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생각한다면 술 생각 버려라

Fact/의학-건강 · 2009. 12. 3. 18:56
간 이식 분야의 세계적 대가 이승규(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교수는 700여건의 간 이식을 포함, 지금껏 2000여건의 간 수술을 집도했다. 이식 수술 700여건 중 570여건은 산 사람의 간을 나눠주는 생체 간 이식. 따라서 2600여개의 살아있는 간을 그는 ‘구경’했다.
각각의 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표면이 매끈매끈하면서 선홍색 빛이 돈다면 건강한 간이다. 그러나 지방이 낀 간(지방간)은 누리께해 ‘신선한 감’이 떨어지고, 약간 부풀어 있다. 황달이 있는 사람의 간은 시커멓게 착색되고, 많이 부풀고, 약간 단단해 진다. 마치 전복껍질처럼 표면이 거칠고, 딱딱하며, 쪼그라든 것은 간경화 환자의 간이다. 이렇게 많은 간들을 만져본 그가 전하는 ‘간 메시지’는 “제발 술 좀 적당히 마시라”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경화 환자의 90% 정도는 B형 간염, 2% 정도는 C형 간염이 원인이다. 알콜성 간경화는 4~5%에 불과하다. “술은 크게 문제 안 되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순수하게 B 또는 C형 간염 때문에 간경화가 된 사람은 10% 미만이며, 90% 이상은 간염 바이러스가 있는데도 폭음했기 때문이다. 간경화 환자의 90% 이상이 하루 소주 1~3병씩 10~20년씩 마셨다고 그는 설명한다. 간암은 만성간염이나 간경화가 원인이다.


‘간염 바이러스가 있으면 절주(節酒)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매년 수만명의 보균자가 이를 못 지켜 간경화 또는 간암에 걸린다.


믿기 어렵지만 간 이식 수술을 받고도 다시 술병을 끼고 살다 사망하는 사람도 많다. 유명인 L씨도 같은 경우다. 이 교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 중 매일 밤 술 상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서 강력히 경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간도 술 때문에 생기지만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므로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급성 간염을 앓았더라도 간기능이 정상인 사람이나 ‘건강 보균자’도 술을 마실 수 있으며, 간염 바이러스가 없다면 가끔씩 ‘폭음’해도 문제없다고 한다. 간은 인체 장기 중 회복이 가장 빠른 장기이기 때문이다.


이식을 위해 간을 ‘반토막’으로 잘라도 2개월 이내에 원래 크기로 회복된다. 그러나 ‘잔 매’에 장사 없다고 회복될 틈도 없이 계속 술을 마시다 보면 ‘침묵하는 장기’ 간이 비명을 지르게 되며, 그 뒤엔 수습할 수 없는 사태가 줄줄이 이어진다. 마시더라도 ‘요령’을 부리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체중이 늘지 않도록 관리하며, 술 마신 뒤엔 2~3일 휴간일(休肝日)을 갖고,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할 것 등을 ‘간 건강법’으로 제시했다.


한편 건강식품으로 선전되는 일부 버섯과 스테로이드 성분의 일부 피부과 약,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된 한약 등은 사망률이 80~90% 정도인 급성·전격성 간부전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