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간단 정리

Fact/역사-고전 · 2011. 11. 23. 23:52

[태조 이성계 (이단)] (생몰 1335~1408, 재위 1392~1398)
고려 시절 북방(여진족 영토) 호족 출신.
부친과 함께 고려에 귀순. 쌍성총관부 함락의 공을 세움. 왜구, 홍건적, 여진족 격퇴.
제2차 요동 정벌 중 위화도 회군. 최영과 우왕을 몰아내고 창왕 옹립. 창왕 몰아내고 공양왕 옹립.
공양왕과 결탁한 정몽주 참살 후 공양왕에게서 양위받고 조선 창업.
화끈한 성격에 불도저같은 보스 타입. 명궁.
불패의 무장이었으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배한 전투가 아들 이방원과의 전투.

당대인물-정도전, 정몽주, 최영

1398년 1차 왕자의 난 (무인정사)
신덕왕후 강씨 소생 막내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
이에 반발한 이방과, 이방원 등이 쿠데타 일으킴.
정도전, 세자 이방석 사망. 이방과에게 양위.

2차 왕자의 난
이방원의 형 이방간의 반란. 유배지에서 여생을 마침.

두문불출
함흥차사 (야사)

-용의 눈물

 

[정종 이방과 (이경)] (재위 1398~1400)
태조와 신덕왕후의 차남.
조선 창업의 공신. 효심깊고 인간적이었던 성품. 정치적 야심 없는 무골.
태종에게 선위한 뒤 편하게 여생을 마침.

 

[태종 이방원] (생몰 1367~1422, 재위 1400~1418)
태조와 신덕왕후의 4남.
조선조 왕 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인텔리. 문무를 겸비한 먼치킨.
여말 이성계 일파 중에서도 급진 과격파. 폭군이자 명군인 아이러니한 인물.
정몽주를 직접 살해.- 건국 과정, 그늘에서 직접 더러운 일을 도맡은 행동대장.
형인 정종의 양자로 들어가 세제가 아닌 세자가 됨.
사병 혁파. (본인이 사병을 이용해 왕을 해먹었으니..)
중전인 원경왕후의 남동생 넷을 숙청. 사돈인 소헌왕후의 부친 심온을 역모죄로 사사. (외척 세력을 병적으로 혐오)
장자 계승의 원칙을 따져 양녕대군을 세자로 삼았다가 결국 폐세자.
냉혹한 철권통치의 이면엔 자식에 대한 끔찍한 애정.
조선 왕중 마지막으로 직접 전투에 참여한 왕.
선위 후에도 죽을 때 까지 4년간 군사 통치권(실권)을 가짐. 숭유억불.
신문고, 호패법, 대마도정벌

참고 작품-용의 눈물, 대왕 세종


<양녕대군 이제>
태종과 원경왕후의 장남. (출생 전, 위로 형 셋이 있었으나 모두 요절)
신분 좋은 망나니. 곽선의 첩 어리를 납치해 취한 불륜.
폐세자 후에도 갖은 망나니 행동.
태종은 세자인 양녕이 외척에게 시달릴까 우려해 외척들을 박살냈는데 정작 양녕은 부왕을 닮아 외척을 토사구팽 해버렸다.
└이런 기질이 세조를 지지한 원인일 수도 있을 거라 추정.

 

[세종대왕 이도] (생몰 1397~1450, 재위 1418~1450)
태종과 원경왕후의 3남.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한반도 역사 최고의 명군이자 성군, 언어학자.
세자였던 맏형 양녕대군 폐세자 후 세자로 책봉.
즉위 후 4년간 실권을 갖지 못한 채 상왕의 그늘에서.
희대의 책벌레, 토론왕, 고기왕, 과로왕, 비만, 당뇨병.
여.제.나. 3국 모두를 조상 국가로 삼은 균형잡힌 역사감각.
고려사 편찬에 직접 개입.
집현전 설치, 훈민정음 창제, 물시계 자격루, 측우기, 농사직설, 화포, 총통, 신기전
최윤덕, 김종서의 북방 4군6진 개척(문종이 마무리)-한국사 상 마지막 정복군주
1446년 한글반포

당대인물-황희, 조말생, 장영실, 김종서, 맹사성, 정인지, 최만리,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강상인

참고 작품-대왕 세종, 뿌리깊은 나무, 신기전


[문종 이향] (생몰 1414~1452, 재위 1450~1452)
세종과 소헌왕후의 장남. 세종이 3년상 후 급격한 건강 악화, 종기로 사망.
조선 왕조 최초 정실부인 소생의 적장자로서 출신 임금. (다만 출생시 세종은 대군이었음.)
사실상 세종 말기부터 업무 대행을 했음.
첫 부인은 미신 숭배 기행으로 폐서인. 둘째 부인은 동성애 행위로 폐서인. 셋째 부인은 단종 출산 직후 사망.
재위 기간 중 한 번도 왕후를 두지 않은 유일한 조선 국왕.-외척, 왕실 웃어른이 없음-단종 즉위 후 왕권 약화의 원인.
측우기 아이디어의 실제 주인.

 

[단종 이홍위] (생몰 1441~1457, 재위 1452∼1455)
문종과 세자빈 권씨의 외아들.
'원손-세손-세자-왕-상왕'의 적장자 절차를 밟은 최초의 왕.
비운의 소년 왕. 태어나마자 생모 사망.
왕실 웃어른이 없는 상태. 김종서와 혜빈 양씨(세종의 후궁)의 보호 속에서 성장.
계유정난이후 유배지에서 목을 매고 자살.

 

[세조-수양대군 이유] (생몰 1417~1468, 재위 1455~1468)
세종의 차남. 문종의 동생. 단종의 숙부.
세종의 아들들 중 가장 문무겸비가 잘 된 무인. 세종 치세에 문종 다음으로 공이 많다.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 석보상절)
자신만만하고 야심 넘치던 성격.
1453년 계유정난-쿠데타를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정권 장악.
안평대군을 역모로 몰아 사사. 권력 장악 후 3년 내에 선위받아 즉위.
집권 과정에서 집현전 폐지. 경국대전 편찬 시작.
42명이나 되는 공신 세력 범람으로 왕권 약화의 원인이 됨.

쿠데타 공신-한명회(살생부), 신숙주,
수양파-정인지, 이순지, 양녕대군

단종 복위 운동-친누나인 경혜공주는 관비로 전락했다가 면천.
참고-이시애의 난, 사육신, 생육신
참고 작품-공주의 남자


[예종 이황] (생몰 1450~1469, 재위 1468∼1469)
세조의 차남.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의 급사. 세조 사후 정통으로 계승함.
다소 찌질하고 유약한 이미지로 기록. 조선의 자연사한 국왕 중 가장 단명.
남이의 옥사, 유자광
-한명회, 장인이자 정적.

 

[성종 이혈] (생몰 1457~1494, 재위 1469~1494)
세조의 손자. 의경세자의 차남. 다소 방탕한 기질이 있었다고도.
경국대전 완성 후 반포. 여지승람, 악학궤범.
홍문관 창설(집현전의 대체)
사림파를 적극 등용. 임진왜란 전까지의 체제와 문물을 사실상 완성시킴.
학구적이며 잠행을 즐김. 박어우동과의 '야사'.
폐비윤씨 사건.-원자를 낳은 숙의 윤씨. 투기로 인해 성종의 얼굴에 상처를 내 폐위됨.
└이후 인수대비와 성종의 후궁들이 공모하고 성종에게 허위 보고해 성종은 윤씨를 사사함.

-한명회, 신숙주

 

[연산군 이융] (생몰 1476~1506, 재위 1494∼1506)
성종의 장남. 폐비윤씨의 아들.
자존심 강하고 단순했던 성격. 예술적 재능이 있으며 몸이 약했다.
즉위 초에는 빈민구제, 여지승람 편찬, 왜구 격퇴 등. 정치 의욕도 있고 자질있는 왕이었다. 즉위 4년간은 나름 명군.
훈구파 유자광 등의 부추김으로 사초를 문제삼아 무오사화 일으킴.
1498년 무오사화.
└성종시절부터 대립했던 대간들과의 반발이 한계점에 이르르다.
└사림파 김일손이 쓴 세조의 스캔들 기사를 스승 김종직이 사초(조의제문)에 기록함.
└유자광이 이를 연산군에게 보고. 김일손 등의 사관들이 거열형, 참수형 등으로 처형되고 김종직은 부관참시.
└실록청 관리들 중 일부(이극돈 등)는 파직, 좌천, 유배. 훈구파인 노사신의 노력으로 상당수 목숨을 건져 유배형으로 마무리.
└조선 최초의 사화. 그나마 세조의 직계 후손으로서 명분은 있었다는 평.

이후 제정신 차리지만 낭비벽이 생김.

1504년 갑자사화.
└폐비 윤씨의 일을 알게된 연산군이 당시 사건에 관련된 많은 선비를 숙청. (한명회 포함)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갔던 이세좌의 죄를 물어 광주 이씨들도 휩쓸림.
└갑자기 알게 되었다는 게 정설이지만 원래 알고 있던 일을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설도 있다.

갑자사화후 급격히 폭군이 됨. (흥청망청의 어원)
경연 폐지. 성균관 폐새. 사간원 폐지. 경기도 일대를 사냥터로 쓰기 위해 민가를 밀어버림.
신하들의 아내를 범하고 이복누이들과 근친상간. 조선왕조 중 유일하게 궁녀의 수가 1천명 돌파.

1506년 중종반정
└누이 월산대군 부인 박씨를 능욕한 것에 분개한 박원종, 성희안, 유자광 등이 연합.
└연산군을 폐위 시키고 중종을 옹립. (최초로 순전히 신하들에 의해 옹립된 왕-왕권 약화.)
└장녹수는 반정 후 저자에 끌려나가 돌을 맞아 죽었다.

참고 작품-왕의 남자

 

[중종 이역] (생몰 1488~1544, 재위 1506~1544)
성종과 전현왕후의 아들. 연산군과 이복형제.
중전 소생의 대군이라 연산군 치세 내내 숨죽이며 살아옴.
쫀쫀하거나 변덕스러운 일면도 있었다는 기록. 잔소리꾼.
신하들 주도의 반정으로 옹립된 왕이라 우유부단과 뒷걸음질로 점철된 치세.
뜻이 맞는 조광조를 중용. 신진사류들을 등용해 왕도정치를 구현할 뜻.
공신세력과 훈구파들의 반대. 중종은 조광조의 지나친 이상주의에 질려 기묘사화로 숙청.
└주초위왕 야사 (나뭇잎에 꿀을 발라 개미가 파먹게 했다는 이야기)
└(의외지만 연산군보다도 숙청한 선비들의 수는 더 많았다.)
문정왕후와 윤원형 vs 경빈 박씨
나약한척은 사실 가면이고 의외로 막후정치의 달인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참고 작품-대장금, 여인천하

 

[인종 이호] (생몰 1515~1545, 재위 1544~1545)
중종의 장남. 생모 장경왕후가 산후병으로 사망해 문정왕후 슬하에서 길러짐. (정치적 목적)
문정왕후의 아들인 경원대군(명종)이 태어나기 전까진 문정왕후, 윤원형의 보호를 받음.
사관이 사초에 이름을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규정을 부활시킴.
어질고 부족함이 없는 성군이었다는 평가. 인자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성격.
짧은 치세 내내 문정왕후의 압박에 시달림. 즉위 후 8개월만에 급사 (독살설)

 

[명종 이환] (생몰 1534~1567. 재위 1545~1567)
중종과 문정왕후 윤씨의 아들.
문정왕후와 윤원형, 수렴청정을 빙자한 대리통치.
문정왕후의 간섭과 감시로 인한 조울증과 홧병.
1555년 을묘왜변-전라도 서남해안에 왜구 창궐.
1565년 문정왕후 사후 윤원형 일파 숙청.

당대 인물-임꺽정

 

[선조 이연] (생몰 1552~1608, 재위 1567~1608)
중종의 서자 7남 덕흥대원군(추존)의 셋째아들. 명종의 조카뻘. 조선의 최초 방계 임금.
붕당정치 통한 왕권 강화. 여색을 탐했다는 평가.
즉위 초기엔 사림파를 우대. 낭비를 줄이고 사회모순 해결에 주력.
본격 당쟁이 시작된 시기. 이를 이용한 정치적 수완.
복종하는 신하는 많으나 충성한 신하는 드물었다는 평가.
임란때 나라를 버리고 도주한 점 등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임진왜란,
당대 인물-이순신, 허준, 이이, 이황, 이항복, 이덕형, 권율, 류성룡

 

[광해군 이혼] (생몰 1575~1641, 재위 1608~1623)
선조의 서자 차남. 선조의 적통 영창대군(인목대비의 아들)이 나이가 너무 어려 대신 즉위.
현상유지 주의자.중립외교의 식견높은 군주였다는 후대의 평. 활발한 전후 복구 사업.
정통성 부족과 심리적 위축에서 오는 무리한 궁궐 공사 사업. 왕권강화, 재정과 민생의 피해.
세자 시절 임진왜란 당시 도성을 버린 부왕을 대신해 일본군에 맞서 싸워 공을 세운 바 있다.
폐모살제-형 임해군, 이복동생 영창대군, 조카 능창군을 유배지에서 살해, 인목대비를 유폐시켰다는 논란.
└형제들 살해에 관한 공식 사료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목대비는 그 부친이 역모에 연루되었었다.
└자신에 대한 원망을 인지하면서도 폐서인에 그쳐, 후에 반정의 핵심 기반이 된다.
└무리한 궁궐 복구 사업은 전후 복구에 필요한 일이긴 했지만 어쨌든 반정의 명분이 됨.
태종, 세조와 같은 패륜 행위도 딱히 없었지만 정략적인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반정 세력의 명분.
반정 후 강화도->제주도에 유폐됨.
담배 냄새를 싫어해, 윗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예절을 만든 사람.

참고-이이첨, 허균
허준 동의보감 완성, 대동법, 창경궁, 경희궁 재건. 공명첩 남발.
기유약조-일본과의 관계 및 교역 호전.

1623년 인조반정.
서인 반역 세력이 광해군 및 대북파를 축출, 능양군을 왕으로 옹립. (이귀, 김자점, 이괄 등)
능양군의 광해군에 대한 개인적 원한과 서인들의 선택이 맞물림.
인목대비 폐비 논란을 기준으로 찬성했던 세력은 모조리 숙청.

참고 작품-왕의 여자, 탐나는 도다

 

[인조 이종] (생몰 1595~1649, 재위 1623~1649)
선조의 5남 정원군(추존)의 정실 장남. 능창군의 형.
원종-자신의 정통성을 위해 친부인 정원군을 대원군이 아닌 왕으로 우격다짐성 추존.
전시행정에만 치중했던 무능한 왕이라는 평가. 인재를 보는 눈도 없음.
반정의 명분이 약했으며 정통성이 약해 반정 공신들에게 휘둘림.

1624년 이괄의 난-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공신 이괄이 반란을 일으킴. 반란군이 한양을 점거한 유일무이의 사건. (인조는 공주로 피신)
1627년 정묘호란-후금(청나라의 전신)의 침입. 실리외교의 광해군 폐위 후, 친명배금 정책이 불러온 부작용.
1636년 병자호란-후금와 형제의 맹약을 맺은 후에도 친명배금으로 일관.
후금->청, 청태종이 명과의 전면전에 앞서 친명 성향인 조선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침공했다는 견해도 있다.
1637년 삼전도의 굴욕-병자호란 패배 후 청나라와의 굴욕적인 강화. (삼전도비)

소현세자 독살설. 성리학이 급격하게 교조화. 여성의 지위 하락.


반정 세력-이귀, 최명길

참고 작품-활, 추노, 일지매, 최강칠우, 탐나는 도다

 

<소현세자>
병자호란 패배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감. 베이징에서 서양과학기술과 천주교를 접함.
청나라 고관들과 접촉하며 인맥 형성. 조선인 노예들을 구출해 농장에서 일하게 함.
청나라의 눈에 들며 동시에 인조의 의심을 사게 됨.
1645년 청황제의 허락으로 조선에 귀국. 귀국한지 3개월이 채 못되어 병을 얻어 사망. (독살설)

 

[효종 이호] (생몰 1619~1659 재위1649~1659)
인조의 차남. 소현세자 사망 후 세자 책봉.
형과 달리 볼모 생활 중 청에 원한을 가짐.-북벌론 주장.
군제 개편, 군사훈련의 강화.
되려 청의 강요로 러시아 정벌에 2회 출정하기도 함.
송시열과 손을 잡고 북벌을 추진. 하지만 소극적인 플레이였다는 평가.
1657년 네덜란드인 하멜의 표류.-서양식 무기 제조의 계기.
북벌 준비 중 종기의 악화로 사망.

 

[현종 이연] (생몰 1641~1674, 재위 1659~1674)
효종의 아들. 조선의 역대 국왕 중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남.
세손, 세자, 왕 과정을 정상적으로 밟은 드문 왕이자 가장 평범한 왕.

경신대기근-전세계적인 이상저온 현상. 기근과 전염병 창궐.
참고-예송논쟁
오가작통법.

 

[숙종 이순] (1661~1720, 재위:1674~1720)
현종의 아들. 모후에게서 물려받은 다혈질의 고단수 정치가. (개같은 성질머리)
어린 나이에 즉위했음에도 섭정 없이 즉위와 동시에 권력을 휘어잡음.
정실부인 소생의 외아들. 외척에 관한 트러블도 없어, 정통성에선 꿀리는 게 없던 왕.-강한 왕권.
출생에 관한 문제도 없고 나라 안의 재난도 없이 무난하게 살다가 사망한 임금.
환국정치-남인과 서인의 피바람 당파 싸움.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이용해 적절히 환국 정치를 이용하기도 했음.-정국의 혼란을 초래함.
└만년에 대놓고 노론 편을 들어서 조선 후기 노론의 독재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

참고-예송논쟁
1680년 경신환국
장희빈의 아들 경종을 세자로 삼는 것에 반대한 송시열을 사사.
상평통보 발행. 조선의 국경을 사실상 확정시킴. (백두산 정계비) 조선왕조의 과거사 정리.

당대인물-일지매(가공), 장길산.
참고 작품-동이

 

[경종 이윤] (생몰 1688~1724, 재위 1720~1724)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
자손을 낳지 못한 임금.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을 세제로 책봉.
당쟁에 휘말린 모친의 사망을 직접 목격. 부왕과 신하들의 갈굼 속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
숙종과 노론 세력은 제2의 연산군이 탄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집요하게 압박.
다소 우울증이나 정신 분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는 기록.
형제간 우애는 좋아 동생 연잉군을 소론의 공격으로부터 필사적으로 지켰다고 함. (반면 연잉군은 독살설에 휘말려..)
숙종 말년 대리청정 기간엔 병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
즉위 후 거의 병석에서 지내다가 별다른 치적없이 사망.

 

[영조 이금] (생몰 1694~1776, 재위 1725~1776)
숙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 경종의 이복동생.
무수리 출신의 모친에 의해 즉위 이후 정통성 문제에 시달림.
학구적이나 급한 성격에 감정적이어서 눈물이 많은 타입. 욕쟁이. 필요할 땐 냉혹해지는 정통파 정치가. 딸바보.
아들과의 관계에 있어선 강박증, 편집증 등의 증세가 발견되기도 한다.
역대 조선 국왕중 가장 긴 통치기간 (52년). 최장수. (83세)-채식 위주의 식단이었다는 기록.
경종 치세에 처신을 조심하고 즉위 후엔 경종 독살의 의심을 받아 권위가 낮았다.
붕당정치의 폐해를 줄이고 왕권 강화 목적으로 탕평책 실시.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수습이 완벽히 끝난 시기. 태평성대.
백성들에게 너그럽고 관리에게 엄함. 검소함. 금주령. 균역법.
소론, 노론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유학에서 금지하는 척신 등용을 강행.-세도정치의 서막.

참고 작품-무사 백동수

 

<장헌세자 (사도세자)> (1735~1762)
영조의 차남. 형인 효장세자가 일찌기 사망해 사실상 늦둥이 외아들. (여동생들만 있었음)
대리청정 시절 부왕의 간섭과 압박. 지나친 스트레스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며 기행을 벌인다.
다만 정신 이상 부분은 신뢰하기 어려운 기록. 다른 기록에 의하면 상당히 건강한 체력에 사려깊은 성격.
기록에 의하면 정신 질환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정도의 여부는 논란거리.
노론의 음모였다는 설이 있으나 설득력이 없다. (늙은 왕의 외아들을 압박하는 것 보단 잘 보이는 게 이득.)
임오화변-폐세자 후 뒤주에 갇혀 8일만에 사망.

 

[정조 이산] (생몰 1752~1800, 재위 1776~1800)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 영조와 함께 조선 최후의 부흥기를 이끈 임금.
부친의 폐서인으로 죽은 백부의 양자가 되어 세손으로 책봉. 조선 역사상 최초로 안경 쓴 임금.
세종과 비견될 정도의 공부벌레에 무예도 뛰어난(암살 위협에 의해) 엄친아.
명궁이어서 이성계의 현신이라는 평가가 있었을 정도.
성질이 불같고 쪼잔한 면이 있으며 참을성이 별로 없었다는 평가. 욕쟁이.
술버릇 나쁜 폭주가에 골초. 이순신빠.
사도세자를 죽인 정치세력은 보복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정조의 생명을 위협.->측근 정치에 의존.
측근 홍국영이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가짐으로써 세도정치의 바탕이 됨.
사돈 집안인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보수적 성리학자로서의 성향은 훗날 흥선대원군의 롤모델이 됨.
└태평성대를 물려받아 세도정치의 원인이 된 정조는 개혁군주로 추앙받는데 세도정치를 박살내고 나라를 구하기도 한 흥선대원군은 보수의 대명사

로 비춰지는 아이러니함.
독살설.

수원 화성 건축. 탕평책. 문화적인 통치. 홍문관->규장각. 서얼 출신 등용. 무예도보통지 발간.
-정약용, 홍국영, 박제가

참고 작품-영원한 제국, 귀천도, 바람의화원, 거상 김만덕, 성균관 스캔들, 무사 백동수, 이산

 

[순조 이공] (생몰 1790~1834, 재위 1800~1834)
정조와 유빈 박씨의 아들. 영조와 정순왕후 김씨의 수렴청정.
정조의 충신이었던 김조순, 정순왕후가 백으로 있던 경주 김씨와 벽파를 몰아내고 60년 장기 집권 세도정치를 시작한다.
└무너져가는 조선의 멸망을 가속화하는 촉매 역할.
무능하진 않았지만 무기력했던 임금. 부친과 정반대로 혐연가.
영특하던 아들 효명세자에 기대를 걸었는데 요절. 두 딸도 일찍 사망.
1811년 홍경래의 난.

 

[헌종 이환] (생몰 1827~1849, 재위 1834~1849)
순조의 손자. 효명세자의 외아들. 8세에 즉위-조선 최연소 국왕.
아내가 안동 김씨.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
어머니의 외척인 풍양 조씨와 아내의 안동 김씨들의 세도 정치에 조선이 파탄 직전까지 몰락.
천주교 박해. 오가작통법.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처형.
동국사략, 삼조보감 재편찬.-자잘한 치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조선의 상태.
김씨 성의 궁녀의 사이에서 낳은 딸 하나 말고는 후사가 없었다. 그나마 그 딸도 요절. 후사없이 23세에 사망.
술을 즐겨 궁궐안에 주막을 만들어 주막놀이를 즐겼다는 기록. 궁녀들이 유혹할 정도의 미남이었다고 함.

 

[철종 이변] (생몰 1831~1863, 재위 1849~1863)
헌종의 후사없는 사망으로 직계가 대가 끊김.
홍국영과 노론 벽파의 득세 가운데 사사당한 은언군의 손자. 전계대원군(추존)이 아들. 사도세자의 증손자.
부친의 귀양지에서 농사 지으며 살다가 안동 김씨 일파에 의해 '발견'됨.
헌종이 조카뻘이라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대가 있었지만 그냥 씹은 안동 김씨. 명목상 순조의 양자가 되어 즉위.
중종과 비슷하게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왕이 된 케이스. 역시 아내는 안동 김씨 김문근의 딸.

서민들의 민생고에는 밝았으나 제왕학을 교육받은 바 없어 정치에 어두웠다. 대규모의 민란들을 수습하려는 의욕 조차 없었음.
말세론-최제우의 동학 등장.
실권 없는 꼭두각시 왕 노릇과 자조감, 복잡한 궁중 예법에 질려 여색과 술로 소일함.
농사꾼이 갑자기 주색에 빠져 급격한 체력 저하로 잔병 치레에 시달리다가 33세에 병사. 또 다시 왕통 단절.

 

<흥선대원군 이하응> (1820~1898)
왕족이긴 한데 입양 관계 등으로 가계도가 복잡함.
사도세자의 서자 은신군은 숙종의 6남 연령군의 양자 낙천군의 양자로 입양됨.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후손' 이병원의 3남 이채중(이구)이 남연군

이 되어 은신군의 양자로 입양된다. 그 남연군의 4남이 흥선군.
세도정치 아래 권력없는 변방의 왕족 부스러기로 미미한 직책을 전전한다.
안동 김씨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깨어있는 왕족으로 보이지 않으려 시정잡배 흉내를 낸다.
철종이 후사없이 병약한 것을 간파한 후 왕실의 최고 어른인 조대비(효명세자의 부인)에게 접근해 집권 준비를 기획한다.
철종 사망 후 효명세자의 양자로 들어가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차남인 명복을 왕위에 앉히는데 성공한다. 섭정.

전정 개혁, 호포제 실시. 환곡제 폐지.
비변사 폐지, 의정부 삼군부 부활->왕권 강화.
당백전 원납적으로 재원 확보.->경복궁 중건.->여론 악화.
남인과 왕가 종친 등을 끌어들여 세도가문의 위세를 꺾는데 성공.
최제우를 체포해 혹세무민의 죄를 물어 처형.->동학 농민 운동.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이이제이) 프랑스와 교섭 시도. 선교사들과 접촉.->선교사들의 거절.
여론과 청의 사례를 통해 불안감을 느껴 천주교를 박해하기 시작.
병인양요-선교사 처형을 계기로 로즈 제독이 조선에 수교를 요구하며 출정. 전투 후 진군을 포기하고 돌아감.
신미양요
최익현의 상소를 받아들여 고종이 친정을 선포. 사실상 실권.

고종을 몰아내려는 쿠데타 시도.->국왕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면책.
장남 이재면(흥친왕)을 왕위에 앉히려다가 실패.->국왕의 친형이라 면책.
손자 이준용을 왕위에 앉히려다가 실패.

을미사변의 배후로 지목되어 고종과의 관계가 파탄. 이후 사망.

 

[고종 이재황(이희)] (생몰 1852~1919, 재위 1863~1907)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차남.
즉위 초기에는 섭정 흥선권에 휘둘리다가 민비와 혼인 후 대원군을 실각시키고 친정을 선포함.
운요호 사건-아무 준비 없는 개항.-국부의 원천이 될 광산 개발권이나 철도 부설권을 외국 회사에 헐값에 매각.
을미사변 후 아관파천. 그런 주제에 느닷없이 제국을 선포하는 광대짓.
조국 근대화에 힘썼다기보다는 자기가 관심있는 서양의 신기한 물건들을 수집하는데 관심있었을 뿐이었다는 평가.
러시아의 차르, 독일의 카이저 체제가 간지나 보여서 그 흉내로 시대착오적인 입헌군주제의 제국을 선포했다는 정황이 있다고 함.
건의했다던 서양인 고문들은 모두 러시아, 독일인이었는데 당시 러시아와 독일은 국가 내부적으로 민주화 세력의 봉기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군사문제에 대한 무지함.
└대포 얹은 상선을 군함이랍시고 구매함.
└근대화된 군대에 양반 자제들을 사병으로 조직해 트러블.
└암초에 가까운 철갑선, 이불에 가까운 방탄복.

고종의 비자금이 어찌어찌 독립운동가들에게 흘러들어가 상당한 자금지원이 되었다.
일본의 활동에 끝까지 저항했다는 사실.
독살설.

참고 작품-명성황후, 불꽃처럼 나비처럼

 

[순종 이척] (생몰 1874~1926, 재위 1907~1926)
고종과 민비의 아들. 조선의 마지막 임금.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러시아 역관 김홍륙이 고종을 독살하려고 탄 아편 커피를 잘못 마셔 건강 악화. 이가 빠져 틀니를 끼고 살았음.
직계 자손이 없어 성불구였다는 설도 있다.
고종의 헤이그 밀사 발각으로 일본이 퇴위 강요에 의해 양위 받음. 명분상 황제, 실권자는 이완용.
즉위하면서 어린 동생 영친왕을 황태제로 책봉.
등극 부터 아무런 실권 없이 망국을 지켜보기만 해야했던 비운의 허수아비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