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세끼 밥 같이 먹는 이런 공동체 어때요?

Fact/귀농-귀촌 · 2013. 8. 22. 00:14

2011년 여름에 친구 손에 이끌려 부안 농악 전수에 갔다가 변산 공동체 학교 청소년 몇 명을 만났었다. 청소년 아이들과 사귈 요량으로 틈틈이 모여 앉아 아이들에게 꽹과리 타법을 배우기도 하고 변산공동체 소개도 받았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이야기하고, 사교적인 청소년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변산 공동체 학교의 수업료는 무료라고 했다. 학생들은 어른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수업료에 해당하는 몫을 하는 거라고 했다. 외부 손님은 3박 4일 일정으로 방문할 수 있고, 일정 정도의 노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았지만 참가비가 없다는 것은 의아 했었다. 돈 없이도 귀농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그랬다. 내가 가진 상식으로 이해하기에는 특이한 곳이었으나 어떤 경계와 벽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 식당에서 밥먹으면서 청소년 아이들에게 변산에 놀러가겠다 했었다.

 

2012년 12월 초에 생태 공동체를 찾아 지방으로 이주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지인과 함께 변산 공동체에 다녀왔다. 저녁식사 시간 즈음에 도착해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서 안내자를 기다렸으나 방문자인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공동체나 생활규칙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수도 없었다. 저녁식사 후에 진행되는 작업회의 시간에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고 다음날 할 일이 정해졌으며 구성원을 통해 아침식사 시간과 따뜻한 숙소를 안내 받았다.

 

농한기를 제외한 1년 내내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가는 그곳에 방문자는 특별하지 않은 것 같았다. 공동체 가족들은 언제나 농사를 하는 일상의 모습으로 그들의 작업과 일상에 외부인들을 참여시킨다. 만약 내가 일하고 쉬고, 먹고 노는 일상 안에 손님들이 무작위로 다녀간다면 나는 아마도 많이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작업에 나를 참여시켜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감사했다. 아마도 손님대우를 받았다면 많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들의 일상에 섞여 있으면서 외로운 도시에서 늘 새로운 관계를 구성해 내려고 애쓰며 호들갑에 익숙해 있는 내 모습도 비춰볼 수 있었다.

 

둘째 날 아침식사를 하고 8시 부터 메주 콩 고르는 일을 했다. 콩을 골라내는 기준을 배웠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던 나는 콩을 골라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졸리움이 몰려와 한참을 졸기도 했다. 10시 경에 한 구성원이 간식을 내와 함께 먹고 난 후 오전 일의 지루함이 가셨다. 오후가 되면서 손님인 우리 쪽이 하는 일 속도가 느린 것이 점점 티가 났다. 고른 콩을 채운 포대에 양이 두 배는 차이나 보였다. 일이 느린 것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먼저 주어졌던 일을 마치고는 공동체 구성원에게 슬쩍 말을 걸어보았다. 아직 일이 더 남아 있다는 답변이 돌아와 다시 콩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그 날 저녁에 새로운 방문객이 있었다. 함께 온 남녀는 공동체의 식구였으며 '공동체 베이비'를 출산했다고 소개했다. 공동체에 많이 오고 싶었고, 날을 벼르다가 이제서야 아이와 함께 먼 길을 왔다며 그동안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변산 공동체에서 사귀고 아이도 갖고 출가한 부부인 듯 했다. 변산 공동체에는 손님과 가족(식구)이 있다. 말 그대로 손님은 3박 4일에서 한 달 정도의 일정으로 한시적으로 방문하는 사람을 말하고, 가족(식구)은 1년 이상 장기간 함께 지내는 사람을 말한다. 손님과 가족은 모두 함께 농사일을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산다.

 

셋째 날에는 근방 요양원 김장하기 작업에 청소년들과 어른 열 댓 명에 손님인 나와 동행자도 함께 배정되었다. 방문자인 나로서는 새로운 경험이고 신나는 외출이었다. 몇몇 군인들도 우리처럼 김장작업에 배정된 듯 했다. 군인들과 우리들은 함께 배추 천오백포기를 밭에서 나르고 다듬고 절이고 김장에 들어갈 양념재료를 준비했다. 몇 명씩 팀을 이루어 큰 욕조에 소금을 한 푸대씩 풀어 녹이고, 배추를 쑥쑥 담갔다가 건져 올렸다. 소금물이 빠지지 않게 잘 들어내어 깊숙한 다라이에 안쪽부터 차곡 차곡 절인 배추를 쌓아 올려야 했다. 앞치마를 둘러주며 간수 작업을 하고 양파 껍질을 까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즐거웠다. 몸을 많이 쓰면 이야기도 잘 나오나 보다. 아이들 이름도 묻고 말을 걸어본다. 모여 앉아 나누는 이야기들 속에 사람들의 개성이 묻어 난다.

 

공동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돕고 사는 모양이라고 정의해 볼 수도 있겠으나 사회복지기관이나 종교단체를 제외한 공동체는 실상 처음 접해본 것과 다름없다. 도시에서는 '서로 모여 돕고 사는' 공동체의 모양이 동아리나 소모임 정도의 취미활동에 그치기 쉽다. 요즘 흔하게 사용되는 마을이라는 말에서 공동체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게도 된다. 혹자는 걸어서 15분 거리가 마을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요즘에는 차타고 15분 거리를 마을이라고 해야 한다고 한다. 대중교통이나 차량으로 일상생활을 위해 움직이는 동선이 단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시 사람들은 차타고 평균 15분 정도에 시장과 대형 마트에 가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동아리나 소모임을 통해 문화생활도 한다. 그 거리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교류하며 마을을 이룬다는 것이다.

 

변산공동체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아침, 점심, 저녁식사를 같이 먹을 수 있는 거리에 산다. 혈연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도 식사를 따로 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식사준비도 돌아가면서 한다. 식사시간이 되면 공동체 식구들이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모인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작업회의 전후로 삼삼오오 모여앉아 놀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어떤 사람들은 숙소로 돌아간다. 나는 식사시간 전후로 책장에서 농사나 교육, 꽃과 나무, 건강 등에 관한 책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 풍경안에는 아이들이 있고 청소년이 있고 젊은 청년들이 있고 부부가 있고 교장 선생님이 있다.

 

넷째 날에는 일찍 올라와야 해서 김장 작업에 함께하지 못했다. 전날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양념에 속을 넣고 보쌈을 만들어 맛있는 식사를 했을 것이고 뭔지 모를 재미난 일도 있었을 거다. 3박 4일 일정은 매우 짧고 아쉬웠다.

 

변산 공동체에 다녀오면서 두 가지에 대해 생각했다. 첫 번째로 변산에서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요란한 배움이나 사귐은 없었다.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작업을 하며 숙소와 세끼 식사를 제공받았을 뿐이다. 둘째 날 콩고르기 작업을 하고 셋째 날 아침 밥을 먹으러 가는 새벽 길에 내가 밥값을 하는 걸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월급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밥 값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때가 적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농사와 내가 행하는 작업은 오로지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으로 순수하게 긍정되었고, 낯선 공동체에서 오히려 나는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동체의 일상 속에 들어가 주어진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밥값하기에 대해서 배웠다.

 

두 번째로 공동체란 무엇일까. 매일 하루 세끼 밥을 같이 먹는 공동체는 도시에서 추구하는 공동체와는 무엇이 다를까. 아마도 전자에서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좋은 말만 하고 살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즉 포장이 불가할 것 같다. 공동체의 핵심은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치닥꺼리며 사는 생활로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포장으로 유지되는 도시 사회에서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편견과 속단은 어느새 꼬리를 내릴 것 같다. 공동체에 대한 단상들 안에서 경직되고 권위적인 조직의 불편함이 스쳐간다. 사업이 넘치는 도시에서 마을이 하나의 트랜드가 되지 않기를 조심스레 바래본다.

 

변산공동체에서는 아이나 어른이나, 학생이나 선생이나, 여자나 남자나 농사와 생활노동을 함께 한다. 공동 작업으로 인해 나이, 지위, 성별에 따른 편견이 생길 여지가 적어 보였다. 여성에게 생활노동이 과중하게 혹은 전적으로 분배되지 않는다. 잘나 보이거나 부족해 보이는 사람에게 일을 차별적으로 부과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랬다간 끝이 없는 농사 일을 다 해낼 수도 없을 것이다. 자연이 부과하는 평등한 노동에 사람도 평등하다.

 

공동체란 무엇일까. 차별적 노동이 강제되는 것을 경계하고, 누구나 존중받고 제 밥값하는 노동을 하면서 또한 치닥거리며 함께 사는 것. 이 정도로 정리해야겠다. 쭈삣대며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올라왔다. '정말 잘 지내고 왔습니다.'

 

새벽에 출발해 버스안에서 한숨자니 금새 서울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에는 제주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친구가 우리집에 잠시 머물기 위해 올라왔다. 한참 동안 밀쳐 두었던 노트북을 다시 꺼내어 현재형을 과거형으로 수정한다. 몇 주 사이에 마주하기 싫은 현실에 직면한 충격을 받아들여야 하기도 했지만 또한 마음 설레이는 일은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