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공부 잘하게 만들 수 있을까?

Fact/자녀-교육 · 2009. 12. 10. 13:41

'공부기술' '공부혁명' '공부9단 오기10단' 등등. 첫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이른바 학습기술 서적을 백 권쯤 읽은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아이가 공부를 하거나 성적이 올라가면 용돈이나 선물 같은 물질적 보상을 해주라는 내용을 많은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전에 칼럼에서 공부는 아이 스스로를 위한 일이므로 물질적 보상이 없어야 한다고 간단하게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학습기술 서적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공부에 대해 보상을 하는 가정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가 여부가 대부분의 부모들의 첫 번째 관심사이긴 하지만, 공부는 절대로 물질적 보상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동기라는 것이 묘하기 때문이다.

 

돈에 관련된 인간의 심리를 다룬 '화폐 심리학'이라는 책에 재미있는 사례가 나온다.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있다. 그의 연구실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3일전부터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아주 시끄럽게 놀고 있었다. 통제와 예측이 불가능한 커다란 소음은 그에게 무척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을 불러 조용히 하거나 다른 곳으로 가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방법도 있다. 경찰이나 아이들의 부모를 부르는 방법도 있다. 힘으로 위협하는 방법도 있다. 과연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가 있을까.

 

심리에 능통한 이 학자는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아이들에게로 접근해 아이들이 뛰어노는 광경을 보고 웃음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 즐겁다며 거짓말을 했다. 아이들에게 계속 그렇게 해주면 매일 1파운드씩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들은 놀랐지만 당연히 기뻐했다. 이틀 동안 학자는 고맙게 여기는 듯 가장하면서 아이들에게 돈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셋째 날 그는 돈이 부족하다며 처음 약속의 절반인 50페니만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 다음날 그는 돈이 정말 부족하다며 오직 10페니만을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들은 아무도 10페니를 받지 않았다. 아이들을 불평을 하며 그런 거래를 계속하는 것을 거절했다. 아이들은 두 번 다시 이 공원에서 놀지 말자고 서로 약속하면서 발끈 화를 내고 떠나버렸다. 학자는 다시 고요한 연구 환경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동기는 크게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로 나눈다. 내적 동기는 자발적인 동기로 보람, 책임감, 성취감 등으로 구성된다. 내적 동기에 의한 활동은 활동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외적 동기는 보상을 받거나 벌을 피하려는 것이다. 외적 동기에 의한 활동은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습동기 역시 ‘내가 하고 싶어서 공부한다’는 내적 동기와 ‘보상을 받기 위해 공부한다’는 외적 동기로 나눌 수 있다. 동기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외적 동기가 동기 유발 요인으로서 중대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대략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보상에 의해서 유발된 동기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환경을 탐색하는 능력과 의지를 제한한다. 즉,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공부만 하게 되므로 공부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보상에 의한 동기를 지속시키려면 계속해서 보상이 제공되어야 한다. 보상이 중단되면 공부도 중단된다. 더구나 보상의 양이 점차 많아지지 않는다면 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초등학생 때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받기 위해 공부를 했다면, 중학생 때는 PC를 사달라고 할 것이고, 고등학생이 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자동차나 오피스텔을 사 달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3) 활동 자체보다 보상에만 관심을 갖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보상을 얻기 위해 머리를 굴리게 된다. 책상에 앉아 딴 짓만 하거나, 시험에서 커닝을 하거나, 비싼 학원을 보내달라고 떼를 쓸 수 있다.

 

네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물질적인 보상을 하면 내적동기가 저하된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사례처럼, 자발적으로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순간 내적 동기가 약해지기 시작하고, 보상이 사라지는 순간 활동이 중지되는 것이다.

 

스토(Staw)라는 심리학자에 의하면 산업조직의 경우에서만 외적 보상이 내적 동기를 저하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산업조직에서 수행하는 직무는 대체로 높은 내적 동기를 지닐 만큼 흥미 있는 내용이 못되는데다, 직무에 흥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산업조직에서는 봉급을 받는 것이 합의된 규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단순 노동 정도만 금전적인 보상이 동기를 유발하는 유일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보상으로 아이들의 학습 동기를 유발시키는 것은 아이들은 단순노동자 체질로 만드는 행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지만,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소망이 없는 아이들도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공부를 잘하고는 싶어 한다. 공부나 성적에 물질적 보상을 주는 것은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내적 동기마저 꺾어버릴 위험성이 있다.

 

아이에게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하고, 공부를 하고 싶다는 내적 동기를 부여하고, 알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학습기술 책을 백 권이나 읽었지만 ‘바로 이거야!’라고 무릎을 칠만한 비법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 방법 저 방법 가지가지 방법을 끈기 있게 시행하고 있지만, 아이는 아주 조금씩 받아들일 뿐이다.

 

필자 역시 물질적 보상으로 학습 동기를 유발시키고 싶다는 유혹을 때때로 느끼지만, 그 때마다 그런 행위는 필자 자신이 편하고자 하는 일이지,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다짐하며 유혹을 떨쳐내고 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부모 노릇 제대로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