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서울의 산책길

Fact/여행-음식 · 2009. 12. 5. 00:26
덕수궁 - 정동길 - 경희궁 - 서울역사박물관


덕수궁

덕수궁 뜰로 들어가는 순간 4차원의 세계에 들어간듯한 묘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왜일까? 대한문 솟을대문과 돌담장의 키가 높다는 과학적 이유도 있지만, 조선의 건축물 앞에 서는 순간 그 풍경, 문양, 어처구니, 문지방 등에 몰입되기 때문이다.
덕수궁 산책에서 빼놓은 것은 하나도 없다. 국보 229호인 보루각 자격루를 비롯, 보물인 중화전, 중화문, 함녕전, 흥천사종, 그리고 건축적 가치가 높은 석조전, 정관헌, 석어당, 덕홍전, 준명당, 즉조당, 광명문, 중명전 등 샅샅이 관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정동길

정동길은 서울의 대표적인 낭만길이다. 봄에는 개나리 꽃길, 여름이면 울창한 숲길, 가을이면 아름다운 은행나무길, 겨울이면 소복한 눈길로 변하는 등 계절에 상관없이 로맨틱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단, 옛날부터 전해오는 '첫눈 괴담'도 잊어서는 안된다. 첫눈 내리는 날 커플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두 사람 사이에 높은 벽이 생겨 결국 헤어지게 된다는 근거 없는 말이 그것인데, 실험삼아 첫눈 오는 날 그곳에서 데이트 했다 헤어진 사람들의 증언이 있는 이상, 무시하지는 말 것.
정동길의 또 다른 매력은 길가의 문화재들이다. 서울시청 별관 바로 옆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미대사관관저 입구 사거리에는 정동제일교회가, 교회 건너에는 정동극장이, 정동극장 옆골목에는 을사늑약이라는 망국의 현장으로 남아있는 '덕수궁 중명전'이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러시아공사관 터가 정동 언덕 꼭대기에 서 있다.


경희궁

경희궁은 한가롭기 짝이 없는, 그래서 평일 오후에 찾아가면 가끔 뒷골이 섬뜩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는 이유로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도 불렸는데,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이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조선 왕들이 이곳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을 철거해버렸고,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다. 이로 인하여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광해군 때의 궁궐로 복원해야하는 게 아닐까? (자료 참고/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문화, 풍속, 역사 등을 한데 모은 박물관이다. 역사박물관에는 크게 전시관, 학습관, 자료실 등이 있고, 사람들이 가장 즐겨찾는 전시관에서는 특별전시, 상설전시 등 일년 내내 서울의 문물을 감상할 수 있다. 상설전시관에서는 조선의 수도 서울, 서울사람들의 생활, 서울의 궁중문화, 예술문화, 학술문화, 도시 서울의 발달전 등들이 열리고 있다.


삼청동 - 경복궁 - 효자동 일대


삼청동 - 효자동

삼청동은 도교의 삼청전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청동은 사실 그 동네 자체가 산책길 기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예전에 한가로운 동네였을 때는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조금 더 혹평한다면 이곳은 그냥 거대한 먹자골목이 되어버렸다. 오래전 삼청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랜만에 이곳에 들어가면 대부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삼청동과 효자동 일대를 산책할 때는, 일단 경복궁 뜰을 거닐고, 궁궐 서쪽에 있는 효자동, 통의동, 통인동, 체부동, 옥인동, 누상동, 청운동 등 조선 시대에 생긴 마을의 골목길을 거닐고, 청와대 앞길로 해서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 물론 거꾸로 해도 상관 없는 일이다.


경복궁

궁궐 산책을 할 때는 산책하기 전에 웹사이트에 들어가 궐 내 건물들에 대한 정보를 익혀두는 게 좋다. 그리고 실제로 그 건물 앞에 섰을 때 조선시대에 그곳에서 벌어졌던 사건, 연애, 암투 등의 상황을 떠올리면 산책의 즐거움이 한결 배가된다.
최근 경복궁에서는 재미있는 행사가 진행중이다. '궁중 생활상 재현 및 체험'이다. 기로연 재현 행사는 경복궁 수정전에서 열리며 10월10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3시10분까지 진행된다. 궁중복식 체험 행사도 참가해볼만 하다.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9시4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경회루 앞에서 열리며 궁중 복식 체험 및 기념 촬영의 기회를 즐길 수 있다.


북촌한옥마을 - 운현궁 - 인사동


북촌한옥마을

북촌한옥마을과 인사동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인사동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골목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다면, 북촌은 조선의 부자들이 살던 동네답게, 널찍한 길들이 사방형으로 짜여져 있어서 산책하기에도 좋다. 산책을 목적으로 나들이를 했다면, 북촌을 먼저 걷고, 그리고 인사동으로 넘어가 저녁을 맞는 게 좋다.
산책의 시작은 정독도서관 앞에서 하는 게 편리하다.
그곳에서 티벳박물관, 소격동, 세계장신구박물관을 거쳐 한옥 사이를 걷노라면 세상의 모든 소음, 걱정과 잠시나마 이별할 수 있다. 한옥마을은 언덕의 연속인데, 그 정점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북촌한옥마을의 전형을 볼 수 있는 역사의 골목이다. 북촌한옥마을은 현재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따라서 시끄럽게 떠들며 산책하는 것은 민폐다.


인사동

인사동은 원래 조선 시대 때부터 미술의 거리였다. 그래서 인사동의 수많은 가게에서 예술이 거래되고 커뮤니티가 형성되며, 현대미술 갤러리가 즐비한 것은 정체성 보전이라는 면에서 당연한 일이다. 쌈지길 같은 예술가들의 아뜰리에들이 밀집해있는 공간이 생긴 것도 매우 인사동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니 밥집, 찻집, 술집도 동네를 꽉 채우고 있으며, 볼거리, 즐길 거리들도 무궁무진하다. 북촌 산책을 끝내고 인사동으로 넘어오라는 것은, 그것이 조선시대 한양 시민의 동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북촌은 경복궁과 동궐(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형성된 마을이다. 주로 조선의 귀족과 고위 관료들이 살던 동네였으며, 인사동, 관훈동 일대는 중인, 상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다,
북촌 사람들에게 인사동은 일종의 다운타운 같은 곳이었으니 북촌 사람들이 인사동에 내려가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 오늘의 산책도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 보자는 이야기다.


운현궁

운현궁은 북촌와 인사동 일대의 분주함에 가려 다소 존재감이 떨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조용한 산책, 고요한 명상에 잠길 수 있는 도심의 오아시스같은 곳이다. 운현궁은 고종의 잠저(潛邸- 나라를 세우거나 임금의 친족에 들어와 임금이 된 사람의, 임금이 되기 전의 시기. 또는 그 시기에 살던 집)요, 흥선대원군의 사저였던 곳이다.
역사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소유권이 대원군 5대손인 이청 씨에게 돌아갔으며, 개인 관리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나 방송국 스튜디오로 사용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종묘 - 동궐(창덕궁, 창경궁)

파인아티스트 전시형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종묘 일대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종로 4가에 있는 종묘, 그 북쪽으로 이어지는 창경궁과 창덕궁을 측면도로 그려본다면, 이곳은 야트막한 동산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종묘과 동궐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동궐과 종묘 사이에 난 자동차 도로 때문이다. 이 도로는 일본의 한국 강점기 때 총독부가 잘라버린 서울의 뒷동산이었다. 구름다리 하나로 종묘와 창경궁을 이어놓긴 했으나 그 아름다웠던 시민의 동선이 아직도 복원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이다.
종묘에서 창경궁으로, 그리고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은 황홀 그 자체다. 숲이 그렇고, 고요함이 그렇고, 어처구니가 빠지지 않고 앉아있는 고즈넉한 기와지붕들이 그렇고, 단청으로 치장한 궁궐,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나무와 숲과 흙길 등등이 그렇다.
이 산책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오늘을 이어주는, 역동적 동선이다. 이곳이 아름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야산이 주는 다양한 높낮이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경복궁이나 덕수궁 등에 있는 집들은 대게가 사람 앞에 우뚝 서 있는 형상이다. 언제나 올려다봐야 한다. 그러나 동궐, 특히 창경궁은 산을 깎아 만든 곳답게, 윗길에서 궁궐을 내려다 볼 수도 있고, 궐이 보이지 않는 숲길을 산책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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