 영역을 뛰어넘어, 진리의 어느 한 면 바로 그 자체로 되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인계가 매우 다양하고 많은 것도 밀교경전의 특징입니다.
또한 [만다라(曼茶羅)]가 있습니다. 만다라는 범어 [만달라(mandala)]의 음역으로 단(壇), 단장(壇場), 윤원구족(輪圓具足) 등으로 번역합니다. 원래는 비법을 닦을 때 마중(魔衆)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려놓은 원형(圓形)이나 방형(方形) 으로 구획한 지역을 [만다라]라고 합니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주로 [취집(聚集)]의 뜻을 취하여, 제불.보살 등의 성중이 모이는 곳을 말합니다. 인도에서는 토단土壇을 쌓고 그 위에다 제존을 그려 놓고 행사가 끝나면 부수어 버리는데,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주로 종이나 천(帛)에 그려 놓기 때문에 그런면에서 조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단을 쌓아서 그 위에 제불을 그려 모시고 만다라의 제불을 예배하는 방법이 상세하게 쓰여져 있는 것이 밀교경전의 한 특징이라고 할 것입니다.
신앙의 대상
밀교의 특징적인 신앙의 대상에 [태장계의 만다라]와 [금강계의 만다라]가 있습니다. 이들 만다라에는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여, 제불.제보살, 제명왕, 제천 등 지극히 복잡하고 다채로운 신앙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불타관(佛陀觀)의 통일적인 견해가 진행되어, 대일여래는 [보문(普門:samantamukha無量門이라고도 하며, 모두에 골고루 미치는 보편적인 門戶라는 뜻)의 부처님]이고, 그밖의 제불.제보살.명왕.천 등은 일지(一智).일덕(一德)을 나타내는 [일문(一門)의 부처님]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밀교경전을 보면 신앙의 대상이 전체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와 개개의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 수가 매우 많습니다. 이것은 밀교에 있어서 불타관의 문제입니다. 밀교에서는 불타관이 이처럼 복잡하게 되어있으나 그 복잡함 속에 매우 교묘하고 정교한 통일성이 있습니다. 그것도 밀교경전 속에 설해져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관법과 기원
다음에 밀교경전 속에는 관법(觀法)과 여러 가지 기원(祈願)에 관한 내용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두 가지 예를 들어보면, 보리심(菩提心)을 관하는 방법[菩提心觀]이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근본자성인 정보리심(淨菩提心)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도록 하기 위한 관법인데, 여기에는 월륜관(月輪觀)과 아자관(阿字觀)이라는 관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월륜본존도(月輪本尊圖)나 아자본존도(阿字本尊圖)를 걸어두고 그 앞에 정좌하여 호흡을 조절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월륜] 또는 [아자]로 상징된 정보리심이 본래 내 마음 속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관법입니다.
또한 [삼밀가지(三密加持)]의 묘행도 설해져 있습니다. [삼밀]이란 비밀의 삼업(身密.語密.意密)이란 뜻이고, [가지]는 범어 아디스타나(adhisthana)의 번역으로, 상응하여 관계하는 것, 호념(護念).가호(加護)를 나타내는 의미에서 부처님과 중생이 상응하여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과 중생이 서로 명합하는 유가(瑜伽)의 경지에 들어가서, 행자(行者)가 몸에 인을 맺고[身密], 입으로 진언을 외우고[語密], 뜻으로 본존을 관하여[意密], 행자의 삼업 위에 부처님의 삼밀이 더하여 섭지(攝持)되는 것을 [삼밀가지]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행자와 본존은 일체(一體)로 되고, 이몸 그대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깨달음을 이룬다고 하는 밀교의 독특한 수행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언이나 주문.다라니를 설한 경전이 많고, 특히 {다라니집경}이라고 하는 경전도 있습니다.이들 진언이나 주문.다라니는 양재초복(攘災招福)의 기원, 즉 병을 낫게 하고, 연명(延命)하여 오래 살게 하고, 비가 오도록 기우를 하고, 재보(財寶)를 얻게 한다는 등 이른바 현세이익적인 기원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현세이익적인 기원의 신앙은 진언밀교에서 뿐만이 아니고 천태종이나 기타 불교의 모든 종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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