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중에서

Fact/귀농-귀촌 · 2011. 8. 25. 17:06


귀향이 아닌 귀농이나 귀촌인 경우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도식화할 수는 없지만 귀농이나 귀촌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으니 한번 카테고리를 정리해보자.

 

1. 은퇴형 귀촌

55세 이상의 연령층이 많다. 보통 농사를 짓지 않는다. 남은 생에 대한 여유자금이 있다. 서울에 여전히 집 한 채 정도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원두커피와 음향장비를 가지고 있다. 지역민이 되는 것은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주소지가 귀촌한 지역이 아닌 경우도 제법 있다. 전원생활을 즐긴다. 보통은 기존 마을 주민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차茶를 구입하고 즐긴다.

 

2. 계획형 귀농

수년간 준비한다. 도시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거나 버틸 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생활이 맞지 않고, 도시는 사람 살 곳이 못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많은 편이다. 도시 시절부터 책장에는 니어링 부부의 책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이들 교육문제가 귀농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단기적인 '버티기 자금'을 준비하지만 대략 '농사지어 생활하기'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우므로 삼 년 안에 쌈짓돈이 바닥난다. 진정한 버티기로 돌입해서 자구책을 찾거나 다시 도시로 떠난다. 처음에는 원두커피와 음향장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간혹 귀농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기도 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서 다시 집을 마련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대략 버틸 수는 있다. 집과 약간의 농사지을 땅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이민 간 대학교수 출신이 세탁소를 운영하듯이 도시에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막일도 점점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차를 만들어 판매한다.

 

3. 허술한 귀촌

여행 왔다가 밤하늘의 별을 보다 "자기 우리 여기 살자! 어차피 도시에서 답도 없는데"라는 말을 시작으로 사태가 전개되기도 한다. 기존 시스템 속에서 애당초 자리 잡기 힘든 이력들인 경우가 많다. (나도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대개 자력으로 집을 짓거나 마련하기 힘들다. 빈집을 노리거나 저렴한 가격의 농가를 개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넉넉치 않은 자금력으로 아주 단기간을 버티거나 약간의 농지를 대농하거나 이런저런 일들, 가령 녹차나 효소 만들기, 계절별로 농산물 수확하는 품앗이 등을 습득하면서 저렴하고 부정기적인 수입을 확보한다. 하지만 농사가 아닌 다른 방도를 찾는 데 항상 집중한다.

부분 블로그를 가지고 있고 '그러나 자연 속에서 행복하다'는 포스팅을 하고 시스템 종료하고 나면 바로 경제문제로 부부싸움에 돌입한다. 원두커피와 제대로 된 음향장비로 음악을 즐기고 싶지만 시설 자체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차를 만드는 곳에서 품을 판다.

 

4. 포괄적으로 예술가들

저렴한 작업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특성상 도자, 목공, 염색 등의 공예 족이 많은데 재료 공급 등의 환경적인 면과 적은 돈으로 공간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이 결합한다. 농사일에는 비교적 관심이 없다. 할 수 없이 간혹 품앗이에 동원되나 일을 하는 내내 '이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는 생각이 강하다. 마을 주민들과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불화하지는 않는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착하거나 현실대응력이 지극히 미약하다. 따라서 도시로 돌아갈 생각도 거의 하지 않는다. 18세기가 아닌 관계로 사실 시장에서 성공하는 예술가들은 골프장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낭만적인 미학관이 강하여 이런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다.

'원래 잃을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은 계속 버틸 수 있는 강력한 자산이다. (나는 이 카테고리에도 속한다) 이런 사람들은 간혹 누군가에게서 차를 얻는다.


이상은 삼 년차 귀촌인의 약간 비장하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다. 평소 '객관은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사람은 경제에 가장 많이 지배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