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7살 아들 떠나보낸 아빠의 '임종 일기'

Private/자기개발 · 2009. 11. 30. 10:34
호주인 빈센트 러브그로브씨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돼 태어난지 7년만에 죽어간 아들의 마지막 날들을 기록한 일기가 호주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고 시드니의 선데이 텔레그라프지(7월15일자)가 소개됐다.

다름은 러브그로브씨가 쓴 '임종 일기'의 내용.

런던의 여름은 치자나무 향기가 싱그럽게 진동하고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오는 희망의 계절이지만, 나에겐 정서적으로 불안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에이즈로 사망한 내 아내와 아들의 주기가 돌아오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뉴욕 출신의 활달한 아내 수지는 1987년 6월14일 호주에서 세상을 떠났고 우리 아들 트로이는 6년 뒤인 1993년 6월3일 역시 호주에서 숨졌다. 그들의 죽음은 나의 인생관과 죽음에 대한 태도 그리고
소망을 갖는 믿음의 힘에 대한 나의 신념을 영원히 변화시켰다.

1985년 세밑에 모자가 에이즈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매우 놀랐고 비참했으며 화가 났다. 놀란 것은 내가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비참했던 것은 트로이가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된데다 수지와의 결혼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화가 났던 것은, 우리가 만나기 5년 전쯤, 에이즈가 알려지기도 전에 수지가 가졌던 자연스럽고 발랄하고 태평했던 삶의 태도가 우리의 꿈을 깨뜨리고 우리를 비틀어 영원히 떼어놓을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으리란 것을 정녕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지의 죽음은 갈수록 심신이 쇠약해지면서 서서히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아내가 죽은 후 나는 트로이도 조만간 세상을 떠나리란 것을 알면서 아들을 키웠다.

처음부터 나는 아들에게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어머니와 그 아이 자신의 병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이 삶의 과정의 일부라는 것도. 아들은 자기의 생명이 어쩌면 짧게 끝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앎이 우리 사이에 강렬한 유대를 맺어주었다.

마침내 아이의 마지막 여정이 다가왔을 때 아이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아들의 두 주간에 걸친 마지막 삶에 의해 나는 완전히 낮아지고 작아졌다.

여기 죽음을 맞기 위해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꼬마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또한 포용했다. 아이는 그것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했고 매우 속깊은 생각들을 나누면서 그 행사를 완전히 소화하고 있었다.

비참해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고 오직 의연함과 소망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이의 태도에서 나의 이해를 초월하는 용기와 품위-연약한 일곱 살짜리 꼬마는 물론이고 어떤 인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를 발견했다.

트로이가 숨지기 몇주 전,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아들은 7년반 동안 약물을 투여했음에도 에이즈 바이러스를 죽이지 못했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제 남은 결론은 모든 정맥주사용 튜브를 제거하고 퇴원하여 집에서 싸우는 것이라고 아이는 강하게 느꼈다.

마지막 날들이 다가오자 아들의 식욕은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아이가 마음속에 간직한 첫번째 생존의 기회는, 식욕이 되살아나 필요한 음식을 섭취하게 된다면 스스로 회복하고 치유하여 바이러스가 죽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두번째 기회로는 자기가 정말 죽을 경우 바이러스도 자기 몸과 함께 죽어버려 영혼이 자유롭게 해방되리라고 아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보너스가 되는 셈이라고 아들은 내게 말했다. "그러면 예수님 곁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실 엄마를 드디어 만날 테니까요. 아빠, 엄마를 두살 때 보고 못 봤으니까 정말 보고 싶어요."

1993년 5월23일 내 절친한 친구중의 하나인 줄리와 내 딸 홀리, 그리고 나는 자신의 임박한 죽음에 대한 트로이의 명쾌한 이야기들 속에 묻어나는 생각의 깊이와 지각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마지막 날들의 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모르핀 주사를 맞고 있었지만 정신은 깨어 있었다.

- 5월23일 일요일
5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더니 이제 다음주에 먹고 싶은 것들을 열거한다. 식욕을 되살리기 위해 그가 먹어 보았던 모든 음식을 다시 맛보려고 애를 쓴다.

- 5월24일 월요일
내 사랑하는 아이가 어제 아침식사로 오징어와 샐러드 그리고 껍질을 벗긴 올리브를 먹었다.

"아빠, 내가 내 몸을 떠날 때 맥스(수지의 고양이)한테 내가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 주시겠어요? 아직은 몸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말씀드리는거예요.
참, 아빠, 부치(트로이의 강아지)한테는 내가 몸을 떠나면 아빠를 돌봐 드려야 한다고 일러놓았어요."

- 5월25일 화요일
죽음이 다가올수록 고통없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기력이 떨어지고 있지만 의연함과 투지는 기적적으로 솟구치는 것 같다.

오늘밤 아이 곁에 누워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가 나의 뺨을 어루만진다. "왜 그래요, 아빠?" 나는 아들의 여행 준비를 충분히 시키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일찍 희망을 포기한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고 말해 주었다. "아빠, 충분히 준비를 시켜 주셨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아빠 걱정 하지 않게 해주세요."

(나중에) "아빠, 내 생일때 주려고 윗층 옷장에 선물꾸러미를 준비해 놓으신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가지면 안돼요? 생일 때는 내가 여기 없을거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에게 슬픔이나 원망의 빛은 전혀 없다. 불가피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연함이 지극히 초인적이다. 나는 무너진다. 선물을 뜯어봐도 된다고 일러준다.

- 5월26일 수요일
엄마가 쓰던 하트 모양의 특별한 베개, 아직도 자기가 쓰고 있는 그 베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아이에게 엄마한테 갈 때 베개를 가져가라고 말한다. 아녜요, 홀리와 아빠가 껴안을 수 있도록 여기
두고 가는 게 나을거라고 답한다.

아이에게 "너는 나의 노숙한 꼬마 현자"라고 말하면서 네게서 아주 많은 것을 배웠노라고, 네가 나에게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노라고 말한다.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아빠. 아빠한테 가르쳐 준 건 나를 조심조심 들어올리는 방법밖에 없어요."

- 5월27일 목요일
트로이는 자기의 죽음의 대해 이미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여행을 떠나기나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은 시작됐다. 정말 시작된 것이다.

"아빠, 일요일까지 내가 내 몸을 떠나지 않으면, 우리 염차 먹으러 갈래요?"
"내가 죽으면, 모든 가난한 아이들에게 내 장난감과 옷을 주고 싶어요. 그런 아이들은 몸을 따뜻하게 해야 돼요. 저건 벽에 그림자에요?"

마치 우리를 떠나기 전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다 얘기하려는 듯이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말과 끊임없이 표출되는 생각들. 마지막 순간의 교통.

아들은 죽음을 감지하고 있다. 아이의 죽음을 나도 감지한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또렷하다.

새벽 1시. 트로이가 곁에 누워 있는 홀리 누나에게 말한다.
"아빠가 잠시라도 TV를 보시는게 좋겠지?"
"그래, 아빠도 너나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그래, 그렇지만 아빠는 부치와 맥스 그리고 엄마의 영을 다 갖고 있어."
"그래, 너두 곧 다 만나게 될거야."

트로이의 반응은 그애가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길을 떠나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것은 지금 여기서 그들을 느끼는 거야."

- 5월28일 금요일
금요일 아침 이른 시간까지 우리는 함께 침대에 누워 있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트로이가 잠들어 있는 줄 알고 부엌으로 간다. "돌아와요, 아빠." "아빠, 밤에는 기운이 솟는 것 같아요. 엄마도 그랬어요?"

- 5월29일 토요일
간밤에 트로이도 나도 잠을 자지 못했다. 아이는 죽어가고 있으나 아직도 강하다. 이제는 온몸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내 어깨를 주물러 주겠다고 한다. 아이 옆에 엎드려 얼굴을 두 손으로 괸 채 나는 천천히, 조용히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아들이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 준다. "걱정 마세요, 아빠. 그리고 미안한다는 말 하지 마세요."

나는 울고 아이는 울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가 아니라 내 자신이 딱하다. 나는 어른인데도 아들과 같은 그런 확신과 의연함으로 죽음을 맞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 5월30일 일요일
새벽 5시. 여전히 화장실 변기에 앉은 채 아이가 말한다. "아빠, 정말로 우리가 무척 재미있게 지냈어요." "그건 그래, 친구야. 우리가 해보지 않은 것이 별로 없지."

아이는 혼자 걸을 수 있다며 내 도움을 마다한 채 화장실에서 느릿느릿 돌아온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나는 움찔움찔한다.

오후 3시. 방금 첫번째 치아가 빠져버리는 바람에 몹시 슬퍼한다. 자기 몸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 5월31일 월요일
"아빠, 치아가 빠질 때 치아 요정이 어떻게 오나요? 요정이 돈을 얼마나 주고 갈까요?"

아이는 크림과 딸기를 찾는다. 먹는 양은 작다. 고작 작게 토막낸 딸기 몇 조각이다. 그래도 며칠 사이에 가장 많이 먹었다.
모든 사람이 틀렸다고 증명해 보이려는가 보다고 아이에게 말한다. 맞는 말이라고 아이도 맞장구를 친다. 우리가 모두 포기했다는 느낌을 아이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 6월1일 화요일
트로이는 자신의 허약함과 독립심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자의식이 점점 더해간다. 누구든지 자기를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 6월2일 수요일
트로이는 모든 것이 느려지고 있다. 잠자는 시간도 점점 길어진다. 이제는 이따금씩 짧게 깨어날 뿐이다.

나는 말기환자인 이 슈퍼보이의 태도에 깊이 감동하여 기적을 소망하면서 아이의 짧은 생애 동안 끊임없이 보듬고 사랑하고 이야기를 해왔다.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이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오후 1시30분, 트로이에게 말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 이젠 달리 표현할 길이 없구나. 내가 내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가 아빠한테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을 어떻게 하는건지 깨우쳐 주었다는 걸 알기를 바란다."

"물론 알아요, 아빠. 걱정하실 것 없어요. 아빠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항상 알고 있었어요. 이 세상 무엇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걸. 언제나 느껴 왔어요. 지금도 알아요. " 그리고는 내 손을 쓰다듬으며 덧붙인다. "그리고 저도 아빠를 사랑해요. 언제나 사랑할 거예요."

어린 아들에게 이런 상태에서 죽음에 대하여, 아이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어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건 나의 의무였다. 아이가 떠나고 있고 내가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만큼 고통은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는 자녀가 죽을 때까지 돌봐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오후 3시30분 트로이가 잠들어 있다. 고개를 옆으로 움직이며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친다. "너무 빨라, 너무 빨라, 너무 빨라!" 초저녁에 내 친구이자 의사인 데이비드 워커가 들어와 일러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트로이는 오후 내내 그리고 밤새도록 자고 있다. 홀리와 나는 트로이 곁을 지킨다.

- 6월3일 목요일
새벽 0시30분. 나의 노숙한 꼬마 현자가 숨을 멈춘다. 아주 아주 천천히. 아주 아주 순하게. 아이의 가냘픈 숨이 이제 더욱 늦춰진다. 그리고 숨을 멈추었다. 아무런 고통도 없이 편안하게. 천사다. 모든 것이 끝았다. 아들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