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구루(Guru) 오마에 겐이치 인터뷰

Fact/법률-경제 · 2010. 1. 16. 13:29

한국이 일본 제친다? No! 대만에 추격당하지나 마라
소니가 따라잡힌건 당연…이건희 같은 글로벌 리더십 없었다
李대통령 `국격높이기` 에 조언…분열된 사회론 힘들어…통합이 우선
`원아시아` 이뤄지려면…中ㆍ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관건

 


매일경제신문 김세형 논설실장(왼쪽)이 오마에 겐이치 BBT 대표와 지난 12일 도쿄 로쿠반초에 위치한 오마에 집무실에서 대담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10년 전 오마에 겐이치는 외환위기에서 막 벗어난 한국에 대해 "장기적인 산업정책을 진지하게 마련하려는 지도자가 없다"며 비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은 미봉책이라는 얘기였다. 삼성전자가 일본 전자회사 10개를 합한 것보다도 많은 이익을 내고 일본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도 그의 독설은 변함이 없을까.


김세형 매일경제신문 논설실장과 오마에 겐이치는 지난 12일 도쿄 로쿠반초 집무실에서 만났다. 얘기가 시작되자마자 역시 쓴소리가 나왔다. 그는 "경제가 회복될 때 더 조심하라. 한국은 분열된 사회다. 개혁과 정치적 지도력이 더 필요하다. 어느 나라를 제쳤다는 말 자체가 한국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만 해도 일본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 시기부터 일본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도 나온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부동산 버블(거품) 붕괴와 함께 경기 침체가 닥쳤다. 엔화는 예전 대비 4배 올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일본 기업은 살아남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500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만일 1달러에 250원 수준으로 원화값이 강세를 보인다면 살아남을 한국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우뚝 솟았다. 작년 기준으로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GDP 기준으로 2위가 됐다. G2라는 말도 나온다. 일본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2017년이면 중국의 GDP가 일본의 2배가 될 것이다. 사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중국 GDP의 10% 규모를 유지해 왔다. 최근 100년 일본이 커졌지만 2050년이 되면 그 정도 균형으로 돌아갈 것이란 얘기다. 덴마크, 스위스도 중국 경제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은 자신들이 G1이라고 아직 오해하고 있다. 사실상 지금의 G1은 유럽연합(EU)이다. 국가로서의 조건인 통화나 안보 정치 등이 모두 하나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2017년이면 아마 EU-미국-중국-일본 등의 순서로 국가 순위가 매겨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이 G2까지 부상하기 위해서는 경제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 일본은 독일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 마인드가 없다. 동아시아 경제권 형성은 솔직히 어렵다고 본다.


-남북통일을 가정한다면 한국과 일본의 경제 수준이 비슷해질 수도 있나.


▶그런 일은 없다. 한국이 일본을 제치기 위해서는 인구가 증가해야 한다. 한국도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다. 젊은 층이 국외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2050년(통일이 돼도) 인구는 6000만명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일본을 넘기 위해서는 GDP가 급성장해야 한다. 전후 한국의 목표였던 경제성장과 수출 증가가 통하던 시대는 갔다. 힘센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양분됐다. 일본 젊은이에 비해 어학과 사고능력이 뛰어난 소수도 있지만 이들은 한국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EU가 G1이 됐다고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매일경제신문은 `원 아시아`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중국, 일본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기 때문에 합치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를 극복할 방안이 있는가.


▶EU에는 중요한 시기에 큰 지도력을 가진 리더가 있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헬무트 콜 독일 총리 등이다. 그런 강력한 지도자가 각국에 존재하지 않으면 원 아시아는 힘들다. 지도자는 한 나라의 관점이 아니라 지역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고체계가 필수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그런 분이었다. 이제 아시아에 그런 지도자가 있는가.


-한국이 덴마크, 네덜란드처럼 국격을 높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한국은 분열된 사회다. 노조와 경영진이 대립하고, 언론과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재벌을 비판하면서도 성적이 좋으면 기뻐한다. 한국 여성의 능력이 향상되면서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적대감도 커지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출산을 꺼리고 결혼을 미루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국격을 높이려면 한국 스스로 어떤 국가를 목표로 하는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교육 문제도 짚고 싶다. GDP 순위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부족한 게 리더다. 리더가 많으면 한국이 중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북한 김정일 정권이 갑자기 붕괴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가능성이 얼마나 높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가.


▶북한은 붕괴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가장 좋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세계 시스템에서는 살아가기 힘든 국가다. 독재국가의 경우 지도자 스스로 세상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사례는 없다. 동독도 실패했고, 고르바초프도 실패했다. 최종적으로는 북한을 전 세계 국가들이 도와줘야 할 것이다.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삼성의 기술 수준이 일본 기업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기업이 그렇게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가. 아니면 오히려 한국 기업이 중국에 잡혀 먹힐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닌가.


▶기술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본 중소기업들의 기술 저변은 상당히 넓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이 잘하는 분야의 기술력만 따지자면 이미 제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리더의 존재 여부 때문이다. 삼성의 윤종용 사장이나 LG의 남용 사장 같은 분들은 세계 어디서도 통용되는 훌륭한 리더다. 일본 소니도 이런 리더가 있을 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처럼 리더 부재 상황이라면 소니가 따라잡히는 게 당연하다. 국가가 (상대를) 따라잡고 제친다는 생각 자체가 매우 한국적이다. 한국은 이제 이런 생각에서 졸업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만을 주목하라. 그들은 일본어 중국어 영어 3개 국어를 하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한국 기업이 대만에 고전할 가능성도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1년간 행보를 보면서 세계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는가.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잘하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도 명확히 제시했지만 힘이 더 필요하다. 의료개혁은 결국 타협의 산물이 됐고, 핵 없는 세계 구현은 시작도 못했다. 금융위기 탈출 또한 오바마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미 일본과 같은 길에 들어섰다. 코펜하겐만 보더라도 다 합의된 것처럼 연설하지만 실제 합의된 사항은 없었다.


-버블 문제와 금리 인상 가능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분간 세계경제가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 올해 4월 기업 실적이 악화될 경우 상업용 부동산이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상업용 부동산의 임대료가 최고 50%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더블딥이라는 경기 침체가 더욱 오래 지속될 것이며 따라서 금리 인상은 힘들다. 전 세계 경제가 동시에 붕괴되기 시작하면 중국 역시 버블을 의식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가 바로 중국 내 버블 붕괴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일왕 방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들어서면서 54년 만에 정권이 바뀌어 일본 태도가 바뀔 것이라 기대했는데 교과서 독도 표기 문제 등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다. 진정 일본이 한국과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 것인가.


▶일본인은 한국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심지어 중국,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점점 내성적인 나라가 되고 있다고 봐도 된다. 일왕의 방한은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이 관심을 다시 민주당으로 끌어오기 위한 방편이라고 해석한다.


 

■ He is…

맥킨지컨설팅에서 23년 동안 활동하며 아시아태평양 회장까지 역임했다. 현장 컨설턴트 시절 전자, 금융, 통신, 기계, 음식료, 화학, 자동차부품 등 다양한 산업을 경험했다.

창의적인 전략을 기업 내에 정착시키기 위해 조직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할지에 대해 탁월한 안목과 전문지식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영기업뿐 아니라 각국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조언해 왔다. 오마에는 스스로 "아시아 통화위기 이후 극복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제시해 왔다"고 자평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비판적 견해를 많이 내놓았다. 자국 내 대중적 지명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은 그가 유독 한국에서 유명해진 계기는 1999년 8월 격주간 국제정보지 `SAPIO`에 한국 경제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직후 과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한국은 부채를 미국은행에서 IMF로 넘긴 것일 뿐 결국 부담은 국민이 짊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2005년에는 한류를 "일시적 문화현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지금도 한국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아직도 여전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를 일본에서 유일하게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경영의 구루(Guru)라고 소개했다. 이코노미스트도 1994년에 그를 전세계 5대 경영 권위자로 선정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등에 글을 기고해 왔다.


△1943년 일본 후쿠오카현 출생 △와세다대학교 졸업 △도쿄공업대(석사) 졸업 △MIT 박사(원자력공학) △히타치 △노트르담대 명예박사 △맥킨지 일본 지사장 및 아시아태평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