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휴먼다큐] 사랑 - 풀빵 엄마

Private/자기개발 · 2009. 11. 30. 10:46

나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빠가 없으니 입히고 먹이고 놀아주는 것까지 모두 제 몫입니다.

두 아이에겐 엄마인 내가 정말 전부입니다.

그런데 나는 좀 아픕니다.

암과 싸워 온 세월이 2년째.

이 지독한 통증은 계속된 항암제 투여 때문으로 신경계에 손상이 온 탓입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라도 암과 싸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온다는 소리에 나의 눈길은 자꾸만 건너편으로 향합니다.

저기 아이들이 보입니다.

고작 두 살 많아도 누나는 누나.

은서가 홍현이 데리고 다니는 것 보면 여간 야무져 보이지가 않습니다.

은서는 늘 나의 끼니가 걱정입니다.

내가 위암으로 위의 70%를 잘라낸 후 식사를 잘 못하는 탓입니다.

풀빵장사를 시작한지 5년,

봐줄 사람이 없으니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말고는 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온 종일 서 있었던 하루, 몸 곳곳에서 통증이 밀려옵니다.

세상 무엇보다 따뜻한 어린 딸의 손, 내 통증의 치료제.

그리고 그 손으로 은서는 엄마의 할 일을 대신 합니다.

동생을 돌보느라 어리광도 모르고 자란 은서.

나는 은서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아이 아빠와는 혼인 신고도 하지 못한 채 5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홍현이 돌 무렵에 헤어졌습니다.

내 호적에 올리고 오로지 내 아이들로 기르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월요일 아침, 어린이 집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무겁습니다.

은서의 눈이 슬픔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헤어지면 금요일에나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주중에는 이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월요일마다 생이별이 벌써 3년째.

위암 판정을 받은 것은 2007년,

수술을 했지만 암은 4개월 만에 재발해서 더 심각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독한 항암제를 맞고 고생하느니 치료를 포기한다고도 합니다.

홍현이는 3살 때 어린이집을 처음 갔습니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던 아이가 그래도 낯선 곳에 정을 붙인 것은 누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 때마다 동생을 씻기고 옷까지 곱게 개어 놓는 은서.

내 딸 은서가 나를 더 강하게 합니다.

은서에게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가 왔습니다.

나는 은서가 초등학교에 가면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어떨 때는 은서가 나보다 더 홍현이를 잘 먹이고 잘 돌봅니다.

내가 아프고 나서 언제부턴가 은서는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찾아 합니다.

남들은 딸아이를 잘 키웠다고 칭찬을 하기도 하지만

누구라고 일곱 살 딸에게 이런 일을 시키고 싶을까요?

할 수 있다면 나도 은서를 곱고 예쁘게 키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과 한쪽 먹었을 뿐인데 숨이 차고 배가 부릅니다.

마음이 약해집니다.

겁이 납니다.

내 배에서 나온 복수가 무려 3리터.

암은 내게 얼마나 더 긴 싸움을 원하는 걸까요?

힘들 때 찾아갈 곳은 단 한 곳뿐입니다.

기운을 내야 합니다.

몸이 아픈 날은 아이들에게도 예민해집니다.

홍현이도 아니고 은서...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아니었는데...

모든 게 내가 불안한 탓입니다.

암과의 싸움으로 통증은 신경을 긁어대고 몸은 만신창이.

그 끝에 내가 살아남을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미안한 마음에 몇 번이나 미뤘던 약속을 지켰습니다.

은서도 홍현이도 처음 하는 구경.

지금껏 우리는 함께 놀이공원에 와 본적이 없습니다.

걸음이 불편한 탓에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닐 자신이 없었거든요.

아이들이 참 행복해 보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한 술 떠야 할 텐데 점점 뭘 먹기가 힘듭니다.

삶이 내게만 불공평 한 것 같습니다.

장애를 안고 살았고,

결혼에도 실패했고,

그래도 열심히 살았는데...

암이라니...

그러나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 같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이 아이들과 새해를 맞겠습니다.

그렇게도 열심히 싸웠건만...

내 나이 이제 서른여덟...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은 처음부터 헛된 것이었던가요?

이제는 정말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이렇게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지...

다음날 오후가 되어도 나는 장사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전날 맞은 항암제 때문에 온 몸이 통증으로 저려옵니다.

이제 그만 이 통증에 백기를 들어야 할까요?

하지만 나는 아직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아이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여전히 어떤 고통도 달게 받겠습니다.

얼마 후 나는 풀빵장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오는 미장원.

오늘만큼은 아픈 티가 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날.

어린이집 졸업을 앞두고 재롱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 하루 멋진 엄마이고 싶습니다.

긴장한 홍현이가 울음을 터뜨려 관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살고 싶다는 것은 내게는 소원이나 희망, 바람 같은 것이 아닙니다.

엄마로서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자 책임.

나는 결코 그 의무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은서가 어린이집을 졸업했습니다.

3년 동안이나 엄마 없는 밤을 잘 견뎌준 아이.

그날, 나는 은서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2개월이 지났습니다.

은서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나는 여전히 장사를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열심히 하는 건 빨래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프지 않지만 내 몸은 아직 아픕니다.

암은 좀 더 퍼졌고 3차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동안 은서는 얼마나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요...

집으로 오고 무엇보다 은서가 한결 밝아졌습니다.

동생도 예전보다 더 살뜰히 챙깁니다.

아이들을 돌볼 때는 내가 말기 암 환자라는 것을 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의 수고를 덜겠다고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일을 도맡아 합니다.

지금 이대로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좋겠습니다.

이것도 욕심일까요?

3차 항암 치료에 들어갔으니 또 한 번 통증과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이길지 그럴 수 없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은서, 최홍현 내 아이들은 알아 줄 겁니다.

엄마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기 위해 노력했는지.

나는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입니다.

꼭 ! 살아남겠습니다.

후원 계좌

기업은행 209-000119-01-013 예금주 평화모자원

평화모자원은 기초생활수급자인 최정미씨가 기거하고 있는 곳입니다.

입금시 <최정미 지정후원>을 명기하시면 최정미씨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기업은행 084-068377-02-011 예금주 최은서

딸 최은서양의 개인계좌입니다.

계좌 출처 - http://www.imbc.com/broad/tv/culture/spdocu/love/bbs/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