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고수는 이미 '행정수도' 치고 빠졌다"

Fact/부동산 · 2009. 11. 30. 11:55
수법해부...지금은 홍성 예산에서 '작업중'



부동산 고수들은 이미 지난해말 다 빠져나갔는데 이제와서 투기대책 내놓는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충남 연기군 남면 한 중개업자의 지적이 심상치 않다.

부동산 고수들은 지난 2002년 대선 직후 집중적으로 연기·공주 일대 토지로 몰려 일대를 휩쓴 반면 초보 투자자들은 작년말에야 뒤늦게 찾아와 고수들로부터 3~5배 비싸게 매입했다가 최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며, 애꿎게 정부의 투기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했다.

이 중개업자의 반문은 진짜 투자고수들은 2002년 대선 전부터 행정수도로 유망한 충청권 땅을 점찍어 놨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땅 매입에 적극 나섰고 행정수도 후보지에서 이미 `치고 빠졌다`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분석과도 일치한다.

현도컨설팅 임달호 사장은 "연기·공주를 비롯해 신행정수도 후보지로 꼽혔던 지역은 현재 토지 거래가 자유롭지 못해 시장이 침체돼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발빠른 고수들은 이미 비싼 값에 매물을 처분, 정부 규제가 덜하고 값이 싼 새 투자처를 찾아 이동했다"고 말했다.

◇투기꾼, 열발 먼저가고 한발 먼저 빠진다=A씨는 지난 2002년말 충남 연기군 일대 도로변 토지 4000여평을 평당 12만원에 매입했다. 당시 신행정수도 후보지로 '오송'이 가장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았던 만큼 연기·공주에 땅을 사두면 수혜를 입을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였다.

그의 예상대로 곧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발표됐고 수요자들이 몰리면서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12월초 단골 부동산업소를 통해 초보 투자자에게 평당 35만원에 매물을 팔고 나왔다. 1년도 안되서 9억여원을 챙긴 셈이다.

B씨는 대선 직후 평당 10만원에 충남 공주군 장기면 일대 농림지 3000여평을 샀다. 이곳 역시 행정수도 이전 호재를 업고 가격이 수직상승했고 지난해말 평당 30만원에 되팔아 6억원의 차익을 손에 쥐었다. 땅값이 계속 뛰는데 왜 벌써 처분하냐는 주위의 만류도 게의치 않았다. 공주가 행정수도 이전지로 선정될 수도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최대한 서둘러 땅을 매도했다.

투자지로 행정수도가 이전해 올 경우 수용되거나 거래가 제한돼 자칫 돈이 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B씨는 특히 "고수는 매수자에게 먹을 것을 남겨준다`는 부동산 격언을 지켰다.

C씨의 경우 매매 계약만한 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미등기 전매 수법으로 지난해 10억여원을 불렸다. 일반 투자자에게 선호도가 높은 1000평 미만 규모 토지를 찍어 계약하고 잔금을 치르기 전 웃돈을 얹어 매도한 것. 전형적인 수법으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고수들은 어떤 수법을 썼나=부동산 고수들은 충청권 땅을 매집하면서 미등기전매 분할매각 위장전입 등을 수법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업규모가 큰데다 수용대상이어서 알박기는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근저당 설정 등의 고전적인 수법을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투기 유형을 살펴본다.

◇수법1. 미등기 전매=현재 미등기전매 방식은 수용대상인 신행정수도 예정지를 거친 뒤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지 않은 충남 예산이나 청양군 쪽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등기전매란 최초 토지 취득자가 이를 등기하지 않고 있다가 비싼 값을 받고 제3자에게 넘기는 방식.

충남 예산읍내의 경우 도시계획 재정비에 따라 자연녹지에서 주거지역으로 풀릴 예정인 약 13만평 규모의 부지에 투자자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이곳은 신행정수도 예정부지 인근인데다 천안ㆍ아산신도시 보상에 따른 대토용 토지로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다.

실제 예산읍내 부동산중개업소는 올초 40여개 정도에 불과하던 것이 최근 외부에서 들어온 업소들이 밀려들면서 120여개까지 늘어난 상태다. 투기수요가 급증하면서 2~3개월 전 평당 3만~4만원대였던 이들 지역 땅 값은 현재 10만~20만원을 호가한다.

특히 이들 외지인 업소들은 주로 수요자들을 직접 데려와 미등기전매 방식을 통해 토지거래를 알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지 업소들의 설명이다.

현지에서 20년 넘게 중개업소를 운영했다는 S부동산 박 모 사장은 “외지인 떴다방 업자들은 수요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각종 불법 거래를 통해 땅값을 비정상적으로 올려놓고 있다”며 “이들은 아예 계약서나, 현금을 들고 다니면서 설치는 통에 현지 업소들은 발붙일 곳이 없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수법2. 분할 매각=미등기 전매 과정에서 널리 쓰이는 방식이 기획부동산에 의한 이른바 ‘칼질(분할 매각)’이다. 즉 개발호재가 예상되는 특정 지역의 토지를 계약금만 주고 대량 매집한 뒤 투자자들을 모집해 지분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계약금만 주고 찍은 토지는 ‘흔들기’를 통해 또 다른 기획부동산으로 넘어가는 일도 다반사다.

스폰서라 불리는 20억~30억 단위의 큰 손들을 확보한 뒤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는 탓에 외부에 노출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기획부동산들의 특징.

실제 충북 오송, 오창지구의 경우 이미 기획부동산들이 이런 방식을 통해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 3만~5만원 선에 매입한 토지를 20만~25만원에 되판 뒤 빠져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주)SR 김종봉 사장은 “기획부동산들이 거쳐 간 지역의 땅값은 정상적인 지가상승폭을 훨씬 뛰어넘는 수직상승을 불러 온다”며 “이 과정에서 보존산지로 묶인 맹지를 구입한 투자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수법3. 위장전입=신문지상에 수차례 보도된 대로 신행정수도 수용지에서는 최근 위장전입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충남 연기군 남면 D공인 관계자는 “현지에 거주중인 친척이나 직장 상사의 집으로 전입을 하거나 아예 허름한 농가주택을 직접 매입해 주소를 옮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들은 향후 임대주택 입주권이나 이주비용, 이주자용 택지 우선 분양권을 노린 투자자들이 상당수다. 이에 따라 가격 자체가 없던 폐가나 다름없는 농가주택의 경우 최근 1000만원 선까지 거래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토지거래허가 및 토지특례 등에 저촉되지 않는 200평 미만의 농가주택이 인기다. 하지만 정부가 올해 주소를 옮겼거나 농가주택을 매입한 사람들에게 토지보상의 혜택을 주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이밖에 충남 조치원 등 투기과열지구로 묶이지 않은 곳은 아파트 분양물량을 둘러싼 떴다방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고전적인 투기수법으로 꼽히는 증여나 가압류, 근저당 설정 등을 통한 편법 거래는 거의 파악되지 않았으며 정부의 단속에 걸리기 쉽다는 단점이 노출되면서 한물간 투자방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수들, 지금은 어디로=지난해 오송, 천안·아산 등 충청권 몇몇 지역을 중심으로 대박을 터뜨린 고수들의 발길은 충청권 전역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행정수도 후보지 등에서 재미를 본 이들이 앞다퉈 찾고 있는 곳은 홍성과 예산. 땅값이 싼데다 거론됐던 행정수도 후보지 중 어느 곳이 선정되도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초까지 홍성과 예산은 여느 충청권에 비해 거래가 많지 않아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들어온 후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 올초 평당 3만~4만원대였던 이들 지역 땅 값은 현재 10만~20만원을 호가한다. 특히 최근엔 규제를 피해 후발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가파른 가격 상승세를 타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지와 접해 있는 조치원읍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은 지역 중 하나다. 조치원읍 S부동산 관계자는 "올초 외지인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알짜 땅을 모두 확보하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다"면서 "평소에도 수요에 비해 매물이 부족했던데다 행정수도 이전지가 확정된 후에는 있던 매물도 회수되는 상황이어서 이 일대 땅값은 초강세"라고 밝혔다.

청양군과 금산군에도 투자자들의 발길이 닿고 있다. 장기적으로 신행정수도 후광을 입을 수 있는데다 규제가 없어 거래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행정수도 수용지 주민들이 대토를 찾아 이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초보 투자자 절대 조심해야=충청권 일대에서 시세차익을 노린 각종 편법 투기 행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망된다. 수용지구의 투기행위는 잠잠해진 반면 규제가 덜한 주변지역으로 투기꾼들이 발 빠르게 옮겨가는 등 ‘숨바꼭질’ 양상마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 당국의 대대적인 단속 발표에도 불구, 불법 거래를 뿌리 뽑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역을 잘 아는 현지부동산이나 기획부동산을 통해 워낙 은밀하게 투기행위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12일 공주 연기 계룡 등을 투기과열지구로 곧 지정하는 한편 예정지구 지정공람일 1년 전부터 거주해 온 원주민에게만 이주자 택지를 주고, 후보지로의 위장전입 사실이 확인될 경우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아파트 당첨권을 취소하는 등 '신행정수도 주변지역 투기방지 종합대책'을 마련,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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