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한 교육법’ 믿어보는 거야

Fact/자녀-교육 · 2009. 12. 10. 13:43

7월 둘째주 강남 ‘평민 아파트’ 동네 먹자 골목. 돼지갈비 집 숯불 앞에 고2 이과반 아들의 엄마 열 셋이 모였다. 정보교환을 겸한 정기 친목 모임이지만 공동 관심사는 단 하나, 아들 대학보내기다.

 

엄마들 스트레스의 주범은 공부에 올인하지 않는 불량 아들들. 엄마의 읍소를 아랑곳 하지 않는 ‘배째라’형 아들 사례 발표가 이어진다. 게임 하려는 아들에게 컴퓨터를 내주기 싫어 아들 귀가 시간에 맞춰 컴퓨터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는 엄마의 이야기, 자정 전에 곯아 떨어진 녀석은 숫제 아들이 아니라 웬수라는 엄마. 새벽 2시에 잠드는 아들을 자랑하면서도 성장판이 제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 안쓰럽다는 소리도 들린다. 방학 한달 동안 독서실 정기권을 12만원에 끊어 주었다는 엄마에겐 방심하지 말고 자주 들러 낮잠을 자는지 놀러 나갔는지 ‘염탐’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조언이 쏟아진다. 학원 수업 사이에 길거리 농구로 한 시간 땀 쏟고 들어온 아들에게 운동은 시간 낭비라고 퍼부었다는 엄마는 왜 이런 악역을 맡아야 하는 지 눈물을 글썽거린다. 모두들 한창 커야 하는 나이의 사내 아이를 잠 못자게 하고 책상 앞에 붙잡아 둬야하는 엄마 노릇이 아들의 삶의 질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 앞에 우울해진다.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외 비용으로 100만원 내외를 매달 지출한다고들 한다. 방학 땐 훨씬 늘어난다. 한달 150만원 화학 과외로 모의고사 성적을 몇점 올렸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모두들 귀가 솔깃한다. 2학기를 대비한 집중 투자 시기이니 만큼 엄마의 강사 섭외능력과 팀 멤버 구성 여부에 따라 학업의 성취도는 크게 달라진다는 게 정설이다.

 

대입 수험생에게 들이는 가계 출혈 규모가 모성애의 등급을 정하게 된 시대일까? 도무지 이 분야 정보가 없는 나는 과묵한 참석자의 입장을 고수하며 듣기로 일관한다. 이미 지난 달 백두산 여행을 다녀온 게 들통나 “때가 어느 땐데 한가하게 여행이냐”는 눈총을 받으며 ‘이기적인 엄마’로 찍힌 터.

 

돌아오는 길,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들을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정답이란 말이냐? 잠이 부족해 아우성이라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꼬박꼬박 8시간 잠을 재우는 나는 과연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 걸까? ‘마당쇠 마인드’를 기른답시고 매주 한번씩 아들에게 설겆이까지 시키니. 녀석이 스스로 길을 찾아낼 것이라는 내 재래식 믿음은 과연 21세기에도 유효한 것일까?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내 대책없는 낙천성이 아들을 낙오 시킬 것만 같다. 월 42만원, 상대적으로 빈약한 사교육비 투자로 녀석에게 평생 엄마를 비난할 구실을 주는 건 아닐까?

 

그래, 대학이란 한 인간이 통과하는 숱한 관문 중의 하나일 뿐이야. 대학 브랜드가 한 인간의 미래를 전적으로 결정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언제나 믿어왔다. 한 인간의 생애란 충분히 길며 한두번의 실수와 실패를 만회할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걸. 또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할 수 있다는 건 성경까지 보증하는 이론이잖아. 휴우, 나는 다시 자식 기르기의 ‘태평농법’으로 복귀한다.


박어진/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