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우 화백,아들 동훈이 대안학교 보내기까지

Fact/자녀-교육 · 2009. 12. 10. 14:01

두려움 컸죠, 모험하는게 아닐까
변화요? 학교가는 게 즐겁다네요
 


4월과 10월은 전국 대안초등학교들이 가장 많은 입학 문의를 받는 시기다. 자녀가 학교에 적응을 못하니 일찌감치 옮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때가 4월이라면, 내년 새학기 입학이나 전학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의 상담이 집중되는 시기가 10월이다. 다운이, 겨운이 남매를 기르며 겪는 일을 아빠의 시각에서 그린 만화 <비빔툰>으로 유명한 홍승우 화백도 1년 전 비슷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올해 초 공립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 동훈이를 경기 파주에 있는 대안초등학교 ‘행복한 학교’에 보냈다. 동훈이는 <비빔툰>의 다운이인 셈인데,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어떤 아빠보다 관심있게 지켜봤을 그의 선택이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궁금하다. 아이의 대안학교 전·입학을 한 두 번쯤 고민해볼 전국 초등 학부모들을 위해, 홍 화백이 가족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아이를 공립 초등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3년 전 경기도 파주로 이사할 때 이 지역에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대안학교가 비교적 많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 사실이고, 아들 동훈이와 딸 유나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긴 했지만 막상 동훈이가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망설여졌다.

아마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만화를 그려서 밥을 먹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면서 돈도 버니 얼마나 좋겠느냐고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만화’를 일 삼아 그리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피를 말리는 일인지는 잘 모른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미술대학을 다녔고 일간지 연재로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행운도 누렸지만 나는 여전히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더 참신하고 재미있게 그려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아이에게 이 극심한 학벌주의 사회,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헤쳐나갈 ‘무기’를 쥐어주지 않는다면 부모의 도리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내가 잘못 결정하면 아이의 삶이 엉뚱하게 꼬이거나 낙오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부모의 도리는 아이에게 행복한 유년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고집하는 아내와 자주 다퉜다. 아이 교육 문제가 부부싸움의 주요 테마라더니, 우리 부부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왜 풀죽어 다니니?” 물었죠
왕따 불안감에 힘들어했어요
고민끝 어렵게 찾은 대안학교
밤 줍고 책 읽으며 자유로운 공부
아이 어느새 해맑게 웃고 반겨요

 

 

결국 내 고집대로 인근 공립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동훈이는 그러나, 활기차고 기분 좋은 학교 생활을 하지 못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어두운 얼굴로 내내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했다. 누가 나가고 들어오는 지에 통 관심이 없었다. 생기 없이 풀 죽은 모습이 딱하긴 했지만, “인생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지”라는 말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아침마다 죽기 보다 싫은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동훈이에게 “공부가 그렇게 힘들어?”하고 물으니 “공부가 뭐가 힘들어!”한다. 아이를 붙들고 찬찬히 이야기를 해봤더니 세상에나, 초등 1학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공부가 아니라 ‘인간관계’란다.


   
 
동훈이는 자신이 언제든지 왕따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는 새 왕따의 가해자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못견뎌했다. 학교 가는 게 싫어 아침을 짜증으로 시작하고 인생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8살짜 아들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설명하기 힘들다.

결국 지난해 이맘 때쯤 나와 아내, 동훈이는 파주시내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대안초등학교 ‘행복한 학교’를 방문했다. 나는 내가 가진 두려움을 이 학교 교장(이라고는 하지만 권위는 전혀 없고 책임만 많은 사람이다)인 나팔꽃(본명 김정은영, 행복한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서로 별명을 부른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날마다 놀기만 하면 동훈이는 또래보다 뒤쳐지지 않겠느냐, 아이들에게 이런 방식의 교육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 자식을 특별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아이 인생을 담보로 너무 큰 모험을 하는 것은 아니냐.” 지금 생각하면 조금 공격적인 말투였던 것도 같은데, 나팔꽃은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설명했다. “부모는 아이를 평생 걱정하지만, 우리가 그랬듯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스스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행복한 학교에서는 이렇게 하고 있다….”

 

하긴, 나의 노모는 아이 둘 있는 가장인 나에게 매일 아침 말씀하신다. “밥은 먹었느냐, 돈은 잘 벌고 있느냐….” 아이의 미래가 어찌될 것인지 부모가 어떻게 예견하고 만들어주겠는가. 아내 말대로, 그저 지금 아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돕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면서 자연스레 따라붙었던 ‘방과후 사교육’은, 사실 부모의 불안을 일용할 양식으로 자라나는 시장이다. “지금 영어를 하지 않으면, 독서와 논술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으면, 수학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당신의 아이는 낙오자가 될 지도 모릅니다”하는 식이니까. 행복한 학교가 아이의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를 예단하지 않으며 부모의 불안을 부추기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고백하자면 조금 충격을 받았다.

 

올 봄 행복한 학교 2학년에 전학한 동훈이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아침에 학교 가는 걸 몹시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밤 줍고 책 읽고 축구하고 선생님이 두 팔 벌려 안아주는데, 신바람 나는 것이 당연하다. 행복한 학교의 독특한 학제 덕택에 유치원 다닐 나이인 둘째 유나도 입학해, 남매가 함께 다닌다. 사람이 나고 드는 것에 관심없던 동훈이는, 내가 외출 했다가 돌아오면 동생과 함께 문 앞에서 각종 만화영화 캐릭터를 흉내내며 ‘깜짝쇼’를 벌인다.


“아이가 학교에서 영양제를 맞고 돌아오는 것 같다”며 흡족해 하는 아내와, 더 이상 부부싸움할 일이 없어졌다. 웬 대안학교 찬송가냐고? 그저 우리집에서 벌어진 일이니, 다른 가정이 꼭 같은 상황이 되리라는 법은 없다. 평소 부모의 소신과 아이 성격에 따라서, 같은 고민에도 천차만별의 결론이 날 수 있으니 말이다.

 

정부 인가를 받지 않은 학교이니 교육부 입장에서 보면 우리 아이들은 ‘무학’ 혹은 ‘미취학’이다. 동훈이가 학교를 그만둘 때, 나라에서 하라는 의무교육을 안 시키는 부모로서(!) 사유서를 써야했다. 학교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쓸 수도 없고, 우리 아이가 문제아라고 쓸 수도 없어 며칠을 고심했다. 나중에 들으니 대안학교에 보내거나 홈스쿨링을 하려는 부모들이 이 문제로 상당한 곤란을 겪는다고들 한다. 우리 집의 경우 가장 힘든 점은, 역시 학비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니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비를 모두 분담해야 하고, 한 달에 아이당 35만원 가량(대안학교는 그 가정의 살림 형편에 따라 학비를 조금 더 내고 덜 낸다), 두 아이를 보내는 우리집은 70만원 가량을 매달 내야 한다. 프리랜서 만화가 아빠의 허리가 휘청거린다. 아내는 급식 당번, 학부모 모임 등으로 학교에 드나드는 일이 전보다 잦고, 나 역시 아빠 모임에 참여하고 만화 동아리 강사를 맡는 등 ‘모두가 함께 배우고 가르치며 스스로 자라는’ 대안학교 학부모가 되느라 부쩍 바빠졌다. 기꺼이 즐겁게 그 일을 하고는 있으나 때로 마음 한 구석 스물스물 불안이 고개를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동훈이가 왜 학원도 안 보내고 대안학교 같은 데 보내서, 자기가 돈 더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질 수 없게 만들었느냐고 나중에 따지면 어쩌지?’ 아아, 동훈아 지금 그토록 행복한 얼굴을 해놓고선, 나중에 그런 ‘뒷통수’ 만은 치지 말아다오!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이 기사는 홍승우 화백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기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행복한 학교’는

 

자유롭고 자립적 인간 목표. 7살 입학해 12살에 졸업


경기도 파주 문산읍 내포리에 있는 ‘행복한 학교’(ihappyschool.net)는 5명의 상근 교사와 27명의 아이들이 더불어 공부하는 대안초등학교다. 야트막한 동산 아래,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 산책로를 등지고 자리잡은 두 동의 학교 건물은 2002년 3월 대안초등학교인 ‘자자학교’가 문을 열면서 만들어진 것. 자자학교가 문을 닫은 뒤, 벽난로와 작은 도서관, 앉은뱅이 책상이 놓여있는 이 예쁜 황토집은 행복한 학교 아이들 자치가 됐다.

 

행복한 학교는 6년제지만, 7살에 입학해 12살에 졸업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공립학교 기준으로 보면 유치원생부터 초등 5학년 학생들이 다니는 셈인데, 이 학교 김정은영 교장은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감안할 때 공립초등학교 6학년인 13살 아이들은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어 중등교육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행복한 학교의 중등교육 과정이라 할 ‘청미래학교’는 13살부터 17살 아이들이 다니는 5년제 청소년 학교로, 현재 경기 파주 출판단지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수업은 크게 이해표현교과와 체험교과로 나뉜다. 이해표현교과는 가을, 이순신, 우리 몸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탐구하고 표현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우리말과 글(국어), 수학, 영어 등으로 구성된다. 체험교과에는 각종 공동체 놀이와 요리, 태껸, 집짓기 같은 동아리 활동, 수시로 떠나는 여행이 포함된다. 학년 담임인 5명 상근 교사 외에 동아리 활동과 영어 수업 등을 위해 학부모 강사, 외국인 강사들이 수시로 학교를 찾는다.

 

김정은영 교장은 “아이들이 자신을 포함해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자유로운’ 사람, 어떤 현상이나 사람에 대해 좋고 나쁨을 판단해 자신을 편견 속에 가두지 않는 ‘자연스런’ 사람, 스스로 자신감 있고 다른 이와 건강한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자립적인’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자는 것이 학교 철학”이라고 말했다. 내년도 신입생 입학 설명회가 오는 21일 오후 4시 학교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미경 기자